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꼭 한 번은 알밤처럼 만지작거리다 훌쩍 떠나보내어야 할 가을!
나는 그 쓸쓸한 가을의 좁은 입구에 서서 방황하고 있었다.
알다시피 요즘 맞이하는 가을이란 늘 쪼들린 가난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다. 특히 농촌은 더욱 그러하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얼마나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 했던가.
나는 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알알이 영글어가는 가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올해 같이 심술궂은 가을이 느닷없이 찾아 오는 날,
나는 더욱 더 깊숙하게 패인 가난의 계곡에 빠지고 만다.
어젯밤에도 나는 망망대해와 같은 가을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만나기 위하여 집 주변을 서성거렸다.
하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그 별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오염에 찌들어 시들시들하기 그지없는 몇 개의 희미한
별똥별만 주워 눈에 넣은 채 들어와야 했다.
반짝이던 유년 시절의 별빛들을 기대한다는 건 한없이 나를
처량하게 할 뿐이었다.
고향에는 부모님 두 분과 우리 네 식구가 조촐하게 살고 있다.
해가 거듭 될수록 즐거운 명절이라는 말은 자꾸만 퇴색되어 버렸고
명절을 하루 앞둔 고향의 저녁은 죽은 듯이 납죽 엎드려져
이른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는 잠못이루고 뒤척이는 고향의 짤막한 산과 좁다란 들판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유년시절 나무지게를 메고 수없이 오르고 내렸던 뒷산 고갯마루도
바라보았다.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선대부터 일구어오는 과수원의 윤곽이
어둠 속으로 서서히 묻혀가고 있었다.
사그라진 심상으로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부엌에서는 이미 년례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동생 내외는 또 지각" 이라며 아내는 부엌에서
혼자 궁싯거리며 엷은 불빛을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집앞에 자가용 한 대가 멈추어 섰다.
이제서야 동생 내외가 도착한 것이었다.
아내의 성화에 내심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내가 보아도 그렇긴 하였다.
동생은 그렇다치더라도 제수씨는 도대체 얌체라곤
손톱 만큼도 없는 듯 보였다.
재수씨는 들어서자마자 하는 말,
며칠 전에 할퀴고 간, 매민가 뭔가 하는 태풍 때문에 도로사정이
엉망이라서 좀 늦었다나 우짜나...
그 말을 엿들은 아내의 표정은 꼭 호박잎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2-1]
옆에서 이것저것 하느라 마음이 바쁜 큰 동서가 속으로
"막내는 무신 새실이 저리 많을꼬? 하여튼 일 할 생각은 안하고 지하고
매민가 깨민가가 무신 상간이 있노?"라며 겉으로는 고운 목소리로
"막내야 이 부침개좀 봐라이 그라고 둘째야 니는 탕거리좀 다듬아라"
말은 곱게 하면서도 속은 영 편치를 않다.
그래도 제일 큰 동서인데 손아래것들이 큰동서 알기를 발가락에 때만도 못여기는 이 집구석이 한심했다.
명절이라고 내려오면서 달랑 술 한병 사 들고와서는 입에 갖은 아양을 쳐 발르며 시아버지앞에서 웃어대는 꼴이라니...
둘째도 마찬가지다. 자식은 다 똑 같은데 지는 서울 산다는 이유로 겨우 명절 때나 찾아 오면서 전화 한통 하지 않던 주제에 "아버님 건강은 어떠신지, 저는 자나 깨나 아버님 건강이 걱정되어 매일 기도 합니다."
라명 코 맹맹이 소리 하는게 아주 꼴 사납다.
더 내가 속상한것은 내가 이 많은 집안 살림을 하는데 아버님은 한번도 "힘들제? 욕본다." 한마디 않하시더니 둘째보고는
"아 들 공부 시킨다고 욕본다. 니 고생한거 저 자석들이 알아 줄기다."
하며 위로 하는 아버님의 눈길이 더 밉다.
"니는 일을 하는 기가 어지는 기가?"
