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나라에 산다는 것이 짜증날 때가 있다. 모두들 너무 착하고, 정숙하고, 도덕(?)적이어서다. 섹시미로 유명해진 여자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첨 본 남자랑 어떻게 키스(머 섹스라도 좋다)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갔지만, 연기를 위해서 정말로 그 인물에 동화되려 노력했더니,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말들 자주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하자. "담배 피는 연기가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따위는 그냥 넘어가자.
그게 명명백백 한점 거짓 없는 사실이라서 자기는 절대 첨 본 남자랑 키스같은 건 할 수 없다고 치더라도, 남들 그러는게 이해가 안갈 것까지는 없지 않나? 독자들 중 첨 본 여자랑 키스해 본 남자들 손들어 봐. 그 수만큼, 첨 본 남자랑 키스한 여자들이 있겠지. 수가 많으니 이해해줘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와 다른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도 그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때는 부연설명을 첨부하는 게 맞다. 왜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지에 대한 부연 말이다.
자신의 '주장'(그건 분명 주장이다)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부연 설명하지 않는 것은, 부연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그것이 옳고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는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옳고 당연해서, 그렇게 말해야만 대중이 좋아한다고 여기기 때문이고)
그런데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옳다고 믿는 일은, 언제나 다시 한번 의심해 봐야 한다. 왜냐면, 그런 것들 중 반수 이상이 그야말로 "인습"이기 때문이다. 인습이라는 맹목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려면, 질문해야 한다. 도대체 왜, 처음 본 남자랑 키스(혹은 섹스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는 것만큼 당연한 것인지 말이다.
한편, 남자들은 어떤가? 대한민국 티비에 나오는 남자들 중 부모한테 효도 안하는 사람 하나도 없고, 선배 존경 안하는 사람 아무도 없고, 나라 사랑 안하는 사람 절대로 없다. 아니 머 남녀 다 떠나자. 밖에서 술 한잔 하면서 얘기해 보면 부모욕 선배욕 나라욕 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티비 속에는 왜 그런 사람들이 하나도 없고, 천사표만 있을까? 과연 이것이 공사를 구별하는 어른스러운 사람들만 모여 있어서라고 좋아할 만한 일일까?
겉으로는 모두 웃으며 한치의 의의도 없이 동의하는 것은, 오히려 실천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실천하려고 노력해본 사람만이 하다가 힘들어서, "아 씨, 왜 꼭 선배를 존경해야 되는데? 왜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데?" 라고 근본부터 되물을 수 있지 않은가. 아무 것도 논쟁하지 않는 사회는 고여있는 사회고, 부패의 조짐이 보이는 사회다.
어디 가서 사기 치고 뇌물도 받고 로비까지 하고 다녔던 사람들도, 옆에 있는 누군가가 좀만 도덕, 아니 인습적으로 불경스러운 말을 한다손 치면 그냥 설교부터 하고들 나선다. 철이 없느니, 이 자리를 빌어 부모님께 사과 하라느니, 공인이 어떻다느니..
우리는 늘 공인이라면 사석과 공석을 구분하라는 말을 한다. 맞다. 그런데 사석과 공석은 그렇다면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혹시, 사실을 말하는 자리와 접대용 뻥을 치는 자리, 라는 뜻으로 정의해야 하는 건가?
물론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 서서 이천수를 돌아보자.
이천수가 올스타 전에서 야유를 받았다. 왜? 승률 따위 다 떠나서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모여 즐기자고 하는 올스타전 같은 축제의 자리에서 그렇게 범국민적인 따를 당한 이천수. 그넘은 대체 얼마나 나쁜 놈인가.
먼저 객관적인 사실들을 정리해보자.
스포츠조선 8월 13일자
월드컵스타 이천수(울산 현대)의 자서전과 발언내용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란을 빚고 있다. 평소 솔직하고 당돌한 성격으로 그라운드 뿐만 아니라, 장외에서도 끊임없이 화제를 불러일으켜온 이천수가 월드컵 대표선수들에 대한 거침없는 '묘사'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최근 나온 그의 자서전 '당돌한 아이 이천수가 말하는 월드컵 뒷이야기' (컴온스포츠)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선배 황선홍(일본 가시와)에 관한 이야기.
이천수는 "축구대표팀에서 선배가 후배를 때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월드컵 미국전에서 내가 선홍이 형한테 맞았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는 골다툼 과정에서의 신경전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천수는 "내 친구들 중에는 X아치도 있고, 주먹 쓰는 아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그 소식을 들었는지 이런 말들을 했다. '야, 너 맞았냐? 내가 한번 힘 좀 쓸까? (황선홍 선수는) 뭐 나이 먹었다고 안 맞을줄 아냐?'"라고 거침없이 표현한 것.
