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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지덕(謙讓之德)
;어리석은 자는 어진 이를 가까이 해도 표주박이 물맛을 모르듯 비록 요래 친하고 익혀도 법(法)을 알지 못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진 이를 가까이 하면 혀가 국맛을 알듯 비록 잠깐 사이 익히고 배워도 도(道)를 안다.
이 글은 법구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겸손하고 슬기롭게 처신할 때 바른 도에 들어간다는 의미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득 찬 그릇은 넘치지만 비어 있는 그릇은 그 어떤 것도 담을 수 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롭고 덕스런 삶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가슴속을 울린다.
곡식도 익어지면 고개를 숙인다는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직언을 하면서 그것이 당당한 모습이라고 이제까지 살아오지 않았던가? 직언이 요긴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 상대에게 비수가 되어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고려해 봤던가? 그 누구에게 바른 소리하기 전에 나의 삶을 냉정히 점검해 봤는지?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모두 외면하고 넘어 갈 때 그것을 굳이 짚고 넘어가야 하는 성정, 그것도 많은 대중 앞에서 마치 정의의 사자 인 양 어깨에 힘주고 목청 가다듬어서….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주위를 환기시키고 역사 발전이 앞당겨진 예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시원하고 용기 있는 모습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 40이면 불혹이다. 타인의 허물을 살피기보다는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져야할 연령이다. ‘이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그 장소, 시기에 적합한지 주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고 설득할 수 있는 분위기인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참으로 겸양의 덕을 생각한다면, 성숙한 인격이라면 소영웅심에 흘러 자신을 맡기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도 총각 때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을 때는 처신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처자권속을 거느리고 가정을 책임진 입장에서는 하고 싶은 말일지라도 결과를 생각하고 가정의 책임자로서 처신이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총각 때처럼 하고 싶은 언행을 그대로 노출해서 가정의 안위에 금이 갈 정도라면, 그 사람은 건달에 불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찰의 주지가 되어 산다는 것은 세상과 절충을 전제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싫으면 수좌(首座)로서 운수(雲水)처럼 살아야 하지, 애초에 주지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큰소리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제대로 일을 해내는 자가 장부의 모습일 것이다. 물을 집 삼아 사는 물고기도 장마철 물살이 셀 때는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가 물살이 느릴 때 다시 나오는 법.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다. 굳이 이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사람이라는 것은 의당 겸양의 미덕을 알고 쌓을 때 복이 도래한다. 금강경의 대의가 아상(我相)을 깨고 법집(法執)을 깨는 것이다. ‘나’ 라는 생각, 고집, 고정관념, 자존심 이런 것을 깨뜨려 ‘나’라는 존재가 실재가 아니라 텅 비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우는 내용이다. 나;라는 생각이 오죽 강했으면 대소승 불경(佛經)의 근본경에서 이 것을 제일 먼저 다루었겠는가? 공자님도 일찍이 이르시길 ‘나는 성현이 아니다. 다만 세상을 많이 경험 했을 뿐이다’고 절실히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다. 세상의 철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자 먼저 겸손해야 하는 것.
노자 도덕경에 물에 대해서 말을 했다. ‘나’라는 고정관념이 없어 둥근 그릇에는 둥글게 모난 그릇에는 모나게 변화하며 일정한 형태를 가지지 않지만 낭떠러지를 만나서는 천길만길 떨어지는 용기와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치. 산이 막아서면 돌아서 가고 웅덩이가 있으면 그 구덩이를 다 메우고 난 다음 돌아가는 인내, 대숲을 만나면 그 숲 사이를 빠져나가는 지혜와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지만 만물을 살리는 기운이 있고 만물을 정화시키는 정화의 능력을 갖춘 물의 덕성. 만약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면, 이러한 덕성을 발휘하겠는가. 끝없이 자기를 낮추고 어른을 공경하고 선배를 예우하는 마음이야말로 부처님의 뜻을 받들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첩경이 아니겠는가?
계란껍질을 깨는 고통이 있는 뒤에서야 닭이 탄생하듯, 구렁이가 허물을 벗고 나서야 성장하듯 사람도 살아가면서 깨지고 터지고 하면서 철이 들어가는가 보다. 불혹의 나이지만 가슴의 문을 한껏 열어놓고 세상을 더 경험하고 더 배우자.
나무아미타불
_ 태고선원에서 지정합장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