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 『에베소서 강해』, 제 2권 영적 화해
머리말
이 책은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주일 예배마다 연속적으로 전했던 설교들을 모은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화해 방식 - 오직 유일한 길을 강해하였고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또한 인간의 절망적인 궁핍과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경이를 보여 주며,
중간에 막힌 담을 헐어버리는 문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화목, 유대인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다른 모든 자들과의 화목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 에베소서 2장에는 개인과 세상을 위한 오직 유일한 소망이 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펼쳐 보여 주어 나아감에 따라서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 되고 하나님의 권속이” 된 모든 사람들은
기다리는 영광스런 소망에 대해서 누구든지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1972. 1.
D.M. 로이드 존스
제 1 장 서론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2:1)
- “또한 너희의 허물과---살리셨도다”2장이 “또한”이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1장과 2장 사이에는 연관이 있다. 이 위대한 에베소서 2장을 바르게 이해하려고 한다면
2장의 위치와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모든 서신들은 주로 첫 번째 부분은 교리적이고 두 번째 부분은 보다 실제적이다.
교리적인 대목은 언제나 하나의 논증이 갈파되어 있다.
우리는 논증에 대한 객관적인 윤곽을 포착한 다음에 세부 국면들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1장의 논증에 관해서 명확하지 못하면 이 2장의 논증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1장의 논증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1:10)
바로 이것이 에베소서의 중심주제이다.
사도는 이러한 단순한 진술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일을 하시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계속해 나간다.
1. 1:1-14
①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또한 하나님의 활동이라는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이것이 출발점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행동에 관심을 갖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다시 놓아 통일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 점은 즉각 우리로 타락의 교리로 돌아가게 만든다.
바로 그 타락을 통해서 분리가 되었고 모든 사물들이 그릇되어 나갔던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는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통일시키려는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망각하고 있는 일은 진실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알아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역사의 뒤안길에는 눈에 보이지 않은 이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세속 역사 뒤에는 이 영적인 역사가 있다.
여러분이 기독교회의 역사를 읽어 본다면, 기독교 역사가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져 나왔다면
한 세기도 못 되어 기독교회는 문을 닫았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창세 전에 계획하셨고 그래서 그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다.
②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자비에 전적으로 기인된 것이다.
전적으로 은혜에 속한 것이며, 모든 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6),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4)
우리가 기독교회에 함께 앉아 있다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했다는 것,
우리가 이 위대한 구원을 숙고하려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인 것이다.
③ 그 모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없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쳐 놓고서는 전혀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다.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그로부터, 그에 의해서 온다.
사도는 1:1-14까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15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십자가를 높이 세우셨지만,
우리가 거기에 등을 돌리고 하나님은 그것 없이도 우리를 축복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 사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7)
그 목적은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9-10)이다.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중심해 있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 명백해야 한다는 것은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이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3)
사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해놓으신 일이 무엇이며 우리에게 제공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하였다.
우리는 “죄사함”, 곧 용서를 얻었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후사의 놀라운 기업을 받게 된 것이다.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을 인쳐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확신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로 만드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것이 축복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축복은 신령한 복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여러 문제들과 시련과 환난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그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받은” 사람이다.
만일 그가 이 점을 깨닫고 거기에 하늘을 사모하며 땅에 있는 것이 아닌 위에 있는 것에 그의 애정을 쏟는다면,
그는 말로 할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한 영광으로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2. 1:15-23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이해하는 것과 그러한 일들에 관해서 명백한 관점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5-17)
그리스도인의 삶을 충만하게 살고자 한다면,
이 구원의 위대성, 구원의 영광을 영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임을 알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는 그것의 확실성을 알기 바라고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라고 말해 간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이 모든 것으로 즐거워하기를 바라고 있다.
여러분 자신을 바라봄으로부터 출발하지 말라.
이들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들에 자신을 던지라.
그의 부르심의 소망, 성도들 안에 있는 그의 기업의 부요,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등에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의 전능한 능력의 역사하심에 “따라서” 믿는다.
다시 말하면 그의 전능한 역사를 힘입어 역사의 결과로 믿게 된다는 말이다.
그는 그것을 교회의 차원에서 진술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머리의 능력이 온 몸에 퍼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떨어져 있거나 느슨하게 붙어 있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의 몸의 지체들이요 살과 뼈의 지체들이다.
그것은 하나의 유기적인 연합체로 그래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