쟁점 1.
발언의 뽀인트가, 나이 먹어도 맞을 짓 하면 맞는다고 말한 것인 듯 보인다
또 스스로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 것을 각오하고 말하는 것"이라며 "한국 선수들 중에는 존경하는 선수가 없다"고 한 부분 역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축구실력 뿐만 아니라 인간성에서도 완벽한 선수를 존경하고 싶다"는 이천수는 "국내에는 그런 선수가 없고, 대신 네덜란드의 스타플레이어였던 요한 크루이프를 존경한다"고 밝힌 것.
쟁점 2.
발언의 뽀인트가, 국내에는 인간성과 축구실력이 모두 완벽한 선수가 없다고 말한 것인 듯 보인다.
S선수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 선수는 팬들 앞에서 웃는 모습이랑 우리끼리 있을 때 웃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너무 가식적이다…너무 여자를 밝힌다"고 기술한 것. 그는 이어 최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S선수하면 연상되는 단어가 가식"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쟁점 3.
발언의 뽀인트가, 특정 S선수의 험담을 매우 열심히 한 것인 듯 보인다.
이밖에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기 전 "내가 고종수나 이동국 형보다 낫다"고 한 발언을 책에 다시 싣는 등, 스스로의 표현대로 '가식보다 당돌을 택한' 그의 자서전은 K리그 열기 못지않은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쟁점4.
빨언의 뽀인트가, 자기가 고종수나 이동국보다 낫다고 재차 강조한 것인 듯 보인다.
이와 관련 네티즌들은 '다음카페'의 이천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자서전속 발언을 '이천수 어록' 등으로 거론하며, 인신공격성 욕설을 올려놓는 등 이천수를 정면 공격하고 있어 파문이 확산될 조짐이다. < 이영주 기자>
다음은 실제 이천수 책에 쓰여진 원문이다.
쟁점 1 - 나이 먹어도 맞을 짓 하면 맞는다?
원제:"미국전에서 이천수 선수가 황선홍 선수에게 맞았다?"
사실 국가대표팀에서 선배가 후배를 때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특히 이번 월드컵의 경우 선후배들간의 돈독한 우정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선홍이형한테 맞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이 어떻게 해서 퍼졌는지는 몰라도 그 소문은 내 친구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사실 내 친구들 중에는 양아치도 있고, 주먹 쓰는 아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그 소식을 들었는지 나에게 이런 저런 말들을 했다.
"야, 너 맞았냐? 내가 한번 힘 좀 쓸까? (황선홍 선수는) 뭐 나이 먹었다고 안 맞을 줄 아냐?" 사실 난 맞은 적이 없기 때문에 친구의 말을 무시했다.
"까불지마 임마, 나 안 맞았어." 친구녀석들이 조금 흥분을 했던 것 같다.
"우리 얘들 지금 난리 났어, 너 맞았다고 해서." 소문은 조금 와전이 된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선홍이 형과 말다툼을 한 건 사실이었다. 미국 전에서의 일이었다. 당시에 내가 공을 잡고 있었는데, 선홍이 형이 자기에게 공을 달라고 소리를 쳤다. 그런데 선홍이 형의 뒤를 보니까 이미 3명의 선수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공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벤치에서 선홍이 형이 '천수야, 그런 건 좀 줘"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형, 형 뒤에 수비가 3명이나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줘. 솔직히 축구선수가 1대 3으로 하면 공 뺏기잖아." 선홍이 형도 화난 목소리였다.
"그래도 줘."
물론 선홍이 형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나도 어느 정도의 판단능력은 있다. 그래서 난 '그래요, 그럼 이제부터 드릴게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천수가 황선홍에게 맞았다'라는 소문의 실상은 이처럼 단순한 것이었다.
독자들이 알아서 해석하시길 빈다. 다만, 스포츠조선의 걸출한 편집능력이 돋보인다는 말은 아니 할 수 없겠다.
쟁점 2 - 국내에는 존경하는 선수가 없다?
원제:"내가 존경하는 선수는 네덜란드의 요한크루이프"
솔직히 내가 존경하는 국내 선수는 없다. 언론서 기자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할 때도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해왔다. 나의 이런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 잘못된 것이 아닐까?
