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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100m 달리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간 탄환’을 가리는 경기다. 출발 총성이 울리고 10초 안팎에 결승점을 지나니 단숨에 승패가 결정되는 셈이다. 100m는 정말 ‘단숨의 레이스’일까?
"세계적인 스프린터들은 레이스 도중 숨을 마시지는 않되 적절히 내쉬는 방법을 많이 쓴다". 스타팅 블록에 자리 잡은 선수들은 "차렷" 구령과 함께 한껏 숨을 들이마셔 폐를 부풀렸다가 출발과 동시에 ‘훅, 훅, 훅’하고 짧고 빠르게 내쉰다. 6보쯤을 뛰는 동안 세 번 가량 숨을 뱉고 나면 결승점까지 일체의 호흡 없이 내달린다.요즘은 동·서양 선수를 막론하고 44~47보에 100m를 주파하는 주법이 일반적. 장 코치는 "100m를 무산소운동이라 부르는 이유는 체내의 산소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힘을 폭발시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레이스 중엔 폭발의 강도를 떨어뜨리는 ‘들이마시기’는 피해야 한다. 반면 숨을 내쉬는 것은 근육의 경직을 막고 내딛는 발과 리듬을 맞출 수 있어 중요하다.
릴레이는 육상 종목 가운데 유일한 단체 경기이다. 400m 육상 트랙을 4명이 바통(baton)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릴레이와 단거리 주자가 100m를 4번 뛴 기록 중 어느 것이 더 빠를까? 또 400m 릴레이는 400m 주자가 혼자서 뛴 기록과는 어떤 차이가 날까? 정답은 400m 릴레이 세계 기록이 37초40(1992년 미국의 칼 루이스·마이크 매시·데니스 미첼)으로 가장 빠르다. 남자 100m 세계 기록(9초72)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가 세계 기록으로 100m를 4번 달린다고 해도 400m 릴레이 주자들보다 1초54 늦게 결승점을 끊게 된다. 남자 육상 400m 세계 기록(43초18) 보유자인 마이클 존슨은 릴레이 팀보다 5초78이나 뒤지게 된다.
왜 그럴까. 릴레이에서는 2번째 주자부터는 달리는 상태에서 바통을 건네받고, 바통을 패스하는 순간에 양 주자가 팔을 뻗기 때문에 거리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팀 경주의 특성상 선수들의 심리적 흥분도가 높아지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 된다. 바통은 릴레이가 단체 경기임을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길이 30㎝, 둘레 12㎝의 바통은 보통 목재나 금속 등의 단단한 물질로 만들며, 둥글고 매끈한 바통의 속은 텅 비어있다. 바통 패스는 정해진 20m 구간의 ‘테이크 오버 존(take over zone)’에서 이뤄진다. 이 구역 밖에서 패스를 하거나 바통을 던져서 건네주면 실격 처리된다.
실격 여부를 따지는 기준은 ‘사람’이 아니라 ‘바통’이다. 바통을 받는 주자의 손에 처음 바통이 닿은 순간부터 주자의 손 안에 완전히 넘겨진 순간까지 바통이 테이크 오버 존을 벗어나면 안 된다. 릴레이 경기에선 ‘사람보다 바통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무조건 길고 탄성 좋은 수퍼 장대도 충분히 굽힐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
장대높이뛰기는 18세기 후반 한 독일 체육학자가 나무 막대를 사용해 1m 남짓한 높이를 뛰어넘으면서 시작됐다. 1950년대 들어서는 대나무가 등장했고 요즘의 장대는 탄소 코팅 처리한 첨단 유리섬유로 만들어져 탄성과 내구력까지 보강됐다. 경기의 핵심장비인 장대의 규격은 어떻게 될까.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길이 4m50 이상, 지름 3.5㎝ 이상의 제품을 쓴다. 그러나 육상연맹 규정에 따르면 장대는 재질·두께·길이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즉, ‘공인제품’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 이 종목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길고 탄성이 좋은 장대를 쓰면 기록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길고 탄성이 좋은 ‘수퍼 장대’는 에너지 전달과정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쓸 수가 없다. 선수는 40m 이상의 도약거리를 폭발적인 스피드로 질주해 장대를 박스에 꽂는 순간에 수평 에너지를 전부 장대에 실어 굽힌다. 휜 장대는 강한 탄성으로 선수에게 에너지를 돌려주고 선수는 이 힘을 이용해 허공으로 치솟는다. 따라서 장대를 충분히 굽힐 정도의 힘을 실을 수 없다면 수퍼장대는 무용지물이다. 남자세계기록(6m14)을 갖고 있는 전설적인 스타 세르기 붑카는 장대 길이만 6m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반 선수들은 같은 장대를 써도 붑카와 동일한 기록을 낼 수가 없다. 여성 스타 스테이시 드래길라(미국)는 이 종목에 대해 "처음엔 끔찍했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그는 "초심자들은 대부분 폴을 상자에 꽂는 순간 공포심에 질려서 자기 가슴에 찔러 버리고 만다"며 "코치와 함께 기나긴 시간 동안 훈련해야 하는 종목"이라고 했다.
92년 서울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 남자 1만m 결승에서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는 경주 내내 앞서 달리는 두 명의 케냐 선수 뒤통수만 보고 뛰었다. 결승선이 몇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자 게브르셀라시에는 폭발적인 스퍼트로 케냐 선수들을 따돌린 채 1위로 골인했다. 얼마나 약이 올랐던지 케냐 선수가 게브르셀라시에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쳤고 폭력을 행사한 케냐 선수는 실격 당했다.
