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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자유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행자들에게 가끔 왜 여행을 하느냐고 묻는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난 140개국을 여행한 할아버지나 이집트에서 만난 처음 여행을 시작한 이스라엘 청년의 첫 마디는 모두가 “free-자유”였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올랐을 때 나를 더욱 감격시킨 것은 정상의 이름이 아프리카 원주민의 언어인 스와힐리어로 우후르 즉 자유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어떤 장황한 설명보다도 자유라는 한 단어에 가슴 뭉클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압박과 구속의 장막이 쌓여 가는 나이만큼 두꺼워져 자유의 필요성과 소중함이 간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포기해야만 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우리나 외국인 모두 여행에서 가장 느끼고 싶은 것이 자유인 것이다.
생활 속에서 느껴지는 자유는 순간적이고 제한적이며 심지어 반항적이고 퇴폐적일 때가 많지만 여행에서는 다르다.
여행에서는 탈옥을 한 무기수나 혁명가가 쟁취를 통해 얻은 것과 같은 외적인 자유뿐만 아니라 수행자가 깨달음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초월적인 자유마저 느낄 수가 있다.
여행에서는 여행이라는 완벽하게 새로운 공간 속에서 이제까지의 과거의 내가 사라진 또 하나의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가 있다.
생활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 위선자였지만 여행에서는 양수를 터트리며 갓 태어난 아이처럼 순수한 영혼으로 부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렵게 떠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혜택인 자유는 어떤 이유에서든 포기해서도 양보해서도 안 되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혼자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혼자 떠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혼자 떠나고 싶어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과 외로움 때문이다.
(여행과 두려움)
우리가 여행을 떠나려할 때 시간과 돈도 문제지만 막연한 두려움이 떠나려는 우리의 의지를 꺽는다. 그 두려움은 전혀 다른 문화와 풍습 속에서 언어가 통하지도 않는데 안전하고 건강하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된다.
여행을 하면서 그 나라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보다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원주민과 어울려 그들의 문화와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만 갖고 한국에 돌아와도 그 여행은 보람있었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언어는 여행에서 불편을 조금 초래할 뿐이지 여행을 포기 할 이유는 절대 못된다.
학술적 탐구를 위해 간다면 언어는 절대적이지만 단순히 여행 자체만을 하려 한다면 언어는 전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영어 실력은 겨우 길을 물을 수 있을 뿐 대답을 알아듣지 못 할 정도로 엉망이지만 세계 오대양 육 대륙을 다 돌아다녔다.
산꾼인 내 후배는 학교를 못 다녀 알파벳도 몰라 출입국 신고서를 남에게 부탁하여 쓰면서도 매년 6개월씩 해외여행을 하고 다닌다.
나 역시 처음 해외에 나갔을 때 누가 나에게 말을 걸면 덜컥 겁부터 나고 뜻대로 여행이 안 될 때는 짜증나고 답답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만국 공통의 최고 언어인 미소와 바디랭귀지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친절과 동정심을 유발하고 친밀감을 더해 주기도 한다.
또 자국 말밖에 모르는 답답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이해해 쉽게 친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과 친해지는 경우가 많았었다.
한번은 인도네시아에서 사귀게 된 일본인과 새해를 맞이하여 파티를 연적이 있었다.
둘이서 하루종일 술에 취해 영어로 떠들었는데 나중에 옆집에 묵고 있던 미국 여자는 우리가 일본말로 대화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엉터리 영어였지만 어째든 대화는 한 셈이었다.
언어를 잘 안다고 여행을 잘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언어는 배낭이나 운동화 같은 여행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또 하나는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다. 우리가 어느 나라를 가려 할 때 가이드북에서 꼭 보는 항목이 security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혼자 다니면 무섭지 않느냐고 질문을 한다. 물론 무서울 때도 있다.
