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이제 해가 저물었습니다. 이 달만 지나면 새해가 돌아오지 않습니까? 그 동안 모든 가정에 있어서 잘된 일은 더욱 잘 되도록 조화를 시키고, 잘못된 일은 청산해서 잘하는 방향으로 한걸음 더 돌리시고, 인간과 인간사이의 서로 섭섭한 일이 있다면 깨끗이 마음을 비워버리고, 상생의 인연으로 잘 돌아가길 바랍니다. 가정의 모든 식구가 건강하고 모든 일에 성공이 있도록 염원하는 마음으로 또 금년 연말을 그런 마음으로 마감하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박수 한번 올립시다. (짝짝짝) 그리고 안 정순 동지님께서 멀리 외국까지 갔다가 외손자 외손녀를 보시고 3개월 만에 돌아오셨습니다. 출석 빠지지 않고 다니시다가 외국 갔다 오셨습니다. 축하의 박수와 환영의 박수를 올립시다. 잊지 않고 오시니까 박수 받고 기분 좋으시죠? 멀리 울산에서 멀다하지 않고 꼭 이웃집에서 오듯이 오셨습니다. 울산에서 오신 분들은 참 특별한 분들입니다. 물론 시내에서 오신 분들도 빠지지 않고 오셨으니 장하시고, 오늘 다같이 박수 한 번 더 올립시다. (짝짝짝) 사람은 금생(今生), 한생을 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언제나 영생 길을 보고 살아야합니다. 보통 범부와 중생들은 하루를 잘 살고 기분 좋게 보내려는 마음으로 삽니다. 불보살들은 인격적으로 조금 높이 올라가면 “내가 평생을 어떻게 잘 살 것이냐?”하고 평생을 인격적으로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또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영생의 길을 내가 이 명(命) 놓지 않고 어떻게 해야 잘 할 것이냐?” 이런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 때에 어떤 결함이 있고 환경이 안 좋다 하더라도, 영생이 있으니까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서 밀고 나가는 것이 가치 있는 생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평생을 어떻게 잘 살 것이냐?’ 거기에 머리를 골똘히 하고 살지만, 이런 선방을 가꾸고 선을 한다거나 도학을 하는 분들은 금생이 문제가 아니고, 영생의 길을 개척해 가고 모든 생명들을, 모든 인류들을 위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치로 말하자면 얼마나 큰 가치가 있겠습니까?
오늘 제가 말씀드릴 것은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며”를 설명하는 겁니다. 일원상 편에, 처음에는 일원상 진리를 말했고, 그 다음은 신앙을 말하고, 다음에 수행을 말합니다. 오늘은 신앙을 하는데 있어서 “공적영지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며”부터 “언어명상이 완연하여 시방 삼계가 장중에 구슬같이 드러나는 것을 믿으며” 여기를 말합니다.
저번에 장중에 구슬같이 드러나는 이모저모를 말씀드린 가운데 오늘은 청안(淸顔), 맑을 청자(淸). 얼굴 안자(顔). 사람이 깨끗한 얼굴을 지니는 그것이 바로 일원상이며 일원상과 같이 두렷하고 깨끗한 얼굴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근본적으로 얼굴이 얽어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진애가 없이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 자체가 깨끗해서, 얼굴만 봐도 틀림없는 사람이다, 그 분은 참 보통분이 아니다, 달과 같이 두렷한 사람이다, 참 맑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일원상의 상입니다. 일원상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일원상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맑은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일원상입니다.
오늘은 청안상(淸顔相) 맑을 청자, 얼굴 안자, 서로 상, 모양 상, 상이란 상자며 일원상의 상자입니다. 맑고 깨끗한 얼굴상이라는 뜻입니다. 맑은 상을 가지고 있는 얼굴상은 다섯 가지 복이 있습니다.
첫째는, 수명복(壽命福)입니다. 목숨 수자(壽), 목숨 명자(命), 수명복이 있는 것입니다. 왜 수명복이 있냐하면 마음에 티가 없이 진리와 더불어서 깨끗한 심정을 그대로 지니면, 열 살만 먹고 죽을 사람도 50-80까지 사는 겁니다. 이렇게 수명이 연장되는 것입니다. 또 80을 먹고 죽을 사람이 90, 100살 까지도 사는 것이고, 100살 먹고 죽을 사람이 120살도 삽니다. 사람의 정명은 165세라고 합니다. 앞으로 100년쯤 지나면 평균 320살 까지 삽니다. 150년 후에는 자꾸 수명이 길어집니다. 수명이 자꾸 길어지니까 사람 수는 적어지고 수명은 길어집니다. 이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수명이 적어져서 수 억 만년 지나면 수명이 30세도 안 되는 시대가 돌아옵니다. 날이 따뜻해졌다가 추워졌다가 하듯이 수명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겁니다. 봄여름이 갔다가 가을겨울이 돌아오듯이, 가고 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도수를 따라서 항상 사람 몸을 여의지 아니하고 항상 사람 몸, 또다시 사람 몸, 수 억 만년을 지나도 계속해서 사람의 몸을 가지는 그 수명을 말한 겁니다. 그러면 생명과 수명이 하나가 됩니다. 생명은 밥 먹고 공기마시고, 호흡을 하는 것이 생명인데 그런 생명은 아무리 길어도 코 막고 입 막으면 한 시간도 못삽니다. 아무리 100살 넘도록 타고 났어도 코 막고 입 막으면 1시간도 안돼서 죽습니다. 생명은 없어졌지만 수명은 남아 있습니다. 수명은 항상 있습니다. 수명은 마음의 맥입니다. 바로 심맥을 말합니다. 마음의 맥입니다. 불생불멸의 진리의 맥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청안상을 가져야 수명의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은 수명을 연장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사람이 수명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명이 짧아서 부모 앞에서 6,7살 먹어 죽고 열서너살 먹어 죽어버리면 그 슬픔이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과 비등비등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수명은 선을 많이 하고 진리공부를 많이 해야 연장됩니다. 