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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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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료 스크랩 은사주의 비판-2
sarmy 추천 0 조회 27 08.08.28 15:4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은사주의 비판-2

 


 

  제7장    하워드-브라운: 환희와 신비의 사자

소위 환희의 사자로 전세계에 잘 알려진 하워드-브라운은 "거룩한 웃음 부흥"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이 설교자는 지난 3년간 북아메리카 대륙을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번 장에서 우리는 하워드-브라운의 신학, 사역, 그리고 그가 은사운동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또한 우리는 최근에 그의 사역과 메시지가 어떻게 온 세상으로 퍼지게 되었는가를 알아보려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하워드-브라운은 북아메리카 교회에 기쁨을 회복시켜 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1987년에 미국에 왔다. 그는 레마 성경 학교(Rhema Bible School) 출신인데, 우리는 이 학교가 미국 오클라호마주 브로큰보우에 소재한, 케네스 하긴(Kenneth Hagin)이 운영하는 같은 이름의 학교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어찌되었든지 하워드-브라운의 신학은 케네스 하긴의 신학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가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하워드-브라운이 주관하는 예배는 대개 간증과 지난번 예배 때 일어났던 일들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제 설교란 거의 없다. 또한 설교의 내용은 맥코넬(D. R. MeConnell)이 자신의 저서 「다른 복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

하워드-브라운은 케네스 하긴(Kenneth Hagin), 베니 힌(Benny Hinn), 케네스 코프랜드(Kenneth Copeland) 등과 같이 "말하는 대로 믿으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소위 "말-믿음"(Word-Faith) 선생들의 건강과 부귀의 복음과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남의 복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책에서 하워드-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안에 들어오시면, 집안을 청소하신다. 따라서 당신의 삶의 형태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은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당신의 결혼 문제도 좋아지며, 악화된 재정도 회복되고, 병든 몸이 낳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 의미하는 바이다."

 

물론 우리는 거듭남을 경험한 이후에 모든 것이 달라지고 위에서 하워드-브라운이 나열했던 것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쉽사리 인정한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말-믿음"만을 주장하는 이단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거듭나게 되면 재정적 번영과 육체의 병 고침을 받는 것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비록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암시함으로써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 하워드-브라운은 자신이 성경의 진리를 크게 오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청지기직에 대해 생각해 보며」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당신이 가난과 병으로 찌들린 가정에서 자랐다면 분명히 그런 것들로 인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일어나서 그것들을 꾸짖어야만 한다. 만일 그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구원받았으나 여전히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될 것이다. 만일 당신들이 새로 결혼한 부부라면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것을 달라고 선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당신들은 이제 이렇게 기도해야만 할 것이다. '가난아, 이제부터 너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라. 이제부터 우리는 너를 집안에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가난 네가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이렇게 선포함으로써 당신은 당신의 삶의 여정을 확정지을 수 있다."

 

이 같은 긍정적 고백, 즉 정신-과학 신학(Mind-Science Theology)은 "말하는 대로 믿으면 다 이루어진다."고 지금까지 가르쳐 온 극단적인 "믿음 만능 주의자"들의 메시지와 거의 유사하다. 과연 하워드-브라운이 남아프리카에서부터 이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혹은 미국에 와서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자주 만나면서부터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는 성경의 진리를 크게 오해하고 있다.

 

병 고침에 대한 그의 관점 역시 축복과 번영에 대한 관점만큼이나 비성경적이다. 그는 자신이 여러 사람들을 고쳤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것도 기록에 남겨져 있거나 증명되지 않았다. 「성령 안에서 움직이며」에서, 하워드-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나로 하여금 귀머거리나 암에 걸린 사람들을 치료하게 하신다.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내 사역을 통해서 많은 암 환자들이 고침을 받았고 관절염 환자들도 고침을 받았다. 물론 나는 소경이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귀머거리가 듣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집회에서는 소경들이 눈을 떴다. 뉴욕의 브롱스에서 열렸던 저녁 집회에서 나는 에이즈에 걸린 일곱 사람을 위해 기도했다. 당신은 이런 상황에도 대비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해야만 한다."

 

계간지인 「개인의 자유로운 복음 전도」라는 잡지에서 피셔(Richard Fisher)는 이렇게 말한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의 이름이나 고친 날짜 등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이 같은 주장에 대한 객관적 증명도 없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또한 피셔는 같은 기사에서 예수님에 대한 하워드-브라운의 견해가 아마도 그의 신학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부분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예수님에 대한 하워드-브라운의 관점은 참으로 왜곡된 것으로서, 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거하는 동안 하늘에 있는 자신의 신성을 버렸고, 따라서 단순히 땅에 속한 예언자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정통 기독교회는 지금까지 땅에 계신 예수님께서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완전하신 인간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하워드-브라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이루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성경은 그분께서 이 땅에 거하는 동안에 단지 아브라함과의 계약 하에서 선지자로서 일했던 것이라고 말한다."「하나님의 손길」

 

도대체 성경 어디에서 예수님께서 신성을 버리고 인성만 갖고 계셨다고 말하는가?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주장이다. 이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개 선지자로 보는 이단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소위 기독교 사역을 한다는 사람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비록 하워드-브라운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그런 성경 구절을 댈 수 없다. 또한 피셔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의 기름 부음 때문이었다고 하워드-브라운이 믿고 있음을 지적했다. 피셔는 이렇게 설명을 한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은 예수님보다 성령님을 더 능력 있는 분으로 만들며, 결국 예수님께서 성령님과 동등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이상한 생각은 결국 한 하나님이 아니고 세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안녕하세요, 성령님?」의 저자인 엉터리 베니 힌(Benny Hinn)은 "한 하나님 당 세 명의 신(神)이 있으므로 결국 하나님은 아홉 명의 신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베니 힌에 대해서는 부록에 더 상세히 기술되어 있음.) 이 같이 비이성적인 신학은 케네스 하긴의 극단적 믿음 메시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궁극적으로는 믿음 운동의 할아버지로 불리는 형이상학적 신비주의자 케년(E.W.Kenyon)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케네스 하긴은 "믿음 운동"과 현대판 케년주의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책에서 케년의 말을 마음대로 인용했다.

 

             브래남의 열렬한 팬

하워드-브라운이 존경하는 또 다른 신비주의자는 윌리암 브래남(William Branam)이다. 브래남은 "늦은 비 운동"이 활발했을 때, "믿음-병 고침"의 기치를 들고 활약한 자로서 교회 내에 예수유일 오순절주의(Oneness Pentecostalism)를 퍼뜨렸고, 이브와 루시퍼가 성적 관계를 가졌다는 믿음을 퍼뜨린 장본인이다. 1951년에 미국 하나님의 성회가 공식적으로 비난 성명을 발표한 "늦은 비의 새질서 운동"의 요지들을 하워드-브라운이 동경한다는 사실은 그가 "늦은 비 운동"의 주장을 좋게 생각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늦은 비 운동"의 교사들처럼, 하워드-브라운은 어떤 은사나 사역이 안수나 그와 비슷한 행동에 의해 전달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안수하거나 대언함으로써 혹은 "충만케 되라고" 명령함으로써 기쁨과 성령 충만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또한 그는 "늦은 비 운동"에서 배워 온대로 자신의 사역이나 영적 현상에 대해 신학적으로 조사하거나 가르치는 것에 대해 매우 나쁘게 말한다. 그는 이미 비지성인(非知性人) 캠프에 자신의 발을 들여 놓았다. 이것은 "늦은 비 운동"을 주장하는 자들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대부분의 은사주의자들의 특징이다. 그들은 어떤 것이 교리적으로 옳은가를 살펴보기보다는 경험과 감정만을 중시한다.

 

              현상은 어떻게 생기든 상관없다!

하워드-브라운 역시 다른 무엇보다도 감정과 경험을 중시하며, 그것을 일으키는 영(the spirit)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자, 이제 「다가오는 부흥」이라는 책에서 그가 한 말을 살펴보자.

"나는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봐 겁을 먹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교회보다는 차라리 마귀의 것 혹은 육체적인 어떤 것이 일어나는 교회에 있는 것을 택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며 열중함으로 육체적인 것에 빠진다. 그러면 다른 신도들은 화가 나서 이것이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 모두 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기뻐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집회에 참석해서 마루 바닥에 넘어진 채 성령 안에서 웃던지 혹은 마귀에 의해 육체적으로 그런 일을 하던지, 최소한 그 사람은 술 취하거나 마약을 먹은 것은 아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진술인가? 나는 과연 이런 진술이 불경스럽다고 해야 할는지 혹은 어리석은 것이라 해야 할는지 혹은 미친 것이라 해야 할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영적으로 속이는 것이 술 취하는 것이나 마약을 먹는 것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죄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만일 이런 말이 위험하지 않거나 혹은 많은 신자들이 그런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이처럼 우스운 말에 대해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그저 웃으며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엉터리 같은 말에 속아넘어가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그의 메시지나 우리가 읽어본 그의 책 안에는 단 한번도 성경과 비교해 보라는 충고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단 한번도 없다. 하워드-브라운과 소위 "웃음 부흥"에 참여하는 지도자들과 추종자들이 주는 충고는 단지 무조건 참여하고 느껴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누가 그런 모임을 인도하는지를 알아보기 전에는 그런 행진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는 성령님께서 이런 미친 짓을 주도하신다고 믿지 않는다.

토저(A.W.Tozer)는 「성공과 크리스천」에서 이렇게 썼다.

 

"선한 가르침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만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지 않은 것은 결코 선한 것이 될 수 없다. 나는 성경대로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만일 해처럼 빛나며 온 우주보다도 더 넓은 날개를 갖고 있는 천사장이 내게 와서 어떤 새로운 진리를 준다면, 그에게 출처가 어디냐고 물을 것이다. 만일 그가 성경 안에서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미안하지만, 당신은 내게 전혀 출처를 보여 주지 않으므로,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처럼 육체적 어리석음으로 인해 넘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광적인 것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국내의 유명한 교계 지도자들이 하워드-브라운을 인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성령 바텐더'(Holy Ghost Bartender)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점점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워드-브라운은 너무나 감정과 경험만을 강조하며, 그의 또 다른 계시들은 더욱 더 사람들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자신의 추종자들을 한번에 여러 시간 동안이나 마루에 찰싹 달라붙게 만드는 소위 '성령 풀'(Holy Ghost Glue)이라는 것에 대해 그는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또한 이미 틀린 것으로 판명난 예언들을 부추긴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그의 계시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은 기적적으로 사람이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는 것이었다.

 

「성령이라는 분의 실체」에서 하워드-브라운은 이제 성령께서 사람들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날라가시면, 당신들은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들 중 얼마를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옮겨 놓으신다면, 당신들은 도착지에 이를 때까지 비명을 지를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절대적으로 옳다. 나는 분명히 비명을 지를 것이다. 비록 내가 비행기표를 사지 않아도 되므로 돈을 절약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공중 투시(육체 이탈)와 같은 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돈을 맡은 선한 청지기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것은 결코 웃어서 넘겨 버릴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고 서인도 제도의 원주민들의 부두(Voodoo) 의식을 집행하는 여사제나 마술사들로부터 신비주의 현상들을 빼내어 교회 내로 갖고 들어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주장은 설교시에 아무 의미 없이 행해진 것으로 변명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불경건한 주장이며 동시에 위험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반드시 알려져야만 하며, 깨달은 이들은 적극적으로 이에 반대해야만 한다.

 

              성령 에어로빅 강사

다음은 웃음 부흥회에 대해 데이저(Al Dager)가 저술한 미디아 스프트라이트 보고서(Media Spotlight Report)에서 발췌한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하워드-브라운의 부흥회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도록, 우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에 소재한 '카펜터의 집 교회'(Carpenter's Home Church)에서 열렸던 부흥회 모습(TBN방송으로 방영됨)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에서 그대로 옮기려 한다. 앞으로 보게 될 내용은 사실과 똑같으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던 그의 다른 집회의 내용과 거의 다를 바 없다.

 

하워드-브라운이 설교를 하는 도중에도, 청중석으로부터 간간이 우우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분위기는 그리 무질서하지 않았다. 성령의 은사와 기름부음에 대해 설교한 뒤, 그는 곧바로 전 날밤 집회 때 정신과 의사의 검사를 받아야겠다고 말한 어떤 목사를 지적해 앞으로 나오게 했다. 오늘밤 성령이 갑절로 임할 것을 약속하면서 하워드-브라운이 그 사람 위에 손을 얹었는데, 그러자 마자 그 남자는 마루에 넘어졌다. 그러자 하워드-브라운은 그 사람의 배에다 자기 발을 올려놓더니 이제 이 사람은 영원히 변화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런 광경으로 인해 청중들은 웃기 시작했으며, 이 사실은 자신이 청중들을 웃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주장을 일축시킨 것이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도대체 왜 당신의 발을 그 사람 배에 올려놓습니까?" 그러자 그는 "몸을 구부려 내 손을 그 사람 위에 놓고 싶지 않아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또다시 청중들이 웃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그곳은 무질서해지기 시작했다. 자기 발 밑에 있는 사람을 내려다보며 그가 말했다."좋습니다. 당신 배로부터 그 공기 방울을 내뱉으세요." 그러자 그 사람은 좀더 어렵게 웃었다. "더 많이!" 발에 깔린 그 사람은 점점 더 어렵게 웃었다. "더 많이!" 그는 웃으려고 매우 노력했다. 하워드-브라운은 깔깔대고 웃으라고 강요하기 시작했다. "더 많이!" 그러자 그 사람은 다리를 쳐들고 막 구르며 "하! 하! 하"하고 웃어댔다. 그러자 하워드-브라운은 "이것이 바로 성령 에어로빅이라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청중들은 그 말을 매우 좋아했다.

 

그 뒤 하워드-브라운은 그 목사의 아내에게도 비슷하게 행했다. 뒤로 넘어진 채, 그녀는 조용히 기도했다. 그러자 하워드-브라운은 그녀에게 기도하지 말라고 말하며, 대신에 "기쁨! 기쁨! 기쁨!"을 외치며 기뻐하라고 말했다. 그 뒤 청중들은 한명 한명 그가 주는 기름부음(즉 웃음)을 받게 되었다. 웃지 않는 사람에게 그는 웃으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그로부터 이렇게 웃으라는 촉구를 받았다.

 

어떤 남자가 거기에 누워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 하워드-브라운이 그 남자에게 말했다. "이제 기도를 그만하고 기쁨이 당신의 배에서 넘쳐 나오게 하십시오. 기쁨, 기쁨, 기쁨 말입니다. 기도하지 말고 웃으세요!" 그러자 청중들은 더 크게 웃기 시작했고, 그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 다니며 웃을 것을 촉구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워드-브라운이 어떤 사람을 발로 찼다. "당신도 당신의 배에서 기쁨이 넘쳐 나게 할 필요가 있어요. 기도를 그만두고 기쁨이 넘쳐 나게 하세요. 내가 분명히 말했지요, 기도하지 말라고. 배에서 기쁨이 넘쳐 나게 하세요. 배에서 기쁨이 넘쳐 나게 하세요."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당신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배에서 기쁨이 넘쳐 나게 하세요. 여기는 기도하는 데가 아니에요. 기쁨! 기쁨! 기쁨!" 청중들은 점점 더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거룩한 웃음"은 갑자기 일어나며 조절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과는 달리,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보면, 그것은 많은 경우에 반강제적으로 부추김을 받아 일어났다. 자기가 발로 내찼던 첫 번째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는 그 사람을 심하게 꾸짖었다. "왜 도대체 당신은 설교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까? 왜 도대체 당신은 설교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까? 분명히 제가 웃으라고 했지요!" 그 사람은 이제 강압에 눌려, 협박을 받아 가면서 웃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다. 거룩한 웃음이 갑자기 일어나며 조절할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은 이렇게 엉터리 같은 것이었다.

 

이 때부터 하워드-브라운은 자신의 웃음 행진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 이들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뚱한 얼굴을 한 채, 그는 계속 그 일을 진행했다. 어떤 사람들이 말했다." 하워드-브라운 형제님, 저는 이런 기쁨을 원치 않아요." 그러자 그는 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이 사람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 내 증조부는 늘 우울했습니다. 내 할아버지도 우울했고 내 아버지도 우울했습니다. 아버지는 죽기 바로 전에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너도 우리 가족의 전통을 지켜 나갈거니?' 그때 나는 '네, 아버지'하고 대답했습니다."

 

하워드-브라운이 이렇게 농담을 하면서 웃음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을 조롱하자, 청중들 역시 그들을 조롱하기 시작했고 웃으며 꽥꽥 고함치기 시작했다. 성령에게 자신을 열지 않는 사람들을 "보기 흉한 것들"이라고 농담조로 부르면서, 하워드-브라운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사람의 앞머리를 쳤다. 그러자 그 사람은 뒤로 넘어지며 공중에서 손과 발을 막 떨었다. 청중들은 계속해서 웃어댔다.

 

어떤 사람이 앞으로 나와, 하워드-브라운의 손에 의해 넘어진 뒤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워드-브라운이 그 사람에게 소리쳤다. "이제 기도하는 것을 집어치고 기뻐하세요. 기도는 집에 가서나 하란 말이에요.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하긴 만일 그들의 기도가 효과적이었더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겠지요."

 

그러자 청중들로부터 더 많은 웃음이 나왔다. 그 뒤 그는 안수하는 것에 대해 설교를 하며 "당신들도 안수함으로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고, 그들의 병을 고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을 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안녕하세요? 성령님"의 저자인 은사주의자 베니 힌처럼, 하워드-브라운 역시 자기 손을 흔들었고 그러자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는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말한 것을 인용했다.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대로 술취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앞자리에 앉은 부인에게 안수했고, 그러자 그녀는 반복해서 비명을 지르며 중풍병 환자처럼 자기 손을 막 떨었다. 그는 그 여자가 목사의 부인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사실, 앞줄에는 거의 다 목사들과 그들의 부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술 취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술취한 사람처럼 계속 같은 말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하나가 머리를 뒤로 젖히더니 마음껏 웃고는 공중으로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갑자기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조그맣게 원을 돌면서 기차처럼 움직이는 동작을 했다. 그리고는 하워드-브라운을 바라보더니, 앞으로 한발을 쭉내밀다가 엉덩방아를 쪘다. 그때 어떤 사람이 또 자리에서 일어나 기차처럼 움직이며 팔을 활짝 벌리며 돌더니 마루에 넘어졌다. 바로 그 뒤 첫 번째 사람이 일어나더니 술취한 사람이 짓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비틀거리며 하워드-브라운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것은 분명히 의도적으로 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워드-브라운과 청중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었다. 갑자기 두 번째 줄에서 어떤 남자가 일어났는데, 그 사람은 느슨한 바지와 스포츠 잠바를 입고 있었고, 열린 잠바 사이로는 멜빵이 보였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멜빵에 끼더니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코미디 극에서 나오는 전형적인 원맨쇼를 하며 능글맞게 웃어댔다. 코밑으로 청중을 내려다보며 그는 앞뒤로 왔다갔다했다. 그러더니 자리에 앉아서 자기가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떡끄떡 하면서 하워드-브라운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물론 하워드-브라운은 그 모든 것을 매우 즐거워했다.

