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09. 8. 8. 01:55
백사 이상국 항복(白沙 李相國 恒福)에 대한 제문(祭文)
포저 조 익(浦渚 趙 翼)· 찬(撰)
아 / 嗚呼。
공이 이 세상을 떠나신 뒤로 / 自公之無於世也。
벌써 일 년의 풍상이 바뀌었습니다 / 已變一年之風霜。
공이 살아 계실 적에 / 其生也。
우뚝 출중하여 사람들이 우러러보았으니 / 挺然出類衆所仰望。
공이 돌아가신 뒤에도 / 其沒也。
필시 다른 사람들과는 같지 않을 것인데 / 必不與衆人同。
그 걸출하게 빼어난 기운은 / 其秀傑之氣。
지금 어느 곳에 가 계십니까 / 今在何方。
아래로 내려가서 산천의 정기가 되셨습니까 / 其下而爲山川之精爽。
위로 올라가서 성수의 별빛이 되셨습니까 / 上而爲星宿之光芒耶。
열성의 옆 상제의 곁에 계시면서 / 其在列聖之側上帝之傍。
아래 백성들의 선악을 살피며 화복을 내리십니까 / 俯鑑下民之淑慝而降之慶殃耶。
혹시 무지한 이 사람들을 애처롭게 여겨 다시 현인이 되셔서 / 其或哀斯人之無知而復爲賢人。
사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애쓰고 계십니까 / 以壽斯道於無疆耶。
역시유혼위변의 상태에 이르면 현범이나 지우의 차이가 없어지는것이니/無亦至於游魂爲變則無賢凡知愚之殊。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부껴 흩어져서 자취 없이 사라진 것입니까 / 而同歸於飄散而泯亡耶。
생전에 사문으로 뜻을 삼고 세도로 임무를 삼으면서 / 其生也以斯文爲志世道爲任。
종사를 걱정하고 백성의 고통을 보살펴 주셨는데 / 宗社是憂生民是傷。
지금 나라의 위급함과 백성의 곤고함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보면 / 而今之國危民困一至於此。
역시 저승에서 우수에 잠겨 우울하고 답답하게 여기고 계십니까 / 則亦且憂愁鬱悒於冥漠之鄕耶。
아니면 나는 이미 세상을 떠난 몸이니 세상일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면서/ 抑以爲吾已去世世事非吾之責。
훌훌 털어 버리고 모두 잊고 계십니까 / 而浩然而忘耶。
저승과 이승으로 한 번 갈린 뒤에는 / 幽明一隔。
워낙 까마득해서 죽음과 삶의 실상을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만 / 死生之情固莫測於杳茫。
오늘날 이미 보이는 현상을 가지고 추측해 보건대 / 而其所已見於今。
후대에 사류가 비통해하고 국인이 사모하면서 오래도록 잊지 않을 것이니/ 而必知於後者士類之痛國人之思久而不忘。
공이 이룩한 사적과 명성이야말로 / 而其事蹟聲名。
장차 백세토록 더욱 드러날 것만은 반드시 알겠습니다 / 將百世而愈彰。
아 / 嗚呼。
공이 재상이 된 때로부터 서거하실 때까지 / 自公之爲宰相至沒。
모두 합치면 그 기간이 이십여 년이었는데 / 凡二十有餘年。
그 사이에 재직하기도 하고 파직되기도 하였으니 / 而其間或爲或罷。
재상의 지위에 있었던 것은 대체로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 在相位者蓋不能半焉。
국가가 결딴날 때에 왕명을 받고 / 其受命於板蕩之時。
혼란하고 어수선한 날에 뛰어난 계책을 세워 / 出奇於搶攘之日。
마침내 큰 난리를 평정하고 사직을 안정시킨 것은 / 卒定大難以安社稷。
당나라 시대의 업후와 같았고 / 如李鄴侯之於唐室。
한 몸의 용사와 진퇴 여부에 대해 / 其用舍進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 係望民物。
