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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이번 산행은 온갖 가시덤불과 칡넝쿨이 어우러져 정맥길 찾기가 여느 때보다 어려웠고, 심지어 표시기가 매달려 있음에도 길이 사라져 새로이 정맥 길을 개척하다시피 한 경우도 많았다. 정맥꾼 한두분이 아주 최근에 나에 앞서서 지나간 흔적이 있는 듯 하였지만 가다가 끊기기를 반복하여 정맥길 잇는데 엄청난 고생을 한 것으로 짐작이 된다.
낙엽이 진 겨울이나 초봄 같으면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름날 무성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즈음은 길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시덤불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새삼스레 느끼게 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너끈히 40km 이상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출발은 했지만 32km 지점에서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출발 당시 내린 비는 신발과 옷을 젖게 하여 이래저래 나를 고행하게 하였다.
그러나 금북정맥 종주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서해바다를 가슴에 안아 보았다. 해지는 서해바다는 내 가슴을 요동치게 하였고, 그것만으로도 이번 정맥종주는 의미가 있었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보령 스무고개 - 홍성 까치고개
- 산행일행 : 돌쇠 단독산행
- 산행거리 : 도상거리 32.1km 그리고 오서산 직전 585봉 지점까지 왕복 2km
- 산행일시 : 8/21 (일요일) 00:40~18:40
- 산행소요시간 : 18시간(수면 및 휴식시간 약 3시간 포함)
★ 기록들
8월 20일, 8월 20일, 토요일은 비가 올 것이라 출발을 보류하였는데, 막상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외로 가을 하늘처럼 청명하고 공활한 느낌까지 든다. 차라리 이럴 줄 알았으면 전날 출발하여 산행하면 좋았을 것을... 언제나 그렇지만 일기예보를 무시하고 출발하면 기가 막히게 들어 맞지만 신뢰하고 출발을 보류하면 그 예보라는 것이 완전히 빗나가니 정맥종주 내내 참으로 날씨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다.
토요일을 집에서 하릴없이 소일하다 늦은 오후에 동생 내외가 방문하자 양해를 구하여 안양역에서 21시 14분 대천행 마지막 무궁화(9,700원) 기차를 타고 대천역에 23시 40분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였다. 분명히 일기예보는 날씨가 흐리긴 하더라도 비가 오는 것으로 되어 있지는 않아 생각조차 못했던 바였다. 이미 여러차례 장거리 우중산행이 어렵다는 것은 몸서리치게 체득을 한 지라 한동안 대천역에서 서서 갈까말까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산행을 접고 귀가할 수도 없는 일, 예정된 산행을 위하여 택시를 타고 스무고개(11,000원)에 도착하니 도로가 완전히 젖을 정도로 비가 내리고 있다. 아무리 고어텍스 신발이지만 정맥 길에서는 조금이라도 비가 오거나 이슬에 젖어 있으면 그대로 양말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 백두대간처럼 등로가 잘 나 있으면 주변 풀섶의 물방울이 양말 속으로 스며들지 않을 텐데, 정맥길은 풀섶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개척하여야 하는 곳이 많아 반드시 젖게 마련이다.
그래서 발을 비닐에 감싸 신발 안으로 물이 스며들더라도 발에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물론 얼마 안가서 그것도 소용없었지만...
00시 40분, 스무고개 깃발 있는 옛길 위에서 짐을 정리하고 약간의 스트레칭을 한 후 오른쪽으로 희미하게 나 있는 정맥 길을 따라 나섰다. 시작부터 바지가 젖으면서 피부로 서늘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런데 100미터 정도 진행하자 무덤이 나타나고 그 다음부터는 어디로 진행할지 오리무중이다. 낮이라면 대강의 주변을 확인하고 그 들머리를 찾을 수 있을텐데, 한밤 중에 그것도 안개가 끼어있는 곳에서 길 찾기란 쉬운 게 아니었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아주 쉽게 정맥길을 찾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진행하든 일단 능선 위에 올라서면 정맥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나침반을 지도와 대비하면서 진행하는데, 길을 없는 숲속에서 한참을 올라가도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라고는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어둠 속에서 커다란 영지버섯 두개를 발견하고 따기도 했지만,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길을 찾기 위해 일부러 지그재그로 움직이기도 하였고 그러한 과정에서 방향은 틀리지만 서향으로 진행하는 등산로를 발견하고 따라가니 임도로 떨어졌다. 아마도 인근에 있는 마을이 스무티마을로 짐작이 되어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커다란 묘지를 지나 가끔씩 비춰주는 달빛에 의하여 희미하게 보이는 능선이 정맥길임은 확신할 수 있었지만 진행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원래 등산로가 아닌데다 칡넝쿨과 가시덤불이 온몸을 휘감으며 에워싸고 여기저기 생치기를 내기 시작한다. 마치 묘지에 누워있는 고인이 곤히 잠들어야 할 시간에 당신을 깨웠다고 노여워하는 것 같았다.