 

              하워드-브라운 뒤에는 과연 누가 있는가?

아마도 북미 대륙에 이 같은 "웃음 현상"을 도입한 사람이 하워드-브라운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영적 대혼란을 확산시키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은 여럿이나 된다.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에 소재한 '카펜터의 집 교회'의 스트래더 (Karl Strader) 목사는 이 같은 광적 현상을 조장시킨 장본인으로서, 1993년초 자신의 교회에 하워드-브라운을 초청해서 몇 주간에 걸쳐 집회를 갖은 뒤에도 또 다시 그를 자신의 교회로 초청했다. 그 외 유명한 은사주의자들도 그의 집회에 참석하거나 자신들의 사역에 하워드-브라운을 초청했고, 스스로 "웃음 충만"을 받았다. 이렇게 "기쁨 충만"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거짓말장이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리차드 로버츠(Richard Roberts) 그리고 웰리와 매리린 히키 부부(Wally and Marilyn Hickey) 등이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을 승인한 사람들로는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과 케네스 코프랜드(Kenneth Copeland)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두 명은 자신들이 하워드-브라운의 축복을 받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다음은 이 운동에 대한 팻 로버트슨의 생각이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큰 물결 속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우리는 이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것이 매우 고무적인 표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같은 발언의 주인공은 늘 자신의 신학, 직함, 주장, 그리고 양말을 바꿔 온 사람이다.

코프랜드는 이에서 한술 더 뜨며, 이 같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거부하는 사람은 죽게 될 위험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1994년 10월호 「승리의 소리」잡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근래에, 여러분께서는 어떤 이에게 말을 걸어 지난주에 교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할는지도 모른다. '말도 마세요. 굉장했어요. 하나님의 영광이 너무나 강력해서 발을 저는 사람 10명을 고쳤고, 30명이나 되는 귀머거리의 귀를 열었고, 7명의 암환자를 고쳤고, 말만 많이 하는 형제와 분열을 일으키는 자매를 죽여 버렸지요."

그 뒤 그는 다음과 같은 엄숙한 경고를 한다.

 

"하나님의 불이 타기 시작하며 성령의 강이 흐르려 할 때, 크리스천들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해야만 한다. 성령님께 굴복하고 회개함으로 그 죄를 내놓든지 혹은 하나님의 영의 홍수를 저항하여 그것에 떠밀려 가든지 둘 중 하나이다."

여기서 코프랜드가 말하는 '그 죄'란 바로 그와 다른 오순절/은사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코프랜드 같은 사람들은 "터론토 축복"이야말로 크리스천들이 은사운동을 인정하며 그것에 따르느냐 아니냐 혹은 자신들의 교리가 맞느냐 틀리느냐를 결정하는 시금석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어떤 극단적인 이들은 이 같은 성령의 쏟아 부어 주심을 받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 이제 다음에 나오는 어떤 예언자의 예언 속에 들어 있는 위협조의 음성을 들어 보라! 다음의 진술은 이 같이 탈선한 운동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이 운동이 옳은가를 시험해 보려는 사람들과 이미 그 덫에 걸린 사람들을 겁주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튼 이 예언은 "터론토 축복 운동"의 지도자의 부인이 1995년 10월에 말한 것이다.

 

"당신 주변에서 여러 가지 기적들이 일어나며 표적과 이적이 발생하고 성령의 채워 주심과 기쁨 그리고 그 외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능력의 때에, 즉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 때에, 주님께서는 '선택하라, 선택하라, 선택하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때 당신은 '내가 주님으로부터 악이 아니라 선을 받을 것인가?'라고 말했던 욥처럼 할 것인가? 아니면 당신은 선한 것과 악한 것 모두를 취할 것인가?"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제 당신이 취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대로 모두 취하고, 당신이 가질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대로 모두 취해 가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 내에 큰 분열이 생기고, 사람의 원수가 바로 자기집 사람들이 되며, 당신의 부모가 당신을 비난하고 비방하며, 당신이 이단에 빠졌다고 할 날들이 오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당신의 아들딸들은 '우리 부모님은 미쳤어요.'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집에서는 애통함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 당신들 가운데도 형제들 가운데 분열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주님께서 싫어하시며 가증히 여기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 중 하나는 진리라는 이름 하에 고의적으로 사랑을 내버리고 증오를 일으키며,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교회 내에서 분열을 일으키며 파괴시키는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올바른 말이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주님께서도 잘못된 것을 고치시며,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며,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나누며, 그분의 손과 발을 나누며, 발과 발가락을 나누는 분열을 미워하신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 날에, 곧 심판의 날에 그렇게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보다 소돔과 고모라가 더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열은 반드시 생길 것이고, 이것은 현재 교회 내에서 이스트처럼 퍼지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 주님께서는 당신들이 보아 온 것을 보고, 당신들이 귀로 들어온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당신들이 보아 온 하나님의 열매를 본 뒤, 과연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니 끝까지 견뎌 구원을 받든지 혹은 믿음의 말씀을 죽여 버리고 분열을 일으키며 자신의 의로 의롭게 되고 교회를 나누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밤에 주님께서는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것인지 아닌지를 당신이 마음속에 결정하기를 원하시며, 당신의 신앙고백대로 살도록 당신이 부름 받았듯이, 그 같은 결정에 따라 살 것을 요구하신다."

단지 이처럼 이상한 현상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 같이 위협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서 있느냐 서 있지 않느냐를 기준으로 해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며, 우리가 방언을 하느냐 혹은 우리가 예배 시간에 소름 끼치게 웃느냐, 혹은 기타 다른 우스꽝스러운 의식에 참여했느냐에 따라 심판하시지 않는다.

 

이 같은 발언이야말로 "거룩한 웃음"에 대해 「카리스마」잡지가 처음으로 논평을 했을 때 스트랭(Stephen Strang)이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의 마음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하라고 하신 판단이 아니다. 우리는 예언과 열매와 교리를 판단할 수 있으나, 마음은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스스로 임명하고 스스로 기름 부음을 받은 예언자들은 이런 웃음 운동에 참여하느냐 참여하지 않느냐에 따라 누가 구원을 받으며 누가 구원받지 못하는가를 이미 결정해 버렸다.

 

 

제8장    왜 "터론토 축복"인가?

터론토는 여러 종류의 문화적 영적 유산을 지닌 번창하는 도시이다. 최근에 터론토는 소위 "거룩한 웃음 부흥"의 메카가 되고 말았다. 이 같은 명성과 함께 지난 18개월간 터론토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하이테크를 자랑하는 이 현대 도시는 여러 가지 볼 것들과 행사들로 인해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여행자들과 사업가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에는 어떤 새로운 것이 터론토 블루제이스 야구팀이나 다른 유명한 관광 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터론토로 불러 들였다.

 

이 새로운 관광 명소는 다름 아닌 피어슨 국제 공항에 위치한 빈야드 교회로서, 이 교회의 건물은 예전에 비행기 격납고로 쓰이던 것이다. 터론토 공항 빈야드 펠로우십(Toronto Airport Vineyard Fellowship)이라는 공식 명칭의 이 교회는 일년도 채 안된 기간에 25만명의 방문객을 맞아들였다. 공식 기사에 따르면, 여러 교단에 속한 20,000명이 넘는 목사들이 세계 50여개국 이상에서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들이 터론토에 오는 목적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하는 것일까? 또한 그곳 주민들이 일주일에 엿새씩이나 밤마다 서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예배는 보통 저녁 일곱시경에 시작되어 새벽 한시나 두시까지 계속된다.

 

             여러 가지 현상들

방문객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축복" 즉 "터론토 축복"을 받기 위함이다. 이 같은 축복의 골자는 '웃는 것', '소리지르는 것', '몸을 떠는 것', '넘어지는 것', '비명을 지르는 것', '날카로운 소리로 외치는 것', '씩씩거리는 것', '나귀 소리를 내는 것', '사자처럼 부르짖는 것', '꼬꼬꼬꼬 암탉 소리를 내는 것', '개처럼 짖는 것', '꿀꿀꿀꿀 돼지 소리를 내는 것' 등과 같은 경험이다.

약 3년 전에 우리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반대하는 말을 했을 때, 사람들은 마치 내가 정신 나간 사람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과연 이 같은 현상을 모두 언급하는 것 자체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확신하지 못했다. 사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일은 몇 달 지나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웃음 운동"은 계속해서 커지기 시작했으며 오순절/은사주의 교단의 주류 안으로 파고 들어갔고, 심지어 오순절/은사운동 교단에 속하지 않은 비주류 안으로까지 들어갔다. 지금도 어떤 이들은 위에서 보여준 수치에 대해서 말하거나, 혹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거하는 도시에서도 이런 것을 접하게 될 거라고 말하면 그것이 좀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대중매체의 보도

사람들은 시사 주간지 「타임」이나 「뉴스 위크」그리고 여러 TV 뉴스 프로그램이 이 같은 현상, 특히 터론토에서 일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른 도시에서 생기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하자 그 현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다음은 캐나다 방송 회사의 "일요일 아침" 뉴스 프로그램의 기사 내용이다. 이 기사와 함께 TV 화면에는 방언으로 기도하며 웃으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비행기가 몇 분마다 한대씩 터론토 피어슨 공항에 착륙하며, 터론토 빈야드 교회에 가는 승객을 수송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600개의 빈야드 교회가 있으나, 터론토 빈야드 교회는 성령께로 가는 직통전화를 갖고 있어, 전세계에서 4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날으는 카펫 게임'을 하거나 '거룩한 존재'와 함께 깔깔대며 웃거나 방언을 말하기 위해 날아들었습니다. 이미 정립되어 확고부동한 교회들은 경계심과 질투심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의 예배를 더 활기 있게 만들지 못하므로, 터론토 공항 교회를 마귀의 작품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방송에서 제시한 40,000명이라는 수치와 내가 위에서 제시한 250,000명을 비교해 보면, 이 방송 이후에 200,000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기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보도한다.

"젊은 여인이 눈을 감은 채 마루에 누워 있습니다. 그녀가 말을 시작하자, 그녀의 몸이 조금씩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제할 수 없이 웃거나, 울거나,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매우 크며 광적인 웃음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이것이 바로 빈야드 교회가 소위 성령이 주는 웃음과 기쁨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말을 듣고 웃는 것이 아니고, 그냥 웃는 것입니다."

 

              영국의 홀리트리니트 브롬튼

1994년에 영국에서 캐나다의 터론토로 가서 "웃음 부흥 운동"을 지켜본 사람들 중에는 사우쓰웨스트 런던 빈야드 교회의 멈포드 목사(Eleanor Mumford)의 부인인 일레이너도 끼어 있었다. 영국에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일반예배 뿐만 아니라 여러 집회에서 터론토에서의 경험과 빈야드 회중 사이에서 벌어진 "웃음 부흥"에 대해 간증하기 시작했다. 1994년 5월에 있었던 한 집회에는 영국에서 가장 크고 품위가 있는 교회 중 하나인 홀리트리니티 브롬튼 교회에서 온 성공회 사제 검블(Nicky Gumbel)도 참석했다. 홀리트리니티 브롬튼 교회는 런던의 훌륭한 상가 지역인 나이츠 브리지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로즈 백화점(Harrods department store)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집에서 열린 집회에서 멈포드 부인은 터론토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성령님이 강림할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렇게 간구하자마자 아주 이상한 일이 생겼다. 한 사람이 내던짐을 당해 방을 가로질르더니 울부짖으며 아주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또 어떤 사람은 마루에 앉아 예언을 하기 시작했고, 어떤 이들은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보였다. 검블은 마치 엄청난 전기가 몸을 지나가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진술했다. 검블은 정신을 차리고 홀리트리니티 브롬튼 교회에서 열리는 회의로 달려가서 먼저 늦은데 대해 사과를 했다. 그가 기도로 그 회의를 마치며 "주님, 주님께서 행하신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님의 영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말하자, 조금 전에 일어난 아주 이상한 현상이 또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기 참석한 사람 중 하나는 마루에 누워 공중으로 발을 뻗고는 하이에나처럼 웃어대기 시작했다.

 

홀리트리니티 브롬튼의 주교인 밀라(Sandy MIllar)가 검블 및 다른 이들이 "영 안에 죽는것"(입신)을 발견하고는 그와 및 교회의 다른 지도자들이 5월29일에 아침과 저녁 예배에 멈포드 부인을 초청해서 간증을 하게 했다. 멈포드 부인은 이야기를 마치고 성령님이 임하도록 기도했다. 그러자 갑자기 홀리트리니티 브롬튼 교회 내에 웃음 부흥이 터져나기 시작했고 영국의 주요 신문사들이 곧장 이를 알렸다. 그 뒤 5월 31일에 밀라와 홀리트리니티 브롬튼의 목회담당자는 "터론토 축복"을 몸소 살펴보기 위해 캐나다로 날아갔다. 1994년 말에는 그야말로 산불같이 "웃음 부흥"이 번져나가기 시작했으며 미국의 오순절 잡지인 「카리스마」(Charisma)는 매호마다 이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를 출간했다.

 

이 같은 뉴스는 웃음소리만큼이나 신속히 퍼져 나갔다. 1994년 8월 15일자 「타임」지는 영국 런던에 소재한 홀리트리니티 브롬튼 교회(Holy Trinity Brompton Church)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도했다.

"비록 런던에 사는 사람들 중 매우 소수가 성공회 예배에 참석하지만, 홀리트리니티 브롬튼 교회의 모임에는 1,500명 정도나 참석했다. 뜨겁고 신선함이 없는 공기도 망각한 채, 젊은 군중들은 록 음악회나 럭비 경기를 관람하러 갈 때 갖게 되는 어떤 기대감 같은 것에 부풀어 웅웅거렸다.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노래를 한 뒤, 의자들을 모두 치웠다. 검벨 목사(Curate Nickey Gumbel)가 회중 위에 성령이 임하기를 기도했다. 그러자, 어떤 여자가 웃기 시작했고 점차로 다른 이들도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어떤 젊은이는 마루에 넘어진 채, 손을 막 떨었다. 또 다른 이들이 연속적으로 넘어졌다. 삼십 분이 채 못되어, 그곳은 넘어진 사람들로 꽉차게 되었고, 이들은 흐느끼며 몸을 떨고 사자처럼 부르짖거나, 그 무엇보다도 이상하게, 자제할 수 없어 웃어댔다."

 

「타임」지는 런던에서의 그 일이 "터론토 축복"과 하워드-브라운의 사역과 관련이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또한 그 기사는 이 모든 것이 빈야드를 설립한 윔버(John Wimber)와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타임」지 발표가 있은 후 몇 달 동안 여러 가지 출판물들이 여기저기서 "터론토 축복에 대한 기사를 소개했고, 그것이 유럽, 아시아, 그리고 남미대륙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교회를 일깨우는 일

세속 대중매체가 교회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종종 비종교인이나 외부 사람들이 오히려 그런 일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제 몇 가지 예를 보여 드리겠다.

 

첫 번째는 영국 런던에서 발행되는 「데일리 메일」지의 1994년 9월 2일자 기사이다. 브롬튼 교회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공통적 현상들을 흥미 있게 보고한 뒤, 기자는 아주 교묘히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현재의 빈야드 운동과 18세기 영국의 부흥 운동간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후자에는 능력 있는 설교와 자기 부인 및 회개 등이 수반되었으나 터론토 축복이나 혹은 터론토 축복의 원천이 된 은사운동에서는 이런 것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이름으로"라는 특별 프로그램에서 미국의 ABC 뉴스의 앵커맨인 피터 제닝스(Peter Jennings)는 현시대의 여러 가지 교회 성장 전략에서 이 세상의 시장 판매 전략이 크리스천 사역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제닝스가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생각에 그는 현재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 가지 이상한 현상들을 올바르게 지적했다. 즉, 윔버의 균형을 잃어버린 표적과 이적 운동, 빌 하이블스(Bill Hybels) 등과 "신흥지역 입주자를 잡아라!"고 외치는 자들의 광적인 교회 성장 운동, 그리고 하워드-브라운과 그의 웃음 운동이다.

 

그런데 참으로 슬픈 것은 많은 크리스천들이 제닝스의 특별 프로그램을 단순히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대중 매체의 공격으로 보거나,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오늘날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세속매체가 반대하려는 것 정도로 보았다는 점이다. 매사추세츠 주 워본에서 자기 남편과 함께 목회를 하고 있는 모나 조니안(Mona Johnian)은 「카리스마」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보다는 오히려 이 세상 사람들이 부흥 운동으로 인해 더 큰 감명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웃음 부흥 운동을 다루고 있는 기사나 프로그램 등을 여럿 인용하면서, 조니안은 이렇게 말한다.

"세속 대중 매체 역시 성령님께서 크게 임하시는 것에 대한 표시를 보내고 있다. 나는 세상이 이것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교회들을 깨워 줄 경종이라고 믿는다. 이제 부흥이 우리 위에 와 있다. "

그런데 실제로 그녀가 깨닫지 못한 것은 대중매체가 이런 현상을 다룬 것은 이런 현상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난하거나 조롱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이런 대중매체의 보도는 결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혼란에 빠진 채 미쳐 가는 세상에게 혼란에 빠진 채 미쳐 가는 교회를 보여준 것이다. 그것들은 단지 최근에 일어난 은사운동의 광적인 면들을 보여 준 데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 같은 보도는 궁극적으로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책망하거나 비난하는 것이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자신의 선지자들의 말을 청종하려 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의를 모으려고 팔레스타인(블레셋) 사람들을 사용하셨다. 종종 나는 뉴스 미디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교회로 하여금 자신의 비참한 현실을 볼 수 있게 하려고 사용하시는 현대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자 이제 터론토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용돌이를 다시 한번 살펴보자.

 

              왜 하필이면 터론토인가?

비록 터론토가 국제 무역의 중심지요 대규모 인구 밀집지역이긴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는 이 같은 은사운동의 불법행위를 전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전략적이며 좀 더 영적인 도시들이 많이 있다. 오클라호마주의 털사, 텍사스주의 달라스, 산타애나, 이탈리아의 로마 등의 영적 도시들이 소위 하나님의 역사로 불리는 현상에 더 적합할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 축복"은 터론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그곳에서 보금자리를 펴게 된 것이다.