육상의 중장거리 경주는 주력뿐 아니라 전략과 몸싸움에 능해야 유리하다. 특히 중거리 경주(800m·1500m)는 ‘육상의 격투기’로 불릴 정도로 격렬하다. 유럽에서는 각종 대회마다 1마일(1609m) 경주 종목을 따로 마련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800m는 오픈코스로 접어드는 120m 지점부터, 오픈코스로 시작되는 1500m는 출발선부터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선수들의 과격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이런 모습은 같은 나라 선수 두 명이 한 조에 포함되는 경우가 잦은 예선 경기에서 자주 목격된다. 두 명 중 한 명은 상대국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해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800m 한국 기록(1분44초14)을 보유하고 있는 이진일 현 국가대표 감독도 93년 경쟁선수의 스파이크에 발목을 찍혀 10바늘을 꿰매야 했다. 이 코치는 "중거리 경주를 하다보면 스파이크로 아킬레스건 부위를 찍히거나 팔꿈치로 가격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오리궁둥이는 경보의 숙명. 경보는 단순히 빨리 걷는 경기가 아니다. 경보 규정에는 ‘선수의 한쪽 발은 늘 땅에 닿아 있어야 하고, 앞쪽 다리는 지면에 처음 닿을 때부터 똑바로 설 때까지 곧게 펴져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앞다리는 늘 무릎을 굽히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의외로 까다로운 이 규정을 지키며 기록을 단축해야 하기 때문에 팔을 뒤흔들고 골반을 좌우로 흔들며 ‘오리 궁둥이’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경보 선수들의 숙명이다. 유연성 강화를 위해 훌라후프·허들식 점프 등의 훈련도 필수. 전 IOC 위원장인 브런디지는 "이 경기는 분만의 고통에 가까운 남자들의 운동"이라며 선수들을 위로했다. 선수들은 앞무릎을 구부리거나 두 발 모두 땅에서 떨어뜨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경보는 육상 경기 가운데 판정시비가 가장 많은 종목이기도 하다. 경보 심판원들은 선수들의 경기 방식이 규정을 깰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할 경우, 즉시 주의를 준다. 주의를 줄 때는 양면이 노란 ‘옐로 카드’를 해당 선수에게 보여준다. 만약 선수가 규정을 깬 것을 발견하면 ‘레드카드’로 경고를 주게 돼 있으며, 선수가 심판원 3명에게 경고를 받으면 실격 처리된다.
올림픽에서 경보는 남자 20㎞, 50㎞, 여자 20㎞ 등 금메달 3개가 걸려 있다. 1908년 런던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허들과 허들사이 일정 보폭으로 뛰어야 손으로 건드리면 실격… 발은 닿아도 돼
110m 레이스(남자)에 10대의 허들을 설치해 놓았다고 100m 달리기와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허들은 오히려 체조와 마찬가지로 고난도 훈련을 요하는 ‘기술종목’에 가깝다. 110m 남자 허들은 총성과 함께 13.72m를 달려 나간 뒤 9.14m 간격으로 놓여 있는 1.067m 높이의 허들 10대를 뛰어넘으며 달리는 종목이다. 마치 패션모델들이 무대 상황을 머릿속에 입력한 뒤 ‘워킹’하는 것처럼, 허들 선수들은 각 허들 사이의 9.14m를 일정한 보폭으로 뛰기 위해 치열하게 연습한다. 만약 보폭이 일정하지 않으면 허들을 넘기 전에 한 발을 더 뛰어야 하거나 덜 뛰는 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기 때문. 보폭 조정은 허들 선수들에게 필수 훈련 과목이다. 다음으로 선수들이 신경 쓰는 것이 허들 넘기.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게 스치듯 넘어가는 기술이야말로 기록을 좌우하는 결정적 승부처가 된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허들을 탄다’고 표현한다. 한국 남자 110m 기록(13초56)을 보유한 이정준(안양시청)의 ‘허들 타기’를 지켜보면, 물속에서 헤엄치던 날치가 순간적으로 물 위로 비상하듯 자연스럽게 허들을 넘어간다. 손으로 허들을 쳐서 넘어뜨리면 실격이 되지만, 넘다가 발로 넘어뜨리는 것은 허용이 된다. 발로 허들을 치는 그 짧은 순간만큼 자신의 기록에 손해가 되기 때문. 허들이 생겨난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양치기 목동이 울타리를 뛰어넘는 행위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허들 높이 1.067m도 전통적인 목장 울타리 높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허들은 1회 아테네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으나 2회 파리 올림픽 때는 시설 부족으로 부러진 전신주를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칼 루이스ㆍ마이크 포웰 등 스타급 선수 하늘에서 다리 휘젓는 '히치킥' 사용해
1984년 미국 오레곤주립대학의 한 멀리뛰기 대표선수가 도약 후 구미호처럼 한 바퀴 공중제비를 돈 뒤 착지하는 요상한 방법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이 멀리뛰기는 일명 ‘공중회전뛰기’로 이미 1974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의해 위험하다는 이유로 금지된 방식이었다. 이젠 더 이상 ‘공중회전뛰기’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선수들은 보다 진화된 방식으로 뛴다. 슬로 모션으로 하늘에서 다리를 휘저으며 비행하는 미국 육상스타 칼 루이스의 모습에서는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그는 마치 허공에 계단이라도 놓은 듯 힘차게 공기를 박차고 날아올랐다가 착지한다. 육상에서는 이런 멀리뛰기 동작을 히치킥이라고 한다. 루이스를 비롯해 세계기록(8m95) 보유자인 마이크 포웰(미국) 등 정상급 선수들이 모두 히치킥을 사용했다. 히치킥은 발구름하는 순간의 속도를 착지 순간까지 유지시켜 준다. 그래서 체공시간도 0.8초 정도로 짧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에 선수는 3.5걸음이나 다리를 휘젓는다. 전문가들은 물리적으로 4걸음까지 뛰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물론 히치킥만으론 부족하다. 멀리뛰기의 최고기록은 100m 스프린터의 질주 속도와 맞먹는 초속 10m 이상의 도움닫기 속도와 20도 전후의 도약각이 더해져서 만들어진다. 히치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 선수들은 3.5히치킥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한때 LA올림픽 결승 진출자까지 배출했지만 현재는 대부분 밋밋한 젖혀뛰기에 그치고 있으며, 아시아 중위권에 머물러있다.