제가 72살 가까워져서 원광대학교 박 총장이 저 보고 당신은 72세가 정명이요 그랬습니다. 그 이후에 제 나이 72세가 됐습니다. 정확히 72세란 말이야. 박 총장이 말한 대로 정확히 72세가 되었으니까 나도 죽는가 보다 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제 마음에 선방을 만들어서 천하 억조창생을 위해 교화하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이건 한 50년전 원불교 들어가면서부터 그 마음을 가졌습니다. 원불교 들어온 지는 벌써 60년이 다 됐는데, 그때부터 마음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꼭 해야 할 일이면 72세를 넘기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72세는 건강했고 뭐든지 일도 착착 잘 됐습니다. 그러더니 올해로 82세를 넘겼습니다. 82년이 꼭 하루 같은 마음입니다. 지금 총부를 살펴봐도 제가 두 번짼가 세 번짼가로 나이가 많습니다. 103세 되시는 성산 종사님이라는 원로분이 계십니다. 여자분 88세인 분이 계시고, 그 다음이 저입니다. 그러니까 남자 중에서도 제가 세 번짼가로 나이가 많은 위치가 되었습니다. 차안에 앉아 둘러봐도 저같이 나이 먹은 사람은 없고 모두 다 씩씩한 청년들이 앉아계십니다. 그래도 저는 조금도 늙었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자랑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지니면 타고난 명과는 관계없이 자연히 수명이 연장됩니다. 그러니까 요즘은 일도 잘되고 우리선원법인체도 나왔습니다. 정부에서 허가가 나왔습니다. 자랑 같아 할 말은 아니지만 한집 식구 같은 여러분 앞에서는 자랑해도 괜찮습니다. 조금도 비밀이 없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철학학회 회원들이 모여가지고 제가 쓴 선과성리에 대한 책을 가지고 학술대회를 했습니다. 유교에 관심가진 철학자가 유교사상과 원불교 다산종사 선사상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 철학자는 유명하고 권위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철학자들이 “모든 성자들이 해 나온 모든 성리설은 죽은 뒤 몇 백 년이 지나서 하는 것인데, 다산은 지금도 살아있지 않냐?”고 의문을 제기하자 “다산종사님은 살아계시지만 그 분 사상을 하루빨리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알려서 이러한 차례대로 공부시켜야 한다.” 이렇게 전개되었습니다. 옛날 주가(朱家)에 비교하고 공자님 사상에다 비교해 볼 때 다산의 선사상은 성과 성리라고 해서 이렇게 나와 있는 것은 없습니다. 과거 성자들은 성리설이다 하고 자기 말만 했지 이렇게 확실하게 길을 밝혀 놓은 책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선과 성리’ 책을 읽고 사람들이 도움을 받으니까 저를 뵐 수 있냐고 자꾸 전화가 온답니다. 그러니까 책도 한번 써볼 필요가 있더라구요. 요즘은 법인체를 가지고 일을 하려면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옛날 그대로의 사상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해서, 앞을 향해서 나아가려면 뭔가 새로운 사상이 나와야 합니다. 원불교 교법이 나와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런 진리의 법이 나와야합니다. 거기서 평하기를 원불교 전무출신인 한 분이 동양철학을 하는데 그 분이 한말이 “유교와 다산 선 사상이라는 것은 약하다. 그 분의 선사상 내용은 유불선 삼교를 집약해서 한 성리설인데 왜 하필이면 유교와 다산 선사상이냐?” 그러니까 사람들의 말이 “유교를 믿는 사람입장에서는 유교가 가장 크고 가장 좋은 법이다. 이렇기 때문에 유교학자로서 비유한 것이니까 그 말은 옳지 않다. 또 불교학자, 불교철학자가 나오면 불교와 다산선사상이 나올 것 아니냐? 그럼 도교에서 학자가 나오면 도교와 다산 선사상이라고 할 것 아니냐?” 그리고 원불교, 신관중씨라고 청주에 사는 사람이 지금 ‘유불선 삼도와 다산 선 사상’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이런 걸 왜 자랑하냐하면 비록 회원은 작고 빈약해 보이지만 외부에서는 우리의 활동을 알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홍 은경이라고 원불교 전무출신인 분이 인도로 박사학위를 받으러갔다 와서 하는 말이 그곳에서 우리선문화원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다산의 선사상에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홍 은경교무가 여태 은평교당에 있다가 3일전에 또 인도에 갔습니다. 그 분이 아주 좋은 느낌을 갖고 있었습니다. 영어로 번역해서 세상에 다 알려야겠다고 그럽니다. 제가 지금까지 한 말은 자랑이 아니라 우리가 다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믿음을 가지고 선방사업을 열심히 하자는 취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하면 수명복이 있는 것이다. 오래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날마다 선사상(禪思相)을 말하면 선사상 내용이 수명이고 무한한 것입니다. 무한한 것을 마음으로 먹고 자꾸 마음속에 무한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히 수명이 연장되는 겁니다. 아무리 수명이 있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끝내버리면 어느 날 갑자기 다산이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될 겁니다. 하나의 일이 끝나면 후생에 또다시 시작할 일이 있지 않겠습니다. 우리 살아있는 동안에 마음을 알고 뜻을 모으고 사상을 알아서 합심으로 서로 만날 일을 해서 수명복을 받아야 합니다. 청안상이 되어야 수명복을 받습니다.
