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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심묘체 眞心妙體 (14)
豈四山之可害며 離性離相이어니 奚五色之能盲이리오.
가사산지가해 이성이상 해오색지능맹
故로 永明唯心訣에 云하사대
고 영명유심결 운
夫此心者는 衆妙群靈而普會하야 爲萬法之王이요
부차심자 중묘군령이보회 위만법지왕
三乘五性而冥歸하야 作千聖之母로다.
삼승오성이명귀 작천성지모
獨尊獨貴하며 無比無儔하니 實大道源이며 是眞法要라
독존독귀 무비무주 실대도원 시진법요
信之則三世菩薩同學이 盖學比心也요.
신지칙삼세보살동학 개학차심야
三世諸佛同證이 盖證此心也요
삼세제불동증 개증차심야
一大藏敎詮顯이 盖顯此心也요
일대장교전현 개현차심야
一切衆生迷妄이 蓋迷此心也요
일체중생미망 개미차심야
一切行人發悟가 蓋悟此心也요
일체행인발오 개오차심야
一切諸祖相傳이 蓋傳此心也요
일체제조상전 개전차심야
天下衲僧參訪이 蓋參此心也니
천하납승참방 개참차심야
達此心則頭頭皆是며 物物全彰이요
달차심칙두두개시 물물전창
迷此心則處處顚倒하며 念念痴狂이니
달차심칙처처전도 념념치광
此體는 是一切衆生의 本有之佛性이며
차체 시일체중생 본유지불성
乃一切世界生發之根源이라
내일체세계생발지근원
故로 世尊이 축峯에 良久하시고
고 세존 축봉 양구
善現이 엄下에 忘言하시고
선현 엄하 망언
達磨가 少室에서 觀壁하시고
달마 소실 관벽
居士가 毘耶에서 杜口하시니 悉皆發明此心妙體라
거사 비야 두구 실개발명차심묘체
故로 初入祖門庭者는 要先識此心體也니라
고 초입조문정자 요선식차심체야
그러니까 四山(사산)도 어떻게 못하는데 하오며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진치(貪嗔痴) 그것이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은 더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거예요.
이것이 아주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고. 또 불교의 아주 핵심적인 이야기고. 마음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보통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면은 저기 저 마음자리에 그것이 때가 묻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데. 물론 겉에는 때가 묻어요. 겉에는 때가 묻을지 모르지마는 마음 땅에는, 진심자리에는 절대 때가 묻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설사 살인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살인한 죄가 저 진심자리에는 때가 묻지 않습니다.
만약에 거기에 때가 묻는다면은 참회의 길이 없지요. 참회의 길이 없습니다. 저질러 가지고 씻을 수 있는 것은요. 저 마음자리에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름 끼는 것과 똑 같아요. 어떻게 가히 해롭게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하물며 열 가지 악한 것이야 더 말할 것 없이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또 전혀 허물 되는 것이 아니다. 진심자리의 당체는 그렇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그 다음에 또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離性離相이어니 奚五色之能盲 이리오 하시니라.
이성이상 해오색지능맹
奚五色之能盲(해오색지능맹)이리오 하시니라.
우리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離性(이성)!
성도 떠나고, 성품자리도 떠나고 모양도 떠났어요.
무슨 심성(心性). 법성(法性) .자성(自性). 불성(佛性). 이 성자를 많이 쓰지 않습니까? 자성이다. 불성이다. 심성이다. 그런 성자를 많이 쓰는데, 그것도 사실은 표현하려니 까 편의상 성품 性자를 붙여서 표현하지 만은, 사실은 그 성품도 아니 예요. 마지못해서 불성이니 자성이니 법성이니 그렇게 하지.
우리가 예를 들어서 무슨 꽃, 카네이션 하면은 할 수 없이 카네이션이라고 붙여서 우리가 부르니까 일단은 편리하잖아요. 그러나 본래 카네이션이 내가 카네이션이다 하고 이름 달고 나왔나요? 절대 그런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냥 편의상 그렇게 이름을 지어서 부르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 진심이라고 하는 것은요. 뭐 자성이다. 불성이다. 진여다. 보리다. 열반이다. 뭐 별별 소리 다 하지만은 그것이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離性(이성)이다.
離性離相(이성이상)이다.
모양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런 것을 다 떠나 있다.
그러니까
奚五色之能盲(해오색지능맹)!
해자 이것도 어찌 奚(해)자입니다.
어찌 五色(오색)이 어찌 능히 눈멀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사실은 일상생활은요. 오색에 눈멀어 있다고요. 오색이 뭡니까? 청 황 적 백 흑이죠. 이것은 오색이라는 말은 꼭 청 황 적 백 흑의 뜻이기는 하지만은, 여기에서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눈을 어둡게 하는 모든 현상입니다.
오월의 산천이 아주 녹색으로 아름답다. 이것도 결국은 우리들 눈을 어둡게 하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거기에 매혹 되잖아요. 꽃이 아름답다면 꽃에 매혹이 되고 그런데 우리의 마음자리는 그런데 매혹되는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우리는 전부 매혹 되어서 살지 만은, 본래의 마음자리에는 앞에 앞에 四山(사산)이 아무런 해당이 안되고 열 가지 악한 것이 해당이 안 되듯이, 우리가 지금 온갖 현실! 오색으로 펼쳐져 있는 온갖 현실이 결국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것 같으나, 그러나 근본 마음자리에는 전혀 그것이 어떤 방해요소가 되지를 않는다. 그런 뜻입니다.
離性離相(이성이상)인데,
성품도 떠나고 상도 떠났는데
어떻게 다섯 가지 색이 우리로 하여금
能盲(능맹)!