배는 하늘, 등은 땅 향하는 '배면뛰기' 무게중심 낮게 유지하면서 높게 넘어
1968년 10월 20일. 미국 오리건주립대 학생 딕 포스베리가 멕시코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높이뛰기 종목에 출전, 2m24를 넘자 8만 관중은 경악했다.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폼으로 바를 넘어 우승했기 때문이다.
포스베리 이전에 선수들은 양쪽 발 사이에 바를 끼우듯이 뛰는 가위뛰기, 비스듬히 도움닫기를 해 바 위에서 몸을 옆으로 굴리는 롤오버, 배부터 바를 넘는 벨리롤 오버 방식 등을 택했다. 하지만 포스베리는 배를 하늘로, 등을 지면으로 향하며 바를 뛰어넘었다. 포스베리의 이름을 따서 ‘포스베리 플롭(배면뛰기)’이라고 불린 이 방식은 곧 정통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이후는 거의 모든 높이뛰기 선수들이 이 방식으로 바를 넘고 있다. 배면뛰기 자세가 다른 자세들을 누른 요인은 무엇일까.
높이뛰기는 높은 바를 넘어야 하는 경기다. 높은 바를 넘으려면 높이 도약해야 하고, 더 높이 도약하려면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만일 무게중심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높은 바를 넘을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인 폼이 될 것이다. 등과 허리, 다리를 뒤로 젖히는 배면뛰기 자세는 공중에서 몸이 만드는 U자 모양의 빈 공간에 무게중심이 생긴다. 이 무게중심은 다른 높이뛰기 자세들에서보다 10㎝ 정도 낮게 형성되면서도 같은 높이를 넘을 수 있다. 배면뛰기는 자신의 동작을 스스로가 돌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선수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익숙해지면 가장 편한 자세가 된다.
100mㆍ멀리뛰기 등 뒷바람에 민감해 평균초속 2m 이내일 때만 기록 인정
1964년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100m 달리기. 미국대표로 나선 로버트 헤이즈는 준결선에서 9초9를 기록, ‘마(魔)의 10초벽’을 돌파했다. 그로부터 34년 후인 1998년 6월 뉴올리언스 미국선수권대회에서는 모리스 그린이 9초84로 당시 세계신기록(도너번 베일리·캐나다)과 타이를 이뤘다. 하지만 두 기록 모두 인정받지 못했다. 뒷바람이 강하게 불었기 때문이다. 그린이 레이스를 펼쳤을 때는 뒷바람 초속이 3.3m였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1936년 총회에서 100m·200m·110m허들·멀리뛰기·삼단 점프 등 바람에 민감한 종목의 기록은 뒷바람 평균 초속이 2m 이내일 때만 공인하기로 결정했다. 초속 한계를 뒷바람 2m로 둔 것은 당시 계측단위가 10분의 1초였고, 뒷바람 2m일 때 남자는 0.1초, 여자는 0.12초 정도 효과를 본다는 연구결과를 근거로 했기 때문이다. ‘뒷바람 2m’ 제한규정은 지금까지 70여년 가까이 적용되어 오고 있지만 0.01초까지 계측 가능한 현재엔 논란의 여지가 많다. 맞바람과 뒷바람의 기록 차이뿐 아니라 뒷바람이 0.5m일 때와 2m일 때 기록도 다르게 측정되기 때문이다. 당시 남자 100m 세계신기록(9초78·미국 팀 몽고메리·2002년 9월15일 프랑스 파리세계선수권)은 뒷바람 초속이 딱 2m였고, 2위 기록인 모리스 그린의 9초79(1999년)는 바람이 초속 0.1m에 불과했다. 바람이 같은 조건이었다면 세계신기록 보유자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모든 기록을 ‘풍속 제로(0)’상황으로 환산하는 방법이 연구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 100% 정확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어 아직 연구중으로만 남아 있다. 기록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2m 제한 규정이 존속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가슴부분 결승점 통과순으로 승부 1000분의 1초까지 가려 희비 속출
육상 100m 달리기를 볼 땐 어지간해서 눈을 깜박이지 않는 게 좋다. 한 번 감았다 뜨는 사이 상황이 끝나는 일이 숱하기 때문. 96애틀랜타올림픽 여자 100m 결승에선 게일 디버스(미국)와 멀린 오티(자메이카)가 똑같이 10초94로 골인했다. 100분의1초까지만 인정하는 수영 경기였다면 둘은 나란히 금메달을 걸었을 것이다. 실제로 2000시드니올림픽 남자 자유형 50m 결승에선 미국의 앤서니 어빈과 게리 홀 주니어가 21초98로 공동 우승했다. 하지만 육상의 경우 사진 판독 장치를 통해 더욱 정밀하게 승패를 가린다. 그 결과 디버스(10초932)의 상체가 오티(10초937)보다 1000분의 5초 먼저 들어왔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머리, 목, 팔, 다리, 손, 발을 제외한 동체(胴體) 부분이 결승점에 닿아야 한다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규정에 따랐다. 선수들이 피니시라인 부근에서 가슴을 앞으로 쭉 내미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디버스는 199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세계선수권 100m 결승에서 오티와 함께 10초82로 골인했다가 사진 판독에서 1000분의 1초 차로 이긴 데 이어, 올림픽에서도 극적인 승리를 거둬 환호할 수 있었다. 반면 오티는 지독한 불운에 고개를 떨궜다.
