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
이맥이 『태백일사』를 썼다
『태백일사』를 쓴 이는 이맥李陌(1455~1528)이다. 이맥은 연산군 때 사람인데
너무 강직해서 연산군의 미움을 사 충북 괴산으로 유배당했다. 그리고 다시 풀려나 벼슬길에 복귀하였는데 그의 호가 일십당一十堂이요
『단군세기』를 쓴 행촌 이암李콖의
현손(고손자)이었다. 연산군이 몰락하고 난 뒤
중종이 즉위하자 유배지에서 풀려나서 찬수관纂修官으로 재등용되었는데 그때 내각에 있는
비장도서를 읽고 깜짝 놀랐다. 우리 역사의 시작 즉 상고사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단군 이전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것이다.
이맥이 내각의 비서를 읽고 『태백일사』를 지은 것은 중종(1506~1544) 초의 일이었다. 세조(1455~1468)가 모든 상고사 기록 즉
『고기』를 거두어들이라는 명(收書令)을 내린 지 불과 50년 뒤의 일이었다. 세조 2년, 왕은 각도 관찰사에게 민간에서 소장하고 있는 모든 상고사 기록을 압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영을 어기고 책을 숨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으니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비슷한 문화탄압이었다. 이때 압수된 고기의 서목이 실록에 기재되어 있는데 그 중의 일부 서목이 『태백일사』에 수록되어
있다. 때문에 이맥은 목숨을 걸고 『태백일사』를 저술했던 것이다. 잠시 이맥이 『태백일사』를 쓰게 된 동기를 살펴보기로 하자.
때는 갑자년(연산군 10년 1506). 내가 괴산에 유배되었을 때 적소謫所에서 근신하고 있으니 너무 무료하여 집에 간직해 두었던 사전史典들과 노고들에게 들은 이야기, 그리고 유배지에서 풀려난 뒤 16년 만인
경진년(중종 15년 1520)에 찬수관纂修官으로 있을 때 내각에 소장된 비밀스런 책들을 읽고 이들을 모두 합해서 책을 엮었는데 이름하여 「태백일사」라 한다. (『태백일사』 발문跋文)
『태백일사』의 <일사逸史>란 말은 “정사正史에서 빠진 태백의 역사”란 뜻이다. 태백이란 태백산 즉 환인 환웅 단군의 역사란 뜻이다.
태백의 역사가 왜 빠졌는가 하면 조선왕조가 이를 금지하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조선왕조는 명나라와의 외교적 문제를 고려하여 단군 이전의 역사를 금지했던 것이다. 상고사는 금지된 역사요 국시國是에 위반되는 역사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책의 소장자를 죽이겠다고까지 으름장을 놓았겠는가.
『태백일사』를 소중하게 간직하여 후세에 전한 분이 바로 이맥의 후손인 해학海鶴 이기李沂(1848~1909)였다. 이기 선생은 한말의 애국지사로 이름난 분이었고, 『환단고기』를 통해 우리 나라 상고사를 밝혀
준 숨은 민족사가이기도 한 것이다.
좬태백일사좭란 어떤 책인가
여기서 잠시 『환단고기』의 구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앞의 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 「삼성기」<상, 하>가 수록되어 있고, 다음에 (2)
「단군세기」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3) 「북부여기」<상,
하>가 수록되고, 이어 마지막에 (4) 「태백일사」가 수록되어 있다. 『환단고기』의 차례대로 설명한다면 「단군세기」를 먼저 설명하여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단군 이전 시대의 기록을 다 설명하지 못하고 단군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단군 이전 시대에 관한 『태백일사』를 먼저 설명하기로 한다.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 속에는 다음과 같은 네 종류의 사서가
수록되어 있다. 즉 1) 단군 이전 시대, 환국과 신시 시대에 관한 기록, 2)
단군 시대의 기록, 3) 경전류의 기록, 그리고 4) 단군 이후의 시대, 즉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1) 단군 이전에 관한 기록
① 삼신오제본기 제1
② 환국본기 제2
③ 신시본기 제3
2) 단군 시대에 관한 기록
④ 삼한관경본기 제4
-마한세가 상 하
-번한세가 상 하
3) 경 전 류
⑤ 소도경전본훈 제5
-천부경
-삼일신고
4) 단군 이후의 시대에 관한 기록
⑥ 고구려국본기 제6
⑦ 대진국본기 제7
⑧ 고려국본기 제8
우리는 앞서 『삼성기』 상권과 하권을 살펴보았기 때문에 여기서도
계속해서 단군 이전 시대에 관한 기록을 살펴볼 것이다. 즉 『태백일사』 서두에 나오는 「삼신오제본기」를 먼저 살펴볼 것이다. 「삼신오제본기」는 환국시대와 신시시대에 관한 기록이다.
정치하는 자들이여 백성의 어버이가 되라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도 앞서 나온 「삼성기」<상, 하>와
같이 태시기太始記로부터 시작된다. 태시기는 창세기를 말한다. 북애노인의 『규원사화』에 조판기肇判記와 태시기太始記가 있듯이 「삼신오제본기」에도 태시기가 있어 천지창조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규원사화』의 조판기에는 “태고에 음양이 갈라지지 아니하고 혼돈한 채 오래 닫혀 있었다. 상계에 문득 하나의 대주신大主神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환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삼신오제본기」에서는 『표훈천사表訓天詞』를 인용하면서 태초에 천제가 계셨다고 말하고 있다.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 그리고 사방에 암흑이 깔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니 시간이 흘러 옛것이 가고 지금이 오더니 마침내 ‘오직 한 빛이
밝았다(只一光明矣). 상계上界에 또 삼신三神이 계셨으니 이가 곧 상제上帝이시니라. 그 주체는 일신一神이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나
작용할 때에는 삼신이다.