둘째는 아무리 수명이 있어도 인연복 재물복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영식이 오래 살면서 가난하고 천덕스럽게 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속히 죽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니까 아까같이 선 공부를 하고 선을 많이 하면 수명도 길어집니다. 복을 짓는 것은 항상 사람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인연 복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인연 복을 짓다보면 재물 복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연 복을 무조건 많이 지어놓으면 재물 복이 따라 온다는 말입니다. 가령 제가 인연 복이 있으면 그 인연 가운데 재물을 갖고 있는 분이, 이렇게 하겠습니다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내놓는단 말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는데 이런 좋은 일을 안 하면 되겠냐고 하면서 내놓습니다. 인연 복이 내 자손으로 태어나고 식구로 태어나고 내 집안으로 태어나야 인연 복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서로 만나는 것이 인연입니다. 시방세계가 모두가 다, 심지어는 개까지도 인연 복이 있어야 개가 나를 따릅니다. 개도 인연 복이 있어야 주인 이불속에서 잠을 자려고 합니다. 개하고도 인연 복이 있으려면 개를 토닥거리고 새끼보다 더 예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개가 인간보다 낫다는 것이 아닙니다. 개를 좋아하고 개에게 너무 착심하면 죽어서 개를 따라가기 쉽습니다. 개를 예뻐하되 개가 후생에 사람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어야합니다. 그런 능력 가져야 합니다. 개를 따라서 후생에 개가 되면 되겠습니까? 요즘은 사람이 개를 좋아해서 개로 된 사람 많습니다. 개가 나를 따라서 사람 몸을 받는 방향으로 인도해 주려면 독경을 해서 신앙심을 올려주고, 심고를 올려주고 또 자꾸 못 알아듣는 소리라도 “너 후생에 사람 되어라” “이렇게 해라” 하고 힘을 주면 변해버립니다. 개가 달라집니다. 그러니 개를 예뻐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개는 예뻐하지만 반드시 사람으로 화하도록 인도해줘야 합니다. 그것이 인연 복입니다. 인연 복이라는 것은 그 분을 위해서 가려운 점을 긁어주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손이 안 닿는 등뒤가 가려운데 누가 한번 긁어주면 얼마나 시원합니까? 그렇게 복을 지어야 인연 복이 걸립니다. 지금까지의 말이 여기 해당되는 말은 아니지만, 진리만 말하면 딱딱하고 듣기가 싫으니까 이렇게 보통 말로 하는 겁니다. 청주에 있는 신 관중이라는 분이 속리산 근처의 땅 10만평 내놓겠답니다. 제가 그 산을 아는데 어떤 스님이 욕심내서 절 지으려고 팔라고 했는데 안 판 사람 입니다. 제가 앞으로 거기에다 우리선원 공로자들의 비석을 세우고 기념관을 세워서 좋은 유적지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고 선상 강의도하고 선방을 지어서 만년대계로 휴양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스님이 정해놓은 절터를 가봤더니 과연 명당자리였습니다. 여기다가 우리 선원을 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법회만 안 빠지고 잘 나오면 그 기념관속에 존함이 적히고 천하 인물들이 속리산을 지나가다 그곳에 들어가서 인사도 하고 그럴 겁니다. 또 공로가 큰 양반들은 비석을 세우고 굉장할 겁니다. 그러니까 다니다가 말면 안됩니다. 끝까지 이 일을 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은 외국인이라도 반드시 유적지에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청주라는 곳은 옛날에 현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손 병희 선생, 정 송강, 사계, 신독재, 송 시열 선생 등이 그 근방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충주 공원에 가면 3.1운동 때 손 병희 선생을 비롯한 애국자들 여덟 분의 비석이 서 있습니다. 한국의 다른 곳에는 없습니다. 옛날부터 그런 분들이 많이 나오셨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이 그 근방에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도학군자로서 전국에 유명한 현인들과 사상가들이 나타난 곳으로 앞으로는 도학 곧 천하 인류를 도덕화 시키고 선법화 시키는 일을 하는 우리선문화원의 공로자 비석을 세우고 탑도 세우고 할 겁니다. 여러분들은 저 같은 사람 만나서 큰 복 만난 겁니다. 그러니 중간에 비실비실 대고 게을러지면 여태 허사입니다. 시종일관 저 안 정순 동지와 같이 외국에 나갔다가도 찾아오는 정도가 되어야합니다. 울산서 오시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 몇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기 청년 회장은 여기다 말뚝 박아 놨으니까 중간에 변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복을 지어 놓으면 후생에 가는 곳마다 환영받는 사람이 됩니다. 인류를 위해서 선방사업을 했으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수명도 길어지고 복도 받고 건강할 겁니다.
그 다음은 건강복입니다. 좋은 세상을 만났는데 먹을 것도 못 먹고 위장이 아프고, 간이 아프고, 폐가 아프고 심장이 아프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건강하려면 청안상을 가져야 합니다. 얼굴이 깨끗하고 마음에 미운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소소한 것은 놔 버리고 마음을 태평하고 깨끗하게 하고 정성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건강이 딴 것이 아니라 전생에 한 그대로 나타납니다. 금생에 와서 자꾸 배가 아픈 사람은 전생에 자기만 먹고 다른 사람은 배고파해도 안주고 혼자 배부르게 먹어서 배 아픈 사람입니다. 전생에 남의 가슴을 많이 태우고 애를 태운 사람이 가슴앓이를 앓습니다. 남의 속을 많이 태운 사람이 심장병을 앓고 오장 간장을 쑤시고 아프게 한 사람은 오장 간장이 아픕니다. 그러니까 전생에 지은대로 그대로 나타나는 겁니다. 질병 없이 건강한 사람을 보면 마음 쓰는 것이 병날 일이 없습니다. 마음 쓰는 것이 병나게 생긴 사람도 있습니다. 꼬장꼬장해가지고 이 며느리 말만 하면 톡 쏘아버리고 획 돌아서니 병이 생깁니다. 멀리서라도 약속한 날 와서 이렇게 자리를 지켜주니 건강합니다. 꼭 건강해야합니다.