마라톤 등 로드 레이스의 경우 100분의 1초 단위로 계시하되, 공식 기록은 초 단위까지다. 2시간10분9초11로 들어왔다면 다음의 초 단위인 2시간10분10초로 기록하는 식이다. 96올림픽 마라톤에선 조시아 투과니(남아공)가 2시간12분36초, 한국의 이봉주가 2시간12분39초로 1·2위를 했다. 마라톤 풀코스인 42.195㎞에서 이 3초 차이를 100m로 바꿔 계산하면 0.007초 차이에 불과하다.
현재 최고 9초69… 신기록과의 싸움 계속돼 - 인간은 100m를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을까.
현재까지 최고 속도로 기록된 사나이는 우사인볼트. 지난 2008년 8월 9초69에 결승선을 끊었다.
사실은 우사인볼트보다 더 빨리 달린 사나이도 있다. 카리브해 소독립국 바베이도스 출신 오바델 톰슨은 1996년 미국에서 열린 한 지역대회에서 9초69를 기록했다. 하지만 뒷바람 때문에 세계기록으로 공인되지는 못했다. 9초7대에서부터 8초대에 이르기까지 100m에 대한 인간 한계 논의는 분분하다. 9초79를 기록한 모리스 그린은 "9초76까지 기록 단축이 가능하다"며 신기록 경신에 집념을 불살랐고 그린의 코치 존 스미스는 "9초6까지 뛸 수 있다"고 말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수년 전 일본의 한 스포츠 과학자가 역대 100m 남자 선수들의 장점만을 뽑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9초50까지는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동물 중에서 가장 빠른 치타는 시속 100km(100m를 3초60에 주파하는 속도)로 달린다. 인간은 9초50을 이루더라도 어차피 치타 속도의 2분의 1 수준에도 멀리 못 미친다. 인간은 그 한도 내에서 0.01초와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 싸움을 포기한 듯 보인다. 한국은 지난 1979년 멕시코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서말구가 기록한 10초34를 30여년이 지난 2009년 9월 현재 깨지 못하고 있다.
신기록 도우미로 처음부터 치고 달려, 컨디션 좋을땐 경쟁자로… 우승하기도
마라톤이나 중장거리 달리기에서 이기려면 처음부터 앞으로 나가는 것은 금물이다. 교과서에는 "자기 나름대로의 페이스를 유지하되, 2~3위에 위치하라"고 써 있다. "전반은 기계적으로, 긴장을 푼 상태로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한다. 승부는 후반 결정적인 순간에 건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초반 ‘늦게 뛰기 신경전’을 없애고 신기록을 가능케 하는 것은 희생적으로 처음부터 치고 나가는 ‘페이스메이커(pace maker)’다. 페이스메이커는 1880년대, 중거리에 속하는 1마일(1.6㎞) 경기에서 유망한 선수의 동료들이 기록을 위해 도움을 준 데서 유래했으며 이후 장거리와 마라톤으로 확산됐다. 유능한 페이스메이커는 대회조직위나 개인이 고용 경쟁을 벌일 정도로 인기다. 사실 페이스메이커가 우승까지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2시간 6분대에 결승점에 들어갈 수 있도록 30㎞까지 1시간30분에 맞춰서 끌어 달라"는 식의 지시를 받지만 컨디션이 좋으면 그 순간 우승 경쟁자로 돌변한다. 2001년 10월 시카고 마라톤에서 터갓의 페이스메이커 벤 키몬디우는 끝까지 달려 페이스메이커 계약금 7500달러와 함께 우승 상금 9만달러를 챙겼다. 한국은 선수층이 얇아 국제대회에서 개인을 위한 페이스메이커를 쓰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머ㆍ포환등과 달리 도움닫기로 가속, 육상 던지기종목 중 가장 멀리 날아가
창·원반·해머·포환 등 육상의 던지기 종목 가운데 가장 비거리가 큰 종목은 무엇일까.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창은 보통 원반보다 20m 정도 더 날아가고, 해머보다는 10여m 더 날아간다. 남자 세계 기록으로 볼 때도 창 던지기가 98.48m로 원반(74.08m), 해머(86.74m), 포환(23.12m)보다 월등히 멀리 나간다. 이유가 뭘까. 해머나 포환이 2m13, 원반은 2m50 안팎의 서클 안에서 던져야 하는 반면, 창은 30여m의 도움닫기를 허용하고 있어 가속이 붙기 때문. 또 남자 일반 기준으로 창의 무게는 800g에 불과해 해머(7.26㎏), 원반(2.0㎏), 포환(7.26㎏)의 11~40%에 지나지 않는다. 창은 가볍고 긴 데다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으로 높게 날기 때문에 공기의 저항을 적게 하기 위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맞바람이 불 때는 28~29도로 창 끝을 낮춰 던지고, 뒷바람이 불 때는 32~33도로 창 끝을 높인다. 