아범 목소리에 얼런 바닥을 보니
손끝으로 훝어 내는 콩나물 대가리가 양푼 바깥으로 막 튀어 나가고
바구니에 담아져야할 콩나물 줄기가 바닥에 산가지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민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요즘와서 얼굴빛이 거뭇하고 오른쪽눈 옆볼아래로 내리뻗은 기미도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내만나 고생만 하지'민수는하릴없이턱을 쓸어보았다. 그 일이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모님이 사는 진영으로 밀고 내려와 단감 과수를 일구며 산지도 이제삼년이나 되었다. 진영생활 역시 아내에게 고달프긴 마찬가지었다.추석 이튿날 매미 태풍으로 쑥대밭이된 단감 때문인지 아내는 통 말이없다.
[3-1]
정신없이 돌아가는 증권 막장시간,민수는지난번에 직장을 그만둔 김대리의 전화를 받았다.
김과장님,저예요,형욱 ,잘계시죠,저기오늘..." "
아,형욱,김대리,어 오랜만이야,
그래 여기 놔두면 돼1" "참 지금 바쁜시간이죠, 막장이라," "
아냐, 이제 다끝났어, 뭐 자료 받을게 있어서,잠깐 미스 리 이것은 가져가고..." " 아, 그래 왠 일이야,응!그간 무소식이 희소식이거니했지," "예,오늘 시간 어떠세요,제가 지금회사부근에 있거든요,괜찮으시다면 술한잔 대접하고 싶어요,사실 드릴 말씀도있고," '
어,그래 그럴까,출출한데 마침 잘됐군,어디가 좋을까?
민수가 형욱의 청을 뿌리치지 못한것은 그가 남다른 대학후배이기도 했지만 직장을 금방 때리치고 나갈수 있었던 그의 용기가 내심부러웠기 때문이다.그래 젊어서그래, 누구에게 하는소린지 모르게 민수는어물거리며 그와 약속한 <청해 해물탕>을 향했다.
촌스럽게 원색으로 환하게 단장한 식당은 때깔 안빠진 색시같이 만만했으나온얼굴에 미소를던지듯 쏟아내는 부담스러운 네온사인 불빛은 오늘도 제일 먼저나와 반겼다. 식당은 대만원이었다.앉은 손님들의 표정은 제각각 열심히 떠들고,주거니 받거니 하고,군중속의 고독인가,민수는 입가에 퍼지는 씁쓸 한 미소를 빨리거두며 형욱을 찾아보았다.가족,연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각기 다르게 앉아있고 홀 중앙은 넥타이부대 30여명이 동창회 회식을 하는지 요란스러웠다. 창가 중년의 부부가민수를 흘끔보듯 일어섰다. 민수는 그자리를 향했다.
바로 그쯤 형욱이 스치듯 다가왔다.
오랜만에 본 형욱은 지쳐 보였다.면도는 사흘을 안한듯 제법 숱이 깊었고 머리도 기름에 젖어있어 일본영화에서 본 남자배우 같았다. 안경너머 눈빛은 슬픈듯 맥없이 겸손햇다.그가나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었다.보증은 부모가 서달래도 거절하라고 들은 민수로서는 난감했다."보증을,자네,보증을서는거야 간단하지만 사람일이란게 그런가, 보증서면 꼭일이 꼬이지 않던가, 도대체 왜그래 !' '
선배님,제가 지금하는 사업이 월소득이 아직은 천만원대에요, 그런데 이것을 좀 더 투자하면 오천만원이 들어올 전망이예요,근데 돈많은 새끼들이 낌새를 채고 계속 들이밀고 오는 거예요, 선점을 해야해요,
그럴려면 좀더 투자를 해야해요, 선배님은 보증만서면 돼요, 두달뒤 제 수입의 1활을 드릴께요,'입사 할때도 톱을 했고 수익율 전국 5위를 자랑하던 김대리의 말을 십게 흘릴수는 없었다.사실민수가 청춘을
다바친 직장생활 이십년 만에 남은것이라곤 서른 두평 짜리 아파트 하나가 전부였다.하루에도 열두번 때려치우고 싶은 직장이었다.