90년대 초반 만델라가 정권을 잡은 뒤 흑인들의 천국인 된 요하네스버그의 총소리가 들리는 거리를 걸으면서 붉게 충혈 된 눈들과 마주치거나,
안나푸르나의 밀림 속에서 갑자가 칼을 든 원주민과 맞닥뜨렸을 때,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의 화장실에서 피가 들어있는 주사기를 들고 돈을 달라는 에이즈 환자를 만났을 때 등 여러 번 위험에 처한 경우가 있었다.
특히 가이드북이나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과장된 표현이나 .매스컴에 나오는 사건들을 들으면 떠나기가 더욱 싫어진다.
미국에서는 엘리베이터는 절대 혼자 타지말고 슬럼가는 근처에도 가지 말며
인도에서는 남이 주는 음료수나 과자는 절대 먹지말고 술을 사먹으면 눈이 먼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화장실에 강도가 많고, 소매치기와 집시를 조심해야 하며
동남아는 권총강도가 유행이고, 중국은 납치가 빈번하며 아프리카에서는 원주민이 돌연 강도로 변해 칼을 내밀며 위협하고, 심지어 뒤에서 몽둥이로 머리를 내려친다고 한다.
남미에서는 떼강도가 버스를 통 채로 털고, 남태평양의 섬에서는 원주민이 칼로 목을 따고 훔쳐 가는 등
이루 열거하기 힘 들 정도로 많은 위험들이 입에서 입으로 퍼진다.
이상한 소리 같지만 대부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그 나라의 특성에 맞춰 조금만 주위를 기울이고 겸손하고 당당하게 여행하며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은 피해갈 수 있다.
안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차 문을 체인으로 묶어 놓고 다른 손님이나 역무원이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거나, 무서워서 밤거리도 못나가며, 카메라는 꼭꼭 숨겨 마음껏 찍지도 못하고,
짐을 훔쳐갈까 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며, 혼자서는 화장실도 못 가고, 사람들이 무서워서 호젓하고 아름다운 곳을 피한다면 여행의 즐거움은 반감될 것이다.
외국인의 가이드북을 보면 한국은 동남아의 후진국보다도 안전하지 못한 여행지 중에 하나이다.
비록 매일 같이 뉴스에서는 끔직한 사건들이 나열되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어느 나라 보다 안전하게 잘 살고 있고 많은 외국인 여행자가 우리나라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 오는 날 벼락 맞을까 지레 겁을 먹고 실내에서만 머무르려고 하는
어리석음만 없다면 세계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무릇 모든 두려움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 또한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두려움이 사라지면 당당함과 진실함이 찾아온다.
비록 내가 여행 초보자지만 당당하고 진실 되며 겸손 할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도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과 외로움)
혼자 떠나려는 발걸음을 막아서는 또 다른 하나는 외로움이다.
도시에서는 가족, 친구, TV, 오락, 풍성한 먹거리 등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몰입할 대상들이 많은데도 외롭다고들 한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남이 내 뜻대로 해주지 않으며, 남만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이기심과 탐욕, 사회적 유기체로서의 소외감이 만든 외로움이다.
그러나 여행에서의 외로움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타인의 不在가 만든 외로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타인과 떨어져서 홀로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희열인 것이다.
여행의 외로움은 묻혀있던 자신에 대한 질문을 되살려내고 자신에게 몰입시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며 마침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어 준다.
외롭다는 것은 남과의 관계에 익숙한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하면서 스스로가 극복할 수 있다면 외로움은 고통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한달 간 캠프장을 돌면서 여행할 때나 중국 천진으로 들어가 내륙지방을 관통해서
홍콩으로 나올 때까지의 40여 일간 한 말은 서울서 하루 동안 한 것보다 적었을 것이다.
영어를 못하는 나로서는 가끔씩 한국말이 몹시 하고 싶지만 그러면서도 여행 중 가장 꺼리는 것이
같은 한국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여행에서의 몰입, 즉 외로움을 즐기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 중 많이 운다.
하지만 슬프거나 고통스러워 운 적은 한 번도 없다. 벅찬 감격, 사무치는 그리움, 환상적인 아름다움, 기쁨과 감사의 눈물 등 여행의 외로움이 만들어준 지극한 감성 때문에 운다.