태연히 담소하고 풍류를 즐기며 세상을 진정시킨 것은 / 而從容笑談風流鎭。
진나라의사안석과 같았고 / 如謝安石之於晉國。
고립되어 위태로운 상황에서 홀로 혈성(血誠)을 바친 것은 / 及其孤立艱危獨致悃誠。
후한 시대의 원안이나 이고와 같았고/ 如袁安李固之於東京。
배척을 받고 유배지에서 죽자 원근의 사람들 모두가 비통하게 여긴 것은 / 至於斥死嶺海遠近茹痛。
송나라의 조정이나 조여우와 같았습니다/ 如趙鼎趙汝愚之於南宋。
공이 재상으로 활동한 전말을 살펴보면 / 公之爲相始終。
대략 이와 같다고 할 것인데 / 大略如斯。
공훈을 세운 업적이 길이 보존되는 동시에 / 而勳蹟存於萬世。
이익을 베푼 혜택이 당시에 펼쳐졌으니 / 利澤加於當時。
국가를 받치는 주석이 되고 / 邦家之所柱石。
사대부가 본받을 법도가 되고 / 搢紳之所矩規。
소인이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고 / 小人之所畏憚。
군자가 귀의하는 바가 되었습니다 / 君子之所依歸。
이는 대개 공의 기우가 걸출해서 / 蓋其器宇之魁雄。
용과 범이 변화하는 것과 같고 / 若龍虎之變化。
공의 문사가 거칠 것이 없어서 / 文辭之恣肆。
천리마가 치달리는 것과 같고 / 如驥駿之奔馳。
공이 타인을 포용하는 도량이 / 容物之量。
강하처럼 끝없이 넓고 / 浩如江河。
공이 사전에 환히 아는 지혜가 / 燭事之智。
시귀로 점을 치는 것처럼 밝았기 때문입니다 / 明若蓍龜。
그리고 공은 재상 중 최고의 지위에 이르렀건만 / 若夫位極台鼎。
이재(理財)에는 재주가 하나도 없었고 / 而貲財無尺寸之長。
권세는 장수와 재상을 겸하였건만 / 權兼將相。
인재 선발에 사심이 조금도 없었으며 / 而察選無毫釐之私。
진정으로 선을 좋아하여 / 好善之誠。
남의 선행을 자기의 선행처럼 여겼고 / 如己與有。
굳건하게 의리를 고수하며 / 守義之固。
죽을 때까지 어기지 않았습니다 / 至死不虧。
이것이 바로 공이 큰 공을 이루고 큰 지위에 오르고 / 此公之所以成大功致大位。
큰 이름을 세우고 백관의 스승이 되신 까닭이니 / 立大名爲百僚師。
현자나 불초자가 모두 심복하는 바요 / 而賢愚之所共服。
뭇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 而衆人之所共知也。
그리고 옛 시대를 사모하며 학문에 힘쓴 것이 / 至於慕古力學。
바로 치아와 모발이 쇠할 때의 일이었고 보면 / 乃在於齒髮之衰。
이것은 더욱 공의 성대한 면모라고 할 것인데 / 則此尤公之盛節。
사람들이 혹 이 점에 대해서는 꼭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而人或未必知之也。
지위가 높은데도 아랫사람에게 서슴없이 묻고 / 蓋尊而下問。
대개 명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던 까닭에 / 敏而好學。
공자도 문이 될 만하다고 인정하였던 것인데 / 乃孔子之所許爲文。
이는 실로 과거나 현재나 얻기 어려운 일입니다 / 而實今昔之所難得。
그러니 어찌 또 승상부에 몸담은 원로 재상이 / 豈復有黃閣元老。
백발이 다 된 만년에 이르러서 / 白首晩節。
옛사람에 대한 사모의 정을 금치 못한 나머지 / 乃慨然於古人。
수사를 희구하고 민락을 거슬러 오르면서 / 希洙泗而泝閩洛。
밤이고 낮이고 부지런히 연구하는 일을 / 勤早夜而孜孜。
경서를 외우고 익히는 서생처럼 할 수가 있겠습니까 / 如經生之誦習者哉。
이는 대개 천지의 뛰어난 기운을 품부받고서 / 蓋惟其稟天地之間氣。
세간의 인걸이 되었기 때문에 / 爲世間之人傑。
재주와 명망이 소년 시절에 이미 으뜸이었고 / 所以才望冠於妙齡。