수명이 있어야 하고 복이 있어야 하고 건강해야하고 그 다음에 뭔지 압니까? 무엇인가를 해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해 낸다는 것은 내가 죽은 뒤에라도 뭔가 발자취를 분명히 남겨야 합니다. 내가 일평생 살고 들어간 발자취가 분명해야합니다. 나를 따르는 주위의 인연들이 거기를 지날 때마다 감탄하고 생전의 모습을 기리며 역사기록을 잘 해놓은 비석을 볼 때 아! 이런 분이 계셨구나하고 그 분을 따라하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업적이라고 합니다. 대진원장하면 한의원해서 돈 벌어서 선방을 이루는 것이지, 돈 벌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선방을 하면 나중에 부산시민이 머리 숙입니다. 그러니 정성을 표현해야합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석포교당 청년회장은 앞으로 그 일을 하나 할 겁니다. 반드시 뭔가 하나 해서 우리선원에 큰일 할 겁니다. 왜 저 분을 예뻐하는가 하면 마음이 예쁩니다. 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한번도 안 빠지고 늦게라도 꼭 옵니다. 앞에 앉은 영도화 할머니, 명선, 현진씨, 저 뒤에 앉은 양반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저녁에 저 청년이 일당백으로 한 분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끝으로는 열반상입니다. 잘 죽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얘기하고 같이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죽었다고 부고가 옵니다. 이렇게 죽어야합니다. 저도 걱정입니다. 누구든지 그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유언은 다 소용없습니다. 착심입니다. 유언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나 죽은 다음에 이렇게 저렇게 해라 할 필요 없습니다. 옛날 어른들이 해 오니까 자손들이 따라서 유언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유언할 것이 아니라 평소에 일을 깨끗이 해 버려야합니다. 남길 말이 없이 평소에 해 버리면 유언은 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슬며시 잠자듯이 가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가면 바로 인연이 나타납니다. 보통 사람들은 죽은 뒤에 인연을 찾느라고 애를 쓰면서 허공에 떠돌아다닙니다. 안되면 천도재를 통해 소개 받아서 가고 오고 야단나는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말하자면 수명복이 길고 복되게 살고 건강하고 할 일을 딱 하고 가면 갈 때 바로 인연이 나타납니다. 생존해 있을 때에 벌써 압니다. 나는 죽으면 어디에 태어난다. 누구 집에 태어난다하고 정해놓습니다. 외국 갈려면 외국에 태어나고 외국사람 되어야겠다 하면 외국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나되 불연을 따라 부처님이 될 수 있는 인연을 만납니다. 이렇게 태어나는 게 죽음 복을 잘 탄 사람입니다. 이렇게 해야 청안상(淸顔相)을 가진 사람입니다. 평소에 맑고 고요하고 두렷해서 분별과 주착이 없는 정신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일원상입니다. 맑고 맑고 맑아서 한량없이 맑은 자리. 맑으면 고요해지고 정밀해집니다. 만 리 밖의 소리도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깨끗이 통합니다. 맑고 고요하고 두렷하면 천하가 환히 열려서 걸림이 없어집니다. 광활한 천지가 장중에 있다는 뜻입니다. 분별과 주착이 없고 모든 계교사량이 하나도 없는 것이 정신입니다. 분별과 주착이 없는 정신입니다. 할아버지들이 “아유 죽으면 큰일 났다고”해서 “왜 그러십니까?”하고 누가 물으니 그러더랍니다. 우리 아들내외나 딸 내외나 모두 산아제한을 해 버려서 태어날 수가 없고 또 다른 곳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안 되니 걱정이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렇게 태어날 데 없어서 걱정할 것 없어요. 걱정할 것이 없이 허공에서 수양을 하면 됩니다. 영단을 허공에 날려서 맑고 고요하고 분별 주착이 없는 그 세계에 마음을 주하고 가만히 있으면 십년이 번쩍하고 하루같이 지나가 버리고 백년이 하루같이 지나가버립니다. 거기서 영단을 뭉치는 겁니다. 영단을 뭉쳐서 한번 궁글리면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궁글리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궁글리는 것이 아닙니다. 궁글리면 갈 길이 환히 열립니다. 도솔천에서 인간세계 어디에 태어나라 하고 천지공사 해서 일러줍니다. 법계에서 공사해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 보내면 다 그대로 가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이면, 공부만 하면 다 느낄 수 있습니다. 천불만보살 아닙니까? 이것이 청안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명안상(明顔相)입니다. 밝을 명자(明), 얼굴 안자(顔), 마음이 밝아야 합니다. 마음이 밝은 사람은 이렇게 눈에 안 보이는 세계와 눈에 보이는 세계가 둘이 아니게 보입니다. 밝지 못한 사람은 눈으로 보이는 세계만 보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안 보인단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눈에 안 보이는 세계가 모두 보이는 사람은 내외를 모두 보니까 눈망울을 항상 감고 사는 것 같습니다. 밝을 명자 (明)를 보면 밤과 낮이 모두 훤하다는 말입니다. 밤에는 달이 훤하고, 낮에는 해가 훤하니 달과 해를 합해가지고 밝을 명자(明)가 됩니다. 그런 사람의 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도 훤히 밝고 눈에 보이는 세계도 훤히 밝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도 밝지 못한 사람은 애착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람도 내 마음에 참이 없으면 밉게 보이고 좋은 일도 그렇습니다. 