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겨울 초입부터 몰아닥친 폭설 뒤끝, 열릴 것 같던 하늘은 끝내 볕을 내놓지 않았다. 구름 사이로 성긴 눈발이 날리는 오후 화순 도암면 도장리 마을회관 앞. 호호 손을 불며 추위를 달래는 화순 도암면 천태초등학교 학생들, 도암중학교 학생 40여명과 도장리 마을 어른들의 '민요 데이트'는 힘겹게 힘겹게 이루어졌다.
*광주에서 광주대, 도곡온천을 지나, 운주사 표지판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마을. 조선 초기에 마을의 역사가 나오는 걸로 보아 족히 1,000년은 존재했다는 이 화순 도장리에는 예로부터 아낙들의 밭노래와 시집살이 노래가 발달했다고 한다. 수많은 민요들이 생성되었고, 지금까지 잘 전승되고 있어서 화순군에서 지정한 '민요마을'이기도 하다. 지정의 주체가 정부나 광역자치단체도 아닌, 일개 기초자치단체에 불과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식의 브랜드를 갖고 있는 동네를 찾아보자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어머니의 시어머니, 또 그 위의 시어머니를 거치면서 형성된 토속민요의 매장량이 풍부하다. 벼농사보다는 밭이 많은 마을의 위치상 밭매면서 자연스럽게 작품화된 <흥글타령>류의 민요가 주종을 이룬다. 미영(솜)을 심으면서 불렀다는 김금순(68) 여사의 <한재너머>라는 민요다. "한재너머 한각고야/두재 넘어 지충개야/겉잎같은 울 어머니 속잎같은 나를 두고/임의 정이 좋다 한들 자석의 정리를 띠고 간가/어메 어메 우리 어메 요내 나는 죽어지면/잔등잔등 넘어가서 양지발로 묻어놓고/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주소." 젊은이 축에 드는 양회순씨의 <시집살이노래>는 과연 당사자의 얘기일까 싶지만 노래의 성음 자체는 진하다. "...내가 살아서 뭣을 할께/주렁강에나 들어가서/졸복 하나를 낚어다가/짚불에다 구워먹고/잠든 듯이 죽어보세..."
*문필순(66) 어머니가 부르는 <강로타령>은 중노동에 시달리는 새댁이 호롱불 앞에서 자울자울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신랑이 서당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정경을 노랫말로 만들어 낸 모양인데, 노래를 계속하면서 목소리가 떨려나오는 것이 수십 년전 당신의 이야기라도 되는 듯하다. "강로강로 강로씬가/유자 강로 석류씬가/보신 줏든 자오씬가/낼 아침에 조반 끝에/무슨 말씀 사룰라고 잠만 자고 누겠는가/어머니도 들으씨요 아버님도 들으씨요/앞전답도 폴아낸게 뒷전답도 폴아낸게/초상이나 잘 쳐주씨요..."
*1980년대 가수 서유석씨가 불렀던 유명한 '금지곡' <타박네>의 오리지널 버전도 이 마을에서 흘러나온다. "따박따박 따박네야/무엇을 보려고 울고 가냐/울 어머니 산소에로/젖을 먹자 울고 가네/울 어머니 산소에는 함박꽃도 너울너울/울 아버지 산소에는 접시꽃도 방실방실..."(김오순, 이순남 합창)
*이렇게 애조띤 '애원성'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입을 맞추어 부르는 <장감새야>는 가을 추수를 마친 농촌의 정경과 함께 밝은 기운이 넘치는 노래다. "장감장감 장감새야 팔두 비단에 노담새/만수문전에 풍년새 되옹되옹 잡동새/너 어디가 자고와 구가문으로 돌아가/칠성문에가 자고와/먼 비개 먼 이불 꽃비개 꽃이불 비고 덮고만 자고와/저 건네라 안산에 동대문이 징그렁장그렁 열리는구나/니구새 나구새 다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다 날아든다/저 건네 호호리 명산에 달이나 뭉게 솟아올라 금이냐 옥이냐 동자색이냐/니 물에 묵던 수달피 정금탕금 숲안에 들었다/버들이 우구구 꾀꼬리 어라 만서~"
*이 마을이 '민요마을'인 것은 이렇듯 솜씨좋은 숙수(熟手)가 맛있는 자장면을 뽑아내듯,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노래들을 쭉쭉 잘도 뽑아낸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누대를 거치면서도 전승력을 약화시키지 않고 마을의 자원들을 잘 이어온 점도 빼놓을 수가 없다. 지금은 이병순 할머니가 이 마을의 '왕소리꾼'격인데, 이 분이 갖고있는 자원이 바로 이 마을에서 살다 돌아가신 어머니 할머니의 노래들이다. 그녀는 대외적으로 도장리를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 있는 <발자랑>의 앞소리꾼이기도 하다. "발자랑 발자랑 새보신 신고 발자랑/아짐개 족집게 열 다섯 목욕탕 큰애기 노리개/발자랑 발자랑 새보신 신고 발자랑/안아춤 삼한에 만화방창 일년 대화가 연초냐/발자랑 발자랑 새보신 신고 발자랑..." 무슨 뜻인지 명료하지 않은 가사들, 이는 필경 최근에 형성된 노랫말이 아님을 보여주는 징표다.
*이 정도의 전승력이라면 우리 소리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게다가 이 마을은 겨울이면 마을회관에서 '공동 취사'와 '공동 휴식' '공동 놀이' 기능을 수행하는, 공동체적 삶의 정서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지금도 서로 의지하며 사람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먹고 놀면서 한겨울을 지내는 정경, 막걸리 한잔 걸치면 이 노래 저 노래 부르며 사는 정경,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곳을 보여주라고 하면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이 마을과 5분 거리에 있는 천태초등학교에서 민요의 '이상적인 전승 모델'을 볼 수 있다. 도장리에서 불리고 있는 토속민요가 천태초등학교 학생들의 특별활동 수업 시간에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웬만한 초등학교마다 있는 국악 강사가 가르치는 것이지만, 한 지역에서 자연발생했던 토속민요가 '자연사(自然死)'하지 않고 그 지역 아이들의 입에서 불려진다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전승 모델'이다. 그 아이들이 도장리의 토속민요보다 대중가요를 더 선호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 지역의 것"임을 알고 "할 줄 안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젊어서부터 이 마을을 지키면서 살아온 김성인씨가 없었더라면 '도장리 민요마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잊혀지기는 쉽다. 사라지는 것도 금방일 것이다. 자기것은 그렇게 모르면서 대중가요는 잘도 불러대는 것이 자랑인 현실이다. 아이들의 입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노래'가 튀어나오는 것이 우리의 음악교육에서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진작부터 그랬어야 한다. 한때는 학생수가 너무 많아서 오전반 오후반 분반 수업을 했다는 화순 도암면의 천태초등학교는 이제 한 학년에 한반 채우기도 힘든, 여느 농촌지역의 학교와 똑같은 형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은 자기가 나고 자라는 지역에서 불려졌던 노래를 알고 있다. 다른 지역, 다른 학교들이 본받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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