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브로시우스 Ambrosius(339-397) : 라틴 찬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암브로시우스는 339년 프랑스의 트리에르에서 태어나 397년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사망한 이탈리아의 성인입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 히에로니므스, 대그레고리우스와 함께 교회 박사의 한 사람입니다. 유대인과 동방교회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오던 방법인 교송 Antiphonal singing과 응답송 Responsorial singing을 교회에 도입했으며 이것은 로마의 교황 쎌레스틴 CelestineⅠ(422-432)에 의해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시편이나 찬송가를 두 개로 나뉜 합창으로 부르게 하고, 고전적인 장단의 음률에 의한 찬송가를 창작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 1세 Gregorius Ⅰ(540-604) : 카톨릭의 교황이며 신학자인 그레고리우스 1세는 590년부터 604년까지 교황으로 재위했습니다. 그는 밀라노, 스페인의 교회를 통합하고 로마 교회의 통일과 강화에 공헌했습니다. 4세기경부터 음악을 이용하는 전례의 조직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최종적 체계화는 그의 재위 중에 전례의 조직화가 이루어 졌기 때문에 그의 공이 인정되어 로마 교회의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이름이 붙게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성가의 대규모적인 수집과 정리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지요.
마쇼 Guillaume de Machaut(c.1300-1377) : 마쇼는 프랑스 북부지방인 상파뉴 지방에서 출생하여 1377년에 사망한 아르스 노바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며 시인입니다. 왕의 비서관을 지냈으며, 뵈멘 왕 요한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이미 1337년에 랑스의 대성당 사교좌 성당 참사회원이 되었고 은퇴하여 일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작품들에는 그 당시 통용되던 모든 형식들이 포함되며, 이를 통해 보수적인 성향과 진보적인 경향을 함께 가졌던 작곡가로서의 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세계에 깔려있는 배경은 중세의 지적인 세계이며 음악을 학문의 한 분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따라서 음악 작품에도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와 그리스 이래의 음악 이론에 의거한 음조직이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이 신선하고 활기에 넘쳐흐르고 있는 것은 작곡자의 강한 개성과 독창적 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만들지 않는 자는 그 말도 노래도 거짓으로 만들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평화시대의 귀족처럼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에 평온한 노래를 필요로 하는 시대
의 시인겸 음악가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가곡 형식을 확립한 점에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음악사적으로나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마쇼의 종교음악 중에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노트르담 미사 Messe de Notre Dame는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외에도 모테트 23곡 등이 있는데 종교적·교훈적·서정적·정치적인 것 등 다양합니다.
뒤파이 Guillaume Dufay(c.1400-1474) : 프랑스 칸브레이 태생의 15세기 최대의 플랑드르 악파 작곡가입니다. 그는 칸브레이 대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으로서 교육을 받은 뒤 이탈리아로 가서 로마 교황청 가수로 있었습니다. 만년에 다시 고향 칸브레이로 돌아와 그곳 사교좌 참사회원이 되고, 많은 후진을 지도하여 내외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의 음악은 중세의 대륙 및 영국의 음악 기법을 종합하여 그 위에 새 시대의 방향을 결정짓고 있어, 그 의미에서 그의 위치는 약 3백년 후의 바흐의 그것이 비유해도 좋을 것입니다. 또한 흰 음표 정량 기보법의 성립, 합창 기법의 확립 상에서도 그가 기여한 바는 중요합니다. 모테트는 각 성부가 각기 다른 가사를 사용했는데, 그는 이러한 것을 한 개의 가사로 통일시키고 직접적인 가사내용의 표현과 페르마타의 효과 등에서 르네상스의 음울림을 느끼게 합니다. 그의 작품에는 미사곡, 모테트, 마니피카트 및 프랑스의 샹송 등 다수가 있습니다. 미사곡에서 그의 수법이 가장 많이 발휘됩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종교음악 8곡
의 미사 중에 5곡은 이른 바 정선율 미사곡입니다. 또한 모테트에는 종교적인 것, 귀족 저택의 축제 및 가지가지의 행사를 위한 것 등이 있는데, 종교곡에서 매우 진보적인 경향이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세속음악에서의 뒤파이는 꽤 보수적입니다. 전체적으로 유화하고 섬세하며 서정적인 작품이 많습니다.