 

미조리주 세인트 루이스 빈야드 교회의 목사인 클라크(Randy Clark)는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렸던 하워드-브라운의 집회에 참석한 뒤 이것들을 터론토 교회에 가져왔다. 클라크는 자신이 하워드-브라운의 집회에서 이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자신의 삶이나 사역은 매우 저조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하워드-브라운의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자기의 삶이 변화됐고 그래서 자기가 새로이 발견한 자유와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를 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오와주 세다 래피즈에 사는 내 동역자 빌 랜들스(Bill Randles) 목사는 클라크의 간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확한 평을 내렸다.

 

"여러분은 클라크를 하워드-브라운에게 가도록 만든 것이 진리가 아니고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었다는 점에 유의해야만 한다."

사실 클라크는 "말을 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믿음 운동"이 갖고 있는 신학적 문제 때문에 케네스 하긴의 레마 성경 교회에서 열렸던 하워드-브라운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망설였다고 랜들스는 말한다. 그런데 클라크는 자신의 이 같은 엉거주춤한 태도에 대해 주님께서 자신을 책망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한다.

"네게는 교파주의의 영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너를 새롭게 만져 주랴?"

과연 하나님께서 영 분별을 반대하시는가?

 

"말-믿음 이단 운동"에서 주장하는 비성경적이며 경건치 못한 가르침에 대해 반대했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책망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대해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랜들스는 클라크가 자기의 편견을 접어 둔 채 하워드-브라운의 집회에 갔다고 말한다. 1994년 1월에, 클라크는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에서 자신의 경험을 간증하기로 했다. 그런데 며칠간 거행될 것으로 생각되었던 그 집회는 클라크와 더불어 몇 주간이나 계속되었다. 그 이후로, 월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저녁 집회가 열리고 있다. 위의 내용은 "터론토 축복"의 역사를 보여주지만, 왜 터론토가 특히 신도수가 300명에 불과한 공항 빈야드 교회가 이런 부흥 운동의 전세계 사령탑이 되었는지는 밝혀주지 않는다.

 

              예언을 성취하며

1950년대에 "늦은 비 운동"이라는 것이 전개되는 동안에 사실상 두 번째 오순절이 예고되었다. 그것은 초창기 "늦은 비 성령 운동"이 일어난 후 40년만에 캐나다에서 일어날 것으로 예언되었다. 배너 사역의 트리샤 틸린(Tricia Tillin)은 "이 축복"이 터론토에 머물게 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녀는 리차드 리스(Richard Riss)의 책 「늦은 비」(The Latter Rain)의 서문을 인용한다.

"어떤 면에서, 장막절은 캐나다의 노쓰배틀필드(North Battlefield)에서부터 나팔이 울리는 것과 함께 성취되었고, 이제 만물이 복원되는 때가 막 시작되려 한다. 한국의 J목사와 더불어 20명의 다른 예언자들에 말에 의하면, 성령님의 마지막 커다란 역사가 캐나다에서부터 시작되어 예수님 오시기까지 70개의 캐나다 도시에 의해 전세계 210개 국가로 퍼질 것이다."

 

비록 작금의 이런 광적 현상이 캘리포니아주 애나하임 소재 윔버의 빈야드 교회, 오클라호마주 털사 소재 케네스 하긴의 교회,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에 있는 카펜터의 집 교회 등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의 주창자들은 이것을 "터론토 축복"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실제로 "늦은 비 운동'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그곳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터론토에서 일어나고 있는 매우 괴이한 현상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최근에 나는 하워드-브라운이 등장하기 전에 혹은 터론토 빈야드 교회가 갱신을 시작하기 훨씬 전에 이미 이 운동이 남아메리카에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를 내가 사는 곳에서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이 운동을 지지하려는 사람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역사"에 기꺼이 참여하려 하나, "터론토 축복"과 하워드-브라운이 점점 더 비난을 받게 됨에 따라 이들과 거리를 두려하고 있다.

 

              「카리스마」잡지의 승인

미국 내 오순절 은사운동을 대변하는 「카리스마」잡지는, 비록 편집자인 스트랭(Steve Strang)이 이 운동에 대해 몇 가지 석연치 않다고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 운동"을 좋게 이야기하는 기사를 지난해에만도 여러차례나 실었다. 가장 최근에 "터론토 축복"을 승인한 기사는 캐나다 온타리오 주 해밀턴에 사는 프리랜서 작가 다이애나 도우셋(Diana Doucet)에 의해 만들어졌다.

 

도우셋은 자기들의 방식대로 터론토 경험을 옳은 것으로 만들려는 여러 종류의 참가자들의 말을 인용한다.

"늦은 비 운동"을 연대기에 따라 기술한 리차드 리스(Richard Riss) 역시 지금의 이 운동을 승인하는 발언을 한다. 그는 "터론토 축복"이 하늘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터론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최소한 1906년에 아주사 거리에서 일어났던 것과 동등하다 할 수 있다."

노르웨이 출신의 침례교 목사인 소렌슨(Sten Sorenson) 역시 리스의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그는 터론토를 "새로운 아주사 거리"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도 처음에는 그 현상에 대해 의심을 품었지만, 영국 런던의 홀리트리니티 브롬튼 교회에서 있었던 현상을 체험하면서부터 그런 의심이 사라졌다고 「카리스마」잡지에서 말했다.

터론토 빈야드 교회의 세브루 목사는 이제 "웃음 운동"을 대변하는 신학자로 등장했다. 그는 이 운동이 교단의 벽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함으로써 이 운동을 인정하려 한다.

 

"사실 교단의 장벽과 편견을 넘어설 수 있는 교회 성장 전략이나 프로그램은 없다. 이런 장벽들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성령의 표적인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와 똑같은 논제는 적그리스도의 시대에 모든 이들을 하나의 참된 교회로 불러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될 것이다. 물론 그 교회에는 교단의 장벽이 없을 것이다.

 

              갈등이 일어나다

한편 세브루는 이런 광적 현상으로 인해 교단 내에서 그리고 개교회에서 여러 가지 갈등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간과하려는 것 같다. 도우셋은 이 운동으로 인한 염려와 비평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곧바로 이런 것들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만다. 도우셋은 이런 이상한 현상으로 인한 신학적 염려와 전전긍긍하는 모습 등이 교회 내에 있음을 인정한다.

"어떤 이들은 이번 부흥이 감정주의라는 일종의 육체적 과시로 변질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사실 이 운동은 육신적인 것으로 악화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본질상 이것은 육체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가면서 이것은 점점 더 이상하며 육체적인 현상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스위스 출신의 빈야드 목사인 마틴 블만(Martin Buhlman)은 지도자들이 좀더 주의를 기울이고 또 보는 사람들이 좀더 이해하려 한다면 이 운동으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들이 미연에 방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마치 "소란을 피우지 말고, 보트를 흔들지 말며,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비록 블만이 이 같은 분열을 막기 위한 여러 가지 제안을 하긴 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이 운동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교정은 원하나 단 한번도 시행하지 않음

미조리주 그랜드뷰에서 온 빈야드 목사인 마이크 빅켈(Mike Bickel)과 많은 문제를 갖고 있어 심하게 비난을 받고 있는 "캔자스시티 예언자들"(Kansas City Prophets)이라는 그룹의 한 지도자는 자신들이 육체적 열정에 대해 경계해야하며 어떤 과도한 행동이나 비성경적 믿음은 초창기에 잘라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까지도 이런 것을 실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의 광적 현상을 주도하는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육체적 열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하고 있고 성경에 따른 교정을 행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터론토 빈야드 교회 목사인 마크 듀폰(Marc Du Pont)은 사자처럼 부르짖는 것이 "상징적이며 예언적인 행동으로서 유다의 사자이신 예수님께서 승리하실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윔버는 이 같은 현상을 지지하는 성경구절은 한군데도 없으며 역사적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스스로 말함으로써 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현상이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윔버는 처음부터 이것이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으므로 그로 인해 생긴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윔버는 과거에 자신의 빈야드 교회에서 사람들이 짐승 소리를 내면 그것이 마귀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의 운동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이런 똑같은 현상이 하나님께로부터 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크리스천 연구 협회(Christian Research Institute)의 회장이며 "웃음 운동"을 맹렬히 비판해온 헤인그래프(Hank Hanegraff)는 최근의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윔버는 왜 자신이 과거에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마귀로부터 구해낼 수 없었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제 윔버는 짐승소리나 기타 의심스러운 현상들이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과거에 그런 사람들을 그런 이상한 행동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진짜 문제

도우셋은 터톤토 운동을 유심히 살펴보는 이들이 어떤 판단을 하기에 앞서 "터론토 축복"의 최종 결과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과연 사람들이 구원받고 있는가?"라는 것임을 인정한다. 또한 그녀는 이 질문이 "복음화를 위해 부흥 운동의 지도자들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물어야만 한다.

 

"도대체 교회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짐이 있단 말인가?"

터론토 빈야드 교회의 담당 목사인 아르놋(John Arnott)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복음화를 추구하는 것을 그만두게 하셨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려 할 때마다 주님께서 자기에게 브레이크를 건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너는 지금 나를 몰아붙이고 있다. 내가 내 백성을 사랑하게 내버려두어라."고 말씀하신다고 주장한다.

자, 독자여 이제 우리는 좀더 엄중히 이 문제를 보아야만 할 것이다. 회중 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많이 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기 백성만을 사랑하려 하실까? 모두가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던가? 잃어버린 양 하나를 찾는 것보다 남아있는 양 아흔 아홉을 사랑하는 것이 과연 선한 목자의 특징이던가?

 

              끝은 어떻게 될까?

비록 터론토 축복 운동이 전세계적 부흥과 새로운 영적 능력에 대해 예언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성경적 지지 기반이 없으므로 무너질 것이다. 내 말은 하나님 보시기에 이 운동이 무너진다는 말이다. 이런 광적 현상이 그 지지자들에게는 옳게 보일지 몰라도 성경의 엄격한 조사를 통과할 수는 없다.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위협하지만, 이 운동은 결코 모든 성도들을 회오리바람 안으로 집어넣지는 못할 것이다. 조니안은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나나 두고 보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께 대항하기로 선포한 것이라고 말한다.

올바른 정신을 갖는 것과 베레아 사람들처럼 진리를 위해 성경을 찾는 것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사실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단순히 순종하는 것이다(행 17:11 참조) 사실 이런 행동은 비난이 아니라 박수 갈채를 받아야만 한다.

 

캐나다 매니토바 주립 대학의 현대 기독교 교수인 스택하우스(John Stackhouse, Jr.)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실로 우리는 그것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하려면,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 참으로 변화되게 할 수 있는 어떤 대안이 우리에게 있어야만 한다. 물론 우리는 그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 같은 육체적 현상을 대체할 수 있으며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다.

"사람의 소망은 결코 웃음소리나 짐승소리 혹은 이적과 표적에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했다.

"너희가 진리를 알리니,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제9장    터론토 웃음 예배의 10가지 잘못

지금까지 우리는 오순절/은사운동의 기원, 발전, 특징 등을 실제적인 자료들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특히 터론토 현상의 원동력을 제공한 윔버의 신학과 "거룩한 웃음 예배"의 하워드-브라운의 신학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리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들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고, 특히 "터론토 웃음 예배"에 다음과 같은 10가지 중대한 잘못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1. "터론토 축복" 혹은 "거룩한 웃음 예배"는 모든 예배와 영적 훈련에 참가하는 사람이 의식과 함께 지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는 매우 중대한 성경의 법칙을 무시한다. 생각이란 사람의 혼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이용하는 도구이다. 따라서 의식이 없거나 잠자는 경우처럼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이 작동하지 않을 때는 어느 누구도 올바로 기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늘 권면했던 것 중 하나는 항상 생각이 빗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올바로 작동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2. 우리는 소위 "터론토 축복"이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키는 성경 안에서 발견할 수 없다.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은 영적 훈련이나 경험은 결코 올바른 것일 수 없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전혀 새로운 일을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것들이 성경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성경은 우리 구세주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모든 진리"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의 백성을 안내하기에 충분할 수도 없는 것이다.

 

3. "터론토 축복"은 사람의 기분을 만족시키려는 욕망을 담고 있다. 물론 우리 성도들도 어떤 특유의 기분 좋은 것을 원해야 하고 또 그것을 구한다. 그런데 "터론토 축복"에 참가하는 이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런 기분이 어떻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도 알지 못하며, 단지 그것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것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그들은 이미 소유한 어떤 좋은 기분 혹은 감정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또 다른 것을 구한다. 그렇다면 그 다음 것은 무엇이겠는가?

 

4. "터론토 축복"은 대규모 최면이다. 몇 년 전에 인기 심령술사들이 행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 지금 은사주의자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단 한가지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터론토 축복"을 통해 최면에 걸리는 사람들은 스스로 좀더 그렇게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5. "터론토 축복"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크리스천들의 맹신에 대한 기준을 더 약화시킬 뿐이다. 몇 년 전에는 이런 현상들이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사주의자들은 더욱더 놀라운 일들을 믿도록 부추김을 받아 왔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금까지 상상해 오지 못했던 어떤 속임수를 받아들이도록 한 걸음씩 준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6. "터론토 축복"은 거룩함에 이르는 지름길을 약속한다. 그런데 그 현상 속에서 사람들은 거룩케 되는 것에 관한 성경적 방법을 무시하고 있으며, 아무 의식 없이 깔깔대고 웃거나 우는 것에 빠져 들어감으로써 자신들이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진보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한편 그들의 지도자들은, 성경과는 상치되게, 이런 현상에 의해 자신들의 회중들이 변화되었다고 주장한다.

 

7. "터론토 축복"은 복음을 흐릿하게 만들며 에큐메니칼 일치를 촉진시키는 또 다른 방법이다. 사실 그들에게는 그런 축복을 받기 위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등은 전혀 중요치 않다. 그들의 주장은 카톨릭 교도들, 무신론자들, 그 외 어떤 종파에 속한 자들이든 간에 거듭남의 경험 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표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8. "터론토 축복"은 새생명을 얻거나 회개하는 것을 강조하는 대신에 즐거움과 쾌락을 조장시킨다. 이 모임의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집회에서 끝없이 농담을 하지만 단 한 번도 회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9. "터론토 축복"은 남들에게 과장해 보이려는 시도와 불경스러운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사실 성경의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며, 따라서 우리는 사랑과 기쁨과 더불어 존경심을 가지고 그분을 대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결코 자신의 영광을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하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결코 예배나 경배시 거만스런 전시 효과 등을 승인하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터론토 축복"의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은사를 자랑하며, 가장 무례한 방법으로 성령님을 주관하려 한다.

10. 이 같은 실수로 인해, "터론토 축복"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이 매우 창피한 것으로 비쳐지게 한다. 과거에도 세속 TV 다큐멘터리나 신문 및 잡지 등이 복음 전도에 대해 비웃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과도한 은사주의 시절보다 더 많이 비웃은 적은 없었다. 이제 우리 성경 신자들은 "터론토 축복"을 촉진시키는 자들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우스꽝스러운 괴기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화를 불러온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멀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터론토 축복"을 마귀가 가져다주는 잘못된 현상으로 결론짓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최근에 발생했다. "터론토 축복 현상"이 점점 더 문제를 일으키며 성도들뿐만 아니라 세속 사람들로부터도 지탄을 받게 되자, 이 현상을 일으켰던 윔버의 빈야드 펠로우십 연합회는 문제의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를 신속하게 자신들의 연합체에서 추방한다는 선언을 했다(1995년 12월 10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다시 말해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성령의 운동이라고 확신해서 극구 칭찬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해 왔던 "터론토 현상"을 추방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문제가 끝난단 말인가? 결코 아니다! 우리는 과연 이 신비주의 현상에 능력을 부어주었던 영(the spirit)이 어떤 영인가 살펴보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가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음이라."(요일4:1)

 

동시에 우리는 터론토에서 역사했던 그 영이 바로 윔버의 빈야드 연합회를 주도해 온 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그들이 터론토 교회를 축출했다 하더라도, 윔버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터론토 현상"과 대동소이한 것이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성령의 역사라 불리던 것이 어떻게 지금은 마귀의 역사가 된단 말인가?

성도들이여!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신비주의자들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오직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행하는 진실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함이라.)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수고하는 것은, 함께 있든지 떨어져 있든지, 그분께서 받아 주시는 자가 되고자 함이라.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와서, 각 사람이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에 행한 것들을 받으려 함이라."(고후 5:7-10)

 

 

 제10장  펜사콜라 웃음 부흥: 부흥인가? 대혼란인가?

            브라운스빌/펜사콜라 부흥

거의 지난 4년 동안, 미국 플로리다주 펜사콜라에 있으며 하나님의 성회 교단(한국의 순복음 교회 계통)에 속한 브라운스빌 교회는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종교계 뿐 아니라 세상 언론들도 펜사콜라 전역을 휩쓴 이 소문난 부흥의 바람을 쫓느라 많은 공을 들였다. 전 세계의 교회들과 기독교 단체들이 앞다투어 사절단을 보내었고, 이 부흥을 일으킨 영(靈)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받아 자기 교회와 단체들에게 파급시키고자 했다. 연합신문사(Associated Press) 기자인 브리그스(David Briggs)는 이 운동을 가리켜 "현대에 일어난 가장 엄청난 부흥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매주 수많은 목사들이 자기 교회를 채울 수 있는 기막힌 방법을 찾으려는 바램을 갖고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의 목사인 킬패트릭(John Kilpatrick)은 1995년도 아버지의 날(매해 6월 셋째 일요일)에 이 부흥이 시작된 이래로 약 160만 명 이상이 자기 교회를 다녀갔다고 했다. 이 소문난 부흥이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조용기 목사 펜사콜라 부흥을 예언하다

현재 많은 기독교회와 단체들은 이 부흥이 미국에 미친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생각하고 급속히 이를 수용하고 있다. 로버트슨(Pat Robertson)이 내는 「크리스천 방송 네트웍 뉴스 보고서」(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 News Report)는 1996년 8, 9월호에서 이 부흥을 칭송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수많은 목사들이 이곳을 방문했으며 이들은 자기들의 교회가 이 펜사콜라 부흥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전한다." 또 이 보고서는 계속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한국 서울에 있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다윗) 목사가 1991년에 펜사콜라 부흥에 대한 비전을 받게된 경위도 설명해 주고 있다. 조목사는 이 비전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미국에 부흥을 일으키실 것인데 이번에는 그 부흥이 펜사콜라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자기에게 친히 계시를 주셨다고 했다.

