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6강 - 般若品- 2
何名 摩詞오 摩詞는 是大니 心量의 廣大함이 猶如虛空하야 無有邊畔하며 亦無方圓大小하며 亦非靑黃赤白이며 亦無上下長短하며 亦無嗔, 無喜, 無是, 無非, 無善, 無惡하며 無有頭尾라 諸佛刹土가 盡同虛空이니 世人의 妙性이 本空하야 無有一法可得일새 自性眞空도 亦復如是하니라
***************************
마하반야바라밀 이라고 하는 말을 육조스님께서 좋아하셔서, 불교의 숱한 많은 좋은 용어들 중에서, 또 그것도 자기 그 취향 따라서 권하는 것이 각각 다르지요. 어떤 이는 관세음보살을 권하는 이도 있고,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하는 것을 권하는 이들도 있고,
또 나무묘법연화경을 권하는 이도 있고,
나무 묘호랭객교를 권하는 이도 있고, 각자 자기가 거기서 눈을 뜨거나, 또 그 나름대로의 어떤 소득이 있거나, 가슴에 와 닿는 그런 인연 따라서, 권하는 것이 다릅니다.
육조스님은 금강경을 많이 권하고. 또 금강경을 다른 이름으로 반야경 이라고 하니까요.
역시 금강경과 연관을 해서 마하반야바라밀을 권하고, 금강경의 재목이 되고 또 그 한 마디 말 속에는 모든 불법과 인생사가 그 속에 다 있다. 이렇게 보았습니다.
육조스님은 앞에서, 행유품에서 살펴보았듯이, 금강경을 통해서 눈이 열렸지요. 지혜의 눈이 열렸고, 다시 말해서 금강경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특히 반야의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깊이 이야기를 하고, 또 당신의 어떤 내용보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우라.”
저기 불광법회에서는 어떤 부처님이나 보살의 성호보다도 이 마하반야바라밀을 더 열심히 외워요.
광덕스님께서 육조단경을 아주 좋아 하시고, 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마하반야바라밀은 육조스님이 권 했을 뿐만 아니라, 역시 육조스님의 생각과 잘 맞아 떨어지고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찰이나 그 법회에 다니는 이들은, 늘 마하반야바라밀을 잘 외웁니다. 정근할 때도 그렇게 하고요.
곳곳에 책자나 무슨 안내문. 이런데 보면 마하반야바라밀을 써 놓고, 또 그 사찰의 차에도 보면 마하반야바라밀. 또 인사할 때도 만날 때 마다 법우들이 만나면 “마하반야바라밀.” 이렇게 인사 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렇습니다. 불교에는 참 좋은 말들이 많아요.
묘법연화경도 좋고, 대방광불화엄경도 좋고, 지장보살. 관세음보살 다 좋지요. 옴 마니 반메훔 도 좋고요.
여기서는 유독 마하반야바라밀을 권합니다.
何名 摩詞(하명 마하)오→ 무엇을 이름 해서 마하라고 하느냐?
摩詞(마하)는 是大(시대)니→ 마하라고 하는 것은 크다는 말이다. 저기 우리 부산에 마하사 가 있지요. 또 금강산에 마하연. 마하야나지요. 사실은...
한자로 쓰면 摩詞衍(마하연). 편다는 연자를 써서 마하연. 그런데 마하연 이라고 하는 선방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선방인데...
마하연 이라고 하는 선방이 금강산 내금강 유점사에서 한참 계곡 따라 올라가면, 아주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큰 선방이 하나 있는데, 거기가 마하연 이라고 하는 선방이랍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걸망지고 다니면서, 선방생활을 했다 하면 금강산 마하연에서 며칠을 나야 선방수좌라고 하는 자랑을 할 수 있었다 하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고 그런데...
마하연에서 겨울 한철을 지내고 해제를 하고, 다른 사찰로 행각을 떠나는데 유점사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거든요. 내려오는 길이 상당히 또 머니까요.
유점사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유점사에서 객실에 객승들이 여럿이 모였는데, 객승들이 객실에서 모이면 서로 정보교환도 하고 인사를 나누고 그래요.
그래 어디서 사셨는가? 거기 대중은 몇 명인가? 생활은 어땠는가? 또 정진 시간은 몇 시간으로 했는가? 조실은 어땠냐? 조실 법문은 어땠느냐? 또 한철동안 재미있었던 그런 사건은 없었느냐? 등등 그런 것을 주고받는 것이 객스님들 끼리 만나면, 새로운 재미예요 그것이...