능선에 이르자 선답자의 표시기는 붙어있어 정맥길인 것은 확실하지만 얼마 진행하지 못하여 또 정맥길을 놓치고 만다.
01시 10분, 은고개라고 생각되는 지점에 도착하였다. 좌우로 길이 뚜렷하여 금계동과 신대마을 사람들은 옛날에 이 길을 통하여 오고 갔을 것이다.
이제 비는 완전히 개었다. 그러면서 구름 속으로 휘영청 밝은 달이 내 비친다. 마치 곱디고운 새색시가 살포시 고개를 들면서 미소를 머금은 듯 환한 얼굴을 보는 느낌이다. 이런 날 성능 좋은 카메라가 있었으면 아름다운 구름의 모습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와 같은 풍경을 영상에 담아낼 수 있었을 텐데, 워낙에 카메라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 내 눈속에만 그 감흥을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느낌을 갖는 것은 아주 잠깐이었고 그 대부분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나 있는 정맥길을 찾느라 표시기를 확인하고 나침반을 보며 방향이 맞는지 갈등하느라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01시 55분, 610번 도로인 물편이 고개에 내려섰다. 여기서부터는 또 한번 길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날머리에서 우측으로 10미터 떨어져 있는 집 맞은 편에서 바로 진입하면 되기 때문에 생각보다 들머리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계속하여 정맥길이 어디냐고 하면서 수수께끼를 내는 것 같다. 처음에 나타나는 갈림 길에서는 철탑을 향해 우측으로 진행하다 밭을 우측에 두고 통과하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 임도가 나타나면 우측으로 임도도 따라 가보기도 하였지만 결국에는 새말안부 거의 다 왔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길을 놓치고 말았다.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258봉을 지나 급좌회전을 하여야 하는데, 표시기가 없었는지 그냥 지나쳐 불무골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을 잡았다. 이제는 돌아가더라도 등로가 아닌 곳으로 빠져 버렸기 때문에 제 위치로 복귀하는 것 자체도 어려워졌다.
무조건 내려서면 위수고개 또는 그 인근에 이를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왼쪽으로 가며 내려서고자 했지만 쉽지가 않다. 묘가 있는 곳은 어딘가에는 묘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길을 낸 경우가 많아 묘를 찾았지만 이 역시 진입로를 찾을 수가 없다.
몇 번이나 진행하다 나뭇가지와 가시덤불에 걸려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다 도리없이 나침반을 보며 무작정 내려서면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위수고개가 있는 도로에 내려선 시간이 03시 50분 정도가 되었으니 도상거리로는 2.5km밖에 되지 않은 거리를 두시간이나 소요되어 도착하였다. 위수고개와는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라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능선을 향해 진행하자 10분 후 위수고개에 이르게 되었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담긴 위수고개 사진을 이미 확인한 터라 바로 위수고개인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04시 정각, 이제부터는 길 찾기가 어렵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있고, 지도상으로도 오서산 근처를 지나가기 때문에 길이 뚜렷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바램과 예측은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햇볕이 조금이라도 드는 곳은 여지없이 가시덤불과 칡넝쿨이 삐지고 나와 자기의 세력을 넓힌다고 여념이 없다.
이제 닭울음 소리가 들리는 인시(寅時)를 반이나 넘겼기 때문에 세상사가 미련이 남아 고인(故人)께서 묘지 밖으로 나오셨더라도 묘지 속으로 다시 들어가 쉴 시간인데, 묘지 비석 앞에서 왠 불빛이 나를 향해 비추더니 곧 꺼버린다.