잘못된 사람도 애착에 끌리면 좋게 보이는데 이건 잘못 본 것입니다. 그러니 늘 죄만 짓게 됩니다. 마음이 밝은 사람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나에게 잘못해도 그 사람 참 되면 그대로 봐 주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잘 되도록 요령을 피워서 그 사람을 제도해야 합니다. 내가 안 되면 남을 시켜서라도 요령을 피워서 공동으로 합심해서 사람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말해서 안 되는 사람은 공동작업을 해서, 일만 공동작업이 아니라 사람 제도하는 작업도 공동작업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으로 이름도 났는데 내가 말하면 너나 잘해라하고 톡 쏘아버리니 말을 할 수 없고 어찌 할 것입니까? 이럴 때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이렇게 저렇게 하도록 해서 방편을 쓰면 반드시 그 사람을 제도할 수 있습니다. 그게 밝은 사람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니 될 대로 되라, 무슨 관계있냐하면 안됩니다. 내가 아는 인연은 절대로 지옥가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사람을 제도해야 합니다. 그런 건 천만금을 줘도 소용없고 마음으로 기도로 교제해야 합니다. 참회로 교제하고 지도로 교제하고,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도해 줘야 합니다. 꼭 알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모르게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가령 강 대진 잘 되라고, 강 대진 아들 낳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겁니다. 아마 이 양반은 아직 젊으니까 아들이 하나 소원일겁니다. 아들 놓으라고 박수한번 쳐줘요. (짝짝짝) 그렇게 해서 사람을 인도하는 겁니다. 제도란 딴 것이 아니라 어려운 대목을 이렇게 풀어주는 것이 제도입니다. 천도재를 모셔보면 그 사람이 악도에 갔는지 선도에 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연히 영감으로 통해집니다. 그리고 꼭 생시같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 전에는 영계를 멸시했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영계를 봐서 남을 제도하는 사람은 밥 값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점쟁이는 아닙니다. 점쟁이 같이 알아맞히고 이건 이렇게 하라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청학교당 주무님께서 한참 영계에 밝았는데 요즘은 딱 끊었으니 대인의 심법을 가졌습니다. 박수 한번 쳐드립시다. 명안상입니다. 밝을 명자 얼굴 안자, 밝은 얼굴입니다. 맑아야 밝아집니다. 그 사람 참 청명하다는 말을 씁니다. 청명한 모습은 달을 봐야합니다. 달은 맑으면서 밝습니다. 그러니까 심월, 마음달이라고 합니다. 마음 해라는 말은 없습니다. 마음 해는 순전히 지혜를 말하지만 마음 달이라 하면 분별계교 사량을 초월한 반야지입니다. 현실과 나타나지 않는 세계가 하나로 보이는 반야지로 분별 계교사량을 초월한 지혜입니다. 그것이 청지(淸智), 청명한 지혜입니다. 제가 처음 전무출신해서 영산에서 3년을 살았습니다. 그 때는 좌익군 곧 밤손님이 오는 때입니다. 좌익군이 밤만 되면 내려와서 무엇을 내놔라, 무엇을 내놔라하던 때입니다. 저는 그때 3년간 살면서도 누워서 잠을 못 잤습니다. 옷을 입은 채 앉아서 날을 샜습니다. 앉아서 날을 새면서 좌선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님도 안 풀고 옷도 안 풀고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 밤에는 가만히 앉아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지금은 방 안에 화장실이 있지만 그때는 밖에 있었습니다. 영산 구간도실에 있었는데 문을 가만히 열고 보니까, 구석에서 밤손님이 손을 딱 끼고 다섯 명이 잠을 자고 있는 겁니다. 3시나 됐었는데 옷에다 오줌은 싸게 생겼고 큰 걱정이란 말입니다. 잡히면 산으로 붙들려 가는 겁니다. 소리 안 나게 가만히, 마음을 비우고 얼른 화장실을 다녀서 돌아오니까 그때까지 자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러다가 들어오는데 밖에서 “동무”라고 해요, 그 사람들은 꼭 동무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알았구나’ 생각하고, 문을 탁 차고 나가서 “누구여?” 그러니까 “아~ 알잖아 나, 산에서 왔어.” 하길래 “아 ~ 그러시냐고” 고 악수하고 마음으로는 반갑지 않지만 반가운 듯이 맞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면서 “낮에 오시지 밤에 고생스럽게 오셨냐고. 낮에 오셔도 얼마든지 우리가 싸드릴 텐데 이렇게 오셨냐?”고, 들어오시라고 해서 방으로 모셔놓고는 원화 할머니라고, 대종사님 초기 후원자, 원화 할머니를 통해서 술 받아 대접하고 닭 잡아서 대접한다고 하다보면 날이 샙니다. 날이 새니까 “동무 고맙소. 이 다음에 또 올랍니다.”그래요. 오라 소리도 안하는데 또 온다고 그럽니다. 그리고는 촛대봉으로 넘어갑니다. 그 사람들이 와도 절대 돈은 준 일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핑계를 대고 요령을 피워서 돈은 준 일 이 없습니다. 돈을 주었다가 나중에 그 사람들이 잡혀서 돈 어디서 받았냐?, 누가 얼마 줬냐? 하고 경찰에서 알게 되면 붙잡혀갑니다. 그때는 죽는 겁니다. 이러면 경찰계통에게 죽는 것이고 또 돈을 안주면 좌익에게 죽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요령을 내서 자비롭게 하면서, 형제를 만난 것 같이 반갑게 해서 그 사람들이 안절부절 어쩔 바를 모르게 해서, 음식물을 대접하고 술을 받아주고 하다보면 얼렁뚱땅 넘어가 버립니다. 