그전에 우리 어릴 때만해도 그런 재미가 있었는데 요즘은 교통수단이 너무 발달해 가지고, 그런 재미가 없어져 버렸어요.
그 때만 해도 오대산 상원사에 가서 한철 지내려면, 월정사까지 차가 못 들어가고, 진부까지밖에 차가 못 갔지요. 그리고 또 한참 기다리면 진부에서 강릉 넘어가는 차를 타고, 월정거리 라고 하는 데가 있어요. 거기 내리면 월정사까지가 20리 인가 그렇고,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가 30리 인가 그래요.
그래 무려 50리를 걸어 올라가야 된다고요. 월정사까지 가서 하룻밤 자고 그 다음 상원사 올라가고 대개 그랬는데, 요즘 뭐 상원사까지, 상원사에서도 더 멀리 북도에까지 차가 다니니까... 북도에서도 그 너머로...
어쨌거나 그것이 선방스님들의 생활인데, 유점사의 객실에서 객스님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서 한철 지냈냐고 하니까 마하연에서 지냈다는 거예요. 아 나도 마하연에서 지냈는데 어떻게 우리가 못 봤느냐 이거예요.
마하연 선방에서, 큰방에서 상판에서 살았느냐 하판에서 살았느냐 이런다누만.
부엌 쪽에 있는 쪽을 “하판”이라 그래요.
반대편 쪽을 “상판” 이렇게 하는데, 보통 ‘상판’ 하면 어간 쪽이고 ‘하판’하면 지대방 쪽인데,
또 아랫목을 ‘하판’ 윗목을 ‘상판’이렇게 부르기도 해요. 또 불교의 전문적인 용어로는 청산 쪽에 살았느냐?
백운 쪽에 살았느냐? 이렇게도 나눠요. 청산백운으로 나누거든요.
반을 어간에서 딱 나눠 가지고, 살림 사는 사람들. 소임 자들이 사는 쪽을 청산이라 그래요.
청산은 ‘원부동’ 이라 해서 움직이지 안잖아요?
한철 두 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나그네’라 해서 ‘白雲(백운)’이라. 흰 구름은 저절로 왔다간다 한다.
‘白雲은 自去來(자거래) 라.’ 그런 표현도 있고 그러는데, 청산 쪽에 살았느냐? 백운 쪽에 살았느냐? 그런다고요.
“아 청산 쪽에 살았노라.”고
“그러냐 고,
“나는 백운 쪽에 살았노라.”고
“그러니까 한 방에 살아도 우리가 몰랐구나.”이러고 한철을 살아도, 한 방에서 한철. 3개월을 살아도 서로 못 봤다는 겁니다.
그 만치 방이 크다. 선방이 이 세계에서 제일 크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멀지 않은 마하연선방을, 그 유명한 마하연선방을 보게 될 날이 있을 겁니다.
마하연이라고 하면 의례히 금강산에 있는 마하연선방이 떠오르고 그렇습니다.
摩詞(마하)는 是大(시대)니→ 마하라고 하는 것은 대라고 하는 뜻이다. 무엇을 크다고 하느냐?
心量(심량)의 廣大(광대)함이→ 마음의 량이, 마음의 분량이 광대하다. 그 광대한 것이,
猶如虛空(유여허공)이다.→ 마치 허공과 같다. 허공과 같다는 것은 우주공간을 다 포함해서 하는 얘기지요.
이것이 뭐 끝이 있습니까? 정말 이 허공세계 라고 하는 것은 끝이 없거든요. 정말 무한대 입니다. 무한대...
우리가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있는 부분까지만 그것도 대충 알뿐이지, 그 밖에는 또 어떠한 세계가 펼쳐져 있는지 전혀 우리가 모르지요.
천체 망원경가지고 몇 억 광년 거리 밖의 것을 본다 해도, 그래도 거긴 역시 아직도 별들의 세계이고, 기껏 그 정도의 기술밖에 없으니까 거기 밖에까지 못 보는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마음의 분량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참 와 닿아야 되는데요. 허공처럼 큰 것이 우리 마음이입니다.
無有邊畔(무유변반)이다→ 변반. 갓이 없다 이겁니다. 한계. 경계선이 전혀 없다.
변반이없다. 畔은 밭두렁 반字.
예를 들어서 어느 밭이나 논이 200평이면 200평.