그래서 울고 난 후의 젖은 마음은 고산의 만년설보다도 깨끗한 순수로 가득 찬다.
90년대 초반 네팔에서의 일이다.
포터와 가이드가 없이는 안나푸르나 베이스까지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다는 주위의 만류도 무릅쓰고
혼자서 산으로 올랐다. 이미 동계시즌의 시작으로 롯지는 닫힌 곳이 많았고 사먹을 곳이 없어 주로
감자와 토마토를 먹어가며 산을 올랐다.
4000m의 산들은 그곳에서는 겨우 언덕으로 불릴 정도인 길을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며 5일째 안나푸르나의 베이스 캠프로 향해 가는 마지막 날은 눈보라와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길을 잃고 크레바스와 실족의 위험 때문에 느낀 공포와 허기로 인해 롯지에 도착하자마자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고소증에서 오는 극심한 두통과 추위에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 난 후 아침 일찍 창문이 없는 방의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지난밤의 눈보라는 씻은 듯이 사라지고 찬란한 햇빛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겨우 시력을 맞추고 고개를 드니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하여 산악인의 등반을 불허하는 물고기의 꼬리라는
7000m급의 마체푸체르나가 동화 속 수정궁전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고 뒤를 돌아보니 히말라야산맥의
최고봉들인 8000미터가 넘는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이 드넓은 눈밭 위에 병풍같이 펼쳐진 채 현란한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산이 좋아 산에서 죽고 싶었던 나였기에 난생처음 8000m의 거봉들을 바라보면서 흘린 환희의 눈물은 내가 가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어 주었다.
또한 대만의 3대 비경이라는 아리산을 오를 때는 생각보다 물가가 비싸 환전한 돈은 이미 다 쓰고 겨우 공항으로 돌아갈 기차비만 남아있었다.
산의 정상에서 밤을 세우고 일출을 본 후 버스비가 없어 사이역까지 90㎞를 걸어서 가야할 처지가 되었다.
뜨거운 햇살을 피해 손수건으로 얼굴을 강도처럼 가리고 걷다가 경찰에게 검문도 받아가며 하루 종일 걸었지만 산의 절반도 벗어나지 못해 밀림 속에 텐트를 치고 잘 수밖에 없었다.
밀림은 뱀의 낙원인 듯 해가 지자 투명한 청사를 비롯해 수 십 마리의 뱀들이 텐트 주변을 배회해서 화장실도 못 가고 물도 뜰 수가 없는 갇힌 신세가 되었다.
아침이 되어서도 여러 마리가 주변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나갈 수가 없었다.
밀림 속에 혼자 떨어진 상태에서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어 결국 신문지에 불을 붙여 연기를 내뿜고 악을 써서 겨우 뱀을 쫓아냈지만 두려움 속에서 짐을 꾸려야만 했다.
겨우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이틀을 굶은 터라 열대의 찌는 듯한 열기와 심한 갈증에 하늘이 노랗고 배낭은 땅에 끌리듯이 무겁게 느껴졌었다. 그 때 길옆에 하얀 색의 커다란 불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사실은 불상이 눈에 들어 온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놓인 커다란 파인애플 3개와 메론 2개가 보인 것이었다.
남이 볼세라 배낭 속에 잽싸게 쑤셔놓고 50m를 뛰어 숲 속에 숨어 파인애플을 잘라 노란 속을 한 입 배어 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흘러 나왔다.
여행의 외로움은 감성의 모든 문을 열어 순수의 사다리를 오르게 해준다
진정한 외로움을 느낄 줄 모른다면 감성의 한 쪽만을 볼 수 있을 뿐 건너편은 알 수가 없다.
순수의 사다리를 올라 자신이 품고 있는 감성의 드넓은 폭을 느낄 때 모든 인성은 확장되고 삶은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여행이 주는 외로움 그 가치는 여행을 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촛불의 타오름인 것이다.