사업을 이룬 것이 장년 시절에 융성하였고 / 事業隆於壯歲。
학문의 연구가 노년에 더욱 독실하였고 / 進學篤於暮景。
절조를 죽음으로 지키면서 세상에 드러난 것이니 / 志節著於守死。
이 모두가 남이 따라갈 수 없이 탁월한 만큼 / 皆卓然人不可及。
당년에 존경을 받음은 물론이요 후세에서도 사모할 것이 분명합니다 / 不獨見敬於當年而亦且起慕於後世也。
아 / 嗚呼。
첩첩산중에 구름만 이어지고 / 疊嶺連雲。
푸른 바다가 하늘과 잇닿은 곳 / 滄溟接天。
장기(瘴氣)에 병마(病魔)가 침노하고 / 瘴癘之所侵加。
눈과 서리가 일찍 내리는 배소(配所)에서 / 雪霜之所先零。
우분이 쌓여 마음을 공격하는 데다가 / 憂憤之積旣攻其內。
풍기가 유달라서 육신을 또 녹였으리이다 / 風氣之殊又銷其形。
목숨이 길고 짧은 것은 하늘에 매였다고 하나 / 雖云脩短之在天。
사실은 사람이 힘을 가해 그렇게 만든 탓이니 / 實由人力之所營。
생각하면 비통하고 비통할 따름입니다 / 痛哉痛哉。
비록 그렇지만 고달프게 할 수 있는 것은 육신일 뿐이요 / 雖然其所能困者身也。
빼앗을 수 없는 것은 굳게 지키는 신념이며 / 而所不能奪者志守之堅貞。
일찍 죽게 할 수 있는 것은 목숨일 뿐이요 / 其所能夭者壽也。
손상시킬 수 없는 것은 태산과 같은 고명이며 / 而所不能隕者太山之高名。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한때의 논의일 뿐이요 / 其所能屈者一時之論議。
막을 수 없는 것은 온 세상의 비통한 마음이니 / 而所不能禁者擧世之悲情。
그러고 보면 공이 당한 곤궁함은 작은 것이요 / 然則公之所窮者小。
공의 위대한 점은 실로 형통했다고 할 것이며 / 而大者實亨。
모욕을 당한 것은 잠시 동안의 일이요 / 所辱者暫。
영광을 누리는 것은 영원하다고 할 것입니다 / 而遠矣其榮。
예로부터 현인이 곤액을 당한 것을 보면 모두가 그러하였으니 / 蓋自古賢人遭困厄莫不皆然。
이것을 가지고 저것을 비교해 본다면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겠습니까 / 而以此較彼孰重孰輕。
아 / 嗚呼。
어리석은 제가 생각건대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에 / 翼之愚陋念自十年之前。
외람되게 지우(知遇)를 받고 군자의 위의를 가까이할 수 있었는데 / 猥蒙知待得親君子之威儀。
당시에 저는 나이도 적고 관직도 미천하고 이름도 하찮아서 / 于時年少官賤名微。
공경 대인 중에 저를 아는 이가 당초에 한 사람도 없었고 / 公卿大人初無一人識者。
저 역시 그들의 문을 두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건만 / 翼亦未嘗輒至其門。
공이 유독 오인하여 저를 기특하다고 여기셨으니 / 而獨公誤而見奇。
이는 이른바 날마다 수많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쳐다보지도 않다가 / 所謂過而不視者日千萬人。
백락이 한 번 돌아보자 빛이 났다.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 而伯樂一顧而生輝。
제가 부끄럽게도 형편이 없어서 대현의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雖其自愧無似不足當大賢之期許。
이것이야말로 어찌 옛날에 이른바 자기를 알아줬다고 한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 而豈古所謂知己者非歟。
그러다가 조신(朝臣)의 반열에 끼이게 되었는데 / 及其得忝從班。
처음에는 왜 이런 지우를 받게 되었는지 저도 알지 못하다가 / 初亦不知何自而致玆。