선수들이 기록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술은 도움닫기 단계부터 시작된다. 마치 야구나 골프에서 선수가 허리를 축으로 상체를 회전시키면서 생기는 힘이 무릎→허리→가슴→팔꿈치→손의 순으로 전해지며 임팩트를 내는 것처럼, 창던지기 선수들도 도움닫기의 마지막 스텝에서 왼발이 땅에 닿는 순간 왼발과 허리를 축으로 회전력을 만든다. 이 같은 회전력이 무릎→허리→가슴→팔꿈치→손의 순으로 조금씩 늦게 전해지기 때문에 ‘채찍 효과’라고도 불린다. ‘채찍 효과’는 손목의 강한 스냅에 연결돼 창을 멀리 날린다. 창을 던질 때의 속력은 도움닫기의 가속력이 25%, 창을 뿌리는 힘이 75% 정도 결정한다. 김기훈 국가대표 창던지기 감독은 "창던지기는 기계역학적 요소들을 대부분 반영하고 있어 ‘가장 완벽한 투척 경기’로 꼽힌다"고 말했다.
폭발적 근력 중요한 단거리는 근육질, 지구력 필요한 장거리는 마른편
‘인간탄환’으로 불리는 100m달리기 선수 모리스 그린(미국)은 1m75의 키에 체중이 79㎏인 울퉁불퉁 근육질 체격이다. 반면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의 체격(1m67·56㎏)은 가냘파 보일 정도로 완전히 딴판이다. 울퉁불퉁 근육질과 ‘앙상하다’ 싶을 정도로 왜소하다. 왜 육상 단거리 선수와 장거리 선수들 간에는 그런 차이가 있는 걸까? 운동 성격에 따라 사용되는 근육의 종류와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장거리 선수와 단거리 선수는 에너지의 소비 방식이 다르다. 단거리 선수의 경우 몇 초 안에 폭발적인 힘을 쏟아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큰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큰 근육을 키워내야 하고 당연히 체격이 커진다. 인체의 골격 근육은 크게 두 가지. 속근섬유(速筋纖維)와 지근섬유(遲筋纖維)로 나뉜다. 단거리 선수는 빨리 수축하면서 수축력도 강한 속근섬유가 발달한다. 속근은 100m달리기 선수처럼 무산소성 종목의 선수들에겐 꼭 필요한 근육이다. 단거리 선수들이 웨이트 운동을 통해 근육을 크게 하려는 이유도 ‘근력은 근육의 횡단면적(가로로 자른 면의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반면 마라톤 같은 장거리의 경우 수축력이 강하지 않지만 오래 수축운동을 해도 피로를 느끼지 않는 지근섬유가 발달한다. 장거리 선수들에겐 순간 근력보다는 지구력과 심폐 기능이 더 중요하다. 오랜 시간 달릴 때 자신의 몸무게도 결국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근대올림픽 초기엔 중장거리 제한해, 현재는 23개 종목서 '우먼파워' 자랑
지금은 ‘단거리의 여왕’ 매리언 존스(미국), ‘마라톤 여제’ 폴라 래드클리프(영국)와 캐서린 은데레바(케냐)와 엘레나 이신바예바 등 스타들이 즐비하지만, 올림픽 육상에 참여하기 위해 여성들은 험난한 역사를 밟아야했다. 근대 올림픽 초기엔 여성들에게 육상의 문호가 제대로 개방돼 있지 않았다. 1900년 파리 올림픽때부터 여자 선수들이 테니스 등 일부 종목에 참가하기는 했지만, 여성들이 육상 경기에 본격적으로 참여한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때부터다.
당시 여자 육상은 100m, 800m 달리기와 높이뛰기, 원반던지기, 400m 릴레이 등 5개 종목이 고작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 대회 여자 800m 경기에서 결승점에 들어선 여자 선수 몇명이 쓰러지는 바람에 "여자들에게 중장거리는 가혹하다"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관계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 사고로 ‘여자 달리기는 200m까지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1960년 로마 올림픽때까지 여자 800m가 중단됐다. 여성의 선거권처럼 육상에서 여권을 신장시킨 것도 여성의 힘이었다. 1921년 프랑스의 미류어 부인이 국제여자스포츠연맹을 제안했고 이듬해 파리에서 1회 국제육상경기대회를 개최한 이래 1934년까지 4년마다 대회를 개최했다. 여성에게 다소 배타적이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이 같은 움직임을 의식해 1932년 LA올림픽 여자 종목에 80m 허들과 창던지기를, 1948년 런던 올림픽부터 멀리뛰기와 포환던지기를 포함시켰다. 여자 마라톤이 올림픽 종목에 포함된 것은 1984년 LA올림픽부터. 현재 여자 육상 올림픽 종목은 남자 종목에서 체력 소진이 심한 50㎞ 경보만이 빠진 23개다.