능히 눈을 멀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눈이 어두워서 온갖 것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데, 여러분들 마음자리! 마음자리에는 절대 그런 잘못이 없다. 제대로 그런 이치를 알면 되돌아 오면 되는 거예요.
흘러갔다가 되돌아 오면 되는 것이고. 눈 팔렸다가 정신차리면 되는 거예요. 정신차리면 어째서 되느냐? 본래 그런 것이 없으니까. 본래 없는 그런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니까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서 영화를 보든지 무슨 드라마를 이렇게 볼 때, 한참 이야기에 팔려 가지고서 그냥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아쉽지 만은 끊나 버리면 정신차리잖아요. 제정신으로 돌아오면은 언제 있었더냐는 듯이 그냥 그렇잖아요.
왜 그럴 수 있느냐? 우리 마음자리에는 아무런 그런 감정의 흐름이 없었어요. 우리 마음자리에는 희로애락, 선악 시비가 없었어요. 선도 악도 옳고 그른 것도 마음자리에는 전혀 없다고요.
중간에 흘러가는 과정에서 이런 소리도 나고. 이런 굽이도 돌아서 흐르기도 하고. 내려 가기도 하고. 물살의 여울이 빠르기도 하고 천천히 흐르기도 하고. 그런 어떤 현상이 잠깐 스치고 지나갈 뿐이지. 드라마 끝나면은 아무 일이 없잖아요.
그렇게 울던 것도 웃던 것도 그대로 평정을 찾아서 새로운 삶이 전개 되듯이, 그래서 우리의 마음자리에는 그런 것이 본래 없는데 그런데 잠깐 휘둘린 것은 어떤 인연과 세력에 의해서 그런 조건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문제 삼지 말라 이거죠.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가지고. 그래서 여기서는 離性離相(이성이상)이어니 奚五色之能盲(해오색지능맹)이리오.
故(고)로 永明唯心訣(영명유심결)에
영명 연수선사라고 아주 훌륭하신 스님이지요. 가끔 소개가 있었는데 영명 연수선사라고 하는 스님의 유심결이라고 하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글인데 “오직 마음이다.” 라고 하는 비결! 그 말이지요. 유심결! 불교에 유심이라는 말 잘 쓰지 않습니까? “오직 마음이다.” 라고 하는 그런 비결에 이르대
云(운)하사대 夫此心者(부차심자)는
대저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衆妙群靈而普會하야 爲萬法之王이다.
중묘군령이보회 위만법지왕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衆妙群靈而(중묘군령이)!
온갖 미묘한 것이 그 속에 다 있고.
衆妙(중묘)!
온갖 미묘한 것 하고, 그리고
群靈(군령)!
군은 무리 群자 아닙니까?
여러 가지 신령스러운 것, 그 말입니다.
衆妙(중묘)!. 群靈(군령)!
아주 여러 가지 미묘한 것과 신령스러운 것이
普會(보회)라.
널리 모여 있어요.
이 마음자리안에 다 모여 있어요.
참 묘해요. 그래서 우스운 이야기하면 금방 웃을 줄 알고. 뭐 슬픈 이야기 하면 금방 슬퍼할 줄도 알고. 또 화나게 하면 금방 화낼 줄도 알고 그것이 뭐예요? 그것이 衆妙(중묘) 아닙니까?
온갖 미묘한 것이 그 속에 다 있어요. 전부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 하죠. 마음이 안 들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없어요. 날씨 좋으면 좋다고 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하고. 온갖 작용이 그 안에 다 있어요.
그래서 참 마음 연구를 한번 해봐야 돼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연구를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야 되고, 그래서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은 마음을 잘 가지고 놀아야 돼요. 앞에서 불교 공부는 궁극적으로 마음놀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말 마음놀이를 잘 해야 돼요. 전부 마음놀이에 달렸습니다. 다른 것 하나도 없어요. 그 마음이라고 하는 데는
衆妙(중묘)와 群靈(군령)이 普會(보회) 했다.
널리 모여 있다. 다 모여 있다 이 말입니다.
온갖 신령스러운 것이.
마음을 가지고 한 분야에 아주 익숙해 놓으면요. 초보자들은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그런 어떤 능력이 나온다고요. 예를 들어서 바둑 같은 것을 보면요. 똑 같은 조건인데 초보자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거기에 익숙한 사람은, 고단자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하다고요.
그런 신령스러운 능력이 전부 마음하나로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서투른 것이든지. 익숙한 것이든지. 전부 마음 하나로 이루어지거든요.
우리가 간단한 운전을 한번 하더라도 운전대 처음 잡았을 때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옆에 무슨 소리도 안 들린다고요. 그냥 캄캄한 거죠. 그런데 한 삼일 사일 한 열흘 지나가면 그냥 다 보여요.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도 보이고 무슨 소리도 들리고 표지판도 보이고 그렇게 보여야 할 것이 서투를 때는 왜 그것이 안 보이는지. 참 묘하거든요. 정말 묘한 거예요.
그런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도 우리가 기억 날 수 있듯이, 전부 결국은 우리의 그 마음의 작용 이예요. 다른 것 아무것도 아니 예요. 순전히 마음작용이 거든요. 그러니까 이 스님들이 하는 소리 봐요.
衆妙(중묘)와 群靈(군령)이 普會(보회) 했다.
온갖 미묘한 것 하고 온갖 신령스러운 것이
그 속에 다 모여있다.
普會(보회)!
널리 모여있다. 그래 가지고서
爲萬法之王(위만법지왕)이요.
온갖 법의 왕이 된다.
정말 이 마음이야말로 만법의 왕이요. 왕 중의 왕이다.