그러다가 좋은 말 한마디씩 하다 보면 듣다가 시간이 지니면 가 버립니다. 그 사람들이 원불교 교리를 말하면 정신없이 듣습니다. 원불교 교전에 얼마나 좋은 말이 많습니까? 그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러고 나서는 가면서 참 묘하다 그럽니다. 하도 좋은 말을 많이 하니까 돈 달란 말도 못하고 그냥 간다고, 그러나 이 집은 언젠가 그 분이 그냥 안 넘어가고 꼭 줄 거라고 자기들끼리 말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주겠어요? 돈 줄때가 되면 “나는 이러이러한 공사에 매인 몸인데 당신들도 상부의 명령을 듣지 않냐, 상부 명령 없인 안 되지 않냐, 나도 역시 상부의 명령이 있다. 어떻게 해볼 터이니 기다려라” 그럽니다. 기다리다 보면 한달도 가고 두 달도 갑니다. 이렇게 핑계를 댑니다. 또 오면 “어느 달에 준다고 하더라 그때까지 기다려 보자.” 그럽니다. 그때가 되었는데 불갑산 작전이 나서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 분들한테 빚을 졌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 빚은 괜찮습니다. 명안상이 되면 앞으로의 일이 눈에 보입니다. 그 당시에 구인 선진님 가운데 사산님이 계시고 박대봉 선생이라는 분도 계시고, 원화 할머니부터 여러 할머니분도 계신데 새벽에 청년 하나가 나한테 와서 오늘 좌익이 오니까 피신하라고 일러줬다고 하면서 모두들 피신하라고 합니다. 피신하면 꼭 그 날 낮에 산에서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새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콩밭 쪽에서 쏟아져 나오고 그 다음에는 사과 밭에서 제가 벌레를 잡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손들어”라고 소리 질러서 돌아보니까 빨치산이 와서 저 보고 손을 들라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영산부근에 사는 사람은 전부 빨갱이라고 한 사람도 온전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소로 붙잡혀갔습니다. 지소로 붙잡혀간 사람들이 저녁내 고문을 당하는데 물에 고춧가루타서 코에다 넣고 해서 저도 고문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니까 경찰 지소장이 저한테 와서 하는 얘기가 “선생이 무슨 죄가 있겠소, 영산 사는 청년들 속에 섞여 들어 온 것이니 아침에 나가시오.” 그랬습니다. 그런데 원화 할머니는 속도 모르고 우리 근수가 죽게 생겼다고 어쩔 바를 몰라 하면서 새벽에 밥을 고봉같이 해서 넣었는데, 제가 밥을 싹 먹고 그릇을 비워놓으니까 “자기 죽을 지도 모르고 밥은 다 먹었다” 고 밖에서 울며 야단이 났던 가 봅니다. 그런데 제가 나올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혼자는 못 나간다. 영산 부근에서 붙잡혀온 사람들이 다들 내가 아는 사람이고 우리 교도인데 절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같이 가야지 나 혼자 나가면 안 된다. 나 혼자 나가면 결국 다른 사람들이 자기 혼자만 살아왔다고 할 것 아니냐? 또 그 사람들이 사상적으로 죄가 있는 것을 어떻게 알 것이냐? 나 혼자서는 절대로 갈 수 없으니 나를 참으로 생각했다면 그 동지들을 살려 달라. 같이 가게 해 달라.” 그렇게 해서 제가 모두 데리고 나왔습니다. 8명인가 9명을 모두 데리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 분들이 저한테 오면 그때 그렇게 살아왔다고 인사를 깊이 합니다. 그때 저만 살아서 뛰어 나왔으면 저는 살았지만 그 사람들은 다 죽었을 겁니다. 같은 동지고 교도인데 꼭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그 형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 어째서 내 말을 듣고 그 사람들을 다 살려줬냐고 하니까 당신 얼굴 보니까 거짓말이 안 보이더라고 그랬습니다. 이게 명안상입니다. “절대 거짓말해서 남을 속일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죄인 같으면 그냥 갔지, 우리한테 그 말 안했을 것 아니냐, 당신 얼굴을 보니까 참 깨끗하고 밝고 명랑하더라. 그래서 저런 분들은 거짓이 없다. 그래서 당신 말에 감동해서 가라고 내 보낸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명안상을 말한 것입니다. 자랑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체험을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익산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가 교통위반을 해서 경찰들한테 걸립니다. 그러면 경찰들이 면허증 내놓으라고 벌금 내라고 그럽니다. 제가 “아, 여보시오. 내가 시간이 바빠서 빨리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 그러셨습니까? 그러면 알겠습니다. 이 다음에는 그러지 마시오.” 그럽니다. 택시기사가 나중에 그 경찰에게 어째서 그렇게 가라고 했냐고 물어봤답니다. 그러니까 “원불교 계신 어른들은 거짓말 안 해. 그리고 얼마나 기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말했겠냐? 그런 양반 명령을 듣지 않으면 우리는 죄 받을 것이다 ” 고 경찰들이 말하더랍니다. 이것이 명안상이고 일원상과 같은 얼굴을 가져야합니다. 일원상과 같은 얼굴이란 곧 둥글둥글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내 마음을 일원상과 같이 맑고 밝게 가지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죽을 죄를 지은 사람도 용서받을 길이 생기고 살 길이 열립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도운 것은 사람이 도운 것이 아니라 진리가 도운 것입니다. 진리가 사람에게 명해서 도와주라고 시키는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시키지는 않았지만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명안상입니다.