그날 민수는 형욱의 명함을 받고 연락하겟다는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렇게 지나쳐 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주일후 형욱에게 전화를 한건
민수쪽이 었다.아침에 눈을 떠 인터넷으로 증시를 확인한 민수는 바닥을 치는 자신의 주식을 보고 절망에 빠졌다.평화 건설쪽은 전도 양양한 불루-칩이었다. 근데 이것은 완전 히 바닥이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것일까,형욱에게 전화를걸었다.그날저녁 형욱을 일곱시에 지하 카페에서 만났고 선듯보증을 섰고 그에게 약속을 받았다.
그게 전부였다.사건이 터지기전 꼬박꼬박 이자가 잘 들어 왔고 부수입
은 자신의 기본월급의 절반이나 되었다. 제발 이대로만 계속되라.지금껏 내삶에 행운이란 것이 있었던가,그래 이건 보너스야,보너스, 간간히 밀려드는 불안을 애써 떨쳤다. 가분한 이자 !적금붓듯 규칙적이던 이자는 일곱달을 넘기자 뚝끊겼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생각도 하기싫다.
형욱은 슬며시 종적을 감췄다.은행에서 전화가 오고 아파트는 경매에 붙어졌다. 정말 되는것도 안되는것도 없었다.
[4-1]
선대로부터 이어 받아 농사를 지어 오던 밭이었다
파내고 골라내어도 끝이 없는 자갈돌에 해마다 제초제에 제초기를
들고 있어도 돌아서면 우묵우묵 솟아오르는 쑥 덤불, 개비름, 독사풀...
흡사 그들은 손사래 짓으로 좇아내면 순식간에 달려드는 고봉밥의
파리 떼와 같았다
아버지가 그 땅에 감나무를 심은 것은 25 년 전 농촌 소득 증대의 일환으로
감나무를 무상으로 도에서 지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단감 농사는 세끼 밥 겨우 먹고살던 집안에 복덩이가
들어앉은 셈이었다
해외로 수출하기도 하고 국내 시장에서도 진영단감은 단연 일등품으로 값이
매겨졌기 때문이다
어디에 금송아지가 있다 해도 우리 집 단감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2남 3녀의 자식들이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물론 내가 장남이었기에 대학을 졸업하였지만 아래로 여동생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취직을 해야 했다
남동생은 전문대를 나왔지만 어릴 적부터 수완이 좋았던 것이 밑천이 되었던지
지금은 서울에서 작은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직장 후배의 부도로 보증을 선 아파트 문서가 날아가고 난 뒤 직장을 청산하고
짐 보따리 몇 개 일 톤 트럭에 실고 내려 와서는 눈비 가려줄 언덕에 몸을 기울
이 듯이 팔순이 다 되어 가는 부모님께 얹혀 사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흙 냄새, 물 냄새, 풀 냄새를 숨을 들이켜도 또 맡고 싶은 엄마
냄새처럼 정답지만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아내는 나의 향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촌에 내려와 살고 있는 삼 년 동안 아내는 가끔씩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고 일어난 사람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것은 생활에서 좌절하는 경우 보다 집안 행사만 치르고 나면 그 증상이 나타났다
생활이라 해야 사계절이 반복되듯이
겨울에는 송곳같이 날카로운 장비로 감나무 둥치 껍질을 벗겨
겨울 동안 잠식할 유충들을 제거하고,
이월 말경에는 언 땅의 퍼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거름을 내고 가지치기를 한다
우윳빛 감꽃이 피어 지고 나면 진 녹색 새끼 감들이
잔털 뽀송이 덮힌 얼굴을 내민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고것들을 품앗이 하여 우량종만 솎아 내는 일도 일 이 주는 넉넉히 손이 잡힌다
여름에 주기적으로 약치는 일이며, 제초작업에, 하늘 높은 줄만 알고 위로만 솟는
새 가지를 휘어잡아서 고정시키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나
아내는 그런 일들에서 한 마디 군소리를 보태는 일이 없었다
그 날도 아내는 기분 상태가 불완전하였고
오랜만에 시간이 났다며 동생 네 가족이 나들이 차림으로 고향으로 내려왔다
감잎이 군데군데 단풍이 들어가고 꽃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말라서 쪼글쪼글
해진 꼬투리가 붙어 있고 감의 중앙에서 내리 그은 네 줄기의 실루엣은
성숙한 가시내의 매끄러운 가슴 골 같았다
윤기가 흐르는 탱탱한 감이 영글어 가는 오후였다
[5-1]
저녁식사를 다 마쳤을 때쯤 동생은
시렁에 얹어놓은 윈체스터 엽총을 끄집어내어 먼지를 닦아내고 있었다.
