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바가지
박은 우리 인간들과 아주 친한 식물 중에 하나였다.
흥부전을 읽다가보면 흥부네 박에서는 금, 은 보화와 각종 비단 같은 게 막 쏟아져 나와 글을 읽을 때마다 공연히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또한 그렇게 심술궂고 동생을 못살게 굴던 놀부가 박 속에서 나온 이들 때문에 벌을 받는 장면도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훌륭한 동화였다.
내 어렸을 때에는 집집마다 박을 심었다.
박은 무엇보다도 초가집에 어울렸다. 초가집 처마 밑에 구덩이를 파고, 온갖 거름을 한 다음에 박 씨 몇 개를 심는다. 그러면 곧 싹이 트고, 그 싹은 초가지붕으로 연결해 놓은 밧줄이나 새끼줄을 타고 발발 잘도 기어오른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 가는 박 넝쿨은 여름을 지나면서 마침내 온 초가지붕을 뒤덮는다.
초가지붕에다 그 초가지붕을 가득 덮은 박 이파리들.
이런 모습들은 보는 자체로도 벌써 시원해진다.
농촌의 저녁은 대개 마당에 펴놓은 멍석 위에서 펼쳐진다.
마당 한 쪽에 모깃불을 피워서 모기를 쫓고, 멍석 위에는 여름 별미로 칼국수, 삶은 감자, 올챙이 묵, 찐 옥수수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대문 없이 사는 마을이라 지나가는 마을 사람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상 앞에 어울린다. 저녁상을 물리면 모두가 그대로 멍석 위에 적당하게 자리를 잡고 드러눕는다. 먹빛 밤하늘에는 별들이 다투어 얼굴을 내밀고, 뽀얀 우유를 쏟아 놓은 듯한 은하수가 바로 눈앞에서 흐른다. 견우와 직녀별도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 누군가가 별에 얽힌 이야기라도 시작하면 별들은 또 다른 의미로 우리들에게 내려온다. 보름달이라도 뜨는 밤이면 초가지붕 둥그런 선을 따라 나란히 피어서 바람에 일렁거리는 새하얀 박꽃들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별빛들이 쪼르르 내려 와 박꽃 꽃잎 속으로 쏙쏙 빠져드는 것도 이 무렵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초가지붕에는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한 박들이 여기 저기 커가기 시작한다. 이 때 농촌 사람들은 박이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크기의 똬리를 만들어 박 밑에 받쳐준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뽀얗게 익어 가는 박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진다.
농촌 사람들은 박이 제대로 여물었는가를 바늘로 찔러보고 가늠했다.
바늘 끝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아직도 덜 여물었군, 하고 더 여물어가기를 기다렸다.
여름 내 초가지붕을 덮었던 박 이파리들이 하나 둘 낙엽으로 떨어지고, 앙상한 박 줄기에 남은 박이 다 여물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그 박을 하나씩 따서 모은다.
며칠 동안 물기를 완전히 말린 다음에 박을 켠다.
박은 톱으로 켰는데, 그 작은 박을 왜 두 사람이 마주 서서 탔는지 아직도 내겐 의문이다.
그냥 멋이었을까? 아니면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처럼 마음을 모으기 위한 뜻이었을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켠 박은 가마솥에 물을 충분히 붓고, 펄펄 끓인다.
아마도 더 단단해지라는 뜻일 게다.
뜨거운 물에 삶았다가 건져낸 박은 겉껍질을 벗겨낸 다음에 햇살에 말린다.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박 속에 소복소복 내려앉는 가을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햇살에 말리는 과정에서 덜 여문 박은 우그렁쭈그렁 오그라들어서 결국엔 제 구실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가진 농촌 사람들은 덜 여문 박(더 이상 두어도 여물지 못하는 박)은 아예 쪼개지 않고, 꼭지 부근에 주먹 정도의 크기로 구멍을 파고 그리로 속에 있는 씨앗들을 전부 파낸 다음에 마른 씨앗 같은 것을 보관하는 그릇으로 쓴다. 이런 바가지가 뒤웅박이다.
박 바가지는 마른 바가지와 젖은 바가지로 구분해서 쓴다.
마른 바가지는 마른 곡식 같은 것을 담아 둘 때 쓴다. 됫박도 바가지로 대신했다. 공인된 직육면체의 됫박이 거의 없던 시골마을에서는 이웃집에서 쌀이나 곡식을 빌리러 올 때 기준이 될 만한 바가지를 하나 정해서 그걸로 빌려 주고, 나중에 받을 때도 그 바가지에 담아 돌려받는다.
젖은 바가지는 밥 지을 때, 물 마실 때, 갓 씻은 채소 같은 것을 담을 때 사용했다.
지금은 방앗간에서 철저히 가려내지만, 전에는 쌀에 돌이 섞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 처음에는 조리로 쌀을 일어내고, 다음에는 두 개의 바가지로 서로 쌀을 옮겨 담으면서 돌을 골라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이럴 때 바가지는 절대 필수였다.
우물가에서 물을 풀 때도 바가지는 꼭 필요한 그릇이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목을 축일 때도 우물가에서 물을 푸던 아낙네들은 바가지에 물을 떠서 건네주곤 했었다. 좋은 물은 맛이 없다고 하지만 바가지의 자연스러운 냄새와 시골 우물에서 갓 길어낸 물이 서로 어우러져 내는 물맛은 참 향긋했다.
들로 오가는 길옆 옹달샘에는 누구라도 조롱박을 가져다 놓았었고, 그 것 하나만 있으면 그 물맛은 또, 예사가 아니었다.
먹다 남은 반찬을 한꺼번에 쏟아 붓고 비빈 바가지 비빔밥을 먹어 본 적이 있는가? 그 맛도 바가지에서 우러나온 그 자연의 맛 한 가지가 더해서 언제나 꿀맛이었다.
그렇게 사용하다가 바가지가 깨어지면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굵은 실로 꿰매어 쓰던 것도 그 무렵에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가을이 되면 시골을 찾아왔던 친척들의 돌아가는 보퉁이 한 모서리에는 그 해 가을 새로 만든 바가지가 삐죽이 얼굴을 내미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정겨운 모습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부터 부엌에는 바가지가 사라지고, 대신 플라스틱 바가지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많은 시간, 많은 힘들여서 박 키우는 일 하지 않아도 되었다면서 좋아했고, 하나만 사다놓으면 여러 해를 쓸 수 있다고 좋아했지만, 그 시절, 그 낭만, 그 바가지에서 풍겨 나오던 인심 같은 구수한 맛이 사라져버려서 정말 아쉽다.
첫댓글 초가지붕 위에 흰털이 보송보송한 박꽃에 달빛이 비칠때 뿜어 나오는 그아름다움이란....늘 아름다운 글 감사드립니다
바가지 사연도 참 많은거 같습니다.. 저는 어릴적 바가지 ㅁ따러 지붕위에 올라 갔다가~ 지붕은 벼짚으로 된것이라 벼짚에 미끄러져~ 박을 안고 마당으로 떨어진적도 있었습니다~ 다행이 다치지는 않았지만~~박은 우리생활에 많은 편리함을 준 아주 귀중한 가재도구중 하나였던거 같습니다~박을 두사람이 톱으로 잘랐던 이유는 아마 바가지를 똑바로 자르기 위해 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