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하물며 한 직종에 10여 년간 근무한 사람이라면 그 분야에 베테랑이 되는 건 당연하겠지요. 교열 쪽 일을 하는 사람도 대개 그 정도 연륜을 쌓으면 자신의 업무 분야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한마디로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거지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말법이 너무 어려워서, 10년 공들여도 띄어쓰기 하나 자신 있게 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건 그 사람의 능력이나 지식, 업무관심도를 떠나 말이란 게 자연과학마냥 정답이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자기보다는 말글에 관심이 없는 누군가가 말글에 관해 물어왔을 때,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하면 낭패스럽지요(낭패스럽다? '검사스럽다'처럼 어색하네.). 얼마 전 제가 그런 경우를 당했습니다. 회사 윗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내용인즉슨 아래 두 가지 표현 중 어느 게 맞느냐는 것이었습니다.
1. 학교에 가깝다
2. 학교와 가깝다
밑도 끝도 없이 어느 게 맞느냐는 것입니다. 만만한 사람이 이런 걸 물어 오면 “좀 막연한 질문 같네. 전후 흐름을 알아야지”라고 할텐데, 그렇게 여유부릴 처지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습니다. 답변이 뻔하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쪽 다 깠지요. “좀 더 알아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궁색한 변명을 했더니, “아, 됐어요. 크게 문제 안 되면 아무거나 쓰지 뭐.”라고 말씀하십디다. 점잖은 그 말을 직역하면 이럴 겁니다. “됐네, 이 사람아, 오늘자 신문을 내일 만드나? 자네는 뭐 하나 도움되는 게 없어.”
그렇게 상황이 끝난 뒤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가깝다’ 항목을 찾아보니 이 단어의 결합력이 대단하더군요. ‘에’ ‘에서’ ‘에게’ ‘와’ 등 무차별적인 흡인력을 보입니다. 예문을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에서’와 결합하는 예
→ 우리 집은 학교에서 가깝다.
2. ‘에’와 결합하는 예
→ 난로가 창에 가깝게 놓여 있다.
3. ‘와/과’와 결함하는 예
→ 거리로 따지면 우체국이 백화점과 더 가깝다.
4, ‘에게’와 결합하는 예
→ 아이는 되도록 엄마에게 가깝게 앉았다.
5. ‘이/가’와 결합하는 예
→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때가 가까웠다.
여기서 문제는 1, 2, 3이 어떤 차이를 보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기타 4의 ‘에게’는 사람이나 동물 등 유정명사의 뒤에 붙으므로 별로 문제될 게 없을 테고, 5의 ‘이/가’ 역시 ‘에/에서’와는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에 논외로 하지요.
1,2,3의 예문을 놓고 차이점을 찾느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아래와 같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알고 보면 간단하지만, 막상 홀로 그 차이점을 찾아내자면 저처럼 고민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 ‘~에서 가깝다’:어떤 대상에서 떨어지다
예) 학교에서 가깝다=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2. ‘~에 가깝다’:어떤 대상에 근접하다
예) 절반에 가깝다=절반에 근접하다, 가까이 가다
3. ‘~와 가깝다’: 상호간 근접하다
예) 나는 그와 형제처럼 가깝다=나는 그와 서로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