분명 불빛 자체는 LED 전구를 사용한 랜턴 불빛이라고 생각되었고, 나와 유사하게 야간 단독등반하시는 분이 역으로 정맥종주하시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 무덤가 앞에서 내려 오기를 한참동안 기다려도 불을 끈 채 나타나지를 않는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며 공포심이 엄습해 왔다. 소리를 질러 볼까하다 다시 한번 랜턴을 그 쪽으로 비추자 기다렸다는 듯 또 한번 그 불빛이 나에게 비춰 보인다. 가만히 확인하여 보니 번들거리는 대리석 비석에 내 랜턴불빛이 반사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만약 그 이 순간에 당황하여 놀랐다거나 그냥 가 버릴 경우 나는 귀신불을 본 것이 될 수도 있다. 귀신을 보았다고 하는 것은 그 대부분이 아무 것도 아닌 그야 말로 헛 것일 뿐인데 결국 마음이 심약할 때 귀신으로 생각되는 것이리라.
05시, 이제 비로소 확연하게 식별이 가능하다. 불과 1~2주에는 4시 30분경이면 주변이 훤해 진 것 같았는데, 일출이 많이 늦춰진 느낌이다. 05시 20분, 385봉을 가파르게 올라간 후 가루고개에 도착하였다. 오서산까지 갔다 올 요량이기 때문에 고도차 400미터 이상을 계속하여 올라가야 했다. 지금 이 순간 계속 올라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길이 불분명한 것이 문제였지만, 사실상 올라가는 것은 어떤 길로 가든 정상은 하나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10분 휴식후 바로 금자봉(539m)을 향하여 가파르게 능선을 올라 삼거리에 도착한 시간이 05시 50분, “오서산까지 1.7km”라는 이정표를 대하고 배낭을 내려놓은 후 카메라만 들고서 오서산을 향해 뛰기 시작하였다.
20분만이 채 되지도 않아 약 1km 지점 떨어져 있는 595봉에 도착하였지만, 바닥에 내려 놓은 배낭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야생동물이 내 배낭속 먹거리의 냄새를 맡고서 배낭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계속 오서산으로 갈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이정표 위에다 걸쳐 놓았으면 아무런 근심 없이 갔다 올 수 있었는데, 엄청나게 후회가 되었다.
다시 돌아가서 배낭을 이정표 위에 걸쳐두고 올 수도 없다. 가까이 조망되는 오서산은 잔뜩 구름에 휩싸여 저 멀리 서해바다도 조망할 수 없을 것 같다. 차라리 잘 되었다. 어차피 올라가봤자 아무 경치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에 595봉에서 돌아가기로 하였다.
<구름 속의 오서산>
10여분만에 뛰어 내려왔지만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바닥에 내려 놓은 배낭은 아직 멀쩡하였다. 06시 20분, 조금 이르긴 해도 뛰어 다니느라 허기가 져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06시 50분, 식사를 마치고 공덕고개를 지나 북쪽으로 틀어지는 정맥길은 기러기재로 향하는 등산로와는 달리 길 자체가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하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우비를 벗은 상태라 풀섶의 물방울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금세 온몸이 젖어든다. 그런 상황에서도 제어할 수 없이 잠이 밀려온다.
07시 20분, 도저히 보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잠이 쏟아지자. 방석을 깔고 배낭을 등에 기대니 그 자리에 그대로 골아 떨어진다. 온몸이 젖었는데도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30분간 수면을 취하고 일어나 조금 진행하니 커다란 소나무가 죽어 쓰러져 있고, 그 다음부터는 정맥길이 오리무중이다. 아마도 죽은 나무를 피해 이쪽 저쪽으로 갈리면서 흐지부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지도를 보고 무조건 북쪽 방향으로 내려선다고 생각하고 진행하였지만 숲이 많이 우거져 진행하기가 만만치 않다. 우여곡절 끝에 임도에 내려섰지만 이 역시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하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아도 내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산행기만을 읽고서는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이제 방법은 임도를 따라 마을로 내려선 후 주민들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다. 깨끗한 날씨 덕에 멀리까지 조망되고 밑에 마을 풍경이 한폭의 수채화 같이 아름답다.
