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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강아지 해피
현실에서 이루기엔 제 아무리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꿈을 향한 도전과 의지만 결연하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이루어진 것을 가리켜 서슴없이 ‘기적’이라 말합니다.
1
남한지도를 펼쳐놓고 꼼꼼히 들여다봅니다.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바로 위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칠곡군에 속한 ‘왜관’이란 자그마한 시골읍이 눈에 띕니다.
곁엔 칠백 리 굽이쳐흐르는 낙동강을 끼고 있고, 육이오 땐 남북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던 낙동강철교가 마을을 조금 벗어난 길목의 낙동강을 가로질러 걸쳐있는 곳입니다.
읍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보면, 왼쪽 편으로유서 깊은 가톨릭계 성베네딕트회 대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보다 조금 더 올라가면 역시 왼쪽 편으로 ‘캠프캐롤’이라는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 외엔 별다른 특색이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시골마을입니다.
그 왜관읍에 새로 생겨난 변두리동네가 있습니다.
최근에 지어진 대개의 시골집들이 그렇듯 시멘트 블록담장에 슬래브나 청색기와를 올린, 그렇고 그런 집들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집이 한 채가 있습니다.
샛노란 철대문이 있고 야트막한 흰색 브론즈담장과 새빨간 지붕이 온통 초록넝쿨로 뒤덮인 집으로, 마치 그림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아기자기하고 예쁜 집입니다.
그런데 그 집은 겉보기와는 달리 언제나 대문이 굳게 잠겨있고, 드나드는 사람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담장 너머로 드리워진 나뭇가지나 형형색색의 꽃들이 즐비한 것으로 보아 안뜰에서 제법 많은 나무들과 꽃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 역력합니다.
나무들이나 꽃들을 죽이지 않고 잘 가꾼다는 것은 여간 어렵고 고된 작업이 아닙니다. 또한 온갖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지간히 부지런하지 않으면 키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집을 기웃거려본 사람이라면, 그 정갈하게 잘 다듬어진 나무들과 잘 가꾸어진 꽃들을 보고는 혀를 내두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동네사람들은 그 집을 가리켜 ‘노란대문집’, 또는 철 따라 피고지는 꽃들이 담장을 넘쳐나고 있다하여 ‘담장꽃집’으로 부르곤 한답니다.
노란대문 집 길 건너편에 위치한 동네슈퍼 노상카페에 몇몇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마침 마실나온 동네할머니가 노란대문집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놓습니다.
“저 노란대문집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길래, 일 년 열두 달 내내 얼굴 한 번 보기가 그리 어렵드노?”
슈퍼주인 아줌마가 할머니를 반기며 대답합니다.
“그러게예. 젊은 여자 하나가 가끔은 우리 점빵에 물건 사러온 적은 있었어도 도통 말을 하려들지 않아 누구누구가 사는지 알 수가 없네예. 그 외엔 그 어떤 사람도 드나드는 걸 본 적이 없어예. 그렇다고 여자 혼자 사는 집 같지는 않던데….”
“거 왜…, 혹 집안에 나돌아댕기기 힘들만큼 아픈 사람이라도 있다는 겨?”
“순덕엄마 아니, 반장님 얘기론 그집 여자로부터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인가 그쯤 된 딸애가 하나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다 카던데, 여태까지 그 애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나 봐예.”
“아무튼 저집 구석엔 뭔 비밀이 있긴 있는가 벼.”
대개 이웃끼리는 서로 자기네 집 드나들듯 드나들던 터라, 동네사람들끼리 어쩌다 모이기만 하면 의문을 더해가는 노란대문집에 대해 수근 거렸습니다.
2
그 노란대문집에는 두 다리를 전혀 쓸 수 없는데다 몸마저 허약하여 늘 이부자리를 펴고 드러누워서 지내야만하는 여덟 살짜리 순영이가 이제 서른 갓 넘긴 젊은 엄마랑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 모녀가 바깥나들이를 삼가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엄마는 원래부터 지극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인데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외동딸인 순영이 마저 두 다리를 못쓰는 불구가 된 뒤론 더욱 말수가 적어졌습니다. 이웃사람들과 공연히 얼굴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왔고요.
순영이 또한 아빠를 갑자기 잃은 것도 무척이나 슬펐지만, 더 이상 걷거나 뛰어다닐 수 없게 된 뒤론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살고 싶다는 욕구마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순영아, 딱 한 숟가락만…. 응? 딱 한 숟가락만 더 먹고, 그만 먹자.”
“싫어. 엄만 내가 밥 먹기싫다는데, 왜 억지로 자꾸 먹이려고만 해?”