그 뒤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얻어듣고서야 / 其後聞於人。
저를 도야(陶冶)시키려는 뜻으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 乃知出於陶甄之爲然。
그런데 공도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고 저도 감사의 말씀을 올리지 않았는데 / 而公亦未嘗言翼亦未嘗謝者。
이는 본디 서로가 지공무사의 정신을 기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本以至公相期。
공이 저에게 기대한 것이나 / 公之所以待翼。
제가 공에게 바란 것이 대개 이와 같았는데 / 翼之所以望於公者蓋如是。
이런 일을 구구하게 꼭 말할 것까지는 없다고 하더라도 / 區區雖不足說。
오늘날 세상에서는 역시 보기 드문 일이었다고 여겨집니다 / 亦或今世之所稀。
아 / 嗚呼。
공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으니 / 公今已矣。
나를 알아주는 이가 누구이겠습니까 / 知我其誰。
태산이 무너진 듯한 탄식을 발하고 / 山頹之歎。
거문고 줄을 끊는 비감에 젖을 뿐입니다 / 絶絃之悲。
그러고 보면 제가 애도하고 통곡하면서 / 然則翼之所以悼慟。
스스로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 而不能自已者。
공을 다시는 이 세상에서 뵐 수 없게 되었다는 것과 / 乃哀公之不可復見。
저 자신이 또한 의지처를 잃은 것을 슬퍼하기 때문이니 / 而已亦自失其所依。
어찌 단지 나라가 초췌해진 것을 애통해하며 / 豈但痛邦家之殄瘁。
나라 사람들이 한숨짓는 것과 같을 뿐이겠습니까 / 而同國人之歔欷。
오직 저의 신념을 더욱 면려하여 공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니 / 唯有益勵其守不負所知。
이렇게 한다면 알아주신 은혜에 그런대로 보답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 此尙可以庶幾。
공의 영구를 옮겨 장례를 행할 적에 / 公之返葬。
저는 바야흐로 바닷가에 병들어 누워서 / 翼方病伏海濱。
조정에서 제수한 명도 사양하고 있었으므로 / 除命是辭。
빈객과 문생들의 뒤를 따라서 / 不得從賓客門生之後。
상엿줄을 붙잡고 영구를 전송하지도 못하였습니다 / 執紼以送靈輀。
게다가 사적으로 계속해서 변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 而又爲賤故之連仍。
마음의 기약과는 달리 모든 일이 어긋나서 / 使心期而百違。
서주를 가지고 와서 제전(祭奠)을 올리는 일마저 / 絮酒來奠。
그만 일 년을 훌쩍 넘기고 말았으니 / 乃踰一朞。
부끄러움이 슬픔과 함께 가슴을 채우면서 / 愧與悲而塡膺。
땀과 눈물이 교차하여 뺨에 흘러내립니다 / 汗與涕而交頤。
--------------------------------------------------------------------------------------------------------------------------------------------------------
[각주]
[주01]유혼위변(游魂爲變)
유혼은 정처 없이 떠도는 귀혼(鬼魂)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음(陰)의 정과 양(陽)의 기가 모여서 만물을 이루고, 혼이 돌아다니고 백(魄)이 흩어져서 변화가 생긴다.〔精氣爲物 游魂爲變〕”라는 말이 나온다.