<장곡면 광성리와 신풍리 전경>
<처음으로 정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오서산>
처음에는 임도에 내려서서 우측으로 진행하다 방향이 맞질 않아 다시 좌측으로 한참을 가다보니 오서산으로 올라가는 능선이라는 확신이 서자 다시 뒤로 돌아 이미 진행하던 방향으로 한참을 가도 중간에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나중에 급사면으로 임도에서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지점이 정맥길이었을 것이란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09시, 표시기를 확인한답시고 계속 임도를 따라 가다보니 결국은 마을까지 내려와 옥수수를 따고 있는 초로의 아주머니께 동네이름을 묻자 충청도 사투리로 “새마류”라고 한다. 지도를 보니 “새말”이란 지점이 있어 내가 새말까지 지나쳐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동안 정맥길을 찾는다고 헤매었고 이제 다시 하풍고개에서 들머리를 찾아야 하는데 지도를 보니 거기까지 이동하는 데에도 1km 이상 가야했다. 하풍고개에서 꽃밭골고개를 따라 가다가 보면 또 다시 길을 잃을 가능성이 많아 도로를 따라 생미고개까지 진행하는 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장곡초등학교까지 뛰어가기로 마음먹고, 달리기하면 온동네 개들이 짖고 따라와서 할 수 없이 집 앞을 지날 때는 걷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뛰어 금새 30분만에 2km 이상 떨어진 장곡초등학교를 지나 생미고개에 도착할 수 있었다.
09시 30분, 생미고개 진입로에서 질척거리는 등산화를 벗어 근육테이프를 여기저기 붙이 고 새 양말로 갈아 신고 다시 비닐에 싸서 조여맨 후 등산화를 신었다. 여기저기 젖은 옷은 그 마찰 때문에 피부 여기저기가 따끔 거린다. 근육테이프를 붙이고 바세린 로션을 발랐지만, 얼마나 지속될 지는 모르겠다. 마라톤하려고 사둔 근육테이프는 우중산행시 피부 마찰을 예방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없이 좋다.
10시 10분, 40분간 2단계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사실상 도로인 정맥길을 따라 기미 삼일운동 기념비 앞에 잠시 멈춰서서 비문을 읽어본다. 독립운동가들이 실제 옥고를 치르지 않고 벌금 몇십원형에 처해진 경우도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기미삼일운동기념비>
반대로 보는 오서산 경치가 아름답다. 구름이 산꼭대기에만 살짝 걸쳐져 있어 신비롭게 보인다.
<오서산의 전경, 다시 또 구름이 덮혀 있음>
이번에는 아예 선답자가 표기해 둔 시간대별 진행방향을 한손에 펼쳐들고 보면서 진행하였다. 워낙에 갈림길이 많아 자칫 길을 잃기 십상이라 이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다행히 신성역 못미쳐 갈마고개까지는 도로와 밭길을 따라가야 함에도 한번도 길을 놓치지 않았다.
모산악회가 시간대별로 변침점(waypoint)마다 표기를 한대로 그대로 따라하니 길 찾는게 다른 어떤 정맥길보다 수월하였다. 여기저기서 돈사농장이 자리하고 있었고, 선답자들이 사료저장탱크를 waypoint로 활용하고 있었다. 10시 49분 은퇴농장에서 우측을 지나자 10시 50분 스러진 홍원교회 입간판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11시 7분, 아홉골고개에 도착하여 도로를 건넌 후 조그만 축사를 오른 쪽에 두고 임도를 따라 가니 아직 돈사가 운영이 되고 있는 곳도 있지만 휑하니 흉물로 버려진 곳도 있었다.
11시 21분, 열녀 난향의 묘에 이르러 비문을 읽고 음미를 하고자 하였지만 갈길이 멀어 시간이 나면 유적지를 설명한 글을 확인하기로 하고 바로 출발하였다. 난향의 묘에서 우측으로 90도 꺾어 밭뚝 길따라 가다보니 십자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좌측 임도따라 진행하여 밭사이길로 진행하면 이내 갈마고개에 내려서게 되었다.
<열녀 난향의 묘>
11시 33분, 갈마고개에서 “공수마을”이라는 표지석을 대하게 되고 이 표지석 좌측 시멘트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임도가 나타나고, 갈림길에는 간간히 붙어있기도 하였지만 맨 좌측 길을 따라가다 밭이 나타나면 다시 우측으로 방향을 바꾸고 다시한번 갈림길이 나타났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우측으로 돌아가니 차선없는 포장도로에 내려서게 되었다.