이처럼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면 완벽한 자유를 즐길 수 있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가 있다.
두 명 이상이 같이 여행을 다니면 가고 싶은 곳, 쉬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일일이 상대방들과 맞추어야 한다.
남들과 늘 부대끼는 도시에서의 생활과는 다르게 여행 중에는 상대방에게 쉽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것은 여행의 본질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여행자들 사이엔 이런 말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여행을 끝내고 나면 꼭 헤어진다"는 것이다 어느 한사람을 위해 나머지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 한 같이 하는 여행은 즐거움이 반감된다.
인도에서의 일이다
여행도중 우연히 불국사에 계신 스님과 만나게 되었다. 최근에 소가 빠져서 발견된 우물의 안쪽 벽에는 부처님께 우유 죽을 공양했다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기록이 적혀있어 교통편이 불편해도 찾아갔지만 식당은 물론 숙소마저 없는 곳이라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차편이 끊겨 걱정을 하는 나에게 스님께서 조금 있어보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국의 관광버스가 도착을 하였다.
버스 안에는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 환생을 한 링 림포체까지 타고 있는 부유층의 단체 관광객이었다. 덕분에 영취산과 나란다 불교대학까지 수월하게 관광하고 야쇼카 특급호텔에 공짜로 머물 수 있었다.
난생처음 단체관광객과 1박2일을 보내게 되었지만 다음날 저녁 간곡하게 우리를 붙잡는 여러 스님들과 관광객을 뒤로하고 미얀마 절의 옥상으로 향했다.
비록 맛있는 음식과 고급스런 호텔에서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 분들과 지낼 수 있었지만 짜여진 스케줄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숨을 막히게 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미얀마 절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을 택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여행의 자유를 위해서는 계획도 자유로운 여행을 해야한다.
많은 여행자들은 한국에서 수집한 온갖 정보로 무조건 싸게 많은 것을 보아야 여행을 잘한 것으로 알고 욕심 그득한 계획표를 세운다.
뉴질랜드 여행도중 만난 한 여자 여행자는 45일간 여행을 하는데 한국에서 미리 유스호스텔을 날짜에 맞추어 모두 예약을 해놓고 철저히 계획에 따라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나보고 이렇게 계획성 있고 철저한 여행자를 본 적이 있냐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며 웃음으로 답을 대신 했지만 속으로는 너는 참 끔찍한 여행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였다.
(여행의 의외성)
여행의 참 맛 중에 하나는 자유가 주는 의외성이다.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듯이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 줄 모르는데 여행의 재미가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의 하루는 그 날 일을 대충 알 수 있다. 일어날 일도 뻔하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목적지가 바뀔 수 있고 만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해프닝이 벌어질 지 알 수가 없다.
포르투칼에서의 일이다.
콜럼부스의 야망이 숨을 쉬는 듯한 안개 낀 리스본항의 새벽풍경을 감상하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유명한 곳도 많았지만 기차역에서 본 나자렛 이라는 지명에 이유 없이 끌려 그곳에 가기로 결정하고 시간표를 보니 6시간 후에나 기차가 있어 포기할까 했지만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이라 여기며 역에서 죽치는데 역 깡패들이 나에게 접근을 해왔다.
처음에는 담배를 달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며칠 전 감방에서 출소해 집에 갈 차비가 없다며 돈을 요구하였다.
서로 영어를 몰라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대화를 하는 처지라 못 알아들은 척 시치미를 떼며 화제를 태권도로 돌렸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태권도가 동양의 신비스런 무예로 추앙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돈을 달라는 놈에게 태권도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놈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제법 알고 있는지 나보고 검은 띠냐고 물으면서 시범을 보여달라는 것이었다.
태권도를 전혀 할 줄 모르는 나였지만 태권도는 자랑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며 사람도 죽일 수가 있어 함부로 보여줄 수가 없다면서 제일 쉬운 앞차기를 시늉만 하였다.