조스캥 데 프레 Josquin des Pres(c.1440-1521) : 프랑스 보르부아르에서 태어나 콘데에서 사망한 플랑드르 악파의 대작곡가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 이탈리아 밀라노 대성당 성가대의 가수로 있었고, 당대의 사람들에게 '음악의 군주'로 불려질 정도로 명성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종교음악 작품은 오케겜파의 통모방적 아 카펠라 양식을 취하고 있으나 주관적 색채로 인해 구성적 이상을 방기(放棄)하기 시작한 하나의 전환기에 서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확실시되는 그의 종교음악 작품은 미사곡 20곡, 모테트 90여 곡 등이 있는데, 특히 널리 알려진 곡으로는 미사곡 '판제 링구아 Pange lingua'와 '성스러운 처녀로부터 De beata Virgine', '평안을 주옵소서 Da pacem'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판제 링구아'는 흔히 '단성으로 노래되는 환상곡'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질 만큼 자유로운 형식으로 씌어진 대작입니다.
루터 Martin Luther(1483-1546) : 독일의 아이슬레벤에서 태생의 신학자이고, 종교개혁가이자 음악가입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려다 수도원에 들어가 승직에 서품되었으나 카톨릭 교의에 깊은 의문을 품고 1512년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가 되었습니다. 또한 1517년에는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과 교황의 세속화, 교회의 부패 등을 추궁하는 95개항의 의견서를 제시하여 종교개혁의 단서를 열었습니다. 그는 예배에 대한 4가지 개혁점 - 성경, 신앙, 만민제사,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전례 - 을 구체화하는 구실로서 교회음악의 서민화를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자국어 찬송을 확립하고 개신교 코랄의 기초를 열었으며, 많은 찬송과 노래를 만들어 예배음악을 발전 시켰습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 코랄의 기초를 여는 동시에 성경, 식문의 가사에 대해서도 뛰어난 독일어 번역을 완성하여 음악과 문학 사상에 불후의 이름을 남겼습니다. 특히 자작 선율에 의한 '내 주는 강한 성'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트리나 Giovanni Pier da Palestrina(c.1525-1594) : 팔레스트리나는 팔레스트리나에서 태어나 1594년에 로마에서 사망한 16세기 최고의 교회음악작곡가입니다. 본명은 지오반니 피에르루이지 Giovanni Pierluigi이며, 출생한 곳에 연유하여 팔레스트리나라고 불립니다. 그는 로마에서 소년 성가 대원으로 일하며 음악교육을 받았으며, 그후 1544년에는 오르간 주자와 성가대의 지휘자로 임명되었고, 1554년에는 최초의 미사곡집을 간행하여 감사의 뜻으로 교황 율리우스 3세에게 헌정하였습니다. 1555년 교황의 추천에 의해 무시험으로 교회음악의 최고 영예인 교황 카펠라의 가수가 되어 명성이 높았으며, 교회음악의 우상적 존재로서 숭배되었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최초의 미사곡집이 출판되던 1554년부터 사망한 해인 1594년까지 40년 동안에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종교적이고 민중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생생한 멜로디를 잘 활용하여, 힘과 열과 신앙이 충만합니다. 실제로 그의 교회음악에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구조 안에서 다른 악파의 기법과 과거나 동시대 작곡가들의 기법을 사용하여 음악을 활기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의 음악은 새로운 로마 카톨릭 개혁의 정신을 잘 이해하고 반영한 것이며 또한 그의 음악은 새로운 로마 카톨릭 개혁의 종교적 특징이 된 명상과 신비, 경외심 등의 새로운 개혁분위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새로운 교회음악 양식을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팔레스트리나의 종교음악은 대부분 대위법적인 양식에 의해 작곡되었습니다. 리듬은 독립되어 있고 서로 다른 몇 개의 성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주로 4성부). 그러나 그 역시 호모포니적이거나 화현적(和絃的)인 기법을 이따금 채용하기도 했습니다. 르네상스 음악의 계보를 잇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걸작인 2중창 ‘스타바트 마테르’(성모애가)는 고금의 스테바트 마테르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곡 중의 하나로 완전히 호모포니적입니다. 그가 남긴 종교음악 작품은 105곡의 미사곡을 비롯하여,200여곡에 달하는 모테트, 49곡의 종교적 마드리갈, 35곡의 마니피카트, 56곡의 예레미아 애가 Lamentation, 13곡의 연도 Litanie, 67곡의 봉헌가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미사곡 '교황 마르첼루스의 미사 Missa Papae Marcelli는 코랄 음악의 최고 절정기를 대표하는 음악 가운데 하나입니다.
