"현재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를 보면 고려 임금들을 황제로 호칭하는 것은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에 의한 것이다."
제가 일단 살핀 바로는 절반 정도 동의할 수 있는 말입니다. 물론 유동윤 작가가 상상력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요.
"그 상상력이 지나쳐서 당시 중국 역대왕조에서도 '태후폐하' '황후폐하' '태자비전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대흠무 회원님의 이 부분에 관한 말씀은 저로서는 그리 쉬이 납득되지가 않는군요.
"궁중 여인에게 '폐하' '전하'라는 호칭을 널리 사용할 습관은 근대 일본 왕실의 의한 것이다."는 데에 대한 근거를 드시지 아니하시고 '단정'하여 말씀하심은 온당한 방식은 아니지 않은가 싶습니다.
현재 무인시대에서 태후에게 '폐하'라고 부르는 것이 구한말 일본의 영향이므로 '태후폐하'를 '태후마마'로 정정해야 한다는 견해는 일단 근거가 희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래 제시한 조선왕조『선조실록』의 26년 6월 2일자 기사를 보면 명(明)나라 황태후를 '폐하'라고 부르고 자국의 왕비에게 '중궁 전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무인시대 작가가 '태후 폐하'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생각 외로 타당합니다.
아래 사례를 들어봅니다.
《선조 039 26/06/02(을유) / 성절 하례 방물 목록 》
성절(聖節) 하례의 방물(方物)은, 어전(御前)에 백저포(白苧布) 20필, 용문렴석(龍文簾席) 2장, 황화석(黃花席) 8장, 만화 방석(滿花方席) 5장, 잡채 화석(雜彩花席) 20장, 인삼(人蔘) 50근, 호피(虎皮) 2장, 표피(豹皮) 2장, 달피(獺皮) 5장, 경면지(鏡面紙) 40장, 백면지(白綿紙) 4백 장, 화연(畵硯) 2면, 황서 모필(黃鼠毛筆) 1백 자루, 진묵(眞墨) 1백 홀(笏), 백선(白扇) 1백 파(把), 잡색마(雜色馬) 20필이고, 인성 의안 강정 황태후 폐하(仁聖懿安康靜皇太后陛下)께 백저포 10필, 잡채 화석 6장, 유단지(油單紙) 20장, 백선 20이고, 자성 선문 명숙 황태후 폐하(慈聖宣文明肅皇太后陛下)께, 백저포 10필, 잡채 화석 6장, 유단지 20장, 백선 20이고, 중궁 전하께 백저포 10필, 잡채 화석 6장, 유단지 20장, 백선 20파이다.
【원전】 22 집 1 면
【분류】 *외교-명(明)
아래 나오는 『성종실록』의 기록에는 조선의 왕비에게 중궁 전하라는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이걸 봐도 폐하와 전하라는 호칭이 황제나 왕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 배우자에게도 쓸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종 009 02/01/19(임진) / 백관들이 중궁에게 하례를 올리다 》
백관(百官)들이 중궁(中宮)에게 하례(賀禮)를 올렸는데, 그 전문(箋文)에 이르기를,
“보책(寶冊)을 정원(庭院)에 떨치어 큰 계책의 경사가 크게 넘치고, 중궁[椒房]의 자리에 계시어 이에 적불(翟쯰)의 영광을 더하시니, 기쁨이 궁중(宮中)의 내전(內殿)에 넘치고 즐거움이 조야(朝野)에 가득합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중궁 전하(中宮殿下)께서는 단정하고 장중(莊重)하시며 정숙하고 정일(靜一)하시며 부드럽고 아름다우시며 온화하고 공순하시어, 태사(太사)의 휘음(徽音)을 이으시어 3후(三后)에게 효도하시고, 문왕(文王)의 지극한 덕(德)을 도와서 교화(敎化)가 주남(周南)·소남(召南)에 흡족합니다. 이에 욕례(縟禮)를 잇달아 베풀어 더욱 온전한 복이 이르는 것을 누립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 등은 모두 용렬(庸劣)한 자질로서 성대한 의식을 보게 되니, 주아(周雅)의 시(詩)를 읊조려서 본손(本孫)과 지손(支孫)이 백세(百世)토록 번창하며, 그윽이 화봉(華封)의 삼축(三祝)을 본받아서 만년토록 오래 사시기를 빌겠습니다.”
하였다.
【원전】 8 집 549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중국 사서에서도 고려 시대나 혹은 그 이전에 해당하는 중국왕조들이 썼던 황태후 폐하라는 표현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漢書』卷六十八 「霍光金日磾傳第三十八/霍光 」, p. 2940.
"臣卬昧死言皇太后陛下"
『後漢書』卷八十四 「列女傳第七十四/曹世叔妻」, p. 2785.
'伏惟皇太后陛下'
『晉書』卷三十二 「列傳第二 /后妃下/明穆庾皇后」 p. 973.
"公卿奏事稱皇太后陛下."
『宋書』卷三十一 「志第二十一/五行二/恒暘」, p. 908.
"臣奏事稱 '皇太后陛下'."
『宋史』「太皇太后、皇太后、皇太妃冊禮」, p. 2646.
'嗣皇帝臣某言:皇太后陛下顯崇徽號'
『宋史』卷一百一十六 「志第六十九/禮十九賓禮一/大朝會儀」 , p. 2744.
"伏惟尊號皇太后陛下"
『明實錄』卷四「大明武宗毅皇帝」, p. 116.
"聖母皇后陛下"
『明實錄』卷三「明神宗顯皇帝」, p. 95, 109.
"聖母皇后陛下"
『馬可波羅行紀』「前言/馬可波羅贈謝波哇藩主迪博鈔本原序」, p. 13
"適在謝波哇藩主奉伐羅洼殿下及其妻皇后陛下之命"[마가파라라는 사람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三朝北盟會編』卷九十五 「靖康中帙七十」, p. 701-2.
"右子崧等總兵赴難恭聞元祐皇后陛下"
『明實錄』卷一百十七「太祖」, p. 1917.
"王妃殿下"
『明實錄』卷一百三十六「太祖高皇帝」, p. 2153.
"王妃殿下壽誕" "王妃殿下稱賀"
『明實錄』卷二下「大明仁宗昭皇帝」, p. 55.
"兄嫂皇妃殿下"
『明實錄』卷一「大明世宗欽天履道英毅聖神宣文廣武洪仁大孝肅皇帝」, p. 42.
"母妃殿下"
『明實錄』卷三「明神宗顯皇帝」, p. 111.
"聖母皇貴妃殿下"
『明實錄附錄』卷三「明世宗寶訓/聖孝三」, p. 166
"皇兄武宗皇帝遺詔嗣位敬惟母妃殿下" "恭惟母妃殿下"
『明實錄校勘記』卷一「明世宗」, p. 8.
"敬維母妃殿下"
이렇게 (황)태후 폐하라는 말 등은 분명히 사용되어져 왔고 예제를 중국에 준하여 자주적으로 시행했던 고려가 무인시대와 같이 했다는 것이 특별히 부당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황상 폐하' 같은 말이야 문제가 있을지라도 '태후 폐하'는 일단 근거상으로는 옳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습니다.
운영자 김 모가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