가뜩이나 몸이 허약해져가는 순영이를 위해 밥 한 숟가락을 더 먹이려드는 엄마와 먹은 것마저 토할 것같이 속이 마냥 메슥거리는 순영이와의 매 끼니때마다 흔히 벌어지는 실랑이입니다.
순영이는 약 먹는 것부터 옷 갈아입는 것까지 괜한 투정으로 사사건건 엄마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 투정과 실랑이가 거듭될 수록 모녀 간에 나누는 대화도 점차 줄어들었고요. 어느덧 집안엔 숨 막히는 적요만이 흐르고, 우울한 그림자만 드리워졌습니다.
엄마는 가계형편이 날로 쪼들려갔지만, 그렇다고 저 혼자서는 꼼짝도 못하는 순영이를 혼자 놔두고는 일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순영이 뒤치다꺼리와 집안을 쓸고 닦는 것 외엔 안뜰에 무성한 나무들과 꽃들에게 애정을 쏟고 돌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지요.
끔찍한 불행일수록 늘 예고없이 찾아오나 봅니다. 한때는 순영이네도 남부럽지 않을만큼 마냥 행복했고 단란했던 가정이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땅이 움푹 꺼지듯 불행이 한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아빠가 사망하고 순영이의 하반신이 마비가 된 것도 찰나의 순간에 빚어진 사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어떻게 이루었던 가정인데….”
엄마는 엄마대로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순영이는 순영이대로 자신이 처한 상황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동네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어린이집이라 천천히 걸어가도 20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음에도 아빠는 늘 출근길에 순영이를 어린이집까지 자신의 승용차로 태워다주곤 했습니다. 어린이집이 야트막한 언덕 너머에 있었기에 다섯 살짜리 순영이가 언덕을 걸어오르기에는 무척 힘이 들었거든요.
사고 당일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아빠는 순영이를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습니다. 언덕을 거의 다 올랐고 어린이집이 눈앞에 보일 즈음이었지요.
그 순간 아빠는 중앙선을 가로질러 미친 듯이 달려들던 덤프트럭을 발견했습니다. 마침 조수석에 앉아있었던 순영이도 뭔가 크고 시커먼 물체가 확 덮쳐들었던 당시의 공포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빠의 승용차는 길 가에 설치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10미터 높이가 넘는 언덕 아래로 떼굴떼굴 굴러 전복되었습니다. 물론 순영이는 그때 이미 정신을 잃었고요.
그 사고로 아빠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순영이는 온몸이 골절되는 큰 부상을 입고 죽었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담당의사는 순영이의 상태에 대해 ‘흉추압박골절척추손상으로 인한 하반신마비이며, 현재 의술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순영이는 그로부터 반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하여 누워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온몸이 쿡쿡 쑤시고 저리는 등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의지대로 몸을 가눌 수 없다는 그 갑갑함과 무기력함으로 인해 어린 나이인데도 순영이는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해왔지요.
순영이네가 대구 삼덕동에서 살다가 이 동네로 이사온 것은 2년 전인 봄이었습니다.
아빠는 어렸을 적 왜관에 자리한 모 고아원에서 자랐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왜관에 있는 모 학교를 다녔다고 했지요. 따라서 왜관은 아빠에게 있어 고향과 다를 바 없는 곳입니다.
그 때문에 엄마는 아빠와의 연애시절에 아빠의 손에 이끌려 아무런 연고도 없던 왜관을 두 차례나 들렀던 적이 있었고, 정 붙일데가 달리 없었던 엄마는 아빠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후에 일부러 노란대문집을 사서 이사를 했습니다. 아빠의 체취가 느껴지는 동네라 덜 외롭겠거니 여겨진 것이지요.
고아원에서 보내준 중학교까지 겨우 마친 아빠는 대구로 옮겨가 신문배달이나 구두닦이 등 여러 험한 일을 해오면서도 보다 나은 미래를 맞기 위해 억척같이 어려운 복식 재단기술을 익혔습니다.
아빠는 그 뒤로 봉산동 소재의 자그마한 의류 봉제공장에 정식재단사로 취직이 되었고, 그곳에서 몇년 전부터 재봉사로 일해왔던 비슷한 처지의 엄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엄마 또한 부모를 일찍 여의고 외삼촌 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랐기에 정에 많이 굶주렸었지요. 서로가 외로웠던 터라 엄마 아빠 두 사람간의 사랑은 금방 무르익었습니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그때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엄마아빠는 살림부터 차렸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사랑의 결실로 순영이가 태어난 거랍니다.
3
어느 날 엄마가 느닷없이 한줌 크기의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누런 강아지를 껴안고 순영이 방에 들어섰습니다.