빅토리아 Thomas Luis de Victoria(1548-1611) : 스페인의 카스티야 지방 북서부의 옛 도시인 아빌라에서 태어나 마드리드에서 사망한 교회음악의 대가이자 스페인의 중세 종교 음악을 이끈 가장 중요한 작곡가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성당의 어린이 합창단원을 지냈으며 로마에 유학하여 콜레지움 제르미니움에서 음악, 라틴어, 신학 등을 배웠습니다. 그는 거기서 팔레스트리나에게 지도를 받았고 로마의 산타 마리아 디 몬세라토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 겸 악장을 지냈으며, 팔레스트리나의 후임자로서 로마 신학교 음악 교수와 콜레지움 제르마니움 악장을 거쳐 사제가 되어 로마 시내의 성 젤로라모 성당의 사제로 있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종교생활과 작곡에 몰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세속곡은 단 한 곡도 쓰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종교곡만을 작곡하였습니다. 그는 20개의 미사곡을 비롯하여 44개의 모테트, 34개의 찬가, 18개의 마니피카트, 9개의 예레미아 애가, 2개의 수난곡 외에 2개의 레퀴엠 등을 남겼는데 로마에서 출판된 미사곡, 모테트 임누스, 마니피카트 등은 매우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모랄레스, 게렐로를 잇는 스페인 종교악파의 우뚝선 봉우리로서 자리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황후의 죽음에 임하여 작곡한 죽은 자를 위한 성무곡집인 미사 다 레퀴엠을 비롯한 성주간 성무곡 Officium Hebdomadae Sanctac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스페인적 특성을 갖고서 바로크적인 교회 복음악에 가장 깊은 신비사상적인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몬테베르디 Claudio Monteverdi(1567-1643) :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는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의 양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의 악장을 지내면서 합창자, 독창자, 악기 주자를 질과 양 모두 충실하게 하고 예배용 악보를 사들이거나 직접 작곡하여 정열적으로 일하여 산 마르코 대성당의 음악 수준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그는 오페라 작곡에 많은 공르 세워 오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의 한 사람에 속합니다. 또한 그는 종교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무반주 3성 모테트집을 비롯하여 122개의 모테트, 무반주 4성 종교적 마드리갈, 2개의 마니피카트, 기악 반주가 붙은 미사곡 등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성모마리아의 저녁기도'는 널리 알려진 명곡이지요.
버드 William Byrd(1543-1623) : 버드의 음악 속에는 본질적으로 영국적인 성악성이 가득 차 있어서 신선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버드의 양식을 가장 적나라하게 들려주는 좋은 예는 그의 모테트 ‘나는 살아 있는 빵이다’와 그라두알레 제2권의 제37번인 ‘너희를 내버려두지 않으리라’입니다. 특히 두 번째의 작품은 최초의 음에서부터 웅장한 환희의 절정에 이르기까지 부단하게 치솟아 오르는 기독교적인 즐거움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이 곡을 따를 만한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버드의 교회음악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서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미사곡 13곡, 모테트 120곡, 그라두알레 109곡, 앤덤 62곡 등이 현존합니다. 특히 그의 미사곡은 영국인이 쓴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버드가 세상을 떠난 이래 1670년 무렵부터 영국은 이탈리아 음악의 결정적 영향 밑으로 들어갑니다. 영국적인 음악은 자취를 감추고 이러한 현상은 고전시대에까지 미치지요. 영국은 단지 대륙음악의 소비처로 전락하고 맙니다. 근대와 현대에 와서 벤자민 브리튼이나 본 윌리엄스 같은 천재에 의해서 영국 창작계가 간신히 체면을 되찾기에 이르고, 브리튼이 발표한 '전쟁 레퀴엠'이 거의 유일한 영국 교회음악의 수확으로 치부되는 형편입니다. 만일 헨델이 조국 독일을 떠나 영국에 귀화하지 않았다면 바로크 시대마저도 교회음악에서조차 소비국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쉬츠 Heinrich Sch tz(1585-1672) : 하인리히 쉬츠에 의해서 다성적 교회음악이 마련됩니다. 독일 튀링겐 지방의 쾨스트리츠에서 태어나 드레스덴에서 사망한 17세기 독일 최대의 프로테스탄트 음악의 작곡입니다. 그는 독일 전통음악을 계승하였으며, 바흐나 헨델보다 100년 먼저 태어나 후에 이들이 쌓아 놓을 황금탑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종교교육과 교양교육을 받았으며 음악성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보이소프라노의 음성을 타고난 덕택으로, 여행 중에 만난 모리츠 백작은 그를 궁정 소년 성가대원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성가대원으로 일하면서 궁정악장인 게오르크 오토 Georg Otto(마르틴 루터의 음악적 협력자인 발터의 동역자)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백작이 세운 귀족 자녀들을 위한 특별학교에 입학하여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를 비롯한 어학과 풍부한 인문주의적인 교양을 쌓았습니다. 