나는 비록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일찍부터 각종 대표팀에서 활동을 해왔고 많은 선배 선수들의 모습과 그들의 면면을 알고 있다. 그 중에는 진짜 천재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완벽한 선수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또 수비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선배도 있지만 나는 수비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나아가 나는 축구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성에서도 완벽한 선수를 존경하고 싶다. 어쩌면 '완벽한 선수'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는 몰라도 아직 국내에서는 그런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외국에서 찾아보라면 아마도 네덜란드의 뛰어난 공격수이자 감독인 요한 크루이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선수들은 포르투갈의 피구나 프랑스의 지단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들을 존경할 수가 없다. 물론 그들은 몸값이나 실력에서 나보다는 월등히 나은 선수들이지만 같이 선수생활을 하고 2002년 월드컵에서 같이 뛰었던 입장에서 볼 때 라이벌이면 라이벌이지 그들을 존경할 수는 없다. 어떻게 라이벌을 존경하면서 같이 겨루어 경기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럴 바엔 아예 축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요한 크루이프 선수를 처음으로 본 것은 98년이다. 그의 월드컵 경기 장면을 분석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정말로 축구를 잘하는 선수였다. 단지 공을 잘 차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팀의 리더로서 든든한 리더십을 갖췄고 골을 넣을 때나 어시스트를 할 때, 그리고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기키는 능력까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정말로 내가 생각하기에 토탈 사커라는 이름에 걸맞는 ;완벽한 선수'였던 것이다. 나는 골만 잘 넣는 선수도 싫고, 어시스트만 잘하는 선수도 싫다. 아직 실력은 부족하지만 나 스스로도 모든 면에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요한 크루이프 선수는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했다. 아마 그가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가 활역할 당시에 선수생활을 했다면 펠레를 능가하는 선수가 되자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펠레는 골을 많이 넣기는 하지만 기동력 면에서는 그리 뛰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요한 크루이프의 경우 빠른 스피드를 갖췄다는 점에서 현대축구에 가장 걸맞는 선수일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된다면, 이제부터 존경하는 인물 얘기할 때 부모나 선생님 이름 안대고 링컨이니 아니슈타인이니 얘기하는 어린이는 선생과 부모가 먼저 나서서 야단 치라. 왜 그리 건방지냐고. 너는 주위에 어른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냐고.
물론, "국내에는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라는 이천수의 표현은 오바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문맥을 잘 읽어보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요한 크루이프다.'라는 말일 뿐이고, 세상 어떤 사람도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한 명 뿐인게 당연하다. 그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국내선수가 아니라는데, 대체 몰 어쩌란 말인가.
애가 좀 오바스럽기는 한지, 그 표현이 좀 강렬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국내선수 중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라고 물어대는, 우습게도 항상 똑같은 것만 궁금한 국내언론이 더 짜증난다. 존경하는 사람이면 존경하는 사람이지, 존경하는 국내선수가 누구인가, 라고 왜 꼭 물어야 된단 말인가. (그리고 대체, 질문 좀 괜찮은 거 개발 못하나? 맨날 똑같은 거 물어보면 짜증나서라도 없다고 하고 말겠다)
솔직히 학교 다닐 때, 존경하는 사람 누군가 물어봐서 아버지, 혹은 어머니라고 답하면 '오~ 철 들었네' 어쩌고 하며 본받으란 식으로 얘기하는 선생들 진짜 우스웠다. 지가 지 아버지 존경한다는데 나보고 머 어쩌라고! 지 아버지 존경하는 애가 어째서 다른 애들보다 더 칭찬 받아야 되나. 그런 거야말로 정말이지 인식의 강요다. 자기가 이미 무엇이 옳다고 정해놓은 답이 있으면서, 남한테 질문을 던지고는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덫을 치고 기다리는 일종의 폭력이란 말이다.
쟁점3 - 모 선수가 가식적이고 여자를 밝힌다?
원제:"사람들이 모르는 선수들의 색다른 면들"
○○○ 선수: 정말 이름을 밝힐 수가 없다. 이 형은 겉보기에는 전혀 여자를 밝히지 않을 것 같은데, 사실 여기 저기서 여자들을 많이 만나고 다닌다. 약간 바람둥이 기질이 있다. 하지만 축구를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다. 축구 선수에게는 축구를 잘 하는 게 제일이긴 하지만 생김새가 전혀 바람둥이 같지 않은 것에 그냥 놀랄 따름이다.
△△△ 선수: 역시 이름을 밝힐 수 없다. 팬 관리를 너무 잘하는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팬들 앞에서 웃는 모습이랑 우리끼리 있을 때 웃는 모습이 너무 다르다. 나는 막 장난치면서 '아, 형, 팬들 앞에서 그런 웃음 좀 짓지마, 너무 가식적이야'라고 농담을 할 때도 있다. 옛날에는 여자를 잘 몰랐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너무 여자를 밝히는 거 같다.
