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6일 금요일 상이 있는 사랑
마태복음 5장 43~48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
현대인들은 사막에서 물을 찾듯 사랑을 갈망합니다. 인기 있는 노래들도, 영화나 드라마도 사랑을 두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대부분 내가 사랑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 달라고 외칩니다. 사랑받으려는 사람은 많으나 사랑하는 사람은 부족한 오늘입니다.
우리말과 달리 헬라어는 사랑을 다양하게 구분합니다. '스토르게(Storge)'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으로, 이삭을 향한 아브라함의 사랑, 야곱을 향한 리브가의 사랑, 요셉을 항한 야곱의 사랑이 예입니다. '에로스(Eros)'는 이성 간의 육체적 사랑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만족을 위한 사랑으로 이해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소포클레스는 에로스를 '무서운 갈망'이라고 표현했는데, 세겜과 디나, 삼손과 들릴라, 암논과 다말, 솔로몬과 이방 여인들 간의 사랑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필리아(Philia)'는 동질성을 갖는 무리 안에서 느끼는 우애 또는 형제애를 말합니다.
이 세 사랑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이 사랑마저 없다면 인간 사회는 냉혹한 전쟁터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유와 조건이 있는 이 사랑은 바리새인과 이방인도 할 수 있다며, 사랑의 대상을 바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의 사랑은 달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랑할 대상은 공연히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 내 앞길을 가로막는 대적, 즉 원수들입니다. 그들을 항한 사랑이 바로 '상이 있는 사랑'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0~35)는 강도 만난 유대인을 구한 사마리아인의 원수 사랑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대상을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사랑의 습관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 사랑의 대상을 넓혀가는 순종의 길 끝에 주님이 준비하신 상이 있습니다.
+ 기도 +
사랑하기 쉬운 사람만이 아니라 미워하는 대상까지 품으라 하신 말씀 앞에 서게 하소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우리의 감정과 판단을 넘어 흘러서 온전히 사랑하신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