정말 이 보다 더 위대하고 뛰어난 그런 군령자는 사실은 없습니다. 어떤 제자가, 또 어떤 권력자가 아무리 억압을 하고. 구속을 하고 사람을 꼼짝 달싹 못하게 하더라도, 몸을 구속할 지는 몰라도 마음은 전혀 구속이 안돼요. 마음은 구속이 안돼요. 아무리 사람을 구속해봐야 마음은 절대 구속이 안됩니다.
마음은 자기 스스로 마음이 내켰을 때 그 때 승복이 되는 것이지. 자기 마음이 안 내키고 뭐 그냥 무력으로 우격다짐으로 윽박질러서 묶어 놓아봐요. 그것이 묶여지는가. 더 튀고 반박을 한다고요. 그러니까 만법의 왕이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님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들 마음도 똑 같습니다. 우리들 마음도 똑 같고 자기 자식이라 해도 또 결국은 아 내가 낳았으니까 내 자식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 천만의 말씀입니다. 안 된다고요. 여러분들은 뭐 부모 말 잘 들었나요? 안 들었잖아요.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이 마음을 가진 어떤 독립된 한 인격체는 이미 이 세상의 왕이다. 이 세상의 왕이다 라고 생각하고 인정을 해줘야 돼요. 만법의 왕이라고 했잖아요. 만법의 왕 이예요.
참 이 진심직설은요, 오롯이 그야말로 전혀 티없이 그대로 마음 이야기 뿐입니다. 처음부터 시종일관 전부 마음 이야기 뿐이 예요. 여러 가지 각도에서 마음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진심만 뽑아 가지고 이야기해 놓은 책이 거의 아마 없을 거예요.
부처님 경전에서는 마음 한마디 하려면은 뭐 다른 설화!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가지고, 길게 이야기를 해 가지고 결국에는 마음 이야기를 하는데, 이 조사 스님들은 성질이 급해서 그렇게 못해요. 바로 정곡을 찔러서 이렇게 설명을 해야 속이 후련하거든요. 참 잘해 놓았잖아요. 이 마음은 만법의 왕이다.
夫此心者는 衆妙群靈而普會하야 爲萬法之王이다.
부차심자 중묘군령이보회 위만법지왕
만법의 왕이 된다.
중묘와 군령이 여러분들 마음속에 다 모여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 마음은 만법의 왕이다.
참 기분 좋은 이야기네요. 사실이 그렇고 그런 사실을 이분들은 꿰뚫어보고, 부처님이나 보조스님이 꿰뚫어보고 그것을 요약해서 우리에게 탁 이렇게 찍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마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마음을 우리가 잘 요리하고 관리하는 것.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큰 보람이고 가치다. 이것을 일깨워준 것이 우리 스승! 부처님이다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三乘五性而冥歸하야 作千聖之母로다.
삼승오성이명귀 작천성지모
千聖(천성)!
일천 성인의 어머니가 된다.
여기 삼승(三乘)하는 말은 성문. 연각. 보살 그러지요. 거기에다 두 가지를 더, 더 하면은 五乘(오승)이 돼요. 이것은 이제 오륜성. 삼승종성 이런 것과 관계가 되는데,
거기에다 두 가지는 不定性(부정성)과 무선근성(無善根性)이라고 내가 늘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할 때 성문! 소리 聲자입니다. 연각 보살 그 다음에 부정성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 다음에 무선근성!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성문 연각 보살은 우리가 들어서 잘 알지요?
그 다음에 부정성(不定性)이라는 말은 정해져 있지 않은 성품 이 말입니다.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고. 그것이 이제 부정성! 그런 경우의 중생이 또 있습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아직 이리 갈지 저리 갈지? 정해져 있지 않은 그런 경우! 그런 경우는 참 좋지요. 잘 가서 설득시키면 되니까요.
그 다음에 무선근성(無善根性) 하는 말은 선근(善根)이 없는 성품! 이것은 아주 악한 중생을 말한 것입니다. 일종의 무종성천제(無種性闡提) 라고 교리상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저것은 아주 악만 가득히 차있는, 그 악이라고 하는 것은 나쁜 짓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고. 이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 이해가 없는 사람을 말해요. 불교에서는 그것을 말합니다.
무슨 도둑질을 많이 한다. 무슨 사기를 저질렀다. 이런 악한 것을 여기서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신심이 없는 사람! 이 마음의 문제! 어떤 진리의 문제! 심성의 문제 여기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여기서 무선근성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그것이 참 문제지요.
여기서 도둑질을 한다. 거짓말을 한다. 또 그리고 마음에 대해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은요. 금방 돌이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대해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은 그것은 참 곤란해요.
예를 들어서 예술이라든지 자연 환경이라든지 이런데 대해서도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남자들 보석에 이해가 안되듯이, 자연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 하는 이 마음의 문제! 이것은 순전히 마음 가지고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도 그런데도 마음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무선근성이라고 그러고 혹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부정성 그렇게 합니다.
그 다음에 성문 연각 보살은 이미 이해가 잘 되어 가지고 열심히 와서 법문 소리를 듣는 사람 성문! 지금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성문 이예요 .
그 다음 연각은 스스로 어떤 계기를 통해서 깨닫는 사람! 보살은 이미 그런 과정을 다 지나서 어떤 원력과 자비심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그런 이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冥歸(명귀)라 그랬어요.
가만히 거기에 돌아간다. 이 말이지요.
그리고 전부 거기에 돌아가고. 말에 돌아가고, 그래서
千聖(천성)!
일천성인의 어머니를 짓는다.
일천성인의 어머니가 되는데 뭐가 그렇다고요? 마음이 성인을 만드니까. 만드는 사람이 어머니가 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만드는 사람은 여기서 마음이 되는 거예요. 마음이 들어서 전부 성인을 만들고, 성인만 만드나요? 악인도 만들어요.