‘그건 와? 니 오리 잡을꺼가?’
‘오리는 무슨... 멧돼지 정도는 쏴 맞춰야지’
동생은 방아쇠에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끼우고 제법 그럴싸한 포즈로 총구를 앞산에 들이댔다.
간혹 과수원 주변에 짐승떼가 나타나 어렵사리 키운 묘목들을 망가뜨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엽총을 들고 설칠 생각은 못했었다.
만삭인 제수씨는 이제는 무엇을 먹는 것조차 힘이 드는지
숨을 할딱거리며 밥을 떠먹다말고 입안에 음식물이 가득 물은 채로 참견을 했다.
‘당신 그 총 들고 나갈 생각 아예 말아요. 산달이 코앞인데, 지금 뭘 잡겠다는 거예요?’
‘내 참. 그런 미신일랑 보따리에 싸서 너그 친정에 보내이소 마.’
‘뭐예욧? 당신 지금 울엄마가 무당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거죠?’
제수씨는 숟가락을 팽개치고 뜨건 물에 덴 닭처럼 파닥거렸다.
‘동서야.. 고마 니가 참아라’
온 식구가 이구동성으로 말렸지만 동생은 엽총을 매고 장병처럼 씩씩하게 뒷산으로 올랐다.
‘타아~앙!’
몇 시간 채 되지 않아 총성이 울렸다.
사과를 깎던 제수씨가 그만 총소리에 놀라 반쯤 깎던 사과를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은 피 범벅이 된 노루 한 마리를 질질 끌고 집으로 왔다.
어쨌거나 그날 저녁은 노루고기를 모닥불에 얹어놓고 온 동네가 포식을 했다.
새벽녘 급작스럽게 제수씨가 산통을 시작했다.
먼 길을 달려와서 그러려니 했지만 더럭 양수가 터져 방바닥이 흥건해지자
아이를 둘이나 낳은 아내도 어찌할 줄을 모르고 벌벌거렸다.
‘뭐하노... 어여 병원으로 가야재’
나와 아내는 축 늘어진 제수씨를 싣고 인근 산부인과로 향했다.
어젯밤 노루고기로 잔치가 파할 때까지만 해도 별이 총총하던 하늘은
시커멓고 검은 안개 같은 것으로 차양을 치고 있었다.
그러더니 빗방울이 두두둑 차 유리에 떨어져 머리를 박고 툭툭 터졌다.
그때 문득 불길함이 섬광처럼 스쳐 지났다.
노루는 영물이라 죽이면 신상에 좋지 않다는 말이 하필이면 때맞춰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제수씨는 결국 사산을 했다.
동생은 병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대기실 의자에 고개를 파묻고 꿈쩍도 않고 앉아있었고
아내는 눈두덩이 벌개져서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산모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시렁에 얹혀진 윈체스터 엽총을 창고 깊숙이 처박아 넣어버렸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토방에 앉아 한숨을 내쉬는데 입김은 하얗게 모양을 갖추어 빗속으로 스며들었다.
[1-2]
태풍의 눈 만큼이나 멋대로 헝컬어진 긴긴 밤은 우리가족 모두를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였다. 하지만 지구의는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골의 아침하늘은 푸르디 푸른 속살을
내비치고 있었다.
병원에 남겨 둔 제수씨와 아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점심 때가 되자, 택시 한 대가 우리집 대문 앞에 멈추어 섰다.
산부인과 의사의 만류마저 극구 뿌리친 채,
제수씨와 아내는 콜택시를 불러타고는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던 것이다.
"제수씨! 좀 더 병원에 계시지 않구요..."
제수씨는 작은 창호가 붙은 벽 쪽을 바라보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순간 나는 불안한 느낌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감을 알았다.
부모님께서 눈치라도 채실까봐 겁도 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은 것 같아서
나는 동생을 데리고 집 밖으로 얼른 뛰쳐 나와버렸다.