베네치아에서는 화려한 복합창의 대가인 조반니 가브리엘리를 사사했습니다. 가브리엘리는 쉬츠를 특별히 사랑하여 그를 성심 성의껏 가르쳤을 뿐 아니라 임종시엔 반지를 유품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모두 500여 곡이 전해지고 있는데, 종교음악이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는 독일 개신교의 음악적 전통을 후기 네덜란드 양식과 바로크 초기와 중기의 이탈리아에서 성행했던 새로운 음악기법과 조합하여 그의 유일한 독창적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그는 몬테베르디의 새로운 음악 스타일의 영향과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이탈리아와 독일 양식을 융합한 음악에 독일어 성경이나 종교시의 내용을 불어넣어 전체적인 음악적 조형과 가사표현의 일치를 극대화 시켜주고 있습니다. 초기의 작품들은 구약성서의 시편을 가사로 사용하고 있으며 후기 작품들은 신약성서의 내용을 많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종교적 작품에서는 성경의 내용이 가사가 되거나 성경 구절의 순서를 바꾸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쉬츠의 예술은 독일적, 프로테스탄적, 인문주의적인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호소력은 음악적인 조형과 가사 표현의 완전한 일치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289개의 다윗 시편곡집을 비롯하여, 부활절 오라토리오를 포함한 3개의 오라토리오, 아 카펠라 양식의 4성의 종교적인 합창곡집, 신성 가곡집인 Cantiones Sacrae와 신성 교향곡, 교회 협주곡, 십자가 위의 일곱 말씀, 레퀴엠, 8개의 마니피카트 등이 있고, 그의 만년의 작품들인 3개의 수난곡 - 누가, 요한, 마태 - 은 무반주곡으로 중세의 선법과 르네상스의 다성부 합창 스타일을 바로크의 극적 음악기법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흐 이전의 교회음악을 주도했던 쉬츠의 음악적 결산이 총 집결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마태수난곡은, 바흐의 관현악 반주의 마태수난곡과 달리 반주가 없는 순수 성악곡만으로 연주하는 곡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비발디 Antonio Vivaldi(1678-1741) :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사망한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는 바로크 콘체르토의 기초를 구축했으며 바이올린 주법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 바이올린 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과 기초 작곡법을 배웠으며 레그렌찌에서 오르간과 작곡법을 배웠습니다. 그는 삭발하고 하급 성직자가 되었으며, 10년 후엔 베네치아의 피에타 여자 양육원 부속 음악학교의 교사로 취임하였습니다. 이 학교에서 현악과 지휘뿐만 아니라 여자 관현악단을 만들어 많은 작품을 썼습니다. 이 음악학교는 종교적 분위기가 농후한 학교였기 때문에 모테트, 오라토리오, 칸타타, 미사 등의 작품을 많이 작곡했고 이러한 가운데 베네치아 악파의 대성자로서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간결한 주제, 형식의 명쾌함, 리듬의 활기, 악상의 흐름에서 나타나는 추진적이고 논리적인 계속성, 감상적인 표현과 형식적인 균형의 완전한 융화 속에서 음악의 구성 요소들을 발전시킨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솔로 콘체르토 300여곡, 바이올린 솔로 230여 곡, 90여 곡의 트리오 및 솔로 소나타 등 모두 500여 곡의 기악곡들을 비롯하여 3개의 오라토리오와 14개의 저녁기도, 마니피카트, 스타바트 마테르, 글로리아와 크레도, 키리에 등의 종교음악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글로리아는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바흐 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 하슬러와 쉬츠의 음악은 바흐에 의해서 완성되고 승화되기에 이릅니다. 바흐는 루터 교회를 신봉했던 인물입니다. 때문에 그의 종교음악의 대부분이 루터교의 예전(禮典)을 위해서 작곡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미사곡들과 모테트를 씀으로써 종파의 벽을 넘어서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하슬러 이래 독일 작곡가들의 전통이었습니다. 1723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음악감독)에 취임했는데, 그의 종교음악은 주로 이 무렵에 집중적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대작 b단조 미사와 약 3백 곡에 이르는 칸타타가 이때의 수확입니다. 특히 칸타타는 그가 평생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장르였을 뿐만 아니라 이들 작품을 통해서 독일 코랄의 전통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코랄은 일종의 음악적인 설교였습니다. 이밖에 4개의 미사곡과 7곡의 모테트, 마니피카트, 마태·요한 수난곡,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부활제 오라토리오, 다수 종교가곡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주옥같고 경건한 바흐 신앙심의 유산입니다.