마음이 들어서 악인도 만들고. 마음이 들어서 성인도 만드니까. 전부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전부 이 마음이 들어서 하니까 여기서 일천성인의 어머니가 된다.
獨尊獨貴(독존독귀)하며 無比無儔(무비무주)하니
獨尊獨貴(독존)!
홀로 높고 홀로 귀해.
어제 부처님이 뭐라고 그랬죠?“천상천하 유아독존!”
여기는 한 수 더 떠서
獨尊獨貴(독존독귀)!
귀할 貴자를 썼습니다. 이 마음보다 더 높은 것이 없고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이 마음같이 가치 있는 것이 없어요. 이 마음이 제일 귀하고 제일 높은 것입니다.
獨尊獨貴(독존독귀)!
뭐 여러분들 어떤 보물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마는, 그까지 것 가지고 있는 것 아무것도 아니 예요. 아무것도 아니고 이 마음이야말로 가장 존귀하고. 가장 높고 가장 귀하고 가장 갚진 거예요.
이것은 누가 가져 가려고 해도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줄래야 줄 수도 없고. 훔쳐가지도 못하고. 깨뜨리지도 못하고. 그리고 이 마음은 항상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어디 농 속에 들어 있느냐? 아니면 은행에 같다가 보관시켜 놓았느냐 하면은 그것도 아니 예요.
이것은 항상 쓰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귀할 수가 없어요.
이것이 빠져나가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더 귀하죠. 우리 전 삶의 과정. 매 순간 매 순간 삶의 과정에서 이것이 빠져나가면 아무것도 아니 예요. 그야말로 세상이 캄캄하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말도 해당이 안 되지요.
그러니까 얼마나 귀합니까? 독존독귀지요. 이것만이 귀하고 이것만이 높다 이 말입니다. 獨(독)이라는 말이. 이것만이 높고 이것만이 귀하다. 참 아주 설명을 잘하고 있습니다.
無比無儔(무비무주)하니
비교할 할 수도 없고 짝할 것도 없어요.
짝 주자입니다. 뭐하고 짝하겠어요. 아무도 짝할 것이 없어요. 이것하고 짝 되는 것은 없어요. 이것하고 비교할 데가 없어요. 저쪽에 내가 좋아하는 글귀가 있지요?
不與萬法爲侶者(불여만법위려자) 是甚麽(시심마)인고?
만법으로 더불어서 짝하지 않는 사람,
벗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냐? 그랬어요.
해답이 여기 다 나왔네요. 이 마음이다. 사실 이름이 마음이라고 했지 만은 그것을 제대로 찾으면은 다 끝난 거죠. 저것이 아주 유명한 화두잖아요.
不與萬法爲侶者(불여만법위려자)!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은 사람,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여기서 무주! 짝하지 않는다. 짝함이 없다. 여기 無比無儔(무비무주)할 때 짝 주자라 그랬지요. 이것이 不與萬法爲侶者(불여만법위려자)라고 하는 그 말입니다. 같은 말이거든요.
만법과 짝하지 않는 사람. 누구냐? 결국은 이 마음이다. 여기 이 위에 夫心也者(부심야자)는 해 가지고 나왔잖아요. 벌써 주어가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전제를 하고 나갔기 때문에 결국은 마음이라고 해 봤자 우리가 쉽게 와 닿지 않더라도 그래도 말로는 임시 그냥 편의상 쓰는 말로라도 마음이니까 결국은 마음이다.
어떤 사람이냐? 마음이다 그러면은 대답이 되는 거죠. 마음이 뭐냐 하면은 그 때는 대답은 못하더라도 일단은 마음이다. 하면 일차 대답은 되는 거예요.
無比無儔(무비무주)하니 實大道源(실대도원)이며
실로 대도의 근원이며. 큰 도의 근원!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도! 가장 큰길!
그것의 근원이고
是眞法要(시진법요)라 하시니
참다운 법의 요점이다. 진리의 요점이다 이 말입니다.
진리의 그 요점이 결국은 이 마음이다.
이 마음이다 하시니,
信之則(신지칙)
이것의 믿음이 되는 즉 은
이럴 때 갈 之자는 대명사로서 마음!
마음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믿는다면은
三世菩薩同學이 盖學比心也요.
삼세보살동학 개학차심야
이것은 먼저 삼세 과거 현재 미래의 보살들이 같이 배우는 것이 뭘 배우냐? 결국 이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만 있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있었던 보살. 현재에 있는 보살. 앞으로 올 보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보살 이 모든 보살이
同學(동학)!
같이 배우고 있는 것이 뭘 배우고 있느냐?
전부 이 마음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앞에서 뭐라고? 마음놀이 하는 것이다. 마음공부 하는 일이고. 마음 배우는 일이고. 마음놀이 어떻게 하면은 잘하느냐? 그것을 배우는 일이다 라고 그렇게 했고. 그 다음
三世諸佛同證이 盖證此心也요.
삼세제불동증 개증차심야
보살들은 그렇고 과거 현재 미래에 모든 부처님.
삼세에 계신 모든 부처님이
同證(동증)!
같이 증 득한 것. 증득 이라는 말은 깨달은 것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같이 깨달은 것은 뭐야? 대개 이 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마음을 증득한 것이지 다른 것은 없다 이 말이지요. 불교는 전부 마음 깨달았다는 것이고. 닦는다 하면은 이 마음 닦는 것이고. 무엇을 먹는다 해도 이 마음 먹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며칠 전 어떤 내방 옆에 있는 처사님이 어떤 승도 아니고 속도 아니고 한 어떤 이상한 사람을, 어디 잘 데가 없다고 이렇게 자기 방에 재우 더라고요.