 

"기도하는데 갑자기 주님께서 미국 지도를 펼치라고 하시는 겁니다......어느새 내 손가락은 펜사콜라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펜사콜라에서 부흥을 일으키겠다. 이 부흥은 불처럼 퍼져나가 미국 전역을 삼켜버릴 것이다.'"

은사운동 잡지의 대표격인 「카리스마」(Charisma)지 뿐만 아니라 신복음주의를 대변하는 「크리스채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 빌리 그래함에 의해 운영됨) 잡지도 이 부흥을 칭찬했다. 「카리스마」지는 이 운동을 가리켜 "펜사콜라 부흥"(Pensacola Outpouring)으로 묘사했고 1997년 3월 3일자 「크리스채니티 투데이」지는 이 부흥을 가리켜 "복음주의가 다다를 수 있는 부흥의 최고봉"이라고 극찬했다. 「크리스채니티 투데이」지의 발행인인 래비(Steve Rabey)는 비평가들에게 펜사콜라 부흥은 주체할 수 없는 웃음과 짐승의 소리만이 난무하는 "터론토 축복"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하며 이번의 부흥을 변호했다. 래비는 또한 비록 펜사콜라 부흥을 이끄는 사람들이 한때 "터론토 축복"에 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의 펜사콜라 부흥은 "터론토 축복"보다 훨씬 더 냉철하며 특히 회개를 매우 강조한다고 말했다.

 

세간의 언론들도 펜사콜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1997년 4월 27일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무려 4,000 단어를 할애하며 이 부흥에 관한 글을 실었다. 이 신문의 전속 작가인 칼슨(Peter Carlson)은 그곳의 모임에 직접 참석한 한 사람의 진술을 빌어 그 모임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모임은 드럼 주자가 느린 박자의 드럼 소리를 내면서 시작된다. 그 뒤 몇 분 동안 규칙적이며, 피할 수 없으며, 불길한 심장박동 소리가 지속된다. 그리고 기타와 오르간 연주자가 여러 가수들과 함께 합류한다......처음부터 사람들은 의자에서 일어나 서 있으며,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치거나 눈을 감은 채 손을 흔들며 춤을 춘다. 맨 앞줄에서는 청소년들이 용수철이 달린 포고 막대기를 타고 깡충깡충 뛰노는 것 같은 행동을 하는데, 이는 은사주의 모임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허튼 짓과도 비슷하다. 만일 강단 뒤에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없었다면, 당신은 아마도 록 뮤직 쇼를 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것이다."

이어서 칼슨은 청중들이 어떻게 "영(靈) 안에서 노래하기"를 시작하는지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1968년의 베트남 반전 시위에서 깅스버그(Allen Ginsberg)가 '우우우움'하고 모호하게 소리를 내며 노래했던 것과 같다."

 

1997년 3월 6일 연합신문사의 브리그스는 한 여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보고했다.

"내가 알기로는 이번의 부흥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이것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든지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만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이번 부흥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와 같은 의문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도대체 플로리다주 펜사콜라시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이상한 일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같이 거대한 "성령(?)의 활동"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 현상의 배후에 있는 목적과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브라운스빌에서 일어난 일들을 면밀히 관찰해 보고 특히 종교계나 일반 언론에게 발표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만 한다.

 

              펜사콜라 웃음 부흥사 킬패트릭

우선 이 부흥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킬패트릭은 자신과 및 자신이 소속한 교회가 이번 일이 있기 2년 전부터 부흥을 위해 줄곧 기도했다고 말한다. 킬패트릭은 하나님께서 이 같이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하나님:"네가 네 '유년 시절의 하나님'인 내게로 돌아온다면 브라운스빌에 있는 교회에게 나의 영을 부어주리라."

킬패트릭: "하나님,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네가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를 기도의 집으로 만든다면 내 영을 이 교회에다 부으리라......이 부흥은 이 지역을 강타할 것이며 결국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기도 그룹을 형성해서 매주 일요일 저녁마다 기도하도록 하여라."

 

킬패트릭은 이 음성에 순종하여 즉각 기도 시간을 따로 만들었다. 그는 회중을 12개의 기도그룹으로 나누었고, 각 그룹은 기도제목을 나타내는 깃발을 중심으로 모여 기도했다. 킬패트릭은 청중들에게 각자가 선택한 깃발 근처에 모이라고 했다. 그는 종종 자신이 기도 중에 주체할 수 없는 오열과 전율에 휩싸인다고 밝혔고 위장에 이상한 느낌이 들 때도 종종 있다고 했다. 킬패트릭은 이런 감동과 느낌을 하나님의 영께서 브라운스빌에 나타나실 준비를 하시면서 자기에게 임한 역사라고 말했다.

킬패트릭은 어느 토요일 밤, 자신이 교회에 들어가 홀로 기도하고 있는데 그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곳으로 걸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디론가 걷고 있었는데 어딘지는 알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건 하나님의 영광의 최전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날에 이 영광을 브라운스빌에 보내려고 하셨습니다......그러나 내가 들어갔을 때 나는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압도당했습니다. 갑자가 꽝하면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분명히 내 손과 발의 털은 곤두섰으며 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의 목사인 킬패트릭은 1997년 1월 20일 알라바마주 휴이타운에 있는 게리우드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서 1995년 아버지의 날에 일어난 일을 발표했다.

 

킬패트릭의 어머니는 그 "부흥"이 일어나기 5주 전에 죽었다. 그래서 그는 복음전도자인 힐(Steve Hill)에게 아버지의 날 설교를 부탁했다. 힐은 이에 동의했고 그 날 아침에 기도로 예배를 시작했다. 그날 아침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왔다. 그리고 킬패트릭은 강단에서 힐과 및 또 다른 한 사람과 함께 기도했다. 그때 그는 갑자기 오른쪽 어깨에서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킬패트릭이 어깨쪽을 넘겨 보자 (본인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그의 발목이 미끄러지고 무릎이 저절로 꿇어지면서 다리사이로 갑자기 "하나님의 영광의 강"이 움직였다.

 

"마치 전신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끊임없는 전신주가 내 다리를 통과하여 교회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강단에 있던 옆 사람의 도움으로 뒤로 물러선 킬패트릭은 이번에 "휘몰아치는 강한 바람" 소리를 들었다. 그 뒤 그가 소위 "하나님의 영광의 강"이라고 묘사했던 것이 교회 안으로 들어 왔다. 킬패트릭은 갑자기 강단으로 뛰쳐나가 이렇게 소리쳤다.

"나의 하나님, 교회로, 들어오십시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도해왔던 것입니다. 들어오십시오!"

이제 부흥이 시작된 것이다. 킬패트릭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이 회중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킬패트릭은 그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회중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강'으로 뛰어오르라고 했고, 그러자 수류탄이 터진 것 같은 일이 회중 가운데 일어났습니다... 난 취해있었고 다리는 후들거려서 거의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다니는 것이 보였습니다......그냥 날고 있는 사람, 내려와 나무들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허리케인 폭풍처럼....."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래로 내려갔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기도 하고 복도에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누구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 그날 오후 12시 30분에 킬패트릭은 무언가가 무거운 것이 자기를 누르는 것을 느꼈고 바닥에 쓰러져 마비된 상태로 있었다고 했다. 그 상태로 오후 4시까지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킬패트릭은 마루에 쓰러지기 전에 자신을 휘감았던 그 느낌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치 4.5톤 정도의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 같더군요. 그러나 느낌은 좋았습니다."

이런 무거움을 느낀 뒤 킬패트릭은 자기에게 고요한 평화가 임하는 것을 느꼈고 자기 몸에서 무언가 액체 같은 것이 흘러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말한다.

 

"뼈 사이의 관절에서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는 청중들이 강단에서 액체의 웅덩이에 누워있는 자신을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하며 신경이 쓰였다고 농담조로 얘기했다. 킬패트릭은 이 액체가 수년의 사역 기간 동안 자기에게 쌓인 모든 스트레스인데 그날 하나님께서 그 모든 스트레스를 제거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저녁 예배 때 킬패트릭은 초청강사를 소개하려고 일어났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리, 혀, 몸의 각 부분이 말을 듣지 않았고 한다. 다음 날 새벽 2-3시까지는 그는 그렇게 강단 의자에서 혼수상태로 앉아있었다. 킬패트릭의 말 대로라면 이것이 바로 브라운스빌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이 부흥이 일어난 뒤 3주 동안 킬패트릭은 자기와 자기 아내 브렌다가 집안에서 계속해서 "성령에 취해" 있었다고 했다.

"나 뿐 아니라 브렌다도 너무 취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안락의자에 앉아 몇 시간을 지내곤 했지요. 즉, 집에서도 하나님의 권능아래 깊어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번은 킬패트릭이 잠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어깨가 "들썩이더니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모르겠어. 하나님이었던 것 같아."라고 답변했다. 킬패트릭은 부흥이 일어난 뒤 삼 주 동안은 심지어 일 자리에 나갈 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유인즉 그가 현관을 내려가서 차에 오르려고 할 때마다 "어깨가 좌우벽에 스스로 부딪혀서 걸을 수가 없었고 심지어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밤에 교회에 도착할 때면 저는 마루 위나 의자 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브라운스빌 교회의 회중들은 결국 그 교회에 있게된 "주님(?)의 강"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킬패트릭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그 흐름 즉 보이지 않는 그 강 같은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날 밤은 벽을 타고 오고, 어떤 날 밤은 이 복도로 내려옵니다."

 

"이 강이 흐르는 곳에 사람이 있게 되면 성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입니다. 말 그대로 강물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몇몇 경우에는 킬패트릭이 묘사한 흐름이 모든 회중을 휩쓸고 나아갔다. 그는 이 흐름이 정말 깊어졌던 때를 회상했다.

"그건 마치 하나의 역류와도 같았습니다......누군가가 등에 있는 내 벨트를 잡고는 뒤로 잡아당기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저는 그 강의 역류하는 힘이 너무나 세서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루 밤은 모든 회중이 킬패트릭과 함께 실제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어느 날 밤 무언가 매우 강력한 것이 교회의 뒤쪽을 지나쳐 갔습니다. 난 진짜로 거기로 높이 뛰기를 해서 대들보에다 다리를 감고는 공중에서 멈추어서 내 옆을 지나가는 군중들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그는 이것 또한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간주하였다.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서 일어난 이 부흥의 또 다른 특징을 킬패트릭은 "빽빽한 대기"라고 묘사했다.

"종종 거기에 안개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 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두터워져 어둡기 때문입니다......그곳에서 여러 번 푸른 안개가 나왔습니다. 주님의 영광의 푸른 안개가... "

킬패트릭은 브라운스빌에서 발생한 "성령(?)의 나타남" 현상에 대해 가만히 입다물고 앉아 있을 사람이 아니다. 이런 소위 "성령의 나타남" 현상에는 청중들이 힘을 잃고 여러 시간 동안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 일, 회원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며 전율한 일, 푸른 안개가 교회 건물에 나타난 일, 천사들이 청중석 꼭대기에서 원을 그리며 춤추는 환영 현상, 강한 기류 같은 것이 회중 전체를 청중석 앞에까지 몰아붙여 여기저기로 사람들이 쓰러지는 현상 등이 수반되어 있었다. 킬패트릭은 하나님이 친히 자신을 집어들고 강단너머 통로까지 최소한 3-4 미터 가량 공중에 내던지고는 자신의 발에서 신발을 벗겨내신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에피소드는 심지어 비디오에 찍히기까지 했다.

킬패트릭은 이런 부흥이 일어났을 때 자신을 특히 놀라게 했던 사건이 세 가지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들은 전에 그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인데, 첫째는 평소에는 예배시간에 조용히 앉아있지 못했던 아이들이 하나님의 권능에 큰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킬패트릭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성령 안에서 의식을 잃었다. 그들의 눈은 뒤집어졌고 네 시간동안 근육을 쓸 수 없었다... 아이들이 일어났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 아래 떨고 있었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울부짖었다."

킬패트릭은 또 이렇게 고백했다.

 

"이러한 혼란 상태가 지속될 동안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아이들은 마루 안팎에 널려 있었고 아이들의 부모들도 여기 저기 있었다."

특히 킬패트릭은 세 살 난 한 소녀에게 일어난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 아이가 완전히 멈추어 서서 30분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로 울부짖었다고 한다. 결국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 소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 저들이 안보여요, 천사들 말이에요. 그들이 교회의 천장에서 서로 원을 지어 손잡고 있어요."

 

              대혼란을 시인한 킬패트릭

킬패트릭이 브라운스빌 교회에서 복마전 같은 대혼란이 있었음을 인정했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그는 실제로 그러한 움직임을 묵과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대적인 혼란을 보내셨다. 내 생각으론 바로 지금 침례교, 루터교, 감독교회, 하나님의 성회 등을 비롯한 모든 교단이 위대한 대혼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대혼란을 보내신 것이다!"

킬패트릭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이런 식으로 외쳤다.

 

"대혼란"(pandemonium)이란 단어가 1667년 밀턴(John Milton)이 지은 「실낙원」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다. 「실낙원」에서 "Pandemonium"은 지옥의 중심지 곧 "사탄과 그의 동료들이 거하는 수도"를 의미했다. 말 그대로라면 "모든 마귀들의 처소"라는 뜻이다. 오늘날 이 단어는 보통 "극심한 혼란과 소음, 무질서의 장소나 상태"를 말한다. 브라운스빌에 일어난 일이 바로 "대혼란"이란 말인가? 그렇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과연 이런 대혼란을 교회에 허용하신단 말인가? 절대로 그럴 리 없다.

 

킬패트릭을 놀라게 한 두 번째 일은 구원받지 못하고 반항하던 젊은이들이 교회 예배에 많이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는 섹스와 마약에 빠져 생활하며 거칠고 노출이 심한 십대들이 문 앞에 쓰러져 "성령님의 권능"아래 떨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고, 이 같이 "성령님의 나타남"에 참여하는 것이 "구원받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킬패트릭은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 즉 "성령의 나타남" 현상을 체험한 사람의 다수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성령의 나타남" 현상을 체험하는 것이 구원받은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자기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그는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사울(미래의 사도 바울)에게 나타난 주님의 계시를 인용했는데, 이것 역시 문맥에서 벗어난 사사로운 해석이다.

킬패트릭을 놀라게 한 세 번째 일은 특별한 광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이 대거 부흥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부흥이 일어날 때 늘 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부흥이 일어나면 부흥 그 자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나오고 거기로 죄인들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킬패트릭은 이런 부흥에 의문을 갖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는 자들이요, 주님의 일에 마음 문을 닫은 자들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목사로 행세해 온 오래되고 죽어있는 보수파 그리스도인들, 즉 우리들의 교회에서 아무 것도 일어나기를 원치 않고 다만 정원과 집에서 안락하게 쉬는 종교만을 고수하는 낡고 축축한 담요 목사들, 이들은 달콤하고 훌륭하며 정돈이 되어 있고 납득이 가는 일만을 원하는데 그러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역사가 교회에 일어나면 그런 부흥에서 빠져 나옵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로 뛰어들어갑니다."

그가 말한 바는 우선 "부흥"의 정의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흥이란 믿는 이가 자신의 패역한 마음을 돌이켜 다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지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이 종교 집회에 참석하거나 초자연적인 현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교일치를 외치는 킬패트릭

이러한 "성령님의 나타남" 현상은 은사주의나 오순절 계통의 신자들만이 내세우는 전유물이 아니다. 이 부흥은 오늘날 여기 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른 종류의 대규모 종교 운동과 마찬가지로 모든 신자들이 연합하여 교단의 장벽을 넘자는 노력의 일환이다. 다음에 나오는 킬패트릭의 발언에 주목해 보자. "성령의 흐름이 들어올 때 그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교단을 일으킨다. 나는 모든 교단에 속한 사람들 즉 침례교인, 감리교인, 장로교인, 루터교인, 감독교인, 그리고 카톨릭교인 모두를 사랑한다. 전에는 결코 모든 교단을 향한 그러한 사랑이 내게 없었다. 나는 모든 교단이 이 강에서 아이들처럼 뛰어들어 수영하고 노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다. 당신의 정체성이나 이름표, 취향 등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다만 하나님의 영의 주권적인 운행만이 중요한 것이다."

 

킬패트릭은 모든 교단의 교인들이 매주 일요일 예배에 참석하지만 뭔가 갈급한 채로 고개를 내저으며 교회 문을 나선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브라운스빌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운행"이라고 했다. 킬패트릭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무언가를 더 보여주실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초세기 교회에는 표적과 이적들이 있었다. 친구여,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도 이제는 그 당시 교회에 일어났던 표적과 이적들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공허함을 느끼고 이것을 채워줄 "종교"를 찾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킬패트릭은 교회에서 행하는 설교가 사람들을 돌아서게 하며 그들의 마음의 태도를 바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부흥에 대해 또 한 가지 말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혹은 운행하심이 목사의 설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킬패트릭은 자신과 복음전도자인 힐(Steve Hill)이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교를 했지만 실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표적과 기적들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실 수많은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왔고 그로 인해 많은 지식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엔 권능도 기름부음도 기적도 없었다. 오늘 내가 여기 올라와서 소위 대단한 설교를 하지 않아도 별로 거리낌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소문난 부흥에 대해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킬패트릭은 성령의 부음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란 그저 현재의 상태에 익숙해 있어 무언가 "새로운" 것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같이 설명한다.

"사실 우리는 이제껏 비정상적인 것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것이 와도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킬패트릭은 이러한 이상한 표적과 기적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제껏 우리는 교회의 건조함이나 냉랭함, 미지근함, 권능과 기름부음과 영광의 부재 현상에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임하자 우리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목사들 중에도 성도들 중에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떨림이나 영 안에서 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달갑지 않은 것이며 우리는 그 중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이 현상을 성경으로 설명해야만 한다. 킬패트릭과 "펜사콜라 대성회"의 지지자들은 이 초자연적인 일이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도대체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이 현상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성경적 근거를 어디서 찾는 것일까?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 모두가 주체할 수 없이 떨면서 넘어져 몇 시간동안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다. 보이지 않는 어떤 흐름이 사람들을 여기저기로 몰고 다닌다. 과연 이것이 주님께서 하신 일인가? 성경 어디서 이런 약속을 찾아볼 수 있는가?