뒤따라 나온 동생은 넘어질 듯 서 있는 돌담에 기대어서는
고개를 푹 쳐박은 채, 발끝을 꼼지락거리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인걸 어떡하나...
제수씨라도 건강하니 천만다행이 아니냐" 하며
나는 동생을 위로하는 말을 던졌다.
아무 반응이 없던 동생은 느닷없이
"형님! 그 엽총 다시 좀 주이소."라고 하며
상기된 표정으로 엽총이 있는 창고를 응시하고 있었다.
"니 지금 정신 나갔나? 응. 그래도 정신을 못차리다니...쯔쯔"
나는 멈칫하는 동생을 보고 엽총처럼 쏘아 붙였다.
"야! 니 인생이 참말로 한심스럽구나야.
죄없는 착한 제수씨만 불쌍타 이거다말이야."
나의 톡 쏘는 듯한 일침에 동생은 고개를 다시 떨구고 있었다.
"야! 까불지 말고 이리 따라 와봐라. 빨랑!"
오락가락하는 동생놈을 데리고 과수원을 지나 뒷산으로 오를 참이었다.
나는 구멍가게에서 깡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 나무 젖가락과
은박접시, 종이컵을 샀다.
까만 비닐봉지에 차곡차곡 넣어서 한 손에 들고는 곧장 어젯밤에 총성이 울렸던 뒷산으로 올랐다.
산정에 이르자 아직도 그곳에는 총소리에 놀란 노루의 창백한 표정과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비닐봉지를 반으로 찢어 펼치고는 오징어를 갈기갈기 찢어 은박접시에
가지런하게 담아 올려 놓았다.
"아우야! 여기 소주 한 잔 따라 올려라..." 하고는
나는 어젯밤 숨을 거두어가던 노루의 절박한 순간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다시 하늘은 발갛게 물들고 있었다.
저 산기슭 아래, 멍들고 찢기어진 우리들의 과수원!
그 곁에서 시름으로 잠들어 있는 재기할 수 조차 없는 비참한 모습들!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라며 나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동생은 눈물을 떨구며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2-2]
한편 방에서는
손아래 동서의 신음 소리가 어제 들은 총소리보다 더 마음을 켜켜이 누르고 물위에 둥둥 떠다니는 시체마냥 동서의 온 몸은 부어올랐다.
"아이 이 무신일이 이런 일이 다 있노?
옛날 말 그린기 없다고 그리 해 싸도 애비될끼 총은 무신 총이고.
동시야 니 갠찬것나?
벵운에 더 있었긴데 진차이 나온거 아이가?
그라고 이판국에 이사람들은 오데갔시꼬?
아이고 내 참말고 몬살것다."
곁에 두고 보려니 안스럽고 그냥 두자니 무서움증이 와락날 만큼 동서의 얼굴은 누렇게 부어 올랐다.
민수 처는 방을 슬거머니 나와서 황급히 거실과 주방과 방방마다 불을 밝혔다.
텅 빈 집안을 공기 한점 들오지 못하도록 누군가 비닐로 덮고 꼭꼭 막아 둔 것 같은 적막이 흘렀다.
식탁에 앉아 두손을 깍지 낀 채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고 두 엄지손톱을 잘긍잘긍 씹어대며 씽크대 옆 시계가 돌리는 초바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초바늘이 세바퀴를 채 못돌아서 민수 처는 일어서며 한숨을 내 쉬고
창가로 달려가서 창문을 열고 현관으로 가 현관문을 확 열어 재쳤다.
문이 열리며 벽에 가서 부딛히는 소리에 민수처는 화들짝 두손을 가슴에다 얹었다.
밖은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구름이 이개져서 천갈래 비로내리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꺼져가는 신음 소리가 구들 아래를 파고 들어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구름은 이개져서 비가되어 아래로 잘도 내리는 구만?
부모는 이개져서 자석보다 먼저 땅으로 가야 되는것이 이치건만 배속에 터잡는 것도 어려워 부모 가슴에 웅뎅이 파고 들어 앉을기 뭐꼬,
비야 내리라 마이 내리라.이 어줍잖은 세상 싹 씨러 갑비라.
아이구 방에 저거 불쌍해서 우짜꼬?'
