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순왕의 시조는 김알지로 그가 탈해 이사금 시절에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최초의 김씨왕은 미추 이사금이며 내물 마립간 김씨 왕조 지배의 기틀이 잡혔다. 설화상으로는 일단 그러하지만 이것은 고려 시대에 소급된 것으로 보통은 법흥왕 때 신라에 문화 전반에 개혁이 있었을 때 김씨를 사용했거나 수서, 당서의 기록대로 진흥왕 때부터라고 할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진흥왕은 한국 최초로 김씨로 기록된 인물이다.
경주김씨는 경순왕의 아들 중 셋째 아들인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 : 영분공파)과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 : 대안군파)을 1세조로 하는 계통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조상에 대한 계통은 확실하지 않으나 경순왕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김장유(金將有 : 판도판서공파), 김인관(金仁琯 : 태사공파), 김순웅(金順雄 : 장군공파)을 1세조로 하는 계통 등 크게 5파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10여 개의 지파(支派)가 생겨났다.
사실 경주 김씨는 월성(月城) 김씨(金氏)이기도 하다. 스스로가 경주 김씨로 알고 있는데 가족관계등록부에 월성으로 나온다고 멘붕은 금지.[3] 애초에 월성은 경주에 있는 지명이며, 실제로도 집성촌과 족보에서는 스스로를 경주 김씨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족보도 경주 김씨 종친회의 관리 아래에 있으므로 월성이라고 분파가 아니라 같은 씨족으로 대우받으며 시조와 왕릉에 대해서는 같이 제사도 올린다[4]. 이 때문에 합법적으로 동성동본이 결혼할 수 있었으며, 종친회와 가깝지 않는 이상 욕먹을리도 없었다.
경주 김씨계 성씨로는 법흥파 김해 김씨(김녕 김씨), 광산 이씨, 안동 권씨[5], 수성 최씨, 감천 문씨, 강릉 김씨, 전주 김씨[6] 등이 포함되며 경순왕의 아들들이 갈라져 나온 부안 김씨[7]나 울산 김씨, 또는 의성 김씨, (구)안동 김씨, 김녕 김씨, 언양 김씨, 나주 김씨, 광산 김씨, 영산 김씨도 경주 김씨, 예안 김씨와 관련이 있다. 신무왕의 셋째 아들 김흥광이 광산 김씨의 시조, 넷째 아들 김익광이 영산 김씨의 시조이기 때문[8].
비율로는 상촌공파가 가장 많으며[9] 그 다음에는 계림군파, 수은공파 순이다. 참고로 김씨들 중에서 이름 중간에 '학'자나 '관'자가 들어가면 계림군파이고 이름 중간에 '택'자가 들어가면 상촌공파이다.
혜이니 : 가수, 본명은 '김혜인' 도전1000곡에 MC 이휘재가 "무슨 혜이니냐"라고 묻더니 "김씨인데 경주 김씨에요"라고 대답했다.
[1] 단, 북한에서는 성씨의 본관을 구 시대부터 존재한 일종의 계급으로 보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본관을 기록하거나 남들에게 물을 일은 없다고 한다.[2] 특히 계림군파가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작 이 세 분은 모두 상촌공파이지만 사실 충청남도 서부에도 상촌공파 집성촌이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상촌공파는 경기북부, 강원도, 이북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3]경주 이씨도 마찬가지다.[4]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일제시절 호적의 영향이 크며 그 호적을 그대로 물려밭은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5] 시조인 권행(權倖)이 권씨 성을 사성받기 이전에 경주 김씨였다.[6] 놀랍게도 김일성의 본관이다.[7] 그 유명한 마의태자의 후손이다.[8] 그래서 경주 김씨, 광산 김씨, 김녕 김씨, (구) 안동 김씨, 의성 김씨 등은 모두 김알지의 후손이다. 따라서 방계 혈족까지 모두 합하면 김해 김씨 가계보다 훨씬 크다.[9] 북한 지역에 있는 경주 김씨 집성촌 중의 무려 80%가 상촌공파 집성촌이다(...)[10] 단, 본인의 후손들은 경주 김씨에서 다른 본관으로 갈라져 나왔다.[11] 대표적으로 고려 중기의 학자이자 삼국사기 편찬을 주도한 김부식이 있다. 하지만 아들놈 때문에 망했어요(...)[12] 북한의 그 김정은 꿀꿀이은 전주 김씨.[13] 위의 김기리의 선배지만 항렬은 김기리보다 한 세대 낮다(...)
첫댓글 김광석
김광진
김근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 한민족 북쪽에 있는 김일성家
<김정일>도 전주김씨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 경주김씨 가문으로 보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