대회마다 거리 들쭉날쭉… 여건도 제각각, 1908년 런던올림픽때부터 42.195km 달려
마라톤은 왜 하필 42.195㎞를 달리는 것일까. 40㎞나 43㎞를 달리면 계산도 쉬울 텐데..
1896년 근대올림픽 제1회 아테네대회에서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마라톤은 그리스 마라톤 평야에서부터 아테네의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달렸다. 그리스 전사 필리피데스가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서 달린 그 길이다. 이 때의 거리는 후일 실측해 본 결과 36.75km. 이후는 대회 개최지 여건에 따라 거리가 들쭉날쭉했고 보통 40㎞ 전후를 달렸다.
그러다가 마라톤 경기의 거리를 일정하게 통일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 때 현실화됐다. 출발지인 윈저 궁전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거리를 실측한 결과 42.195㎞였고 이것이 향후 마라톤 코스의 거리가 된 것.
마라톤은 기온과 습도, 바람 등의 여건이 대회마다 다르고 거리도 오차가 있기 때문에 다른 육상 종목 기록이 갖고 있는 엄밀성은 없다. 그래서 마라톤에서는 ‘신기록’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최고 기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코스 거리, 출발지와 결승점 간 표고차, 출발지와 결승점 간 직선거리 등을 규정함으로써 나름대로 기록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 마라톤 코스는 42.195㎞ 이상이어야 하며 계측 허용 오차(전체 거리의 0.1%)인 42m만큼 늘어나는 것은 허용되고 있다. 출발지와 결승점이 다를 때, 결승점 고도가 출발지 고도보다 42m 이상 낮아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내리막의 도움으로 기록이 부당하게 좋아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또 두 지점 간 직선거리가 42.195㎞의 50%인 21.047㎞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뒷바람의 도움으로 기록이 좋아질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서다.
구멍파기 대신 1929년 공식대회 첫 등장, 그 이전엔 서거나 웅크린 자세로 스타트
육상 단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구 중 스타팅 블록(starting block)이 있다. 스타팅 블록이 처음 공식 대회에 등장한 것은 1920년대 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의 육상 선수 조지 심슨이 1929년 6월 8일 스타팅 블록을 사용해 100야드 세계 신기록(9초4)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심슨이 사용한 스타팅 블록은 남가주대학(USC)의 유명한 육상 코치 딘 크롬웰 씨가 고안한 것으로 나무로 만들었으며 초기엔 ‘니콜슨 블록’이라고 불렸다. 그럼 스타팅 블록이 등장하기 이전엔 선수들이 어떻게 스타트를 했을까? 초기엔 그냥 선 채 출발했다. 당연히 기록이 좋을 수가 없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남자 100m 우승기록은 12초다. 그 다음에는 크라우칭 스타트(crouching start)라고 부르는 웅크린 자세로 출발을 했으며, 1900년대 이후엔 땅에 발판용 구멍을 파고 스타트를 했다. 스타팅 블록은 이 발판용 구멍 대신 고안된 것. 하지만 스타팅 블록은 등장하자마자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당시 미국의 100야드 챔피언으로 조지 심슨의 라이벌이었던 프랭크 위코프는 "스타팅 블록은 뻥(bunk)"이라고 비하했다. 또 당시에는 대부분 인공적인 제품의 사용을 반대하는 분위기여서 미국 육상 연맹은 전미선수권대회에서의 스타팅 블록 사용을 금지했다. 스타팅 블록은 이후 꾸준한 개량과 발전을 거쳐 1948년 런던 대회 때 처음 올림픽에 소개됐다. 이때는 초기 목재에서 벗어나 철제가 사용됐다. 그래도 기록은 쉽게 좋아지지 않았다. 스타팅 블록 없이 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 100m 우승자 제시 오언스의 기록(10초3)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와서야 로버트 헤이스(10초05)에 의해 깨졌다.
핀란드 누르미 중ㆍ장거리 5관왕 '수퍼맨', 美 루이스, 35세 나이로 멀리뛰기 4연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육상 선수는 누구일까. 위대함에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다관왕’을 기준으로 하면 3명으로 압축된다. 1924년 파리올림픽 5관왕 핀란드의 파보 누르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4관왕 미국의 제시 오언스, 1984년 LA올림픽 4관왕 칼 루이스가 그들이다.
파보 누르미는 1924년 7월 10일 1500m와 5000m에서 연속 금메달을 땄다. 이틀 뒤에는 폭염을 뚫고 크로스컨트리 개인 및 단체 부문을 석권했으며, 체력이 바닥난 다음날 3000m마저 제패해 ‘수퍼맨’이란 칭호를 들으며 5관왕에 올랐다. 누르미는 1920년 벨기에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1만m와 크로스컨트리 개인·단체전을 휩쓸어 다시 3관왕에 올랐고,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1만m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했다. 3개 대회에서 금메달 9개를 따낸 셈이다. 크로스컨트리는 1928년부터 올림픽에서 제외됐고 이후 다관왕은 주로 단거리에서 나왔다. 미국의 제시 오언스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100m, 200m, 400m계주, 멀리뛰기 등 4개 종목을 휩쓸었다. 오언스는 멀리뛰기 경기 마지막 시도에서 8m13을 넘어 금메달이 유력시되던 독일 선수를 제치고 우승함으로써 인종 우월주의에 빠져 있던 히틀러의 코를 납작하게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미국의 칼 루이스는 48년 전의 오언스와 똑같이 100m와 200m, 400m계주, 멀리뛰기를 휩쓸었다. 88 서울올림픽 100m와 멀리뛰기, 92년 바르셀로나 400m계주와 멀리뛰기에서도 우승한 루이스는 96년 35세의 나이로 애틀랜타 올림픽 멀리뛰기에서 다시 우승해 멀리뛰기 4연패를 이뤘다. 금메달 9개를 목에 건 루이스는 1999년 국제육상경기연맹에 의해 ‘20세기 최고 남자 육상 선수’로 선정됐다.