300평이면 300평. 1000평이면 1000평. 그렇게 되고는 그 다음에 두둑이 있잖아요? 그것이 끝이지요. 변반쪽에 이르면...
그러나 허공은 그런 것이 없어요.
亦無方圓大小(역무방원대소)다→ 또 허공의 특징은 모났다거나 둥글다거나 크다거나 작다거나 상대적인 것이 없다. 유교에서는 뭐라고 하지요?
天圓地方(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고 하지요. 方자는 땅이되고, 圓자는 하늘에 해당된다고 그러지요.
그런데 불교는 이렇게 허공에 대해서 방원대소가 없다고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亦非靑黃赤白(역비청황적백)이라→ 청. 황. 적. 백. 하늘은 텅 빈 것이기 때문에, 푸르니 누르니. 붉느니 희느니 하는 색깔로서 규정지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亦無上下長短(역무상하장단)이다→ 위다 아래다. 길다 짧다. 그것이 위다 아래다 어디 있습니까? 사실은...
동서남북도 없는 것이지요 사실은...
우리가 괜히 편의상 저쪽은 동쪽. 이쪽은 서쪽. 북극 남극. 이렇게 정해놓고 이름을 부르는데 사실 정하기에 달린 것입니다.
북극을 동쪽이라 할 수도 있는 거고, 남극을 서쪽이라 이름 지어도 상관없을 것이고, 허공은 사실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亦無嗔. 無喜. 無是. 無非. 無善. 無惡 (역무진. 무희. 무시. 무비, 무선. 무악)→ 이것은 사람의 감정에서 나오는 표현인데, 분노라든지. 또는 기쁨이라든지. 옳다든지. 그르다든지. 선이라든지. 악이라든지 하는 것이 전혀 없다.
無有頭尾(무유두미)라→ 머리라든지. 꼬리라든지. 허공에 머리가 어디며 꼬리가 어디며. 허공에 무슨 선이니 악이니. 또 상이니 하니 전혀 없지요.
우리가 뭐 지구 위에 있는지 우리가 지구 밑에 있는지, 그것을 누가 함부로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허공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지요. 이것은 허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 마음자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마음자리...
마하는 크다 는 것인데, 마음의 량이 허공처럼 커서 뭐라고 명명할 수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諸佛刹土(제불찰토)가 盡同虛空(진동허공)이다→ 여기 제불찰토 라고 하는 말은 불교에서 세계마다, 세계마다 다 부처님이 계신다고 해서 佛土(불토). 그냥 세계라는 뜻 이지요 그것이... 세계라는 뜻입니다.
제불찰토 하면 그냥 세계라는 뜻이지요. 우주라는 뜻도 되고요. “그것이 모두가 허공과 같음이니...”
이 제불찰토 이래놓으면 우리는, 불자들은 특히 부처님이라고 하는데 病(병) 이 걸려 있기 때문에, 佛病(불병) 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냥 부처님. 부처님이 계신다. 부처님은 우리가 상상으로 생각하는 그런 부처님이, 인류의 스승인 부처님이 어디에 턱 계시는 그런 세계로 그만 얼른 생각을 한다고요.
불자들은 전부 부처님 병에 걸려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불찰토. 또는 불토. 특히 화엄경 같은데 많이 나오는 불토라고 하는 말은 그냥, 國土(국토). 또는 世界(세계). 그런 뜻입니다.
佛 자를 넣은 이유는 세계마다 모두가 부처님이 계신다 하는 그런 뜻에서...
다른 종교인들이 들으면 우습지요. 부처님이 언제 그 국토를 다 차지해가지고 불토라고 하느냐. 어째서 부처님 나라냐? 이거예요. 부처님이 등기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째서 부처님 나라냐?”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이런 이야기가 스님들끼리는 자주 오고가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왜 불토라고 하느냐? 이것이지요.
이 세계를 부처님, 뭐 당신이 돈 주고 산 것도 아닌데... 그냥 세계라고 하는 뜻으로 보면 됩니다.
그것이 다 盡同虛空(진동허공)이니 世人(세인)의 妙性(묘성)이 本空(본공)하야→ 세상 사람들의 그 기기묘묘한 우리의 본성. 성품. 마음자리. 세상 사람들의 묘성이. 정말 妙性입니다.