1시간 30분 이상을 산길이 아닌 도로와 밭을 통과하였고 이제부터는 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표시기는 붙어 있더라도 사람 지나간 흔적이 없어 정맥길인지 불분명하다. 11시 45분, 162.4봉에 도착하여 삼각점을 확인하였고, 소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아 점심식사를 하였다.
12시 30분,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였지만 신성역으로 가는 방향도 역시 길이 흐릿하여 여러 번 마루금을 놓친다.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신성역 인근까지 다 온 것은 분명한데, 어느 순간 확실하게 정맥길을 놓치면서 철길로 내려서고 말았다.
13시 07분, 철길을 따라 200여미터를 진행하자 신성역에 도착하게 된다. 혼자 남은 젊은 역장이 외로워서인지 개를 친구삼아 키우고 있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 든다.
<신성역>
역사를 통과하여 좌측으로 방향을 잡은 후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나 있는 마을 길로 접어들자 산행기에 나타난 설명처럼 들머리가 보이질 않는다. 계속하여 진행하니 인삼밭이 나타나고 인삼밭 맨 위에서 우측으로 갔다가 등로가 있는지를 확인하니 길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좌측 능선으로 올라 갈 수 있게 되어 있지도 않아 다시 인삼밭을 나와 반대쪽으로 희미하게 나있는 능선을 오르자 정상에 표시기가 붙어 있어 정맥길임을 비로서 확인하게 된다.
13시 40분, 신성역에서는 불과 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인심 밭에서 조금 헤매긴 했어도 시간상 많이 지체된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신성역에서 떨어져 얼마간 진행하니 마온아파트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를 따라 꽃조개고개까지 가려고 하다가 왼쪽으로 보니 아파트 안으로도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편하게 아파트 정문을 통하여 현재 공사 중인 꽃조개고개에 이르러 퍼질러 앉아 간식을 먹으며 오늘 덕숭산까지 진행하기로 한 예정된 산행을 까치고개에서 중단키로 하고 끝나는 대로 귀가하기로 하였다.
일단 홍성에서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편리하고 다음 산행 때에는 심야에 가야산을 통과하는 것보다는 밝은 시간대에 통과하면서 서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는 여유도 갖고 싶었다.
14시 들머리라고 생각되는 지점에 표시기는 붙어 있어도 사람이 지나간 흔적은 없다. 누군가 이 절개지를 가파르게 올라 능선을 따라 갔겠구나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사람 키보다도 더 자라버린 억새와 잡목, 칡넝쿨을 헤치며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널찍하게 자리잡은 묘가 나타나고 그 위로 정맥길이 보인다.
<묘지에서 바로보는 마온 아파트와 정맥길인 그 뒤의 절개지>
조금 진행하자 우측에서 올라오는 계단이 있고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한용운 선생동상 0.2km, 순환로 0.5km, 팔각정 0.5km"라고 적혀 있었다. 정맥길이 남산 팔각정 오르는 것처럼만 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편한 등산로는 이내 끝나버리고 정맥길은 왼쪽으로 희미하게 나 있었다.
이왕 왔으니 남산에 올라 내가 온 길과 앞으로 진행하여야 할 길을 조망하기로 하였다. 14시 20분, 팔각정에 오르자 인근의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듯 몇몇이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지나온 오봉산과 오서산을 지나 지금까지의 행로와 앞으로 진행할 일월산과 덕숭산, 가야산이 꾸불거리며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14시 45분, 다시 한번 배낭에 널어 말린 양말로 갈아 신고 정맥길 진입로로 되돌아와 수리고개로 향하는데, 계속하여 정남향으로 향하면서 신성역이 가깝게 느껴져 이상하다 싶어 확인하니 분명 정맥길은 아니었다. 다시 10분 정도 왔던 길을 따라 올라가자 오른 쪽으로 희미하게 나 있는 갈림길에 리본이 붙어 있었다.
일월산 가는 길도 만만치가 않다. 오늘 산행이 이처럼 힘든 것은 그 만큼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데다 정맥길을 칡넝쿨과 가시덤불로 채우져 있기 때문이다.