민수 처는 황급히 방문앞으로 달려가 문고리를 두 손으로잡고 천천히돌려 소리없이 문을 열고 고양이처럼 한발씩 발을 방에다 들여놓고 또 천천히 소리없이 문을 닫고 치맛자락을 양쪽으로 잡아 사타구니 사이에다 홈쳐 넣으며 누운 막내 동서의 어깨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을 뜬 동서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였다.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3-2]
민수와 혁수가 막 들어서자마자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인순과 미순이 내외였다.
인순이 내외가 사내 애 둘을 앞세우고 밀 듯이 들어섰고 뒤이어 미순이 내외가 따랐다.
"아버지 막내딸 왔스예--!! 집이 왜이리 조용하노, 언니-!"
명랑하고 수다스런 미순이 연분홍색 선물을 보따리를 내려놓으며 외쳤다.
"고모 왔어요! 차는 안 막혔어예?
아이고 고모부님들, 반갑습니다. 이리 오시-소?
욱이 훈이도 어서 온나" 아내가 표정을 밝히면 나섰다.
눈으로 간단히 인사를 교환한 매제들은 여동생들과 안방으로 건너가 부모님께
인사를 올렸다.
오랜 노환에 시달리고 계신 아버지의 가벼운 기침 소리가 났다.
아버지께서 흥분하고 계신다는 증거였다.
고혈압과 약간의 중풍기 마저 있으신 아버지는 말씀을 하시거나 기분이 좋으실 때면 기침으로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었다.
오랜 병 수발에 지친 어머니는 내내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다는 표정으로 존재의 부피를 줄이고 계셨다.
가끔 절에 몇 일씩 가는 것을 제외하곤 아버지 곁을 지키시거나 텃밭에 심어놓은
깻잎에 정을 붙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그런 어머니도 막내딸을 보니 얼굴에 발갛게 생기가 돌고 목소리가 놓아졌다.
" 미순아, 너거도 이제 혼인한지 두 해가 다 되가니 아를 봐야 안 되겄나.
와 무슨 생각들이 있나. 몸이 안좋나.
야그를 해봐라."
모든 일에 아무런 욕심도 없는 듯 반 보살처럼 묵묵하시던 어머니가 다그쳐 묻듯 막내딸
앞에 다가가 앉았다.
" 엄마 그기 아이고, 내년에나 가질라꼬예.
내년 봄에 방통대 졸업하고, 분양 받은 아파트도 내년 6월 입주아입니꺼.
그리고 딱 가질라꼬예."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막내딸 손에 힘을 주었다
" 마루에 술 상 차렸습니다, 다 나오세요."
역시 맏며느리는 달랐다.
푸짐하게 차린 술상이 떡하니 부르고 있었다.
곧이어 다들 거실로 옮겨와 술판은 흥이 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슬며시 나와 부엌으로 거실로 하릴없이 서성거리셨다.
가족이란 이런 것인가.
민수는 스멀스멀 취기가 오르자 기분이 좋아졌다.
며칠 전 있었던 총질사건과 유산은 옛일인 듯 아득했다.
그것은 남동생 혁수도 마찬가지 인 듯 했다.
"매제들 마이 무라. 전화 좀 자주 하지. 별일없제? 아들은 공부 잘하나.
야가, 저변에 반에서 이등 했담스, 자슥들, 외삼촌 닮은거 아니가. 응!"
아이가 늦어서 그런지 조카들을 유독 귀여워하는 혁수는 연신 과일이랑 떡을 젓가락에
찔러 조카들에게 건네며 즐거운 표정이다,
자식 사랑에 노소귀천이 있던가.
벙실벙실 번지는 미소를 애써 참으며 큰 매제는 술잔과 안주를 열심히 비웠다.
삼십대 중반에 들어선 인순이 매제는 컴퓨터 중고 사장답게 배가 좀 나오기 시작했고 머리 숱도 저번 보다 약간 준 것이 제법 관록이 붙어 보였다.
인순이도 얼굴 선이 둥수리 해지고 순으로 가린 아랫배가 숨을 쉴 때마다 힘겹게 차 오르며
가운데가 누른 듯 볼록했다.
짤막하고 통통한 손 위에 누렇게 감은 금팔찌는 이제 살만한 여동생의 배짱처럼 두둑해 보였다.