[주02]업후(鄴侯)
업현후(鄴縣侯)에 봉해진 당(唐)나라 이필(李泌)을 가리킨다. 당 숙종(唐肅宗)으로부터 빈우(賓友)의 대우를 받으면서, 들어와서는 국사를 의논하고 나가서는 대가(大駕)를 호종하며 중흥(中興)의 방략(方略)을 논의하였으며, 덕종(德宗)이 봉천(奉天)의 행재소에 있을 당시에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여 사직을 안정시킨 공이 많았다. 《舊唐書 卷130 李泌傳》
[주03]용사(用舍)
용사행장(用舍行藏)의 준말로, 세상에 쓰이면 나아가서 자기의 도를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물러가서 숨는 것을 말하는데, 공자(孔子)가 안연(顔淵)에게 “조정에서 나를 써 주면 나아가서 나의 도를 펼치고, 조정에서 나를 버리면 물러나 나의 도를 마음속에 간직한다.〔用之則行 舍之則藏〕”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論語 述而》
[주04]사안석(謝安石)
안석(安石)은 진(晉)나라 사안(謝安)의 자(字)이다. 동산(東山)에 20여 년 동안 한가히 은거할 때 “안석이 나오려 하지 않으니 장차 창생을 어찌할꼬.〔安石不肯出 將如蒼生何〕”라는 말을 듣기도 하였는데, 마침내 나이 40에 출사(出仕)하여 삼공(三公)의 지위에까지 이르렀다.
전진(前秦)의 왕 부견(苻堅)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회비(淮肥)까지 진군하여 동진(東晉)의 서울이 진동하며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에,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에 임명된 사안이 조카인 사현(謝玄)을 보내 격파하게 하고는 자신은 손님을 상대로 담소하며 태연히 바둑을 두어 흉흉한 인심을 진정시키면서 승첩의 보고를 기다렸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79 謝安傳》
[주05]고립되어---같았고
이항복이 광해군 9년(1617)에 대세로 굳어진 폐모론(廢母論)을 강력히 반대하다가 삭탈관작되고 유배된 것을 말한다. 원안(袁安)은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에 외척인 두씨(竇氏)가 권력을 농단하자 이를 탄핵하다가 면직되었는데, 조정에서 국사를 논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오열하면서 충심으로 건의하였으므로 어린 천자와 대신들이 모두 그를 의뢰했다는 원안의뢰(袁安依賴)의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45 袁安列傳》 이고(李固)는 후한 충제(冲帝) 때의 태위(太尉)로, 충제가 죽고 질제(質帝)가 시해되자 두교(杜喬)와 함께 청하왕(淸河王) 산(蒜)을 옹립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권신(權臣)인 양기(梁冀)가 환제(桓帝)를 세우고는 무옥(誣獄)을 일으켜 이고 등을 죽였다. 《後漢書 卷63 李固列傳》
[주06]배척을---같았습니다
이항복이 광해군 10년(1618)에 북청(北靑)으로 귀양 가서 그곳에서 죽은 것을 말한다. 조정(趙鼎)은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에 악비(岳飛)를 적극 추천하고 화의(和議)를 극력 반대한 재상으로, 진회(秦檜)의 모함을 받고 조주(潮洲)에 안치(安置)되었다가 길양군(吉陽軍)에 이배(移配)되었는데, 그곳에서 단식 자결하였다.
《宋史 卷360 趙鼎傳》 조여우(趙汝愚)는 남송 영종(寧宗) 때의 재상으로 주희(朱熹) 등을 추천하여 등용하였다가, 도학(道學)을 위학(僞學)으로 규정한 한탁주(韓侂冑) 등의 탄핵을 받고 영주(永州)에 유배되었는데, 형주(衡州)에서 병이 발작하여 폭사(暴死)하였다. 《宋史 卷392 趙汝愚傳》
[주07]지위가---것인데
위(衛)나라 대부(大夫)인 공어(孔圉)의 시호(諡號)가 문(文)인 까닭을 자공(子貢)이 묻자, 공자가 “명민하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고, 지위가 높은데도 아랫사람에게 묻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므로 시호를 문이라고 한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라고 대답한 말이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주08]수사(洙泗)를---오르면서
율곡이 송대(宋代)의 성리학은 물론이요, 그 근원이라 할 공자의 기본 사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유학을 집대성하였다는 말이다. 수사(洙泗)는 춘추 시대 노(魯)나라 수도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으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과 가깝고 또 그 사이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공자 혹은 유가(儒家)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주09]날마다---났다
백락(伯樂)은 춘추 시대 진 목공(秦穆公) 때에 준마(駿馬)를 잘 알아보기로 유명했던 사람인데, 전국 시대에 종횡가(縱橫家)인 소대(蘇代)가 순우곤(淳于髡)에게 “준마를 팔기 위해서 사흘 동안이나 시장에 내놓았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다가 백락이 한 번 돌아보자 하루아침에 그 말의 값이 10배나 뛰어올랐다.”라고 말한 내용이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2에 나온다.
