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릴 정도로 집요해져라. part2
3일간의 짐만 싸온 나였기에 예상치 못한 기회에 다시 포항에서 부산으로 내려가 짐을 챙겨 와야 했다.
1개월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이 기회를 통해 무엇이라도 더 배우고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면 수당을 떠나 더 값진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었기에
1개월 동안 필요한 짐보다 더 많은 마음의 준비와 통역에 대한 지식을 넣어두어야 했다.
나는 1개월 동안 그들과 같은 기숙사 건물에서 생활했다. 대한민국 최고 제철 기업은 기숙사도 최고 시설이었다.
기숙사 내에 노래방, 목욕탕, PC방부터 없는 편의 시설이 없어서 불편할 것이 전혀 없었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값진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중국어를 배웠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자부심을 느꼈다.
기술통역이라는 전문 분야는 내가 겪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같았다.
특히 제철 분야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기에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보통 어떤 언어에 능통하다고 하면 뭐든지 다 얘기할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그 분야 사람들만 아는 전문 용어를 쓰면서 따발총 쏘듯 얘기하고서는 통역을 원한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면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겠다. 의학 드라마를 긴급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며 듣도 보도 못한 의학
용어들을 침을 튀겨대며 쏟아낸다. 얼마나 생소한 단어면 자막까지 친절하게 나와 준다. 듣는 우리도 우리지만 그걸 외워서
쉬지 않고 토해내는 연기자는 얼마나 열심히 외웠겠는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의사가 당신에게 오만 의학 용어를 섞어서 진단해
주면 짜증나듯이 통역하는 사람도 그 분야에 대한 사전 준비가 있거나 경험이 있지 않은 이상 만능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이번 일에 대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철강, 제강, 화학, 반응식 등 알아둬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돈을
받고 일을 한다는 것은 프로다. 프로는 더욱 집요해져야 한다.
중국 포스코에서 온 왕티에런과 함께
기술통역은 역시 쉬운 임무가 아니었다. 본사의 직원이 한국어로 얘기를 하면 동시에 수업을 듣는 중국인 간부들에게
전달하고 이해시켜야 했다. 본사의 직원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내가 뭐든지 다 얘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깔고 있기
때문에 마구 마구 뱉어낸다. 그럼 난 그 뱉어 낸 말들을 주섬주섬 한 다음에 중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여과시킨 후 전달한다.
통역이라는 것은 많은 단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해력이 더 중요하다. 본사 직원이 설명하는 화학 반응에 대한 과정과
결과에 대한 이해를 내가 먼저 할 수 있어야 중국 직원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수월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직역만 했을 때는 중국
직원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전체를 이해한 후 다시 내 방식대로 쉽게 설명을 해주니 다들 이해를 빨리 했다.
또한 내가 통역자이지만 나 역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난 이해가 되지 않거나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끈질기게 질문했다.
아마도 교육 받는 중국 직원들보다 내가 더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덕분에 나는 화학, 제철 분야에 대한 말과 단어도 습득할 수 있게 되었다.
경주 여행과 회식을 통해 이미 친숙해진 중국인 간부들은 나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퇴근 후에도 나를 찾아와 같이 나가자고 하기도 하고 때마침 베이징 올림픽이었던 터라 한중 대결이 열리는 경기가 있으면 보이지
않는 자존심 대결도 펼쳤다. 여기서 나의 집요함은 또 나오기 시작했다.
유학 시절 월드컵을 통해 축구에 대한 많은 표현과 단어는 익혔지만 다른 종목은 그럴 기회가 없었는데 잘 걸렸다 싶었다.
내 잿밥에 대한 열정은 여기서 또 시작되어 경기보다는 단어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한국과 중국이 양궁 결승에서 맞붙었다.
양궁이라는 단어부터 해서 조준, 과녁, 활, 화살 등으로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단 시간에 단어 양을 늘리기 위해서는 이렇게 집요함만이 살 길이다. 자동차라는 단어를 배우면 그냥 있지 마라.
자동차 안에 들어가는 핸들, 엔진, 계기판, 기어, 트렁크, 타이어로 나아가며 자동차를 해체시켜라.
그리고 하나씩 외우면서 자동차를 다시 조립시키면 된다. 그리고 자동차 정비소나 판매 대리점을 가라.
조립한 나만의 자동차를 당장 팔아 치워라.
세상에는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언어 공부의 시작은 태어나서 모든 사물을 처음 접하는 아이와 같은 처지이기에 알아야 할 것이 곱절은 많다.
질릴 정도로 집요해져라. 나도 내 자신에게 질리고 남도 이런 내 모습에 질려야 한다.
어느 한 쪽만 질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첫댓글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ㅎ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기다려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다리던 반가운 장기웅님의 글이 드디어 올라왔네요... 또 대단한 한 수를 공짜로 품어 갑니다~墙里开花墙外香嘛~~ㅎㅎㅎ)
저같은 하수가 감히 수를 가르쳐드리게 된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울아들도 영통역 공부중인데 좋은 글 감사드려요. 몰랐덩 부분도 알게됐고요. 앞으로도 좋은글. 경험담 많이 올려주세요.
아드님은 아마 더 탁월한 통역사가 될거라 생각합니다^^
회사다니면서 주1시간에 4년을 중국어 공부했습니다만. 이제 겨우 몇마디 기본말로 베낭여행 쪼끔 --
자주 잊어버려서 ㅋㅋ 부럽습니다. 항상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회사다니시면서 주 1시간이라도 4년을 꾸준히 하셨다는게 대단하십니다..빗방울이 바위를 뚫듯 계속 나아가시길 바래요~^^
끈질긴 노력 덕에 얻은 것도 많이 있는 줄 압니다...나도 더욱 노력 해야 겠어요...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에 항상 의문을 품었었는데..맞는 말이더군요^^
한문장 한문장 가슴에 팍팍 와닿습니다^^
다행이네요. 꾸준히 연재해드릴께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