이 우리의 성품이라고 하는 것은 이거 정말 알다가도 모르고, 모르다가도 또 알고, 정말 기기묘묘한 것이 우리의 성품. 우리의 마음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기묘묘한 우리의 마음이면서, 그러면서 또 그것을 찾아보려고 하면 찾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손에 잡히지도 않고 뭐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여기도 이제 쭉 설명해 나가지만, 범어사 대웅전 주련에 보면, 이런 때 게송을 하나 소개 하지요. 주련에 보며는
≪摩詞大法王(마하대법왕)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
本來非조白(본래비조백)
隨處顯靑黃(수처현청황)≫ ←금강경 오가해 야부스님 송인가? 거기에 있는데, 여기서도 마하를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어요. 내용이 같습니다.
내용이 같은데, 여기의 장황한 설명을 이렇게 詩 한 수로서 다 표현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摩詞大法王(마하대법왕)- 크고 큰. 摩詞도 크다는 뜻이고, 또 大자도 크다는 뜻인데 그렇게 중복으로 표현을 강하게 한 것이지요.
마하. 위대한 법의 왕! 법의 왕 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의 왕인데, 이것은 우리 마음자리를 표현한 것이지, 마음자리 외에 저렇게 법의 왕이다. 아주 큰 법의 왕이다 라고 할 것은 사실은 아무것도 없어요.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이라- 짧은 것도 없고 또한 긴 것도 없다.
本來非조白(본래비조백)- (조:白밑에七→ 검을 조. 검다는 뜻.) 본래 마음자리는 검은 것도 아니고 흰 것도 아닌데, 그런데 隨處顯靑黃(수처현청황)이라- (이것이 참 묘한 말씀이예요.) 곳에 따라서 푸른색 누런색으로 나타내누나.
그러니까 여기 오면 이 부처님말씀. 조사스님의 말씀을 공부할 줄도 알고, 또 학교 가면 학생들을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입장이 돼서 잘 가르치고,
또 집에 돌아가면 그 집에서의 자기 위치 따라서 또 그 역할을 잘 하는 것이지요.
어디 뭐 놀러 가면 놀러간 그 상황 따라서 거기서 또 적절하게 잘 자기모습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수처현청황이예요. 이것을 잘 해야돼요. 이것을...
수처현청황을 잘 해야돼요. 그것 참 우리도 그것이 서툰데, 이제 조금 물리가 날만하니까 나이가 들어가지고, 아무짝에 쓸모가 없어져 버렸어요.
수처현청황을 잘 해야돼요.
그것이 妙입니다. 본래 무엇이나 다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어요.
가지고 있는데, 그 상황 따라서 能小能大(능소능대). 능히 크기도 하고, 능히 작기도 하고,
푸른색도 보일 수가 있고 붉은색도 보일 수 있는 그런 수처현청황. 곳에 따라서 청황을 나타낼 줄 아는. 뭐 청황이라고 하는 말은 모든 상대적인 것의 대표로 저렇게 표현을 했어요.
본래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규정지으면 안 돼요.
규정지어질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요.
규정지으면 그것은 망발입니다. 큰 잘못이라고요.
얼굴이 좀 곱상하게 생겼다고 “여자다” 이렇게 딱. 해서 “여자는 어떻게 살아야 된다.” 그것도 큰 망발이고,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일 수도 있고 남자일 수도 있어요.
本來非조白(본래비조백)이예요. 우리의 마음자리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닙니다.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이예요. 경우 따라서는 길게 놀고, 또 경우 따라서는 짧게도 놀고요.
또 경우에 따라서는 흴 수도 있고 검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냐 하면, 그것이 그 사람의 본 모습이냐 하면 전혀 아니에요.
그렇게 알면 큰 오산이지요. 그렇게 규정지어서 우리가 사람을 봐서도 안 되고, 또 어디 놀러가서 뭐 예를 들어서 웃기는 이야기 한 마디 했다고, 계속 그 사람 상상할 때 “그 웃기는 사람”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을 그렇게 규정해 버리면 그것은 그 사람과 같이 놀면 못 써요. 그런 사람은...
그것이 편견이라고 하는 거예요. 偏見(편견). 치우친 소견. 그래서
불교는 자꾸 자나 깨나 중도 이야기예요 자나깨나 中道(중도) 이야기...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본래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다종다양한 어떤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그러니까 뭐라고 규정지어 버리면 안 된다고요.