[주10]태산이---발하고
위인(偉人)이나 선인(善人)의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공자(孔子)가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쓰러지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를 부른 뒤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禮記 檀弓上》
[주11]거문고---뿐입니다.
지기(知己)를 잃은 슬픔을 말한다. 춘추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높은 산에 뜻을 두고 연주를 하면, 친구인 종자기(鍾子期)가 “멋지다. 마치 태산(泰山)처럼 높기도 하구나.”라고 평하고, 흐르는 물에 뜻을 두고 연주를 하면 “멋지다. 마치 강하(江河)처럼 넘실대는구나.”라고 평하였는데, 종자기가 죽고 나서는 백아가 더 이상 세상에 지음(知音)이 없다고 탄식하며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린 고사가 전한다. 《列子 湯問》 《呂氏春秋 本味》
[주12]서주(絮酒)
솜뭉치에 적신 술이라는 뜻으로, 변변찮은 제수(祭需)를 뜻한다. 후한(後漢) 서치(徐穉)가 먼 곳에 조문하러 갈 때 미리 솜에 술을 적셔서 햇볕에 말린 다음 묘소 앞에 왔을 때 다시 물에 적셔 제사를 올림으로써 술 기운이 우러나오게 했다고 한다. 《後漢書 卷53 周黃徐姜申屠列傳 徐穉傳》
-------------------------------------------------------------------------------------------------------------------------------------------------------
[原文]
祭白沙李相國 恒福 文
嗚呼。自公之無於世也。已變一年之風霜。其生也挺然出類。衆所仰望。其沒也必不與衆人同。其秀傑之氣。今在何方。其下而爲山川之精爽。上而爲星宿之光芒耶。其在列聖之側。上帝之傍。俯鑑下民之淑慝。而降之慶殃耶。其或哀斯人之無知。而復爲賢人。以壽斯道於無疆耶。無亦至於游魂爲變。則無賢凡知愚之殊。而同歸於飄散而泯亡耶。其生也以斯文爲志。世道爲任。 宗社是憂。生民是傷。而今之國危民困。一至於此。則亦且憂愁鬱悒於冥漠之鄕耶。抑以爲吾已去世。世事非吾之責。而浩然而忘耶。幽明一隔。死生之情。固莫測於杳茫。而其所已見於今而必知於後者。士類之痛。國人之思。久而不忘。而其事蹟聲名。將百世而愈彰。嗚呼。自公之爲宰相至沒。凡二十有餘年。而其間或爲或罷。在相位者蓋不能半焉。其受 命於板蕩之時。出奇於搶攘之日。卒定大難。以安 社稷。如李鄴侯之於唐室。其用舍進退。係望民物。而從容笑談。風流鎭俗。如謝安石之於晉國。及其孤立艱危。獨致悃誠。如袁安,李固之於東京。至於斥死嶺海。遠近茹痛。如趙鼎,趙如愚之於南宋。公之爲相始終。大略如斯。而勳蹟存於萬世。利澤加於當時。邦家之所柱石。搢紳之所矩規。小人之所畏憚。君子之所依歸。蓋其器宇之魁雄。若龍虎之變化。文辭之恣肆。如驥駿之奔馳。容物之量。浩如江河。燭事之智。明若蓍龜。若夫位極台鼎。而貲財無尺寸之長。權兼將相。而察選無毫釐之私。好善之誠。如己與有。守義之固。至死不虧。此公之所以成大功。致大位。立大名。爲百僚師。而賢愚之所共服而衆人之所共知也。至於慕古力學。乃在於齒髮之衰。則此尤公之盛節。而人或未必知之也。蓋尊而下問。敏而好學。乃孔子之所許爲文。而實今昔之所難得。豈復有黃閣元老。白首晩節。乃慨然於古人。希洙泗而泝閩洛。勤早夜而孜孜。如經生之誦習者哉。蓋惟其稟天地之間氣。爲世間之人傑。所以才望冠於妙齡。事業隆於壯歲。進學篤於暮景。志節著於守死。皆卓然人不可及。不獨見敬於當年。而亦且起慕於後世也。嗚呼。疊嶺連雲。滄溟接天。瘴癘之所侵加。雪霜之所先零。憂憤之積。旣攻其內。風氣之殊。又銷其形。雖云脩短之在天。