헨델 Georg Friedrich H ndel(1685-1759) : 헨델의 종교음악은 오라토리오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다른 작곡가들의 경우처럼 미사곡 등 다양한 장르를 선택하지 않고 오라토리오와 앤덤 Anthem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모두 20곡의 오라토리오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들 오라토리오는 대체로 세 가지 종류로 나뉘어집니다. '합창 오페라', '합창 칸타타', '합창 드라마'가 그것입니다. 이 가운데서도 합창 드라마가 예술적 교회음악에 속하는 것이며, 대본의 내용은 대부분 구약성서에서 가져와 이 작곡가의 개성에 의해 웅대한 양식에 담음으로써 가장 종교적이면서도 극적인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한편, 이 세 가지의 어느 종류에도 속하지 않는 작품이 있는데, 다름아닌 '메시아 Messiah'입니다. '메시아'는 일련의 합창 드라마들 가운데서도 가장 극적입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이나 '마카베우스의 유다'같이 드라마로서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감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누구에게나 이 작품은 직접적인 호소력으로 다가오는 독특한 작품이지요.
하이든 Franz Joseph Haydn(1732-1809) : 고전시대엔 하이든에 의해서 고전양식에 의거한 오라토리오와 미사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미사곡에 대해 커다란 독자성을 나타내고 1782년의 '성 세실리아의 미사'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칸타타적인 방법을 배척합니다. 그의 교회 성악곡에 있어서는 케를이나 푹스적 양식의 대위법·합창작법·솔로=투티 수법의 전통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노년의 하이든은 모차르트에 의해 발전되었던 양식의 이상을 완성합니다. 1796-1802에 만들어진 6개의 대미사곡에서는 칸타타적인 태도를 완전히 버립니다. 합창의 임무, 폴리포니적인 성부의 조합, 새로운 주제적 작품, 4중창과의 끊임없는 대조가 강조됩니다. 일반적으로 대형식이나 2중 푸가의 구사에 있어서 창의적인 역량을 나타내었으며, 영욱 여행에서 헨델의 작품을 접하고 대작 '천지창조'와 '사계'를 작곡합니다. 종교적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사계' 역시 자연을 찬미하는 깊숙한 곳에 초자연의 섭리와 영원한 봄으로서의 깊은 크리스트교적 신뢰를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입니다. 그의 종교 작품에는 로코코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신이 내려주신 기쁜 마음'이 예술가적 소박함과 성실함으로 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특색 있게 표현합니다. 작품으로는 14곡의 미사, 2곡의 테 데움, 2곡의 살베 레지나, 성모애가, 2곡의 봉헌송 등의 교회음악이 있습니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 : 모차르트는 최초의 교회 음악적 인상을 출생지인 잘츠부르크에서 받았습니다. 잘츠부르크 교회음악 전통은 미하엘 하이든(요제프 하이든의 동생)에 의해 더욱 활기 있게되고 모차르트는 그로부터 특히 많은 것을 이어받았습니다. 모차르트의 종교 음악에 있어서의 잘츠부르크적 습관은 특히 간결한 형식, 클라리넷 없는 부분적으로 바이올린에 의해 지배되는 악기법, 그리오리오 성가의 인용 등에 있어서 나타납니다. 또한 이탈리아 음악의 여러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있는데, 아리오조적 형태나 칸타타적 형식에 있어서 더욱 그러합니다. 파리나 볼로냐의 영향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는 유럽 각지의 여행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데, 모든 자극은 그의 독자적인 풍부한 예술적 개성 안에서 변화되고 점점 의식적으로 독일적 음악관 안에서 창작되어갑니다. 