 

킬패트릭 본인도 종종 이러한 초자연적인 힘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지 못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가 내리는 결론은 늘 그것이 "주님의 영광"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회중들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하며 킬패트릭은 종종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 주체가 하나님이었다고 믿습니다." 혹은 "주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는 이런 추측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무슨 일이든지 그가 내린 결론은 늘 이런 이상한 현상의 나타남과 느낌이 기록된 성경 말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지만 어쨌든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펜사콜라 웃음 부흥사 힐

1995년 1월, 힐(Steven Hill)이라는 오순절 부흥사는 선교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런던에 들러 방문객을 위해 자기의 집을 개방한 오순절주의 신봉자요, 로마카톨릭 교도인 한 부부의 집에 머물렀다. 런던 홀리트리니티 브롬튼 교회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들은 뒤 힐은 홀리트리니티 브롬튼의 대리자인 밀라를 찾아가 자기에게 안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밀라가 응하자 힐은 완전히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이에 대해 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밀라가 내게 손을 대자 나는 땅에 주저앉았다. 나는 마침 장난감 가게를 찾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 뒤 나는 일어나 그 부부에게 가서 말했다. '이보시오, 이는 참으로 좋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이 내게 손을 대자 나는 뒤로 넘어졌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가운데 어떤 이들을 강하게 치실 것입니다. 당신이 갈급하거든 열두번이라도 기도를 받기 바랍니다."

힐이 웃음운동을 주도하는 영(靈)으로부터 넘어지는 경험을 한지 6개월이 지났다. 1995년 6월 18일, 그는 펜사콜라의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에서 설교를 했으며 그 때에 이 분야에서는 가장 큰 웃음 부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은사주의자들이 "펜사콜라 부흥"(Pensacola Outpouring)이라 부르는 이 부흥은 힐이 런던에서 경험한 것뿐만 아니라 그 교회 회원들이 직접 터론토에 가서 체험한 것 등으로 인해 이미 터론토 웃음 운동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실제로 6월 18일이 되기 수 주 전에 그 교회의 여러 회원들은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에서 "웃음 부흥"을 체험하기 위해 그 곳을 방문했다. 쿨리(Lindel Cooley)는 브라운스빌 교회의 음악 담당자로 오기 바로 전에 터론토 빈야드 교회에 출석했으며, 브라운스빌 교회의 담당 목사인 킬패트릭(John Kilpatric)의 부인은 자기교회 직원의 부인과 함께 두 번이나 터론토를 방문했다. 또한 6월 18일의 "웃음 부흥"이 브라운스빌에서 터지기 전에 "터론토 축복"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교회 안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비록 펜사콜라의 지도자들이 자기들은 터론토에서 일어난 일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성령부흥 안에서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터론토 빈야드 교회의 아르놋 목사는 1996년 2월에 브라운스빌을 직접 방문했고 킬패트릭 목사의 소개를 받은 뒤 회중들에게 간증을 했다. 그 뒤에 그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안수를 했다. 그때의 그의 방문에 대해서는 브라운스빌 사역팀의 일원인 우드(Cathy Wood)가 작성한 인터넷보고서를 참고하기 바란다(www.victorious.com/SisterWood/arnott.htm). 그녀는 참으로 아르놋이 군중에게 크게 둘러 싸였다고 증언했다. "그 주위에는 너무나 사람이 많이 몰려들어 나는 그의 얼굴과 군중들의 머리 위에 얹은 그의 손만을 볼 수 있었다."

킬패트릭은 1995년 6월에 자신이 "흘러 넘치는 부흥현상"을 체험한 것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는데, 그 때에 그는 마룻바닥에 넘어져 거의 네 시간 동안이나 누워 있었다. "마룻바닥에 넘어졌을 때 나는 마치 4.5톤이나 되는 무게가 나를 누르고 있음을 느꼈다.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것이 일어나고 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이 현상에 대해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인들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킬패트릭 목사는 첫째 날 저녁에 영안에서 죽임을 당해서(입신해서) 여러 시간 동안 누워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처음 두 주 동안 그는 교회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그에게 너무나 무겁게 작용했으므로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킬 패트릭 목사의 부인인 브렌다는 터론토를 방문한 직후부터 계속해서 이런 일을 겪어왔다. 그래서 여러 날 동안 사람들이 이들을 차로 데리고 가서 집에서 여러 가지를 도와주어야 했다. 그래서 심지어 그들의 이웃들조차도 대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기 시작했으며 침례교회에 다니는 한 부인은 계속해서 한밤중에 집에서 목사를 끌고 다니는 것을 보게 되자 의아하게 생각하여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이런 일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펜사콜라 집회의 지도자들은 실제로 펜사콜라 부흥의 계기가 마련된 것은 이 사건이 생긴지 두 달이 지난 1995년 8월이었다고 주장한다. 집회시 대학에 다니는 19세 된 처녀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예언을 했다.

 

"하나님은 지금 매우 급하십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의 영으로 인해 괴로워하십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 학생은 억제할 수 없이 몸을 흔들며 마치 어떤 마비 증세를 보이는 것 같았다. 이 같이 예언을 한 뒤에 그녀는 마룻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간증은 비디오로 녹화되었고 이미 수천 개의 테이프가 전 세계로 배급된 상태이다.

1995년 6월부터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서는 매주 네 번씩 밤마다 집회가 열렸다. 1998년 1월 6일 브라운스빌 교회의 웹사이트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2,142,571명이 거기를 방문했고 125,000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했다고 한다. 1995년 이후에는 매해 목사들을 위한 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는데 1995년 12월에는 700명의 목사들이 참가했고, 1996년 4월에는 1,350명이, 1997년 11월에는 2,037명의 목사가 참가했다고 한다. 물론 그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성회나 하나님의 교회 등과 같은 오순절 교단에 속한 교회의 목사들이지만 빈야드 크리스천 펠로우십, 연합감리교, 침례교, 퀘이커 교도, 나사렛 성결교, 성공회 등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영에 취한(?) 사람들

위에서도 언급한 것같이, 펜사콜라 부흥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이 무엇엔가 취하는 현상이다. 킬패트릭 목사와 그의 부인은 너무나 취해서 차를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 갈 수도 없었다. 그 교회의 남자들은 킬패트릭 목사를 예배당에서부터 휠체어에 실어 끌고 와야 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너무나 취해서 걸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킬패트릭 목사가 강단에 취해서 누워 있을 때에 찬양 팀의 한 여인이 그의 품에 안겨 서로 취한 채 누어있는 것도 발견되었다. 그는 카세트 테이프에서 웃어가면서 이 사건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자기 교회를 방문했다가 이 사건을 목격한 어떤 여자가 자기에게 말하기를 "킬패트릭 목사에게는 참으로 좋은 부인이 있는데, 그 여자는 찬양 팀에서 노래를 한다"고 말했다고 스스로 말했다. 그는 분명히 자기의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며 자기 품에 누웠던 성가대원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성령님께서는 결코 이런 부도덕한 일을 일으키거나 그 어떤 혼동도 일으키지 아니하신다.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에 다니는 한 여인은 심각한 목병을 앓다가 고침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렇게 고침을 받는 뒤부터 그녀에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머리를 심하게 떠는 일이 생기게 되었다. 특히 교회에 가까이 가기만 하면 이런 일이 생기곤 했으며, 벌써 이 일이 1년 반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킬패트릭은 성가대석에 앉아 마치 떨림병에 들린 사람처럼 머리를 심히 흔드는 여인에 대해 자기가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표적이라고 주장한다.

 

              거짓 대언자 킬패트릭

웃음 부흥의 지도자들을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자기들의 운동을 평가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교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1997년 4월에 킬패트릭 목사는 크리스천 리서치 연구소(Christian Research Institute : CRI)가 "펜사콜라 부흥"을 대적하는 발언을 했으므로 90일 이내에 성령님에 의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물론 그로부터 90일이 지난 1997년 7월에 그의 예언은 빗나갔으며 CRI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것은 킬패트릭 목사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전형적인 반응인 것이다. 이들은 말씀에 의거하여 올바로 교정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 원하는 대로 행하거나 가르치는 목사는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증명해보라"는 책임을 주셨다(살전 5:21). 또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 "(요일 4:1)

 

또한 성경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그 가르침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전 14:24) 목사의 유일한 권위는 성경이며 따라서 목사가 성경을 떠나서 다른 것을 가르치면, 하나님의 백성은 마땅히 그 목사를 떠나야 한다.! 베레아 사람들은 자기들의 배운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말씀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확인했으므로 칭찬을 받았다.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욱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그리스 사람인 귀부인들과 남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게 그리하더라."(행 17:11,12).

그들은 자기들이 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하나 하나 시험했다. 분명히 CRI의 헤인그라프는 "펜사콜라 부흥 운동"을 시험할 권리가 있으며 비성경적인 것을 드러내어 다른 이들에게 경고할 권리가 있다.

그 뒤에 킬패트릭은 헤인그라프를 가리켜 마귀라고 칭하였고, 만일 그가 "펜사콜라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운동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의 머리가 쉴새 없이 떨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이 같은 발언은 자기 교회 성가대에서 소위 "펜사콜라 부흥"을 체험한 여인의 경험을 엄두에 두고 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머리를 흔들며 떠는 것이 저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실 헤인그라프는 이 운동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브라운스빌 교회를 방문했고 3년 동안 웃음운동에 대해 연구를 했으며 그 뒤에 이렇게 경고를 했다.

 

"이런 종류의 체험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는 것이며, 사람들의 삶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는 킬패트릭이 저주를 내리자 다음과 같이 방송에 말했다.

"내가 내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내가 직접 그곳에 가서 그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3년 동안 이런 현상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나는 98%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100% 확신한다. 이것은 결코 큰 부흥이 아니고 큰 배도현상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 운동의 영향을 받은 펜사콜라의 아이들은 이런 이상한 현상들로 인해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 가져오는 악영향은 이미 우리가 살펴 본 것과 같다. 사교나 신비주의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몇 차례 거듭 거듭 말했거니와 당신이 비성경적인 행태를 행하고 있다면, 당신이 교회에 다니든지 혹은 사교집단에 다니든지 그 결과는 동일한 것이다. 당신이 교회에 다니면서 청산가리를 먹든지 당신이 사교집단에 다니면서 청산가리를 먹든지, 당신은 100% 죽는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가 비성경적인 행태를 취할 때에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1997년 6월 18일에 킬패트릭 목사는 헤인그라프와 CRI에게 사과 성명을 냈으며 이에 대한 전문은 다음의 웹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다(http://webcom.net/~bhph95/aplogy.htm)

 

이런 일들을 통해 이제 우리가 내리게 될 유일한 결론은 이 사람 킬패트릭이 마귀에게 크게 미혹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은사주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크게 주장하며, 하나님으로부터 환상과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지금도 자기들이 하나님를 대신하여 예언하는 은사를 가지고 있으며, 성경 이외에도 또 다른 계시가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믿음의 말을 입밖에 냄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혹은 남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들은 오직 성경만을 의지하며, 성경 이외의 계시를 거부하는 성경신자들을 조롱한다. 그런데 자기들이 거짓 예언자로 드러나게 되면 이들은 곧바로 자기들이 잘못을 범했으며 인간인지라 나약하므로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한다. 그들은 남들에게 하나님의 참 대언자(혹은 사도)로 인정받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자기들의 거짓 예언에 대해서는 관용을 받기를 원하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만일 그들이 성경 이외의 계시를 주장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면,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대언자들이며 따라서 대언자들이 받을 심판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한다. 거짓 대언자들은 결코 용서받지 못하며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거부해야 한다.

 

"네가 혹시 마음에서 말하기를, 주께서 이르지 않은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니,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않고 성취되지도 않으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말한 것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1-22)

성도 여러분! 오순절/은사주의의 거짓 대언자들의 과장된 주장이나 거짓 교리에 속아넘어가지 말기 바란다. 이들은 마귀에게 속아넘어간 자들이요, 말세에 배도한 단일세계 교회를 이룩하기 위해 선두에 서 있는 자들이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웃음 부흥을 통해 어른들이 마룻바닥에 넘어지고 억제할 수 없는 웃음에 빠지며 술취한 사람같이 비틀거리는 것을 보는 것만도 슬픈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슬픈 것은 아이들마저도 이런 일에 깊숙이 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브라운스빌 교회에서 웃음 부흥이 시작되던 바로 그 날, 힐(Hill)은 어른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어 넘어지게 하고 자기가 성령님의 역사로 간주하고 있는 경험들이 나타나게 했다.

 

위에서도 잠시 이야기했듯이, 런던에 있는 빈야드 교회 멈포도 목사의 부인인 엘리너는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를 방문하고 난 뒤 영국에 웃음 운동을 파급시켰으며 심지어 아이들에게 전했다.

"나는 클라팜에 있는 크리스천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주님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다섯 살 짜리 아이들 위에 임하시므로 그 아이들은 웃고, 울고, 주님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들도 영향을 받게 되었고 부모들도 뒹굴었다. 그 때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나님, 주께서 행하시는 이 영광스런 일을 보십시오. 참으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Eleanor Mumford, 「Speaking Like Wildfire」, Renewal, 1994년 7월, p.13)

 

웃음 부흥에서는 이런 일이 수도 없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거룩한 웃음」(Holy Laughter)의 저자인 헌터 부부는 아이들이 영안에서 죽임을 당하는 사례를 이 같이 묘사했다. "최근의 텍사스주 집회에서 우리는 아이들이 많이 참석한 것으로 인해 아주 놀랐다. 특히 여섯 살에서 아홉 살까지의 아이들이 많이 참석했다. 우리는 늘 하던 대로 여러 사람을 지적해서 앞으로 나오게 했는데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아이들 위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의 간절한 얼굴은 마치 '를 만져 주세요, 나를 만져 주세요.'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 중에서 몇 명을 선정해서 올라오게 했는데 그들은 곧장 거룩한 웃음 속에 빠졌다. 그들은 또한 어른들이 이 같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마주치게 될 때 기뻐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권능아래 빠져 거기에 누워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내가 잠시 의자에 앉아 있을 때에 한 부부가 다섯 살 난 여자아이와 함께 앞으로 나왔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안수했는데 그 뒤에 그 아이의 부모는 그 교회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딸이 너무나 성령님을 많이 먹고 취해 똑바로 걸을 수가 없어서 아이를 안아다가 차에 실었습니다.'

한번은 우리 부부가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결혼한 우리 큰딸의 큰딸인 채리티가 갑자기 자기 부모의 곁을 떠나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복도를 따라 내려왔다. 채리티는 그때 세 살이었는데 강단으로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나도 만져 줘요.' 이 아이는 성령님의 권능을 입고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고 아마 이로 인해 크게 자극을 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도 하나님이 만져주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것이다. 내가 손을 대자 이 아이는 쓰러져서 30분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았다."(Charles and Frances Hunter, 「Holy Laughter」, pp107-110)

 

플로리다주 레이크랜드에 있는 카펜터스홈 교회의 간증시간에 그 근처에 있는 어떤 교회의 목사는 다음과 같이 간증했다.

"우리는 거룩한 웃음이 무엇인지도 알기 전에 하워드-브라운 집회에 갔습니다. 최근에 사람들이 나를 우리교회 아이들 집회에 가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여기로 빨리 와 보세요.' 가서보니 내 딸이 1시간 30분 동안이나 계속해서 웃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혹시 이 애가 정신이 나가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에 무서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런 일을 결코 본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아이들이 성령님의 만져주심을 받고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고 사실 저는 두려웠습니다. 내 딸이 이렇게 웃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그 아이는 10살이었습니다."(「Holy Laughter」, p146)

미조리주 스미쓰톤에 있는 스미쓰톤 지역 교회에 있었던 웃음 부흥에 대해 보고하면서 「카리스마」잡지는 다음과 같이 놀랄만한 사실을 보고했다. "아이들도 이 운동의 참석자로서 환영을 받고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중보기도를 해주는 자', '도와주는 자' 라는 명찰을 달고 기도팀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다."(「카리스마」, 1998년 2월, p51)

다음은 한 목사가 펜사콜라 부흥으로 은혜를 받았다는 중학생 전도자 두 명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브라운스빌 집회에서 구원받았다는 거지?"

"예, 그렇다니까요. 한 달 전 쯤에요."

 

"좋아. 그런데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지? 한 번 설명 좀 해 볼래."

"우리는 하나님을 만났죠. 그것뿐이에요. 정말로 만났다니까요."

"너희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지?"

"글쎄요. 그냥 느낀 거죠. 아저씨도 느낄 수 있어요. 난 전기가 내 팔뚝으로 기어오르는 걸 느꼈다고요."

"나도요!"

"그 뒤에 어떤 일이 있었지?"

"글쎄요. 뭐 우리는 구원받은 거지요."

"어디서 말이니? 어디서 구원받았느냐고."

"그건.....왜 있잖아요. 하나님이 우릴 만져 주는 거 말이에요."

"그 뒤에 또 무슨 일이 있었지?"

"그 뒤에 또 무슨 일이라뇨? 말했잖아요? 우리가 구원받았다고요."

"그래요. 나도 그것을 느꼈어요. 내가 기도하는데, 마치 감전된 것처럼 내 팔뚝으로 뭔가 기어다녔다고요."

"그래서 너희들은 그게 하나님의 집회라고 생각한다 이거지?"

"맞아요! 거기엔 하나님의 하나님이 꽉 차 있다고요!"

세상에 속한 자들, 육신에 속한 자들의 행태란 바로 이런 것이다. 이게 바로 전형적인 펜사콜라에서의 "거듭남의 체험"인 것이다. 만약 이 두 아이들이 말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아이들은 구원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만으로는 결코 영생을 얻지 못한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보혈을 믿을 때에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엡 2:8-10).