"사업은 잘되제? 너거도 불황이가 어떻노? 막내 매제야 공무원인께 무슨 걱정이고 마는."
"컴퓨터 사업은 오히려 호황입니다. 우리는 걱정 업습니더, 두 달 전에 시골에 땅도 조금
샀습니다."
한 삼 년만 더 고생하면 빚 다 갚고 괜찮을 거 같습니다."
입을 꼭 다물고 뱉어내듯 조심스레 말하는 특유 화법의 매제는 아직도 촌티가 가시지 않았지만 성실한 모습은 차돌같이 흔들림이 없었다.
벌써 팔 년 전 일이 아닌가.
인순이 고성 촌놈 지금의 매제와 결혼하겠다고 매제를 집에 데리고 온 날 난리가 났었다.
그때만 해도 펄펄 하시던 아버지는 야간 상고 학력에 동생들이 넷이나 딸린
서씨 집안 종손을 내치듯 못마땅해 했다.
어머니는 눈물까지 흘리시며 말리셨고 혁수는 결사반대! 라는 험한 말을 던졌다.
그때 유일하게 침묵한 민수가 결과적으로 매제의 후원자 격이었다.
그때 매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다물 듯 말했다.
"
저희는 이미 선을 넘었습니다, 벌써 아도 생겼어예. 인순이는 딴 제 못삽니다. 제 각시라예.
어머니 아버님! 인순이를 꼭 호강시켜 주낍니더. 지를 믿으주이소."
그 이후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다.
상이랄 것도 없이 차려놓은 형식적인 손님 밥상은 혁수의 발길질에 날아가고 아버지는 인순이의 뺨을 후리치고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인순이가 그렇게 하는둥 마는둥 얼렁뚱땅 시집을 가고 난 후 미순이의 결혼은 풀린 실타래처럼 맥없이 끝났다.
옆집 아지매의 조카가 우체국에 근무하는 참한 청년인데다 전문대도 나왔고
또 무엇보다 지차라 첫선에 오케이. 세 달만에 시집을 갔다.
사람의 팔자란 알 수 없는 법.
그렇게도 기대도 미련도 없이 제 갈 길을 떠났던 딸들은 이후
부모 마음을 한 번도 상하게 하는 법 없이 조용하고 알뜰하게 행복했다.
봄에 꽃피듯 살짝 다녀가고 나면 마루에 갈비나 과일,
그리고 하얀 봉투가 남겨졌고, 분내 솔솔 풍기는 딸들은 집안의 훈기였다.
아들처럼 사업을 한다고 폼을 잡는 일도 없었고 소박한 사위들은 백년손님이라
위세를 떠는 법도 없었다.
민수는 어머니의 얼굴에 표정을 찾아주는 속 깊은 여동생들이 고마웠다.
술상을 물리고 고스톱 판이 벌어졌을 무렵,
자리보존하고 누웠던 둘째 혁수 처가 부스스 나왔다.
미순이가 나셨다.
"언니, 몸조심하지. 속상해 하지말고 이자뿌고예.
마침 곰탕거리를 좀 가져 왔는데 언니하고 부모님하고 드세요.
빨리 회복하세요. 나는 올케 언니 주 분이 엄마 아버지 가까이 사니까 마음이 참 편해요.
언니들! 아버지 엄마 잘 부탁합니더. 예!"
그러자 약간 못마땅한 듯 앉아 있던 인순이도 거들었다.
"다른 집에는 시부보가 안 별나모 시누가 별나고 그래서 며느리 노릇하기가 참 힘들다 카는데,
솔직히 언니들 우리 부모님 같은 분들은 없어예.
물론 언니들 같은 사람들도 찾기 힘들지마는..."
인순이는 슬 이어나 검은색 프라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는 듯 했다.
"언니, 이거 선물입니다. 아버지가 일본에 갔다가 화운데이션을 사왔는데 언니들 드리고 싶어요. 고마버서."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훔치듯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예. 처음에는 부모를 많이 원망 했어예. 공부도 안 시켜주고 재산도 안주고 시집 갈 때도 섭하게 하고, 그런데 살다보니 부모님이 이렇게 살아 계시고 친정이라고 올 수 있는기 참 행복이라 깨달았어예.