작품 경향은 부분적으로 바흐의 대위법적인 기법이 수용되어 있으며, 하이든처럼 교향곡적인 요소와 오페라의 요소가 스며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종교음악이 세속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후의 그의 모방자들에게 있어서와 같이 신앙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차르트가 카톨릭적 예술의 모범인지 어떤지는 문제삼지 않더라도 근대의 가장 위대한 종교적 작곡가의 한 사람이라는 데는 논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차르트의 종교음악은 소수의 몇 곡을 제외하면 일반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수적으로 꽤 많은 작품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19개의 미사곡, 4개의 연도(連禱), 1개의 딕시트, 1개의 마니피카트, 1개의 미제레레, 1개의 교창, 3개의 레지나 첼리, 1개의 테 데움, 2개의 탄툼 에르고, 2개의 독일어 교회찬미가, 9개의 봉납창, 1개의 데 프로푼디스, 1개의 아리아, 소프라노 독창을 위한 1개의 모테트, 1개의 4성 모테트, 1개의 승계창, 2개의 찬미가, 수난 칸타타 Grabmusik, 칸타타 Davidde penitente, 거기에 모차르트가 1부, 미하엘 하이든이 2부, 아들가세르 Adlgasser가 3부를 쓴 종교곡 Die Schuldigkeit des ersten Gebotes가 있습니다. 또 최근 발견된 것으로 오라토리오 Isacco가 있습니다.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1770-1827) : 하이든의 고전양식은 다시 모차르트에 의해서 세련미를 더하게 되며, 베토벤에 의해서 확대되고 심화됩니다. 이로써 독일은 세계음악을 제패하지요. 본의 카톨릭 전통 속에서 자라나고, 빈으로 옮겨와서도 카톨릭적인 분위기에 둘러싸이고는 있었지만, 계몽 사상이나 프랑스 혁명에 의해 심대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베토벤은 로코코적 초기나 윤리적인 중기에는 교회 음악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1801-2년에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를, 1803년에는 종교가곡을 작곡하지만 걸작은 아니었으며. 본격적인 교회 작풉은 1807년에 쓰여진 '미사 C장조'와 1819~23년에 걸쳐 완성된 '장엄 미사'라 하겠습니다. 미사곡에서는 요제프 하이든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는데, 하이든의 신앙에 있어서의 쾌활함에 비해 베토벤은 일찍부터 고뇌의 무거운 짐을 감내해야 했던 만큼 그의 미사곡은 현대적 의미의 고백적인 음악이었습니다. 베토벤 스스로가 "나의 최대의 작품이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던 '장엄미사'는 바흐의 'b단조 미사'와 더불어 고금을 통해 가장 위대한 미사곡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악곡의 스케일이나 길고 복잡한 음악적 구성 때문에 이 '미사곡'이 비록 교회의 전통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진정한 교회음악'이라는 평가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세 거장은 근대 교회 음악에 있어서도 고전적 양식을 확립했습니다. 후기 바로크나 로코코의 염미(艶美)양식은 새로운 인간성의 이상에 종합되었습니다. 그들의 고전성은 단지 음악의 기교적·양식적인 종합과 통일에 있었을 뿐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새로운 높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슈베르트 Franz Peter Schubert(1797-1828) : 오스트리아 빈 태생의 슈베르트는 모차르트 C장조 미사곡 K257이나 살리에리파의 약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처음부터 민요적인 선율이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미 1815년에 G장조의 미사곡을 썼으며, 1822년의 명쾌한 A♭장조 미사, 특히 1828년의 E♭장조에서 위대한 발전과 완성을 보입니다. 이 후자에 있어서 그는 신에 대한 감격과 함께 죽음의 예감까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종교음악은 1개의 오라토리오를 비롯하여 독일 진혼곡, 6개의 미사곡, 2개의 칸타타와 독일 미사곡 등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베를리오즈 Louis Hector Belioz(1803-1869) : 프랑스 낭만파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가정의 종교적인 분위기와 문학적인 시의 영향은 그의 로맨틱한 정신을 기르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다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아니었음에도 종교적으로 주목할만한 작품이 많은 것은 프랑스의 좋은 전통의 소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관현악의 음색 발전에 공헌하고 그것을 그의 시적인 목적에 적용하여 표제음악의 방향으로 추진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교향곡이라든가 오페라라는 장르의 구별은 오히려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작품이 극적이며 또한 관현악적입니다. 