그래서 도대체 보니까 스님도 같지도 않고. 속인 같지도 않고. 남자 같지도 않고. 여자 같지도 않고. 그 신분이 어떻게 되느냐고 이렇게 물으니까 독일 있다가 왔다고 하이 튼 처사가 그렇게 말을 하고, 내가 물으니까 마음입니다. 그러더라고 요. 절에는 익숙해 가지고 아마 불교는 좀 한참 공부하고 있고 그래서 마음문제에 대해서 아주 심취하고 재미를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어요
그래서 저녁을 떡 먹고 왔기에. 그래 내가 그랬죠. 마음하고 왔느냐 했죠. (ㅎㅎㅎ~) 마음이 마음하면 마음이 마음하지. (ㅎㅎㅎ~) 내혼자 마음이 마음하면 마음이 마음 한다. 맞다고요. 결국은 전부 마음이 들어서 다 해 나가고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보면은 삼세 보살들은 전부 이 마음배우는 일이고 삼 세제불은 전부 이 마음 깨닫는 일이다. 다른 것은 아니다.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三世諸佛同證(삼세제불동증)이 盖證此心也(개증차심야)요. 또
一大藏敎詮顯(일대장교전현)이
盖顯此心也(개현차심야)요.
一大藏敎(일대장교)라고 하는 말은,
一大藏(일대장)!
이것은 이제 부처님 팔만 사천법문이 담겨있는 장경(藏經)! 이것을 장교(藏敎)라고도 그래요. 그것이 법문이 그 속에 갈무리 되어있다 해서, 그래서 장경! 또는 장교! 이런 말을 합니다. 부처님 일대장경 그러거든요. 하나의 이보다 더 큰일이 없습니다. 하나의 큰 장경! 또는 장교! 여기에 있어서
詮顯(전현)!
말할 詮자 나타날 顯자.
말로 나타내는 것, 이 말이 예요
전현이. 장경은 전부 부처님이 말씀해 놓은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니까, 그래서 말로 나타내 놓은 것이라고 이런 표현을 하는데. 이것이 결국은 무엇을 나타낸 것이라 고요? 이 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마음이 마음을 하면 마음이 마음 한다. 그러니까 이제 가서 마음 해라. 가서 쉬어라. 자라 이 말입니다. 자는 것도 마음이 자니까 가서 마음 해라. (ㅎㅎㅎ~) 알아들었는지 어쩐지. 뭐 알아들었겠죠.
盖顯此心也(개현차심야)요.
이 마음을 나타낸 것이요.
그리고 부처님 일대장경이 이 마음을 나타낸 것이 예요. 해인사에서는 장경 정대 불사 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마음을 그저 이고 가는 거예요. 마음이 마음을 이고 가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고요. 이렇게 알고 해야 되는데. 그냥 경전을 머리에 한번 이면은 공덕이 된다 하면 대개 그렇게 알고 할거예요. 또 공덕은 물론 되겠지요.
一切衆生迷妄(일체중생미망)이
뭐라고?
蓋迷此心也(개미차심야)요.
일체중생 들의 미망! 그 미혹하고 망령된 것.
중생은 못났잖아요. 어리석고 미혹해서 못났다고 그래서 미망이라고 그러는데 일체중생 들의 미망이 전부 이 마음을 미혹하는 것이다. 이 마음에 캄캄하고 이 마음을 모르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이거예요.
모른다고 하고 무식하다고 하는 말이 글을 못 배워서 무식하다는 것이 아니고 이 마음을 몰라서 무식하다 이 말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말이 예요.
그래서 육조스님 같은 이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데 이 마음에 대해서는 천재죠. 아주 무식한 사람이 예요.
이 마음에 대해서는 천하에 그렇게 밝은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존경 받고 대우 받지요. 불교 안에서는. 그래야 옳은 거죠.
그것 뭐 있으나 마나 한 액세서리 같은 지식 사실 중요합니까? 이 마음의 이치에 대해 밝은 것이 그것이 중요한 거죠. 결국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전부 이 마음은 미혹한 것이요.
一切行人發悟(일체행인발오)가
일체 수행하는 사람들이
發悟(발오)!
깨달음을 발했다. 깨달았다 이 말입니다.
깨달은 것이 뭐라고?
蓋悟此心也(개오차심야)요.
전부 이 마음을 깨달은 것이다.
行人(행인)이라는 말은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 다 이 마음을 대개 깨달은 것이다. 또
一切諸祖相傳(일체제조상전)이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전하고.
가섭존자가 아란존자에게 전하고.
아란존자가 뭐 상락화수에게 전하고. 또는
초조 달마가 2조 혜가에게 전하고.
이조가 삼조에게 전하고.
삼조가 사조에게 전하고.
사조가 오조에게.
오조가 육조에게 전하고 계속 이렇게 전하는 일.
그것이 일체 모든 조사들이
相傳(상전)!
서로서로 전한 것이
蓋傳此心也(개전차심야)요.
대개 이 마음을 전한 것이다.
결국 이 마음을 전했다는 것이지 다른 것을 전한 것이 아니 예요. 뭐 법을 전했느니. 뭘 전했느니 전했다는 말을 쓰지 만은 결국은 따지고 보면은 이 마음을 전한 것이다. 이 마음을 전한 것이요,
天下衲僧參訪(천하납승참방)이
蓋參此心也(개참차심야)니
天下衲僧(천하납승)이
여기 납승이라고 하는 것은 떨어질 衲(납)자 스님 僧(승)자거든요. 그러니까 누더기 입고 다닌다 그래서 수행하는 스님을 납승이라고 그럽니다. 납승! 또는 납자라고도 해요. 아들子(자)자 써 가지고 衲子(납자)들! 천하에 수행하는 납승들이
參訪(참방)!