 

그러나 웃음 부흥에서 가르치는 복제품 구원은 느낌이 사라지면서 슬며시 사라져 버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또 다시 느끼기 위해 그들은 수십 차례씩 강단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되풀이하며,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었다가 - 즉 구원을 잃었다가 -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오순절/은사주의 지도자들은 한결 같이 "은혜를 잃고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이단 교리로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이런 거짓 교리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인 것이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펜사콜라 부흥

이런 부흥과 현상은 결코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왜 그런가? 첫째 어떤 성경 말씀도 이러한 혼돈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에도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은 이러한 나타남을 반박하며 이것이 마귀의 활동의 진면목임을 보여준다. 킬패트릭이 묘사했던 것과 동일한 현상들은 마법, 사탄숭배, 강신술, 뉴에이지 운동, 부두교 및 기타 관련 사탄종교 등 대부분의 이교의식이나 행사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결국 킬패트릭이 말한 현상들이 성경적 근거가 없음에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앞에 언급된 이교의식들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즉 무슨 특이하고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사탄과 마귀들도 강력한 힘이 있으며 스스로 마음을 그들에게 내어주는 사람에게 이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사실 성령의 열매를 흉내내서 가짜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사탄의 본업이다. 제대로 성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사탄도 다음과 같은 모조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1. 눈물을 흘리며 행하는 회개(히 12:17, 마 27:3-5)

2. 거듭남과 믿음의 고백(요일 2:19, 마7:21-23)

3. 사역자와 교회(행 19:37, 고후 11:13-16)

4. 영과 영적 능력(행 8:9,18, 마 10:4, 고후 11:13-16)

5. 복음(갈 1:6-8)

6. 성경(고후 2:17)

7. 사도(고후 11:13)

8. 성경으로 뒷받침을 받는 "성경적" 교리(딤전 4:1-2, 딤후 4:3-4, 눅4:9-10)

마귀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로 펜사콜라 부흥과 동일한 초자연적인 표적과 이적은 지난 수세기 동안 이방 종교 안에서도 늘 있어 왔다. 가령 1989년 마닐라에서 있었던 "로잔 2 복음주의 회의"(Lausanne II Evangelical Conference)에서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 윔버(John Wimber)는 20 세기말에 어떤 급진적인 변화와 새로운 표적과 이적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 집회에서 윔버와 다른 은사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난 것으로 알려진 기적들과 병 고침의 사례들을 간증했다. 그들은 이러한 표적의 나타남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인도에서 온 언론 심사단 가운데 한 사람은 기자 회견을 통해 이 같은 기적들과 표적들이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은사주의 스타일의 방언과 신유과 기적, 표적, 이적들과 동일한 것들이 자신의 고국 인도 종교에도 있다고 말했다.

 

             거짓 영에 사로잡힌 펜사콜라 부흥

1996년 6월 17일자 「크리스채니티 투데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부두교의 요새 흔들 수 없을 것으로 보임." 이 기사는 「신들의 얼굴: 부두교를 믿는 하이티 섬의 부두교와 천주교」(Faces of the Gods: Voodoo and Roman Catholicism in Voodoo Haiti)의 저자인 디맹글스(Leslie Demangles)의 글을 인용하고 있었다.

"하이티의 프로테스탄트들은 새 신자들에게 성령에 사로잡히는 것과 부두교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데 애를 먹고 있다. 그 이유는 오순절 은사주의의 성령 침례라는 것이 부두교에서 영에게 사로잡히는 것과 거의 같기 때문이다."

실로 브라운스빌 운동을 주도하는 영(靈)은 부두교나 기타 다른 이방교종의 영과 같은 영이다. 성경에 나오는 마귀의 활동들 가운데 몇몇을 살펴보면, 그것이 브라운스빌에서 일어난 일과 얼마나 흡사한지 금방 알 수 있다. 먼저 욥기 4장을 보자. 거기서 엘리바스는 욥을 꾸짖고 욥이 고난 당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엘리바스는 자신이 하룻밤사이에 겪었던 일을 욥에게 말하는데 그것은 킬패트릭이 페사콜라 부흥이 시작되기 전 어느 날 저녁에 교회로 들어가면서 경험했던 것과 너무나도 똑같다. 욥기 4장 12-16절에서 엘리바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어떤 일이 내게 은밀히 이르고 내 귀로 그것을 조금 들었나니, 사람들이 깊이 잠들 즈음에 그 밤에 본 환상들로 인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임하여 내 모든 뼈가 흔들렸느니라. 그 때에 내 얼굴 앞으로 한 영이 지나가므로 내 몸의 털이 곤두섰느니라. 그 영이 가만히 서 있었으되 나는 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였거늘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느니라."

 

킬패트릭도 동일한 일을 겪었다! 욥기의 끝 부분에서 하나님은 엘리바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셨다(욥42:7). 사실 엘리바스의 말은 거짓 영에서 나온 것이었다.

누가복음 8장 26-36절에 나오는 마귀 들린 사람의 예를 보자. 가다라 지방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무덤 사이에 살았던 이 마귀 들린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은 미친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기 전까지는 그는 명백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온전한 정신으로 옷을 입고 예수님의 발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귀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얻은 이 사람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맑은 정신을 가진 사람이 되어 조용하고 공손히 예수님의 발 곁에 앉아 있었다. 실로 브라운스빌 교회의 사람들의 혼란스런 행동은 온전한 정신을 되찾았던 사람이 그전에 마귀 들렸을 때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펜사콜라 부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다수는 펜사콜라 부흥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이로써 많은 이들이 구원받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부흥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마귀 들린 소녀 점쟁이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이 사건은 보기에 좋고 거짓이 아니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이 어린 소녀는 빌립보의 거리에서 바울과 실라를 따라다니면 외쳤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 이 말이 사실인가? 확실히 그렇다. 하지만 소녀를 통해 이 말을 하는 것은 거짓 영이었다. 그 도시의 사람들은 틀림없이 마귀로 말미암은 그녀의 일과 하나님에게서 나온 사도 바울의 사역을 같은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진실이 거짓으로 오도된 것이다. 이 소녀는 바른 말을 했지만 실제로는 마귀를 위한 것이었다. 과연 사도 바울이 소녀의 말이 진실이고 자기에게 관심을 끌게 하는 것이었기에 그냥 내버려두었는가? 아니다. 바울은 곧바로 그 소녀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었고, 그 결과 그전까지 소녀의 점치는 능력으로 돈을 벌었던 사람이 고발함으로 인해 마을에서 쫓겨났다. 오늘날에도 터론토, 브라운스빌과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기독교의 이름을 이용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며 결국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위험하며 마귀에게 속한 절대적 오류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구원이 없는 펜사콜라 부흥

펜사콜라 부흥의 지지자들은 이번 부흥의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구원의 체험"이야말로 교회가 이 운동을 아무 문제없이 수용할 수 있는 근거라고 내세우며 이를 이용하여 펜사콜라 현상에 대해 회의를 갖고 반대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의견에 개의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참으로 예수의 그리스도의 구원을 아는데 이르게 되었다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마땅히 주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브라운스빌 교회의 혼동에 빠진 군중들의 마음을 알 도리가 없다. 혹 구원받았다는 그들이 주위의 분위기에 편승하여 앞으로 나간 것은 아닐까? 정말 그들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 부활하심을 믿고 자신이 오직 어린양의 피로써만 깨끗함을 받을 수 있는 죄인이란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지식이 없는 회개를 하거나 단순히 이전의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결정한 것은 아닐까? 결심한 자들의 마음은 그리스도만이 아신다. 하지만 그런 모임에서 "복음 선포"와 건전한 교리가 등한시되고 감정적인 분위기와 초자연적인 계시와 경험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을 볼 때 과연 거기서 진정한 복음이 선포되었으며 앞으로 나아온 자들이 그 말씀을 믿었는지 의심하기에 충분한 여지가 있다. 펜사콜라 부흥에 참여하는 구원을 얻고자 하는 죄인들이 행하는 일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영생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기 위해서 강단 앞으로 나오라는 권유를 받는다.

2.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영생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 안에서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오라는 압력을 받는데, 어떤 때는 이런 압력이 심지어 3시간이나 계속된다.

 

3.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영생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쏟아지는 강물에 흠뻑 젖기 위해서 강단 앞으로 나오라는 강요를 받는다.

4.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은 앞으로 나와서 죄들을 고백하고 회개를 하지만 올바른 복음이 없으므로 결코 영생에 이르지 못한다.

5. 그 뒤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들이 앞으로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할 것인지에 대해 간증을 하지만 그래도 영생을 얻지는 못한다.

6. 그리고는 구원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살다가, 느낌이 없어지면 또 다시 느낌을 얻기 위해 강단 앞으로 나아가며, 이로써 1-5번의 사이클이 평생토록 반복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특별히 마지막 날 많은 "거짓 교사들"이 경솔한 자들을 속이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셨다(마 7:22,23). 성경은 또한 이렇게 경고한다.

"그러한 자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그러므로 사탄의 사역자들이 의의 사역자로 가장한다 하여도 결코 큰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사도 베드로도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하며 그들이 교회시대의 마지막에 많은 이들을 속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벧후 2:1-3). 그렇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신약 정경이 완성되기 전 초대교회에 있었던 표적과 이적 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완전한 것(혹은 완성된 것;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이 오면 부분적인 것(초대 교회에 주어진 계시적인 은사들을 통한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이해)은 없어지리라"(고전 13:8-10).

하나님의 역사와 인도하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운동이나 현상은 완전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검증해 보아야 한다. 단지 어떤 목사나 그리스도인이 자기들이 행하거나 본 기적과 표적 등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인정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지막 날에 있을 표적과 이적들은 사탄의 힘과 속임수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가르친다(살후 2:7-10). "거짓 이적"을 통해 모든 세상은 결국 계시록 13장 1-5, 14절에 나오는 짐승에게 경배하게 될 것이다. 사탄의 첫째 목적은 항상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고 성경은 사탄이 최종적으로 불 호수에 던짐을 받을 때까지 그 일을 지속하리라 말하고 있다. 사탄은 교회를 속이길 원한다. 따라서 믿는 이들은 어떤 체험이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다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소문난 기적이나 표적, 계시가 아니라 성경만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을 결정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펜사콜라 부흥

펜사콜라 부흥 등의 표적과 초자연적 현상이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았다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도 없이 그저 감정적인 분위기에 기초하여 그런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칼슨은 「워싱턴 포스트」지 기사에서 특별히 강대상에서 성경 말씀이 한 마디도 나오기 전에 30분 동안이나 사람들이 "영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이다. 디모데전서 4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교리[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가르쳤다. 우리도 교회에서 이것들에 유념해야 한다. 경배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바 드러나는 은사는 개인이 어떤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정서적인 광란의 상태에 자신을 맡기는 경우에는 결코 나타난 적이 없었다.

펜사콜라 부흥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과 교회 질서의 측면에서 볼 때 성경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4장 33절은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이심"을 분명히 보여준다. 혼동과 대혼란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분명히 킬패트릭은 브라운스빌에 일어난 것이 혼동이요 대혼란이라고 즉각 인정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결코 혼동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시 71:1).

 

              분별이 없는 펜사콜라 부흥

펜사콜라 부흥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뛰어들어라.", "아무 곳이나 들어가라.", "전에 없던 이 현상을 경험해 보아라." 등등. 반면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것을 입증하라.",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라.", "영마다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가 시험하라." 등등. 우리는 이 운동을 하나님의 완전하고 영원하신 말씀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우리는 역력한 모순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혼돈은 경건한 질서와 건전한 교리에 대한 명령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부흥의 정통성을 그 열매 즉 변화된 삶, 병자들을 고치고 집을 돌려주는 등과 같은 일로 가름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이는 바른 잣대가 아니다. 거짓 영들도 분명히 일시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어쨌든 성경의 진리와 상치되는 그 어떤 것도 개인에게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진리의 핵심이 거절된 상태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이적과 기적을 행하려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스게바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주의 이름으로" 이것을 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악한 영에게서 매를 맞았다(행 19:13-16). 아직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한다.

 

 

제11장  펜사콜라 웃음 부흥의 거짓 주장들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지도자들은 여러 가지 놀랄만한 주장을 했으나 다 거짓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펜사콜라 부흥"에 대해 약 4개월간 조사한 뒤 「펜사콜라 뉴스저널」은 그들의 여러 가지 속임수와 과대 선전을 폭로했다. 이 저널은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해 아주 길고 자세하게 논평을 했으나, 브라운스빌 교회는 인터넷에 아주 짤막하게 답변을 했는데 이는 자기들의 주장을 변호하기 위한 연막에 불과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려면 다음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기 바란다. "「펜사콜라 뉴스저널」에 대한 브라운스빌 교회 답변 내용의 문제점"("Problems with the Brownsville Response to the Pensacola News Journal")

주장 1 : 자신의 자서전인 「돌덩어리 같이 차가운 마음」에서 브라운스빌 교회의 부흥사 힐(Steve Hill)은 과거에 자기가 13번 체포된 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1 : 실제로 그는 4번 체포된 경력이 있다.

주장 2 : 힐은 자신이 헤로인 마약 중독자였다고 한다.

 

사실 2 : 그는 「펜사콜라 뉴스저널」 담당자에게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고백했으며 자기가 마약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과장해서 신도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려 했다고 말했다.

주장 3 : 힐은 자신 3년 동안 촌으로 다니면서 이상한 일을 하며 마약을 팔았다고 주장한다.

사실 3 : 그의 고용 기록을 보면, 그는 2∼3년 동안 알라바마주 헌츠빌에서 전일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주장 4 : 힐은 자기가 고등학교에서 쫓겨났다고 주장한다.

사실 4 : 그는 「펜사콜라 뉴스저널」 담당자에게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고백했으며, 뿐만 아니라 이미 공개적으로 알려진 그의 간증의 많은 부분이 사실이 아니고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도 가짜라고 말했다.

주장 5 : 브라운스빌 교회의 지도자들은 "펜사콜라 부흥"으로 인해 펜사콜라시와 그 주변지역의 범죄율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사실 5 : 에스캄비아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에 있는 범죄 및 체포 기록을 살펴보면, 펜사콜라 부흥이 일어난 1996년에는 1995년에 비해 오히려 범죄율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곳의 보안관인 로우맨(Sheriff Jim Lowman)은 그 부흥이 범죄율에 무슨 영향을 미쳤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대답했으며, 그들의 통계를 보면 1996년에는 청소년 범죄가 2,392건으로 1995년의 1,243건에 비해 무려 두 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장 6 : 브라운스빌 지도자들은 이번의 부흥을 통해 마약 밀매자와 사용자들이 회심함으로써 그 지역의 불법 마약 사용 사례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6 : 마약 남용 사례를 관장하는 기관의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프라이어리"(The Friary)라는 마약 치료 센터의 담당자인 도넬리(Leo Donnelly)는 1993-1994년에 치료받은 사람은 250명이었으나, 1996-1997년에 치료받은 람은 398명이었다고 진술했다. 「펜사콜라 뉴스저널」이 조사한 다른 마약치료 센터의 기록도 그와 동일했다. 그들은 브라운스빌 부흥으로 인해 마약사용을 중단했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주장 7 : 브라운스빌 지도자들은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들이 펜사콜라 부흥에 큰 감명을 받아 용의자를 체포한 뒤 감옥으로 데려가지 않고 부흥집회 장소로 데려 갔다고 주장했다.

사실 7 : 보안관 로우맨은 이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했으며, 만일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이것은 범죄 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이다." 펜사콜라 경찰서 부소장인 포츠(Jerry Potts)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것이 사실이냐고 자기에게 물었지만 자기의 경찰관들은 결코 이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분명히 대답했음을 밝혔다.

 

주장 8 : 브라운스빌 지도자들은 이번의 부흥으로 인해 브라운스빌 지역에서 매춘, 마약 사용, 거리 범죄 등이 줄어들었으며 또한 과거의 참된 부흥과 마찬가지로 이번의 부흥이 펜사콜라 전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8 : 그러나 그곳의 주민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 교회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라이스(Dori Rice)는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는 창녀들이 교회를 떠나 우리 지역으로 더 가까이 들어오고 있으며, 우리의 아이들이 노는 곳까지 창녀를 찾는 자들이 차를 몰고 다니고 있다." 또한 그 교회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50년 동안 살아온 우르바니악(Roscoe Urbaniak)은 다른 범죄 역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그 지역 주민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나이든 여인들이 최근에 늘어난 지갑 소매치기들 때문에 집에서 나오기를 꺼려한다고 「펜사콜라 뉴스저널」에 말했다.

주장 9 : 브라운스빌 지도자들은 펜사콜라 부흥이 1995년 6월 18일에 갑자기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사실 9 : 이미 6월 18일 전에 킬패트릭 목사의 부인을 포함한 브라운스빌 교회의 주요 회원들은 수 주 동안 캐나다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를 방문했으며, 브라운스빌에서도 빈야드 교회에서 일어난 웃음 현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며, 이미 6월 18일 전에 교회에서 터론토 현상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상영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그런 일을 위해 기도하라고 주문했다. 또한 6월 18일 전에 킬패트릭 목사는 브라운스빌에 웃음 부흥을 가져올 것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했으며, 만일 자기 교회가 이를 반대하면 자기가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6월 18일에 오순절 부흥사 힐이 브라운스빌에서 설교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히 아니었다. 킬패트릭은 참으로 교묘히 힐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힐이 웃음 부흥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했으며 오랫동안 지속될 "늦은 비" 부흥 집회를 열 장소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위에서 밝힌 대로 힐은 영국 런던의 브롬튼 홀리트리니티에서 "웃음 부흥" 성령 침례를 추구했다.

 

주장 10 : 브라운스빌 지도자들은 6월 18일에 강풍이 교회를 뚫고 지나가면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마룻바닥에 넘어졌는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움직임이었다고 주장한다.

사실 10 : 6월 18일에 촬영한 비디오 테이프와 거기 모인 사람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 같은 주장 자체가 허위이다. 실상은 부흥사 힐이 이런 사건들을 조작한 것이 명백하다. 처음에 그가 안수를 받으러 나오라고 사람들을 초청하자 단지 아홉 명만이 나와 넘어졌다. 그런데 힐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부추겨서 또 다시 여섯 명이 넘어졌고 또 몇 명이 더 넘어졌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사실 힐이 조작한 것이었다.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오라고 해도 반응하는 사람이 없자 그는 당황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기 시작하자 그는 떠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황급한 가운데 힐은 아이들을 향해 다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들이 다 넘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이 같은 호언 장담에도 불구하고 조그만 소녀 하나만 넘어졌다.