그 다음은 자안상(慈顔相)인데 어여쁠 자, 얼굴 안자, 얼굴이 자비가 다북찼다는 뜻 입니다. 초면에 봐도 정숙해 보이는 사람이 있고, 쌀쌀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의 사천왕같이 상을 찡그리고 웅크려서 쳐다보고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사천왕은 부처님 방해 못하게 도적놈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지만 일반 생활에 있어서 그러면 안됩니다. 자비로운 상을 가져야 합니다. 자비로운 상이란 것은 남을 지도해 주고 좋게 해 주려는 마음을 갖고 남에게 좋은 게 돌아가도록 염원을 많이 하는 마음이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자비로운 상이란 것은 모두들 그 사람에게 의지를 하고 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합니다. 이것도 하나의 체험담인데 한국 전쟁 때 제가 영산에서 고향으로 피난 갔었는데 가자마자 좌익들에게 붙잡혀갔습니다. 그래서 영광 불갑산 산속에서 20일간 살았는데 정월보름날 국군 8연대가 와서 대포로 공격을 했는데 산이 막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좌익들이 산골짜기마다 구덩이를 파고 숨어 살았습니다. 제가 그 속에 붙잡혀 갔지만 좌익으로 붙들려간 것이 아니라 원불교 전무출신이니까 우익으로 붙잡혀갔습니다. 그 곳에서는 밥을 먹으면 동네로 먹을 것을 도둑질하러 가야 합니다. 그러니 저는 밥을 절대 안 먹었습니다. 가마솥 바닥에 눌러 붙은 까만 밥을 물에 타서 마셨습니다. 그러니까 안 먹으면 도적질 가잔 말은 안합니다. 소 잡아다 먹고 야단납니다. 그러나 고기한점 먹을 수 없고 안 먹습니다. 가끔 이 사람들이 와서 저한테 뭔가를 물어봅니다. 제가 무언가 아는 사람으로 보이나 봅니다. 나중에 북한에서 내려온 몇 천 명, 몇 만 명이 모여서 인민 회의를 하니까 거기에서 저보고 무슨 말 좀 해 달라고 그랬습니다. 제가 원불교 전무출신으로 우익이라는 것을 그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 말이 악질은 아니다. 소작가지고 남을 부려먹을 사람은 아니다하고 이래 가지고 저를 좋게 본겁니다. 그 사람들 말이 얼굴을 봐라, 저 얼굴로 남을 도적질해 먹겠냐? 그러니까 저 사람한테 말 한번 시켜보자 하고 좌익계통에서 공사를 해 가지고 말을 시킨 겁니다. 좌익들이 이웃마을에 식량을 훔치러 갔다가 원불교 교도만 사는 동네에 가서 원광지의 전신인 회보를 모두 가져왔습니다. 저한테 회보를 보이고서 좋은 말을 해달라고해서 회보에서 좋은 말은 다 빼가지고 한권의 연설제목을 만들었습니다. 때는 이 때다 하고 좌익사상을 때려 부수는 사상을 말했습니다. 좌익을 실제로 때려 부수란 말은 아니지만 은근히 이래서는 안 된다 해서 도덕정신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써 가지고 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고 유창하게 말했더니 그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기립박수가 치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서 산 밖에는 제가 좌익두목이 됐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며칠 안 지나서 북한 김일성으로부터 저에게 소환장이 왔습니다. 정신이 좋고 말 잘하니까 북한에 가면 황 장엽씨 보다 더 높이 됐을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거기 갈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데 억지로 묘향산까지 끌려갔습니다. 산줄기만 타고 묘향산까지 가서는 제가 핑계를 잘 대고 여러 가지 말로 설득을 했습니다. 내가 안 간다는 것이 아니라 가는데 내년 봄에 가겠다고 연기를 시켰습니다. 연기시켜 놓았는데 앞에서 말한 불갑산 작전이 났습니다. 작전이 나서 사방에서 아우성치는데 누군가 “김 근수를 따라 가야 산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고향에 돌아와서 그렇게 말한 고향사람에게 물었더니 어쩐지 자네를 따라가면 살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랍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자네 따라간 사람은 다 안 죽고 살았지 않느냐고 그러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고 그랬냐고 물으니까 “너는 사기(邪氣)가 없어. 얼굴에 사기가 없어. 남을 해치고자 하는 사기가 없어. 누구든지 다 받아주고 감싸주는 얼굴이지.”라고 그랬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제 말만 해서 미안한대, 제가 상을 내서 후생에 난쟁이가 되겠습니다. 제가 제 얼굴을 보니까 깡패 같은 얼굴은 아닙니다. 사람은 인상을 좋게 해야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쪼글쪼글하지만 젊어서는 상당히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자인상입니다. 일원상을 닮은 거란 뜻입니다. 그래서 작전 후에 제일 처음으로 제가 지서로 잡혀 들어갔습니다. 지서로 들어갔는데 지서가 어떻게 생겼느냐하면 밖에 굴을 파고 그 안에 대울타리로 막고 그 안에 쇠 담장을 쌓고 또 그 다음에 대울타리 막고 그 다음에 구덩이 파고 그 다음에 쇠담장을 막아서 이렇게 꼬불꼬불하게 들어가야 정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커다란 대포를 산속에 향해 놨습니다. 좌익을 공격할 목적으로 그렇게 설치했습니다. 거기는 도살장에 들어가는 것 같이 기분이 안 좋습니다. 저는 그 당시 영산에서 원불교 지부장, 요즘 같으면 회장이죠, 회장겸 외교겸 서무를 했으니까 내가 말을 안 해도 이 사람들이 다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아무 소리 안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지서사람들이 김 근수 왔다, 두목 왔다고 그럽니다. 영창 들어갔더니 제일 까다롭게 생긴 이순경이 “이러구 저러구 했다면서? 농림위원장 했다면서? 저녁마다 소 가져오라고 도적질시켰다면서?” 이러는데 제가 어이가 없어서 누가 그러더냐고 하니까 옆에 사람 있다고 해서 오라고 했더니 생전 꿈에도 안 본 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놈아, 죽으려면 너 혼자 죽지 왜 남을 걸고 죽으려고 해, 이 미친 자식아!” 