남자 100m 100년 동안 2초31단축, '인간새' 붑카 가장 많이 경신한 셈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이 열린 지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인간은 올림픽 육상 종목에서 기록을 얼마나 단축했을까. 제1회 올림픽부터 있던 종목은 100m 400m 800m 1500m 110m허들 높이뛰기 멀리뛰기 세단뛰기 장대높이뛰기 투포환 원반던지기 마라톤 등 12개 종목. 이 중 육상 남자 100m는 12초0에서 9초69로 단축됐다. 100년 만에 2초31을 단축했으므로 1년에 0.231초씩 단축한 셈이다. 마라톤은 2시간58분50초에서 2시간09분21초로 42분29초 단축됐다. 1회 아테네 마라톤 코스 거리는 36.75㎞였으므로 실제로는 더 많이 줄어든 셈이다. 멀리뛰기는 6m35에서 8m90으로 2m55 늘었다. 400m는 54초2에서 43초49로, 800m는 2분11초0에서 1분42초58로, 1500m는 4분33초2에서 3분32초07로 단축됐다. 110m허들은 17초6에서 12초95로 세단뛰기는 13m71에서 18m09로 경신됐다. 가장 많은 기록 경신을 이룬 종목은 장대높이뛰기다. 장대높이뛰기는 1회 대회 때 3m30을 넘었으나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때는 5m92로 79%가 신장됐다. 세계 최고기록인 세르게이 붑카의 6m14를 적용하면 86%가 경신된 셈이다. 이는 인간 육체의 능력에 과학 발전에 따른 장대의 성능 신장이 더해진 덕분이다. 처음에는 장대로 나무가, 그 다음에는 대나무가 사용됐으나 요즘은 탄소 코팅 처리한 첨단 유리섬유로 만들어져 탄성과 내구력까지 보강됐다. 이 밖에 투포환이 11m22에서 22m47로, 원반던지기는 29m15에서 69m40으로 크게 늘었으나 초기에는 포환이나 원반의 무게 등이 표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록 경신의 의미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기원전 708년. 제18회 고대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돌이나 청동으로 된 물건을 쥐고 앞을 향해 힘껏 던졌다. 무게 2~6㎏, 지름 21~34㎝ 정도의 이 물건은 원반. 원반던지기가 스포츠의 이름을 걸고 역사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당시 함께 등장한 종목은 창던지기와 레슬링 등. 전쟁터에서 찌르고, 던지고, 뒤엉켜 싸우며 익혔던 전법들이 그대로 스포츠로 녹아든 것이다. 원반이 현재와 같이 지름 22㎝, 무게 2㎏ 정도(남자기준)로 표준화된 것은 1907년. 고대와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예전엔 단일 재질이었다면 현재는 나무로 만든 뒤 테두리만 쇠로 둘러싸는 점이 다르다. 2.5m 지름의 원 안에 들어가 180도 혹은 360도 회전해서 던지는 방법은 1926년 미국의 클라렌스 하우저가 고안해냈다. 선수들은 원 안에 들어가 왼발을 축으로 턴을 하면서 ‘원심력’을 이용해 강하게 던진다. 이전까지는 그냥 선 채로 돌팔매질을 하듯 팔을 몇 번 휘저은 뒤 내던지는 방법이었다. ‘하우저’ 기법은 던지는 스타일에 따라 미국 선수의 이름을 따서 ‘맥 일친스’와 ‘포웰’ 두 가지로 분류된다. ‘맥 일친스’ 스타일은 양 발을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벌린 뒤 회전 반경을 되도록 크게 해 원심력을 최고로 높이는 방법이다. 허리가 강하고 아담한 체격의 선수들이 주로 이용한다. 근력이 좋은 유럽 선수들에게 각광받는 스타일은 ‘포웰’로, 원은 작게 돌면서 체중을 어깨에 힘껏 싣는다. 하반신 힘이 좋고, 심폐능력이 강한 선수들에게 유리한 방법이다. 지난 86년 74.08m의 세계 신기록을 작성한 독일의 위르겐 슐트가 포웰 스타일의 애용자로 알려져 있다. 회전부터 던지기까지 이 모든 동작을 하는 데 1초가 채 안 걸린다. 원반던지기는 그만큼 폭발적인 순발력이 필요한 종목이라는 설명이다.
