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물을 오래한 사람을 다시 보기 시작한게 3년전부터다. 진규형도 그때부터 희정형,애정은 동네도 가고
지혜는 고창에서 부포 배우고 있길래 좀 가르쳐도 주고 그러면서 만났다. 옛날엔 지금처럼 부포가 좋지않았다.
<주현의 농악인생>
86년도부터 농악을 했다
나는 풍물이 아니라 동네에서 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채상돌리고 자반뛰고 그런게 아니라 술 한잔 먹고 노는 것
당산나무에서 흙을 엄청시리 파고 막걸리를 억수로 부어놓던 그런 동네에서 자랐다
500년은 되야 당산나무인데 그런 당산나무가 10개 정도는 있는 동네였다(이때 소리가 잘않들림)
아저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하고 싶었다. 음악성도 없는데 보고 자랐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농악을 했다
마을 징을 깨먹었는데 엄마가 징을 사서 변상을 했다.
86년도에 다시 농악을 봤는데 그때 풍물이란 말을 들었다 농악, 굿이 익숙한 용어
풍물은 이전에 들어보지를 않았던 말이어서 지금도 익숙하지가 않다
86년동 농악연구회란 단체에서 생활. 농악반이라함
농악보다 매구, 굿이란 단어를 쓰자라고 하다가 졸업 후 놀이마당이란 이름으로 바꿈
우리의 반대세력이 풍물이란 말을 씀 데모하거나 별로 못치는 애들이 풍물이란 말을 썼다
우리는 꼬깔 상모 다 갖추고 판굿을 꾸릴 수 있었는데 40명 정도
풍물이란 말을 쓰는 애들은 삼채만 치는 수준인데 300명은 우습게 모이더라
학생운동을 조직화하는 쪽에서 풍물이라함
단대별로 풍물이 다 조직되고 1000명도 금방 모였다.
우리는 1채부터 12채까지 다 치는 순수농악을 했다. 채는 시간 개념인데 1채가 한시간이다.
그때는 화순 한천농악 등 정병호 교수가 문화재 만들 때이다.
풍물이란 단어는 지금은 써볼까 하는데 실제로 잘 않됨
98년까지 농악을 않고 윤할배 찾아가서 뵙는 정도.
윤할배의 은거처인 지리산, 광주, 낙안 등에서 풍물굿을 접해봄
그때 어울리던 사람들이나 마을 어른들이 문화재가 됐다. 않보다가 3년 전부터 찾아가 봄
풍물의 시대에는 풍물을 않함
다시 와서 농악으로 복귀 한천농악, 영광농악 등
한천굿, 화순농악, 영광농악이란 말만 있다. 이 공간에 화순농악단, 한천농악사랑회(몇 더 얘기했는데 잘 못들음)이 같이 있다.
앞으로 풍물이란 말을 써보겠다
<우리의 미래, 굿판의 미래>
86년에 보니 풍물이라 자기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데모를 했다. 백골단이 있었다.
나는 민주화운동도 데모도 않하고 당산나무 아래에서 굿을 쳤는데 누가 내가 앞장 섰다고 해서
경찰서에서 이틀 자고 나왔다
열심히 하던 선배들이 군대갔다가는 그만하라고 했다. 농악을 하던 사람들은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이 없다
최근에 95학번 지연(?) 한명 빼고는 없다. 풍물이란 말을 쓰는 사람들은 직업으로 선택을 많이 함
그게 이상하더라
-농악은 어찌 됐을까?
1978년과(?) 50년대 경연대회로 농악과 민속학이 발전. 지금도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함
할배가 발굴한 안동탈 같은 경우도 상받고 문화재 지정받은 것 외에는 더 이상 발전이 없다.
78년에 나온 사물놀이 외에 새로운 것이 없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난타가 있다.
풍물에서 난타 같은 것을 했어야 했다. 풍물도 사물도 새로운 쟝르를 만든 것이 없다.
사물놀이는 삼도 사물놀이 하나로 40년을 버티고 창작이 없이 거꾸로 가고 있다.
비나리도 이씨 조선 찾는 내용으로 40년을 울궈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자기 세상을 개척해야한다.
애정누님의 도깨비굿은 새로운 쟝르, 솥뚜껑 같은 새로운 악기가 가능
김포들가락이란 말은 농악이란 말을 않써면서도 농악적이다.
풍물하는 사람들이 난타 같은 창조적인 개발을 해야한다.
LED소고, AMP장고, 모타 상모, 노래방 탬버린 같은 걸 개발해야함
옛날 악기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의 풍물, 농악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후기 길어야 200년 정도
이런 농악을 보존하는 것은 보존하라고 국가 라이센스를 받은 보존회에서 하면되지 왜 풍물하는 사람들이
200년도 않된 것을 뿌리네 전통이네 하면서 거기에 머물러 있느냐
-우리의 굿도 현재 시대에 맞춰 거듭나야한다
풍물 작곡, 쇠 음악 작곡 하는 프로그램도 개발, 여러가지 연주 방법 연구해서 저작권, 상표권 신청해야함
나는 농악 상표 등록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다
자기 만의 풍물굿의 세계를 만들고 작곡을 하고 새롭게 만들고 창작이 있어야 한다.
무슨 류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장고 잘치는 사람은 억수로 많더라
김동언선생에게 가서 장고를 쳤더니 보수교육을 받으라 해서 교육받다가 그만뒀다.
윤중임설장고를 배우러 가서 전라도에는 없는 강인함을 봤다. 도시풍물인가?
우리의 미래를 위한 난타, 사물놀이 2,3,4,5가 나와야한다.
우리의 곡을 만들어내고 쇠의 8개의 높낮이를 가지고 8개의 음으로 치는 법도 만들자
굿거리 등 놀이 거리만 말고 더 많은 풍물거리를 만들고
세미나를 진행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살아남자
농악보 중 200년 이상된 것이 거의 없었다. 한천농악보에서 230년 쯤 된 것이 있었다.
북도 장고도 좋게 개발해서 쉽게 소리날 수 있게 개발해서 미래를 준비하자
미래굿은 청바지를 입고도 장고 치고 모타단 상모를 쉽게 돌리고
쇠치는 것도 클릭하면 새로운 연주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생존 가능
영운이 컴퓨터 풍물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니 무지 반갑다
자, 질문?
첫댓글 잘 못 알아들은게 꽤 있으니 그런 것 수정 답글 달아주이소
오호~~~감사...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