태어난지 채 한 달도 안돼 보이는 아주 어린 강아지였는데, 귀염성 있는 얼굴에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지녔으나 온몸이 땟국에 절어있고 뒷발 모두 오그라들어 제대로 걷지를 못했어요.
“요 강아지가 저 위 동네 쓰레기통 속에 버려져있더라고…. 하도 애처롭게 울어대기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두 다리를 못쓴다하여 키우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린 모양이야. 어떻게 살아있는 강아지를 함부로 내다버리는지 이해가 안돼.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나쁜 사람 같으니…. 너무 불쌍해서 데려왔다.”
사실 엄마는 순영이 때문에 강아지 키울 형편이 아니라 여겨왔습니다. 강아지에게서 빠지는 털도 누워지내는 순영이한테 좋을게 없지만, 순영이가 원래부터 개나 고양이를 무서워했거든요.
그렇지만 두 다리가 성치 않은 채 버려진 강아지를 봤을 땐, 순영이가 겪고 있는 아픔을 강아지도 겪고 있다 여겨져 앞뒤 잴 겨를
없이 덥석 안고 온 거랍니다.
강아지를 힐끗 쳐다본 순영이는 얼굴을 찡그렸어요.
“똥강아지네?”
“순영아, 털이 누렇다고 무조건 똥강아지는 아냐. 자 봐라, 요놈이 얼마나 똘똘하게 생겼고 또 얼마나 귀여운지. 게다가 암놈이란 말이지.”
“싫어, 더러워. 똥냄새 나고 징그럽단 말야!”
순영이는 첨에는 강아지가 징그럽다며 이불을 덮어쓰고 들여다보려고 하지를 않았습니다.
엄마는 강아지를 깨끗하게 목욕시키고, 볕이 잘 드는 창가에 라면박스로 보금자리까지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강아지가 좀처럼 가만있지를 않고 그 성치 않은 다리로 온갖 데를 다 쏘다니며 어지럽히는 거예요.
엄마가 잠시 한 눈 판 동안 어느새 강아지는 순영이 방에 기어들어갔고, 누워있던 순영이 머리께로 다가가 낑낑대는 거예요.
“엄마, 엄마! 내 방에 똥강아지 들어왔어. 얼릉 치워!”
순영이는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낑낑대는 강아지를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그 앙증맞은 앞발로 얼굴을 톡톡 건드리며 재롱 피우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보면 볼수록 순영이도 강아지를 미워할 수 없게 된 거예요.
“아니, 강아지가 어느새 이 방엘 들어왔네?”
엄마가 황급히 달려와 강아지를 데려가려 했어요.
“엄마, 잠깐만….”
그때까지 계속 누워서만 지내왔던 순영이가 강아지를 안고 싶은 욕심에 상체를 일으키려 움찔거렸습니다. 여태까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죠.
“아니, 왜?”
“쬐끄만 강아지가 넘 불쌍해.”
“오, 그래?”
엄마는 ‘별일이다’ 싶어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금방 활짝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노상 찌푸리고 있었던 순영이의 얼굴에 안타까움과 함께 모처럼 띈 맑은 웃음을 발견했으니까요.
“엄마, 강아지 이름은 뭐라예?”
“응, 아직 못 지었는데…, 우리 강아지 이름을 뭘로 지을까? 순영이가 이름을 지어줄래?”
순영이는 미간을 잔뜩 찌푸려가며 ‘복실이… 누렁이… 미미… 금실이… 잔디…’ 등등 여러 가지 예쁜 이름들을 떠올렸습니다.
“음…. 엄마, 얜 여자 아이니까… 해피가 어때?”
“응, 해피…. 그것 괜찮은 이름 같은데? 근데 넌 해피가 뭔 뜻인지 아니?”
“엄만, 그것도 몰라? 해피가 행복하다는 뜻이래.”
“그래? 해피라…. 해피 때문에 순영이가 행복해진다면야….”
똥강아지 해피는 그때부터 순영이에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동생이자 단짝 친구가 되었던 거예요.
해피는 정말 못말리는 말썽꾸러기입니다. 아무거나 입에 닿는 것은 모두 물어뜯어 못쓰게 만들었고, 어지럽히기도 잘했어요. 뿐만 아니라 오줌똥을 아무데나 싸서 그 때문에 늘 치우고 닦아야만 했습니다.
“해피야, 계집애가 그러면 안돼. 아무데나 오줌 싸고 똥 싸고….”
화장지를 뽑아들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순영이를 발견하고 엄마가 달려왔습니다.
“그냥 내비둬라. 내가 치울께.”
“엄만, 엄마 할일이나 해.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치울 수 있단 말이야.”
첨에는 해피로 인해 어지럽혀진 것을 엄마가 일일이 치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순영이가 불편한 몸을 마다않고 치우겠다며 나섰습니다.