큰언니 고생 안하고 사시다가 촌에서 농사짓기 힘들지예. 나중에 언니 우리 같이 큰
식당하고 삽시더! 힘내세요! 오빠 한 ...테, ...잘해 주세요. 흑흑"
분위기는 이순 썰렁해졌다.
"언니 와 이라노. 분위기 망치게. 인순 언니가 날마다 전화해 가지고 큰언니하고 오빠 걱정
하더마는, 요 와서도 그러네. 언니들 힘내시고 예.
인순언니, 식당 약속 지키라 잉?"
못들은 착하고 있던 민수와 혁수는 연신 감동한 듯 헛기침을 하며 고스톱에 열을 올리는 듯 했고
신경전을 벌이던 두 며느리는 슬며시 눈빛을 교환하며 환하게 웃었다.
저 멀리 가을 바람이 무리를 지어 달려왔다.
마루의 불빛은 밤을 새울 듯 밝았다.
[4-2]
옆집 도꾸는 민수네 뜰에서 흘러 나오는 훈기에 몸을 뒤척이다가
괜서레 헛울음 소리를 이 사이로 내어 보기도 한다.
때깔이 희끗해진 양은남비 바닥모양 울퉁불퉁한 달이 내려와
반질거리는 감나무 잎에서 반짝인다.
정암 문학에 대한 열정이요 아니면 모든일에 그리도 자상한게요? 하여간 한눈에 읽게 해 주니 참 수월 해 젔소 내도 컴맹에서 탈출 시켜 주시오. 주말에는 마누라랑 아 들이랑 즐겁게 지내 시오 행여 이 창 열어놓고 가족들 심심하게 하지마시고... 우리 문우들도 많이 웃는 날 되시길....
첫댓글 정암님 정리를 해 주시니 읽기가 훨 수월합니다 감사! 근디 a조 소설 참 질다
신춘문예로 가는 질이라서...^^
남 특허 도용해다 쓰는 심뽀는 어디서 배왔슴 껴! 이제야 A조 혼란이 수습되어 제대로 되는 것 같다. 좋아요. 야기는 우리 것 보다 못한 듯 한데 진도는 빨라서 좋다. A조 홧팅! 정암, egg수고 많슴 돠.
본디부터 심뽀가 좀 그랬소이다만...^^ 누구 의령촌에 갔다기에 살짝 했걸랑...그리고 야기는 좀 손질을 할려고 하고 있구먼요...그러니 길고 짧은 것은...^^* 아무튼 B조씨!..대단합니다.
호명님 갔다 - 같다 모방은 제 2의 창조라 했습니다 ㅎㅎ
egg..씨 말씀이 딱 맞는 말소리...^^
정암 문학에 대한 열정이요 아니면 모든일에 그리도 자상한게요? 하여간 한눈에 읽게 해 주니 참 수월 해 젔소 내도 컴맹에서 탈출 시켜 주시오. 주말에는 마누라랑 아 들이랑 즐겁게 지내 시오 행여 이 창 열어놓고 가족들 심심하게 하지마시고... 우리 문우들도 많이 웃는 날 되시길....
이~레 저~레 노닥거리 좀 한게지요. 왜그러시유...자상하면 뭐 좀 있능교? 개뿔도 없다구요...노트북 소지자도 컴맹이 있는감요...
컴맹이 되어 무슨일을 저지를 것 같아 조마조마 한마음 모를 낌니더.글쓰는것보다.간 태운건 곱절입니더... 어찌하다 다 날라가뿌고 허연 백지가 눈앞에 아른 거리 싸코......! 아이고 화요일 이네 ..저녁에 보입시더...
정암님 이유도 모르고 떡만 실컨 얻어 먹고 ... 옛날에 어떤이가 빈소에서 실컨울고 나서 누가 죽었노..^^, 한다드니 내가 그꼴이내 예.... 정말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선봉주자로서 수고 많았습니다.
할베조에서 응원 보냅니다 짝-짝-짝-, 소설도 재미(???)있지만 꼬리 글이 넘 재미있다. 할베들은 컴을 못해서 글을 못 올리나 봅니다. 문우님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