참방이라고 하는 것은 선지식에게 법을 묻는 일을
참방이라고 합니다. 참여해서 방문한다. 그 말이거든요.
그것이 결국은 뭐 하러 갔어요? 이 마음을 참구하는 일이다. 결국 이 마음 참구하는 일이 이 마음을 찾는 일이다 이 말입니다.
그 선지식 찾아서 천리 만리 그렇게 멀다 하지 않고 가서 선지식에게 고생해 가면서 법을 배우고 거기서 시봉을 몇 년씩이나 하고 공양주를 하고 채공을 한다. 그런 일들이 천하납승 참방 이거든요. 선지식 참방 하는 일. 결국 은 뭐 때문에 가느냐? 전부 이 마음 참구하려고 간다. 이 마음 참방하려고 간다. 이 마음 찾으려고 간다.
達此心則(달차심칙)
이 마음을 요 달한 즉.
또는 이 마음을 통달한 즉 은
頭頭皆是(두두개시)며 物物全彰(물물전창)이요.
이 마음만 개시하면요.
達此心則(달차심칙)
이 마음만 통달하면은,
頭頭(두두)라고 하는 낱낱이 이 말입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어떤 사건. 사물이 낱낱이
皆是(개시)!
다 옳아. 다 좋고,
物物全彰(물물전창)이요
그렇게 되면 꽃을 들면 꽃에. 신발을 들면 신발에. 연필을 들면 연필에. 무슨 주걱을 들면 주걱에. 숟가락을 들면 숟가락에 전부 거기에 다 나타나 있어요.
全彰(전창)!
온전히 다 나타나 있다.
物物全彰(물물전창)!
사물 사물 하나에 전부 다 온전히 거기에 나타나
全彰(전창)이라. 다 드러나 있다. 그러면은요. 어디에서 따로 찾을 일이 없습니다. 참선하고 기도하고 할 필요가 없어요.
밥 먹으면 밥 먹는데 전창! 온전히 다 나타나 있고. 이야기 하면 이야기 하는데 온전히 다 나타나 있고. 책보면 책보는 데 거기 다 나타나 있고. 빨래하면 빨래하는데 다 나타나 있고. 청소하면 청소하는데 다 나타나 있고. 꽃을 보면 꽃 보는데. 나무를 보면은 나무 보는데. 사람을 보면은 사람을 만나는데. 전부 거기에 고스란히 다 나타나 있어 物物全彰(물물전창)이다.
頭頭皆是(두두개시)에
어느것은 옳고 어느것은 그르다 이것이 아니죠.
이 마음 하나 제대로 깨달으면 그때는 보시해도 옳고. 도둑질해도 옳아요.
達此心則頭頭皆是(달차심칙두두개시)라.
마음만 깨달으면 무슨 짓을 해도 다 옳아요.
頭頭皆是(두두개시)야
낱낱이,
頭頭(두두)라는 말은
머리 頭자 이것은 불교에서는 낱낱이라고 그렇게 해요. 머리 두자라는 말도 쓸 때가 있지 만은 낱낱이 다 옳다.
어떤 일이든지 다 옳아요.
物物全彰(물물전창)이야.
어디든지 다 나타나 있다.
저기 춘성스님 이야기인가 내가 그 스님 밑에도 가서 한철도 살고 그랬는데 요즘 그런 이야기가 잘 없는데, 한 때 기독교가 들어와 가지고 얼마 안되었을 때, 한참 기독교인들이 자기들 어떤 교리를 가지고 막 특히 불교인들 만나면 그냥 뭐라고 자랑하고 자기들 교리 가지고 이렇게 전파하려고 그럴 때, 기 찻간에서 춘성 스님이 한창 젊으실 때, 참 기백이 있는 분이거든요.
춘성스님이라고 하면은 늘 이야기 하는데, 우리나라에 중을 하나를 꼽으라면은 춘성 스님을 꼽겠다 내가 그랬어요. 그 스님은 진짜 수행자거든요. 돌아가셨습니다마는 봄 春(춘)자 재 城(성)자거든요.
그런데 그 스님이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을 가는 길이었다던가 그래요. 어떤 기독교인이 와 가지고 막 하나님은 어떤 것이다 하고 설명을 하다가 “하나님은 “무소부제다. 안 계시는 데가 없다 어디든지 다 계신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춘성스님이 떡 있다가
“그래, 하나님이 안 계시는 데 없으면은 변소에 똥에도 하느님이 있느냐?” 그러니까 큰 소리로 그 스님이 기골이 아주 장대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막
“훌륭한 하나님을 갔다가 말이지 똥에다가 비유를 해 가지고 그렇게 불손한 그런 표현을 쓴다고 막 열이나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똥에다가, 똥에도 하나님이 있느냐고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말이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막 열을 내 가지고 시비를 하드래요.
그래서 나중에 “부처님도 무소부제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그러면 똥에도 있느냐.” 그러니까. “아니 똥이 부처님이야. 똥이 부처님인데 뭐 똥에 있고 말고 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그런 이야기가 한참 우리 수 좌들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어요. 그래 그 스님을 모시고 가던 시자가 옆에서 듣고는 하도 통쾌해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여기에 보면은
頭頭皆是(두두개시)며 物物全彰(물물전창)이요
그랬어요. 어디에 똥에는 없고 밥에만 있고 그러면 이야기가 안되지요. 그게 아니 예요. 頭頭皆是(두두개시)며 物物全彰(물물전창)이라.
단 조건이 뭐라고?
達此心則(달차심칙)!
이 마음을 통달하면 그렇다 이 말입니다. 통달하지도 못하고 함부로 건방 떨 것은 아니고. 그러나 이치라도 우리가 이렇게 횡 하니 알고 있어야 됩니다. 참 시원스럽잖아요.