두 다리를 질질 끌며 해피가 어질러놓은 것들을 치우고 있는 순영이가 안쓰러워 엄마가 대신 치워주겠다 하여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렇다고 불평 한 마디 내뱉지 않는 순영이가 여간 대견하다 여겨지지 않을 수 없고요.
그때부터 엄마가 놀랄만큼 순영이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해피가 사료를 맛있게 다 먹어치우면 순영이도 뒤질세라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먹어치웠고, 해피가 여기저기 뽈뽈거리며 기어다니면 순영이도 해피 뒤를 따라 엉금엉금 기어다니곤 했지요.
밤낮 누워서만 지내려했고, 밥 한 그릇을 다 먹이려면 기진맥진할 지경으로 애를 먹였었는데….
그러니 엄마 입장에서는 해피가 절로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나 다를 바 없었지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날 즈음, 핏기가 없던 순영이의 두 볼엔 발그레 홍조를 띄게 되었고, 밥을 먹는 양도 점차 늘어갔어요.
4
해피는 날이 갈수록 털에 윤기를 더해가며 살도 토실하게 쪘습니다. 뿐만아니라 아픈 뒷다리를 질질 끌면서 자꾸 걸으려고 용을 쓰는 거예요. 그리고 그러한 시도가 무의미하지 않았던지 점차 아랫배가 방바닥에서 벌쭉이 들리고는 뒷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것이 마치 걷는 듯 보였습니다.
“엄마, 엄마! 해피가 걷는 것 좀 봐. 뒷다리로 막 걷는거야.”
“어쩌면…. 정말 해피가 걷네?”
해피가 걷는 모습을 지켜보던 순영이에게도 절로 욕심이 생겼습니다. 해피에게 질 수는 없잖아요.
“엄마, 해피도 걷는데, 나도 걸어볼테야.”
엄마는 순영이의 기대에 찬 말에 가슴 속으로부터 기쁨이 샘솟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되었어요. ‘회복이 불가능하다’란 병원진단을 떠올렸고, 그로인해 또 다시 순영이에게 좌절을 안겨줄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죠.
그러나 엄마의 그런 우려와는 달리 어느 순간 순영이에게도 기적같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거예요.
순영이는 해피와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감각조차 없는 다리라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먹은 것만큼 따라주질 않았어요. 그때마다 순영이는 훌쩍훌쩍 울기도 했고, 낙담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해피가 워낙 열심히 움직였고, 조금씩 나아지는 해피의 걷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힘들수록 오히려 오기가 더 생기는 거예요.
“칫…, 두고 봐. 나도 너처럼 걸을 수 있게 될테니까….”
어느 날부턴가 순영이도 자연스레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되었고, 휠체어를 타고 문밖으로 나갈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 다리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발끝부터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발가락끝이 옴찔거려졌습니다. 감격에 겨운 모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순영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은 엄마는 담당의사로부터 기적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이십 년 넘게 이 같은 환자들을 진료해왔는데, 이 같은 경우는 처음 봅니다. 완전히 죽어있던 신경이 어떻게 되살아났는지…. 이런 경우 기적이 아니고서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겠죠.”
척추손상으로 인한 영구하반신마비란 병원진단을 뒤엎고 미미한 신경이 되살아난 것이지요. 이는 전례가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엄마는 물론 순영이도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기분이 들떴어요.
“우리 딸…, 엄마는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단다. 아빠도 저 세상에서 우리 딸 걷게 된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뻐하시겠니. 우리 순영이가 부지런히 물리치료를 받고, 또 열심히 운동하면 예전처럼 다시 뛰어다닐 수 있게 된다니…. 엄마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애.”
“엄마, 나 땜에 그동안 엄청 힘들었지예?”
“우리 딸, 힘들긴 뭘…. 그보다 우리, 해피한테 늘 감사하단 마음을 지녀야겠다.”
“예, 엄마.”
“해피가 우리에겐 큰 은인이야. 우리 딸한테도 그렇지만, 엄마한테는 더더욱….”
“응, 엄마. 우리 해피 잘 키우자.”
“그럼, 당연하지. 해피가 우리 곁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꿈같은 일이 벌어졌겠니?”
“그리고…. 엄마, 나도 학교에 다니고 싶어. 친구도 사귀고 싶고….”
“그래? 그럼 내일 당장이라도 학교에 입학하자꾸나.”
“정말? 와! 신난다!”
순영이네가 이사온 뒤로 2년여 동안 굳게 닫혀있었던 노란대문이 마침내 활짝 열렸습니다. 그때부터 동네아이들과 어른들도 순영이네 집에 드나들기 시작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