 

주장11 : 「펜사콜라 뉴스저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 교회는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던 성도들이 거의 다 그 교회를 떠났다고 「펜사콜라 뉴스저널」이 진술한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브라우스빌 웹사이트에 게재된 성명서이다. "브라운스빌 하나님의 성회에서 부흥이 시작된 이래로 150명의 기존 회원들이 떠나갔으며 1,530명의 새 회원이 들어왔다. 이 교회에 25년 이상 다닌 회원들 중에서 이번 부흥이 생긴 이래로 교회를 떠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또한 27명의 대표들 가운데 4명만이 교회를 떠났다. 다시 말해, 기존 회원 중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사실11 : 이 같은 진술은 실로 실제의 상황을 감추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킬패트릭 목사와 친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가 주장하는 "펜사콜라 부흥"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킬패트릭도 스스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1997년 6월 7일 워싱턴에서 열린 집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번의 일로 인해 이 세상에서 제일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잃게 되었습니다." 부디 "모두"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1997년 11월 17일 「펜사콜라 뉴스저널」의 기사 제목은 "브라운스빌을 떠난 회원들은 슬픔과 두려움에 차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기사에 대한 브라운스빌 교회의 답변은 한마디로 연막에 불과한 것이다. 그 기사에 따르자면, 킬패트릭은 자기의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다 마귀에게 사로잡힌 자들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번의 부흥을 반대하는 자들은 괴로움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로 이런 주장들은 사실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워싱턴 집회에서 그는 이번의 부흥으로 인해 교회를 떠난 성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녀가 마귀에 사로 잡혔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주장12 :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의 아르놋 목사는 릴리만(Sarah Lilliman)의 치유야말로 웃음 부흥에서 나타난 기적들 가운데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놋에 따르자면, 릴리만은 마비가 되고 눈이 멀어 식물과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의 친구 중 하나가 터론토 교회의 집회에 참가했다가 영 안에서 죽임을 당했는데, 그 때 예수님이 환상 속에 나타나 사라 릴리만에게 가서 병을 고쳐 주겠다고 말한 것을 전하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그 뒤에 아르놋은 릴리만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사실12 :「거짓 부흥」이라는 책에서 헤인그라프는 이것이 거짓 주장임을 폭로하고 있다. 사실은 릴리만이 마비가 되어 거의 식물인간이 된 것이 아니며, 그녀를 진단한 의사들은 그녀의 육체적 질병이 심리적, 감정적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르놋과 그의 동료들이 이 사건을 가리켜 터론토 축복의 증거요, 하나님의 능력의 증거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릴리만은 지금 이 시간에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눈이 먼 상태로 지내고 있다. 또한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인해 계속 투쟁을 하고 있다." 릴리만에 대한 헤인그라프의 증언은 다음의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행크 헤인그라프가 바른 말을 했음을 룻스벤이 인정한다."(Jon Ruthven Admits Hank was Right)

     

     

제12장  웃음 부흥을 배격하는 9가지 이유

친구 여러분, 웃음 부흥의 정체가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음은 성경대로 믿는 우리가 오순절/은사주의의 웃음 부흥을 배격하는 이유들이며, 이 중 단 한가지만으로도 문제의 본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우리는 웃음 부흥이 성경에서 나타난 현상과 정반대가 되므로 이를 배격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성경은 우리의 신약 교회를 위해 허락하신 유일하며 충분한 권위이다. 하나님이 이 책을 주신 것은 속임수와 오류를 막기 위함이며, 이 책에 기록된 말씀은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보다 더 확실하다(벧후1:18-21). 또한 신약 성경에 드러난 양상과 형식만으로도 우리가 교회를 운영하는데 충분하다. 디모데에게 교회를 향한 교훈을 준 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서신을 마치고 있다.

"모든 것을 살리시는 하나님 보시는 데서와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을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내가 네게 명하노니, 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있을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딤전6:13,14)

 

교회에게 주신 명령을 우리는 다 지켜야 한다. 우리는 결코 새로운 종류의 교회를 만들 권한이 없으며 또한 성령님께서 초대 교회에서 운행하셨던 것과 다른 식으로 혼동을 동반하며 운행하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성경은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완전한 계시로,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고 성도들에게 단 한번 주신 믿음을 담고 있다. 따라서 성경은 크리스천의 믿음과 행실을 위한 완전하고도 충분한 표준이 된다.

 

그런데 도대체 성경 어디에 웃음 부흥이 있고 개 짖는 소리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땅바닥에서 동동 구르며 웃어대는 대언자들이 성경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과연 예수님께서 웃음 부흥을 일으킨 적이 있단 말인가? 과연 사도들이 성령님을 붙잡아서 사람들 위로 던지고 교회 회원들의 배를 만져 낄낄거리며 거룩한 웃음을 웃게 한 적이 있는가? 도대체 사도들이 마귀 들린 자들 앞에서 낄낄거리고 웃은 적이 있는가? 도대체 초대 교회 성도들이 "주여, 더 주시옵소서"하고 계속해서 외치며 "영 안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영으로 취해서" 이리 저리 비틀거리며 넘어져서 설교도 하지 못하고 일상생활을 하지도 못한 적이 있단 말인가? 이런 것들은 한 마디로 비성경적인 넌센스이다. 이런 것에 현혹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료한 말씀과 가르침과 본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며,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황급히 말씀을 벗어나 육적 욕망과 마귀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들이다.

 

              2. 우리는 웃음 부흥으로 인한 혼동 때문에 이를 배격한다.

"이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이심이라."(고전 14:33)

비디오 테이프를 보거나 실제로 모임에 가서 거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 한마디로 혼동 그 자체이다. 이런 혼동은 결코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 같은 혼동과 오류를 지적하면 그들은 곧장 우리가 성령님을 상자 안에 가두어 두려 한다고 비난한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행하실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친구 여러분, 이미 성경은 성령님께서 어떻게 행하실는지 다 기록해 놓았다. 성령님은 결코 자신이 영감을 불어넣은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그 어떤 것을 행하시지 않는다. 또한 우리 크리스천들은 모든 것을 입증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살전 5:21).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들고 모든 영과 교리와 교사와 종교 현상을 입증해 보아야 한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많은 영적 은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의 오류로 인해 그들을 책망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분명히 말했던 것이다.

 

"이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이심이라."(고전 14:33)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 동일한 일을 행하실 것임을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미국에 있는 교회나 아시아 혹은 아프리카에 있는 교회나 1세기의 교회나 20세기의 교회나 하나님의 성도들의 교회에서는 동일하게 혼동이 없이 일을 행하실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집회에서 드러난 혼동으로 인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한 곳에 모여 모두 타언어들(방언)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 14:23)

바로 이 점이다. 웃음 부흥 비디오 테이프를 볼 때 바로 이런 생각이 내게 떠올랐다. 이 사람들은 미친 것이다!

 

              3. 우리는 사람들을 무의식 상태로 몰아가서 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드는 "영 안에서 죽는
                   현상"(입 신현상)으로 인해 이 웃음 부흥을 배격한다.

신약 성경은 은사주의자들이 경험하는 이른바 "영 안에서 죽는 현상"이 초대교회에 없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물론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땅에 엎드려지는 일이 있었다.

1. 성도들은 예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넘어졌다(마 2:11; 18:26; 눅 17:16; 요11:32; 고전14:25).

2. 변화산 사건의 경우 제자들은 무서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넘어졌다(마 17:6)

3. 사울(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에 주님이 나타나자 땅에 넘어졌다(행 9:4)

4. 사도 요한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그리스도의 발에 넘어졌다(계 1:17)

 

그런데 신약성경에 기록된 이런 사건들 속에서 사람들이 엎드러진 것은 현대 오순절 웃음 부흥에서 이루어지는 이른 바 "영 안에서 죽는 현상"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는 단 한번도 사람이 쓰러지기 전에 안수를 한 적이 없다. 또한 사람이 쓰러지는 것을 조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중간 매개 역할을 한 적도 없다. 또한 몸이 마비되거나 소위 "성령 끈끈이 풀"이라는 현상에 의해 사람이 바닥에 달라붙어 일어나지 못한 적도 없다. 쓰러지라는 명령이나 가르침도 없고, 쓰러지기 위해 줄을 선 경우도 없고, 계속해서 똑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불러 사람들을 쓰러뜨린 예도 없다.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영 안에서 죽는 현상"이나 억제할 수 없는 웃음 혹은 기타 이상한 현상들을 다 거부한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더러 거짓 영과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를 대적하는 자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깨어 있으려면 우리의 의식이나 경계 태세를 무너뜨리는 경험에 우리 자신을 내어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4. 우리는 웃음 부흥이 "영적으로 취한 상태"를 가져오므로 이를 배격한다.

위에서도 몇 차례 언급했듯이, 웃음 부흥에서는 사람들이 술에 취한 듯이 취하는 현상이 발생하며, 심지어 웃음 부흥의 선구자 하워드-브라운은 자기를 가리켜 '성령 바텐더'라 부르며, 자기가 성령의 새 술을 나누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은 비틀비틀 거리며 넘어지고, 차를 몰다가 다른 사람의 차나 쓰레기통을 들이받고, 집으로 가는 길도 몰라 헤매며, 침대를 찾지도 못하고 여러 가지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의 지도자 세브루(Guy Chevreau)의 부인은 처음으로 웃음 부흥을 경험한 뒤 이틀 동안 취한 상태로 지냈다. 그 48시간 동안 몇 사람들이 식사를 하러 그 집을 방문했으나 그녀는 질서 있게 그들을 대접하지도 않았고 상에다 뜨거운 고기를 내던지고 상 가운데다 프렌치 프라이를 쏟아놓고는 각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물론 그 시간에 그녀는 계속해서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며 웃어댔다.

 

하워드-브라운의 집회에 참석한 한 부부도 성령의 새 술에 취해 자기의 아기도 잊어버리는 바람에 옆에 있던 사람이 엄마에게 다치지 않도록 아기를 받아 보호해야만 했고, 그 뒤에도 이 부부는 한참동안 새 술에 취해 지냈다.

성경에는 성령의 새 술에 취하는 축복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웃음 부흥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을 예로 들며 사도들이 오순절 날에 성령 안에서 취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실제로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사도들이 행한 방언의 기적을 무시하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도들이 비틀거리며 땅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이런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사용된 여러 언어로 사도들이 말했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한 것이었다. 이 같이 사도들을 조롱하려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아주 분명하게 사도들이 결코 취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세 시밖에 되지 아니하였으니, 너희가 짐작하듯이 이 사람들이 술 취한 것이 아니니라."(행2:15)

 

만일 사도들이 현대 웃음 부흥의 형태로 새 술에 취했다면, 이들은 결코 복음을 선포하거나 증거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도행전 2장 14-40절에 기록된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보라. 그는 여러 가지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그것들을 분석하고 지금 일어난 상황에 적용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술 취하지 않은 설교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 웃음 부흥에서 취한 사람들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차를 운전하지도 못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어도 답변조차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머뭇머뭇하며 한 두 마디 정도 말하거나 심지어 대답하는 중에 넘어져서 움직이지 못하는데, 이 같은 경험은 오순절 날에 일어났던 것과는 정반대가 되는 일이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은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을 대비해서 보여 준다. 사실 술 취한 사람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술이라는 이물질에 지배를 받는다. 반면에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은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다. 앞 뒤 문맥으로 보아 이 같은 해석은 아주 적절한 것이며, 성령님의 지배를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웃음 부흥에 빠진 사람들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또한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성경의 예를 근거한 것이다. 예수님이나 사도들 당시에 그 어느 누구도 웃음 부흥에 빠진 사람들처럼 비틀비틀거리며 넘어지고 쓸데없는 말을 중얼대며 필요한 일들을 수행하지 못한 적이 없다. 또한 우리는 성경 말씀이 술 취하지 말고,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기 때문에 웃음 부흥을 거부한다(벧전 5:8)

 

              5. 우리는 웃음 부흥의 지도자들이 성경적 조사를 거부하기 때문에 이를 배격한다.

이들은 성경에 근거해서 웃음 부흥을 검토하는 것 자체를 조롱한다. 하워드-브라운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여러분이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가 분석하고자 하면 아무 은혜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하지도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기 바랍니다."

 

터론토 빈야드 교회의 아르놋은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 즉 영 안에서 죽거나 데굴데굴 구르거나 넘어져서 웃거나 하는 은사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라도 속지는 않을까 하고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은혜를 받으려면 이런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들은 언제나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결코 성령의 일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근거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면 안 된다. 이 같은 부흥을 성경의 교리에 근거하여 판단하게 되면 성령의 불이 꺼진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기를 원하는 독자는 존슨(Phillip Johnson)이 윔버의 빈야드 교회를 방문한 뒤 기록한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www.gty.org:80/~phil/articles/laugh.htm).

 

또한 이들은 성경을 근거로 자기들의 부흥을 조사하는 사람들은 불일치의 씨를 뿌리는 자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무어라고 이야기하는가? 사도행전 17장 11절에서 베레아 사람들은 자기들이 받은 가르침이 정말로 그런가 알아보려고 성경을 찾아 대조함으로 고귀한 자들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고 선한 것을 굳게 붙들라.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삼가라."(살전5:21,22)

"거짓 대언자들을 조심하라. 그들이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으로는 약탈하는 이리니라.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모으며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모으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변질된 나무는 악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변질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 (마7:15-18)

 

"베레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욱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그리스 사람인 귀부인들과 남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게 그리하더라."(행17:11,12)

"주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지 입증하라.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들을 책망하라."(엡5:10,11)

성경의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신의 백성들이 모든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고 분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6. 우리는 웃음 부흥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므로 이를 배격한다.

성경의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이름 자체가 거룩하며 지존하시다(시111:9) 우리는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분에게 접근하고 그분께 말씀을 드려야 한다. 그런데 웃음 부흥에 관련된 사람들은 결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대하지 않는다. 우선 이들은 웃음 부흥을 가리켜 "파티하는 시간"이라고 주장하며, 이 파티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상한 현상들과 새 술에 취해서 자제하지 못하는 것과 혼동을 주신다고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고전도 교회에게 다음과 같이 아주 분명한 말로 경고했다.

"이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이심이라."(고전 14:33)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할지니라."(고전 14:40)

 

이 두 구절만으로도 웃음 부흥이 틀린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 웃음 부흥 지도자들의 태도는 아주 불손하다. 하워드-브라운은 자기가 처음 은혜를 받았을 때 하나님이 직접 내려오사 자기에게 손을 대지 않으면 자기가 위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손을 대겠다고 기도했다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 삶에 들어오도록 자기가 허락했으므로 나중에 천국에 가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너는 내 뜻대로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면 그분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하나님, 내 잘못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허락했습니다.' 라고 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이들은 또한 무례하게도 하나님께 명령을 내려 사람들에게 임하라고 한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하나님께 명령한다. 도대체 그가 명령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만 결코 우리가 명령한 것을 행하는 분은 아니시다. 또 다른 웃음 부흥 지도자들 역시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명령을 하는데, 이것은 결코 성경의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웃음 부흥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무시하고 있다. 한번은 하워드-브라운이 지옥에 대해 설교하고 있을 때 갑자기 청중들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 웃음 부흥에서는 수많은 경우에 웃음으로 인해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선포할 수 없다. 웃음 부흥의 지도자들이 이런 명백한 일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며, 웃지 않아야 할 때에 웃지 못하게 만드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거룩하고 지존하신 하나님이 아님을 명백히 보여준다. 심지어 설교자마저도 성령의 새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강대상 밑에 주저앉으니 과연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7. 우리는 웃음 부흥이 여자 지도자들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를 배격한다.

오순절/은사주의의 역사와 최근의 웃음 부흥을 통해 우리는 여자들이 선두에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영국 런던 홀리트리니티 브롬튼에 웃음 부흥을 가져온 장본인도 여자였으며, 터론토 빈야드 교회 아르놋 목사의 부인도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웃음 부흥 경험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펜사콜라 부흥의 킬패트릭 목사의 경우도 그 부인이 직접 터론토까지 가서 웃음 부흥을 체험하고 교회로 돌아와 기도팀을 만들고 웃음 부흥을 일으켰다. 또한 브라운스빌 교회에서는 한 십대 소녀가 전체 교회 앞에서 말을 하고 예언을 함으로써 웃음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이것은 비디오로 녹화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배부되었다.

 

성경은 분명히 여자들이 남자위에 서서 가르치거나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내가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히 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그 뒤에 이브가 지음을 받았으며또한 아담이 속지 아니하고 여자가 속아 범법하였음이라."(딤전 2:12-14). 이 같이 성경이 명백히 금하고 있는 것을 오순절/은사주의자들은 아무 거부감 없이 행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8. 우리는 웃음 부흥 안에 절제가 없기 때문에 이를 배격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할지니라."(고전14:40) 그런데 웃음 부흥에는 이런 품외가 전혀 없다. 거기에는 질서도 없고 절제도 없다. 대부분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 여자들이 뒤로 넘어지며 치마가 벗겨지고 하체가 드러난다. 남자가 여자위로 쓰러지고 여자가 남자 위로 쓰러지며, 심지어 킬패트릭 목사의 경우 여자 신도가 그에게 쓰러져 안기기도 한다. 이 같이 부적절한 일들이 집회마다 일어나고 있는데, 실로 성령님은 이런 식으로 행하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분명히 성령님은 여자들이 절제하며 품위있게 행하기를 원하시며, 남자들도 이런 일에 빠지기를 원치 않으신다.

 

              9. 우리는 웃음 부흥이 거짓 교리를 조장하므로 이를 배격한다.

성경은 성령님을 가리켜 "진리의 영"이라고 한다(요 14:17; 15:26; 16:13; 요일4:6). 그러나 오순절 웃음 운동의 열매는 진리가 아니라 교리의 오류이다.

 

                    (1) 이들은 먼저 크리스천이 완전한 건강을 누릴 수 있다고 거짓 주장을 편다.

비록 그들이 아사야서 53장 5절을 인용하며 예수님의 속죄로 인해 완전한 건강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 구절이 가르치는 치유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죄로부터의 치유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범죄로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불법으로 인함이라. 그가 징벌을 받으므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사53:5), 이에 대해 베드로전서 2장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맞대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짊어지셨으니, 이는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너희가 전에는 길 잃은 양과 같았으나, 지금은 너희 혼의 목자요, 감독이신 분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2:22-25)

 

                    (2) 이들은 말세에 "늦은 비" 기적 부흥이 있을 것이라고 거짓 주장을 편다.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20세기 오순절운동의 가장 큰 교리 중 하나는 주의 재림이 있기 전에 전세계적으로 표적과 기적 부흥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웃음 부흥" 지도자들 역시 이 점을 무엇보다도 강조하면서 "웃음 현상"이야말로 말세 기적부흥에서 생길 "늦은 비"의 첫 번째 방울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대개 사도 행전 2장 17-21절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자기들의 주장을 편다. "보라.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복음 전도, 즉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점은 그들이 자기들의 기적 및 표적 부흥을 지지하기 위해 이 구절을 문맥과 상관없이 해석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오히려 대언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딸들은 대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며,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내 종들과 여종들 위에 부어 주리니 그들이 대언할 것이요"(행 2:16-18)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이적들과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보이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저 크고 주목할 만한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19-21)

 

우선 사도 베드로는 요엘의 예언이 자기 때에 오순절 사건과 함께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그는 분명히 자기들이 목격한 사건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말로 방언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대언자 요엘이 예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요엘의 예언이 두 부분 즉 예언 부분과 하늘에 있을 표적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베드로가 이야기하는 것은 요엘의 예언 부분이 초대 교회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성경과 인류역사를 통해 뒷부분 즉 하늘의 표적 부분은 그 때나 지금이나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예수님의 재림 때에 다 이루어질 것이며, 계시록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

 

사도행전 2장 17,18절의 예언은 오순절 날 발생한 방언 및 예언과 관련이 있으며 특히 사도들의 사역과 관련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신약 성경이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20-22절에서 분명히 방언이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위한 표적임을 설명해 주고 있다.