頭頭皆是(두두개시)며 物物全彰(물물전창)이다.
보시해도 옳고 도둑질해도 옳다 이거예요.
頭頭皆是(두두개시)니까. 똥에도 있고 밥에도 있어요.
物物全彰(물물전창)이야. 밥에만 있고 똥에는 없으면 그것은 물물전창이 아니지요. 사물사물에 온전히 다 드러나 있다. 物物全彰(물물전창)이요,
迷此心則(미차심칙)
이 마음을 미혹한 즉 은,
이 마음에 대해서 우리가 어둡잖아요. 아직 잘 모르잖아요 잘 알면은 여기 안 왔겠죠. 알아도 조금 알겠죠.
迷此心則(미차심칙)
이 마음을 미혹한 즉은
處處顚倒(처처전도 )라
가는 곳 마다. 전부 전도라. 전부 뒤 바뀌어서.
곳곳에 다 전도되고.
念念痴狂(념념치광)이니.
念念(념념)!
순간순간 전부 어리석고 돌았다 이 말이죠
미쳤다 이거죠. 광자! 전부 잘못되었다 이 뜻이겠지요. 처처가 전도되었고 념념이 다 어리석고 미쳐있다.
미쳐있으니,
此體는 是一切衆生의 本有之佛性이다.
차체 시일체중생 본유지불성
此體(차체)는
이체는 이 진심묘체 그랬지요.
제목이 진심묘체! 진심의 이 묘체는
是一切衆生(시일체중생)의 本有之佛性(본유지불성)이다.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이다 이거죠.
본래 소유하고 있는 불성입니다.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가 준 것도 아니고. 부모들이 낳을 때 같이 낳은 것도 아니 예요. 또 태어난 뒤 유산 물려주듯이 물려 준 것도 아니고. 친구가 뭐 죽으면서 물려 준 것도 아니 예요. 본래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불성이고.
乃一切世界生發之根源(내일체세계생발지근원)이라.
일체세계가 생 발한.
일체세계가 발생하는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일체세계가 생기는 근원이다.
그러니까 창조 창조 창조 소리를 이야기 하는데 이 마음이 창조했어요. 일체세계를 이 마음이 창조했습니다. 생발이라는 말은 창조라는 말이 예요. 일체세계를 창조하는 근원자리가 바로 이 마음이다. 생 발지 근원이다.
故(고)로 世尊(세존)이
그런 도리를 어떻게 다 설명하겠느냐 이거죠. 이와 같은 의미가 담겨져 있는 그 오묘한 그 자체를 무엇으로 말로 표현이 안되잖아요. 표현해봐야 만분의 일. 그저 십만분의 일 겨우 표현할까 말까 하니까 답답한 거죠. 그러니 세존이 뭐라고?
축峯(축봉)에 良久(양구)하시고.
良久(양구)라는 말은 가만히 있다 이 말이죠.
영축사에서 가만히 있었다. 법문 하러 올라가서 가만히 꽃을 들어 보였다든지. 아니면은 꽃마저도 들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은 적도 있고 그래요. 그것이 양구라. 가만히 있었다. 그냥 있어요.
대개 답답하면 여러분들도 이야기 하다가 집에서 양구하지요?. 양구! 어떻게 할 길이 없어 가만히 있어야죠. 설명을 해봐야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입 닫고 양구 하는 수 밖에 없지요. 입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을 양구라고 그래요.
그래서 말이 안 통하거든 ‘아이고 나는 양구 헐란다.’ 하고 가만히 있어야 돼요. 양구가 뭐냐고 하거든 사전한번 찾아보라고 하고요.
善現(선현)이
선현은 수보리 예요.
수보리가 巖下(암하)에서 忘言(망언)하시고
바위 밑에서 제자들끼리 대화를 하는데 바위굴에서 말을 잊었다. 할말이 없잖아요. 사실은 이렇게 어마어마한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마음자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봤자 설명도 제대로 되지않고. 제대로 되지 않는 설명을 하려니 까 답답하고. 그러니까 말을 잊어버렸죠. 그리고
達磨(달마)가 少室(소실)에서 觀壁(관벽)이라.
달마가 9년을 관벽을 했다 그러거든요.
달마가 저 소림굴에. 소림사에서 그 위에 올라가면은 또 달마가 있었던 굴이 있어요. 굴에 가봤는데 거기에 딱 앉아 가지고 9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관벽! 벽관이라. 벽만 보고 있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벽만 보고 있었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할 길이 없죠. 그리고
居士(거사)가 毘耶(비야)에서
이것은 유마 거사입니다. 유마 거사가,
비야리는 비야리 성 이예요.
바이샬리라고 비야리 성에서
杜口(두구) 하시니,
杜口(두구)! 말 杜자 입 口자. 입을 딱 막았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이 말이죠.
불이법문(不二法門)에서 부처님 제자들은 뭐라고 설명하고. 문수보살까지 뭐라고 설명하고 그랬는데. 마지막에 이 유마 거사는 아무 말도 안하고 가만히 입만 닫고 가만히 있었다고요.
그런데 이 오묘한 마음의 도리를 설명을 했다 하면은 그르치거든요. 설명했다 하면은 그것은 개구즉착 이라고 그러는데 설명했다면은 그것이 그르치고 틀려버리니까 그래서 말을 안하고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러니까 뭐 오해가 있을 때 설명을 하면은 더 오해만 불러 일으켜요.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가면 시간이 해결하듯이 이 마음의 오묘불가사의한 도리는 말이 없는 것으로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杜口(두구) 하시니,
悉皆發明此心妙體(실개발명차심묘체)라.
다 이것은 이 마음의 묘한 체를,
미묘한 체를 발명한 것이다.
다 드러낸 것이다. 말없이 드러낸 거죠.