15시 40분, 남산에서 1km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를 1시간이나 걸려 포도밭을 통과하자 맞고개에 도착하였다. 포도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따먹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만약 농부가 알게되면 정맥꾼을 싸잡아 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63번 철탑과 64번 철탑, 그리고 66번 철탑을 지나면서 절개지가 나타나고 29번 도로 하고개를 접하게 된다(16:20). 해태상이 있는 곳에서 무단횡단하여 밭둑을 따라 올라선 후 다시 도로를 무단횡단하니 “홍주병오위병주둔유지비”가 보인다. 홍주에 의병들이 모여 주둔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오늘 지나는 정맥길은 독립항쟁과 관련한 애국심과 충절이 깃들어 있다.
16시 30분, 야트막한 봉우리인 136.2봉을 지나 16시 40분, 68번 철탑을 통과하여 17시 3분 살포쟁이 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바로 앞에 당상나무가 있는데, 나무주변 돌들이 무슨 이유인지 파헤쳐져 있었고 그 옆으로 아스라이 정맥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살포쟁이 고개에서 계속하여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오늘 진행하여 온 여느 길처럼 등로가 잡초 등으로 휩싸여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소나무길을 대하면서 길은 분명치 않더라도 잡초가 들어올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홍성에서는 일월산을 백월산으로 하는지 이정표는 백월산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갑자지 급경사로 변하면서 능선을 오르자 사방이 열리면서 오늘 지나온 산자락이 조망된다. 주암에 이르자 그 모습은 더욱 뚜렷해졌다.
<가운데 오봉산과 백월산 그리고 오서산에 이어 정맥길이 아스라이 연결되어 있음>
<다음에 지나가게 될 덕숭산과 가야산>
계속 진행하자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게 되고 따로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가자 일월산(393.6m)에 도착하게 된다(17:50). 일출산 정상 산봉우리에는 산불감시카메라를 설치되어 있었다. 홍성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서해바다를 가슴에 안을 수 있었다. 일몰을 준비하는 서해바다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지나온 능선을 되돌아 보는 것도 흐뭇하기도 하지만 홍동산 넘어 덕숭산과 가야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하고, 우측의 용봉산과 어우려져 조화를 더한다.
<일월산 정상>
<일몰을 준비하는 서해바다>
진행방향으로 바로 앞에는 코끼리바위라고 칭하는 바위가 있는데, 가만히 보니 코끼리보다는 말이나 개의 머리형상과 닮았다. 그 밑에서 무녀들이 굿을 하려는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코끼리 바위, 밑에 무녀들이 굿을 준비하고 있음>
17시 55분, 사당을 보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 공사인부에게 사진 한 장 찍어줄 것을 부탁하여 하산을 시작하였다. 마사토가 진행을 방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시덤불에 뒤덮혀 정글 탐험하는 심정으로 진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맥길은 표시기가 제법 많이 붙어있어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다.
<왼쪽 밑 사당은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
<홍성시내 전경, 가까이 보이는 체육관이 홍주체육관>
<사당 위에서 본 일월산 전경>
마사토가 있는 내리막길을 접고 집 몇채가 있는 평지에 이르게 되면 갈림길이 있지만 이미 철수했는 지 빈 교회건물 뒤쪽을 지나 진행하니 까치고개에 도착하였다(18:40).
다음 산행코스의 들머리를 확인하고 홍성까지는 가깝기 때문에(약 3km 정도) 아무 차라도 세워주지 않으면 걸어 갈 생각으로 홍성방면으로 가고 있는데, 크게 기대하지 않고 손을 들었음에도 봉고차가 서면서 선뜻 태워준다.
어디에서 왔느냐 하길래 안양 평촌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도 평촌을 잘 알고 있으며 친한 친구도 아직 평촌에 살고 있다고 하고 목적지가 홍성역이 아님에도 홍성역까지 태워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안내원이 용산행 무궁화 기차는 어느 시간대이든 좌석은 아예 없으니 19시 15분 수원행 입석(6,000원)을 구입하라고 한다. 기차도착 시간이 불과 10분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아 화장실에 들러 머리를 감은 후 젖은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 마른 옷으로 갈아 입었다.
어차피 입석이라 아무데나 자리 깔고 앉으면 되었지만, 이외로 맨 뒷자석에 배낭 등받이에 기대어 방석을 깔고 앉으니 썩 괜찮았다. 저녁식사도 하지 못한 채 기차에 올라 탔지만 맥주에다 오징어를 주문하여 옆 사람의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술 한잔 걸치는 것도 무궁화열차 입석이 갖는 매력인가 보다. 집에 도착하니 22시 30분, 오랫만에 단잠에 빠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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