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슬로우 시티 창평(昌平)여행
슬로우시티(Slow Sity)란?
바쁜 일상을 벗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면서 반박자 느림의 미학을 추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을 선정한 것이다. 천년의 역사와 선비들의 기개, 그리고 소중한 고풍문화의 산실로 새롭게 부각된 창평 고을로 떠나보자. 이곳엔 사색과 향수가 깊게 배인 고을이다.
고매한 선비의 기상이 서린 천년고을
여행지는 계절마다 나름대로의 매력과 유혹을 지닌다.
사색과 어린 시절 고향집 같은 향수에 젖어드는 여행지가 있다.
바로 문화마을이요, 전통가옥촌, 그리고 덩굴에 휘감긴 돌담길의 풍경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바로 창평고을이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오히려 담양고을 보다도 규모가 컸으며 뿌리 깊은 선비의 정신이 살아있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창평은 전통을 계승하고 학문을 숭상하고, 문무백관을 배출한 대표적 선비 고을이며 충, 효, 예 의
고장으로 충절 정신 또한 투철하다. 임진왜란의 빛난 별 제봉 고경명선생의 둘째아들 학봉 고인후11대 孫인
구한말 의병대장 녹천 고광순 의병대장이 태어났다.
항일운동을 계속하다가 연곡사를 야습한 일군에 대항하여 호서 의병장 김동신, 고광순, 윤영기, 신덕순,
고광훈(고광순 의사의 동생) 등이 사력을 다해 싸우다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구례사람들이
세워준 순의비가 지금도 연곡사에 남아있으며 고향 창평에는 포의사를 지어 배향하고 있다.
고광순의 후손으로, 규장각 직각(현 국립중앙도서관장)을 지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에 돌아와
창흥의숙(현재 창평초등교)을 설립한 고정주등을 배출한 의로운 고장이다.
이곳에서 공부를 한 이들은 인촌 김성수, 고하 송진우, 가인 김병로등이있다.
널따란 들녘에는 오곡이 무르익어가는 풍요로운 황금들판이 있고 전원의 그윽한 정취가 느껴진다.
이런 자연의 혜택으로 넉넉함이 그득하니 인심 또한 후하다. '너른 들'을 가졌다는 창평. 그 이름처럼 풍요로운
들녘에서 얻어낸 소산물이 넉넉하다보니 천석꾼 만석꾼이 많았고 나라가 위급할 때 주저 없이 돈을 내놓았던
지주들이 많았다고 한다.
걸어보고 싶은 고향길, 추억 길
자연의 소산물이 풍요롭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식문화도 발달 되었다.
조선시대에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유명했던 창평 쌀엿과 한과를 들 수 있다.
과(菓)라는 말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수로왕조의 기록에 처음으로 제수에 올렸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귀족들이 즐겨먹던 ‘유밀과’ 과자가 있었다.
유밀과는 불교행사인 연등회 때나 각종 행사에도 반드시 올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다과상으로 올렸으며 훗날 한국의 전통적인 제조방법을 이어받아 오늘날에는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사랑받는 한국 전통과자로 거듭나고 있다.
담양한과를 운영하는 박순애 여사도 남도의례음식 명인이다. 남도의례 음식장 최영자 여사도 이곳에서 음식전수관을
열고 후진야엉에 심혈을 기울이고있다.
창평의 향토음식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창평국밥, 창평안두부, 떡갈비, 한우불고기집, 삼지천 마을동네에 운치 넘치는 한옥식당 갑을원의 오리 요릿집들이 있다. 광주와 워낙 가까운 곳인지라 주말이면 일부러 이곳을 찾아오고 있으며 결혼식이나 명절날이 되면 창평쌀엿과 한과를 구입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리고 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죽염, 죽염된장, 전통 떡갈비등 창평의 특색을 살린 전통음식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삼천리 삼지천 마을의 돌담 고샅길 감고 돌아 느끼는 풍경
옛날 원님 객사자리였던 창평면 사무소에서 골목길로 이어지는 곳으로 들어서면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과 향토적
서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중시해서 문화재청에서 국가 지정 문화재(제 265호)를 하사한
보물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삼천리 삼지천 마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보편적으로 우리나라의 옛 세세토록 향토가 깃든 돌담과 고옥이 잘 보존된 마을이 있다.
콘크리트. 시멘트 문화의 뒤켠에서 용케 보존되어 남아있는 돌담 마을들은 세세토록 그윽한 향토의 멋을 지키고 있다. 1510년경부터 집성촌을 이루며 살아온 '창평고씨(昌平高氏)'와 관련된 인물들도 내 고장의 자랑에 한몫을 하고 있다.
삼지천 마을 초입부터 담쟁이 넝쿨로 토석 담을 뒤덮은 골목길을 휘감고 들어가면 고옥들의 모습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백제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상삼 천과 하삼천 마을까지 약 3.6k까지 이어지는 마을의 돌담길과 부잣집 고옥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