어린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제일 금지사항이 그거 아니겠어요? “너는 어떤 아이다.” “이거 해야 된다.” 그 제대로 파악도 못 하고, 그렇게 우리가 규정지어가지고 그 길로 딱. 넣어 가지고 그 틀에 맞추어서 키운다고 하는 것은, 이건 뭐 가정교육이 됐든지 학교교육이 됐든지 사회교육이 됐든지, 제일 우리가 염려해야할 점이 바로 그 점이고, 늘 경외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되고, 아이들을 대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리나 그렇지 않든 어쨌든 마하 대법왕은 누구누구에게나 다 한결같이 골고루 다 있는 것이고, 그래서 또 인간의 위대함이 거기서 나타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범어사 법당에 가거든 한 번씩 척 읽으십시오. 읽고 “하~! 글 좋다.”하고...
그리고 옆에 사람들에게 설명도 좀 해주고요.
그러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이다 하는데 매이지 말고요. 남이 규정하는 것 보다는 자기 자신이 자기를 규정하고, 어떤 틀을 자기가 만들어가지고 그 틀 속에 우정 들어가 가지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 탁. 이렇게 한정시켜버린다는 것. 이것이 불교에서 제일 금지사항 이예요.
제일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편협한 생각. 치우친 생각. 어떤 틀 속에 규정되어버리는. 한정되어버리는 그런 삶을 제일 문제라고 하지요.
왜냐? 인간이 본래 그렇게 돼먹질 않았는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왜 그렇게 한정을 해서 사람을 보느냐 하는 것이지요.
여기 전부 그랬잖아요? 상하장단도 없고...
누가 화 한번 냈다 하면 그 사람을 계속 화내는 사람으로 낙인찍을 수도 없는 것이지요.
기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은 계속 기뻐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때로는 좋은 사람도 화 낼 수도 있고,
화내는 사람도 때로는 웃을 수도 있고,
선량한 사람도 때로는 악 할 수가 있고,
악한 사람도 때로는 선량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인의 묘성이 본공하야→ 본래 공하거든요.
本來非조白(본래비조백)이예요. 검거나 흰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세인의 미묘한 그 성품은 본래 텅 비어 가지고서,
無有一法可得(무유일법가득)일새→ 어떤 한 가지 것도, 한 가지 사실도, 여기 法이라고 하는 것에 크게 관심 둘 것 없어요. 어떤 하나의 사실도 거기서 얻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아, 저 사람 착한 사람이다.”하고 꼬집어서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착한가 하면 언제 악하고,
악한가 하면 또 언제 착하고,
화내는가 하면 언제 또 웃고,
웃는가 하면 언제 또 화내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한 가지 사실도 거기서 얻어낼 수가 없는 것일세.
自性眞空(자성진공)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나니→ 우리 자성의 참 공한 도리.
자성의 진공한 그 자리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이 진공 이라할 땐 언제나 묘유가 따라 다니 다녀요.
妙有(묘유)! 진공하면... 이 반대말로 頑空(완공)이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완악할 頑(완)자. 아주 뭐 굳은 공. 정말 텅 빈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정말 공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그런 공으로, 無用之物(무용지물)의 공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그런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불교의 어떤 공의 철학. 또 공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공으로 오해를 한다고요.
그것은 정말 불교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인데, 그래서 “眞空(진공)! 참으로 공하다” 무언가 있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공하다” 하는 말 속에는 아주아주 많이 있다. 꽉 차있다. 그래서 妙有(묘유)!
“참 묘하게 있다.”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眞空은 어디까지나 空(공)이라 했기 때문에, 공은 부정 하는 입장이지요. 雙遮(쌍차)그래요.
그전에: (12강) 여기 한번 소개한 적도 있지요? 선과 악을 쌍으로 동시에 부정하고, 그러면서 선과 악을 동시에 살려내는 것. 긍정 하는 것. 그것은 “妙有”예요. 유는 긍정 이예요. 공은 부정 이예요.
부정과 긍정이 사실은 圓融無碍(원융무애)해요. 동시에 공존하고 있어요. 그것을 아는 것이 불교입니다.
그것을 알면 뭐 더 이상 뭐 이야기할 것이 없어요.
경전이나 조사스님들의 어록. 또 원시경전에 이르기 까지 전부가 진공과 묘유의 관계. 긍정과 부정의 관계. 쌍차쌍조 의 관계. 그래서 중도.
중도의 정신을 밑바닥에 다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眞空(진공)도 또한 그러해서, 世人(세인)의 妙性(묘성)이 本空(본공)해서 無有一法可得(무유일법가득) 이지만, 그러나 우리들의 자성. 우리들 마음자리.