 

"형제들아, 깨닫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깨닫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다른 언어들과 다른 입술을 가진 사람들을 시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내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타언어들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로되, 대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요,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한 곳에 모여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 14:20-23)

 

사실 이 구절은 이사야서 28장 11,12절을 인용한 것으로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이 사도 시대의 기적 방언 곧 유다인들을 위한 표적을 미리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민족전체가 이 같은 표적을 거부하였고,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제 유다인들을 향한 방언은 그 기능을 다 완수했으므로 사라지게 되었으며, 사도시대의 위대한 대언/예언 사역 역시 그 기능을 완수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확증하시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으며(행 2:22), 사도들은 자기들의 사도 됨을 보여주기 위해 기적을 행했다(고후 12:12). 그런데 성경의 완성과(계 22:18,19) 사도들의 죽음 이후로 표적과 이적은 말씀의 계시와 더불어 사라지게 되었다. 에베소서 2장 20절은 대언자들 즉 말씀을 받아 하나님 대신 전하는 자들과 사도들이 우리의 믿음을 위한 기초가 된다고 말하며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우심을 받은 자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이돌이 되셨느니라."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기초란 한번 놓으면 또 다시 반복해서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초는 단 한번 놓이며 그 위에 건물의 다른 부분이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대언자들이 기독교 신앙을 위한 기초를 놓았으므로 그들은 더 있을 필요가 없고 반복해서 다시 나타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오순절/은사운동 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나아갈 방향을 지도하신다는 사실을 마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꿈과 이상 등을 통해 직통계시를 받는다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전체를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지만, 꿈이나 음성 등을 통해 직통계시를 주심을 믿지 않는다. 실로 기적과 표적을 강조하는 현대 오순절 "웃음 부흥" 지도자들은 성경을 통해 자기들의 교회의 전통과 미신을 내세우며 자기들의 주장만을 편다. 예를 들어 빈야드 교회의 목사인 라일(James Ryle)은 사도들이 죽은 이후에도 직통계시를 받을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카톨릭 교회의 거짓 교사인 어거스틴, 제롬, 아퀴나스, 성 베네딕트, 성 니콜라스 등의 사례를 들고 있다. 심지어 그는 기독교의 위대한 인물인 존 번연이 지은 「천로역정」이 성경 이외의 계시라고 주장하며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유명한 찬송가의 저자 존 뉴턴과 위대한 침례교 목사인 스펄전의 꿈 이야기를 거들먹거린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번연이나 뉴턴 혹은 스펄전 등이 단 한번도 빈야드/펜사콜라 웃음 부흥에서 주장하는 이상한 계시와 현상을 지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직 성경만을 전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웃음 부흥의 "표적과 이적"이 결코 사도 행전 2장 17-21절을 성취한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3) 이들은 개인적으로 오순절 체험을 해야만 한다고 거짓교리를 가르친다.

오순절 신학의 토대는 신자라면 누구나 개인적으로 사도행전 2장에 있는 것 같은 경험을 체험해야만 한다는 사상이다. 그래서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의 세이모어나 현대 웃음 부흥의 지도자들이나 한결같이 개인적인 오순절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하워드-브라운은 극도의 혼란을 동반하는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것이야말로 1993년부터 시작된 "웃음 부흥"의 전조라고 말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같은 경험을 거부하며, 초대교회의 오순절 사건이 단 한번만 필요한 사건으로 또 다시 재현될 필요가 없음을 천명하는 바이다.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바로 그 때에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에 모인 교회에게 임하셨던 것이며, 그분께서는 결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그 곳에 임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그 때에 그 곳에서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임하셨으며, 유다인들의 연례 명절인 오순절에 그 곳에 모인 유다인/크리스천들이 분명한 다른 나라 말로 말한 것 역시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는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고전 14:20,21 사 28:11,12)

 

그렇다면 현시대의 그리스도인과 성령님과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단 말인가? 우리가 복음을 들고 주 예수님을 신뢰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치심을 받는다(엡1:12,13). 서신서에는 우리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오순절 체험을 구해야 한다거나 성령님을 구해야 한다거나 성령침례를 구해야 한다거나 어떤 특별한 종류의 영적 체험을 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만일 이런 것이 필수적이었다면, 성경이 분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기록했을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오순절 "웃음 부흥" 지도자들이 성령님에 대한 거짓 교리와 '체험적 기독교'라는 잘못된 교리에 입각하여 이런 주장들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런 경험을 주장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믿음대로 행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반드시 성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롬 10:17; 히 11장).

 

                    (4) 이들은 성령 침례에 대해 거짓교리를 가르친다.

오순절 웃음 부흥 지도자들은 마태복음 3장 11절을 인용하며 성도라면 누구나 성령님과 불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나는 너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려고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능력이 더 있으시매 나는 그분의 신을 드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님으로 침례를 주시고,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물론 이 구절에서도 오순절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는 1세기의 크리스천들이 불 침례를 받았으니 20세기의 크리스천들도 불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짓 교리란 항상 문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데서 나온다. 이 구절에서 침례자 요한은 두 부류의 유다인들에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믿음을 가진 유다인들은 오순절 날에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았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불침례가 신자를 위한 축복이 아니라 불신자를 위한 경고라는 점이다. 그 다음 구절을 보면 침례자 요한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손에 키를 들고 자신의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케 하사, 자신의 알곡(신자, 성렴 침례 받은 자)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되 쭉정이(불신자, 불 침례 받는 자)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시리라."(마 3:12)

얼마나 명확한가? 다시 말해 성령님의 침례는 신자를 향한 것이요, 불 침례는 불신자를 향한 경고로 예수님께서 돌아오사 영원한 형벌로 불신자를 벌하는 날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성경을 왜곡해서 자기의 교리에 꿰어 맞추려 하는 사람들을 늘 경계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경고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뱀이 그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너희의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선포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선포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이나 너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도 용납하는도다."고후(11:3,4)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능력과 거룩함과 열심을 필요로 하며, 우리의 집과 교회와 직장에서 예수님의 성결케 하시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성경에 따라 간구해야 하며 결코 우리의 생각이나 체험에 의거하여 간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우리더러 이상한 체험을 할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분명히 이렇게 말한다.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할지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이 젖으로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은혜로우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2,3)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있다.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 이외에도 엡 4:30, 고후 1:21,22, 요일 2:27 등에도 같은 말씀이 있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를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또한 신뢰하였으며, 또한 그분 안에서 믿은 뒤에 저 거룩하신 약속의 영으로 인치심을 받았나니"(엡 1:13)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이 말함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신 고로 아직 성령님을 주시지 아니하셨더라.)"(요 7:38.39)

구원받는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성령님께서 그 사람을 인치신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아 성령님을 소유하면 더 이상 성령님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도들은 단 한번도 교회더러 성령을 구하거나 성령 침례를 구하거나 성령님의 축복을 구하라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우리는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되라는 명령만 받고 있을 뿐이다(엡 5:18). 이 말은 하나님의 영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림으로 그분의 뜻이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함을 의미하며 결코 이상한 체험을 구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단 한번도 성령을 체험하라고 권유한 적이다. 그가 가르친 것은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5) 이들은 방언이 현재에도 필요하다고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

"웃음 부흥"에서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방언을 할 것을 강조한다. 하워드-브라운은 심지어 방언을 개인기도 방언과 공중기도 방언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방언이 옳지 못한 것이며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음을 확신한다.

a. 성경의 방언은 교회의 설립을 위해 유다인들에게 주신 표적으로 교회의 설립이 끝난 이후에는 사라졌다.

b. 성경의 방언은 사도들의 지침에 따라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여자들은 방언을 해서는 안되며, 남자들의 경우에도 순서대로 해야 하고, 반드시 통역이 있어야만 한다. (고전 14장 참조)

 

c. 성경의 방언은 한결 같이 이 땅에서 다른 민족이 쓰는 말을 가리킨다.

d. 성경은 방언을 하려고 노력할 것을 가르치지 않으며, 방언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에 의해 주시는 것이다.

e. 방언은 은사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은사이다.

f. 심지어 초대 교회에서도 누구나 다 방언을 한 것이 아니다.

g. 교회에서 여자들은 결코 방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전 14:34,35).

h. 방언은 결코 성령 침례나 성령 충만의 초기 증거가 아니다.

i. 방언은 하는 방법을 배우라는 지시가 성경에 없다.

j. 오순절/은사주의에서는 학습 방언을 가르치는데 이는 성경에 근거가 없는 것이다.

 

                    (6) 이들은 기적이 믿음을 가져다준다는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

빈야드 운동에 근거를 둔 웃음 부흥은 표적 및 이적이 믿음을 만들어 낸다는 이상한 주장을 굳게 편다. 윔버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을 치유하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가 쉬워진다." 그는 플러 신학교의 강의에서도 기적을 동반하는 복음 전도가 가장 유효한 방법이라고 거듭 거듭 외친다. 그러나 성경은 이 같은 가르침을 전적으로 부인한다. 이집트와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들을 체험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이 믿지 않았으며(히 3:7-12),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기적들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믿지 않았다(요 6,66). 이런 거짓 교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표적과 기적의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들은(즉 표적들은) 믿으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너희가 알고 믿게 되리라, 하시니라. 이러므로 그들이 다시 그분을 잡고자 하였으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요 10:37,38)

 

"진실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인내와 표적과 이적과 능한 행위로써 사도의 표적들을 행하였도다."(고후 12:12)

"하물며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한 것이요, 그분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뜻에 따라 표적과 이적과 다양한 기적과 성령님의 선물들로써 그들을 증거하셨으니"(히 2:3,4)

 

이들은 또한 성경만으로 충분하며 그 안의 기적 및 표적들로 충분함을 부인한다. "진실로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들을 기록함은, 너희로 하여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이들은 또한 성경이 기적들에 대해 아주 평범하게 보여 주는 사실을 부인한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주지 아니하리라."(마 12:39)

 

"그가 말하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들로부터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그들이 회개하리이다, 하니, 아브라함이 말하되, 그들이 모세와 대언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확신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6:30,3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도마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었으나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요 20:29)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게 할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우화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오히려 우리는 그분의 존엄하심을 눈으로 본 자들이라.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에게 나기를, 이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나온 것을 들은 것이라. 또한 우리에게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이 있으니, 너희 마음에서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이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의 어떤 대언도 결코 사적인 해석에서 난 것이 없나니, 이는 대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을 통해 감동을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16-21)

 

                    (7) 이들은 성령님에 대한 거짓 교리를 가르친다.

이들은 성령님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 주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듣는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 그분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내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보이실 것임이라.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분께서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하였노라."(요16:13-15)

 

성령님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기에게로 사람을 모으지 않는다. 신약성경을 보면 사도들이 성령님께 기도하거나 경배 드리거나 성령님을 높이려 한 일이 없음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단 한 차례도 성령님께 기도했다는 예가 없다. 오직 성령님은 예수님을 드러내고 신자로 하여금 예수님께 집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웃음 부흥 지도자들은 예수님 대신에 성령님을 높이며 성령님께 기도하고 있다. 베니 힌 같은 엉텅리 목사는 「안녕하세요 성령님」같은 책에서 자기가 성령님께 기도하며 성령님을 구하고 있으며 성령님을 초청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0. 우리는 웃음 부흥이 종교 통합을 추구하므로 이를 배격한다.

웃음 부흥의 큰 핵심 사항 가운데 하나는 종교 통합이다. 그들은 교리를 무시하고 오직 사랑과 경험, 일치만을 강조한다. 1997년 11월호 「카리스마」잡지에 따르면 웃음 부흥 선교사 하워드-브라운은 필라델피아에서 1200명의 천주교인들에게 웃음 현상을 가져다주었다고 보고했다. 그의 주도하에 천주교인들도 하나같이 히스테리성 웃음을 터뜨렸으며,그 교회의 윌쉬 사제(Vincent Walsh)는 자기 교회에서 웃음 부흥이 1994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의 아르놋 목사는 1998년 3월에 프랑스를 방문하여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종교 통합을 조장했는데 아르놋이 주관한 회의에는 오순절주의자, 은사주의자, 프로테스탄트, 카톨릭 지도자들이 모였다. (「카리스마」 1998년 6월호)

 

터론토 공항 빈야드 교회의 경배와 찬양 지도자중 하나는 루이스(David Ruis)인데 그는 빈야드 노래를 많이 만든 인물이다. 그가 작곡한 "(교단의) 담을 헐자"라는 노래는 종교 통합을 추구하고 있으며 현재도 웃음 부흥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참으로 흥미 있는 것은 "웃음 부흥"의 목표가 "약속 이행자 운동"(Promise Keepers, PK)의 목표와 같다는 것이다. 다 아는 대로 PK의 가장 큰 목표 역시 종교 통합으로, 이들은 심지어 몰몬교까지도 연합시키려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첫 번째 이유는 올바른 교리의 확립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구비되게 하려 함이라."(딤후3-16, 17).

그런데 이들은 교리의 담을 헐고 참과 거짓이 하나 되는 일에 앞장서자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의 일을 계속 하라고 말하면서 교리적 차이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하게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를 따르기에 힘쓰고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마케도니아로 갈 때에 네게 간청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명하여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게 하며"(딤전 1:3)

 

"또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딤후 2:2)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이름 중 하나는 "진리의 영"이다(요14:17; 15:26; 16:13; 요일4:6).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임하실 때는 진리를 동반하신다. "웃음 부흥"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는 이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교리와 진리를 무시한다는 점이다. 웃음 부흥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아주 능력 있는 종교적 체험을 할지도 모르며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또한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가고 있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혼동과 혼란의 창시자가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제13장  오순절/은사주의에 대한 총결론

오순절/은사운동 및 에큐메니칼 종교 통합을 주도해 온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나지 않는다. 비극적이긴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면서 끝이 올 것이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였으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마태7:22,23).

구세주를 올바로 알며 오순절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그날이 올 때까지 한 가지 사명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지상왕국과 그의 오순절 은사운동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20세기 초반에 오순절운동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에게 혼동의 파도가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속임수에 걸린 것은 아니며 몇몇 사람들의 평가는 참으로 정확했다. '성경 강해의 왕자'로서 기독교내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아 왔던 모르간 박사(Dr. G. Campbell Morgan)는 오순절 은사운동을 "사탄의 마지막 구토"라고 결론지었다. 많은 이들이 "도대체 그렇게 학식이 많은 모르간 박사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라고 물었다.

 

이 같은 발언은 그가 죽기 전인 1942년에 있었다. 선지자 이샤야와 비슷하게, 모르간 박사는 사람의 타락과 대조해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같은 깨달음으로 인해, 그가 육체에 호소하며,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그 운동의 영(spirit) 중심이며, 경험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추종자들의 행위에 따르는 구원의 계획들을 가르치는 오순절주의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르간 박사는 사탄의 깃발이 오순절주의라 불리는 영역에서 휘날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그의 영혼은 젊은 시절의 다윗이 느꼈던 것같이 분노로 인해 흥분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골리앗의 무례한 행동이 다윗의 가슴속에 거룩한 분노를 자아내게 했듯이, 하나님의 진리, 거룩함,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를 믿음으로 인해 얻게 된 의로움에 사무쳐서 모르간 박사는 위와 같은 진술을 했던 것이다.

 

            분별, 투쟁, 그리고 분리

오늘날의 분별력 있는 신자들에게는 과거의 혼동과 당혹감의 구름이 서서히 걷혀지고 있다. 오순절 은사운동으로부터의 행동, 행위, 소리 등은 이 운동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이미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에는 제대로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마태13:10-16참조)

우리가 혈과 육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사명은 영적 전쟁과 관계가 있다. 오순절 은사운동의 '피리 부는 사나이', 즉 사탄은 현재 믿기 어려울 정도의 능력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거의 3억이 넘는 추종자들이 그의 에큐메니칼 군대에 빨려 들어갔고, 그는 곧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하나님의 갑옷을 입도록 부르시고 계신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와 그분의 강력한 권능 안에서 강건할지니라. 너희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고 서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지니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두움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의 허리를 동여매고 의의 흉갑(胸鉀)을 입고, 화평의 복음을 예비함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며 이것으로 능히 저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엡6:10-17)

 

              살아 계신 하나님의 부르심

 '피리 부는 사나이'는 참으로 사악한 영들을 불러모았고 그들과 함께 오순절주의를 만들어 냈다. 슬프게도 그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신자들 중 많은 이들은 한때 건전하며 활동적인 교회에서 섬기던, 참으로 거듭난 신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피리소리를 듣게 되었고, 그의 멋있는 모습에 굴복하게 되었으며, 결국 오순절 은사운동이라는 사탄의 현대판 군대에 가입하게 되었다.

 

나는 이들이 사실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용기와 오순절주의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진짜 모습을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가 이끌고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깨달은 후에, 그들은 "나와 내 집에 관한 한, 우리는 주님을 섬길 것이다."(수 24:15)라고 말했던 하나님의 위대한 용사 여호수아가 취했던 길을 따라가야만 할 것이다.

이 같이 올바로 분별하고 분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급한 사안이다. 그 이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교활하며, 놀라운 능력과 선정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그 사악한 영이 바로 오순절 은사운동을 조장하며 인도하고 조절하는 초자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록 과거에는 그 위력적인 영이 종교적인 감정과 경건의 탈을 썼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도 그 정체가 탄로 나지 않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그런 위장전술은 오순절운동에 힘을 불어넣으며 그 운동을 주도해 가는 그 존재를 더 이상 숨겨 줄 수 없다. 너무나 많은 모습들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고 철저한 조사를 위해 노출되어 있다. 이런 것들 중 특색 있는 몇몇 사실들만이 최근의 터론토 빈야드 현상과 함께 이 책에서 다루어졌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너무나 명백하며, 그 부르심은 오순절주의의 모체인 음녀 바빌론의 간음속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것과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내 백성아, 그녀에게서 나와 그녀의 죄들에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고, 그녀의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신다(계18:4).

아직도 많은 성도들이 오순절운동의 밖에 머무르려 하며 굳건히 서 있다. 오순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그들의 기도는 이 사람들도 하나님의 명백한 경고를 듣고 복종하기를 바라는 것이며, 이 같은 기도는 성도들간의 진실한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

 

끝으로 나는 우리 주님께서 아직도 자유로이 남아 있는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실 것을 간구한다(딤후2:3). 그들은 현재 거룩한 전쟁에 참가하고 있으므로 과거에 하나님의 용감한 군사들이 가졌던 담대함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오순절 은사운동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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