음악의 진행시키는 것은 그에게 있어 형식이 아닌 낭만적인 환상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합창이나 독창이 부가되었고, 또 대편성의 종교극 등의 경우에도 극적 효과라는 것이 제작의 동기이며 또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는 바그너와 함께 낭만파를 대표하는 대편성에 의한 극적 음악의 작곡가이며, 또한 그무렵 프랑스의 유일한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그가 남긴 종교음악으로는 오케스트라와 오르간, 브라스밴드가 함께 반주하는 테 데움을 비롯하여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릴 때, 죽은 자를 위한 미사 레퀴엠, 장엄미사, 2개의 모테트, 예수님의 부활을 노래한 합창곡 등 수많은 합창곡을 남기고 있습니다.
리스트 Frans Liszt (1811-1886) : 종교음악에 있어서도 참으로 화려한 존재인 리스트는 예술가로서 외적으로 폭넓은 교제와 초지일관의 강인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례음악의 혁명가닌 르쉬와르와 베를리오즈의 선에 따르고 있습니다. 교회 작품에도 그는 신낭만파의 양식, 즉 선율적·화성적·주제적 근본률, 표제악적 구성원리, 정묘하고 개성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경탄할 만한 악상을 가진 것, 더러는 음악적 내용이 부족한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진실의 감수성과 예지가 도처에 번득입니다. 그의 그레고리오 성가의 사용은 그의 강한 감수성에 의해 전례적인 세계에서 벗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품으로는 그란의 축제 미사, 헝가리의 대관 미사, 오르간 미사, 남성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레퀴엠, 오라토리오 성 엘리자벳의 전설, 크리스트, 스타니슬라우스, 그리고 칸타타 등이 있습니다.
브루크너 Anton Bruckner(1824-1896) : 교약곡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적인 작품에서도 리스트와 가장 대조적인 사람으로 브루크너가 있습니다. 그는 9개의 교향곡에 많은 힘을 기울였으며, 이러한 교향곡의 방법을 적용시켜 모두 8개의 미사곡을 작곡했습니다. 음악은 그에게는 세계를 포괄하는 신의 나라를 열어 보이는 한 수단인 것이지요. 그는 단순한 성격, 순진한 신앙심, 확고한 음악적 감수성, 신의 아들이라는 순수한 에토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에토스는 고뇌에 차고, 감동이나 환희에 있어서도 한결같이 은총에 의해 빛나고있으며, 신비적인 황홀에 이르기 위해서 무서운 죄 의식의 모든 단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장엄함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고전파의 규범에 대해서도 외경하는 마음에서, 오랫동안 자기의 개성적 음악 감수성, 개인적인 양식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성 프톨리안 수도원 성당에 직장을 얻은 후에는 제히터에게서 배운 대위법, 슈베르트적인 화성적 기법, 베토벤적인 악상의 심각함을 합친 매우 특색 있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소합창 미사 C장조를 비롯하여 합창 미사 E♭장조, F장조 미사와 d단조 레퀴엠,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초연된 B장조 미사 솔렘니스, 마니피카트, 테 데움, 5개의 시편가, 3개의 아베마리아와 36개의 종교적 합창곡 등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구노 Charles Gounod(1818-1893) : 19세기 후반의 중요한 교회 음악가로서는 오페라로 유명한 구노가 있습니다. 그의 교회 작품은 케루비니와 메윌르의 방향을 발전시킨 것으로, 팔레스트리나의 연구와 신학적인 교양이 그의 작품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딸린 세실리아의 미사는 참연한 작품으로 독일의 고전파적·낭만파적 방향의 후기 위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후기 작품에서는 팔레스트리나의 영향이 좀더 많이 나타납니다. 오라토리오 '죽음과 삶'은 성서과 전례 속의 라틴어에 의거한 작품으로 참된 아름다움을 갖는 종교음악의 하나입니다.