전쟁 중 병사들 돌던지기 경기서 유래, 몸 180도 돌리는 ‘오브라이언 법’ 이용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는 트로이 점령 중에 군사들이 돌 던지기 경기 한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다. 17세기에 영국군은 뇌관이 제거된 포탄 던지기 경기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투포환이 1896년 제1회 근대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실시된 것은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 경기장 규격이 없던 투포환은 1800년대 중반, 사방 2.135m의 정사각형에서 던지는 것으로 확정됐다. 그러다가 1906년 지름 2.135m의 원으로 대체됐다. 들쭉날쭉하던 포환의 무게는 16파운드(7.257㎏)로 고정됐다. 투포환의 기록이 급격히 향상된 것은 195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 1학년생 패리 오브라이언은 지름 2.135m의 원 반대쪽에서 등을 지고 있다가 원을 가로질러 던지기 직전 몸을 180도 돌리는 방법을 고안했다. 몸을 90도 돌린 채 던지기를 시작했던 이전 방법에 비하면 혁명적인 시도였다. 오브라이언은 이 방법으로 1952년 헬싱키에서 17.41m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오브라이언은 18m 벽을 넘어 1956년에는 19m 벽까지 깼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는 ‘1회전 투법(投法)’이 선보인다. 197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소련의 바리슈니코프는 원반을 던지듯이 몸을 한 바퀴 돌리며 포환을 던졌다. 바리슈니코프는 이 대회에서 19.01m를 기록하면서 3위에 그쳤으나, 1976년에는 22m를 던져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하지만 바리슈니코프의 방법은 회전을 하면서 발막음대(스토퍼)를 넘을 우려가 많은 등 고도의 숙련이 요구되기 때문에 아직은 오브라이언 투법이 더 성행하고 있다. 1회전 투법은 한국의 일부 대학 선수들이 시도하고 있으며 중국 선수들이 4~5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번주자 스타트 좋고 곡선주로에 강해야, 부드러운 바통 교대 승부 최대 관건
육상의 유일한 단체경기가 릴레이다. 특히 네 사람이 이어달리는 400m 릴레이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선수들 간의 팀워크가 어우러져 100m·200m레이스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400m 릴레이는 곡선-직선-곡선-직선 주로를 번갈아 달리기 때문에 주자별로 특성이 다르다. 첫 번째 주자는 스타트가 좋고 곡선주로에 강해야 한다. 2번 주자는 직선코스에 강해야 하며, 바통을 건네받는 구간보다 10m 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한 번 가속이 붙은 뒤 그 스피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3번 주자는 곡선주로에 능해야 하고, 마지막 4번 주자는 마무리가 좋고 대담성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빠른 선수를 2번 주자로 기용하는 게 보통이지만 전략에 따라 상대팀 주자가 약한 3번에 놓거나, 승부를 결정짓는 4번 주자로 기용하기도 한다. 400m릴레이 승부를 가르는 또 하나의 요인은 팀워크다. 정해진 20m 길이의 구역 내에서 속도를 최대한으로 유지하면서, 톱니바퀴 맞물리듯 부드럽게 바통을 교대해야 한다. 만약 각자의 보폭과 팔놀림 등을 일치시키는 사전훈련이 없으면 후발주자가 바통을 받을 때 뒤를 돌아보게 돼 그만큼 속도가 떨어지게 된다. 1번 주자 오른손, 2번 주자 왼손, 3번 주자 오른손, 4번 주자 왼손 등 바통을 건네주고 받는 손이 정해진 것도 서로 스텝이 엉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같은 달리기 실력이라도 바통 교대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기록이 2~3초 정도 차이가 난다. 400m릴레이 세계 최강국 미국은 이 종목이 도입된 1912년 이후 20차례 올림픽대회에서 15차례나 우승했지만 동료 간 호흡이 안 맞아 3차례나 실격패를 당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미국은 너무 속도를 내다 교대구간을 지나치는 바람에 예선서 실격을 당했었다.
충격흡수 좋고 적당한 반발력 갖춰야, '짝발' 이봉주 맞춤화 2억원 들여 개발
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당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아베베 비킬라. 그는 맨발로 42.195㎞를 달려 아프리카 대륙에 첫 올림픽 메달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제 맨발로 마라톤을 뛰는 선수는 없다. 인간의 발은 전체 뼈 가운데 4분의 1에 해당하는 52개의 뼈가 축을 이루고 있고, 214개의 인대와 60개의 관절로 구성되어 있는 아주 민감한 부분이다. 과학자들은 착용성, 경량성, 기능성 등 세 가지에 중점을 두고 마라톤화를 개발한다. 일반 구두의 무게는 800g 안팎. 반면 마라톤화는 지난 96년 225g에서 98년 156g으로 크게 줄었고, 최근 일본에서는 110g대의 제품까지 개발돼, 그야말로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의 피터 카바나 박사는 "신발이 100g 더 무거우면 마라톤 풀코스에서 전체 에너지의 1%가 더 소요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약 1~2분 정도 기록에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하지만 무작정 가볍게 만드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땀을 잘 배출하고, 발에 전해지는 충격을 효과적으로 분산시켜야 한다. 특히 마라톤화의 경우 무조건 충격을 흡수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반발력을 갖춰야 한다. 편안한 착용감도 경기력과 직결된다.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는 ‘짝발’이다. 왼발이 248㎜, 오른발이 244㎜로 4㎜의 차이가 있다. 게다가 약간 평발. 그는 예전엔 일반 시판되는 마라톤화를 신고 뛴 까닭에 발톱이 빠지고, 물집이 잡혀 고생을 했다. 하지만 ‘맞춤 마라톤화’를 신은 뒤론 그런 고통에서 해방됐다. 이봉주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할 때 신었던 마라톤화의 가격은 순수제작비만 9200만원. 거기에 연구개발비까지 포함하면 2억원이 넘었다.
http://www.daegu2011.org/pages/sub.jsp?menuIdx=7
첫댓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