그랬더니 저도 모르게 혼이 나가버려서는 “아니예요 이 사람 아니예요. 이 양반 아니라고.” “아 이놈아 너가 맞다고 안 그랬어?” “아니예요 그 분 아니예요. 딴 분이예요. 그 분은 좋다고 소문난 양반이예요. 그 분은 아무것도 않고 가만있었어요. 밥도 안 먹고 밥도 안 줬어요.” 이랬습니다. 산에서 제가 발표한 것만 소문이 나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문이 원수예요, 말 한번 한 것이 원수란 말입니다. 저는 원불교 법을 말한 것인데 저더러 죽어야 한답니다. 본 보기로 죽어야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 말을 들어도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겁이 난다거나 살고 싶다거나 그런 게 없이 담담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나를 꼭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냐?” 하니까 “그걸 몰라? 보면 몰라?” 그랬는데 손을 앞으로 이렇게만 해 놓으면 살려주는데, 뒤로 젖히면 죽인다는 뜻이라더군요. 그래서 아, 그런가보다 그랬죠. 그래서 “내가 소원이 있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 유언이라는 것이 있지 않느냐? 내가 여기 올 때 하루속히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기를 먼저 왔다. 사실 내가 부모님을 뵙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느냐? 첫째, 부모님을 뵙게 해 달라. 이 근처 얼마 안 되니까 소식해 달라. 두 번째는, 내가 원불교 교역자다. 전무출신이니까 여기 신흥리에 교당이 있으니까 김홍철 선생에게 연락해서 내가 오늘 여기 와서 죽는다고 금생에는 이렇게 가지만 후생에는 다시 전무출신 잘하겠다고 한다고 그 말을 전해 달라. 세 번째는, 내가 죽은 뒤에라도 내 필적으로 세상에 남길 말이 있다. 그러니까 먹하고 벼루하고 백지를 하나 갖다 달라.” 그랬더니 “말해주면 써주겠다” 그래서, “그렇게는 안 된다. 내 자필로 써야 한다. 깨끗한 붓, 깨끗한 벼루, 먹에다가 하얀 백지하나 가져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순경이 잔소리 말고 다 포기하라고 해서 내가 정신차리고 “미친놈들아 사람이 사람다운 말을 해야지, 그러는 거 아니다”고 크게 화를 냈더니 그 사람들이 움찔했습니다. “네 번째는, 사람은 죽이되 죄 없는 사람은 죽이지 마라.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 천벌을 받는 것이다. 큰일 나는 것이다. 너희들이 죄 없이 나 죽인다는 말이 아니라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은 죽이면 안 된다. 무기란 것은 죄인에 대해 하나의 법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지 아무나 죽이란 법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알아라.” 그 말이 막 떨어지니까 내 동생, 청산이가 형이 지서에 있다는 말을 듣고 와서 발로 문을 탁 차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들어와서 저를 죽이려고 작정한 그 사람들 손을 잡아서 유도로 땅에 내동댕이쳐 버리니까 혼이 났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하는 말이 “우리 형님이 무슨 죄가 있냐? 죄가 없다. 니놈들이 살겠다고 부산까지 도망간 것 아니야? 우리 형은 영산에서 전무출신으로 있다가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 내려왔다가 붙잡히는 바람에 거기서 좌익들을 타일러 주고 안정시키고 한다고 그랬는데 그게 무슨 죄가 있냐?” 그러니까 그 때에 “그럼 너가 형 대신으로 죽겠냐?” 그러니까 동생 말이 “내가 형 대신으로 죽는다. 꼭 너희들이 사람 못 죽여서 환장했으면 형 대신 내가 죽는다. 그러나 형이 죄 있는 형이 되어서 죽을 수는 없다. 우리 형은 죄가 없기 때문에 대표로 죽는 것이다. 이왕이면 나보다 형이 살아야 한다. 꼭 죽이려면 우리 형은 살리고 나를 죽여라. 그 대신 두 번 말하지만 우리 형은 죄가 없다. 죄인의 대표로 죽을 수는 없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탁 떨어지니까 기관총을 쏘는 방아쇠가 우르르 들리는 겁니다. 그때 신기한 꼴을 봤습니다. 앞에 있는 기관총이 우르르 하니까 여기저기서 담이 무너졌습니다. 담장이 무너지니까 이 사람들이 저를 죽일 생각은 안하고, 그 기관총이 없어지면 큰일 나니까 구국청년위원들 모아가지고 괴어 올리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리고 면장이 쫓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세상에 근수가 죽으면 천도가 없는 세상이다. 그 사람이 무슨 죄가 있냐?” 영광 경찰서 본서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나를 죽이려고 했던 형사들을 몽둥이로 때리고 나를 풀어주면서 하는 소리가 “김 근수씨는 하늘에서 내린 분입니다. 당신을 죽여 놓으면 우리가 다 죽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생을 잘 두었소. 나도 당신 동생과 같은 동생이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소. 하늘이 내린 분들이지 인간세계의 분들이 아닙니다. 세상에 이런 일은 우리가 경찰을 오래 했지만 이런 꼴은 처음입니다. 이제 살기가 무섭습니다. 하늘이 무섭고 천지가 무섭고 겁이 납니다.” 이러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 집에 사죄하러 왔습니다. 그 소문이 쫙 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네 좌익이 하나도 안 죽었습니다. 하나도 못 죽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한창 영산에서 좌선하고 공부할 때입니다. 그때 자안상이 깃들어서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만 해두죠. 비유해서 말한 겁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하고 공부를 해야 그렇게 됩니다. 저도 의심스러웠는데 나중에 정산종사님이 그건 자안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적들이 함부로 못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