브람스 Johannes Brahms(1833-1897) : 로맨티시즘의 시대에도 독일은 종교음악에 있어서 종주국이었습니다. 슈베르트·브람스·멘델스존·리스트·바그너·브루크너 등이 이 시대의 거장들이죠. 브람스의 모테트는 모두 7곡이 있습니다. 작품 29가 2곡, 작품 74가 역시 2곡, 작품 110이 3곡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들 모테트들은 비록 작곡된 시기는 다르지만 거의 예외 없이 대위법을 사용하고 있어 주목을 끕니다. 모테트라는 종교음악이 대단히 오랜 전통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악파와 베네치아의 대위법 작곡가들, 특히 바흐의 모테트가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역사성과 계보성을 생각했기 때문에 브람스 역시 대위법을 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브람스의 모테트들은 16세기로부터 연유된 모테트의 오랜 전통을 계승한 작품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또 하나, 그의 최대의 예술적 교회음악으로 평가되는 '독일 레퀴엠'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레퀴엠은 라틴어 가사를 사용하지만 브람스는 독일어를 썼고, 교회의 전례용이 아닌 연주용으로 썼다는 점만으로도 크게 주목받는 작품입니다.
드보르작 Antonin Dvo ak(1841-1904) : 체코슬로바키아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드보르작은 슈베르트와 비견되는 다작의 천재로서 샘솟는 듯한 악상으로 거침없이 써내려 가는 작곡가였습니다. 그가 남긴 종교음악 중 자식을 잃고 만든 '스타바트 마테르'는 그의 걸작 중의 하나이며, D장조 미사, 레퀴엠, 테 데움, 오라토리오 성 루드밀라, 시편 149편, 축제의 노래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1882-1971) : 스트라빈스키는 1926년 슬라브 교회의 성찬식을 위한 음악을 작곡함으로써 종교음악 창작을 시작해, 1930년에는 자신의 진지한 신앙적 고백으로 '시편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이 곡은 간결하면서도 알찬 내용을 지닌 작품으로 20세기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곡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신앙이 전제되지 않는 종교음악은 대부분 통속적인 음악에 불과하다'라고 말할 만큼 이 작품에 종교적인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음렬주의 작법으로 몰입하게 되는 후기 작품에서 특히 많은 종교곡들을 작곡하게 됩니다. 합창과 관악기를 위한 '미사', '레퀴엠 칸티클스', 그리고 예레미아와 애가로부터 따온 성서에 기초한 성악과 관현악을 위한 '트레니' 등의 작품들이 그런 예에 속하며, 이들 중 '미사'는 실제로 교회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작곡된 것입니다.
메시앙 Olivier Messiaen(1908-1992) : 현대 작곡가들 중에서 종교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메시앙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메시앙은 평생에 걸친 창작 활동을 통해 자신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적인 작품을 남겼고, 그의 신앙은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항상 중심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메시앙은 오랜 기간 동안 파리의 상트리니테 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했고, 수많은 오르간 곡들이 바로 이 교회의 예배를 위한 음악으로 작곡되어졌다는 점은 그의 생활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줍니다. 그의 종교음악 작품들을 악기 편성별로 살펴보면, 먼저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십자가', '죄', '성찬'을 작은 제목으로 하는 '잊혀진 진상품'과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을 들 수 있습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아멘 영상'은 메시앙의 개성이 돋보이는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오르간을 위한 곡으로는 '오순절 미사', '그리스도의 승천' 등이 있는데, 오케스트라로 연주되기도 하는 '그리스도의 승천'에서 메시앙은 인도의 리듬을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메시앙은 종교음악을 특정 지역의 민속적인 요소와 결합시키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실내악 작품인 바이올린·클라리넷·첼로·피아노를 위한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작곡되었는데, 메시앙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작곡된 이 작품에서 메시앙은 몇 개의 선법과 특수한 리듬, 논리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구성방법 등을 신비주의적인 신앙과 잘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감각적이면서 초현실적인 면과, 철저하게 계산된 지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이 공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