그러자 돈을 달라던 녀석이 내 대신 주변의 깡패들에게 뻥을 쳐주어서 어린 깡패에서 나이든 깡패 두목까지 내 주위로 몰려들어 나를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들 보다가 마침내 테라스에서 파티를 열게 되었다.
나는 두목 옆에 앉아 부하가 사온 와인 병을 돌려 먹을 때는 두 번째로 먹을 수 있었고 야채와 샐러드가 듬뿍 든 고급스런 샌드위치도 먹어가며 칙사대접을 받았다.
기차가 떠날 때는 역에 있는 깡패들이 모두 내 창문 앞에 나란히 도열해서 엄지를 지켜드는 바람에 옆에 앉은 손님들이 내가 무서워 다른 자리로 도망가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단지 이름이 좋아 찾아간 나사렛은 거대한 강이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바닷가 도시였다.
대형 아치교가 강을 가로질러 놓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강둑에서 낚시를 즐기는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다.
나는 바닷가 해수욕장이 있다는 곳으로 무조건 걸어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강한 햇살 속에서 걸으려니 힘들고 괴로웠지만 도중에 들린 슈퍼에서는 귀여운 종업원 아이가 내 피부와 머리카락을 만져가며 과일도 공짜로 주어 즐겁게 해주었다.
마침내 도착한 해변은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와 고운 모래사장은 기대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바닷가 맨 앞 쪽 암초 위에 올라앉아 발 밑에서 폭발하는 듯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홍합을 따서 와인과 고독을 즐길 때 나의 여행심은 파도의 거품처럼 끓어올랐다.
돌아올 때는 지나가는 버스를 무작정 세우고 올라타니 빈자리가 없어 나 혼자만 서있게 되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서 몹시 쑥스러워 하는데 앞에 앉은 아줌마가 옆자리의 두 아이를 자기 품에 안으며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괜찮다며 극구 사양을 했지만 버스 안 모든 사람이 손짓을 해가며 앉으라고 권하는 바람에 편하게 앉아 역으로 향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동양인 관광객을 처음 본 듯이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손님처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런데 기차역에서 내려야되는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운전기사에게 내릴 곳을 알리기 위해 손짓을 해가며 여러 종류의 기차소리를 내야만 했는데 그 때마다 나의 원맨쇼에 버스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포르투칼에 갈 때 나자렛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장소였고 역의 깡패나 나자렛 해변의 아름다움, 버스 안에서의 친절, 등 어느 것도 계획에 없었고 기대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여행의 자유가 주는 의외성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의외성이 주는 불확실성의 야릇한 모험심과 긴장감은 새장 속의 앵무새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매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계획은 계획으로 끝나야지 계획이 여행을 끌고 간다면 결코 자유로운 여행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끝으로 여행의 자유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완벽한 자유를 즐길 수 가 있다.
여행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움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워야 한다.
한국에서 몸에 밴 도덕 ,관습, 가치관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그것들을 버리는데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다.
한국에 없는 나체 촌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두 벗어야 되듯 새로운 의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럴 수 있을 때 방종이나 타락과 같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쾌락적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변화됨을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의 희열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두려움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여행을 한다면 자연이 얻어질 수가 있다.
거리낌이나 막힘 없이 순수의 감정이 솟구치고, 느낌대로 행하며 그 선택이 최선은 아니었을지라도 후회하지 않고 고통마저도 여행의 재미라고 느낀다면 비로소 여행에 몰입한 것이며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시인에게 시심이라고 하듯 여행자의 자유 즉 여행심이라고 부른다.
여행과 자유는 나무의 뿌리와 열매가 한 몸이 듯 서로는 한 몸이며
자유롭지 않은 여행은 저승길을 떠나는 죽은 자의 여행일 뿐 진정한 여행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혼자 떠나야만 하며 안전과 언어,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유로운 계획 속에서 의외성과 외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여행은 신이 내린 축복이 되어 온 몸과 마음을 신선한 새로움으로 적셔줄 것이다.
첫댓글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글입니다.저도 안나푸르나를 멀리서나마 한번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