實由人力之所營。痛哉痛哉。雖然。其所能困者身也。而所不能奪者。志守之堅貞。其所能夭者壽也。而所不能隕者。太山之高名。其所能屈者。一時之論議。而所不能禁者。擧世之悲情。然則公之所窮者小。而大者實亨。所辱者暫。而遠矣其榮。蓋自古賢人遭困厄。莫不皆然。而以此較彼。孰重孰輕。嗚呼。翼之愚陋。念自十年之前。猥蒙知待。得親君子之威儀。于時年少官賤名微。公卿大人。初無一人識者。翼亦未嘗輒至其門。而獨公誤而見奇。所謂過而不視者日千萬人。而伯樂一顧而生輝。雖其自愧無似。不足當大賢之期許。而豈古所謂知己者非歟。及其得忝從班。初亦不知何自而致茲。其後聞於人。乃知出於陶甄之爲然。而公亦未嘗言。翼亦未嘗謝者。本以至公相期。公之所以待翼。翼之所以望於公者蓋如是。區區雖不足說。亦或今世之所稀。嗚呼。公今已矣。知我其誰。山頹之歎。絶絃之悲。然則翼之所以悼慟而不能自已者。乃哀公之不可復見。而已亦自失其所依。豈但痛邦家之殄瘁。而同國人之歔欷。唯有益勵其守。不負所知。此尙可以庶幾。公之返葬。翼方病伏海濱。除命是辭。不得從賓客門生之後。執紼以送靈輀。而又爲賤故之連仍。使心期而百違。絮酒來奠。乃踰一朞。愧與悲而塡膺。汗與涕而交頤。
[각주]
[주01] 如 : 汝
浦渚先生集卷之二十九 / 祭文
-------------------------------------------------------------------------------------------------------------------------------------------------------
[찬인 인물개요]
◇조익(趙 翼 : 1579-1655).
본관 풍양(豊壤). 자 비경(飛卿). 호 포저(浦渚)·존재(存齋). 시호 문효(文孝). 음보(蔭補)로 정포만호(井浦萬戶)가 되고, 1598년(선조 31) 압운관(押運官)으로 미곡 23만 석을 잘 운반하여 표리(表裏)를 하사받고, 1602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여러 벼슬을 거친 뒤 1611년(광해군 3) 수찬(修撰)으로 있을 때 이황(李滉) 등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반대한 정인홍(鄭仁弘)을 탄핵하다 고산도찰방(高山道察訪)으로 좌천, 이듬해 사직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재기용되고, 1625년(인조 3) 부호군(副護軍). 형조참의를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예조판서로서 달아난 죄로 처벌받은 뒤 1643년 재기용되어 원손보양관(元孫輔養官)이 되었다. 이조·예조의 판서, 대사헌이 되고, 1648년 좌참찬(左參贊)으로 승진,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우의정으로 인조의 행장찬집청찬집관(行狀纂輯廳纂輯官)을 겸한 후 좌의정에 올랐다.
그 해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를 상소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자 사직하였다. 김육(金堉)의 대동법(大同法) 시행을 적극 주장하였고, 성리학의 대가로서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음률·병법·복서(卜筮)에도 능하였다.
개성의 숭양서원(崧陽書院), 광주(廣州)의 명고서원(明皐書院), 신창(新昌)의 도산서원(道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다. 저서에 《포저집(浦渚集)》 .《서경천설(書經淺說)》 《역상개략(易象槪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