自性眞空(자성진공)도 亦復如是하니라→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저기 보십시오.
摩詞大法王(마하대법왕)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이고,
本來非조白(본래비조백)이지마는, 隨處顯靑黃(수처현청황)하잖아요. 우리 자성이 텅 비었어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무엇이나 다 돼요.
우리 마음이 무엇이나 다 돼요.
때로는 선한사람도 되고, 때로는 악한사람도 되고, 뭐 도둑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뭐 돈 보고 이거 먹어도 괜찮다 싶어서 먹으면 다 도둑놈 이예요 그냥...
지금도 세상에 진짜 큰 도둑들은 말짱한 사람들 아닙니까? 얼굴도 잘 났데요 모두... 체격도 좋고... 그렇다고요.
그게 뭐 본래 타고난 도둑은 아니거든요. 그럴 개제가 되면 다 도둑놈 된다고요.
우리의 자성자리에는 본래 도둑이다. 무슨 뭐 선한 사람이다 그게 없어요.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다 가지고 있어요. 수처현청황입니다.
때에 따라서. 선한 사람도 되고, 도둑놈도 되고 다 되는 겁니다. 亦復如是(역부여시)하니라
自性眞空(자성진공). 이 자성진공 이라는 말이 참 묘한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텅 비었으되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자성진공입니다.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어떤 일도 할 수가 있는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그것이 자성진공입니다.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은 그건 頑空(완공)이라 그래요. 완전히 죽은 공. 완공하고 진공하고는 전혀 180도로 다른 그런 입장이지요.
|
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_()_
世人의 妙性이 本空하야 無有一法可得일새 自性眞空도 亦復如是하니라 ... 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 _()()()_
중도와 자성진공의 가르침....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本來非조白(본래비조백)하지만, 隨處顯靑黃(수처현청황)이다...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그것이 自性眞空입니다...고맙습니다._()()()_
眞空妙有!!! 自性眞空!!! ....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_()()()_
대원성님의 좋은 인도로 육조단경 녹취록 16강을 공부하였습니다. 참으로 좋은 공부를 하였습니다. 本來非조白인대 隨處現靑黃입니다.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립니다.
어머나, 천하정님! 어느새 여기까지 오셨군요. 다음 강의를 속히속히 올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자칫 공부하시려는 그 의지력이 저로인해 저하될까봐 크게 염려합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한땀한땀 손으로 누볐다는 누비 이불처럼, 큰스님의 법문을 한마디 한마디를 글자로 전환시키기에 최선을 다 합니다. 법문중에 스님을 따라 허심탄회하게 웃기도 합니다. 늦더라도 헤량하소서._()_
自性眞空... 우리 마음은 텅 비었으되 무엇이든지 가능하다...고맙습니다. _()()()_
隨處顯靑黃...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_()()()_
_()()()_
마하반야바라밀_()()()_
대원성님의 육조단경 회향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전 요즘 육조단경 공부하면서 행복을 만끽하면서...대원성님께서 하신 녹취를 읽으면서 고마움을 가슴 깊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대원성님..사랑해요.._()()()_
미투 아일러뷰. 땡큐 베리마치.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_()_ 수처현청황이예요. 이것을 잘 해야돼요. 이것을...
수처현청황 깊이 새기겠습니다._()()()_
_()()()_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自性眞空(자성진공) ()()()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이라- 짧은 것도 없고 또한 긴 것도 없다._()()()_
_()_
수처현청황 마하반야바라밀!!!
삼배 올립니다
_()()()_
自性眞空이라는 말이 참 묘한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텅 비었으되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자성진공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本來非조白 , 隨處顯靑黃..........고맙습니다.
_()()()_
摩詞大法王 無短亦無長 本來非조白 隨處顯靑黃 ... _()_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무엇이나 다 돼요. ...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감사합니다
自性眞空 ... 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摩詞大法王(마하대법왕)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이고,
本來非皂白(본래비조백)이지마는, 隨處顯靑黃(수처현청황)
_()_ _()_ _()_
自性眞空(자성진공). 이 자성진공 이라는 말이 참 묘한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텅 비었으되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자성진공입니다.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어떤 일도 할 수가 있는 그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마하 반야바라밀
摩詞大法王
無短亦無長
本來非皂白
隨處顯靑黃
이 법문은 범어사 마곡사 대웅전 주련에도 있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_()_ _()_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_()()()_
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