이거 보구 지 욕했다고 삐지는 넘은 약간, 삐짐쟁이라고 본다. 게다가 이 정도 장난이야 정치인들은 안 그러며, 연예인들은 안 그러나. 그거 보면서는 잘만 웃었던 대중들도 무슨 스포츠계는 그토록 고결해야 될 이유라도 있는지 너무나도 불편해 한다.
모 스포츠찌라시에서는 이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해서는, 응답자 70프로 이상이 남의 사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다는 기사도 실었는데, 그렇다면 스포츠찌라시들부터 폐점휴업 해야할 것이다. 스포츠 찌라시야말로 뒤에 숨어서 모르는 남의 사생활을 이러쿵 저러쿵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에 비해 이천수는 모가 어찌됐건 지가 아는, 지 친구나 선배들 얘기를, 지 이름 대고 얘기한 거다.
스포츠 찌라시들처럼, 공정한 척 하면서 이리 갖다 짜집기하고 저리 갖다 짜집기해 뒤통수 치는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지 이름 밝히고 했다. 그렇기에, 모두들 '이천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전제 하에서 그 글을 읽고 본다. 그러므로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 세모형이 진짜 바람둥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천수가 샘이 나나 보네'라고 생각하기가 더 쉽다. 그런데 스포찌라시가 선수쳐 그걸 대중이 직접 판단할 기회를 주지 않고, 책을 읽지도 않은 사람들 앞에서 내용을 교묘히 편집하여 '이넘 나쁜 넘이다'하고는 들이밀어 버린 것이다. 이거야말로 "싸가지" 없고, 남의 "사생활"을 들먹인 것이며, "파문이 확산될 조짐"이 아니라 파문이 확산되도록 "조장"한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똑같은 기자회견을 보고 온 두 스포츠 신문이 얼마나 다른 논조로 기사를 썼는지를 보자.
일간 스포츠
[축구] 송종국, 천수가 농담한 거겠죠
‘황태자’ 송종국(23ㆍ부산)이 대표팀 동료 이천수의 필화 사건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16일 오전 서울 역삼동 현대산업개발 본사에서 열린 페예노르트 이적 조인식에서 ‘바람둥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나는 바람둥이가 아니고 천수가 그런 의도로 썼을 리 없다”고 말했다.
이어 송종국은 “천수가 가벼운 농담조로 말한 것을 출판사 측에서 책을재미있게 꾸미느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한 뒤 “천수에겐 아무런 감정 없다”고 대스타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그는 “책은 조금 읽어 봤는데 재미있더라”고 재치있는 농담을 겻들이기도 했다.
스포츠 투데이
난 바람둥이가 아니다.
송종국(23·MF·부산)이 최근 발간된 이천수의 자서전 ‘당돌한 아이 이천수가 말하는 월드컵 뒷이야기’에서 “○○○선배는 겉보기와는 달리 여자를 무척 밝힌다”고 언급한 부분과 관련,세간에 자신이 지칭되고 있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송종국은 16일 오전 서울 역삼동 현대아이콘스빌딩 20층 회의실에서 네덜란드 1부리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입단 조인식에서 “(이)천수가 나를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로 표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송종국은 또 “천수가 별 의미없이 말한 것을 출판사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활용한 것 같다”면서 “월드컵 기간 중에 천수에게 잘해줬는데…”라며 적잖은 서운함을 내비쳤다. 송종국은 “귀국 직후 천수의 책의 내용에 대해 전해 들었다”면서 “그렇다고 천수를 불러 뭐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지나갈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천수는 올스타전 소집에 응했던 2박3일 동안 자신의 자서전 내용에 발끈한 선배들로부터 적잖은 부담을 느껴왔다. 특히 김병지(포항)는 “천수가 일부 선배의 여자 관계가 어떻다는 둥 동료 선수의 사생활을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면서 일침을 가한 바 있다.
같은 거 보고 와서 이렇게 말이 다르면, 누가 대체 언론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네 번째 쟁점인, 자신이 고종수나 이동국보다 낫다고 했던 발언을 책 속에 재차 수록했다는 부분이다.
쟁점4 - 내가 고종수나 이동국보다 낫다?
"내가 본 이천수 선수"
이천수는 정말 흥미로운 캐릭터의 소유자다. 그 때문인지 축구 팬들의 그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이다. 월드컵 시작 전에 항상 주문처럼 했던 말이 "한국의 월드컵 첫 골은 제가 쏘겠습니다."였다. "세계에 내 이름을 각인 시켜 놓고 싶다"는 말도 했다. 넘치는 자신감이다. 월드컵에서 약속처럼 '한 골'을 넣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의 기와 끼는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생선 같다.
