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 개태사지석불입상 | 보물 219호 | 충남 논산시 | 고려시대 |
개태사(開泰寺)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연산(連山, 지금의 논산시 연산면)
천호산(天護山, 원래이름은 황산)에 짓기
시작하여 23년 12월에 완공한 화엄종 사원이다.
개태사가 자리잡은 곳은
원래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신검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던
일리천(一利川) 전투의 주요한 전장이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나당연합군과 계백이 운명을 건 한판 승부를 벌였던
황산벌과도 인접하였다.
후삼국 통일 직후 후백제의 견훤이
황산(黃山,지금의 연산)의 작은 절에서 병으로 죽었는데,
이 절이 개태사자리라는 설도 있다.
태조는 후백제를 멸망시킨 후 이를
기념하고자 최후의 전승지 자리에 개태사를 세웠는데,
여기에는 후백제의 자취를 없애고,
후백제민을 위압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더 나아가 하늘의 도움을 입어 고려를 건국함으로써 전란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통일의 시대를 열어간다는 의미를
상징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하늘이 수호하셨다는’뜻의
산 이름인 천호(天護)와 ‘태평한 시대를 연다’는 뜻의절 이름인 개태(開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 절에는 나중에 태조의 초상화를 봉안한 진전(眞殿)이 세워져
왕실의 조상숭배를 통해 왕실을 보호하는데 있어 특별한 기능도
담당하였다.
고려가 홍건적과 왜구에게 시달렸던 공민왕 11년(1362)~12년에는 이인복(李仁復)을
개태사의 태조 진전에 보내어
그곳에서 천도와 환도의 길흉을 점치어 묻게 하였고,
고려 멸망 직전인 공양왕 3년(1391)에는 태조 진전에 제사를 지내고
옷과
옥대를 바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개태사(開泰寺)는 태조의 진전이 있어
왕실과 관련한 길흉을 점치고,
제사를 지냈을만큼 왕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던 중요한
사찰이었다.
철솥
여기 철확은 개태사를 대변하는 물건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밥을 짓는 솥인줄 알았는데 국을 끓이는 것이란다.
직경이 약 150cm쯤 될까?
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일제시대에 쇠붙이 공출이 있어 일본놈들이 가져다가 깨어서 사용하려 하였으나
밤새도록 웅웅거리며 울어대는 바람에 다시
돌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보존이 너무 허술한 것 같다.
기름칠이라도 해서 후손들도 볼수 있도록 해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