심체(心體)를. 마음자리를 말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러니까 달마대사가 말 안 하는 것. 수보리가 암하에서 말을 잊어버린 것. 부처님이 가만히 계신 것. 또 유마 거사가 입을 닫고 있은 것. 이것이 그냥 할말이 없어서 라기 보다는 말이 없음으로 서 오히려 마음의 묘체가 더 잘 나타난다 이거예요. 그래서 이 마음의 묘체를 발명한 것이다.
故(고)로 初入祖門庭者(초입조문정자)는
처음 조사의 문정,
門庭(문정)!
문정이라고 하는 것은 조사의 문에. 문과 뜰!
문정이라고 하는 것은 마당이 있는 뜰에 대문이 예요.
대문이 있는 문정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要先識此心體也(요선식차심체야)니라.
요컨대 먼저 이 마음의 묘체를 먼저 알아야 한다. 조사의 문중에 들어간다는 말은 말하자면 은 이 불교를 제대로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 불교의 이치를 제대로 알려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이
入祖門庭(입조문정)이라
그러니까 그 조사의 문에 들어가려면은 대문을 들어서야 되잖아요. 그 불교라고 하는 대문에 들어서려고 하는 사람은 이 마음의 본체를 먼저 잘 알아야 된다. 이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래서 지금까지 설명한 것. 지난 시간부터 지금까지 설명한 것이 진심 묘체에 대해서 하이 튼 설명을 하느라고 하는데 까지 한 거예요. 하는데 까지 해서 진심 묘체가 어떤 것이다 라고 이런 것을 나타낸 그런 내용이 됩니다.
참 이렇게 간단명료하면서도 마음의 정곡을 찔러주고 그리고 또 이 마음은 우주만유의 근원이 된다 라고 하는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더욱 참 이 가르침이 어떤 가르침 보다도 훌륭하고 참 기묘한! 그리고 아주 근원적인 가르침이다 라고 하는 것을 여기서 새삼 느낄 수가 있습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첫댓글 離 性 離 相 인데 성품도 떠나고 상도 떠났는데 온갖 미묘한것 하고 신령스러운것이 그 속에 다 모여있다. 감사 합니다._()()()_
達此心則 頭頭皆是며 物物全彰이라...無影樹님 감사드립니다.._()()()_
達此心則頭頭皆是... 무비무주無比無儔
夫此心者는衆妙群靈而普會하야 爲萬法之王이다.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_()()()_
初入祖門庭者는 要先識此心體也니라... 감사합니다... _()()()_
達此心則 頭頭皆是며 物物全彰이라...고맙습니다.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오직 "마음"이네요. 감사합니다._()()()_
삼세 보살들은 전부 이 마음배우는 일이고 삼 세제불은 전부 이 마음 깨닫는 일이다.감사합니다._()()()_
(不與萬法爲侶者 是甚?오) 神通妙用한 主人公을 열심히 참구합니다 _()()()_
인생의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도! 가장 큰길! ....감사합니다..._()()()_
이 마음은 우주 만유의 근원이 된다....그래서 진심묘체라_()()()_
_()()()_
제14강이지만 眞心行者가 되어 제1강으로 삼고 싶습니다._()()()_
마음보다 더 높은 것이 없고 더 귀한 것이 없다. 마음같이 가치 있는 것이 없다. 이 마음이 제일 귀하고 제일 높은 것 이다...._()()()_
'진리의 그 요점이 결국은 이 마음이다.' 처음 운전할때 주위가 아무것도 안보이다가 차차 보이게 되는 경우를 생각하니 정말 그런거 같습니다. 정말 결국은 마음이라는거~ 감사합니다^^ _()()()_
'지금 우리가 눈이 어두워서 온갖 것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데, 여러분들 마음자리! 마음자리에는 절대 그런 잘못이 없다. 제대로 그런 이치를 알면 되돌아 오면 되는 거예요.'_()_()_()_
'마음이 들어서 악인도 만들고. 마음이 들어서 성인도 만드니까. 전부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전부 이 마음이 들어서 하니까 여기서 일천성인의 어머니가 된다.' _()_()_()_
'마음이 마음하면 마음이 마음하지. ㅎㅎㅎ~' _()_()_()_
'마음이 마음을 하면 마음이 마음 한다. 그러니까 이제 가서 마음 해라. 가서 쉬어라. 자라 이 말입니다. 자는 것도 마음이 자니까 가서 마음 해라. (ㅎㅎㅎ~) 알아들었는지 어쩐지. 뭐 알아들었겠죠.' _()_()_()_
'액세서리 같은 지식 사실 중요합니까? 이 마음의 이치에 대해 밝은 것이 그것이 중요한 거죠. 결국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니까' _()_()_()_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達此心則 頭頭皆是며 物物全彰이요. 迷此心則 處處顚倒하며 念念痴狂이니'
'鷲峰에서 良久. 巖下에서 忘言. 少室에서 觀壁. 毘耶에서 杜口.' _()_()_()_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스님! 무영수님! 감사합니다.
_()()()_
마음보다 더 높은 것이 없고 더 귀한것이 없다 .이 마음이 제일 귀하고 높은것이다 ....._()()()_
此體(眞心妙體)는 是一切衆生의 本有之佛性이다 _()()()_
마하반야바라밀()()()
三世諸佛同證(삼세제불동증)이 盖證此心也(개증차심야)요.ㅡ 삼세 제불은 전부 이 마음 깨닫는 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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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 올립니다
삼배 올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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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尊獨貴(독존독귀)하며 無比無儔(무비무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眞心妙體 ... _()_
眞心直說 - 無比스님 眞心直說 法門 錄取 第14講 (眞心妙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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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_()()()_
감사합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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