그가 대표팀에 발탁되기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고종수나 이동국 형보다 낫다." 무척이나 당돌한 발언이었다. 그 뒤 그를 직접 겪어보지 않는 축구인들은 대부분 그를 '건방진 놈'으로 평가한다. 꼭 그 발언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최고가 되어야 하고 튀어야 하는 그의 성격이 인화와 단결 그리고 서열을 강조하는 축구인의 정서와 배치될 수 밖에 없다.
-정해성 코치, 박용철 기자의
'히딩크 500日의 기록'에 실린 이천수 선수에 대한 부분을 다시 실음.
역시 기사로만 보았던 바와는 많이, 아주 한참 많이 다른 부분이다. 이천수가 그 발언을 재차 반복해서 수록한게 아니라, 정해성 코치가 쓴 책에 실렸던 내용을 다시 수록한 것 뿐이며(실은 장 수를 채울려는 의도였던 듯 보인다.. 책이 무지 짭은 걸로 보아.. 그걸로 욕하면 할 수 있다), 게다가 내용이 그나마 과히 칭찬 삘도 아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보았을 때, 스포츠찌라시가 센세이셔널 함을 위해서건, 이천수를 갠적으로 미워해서건, 의도이건 의도가 아니든 막 자라나는 한 젊은이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기사들을 아무렇게나 마구 써내려 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물론, 이천수의 책 때문에 송종국이 불편해 했을 수도 있고, 홍명보가 화났을 수도 있고, 김병지가 야단을 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야말로, 친구이고 혹은 선후배인 그들 개인적인 관계의, 감정상의 문제고 의리상의 문제다.
예전에 범국민적 분노를 샀던 어떤 이들처럼, 음주운전이니, 운전면허 대리취득이니, 혹은 병역비리 같은 류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이천수가 홍명보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김병지에게 절교를 당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대중이 나서서 그를 단죄하고 야유를 보낼 일은 절대 아니다. 이천수는 그들에 대해서 자기의 자서전에 이 정도는 쓸 수 있을 만큼으로 생각했는데, 그들 쪽에선 그만큼 그를 여기지 않았다면, 자기들끼리 해결할 문제지 어찌 스포츠찌라시의 선동 아래 대중이 나설 문제겠는가.
대체 홍명보의 지위가 이천수의 오바스런 말 몇마디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실은 홍명보에 대한 모욕이며, 또, '타격은 받지 않지만 오빠 기분이 나쁘잖아'라고 생각하는 팬이 있다면 그야말로 말그대로 극성맞은 빠순이다.(빠순이가 머가 나쁘냐고도 하지만, 저 디카프리오를 위시하여, 충분히 자질 있던 수많은 아이돌 스타들을 나락으로 빠뜨린 팬들이란 게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 축구선수로서의 그의 세계는 전혀 이해 못한 채, 그의 감정의 일거수 일투족에만 울고 웃으며 앞길을 막은 그런 이들이었다.
외국의 예를 들면서 외국 선수 누구누구는 얼마나 싸가지 없는데 몰 그 정도로 그러냐 식의 얘기하면, 외국이 어쨌거나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다 하며 나서는 이들 많겠다. 그러나 다만, 이런 정도의 여유가 없는 사회는 너무나 경직된 사회다.
어쨌든 인간에게는, 싸가지가 없을 권리도 있어야 한다. 싸가지 없음이 범죄는 아닌 이상, 그의 부모나 친구나 주위 사람에게 응징 받되, 그를 모르는 어떤 수많은 이들이 집단적으로 그 개인을 몰아가는 것은 집단의 폭력이다. 후배가 기어오르니 얼마나 속상하겠냐며 홍명보에게 감정이입하는 이들이 많다면, 한편으로, 솔직하다 못해 맨날 오바가 되버리곤 하는 성격 탓으로 어린 녀석이 말 한마디 잘못 했다가 얼마나 속을 끓이고 있을 것이냐, 하는데 대한 감정이입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일까.
이거야말로 우리가 늘 자연스럽게 윗사람의 논리나 윗사람의 질서를 먼저 배려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며, 좀 더 나아가면 일종의 보수성이며 경직성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더욱 불쾌한 것은, 또다시 요상한 방법으로 언제나 그랬듯 보다 어린 쪽, 약한 쪽을 험하게 꾸짖어, 질서란 이런 것이다 라고 줄 세우려 하는 보수언론의 '꼴값'이 묘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