그런데 천제는 바로 삼신을 말한다고 한다. 삼신이란 천일, 지일, 태일을 말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이지 셋이 아니라고 한다.
무릇 삼신은 천일天一(하느님)이라 하고 지일地一(땅의 신)이라 하고
태일太一(사람의 신)이라 한다. 천일은 조화造化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敎化를 주관하고 태일은 치화治化를 주관하였다
삼신 중 천일은 조화(창조), 지일은 교화(교육), 태일은 치화(통치)를
주관한다고 하였는데, 『고려팔관기高麗八關記』에 따르면 천일은 곧
환인이요 지일은 환웅이요 태일은 단군이라는 것이다.
『고려팔관기』에 삼신설三神說이 있다. 가로대 “상계의 주신을 천일天一이라 하여 조화造化를 주관하고 하계의 주신을 지일地一이라 하여 교화敎化를 주관한다. 중계의 주신은 태일太一이라 하는데 치화治化를 주관한다”고 하였다. 또 “환인씨는 어버이의 도를 써서 천하에 쏟으며 신시씨는 스승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를 인솔한다. 왕검씨는 왕의
도로써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이에 따른다”고 하였다
삼신은 환인 환웅 단군인데, 환인은 이 세상 만물을 창조(조화)하셨고
환웅은 환인이 이미 만든 것을 교화 즉 가르쳤고(교화) 단군은 환웅이
가르친 바대로 다스렸다(치화)는 것이다. 그런데 백성을 다스리는데 있어 삼신은 각기 다른 방법을 썼다. 즉 환인은 백성을 가장 정에 넘친 어버이(親)처럼 다스렸고, 환웅은 스승(師)처럼 다스렸으며 단군은 임금(君)처럼 다스렸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백성을 다스리되
어버이처럼 다스리라는 것이다.
태초에 나반과 아만이 만났다
그러면 삼신이 내린 곳이 어디냐. 바로 태백산인데 이 태백산은 지금의 개마고원이었다는 것이다. 개마고원은 평안도와 함경도 경계에 있는 고원으로서 한국의 지붕으로 알려져 왔다. 백두산의
어원도 개마고원의 개마蓋馬에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삼신산을 천하의 뿌리산根山이라 한다. 산 이름을 삼신이라 한 까닭은 대저
삼신이 이곳에 내려와 노닐었기 때문이다. 혹은 삼三은 신新이요 신新은 백白이라, 신神은 고高가 되고 고는
머리頭가 된다. 때문에 백두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혹은 개마蓋馬는
해마리奚摩離에서 바뀐 이름이라 하면서 해奚는 희다는 뜻이요, 마리摩離는 머리라는 뜻이니 백두산의 이름이 이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삼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고 교화하고 치화하였다고 하였으나 삼신 이전에 인류의 시조가 따로 있었다. 바로 나반과 아만이라는 분이었다. 나반과 아만은 우리말의 아버지와 어머니란 뜻인데 이 두 분이 서로 아이사타阿耳斯? 에서 만나 처음 혼약을 맺고 후손을 나았으니 이것이 인류의 시작이자 동시에 우리 민족(구환족九桓族 64민民)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조상은 나반那般이라 한다. 처음 아만阿曼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사타라 한다. 일명 사타려아斯?麗阿라고도 한다.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정안수를 떠놓고 하늘에 알린 후
돌아가며 술을 마셨다. 구환의 64민은 모두 그 후예이다. 그러나 그 뒤
구환족은 각각 흩어져서 일산일수一山一水에 나라를 만들어 서로 경계를 쳐서 살게 되니 서로 창세의 줄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반과 아만이 서로 만난 곳은 천해(천지)가 있는 곳이었다고 하며 서로 만난 날은 7월 7일이었다. 하백은 나반의 후손이었다.
하백河伯은 천하天河의 사람으로 나반의 후손이다. 7월 7일은 바로
나반이 강을 건너는 날이다. 이날 용왕에 명하여 하백을 부르나니 용궁에 들어가 이로 하여금 사해四海의 여러 신들을 주관케 하셨다. 천하를
일명 천해天海라고도 한다. 지금의 북해北海가 그곳이다.
그럼으로 북해(바이칼호)가 우리 민족의 원주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북극에서 천도天道 즉 홍익인간의 가르침이 처음 계시되었다는 것이다.
천하의 주注에 가로대 “천도는 북극에서 일어났다. 고로 천일天一의
물을 낸다. 이를 북수北水라 한다”고 했다. 대저 북극은 수정자水精子가 기거하는 곳이다.
이같이 나반과 아만이 태초에 혼인하여 그 후손시대가 오래 계속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바로 환인이었다. 이 분이 나반의 뜻에 따라 선정을 베푸니 그를 또한 아버지(안파견 또는 커발한)라 불렀다고 한다.
장구한 세월이 흐른 뒤 환인桓因이란 분이 나타나 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임금으로 추대되었으니 이를 안파견安巴堅이라고도 하고 커발한居發桓이라고도 하였다. 대저 안파견이라 함은 하늘을 계승하여 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이고, 커발한이라 함은 천지인天地人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이름이다. 이로부터 환인의 형제 아홉 명이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셨으니 이를 9환64민九桓六十四民이라 한다.
이야기가 약간 복잡해지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태초에 나반과 아만이
계셨고 이어 오랜 후세에 환인이 나타나고 환웅 단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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