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 광복절이다. 여기 말로 내쇼날 데이! 공휴일이다. 일에 찌든 아내도 신이 난다. 금요일 저녁부터 계속 연휴가 이어진다. 그야말로 망중한. 관광책자를 뒤적여 보라. 싱가포르에는 다달이 행사들이 있다. 그런데 또 자세히 살펴보라. 그것들은 싱가포르 국민들의 인종이나 종교, 그리고 국적과 관계 있다. 중국인들의 행사, 힌두교인들의 행사, 이슬람교인들의 행사 등. 이런 것들을 제한다? 행사가 극히 드물다. 그래, 광복절은 나라의 축제다.
교회도 이 날을 경축한다. 시티 하베스트 교회에서도 8월 8일의 예언적 의미를 언급하고, 미리 8월 9일을 경축했다. 이건 분명한데, 예배 시간에 싱가포르 애국가를 함께 불렀다. 일어나라 싱가포르 어쩌고 저쩌고~ 다들 신나 보였다. 다들 오늘 휴일을 기다렸던 것이겠지? 온 나라가 들썩거린다. 특히 불꽃 놀이 요란하다.
회사에서 정보 얻은 아내. 우리 오늘 불꽃 놀이 가볼까? 일단 그러기로 한다. 아침 먹고, 집 나선다. 불꽃 놀이는 밤이고, 낮에 뭔가 해야 한다. 어제 가보려다 만 보타닉가든 향한다. 집 들른 주인 아저씨 아줌마 말씀. 이 나라는 뭐가 없단다. 행사가 워낙 없다 보니, 국경일에 온 난리를 친단다. 불꽃 놀이 가 볼까 해요? 아이구~ 애들 데리고 어쩌려고. 분위기가 이렇다. 듣자 하니, 지하철도 난리법석. 불꽃 놀이 장소가 메어 터진단다. 저녁 땀 불꽃 놀이 갔던 옆 방 총각 말. 안 가기를 잘 했단다. 밀고 밀리고, 지하철 역에서만 1시간 있었다던가! 싱가포르 전 국민 다 나온 듯 했다던가! 그러니까 여긴 이런 식이다. 뭐 한 번 했다 하면 이렇단다. 나라가 코딱지 만 하니, 선택 폭도 다양하지 않다.
지레 겁 먹고 불꽃 놀이 포기한다.
지하철 역에서 택시 타고 거의 기본 요금. 탄지 얼마 되지 않아 내린다. 날이 푹푹 찐다. 소 여물 삶던 가마솥 앞 같다. 땡볕에 가만히 서 있으면, 땀이 송글송글. 이내 줄줄 흘러 내린다. 가든? 자그마한 공원 생각하고 왔다. 그런데 아니다. 가든에 심겨진 나무 굶기와 그 키가 장난 아니다. 우리나라 수 천년 묶었다는 고목과 비할 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여름 기후에 비가 수시로 온다. 나무가 뭐 하겠는가? 자라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그런가? 완전 압도한다. 품이 큰 나무, 수 십 명은 거뜬하게 품을 수 있다.
휴일이라 사람들이 제법 있다. 나무 그늘에 앉아 점심 까먹는다. 남은 아침밥 싸오길 잘 했다. 아침 거의 먹지 않은 딸, 잘 받아 먹는다. 수다 떨고, 아이들과 재미나게 논다. 양산 받쳐든 중국인 아줌마 수다가 시끄럽다. 웃통 벗고, 나무 아래 벤치에 아내 허벅지 베고 벌렁 눕는다. 아들도 따라 한다. 넓으니 좋다. 시은이는 사방을 뛰어다닌다. 아들은 나무를 탄다.
한 여름 땡볕, 큰 나무 그늘 아래. 바람이 분다. 이 시원함은 냉방과 확실히 다르다.
언제 허리를 삐끗한 듯. 허리 오른쪽, 약간의 근육통. 걷는 것도 원만하지 않다. 꽤 넓은 보타닉가든. 다 둘러보기는커녕 키 큰 나무 아래 잠시 머물다, 이내 짐 싸 일어난다. 1/20 정도 봤을까? 나중에 입구에 붙은 지도를 보니, 그 정도도 아닌 것 같다. 아이 둘 데리고 다니는 것이 이 정도일 줄이야!
돌아오는 길에 고장 난 아들 시계 고친다. 부기스에 들렀다. 간 김에 파스도 한 장 사서 허리에 붙인다. 약효가 신통찮다. 심하지 않으니, 금방 낫겠지. 집으로 들어와 저녁 먹고, 아들과 아내는 장보러 나간다. 시은이와 잠깐 텔레비전을 본다. 옆 방 총각 들어와 불꽃 놀이 무용담 간단하게 늘어놓고. 불꽃 놀이 안 가길 잘 했다 생각하고, 안심한다.
내일은 허리 때문에라도 좀 많이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