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프랑스 어느 대학도시의 기숙사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 십여명 있었습니다.
낯설은 이국 생활이라 당연히 고국의 음식이 그리웠지요.
당시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주변에 없었고
어쩌다 명절때나 부모님들께서 비싼 돈 들여 보내주시는 밑반찬이라야
받아보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라면이라도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지요.
프랑스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식품점에서 라면을 팔기는 했는데
홍콩인지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서 "출전일정" 일본상표를 붙인 조잡한 제품이었고,
첨부된 중국식 돼지고기 맛 스프가루를 타서 요리를 하면
정말 웬만큼 비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은 그 느끼함에 다 토해버릴 정도.
그래서 저희들은 스프가루 넣는 대신 소금, 양파, 고추가루로 맛을 내고는 했지요.
우리나라 우리맛 라면을 너무나 먹고 싶은 마음에 하루는 꾀를 내었습니다.
기숙사 외국 학생들이 모두 삼백여명쯤 되었는데
학교 식당에서 모두에게 대한민국 라면파티를 멋지게 열어주자고,
그래서 우리나라 우리맛 라면의 진수를 전 세계에 보여주자고.
그런 내용을 써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삼양라면 사장님께
다만 본사가 당시 서울 종로 청진동에 있었다는 것만 알고서
도와주십사 라는 편지를 진담반 장난반 올렸습니다.
물론 무모하고 황당한 요청임을 잘 알기에
저희는 삼양라면에 대해 답신 조차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파리 오를리 공항 세관에서 제게 소환장이 날아왔습니다.
외국산 식료품이 무려 2 큐빅톤이나 제 앞으로 왔는데,
도대체 학생의 신분이라면서 밀수꾼이냐 아니냐 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밤차를 타고 파리에 상경,
새벽에 오를리 공항에 가서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고 물건을 찾아왔습니다.
세관원들은 거의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짓더군요.
말이 2 큐빅톤이지 작은 봉고차에 가득차는 엄청난 물량이,
당시 돈으로도 수백만원 넘는 특급 항공운임표를 붙인채 제 앞에 쌓인 모습,
라면 상자의 산더미는 제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지요.
마치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을 정복했노라는 성취의 뿌듯함에 앞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일개 학생의 편지 글만을 믿고,
라면 백여상자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운임까지 지불하여
특급우편으로 보내주신
삼양라면 사장님의 마음 쓰심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고 말더군요...
과연 어떤 분이실까.
뵙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고 황송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저희의 대한민국 라면파티는 대성황으로 끝났고요.
외국학생들에게는 "짜짜로니" 였던가요, 짜장면 류가 대인기를 끌었지요. 작은
대학도시였지만, 라면파티 한 번으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도 더 지나고...
국민기업 삼양라면이 처했던 어려움도 그저 남의 일인냥 지나쳐버리고,
이런 저런 핑계로 삼양라면 사장님께 그 흔한 엽서 한 장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요.
오늘 우리나라의 위기를 맞았지만,
삼양라면 사장님의 신념과 배려의 마음을 떠올리며 저희의 희망으로 삼습니다.
삼양라면!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