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주최씨(朗州崔氏)의 기원(起源)과 유래(由來)
[東方之崔 出自齊太公望之後 在齊爲崔 陳恒之變 崔浮海出東云]
(동방지최 출자제태망공지후 재제위최 진항지변 최부해출동운)
(資料, 高麗史節要. 朗州古號. 辛酉單卷筆譜)
낭주최씨(朗州崔氏)는 중국 제(齊)나라 태공망(太公望)의 후예(後裔)가 최씨 성(崔氏 姓)을 얻고 제(齊)나라 말(末) 반란(反亂)으로 그 후손(後孫) 一部가 東쪽 바다 건너로 피란(避亂)하여 百濟때(西紀五八八年頃) 우리나라 남해안(南海岸 現 靈巖郡 郡西面 聖基洞)에 자리 잡어 호족(豪族)으로 번창(繁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손(後孫)이 영암최씨(靈巖崔氏) 즉 낭주최씨(朗州崔氏)이다.
영암(靈巖)은 백제(百濟) 때에는 월내현(月奈縣)이었으며, 신라(新羅)의 삼국통일 후 757(경덕왕 16) 영암으로 개칭했다. 고려 성종(高麗 成宗) 十四年(995년) 성종께서 민휴공 최지몽 선조(敏休公 崔知夢 先祖)님이 고려(高麗)를 달빛같이 밝게 하였다고 영암을 낭주(달밝을랑 朗,고을 주州)라 하고 삼남도호부(三南都護府)를 두면서 二十五年間 낭주(朗州)라 부르다 1018년(현종 9) 안남도호부(都護府)를 철폐(撤廢)함에 다시 영암으로 부르게 되었고, 그 後부터 민휴공(敏休公) 후손(後孫)을 낭주최씨(朗州崔氏)라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