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2월 무작정 9월 7일 크로아티아행 비행기를 발권해 두고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길 고대하고 있던 나는, 막상 출국 당일이 되자 미쳐 챙기지 못한 짐들과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던 업무와 너무 빨리 끊겨버린 회사 앞 정거장의 공항리무진 버스로 인해 이대로 비행기를 타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몇 번의 행운은 나를 23:55인천발 이스탄불행 터키항공에 무사히 데려다 주었고, 비행기의 이륙과 동시에 모든 일련의 소란으로부터 비로소 자유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 간밤의 비행은 옆 좌석의 Moldova 청년 바씰리아(Vasile)의 지칠 줄 모르던 수다와 그의 코고는 소리와 그의 목에 걸린 채 볼륨이 최대로 높혀진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요상한 터키 음악에 괴롭긴 했지만 승무원의 친절한 손길에 전해 받은 와인에 의지하여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바씰리아는 한국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그의 DSLR을 꺼내 사진을 보여 줬는데 전문가급의 커다란 카메라가 무색할 정도로 특별할 것도 없고 아무런 감흥도 테크닉도 없는 Moldova 아저씨들의 인물 사진이었다. 나는 몇 장 보여주고 카메라를 끄겠구나 싶은 마음에 열심히 보는 척을 하고 있었으나 920여장의 사진 중 180번째 사진을 보았을 때 ‘아, 이대로라면 그가 모든 사진을 보여 주려고 하는 걸지도 모르겠어’라는 불현듯한 공포에 그에게 약간의 짜증을 내며 잠이 들었다. 어쩌면 헤드셋의 요상한 터키 음악은 그의 소심한 복수일지도 모르겠다. # 만일 당신에게 이스탄불에서의 이른 아침, 두 시간 남짓의 산책이 주어진다면 다음 두 가지의 선택에서 고민할 만 하다. 첫 번째 선택은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 사이를 흐르는 보스프러스 해협에서 이 도시의 활기를 느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이아소피아와 블루모스크가 있는 술탄아흐멧 지구에서 정적인 산책을 즐기는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도 좀처럼 마음을 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건 아무래도 ‘Silence’ 였다. 공항에 Metro가 바로 있어서 시내로 가는 여정은 아주 편리했다. 새벽 6시, 아직 덜 데워진 공기와 안개 사이로 지나던 트램 속에서 터키사람들의 숱한 시선을 받으며 술탄아흐멧으로 간다. 6년 만의 이스탄불, 사부작 사부작 발길 가는 대로 2시간 남짓의 거리 산책에 나섰다. 이른 아침 블루모스크의 고요함이 좋았고, 여전히 그대로이던 블루모스크 앞의 벤치들이 반가운 시간이었다. 블루모스크에서 만난 대만아저씨는 혼자 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는 혼자 여행 중이라는 아저씨가 신기했고 아저씨는 혼자 크로아티아를 간다는 이 아가씨가 신기했나 보다. 각자 이런저런 사연이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그가 조금 쓸쓸해 보였다. 그도 나를 보고 이런 느낌을 가졌을까? 본래 나는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거는 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 만은 "아저씨, 블루모스크 앞에 서 있는 아저씨 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묻고 싶었다. 아주 밝은 표정으로 아저씨는 나에게 카메라를 건네 주셨다 :) 국민성이라는 게 꼭 사람에게만 국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터키 고양이는 터키 사람만큼이나 다정하다.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고양이들. "이렇게 조금만 살랑거리면 얼마나 좋아?" 사람이든 동물이든 곁에서 살갑게 있어줘야 사랑도 받는 법인가? # 이스탄불에서 2시간의 비행으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시내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차창 밖에 펼쳐지는 낯선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몇 가지 간절한 생각에 빠졌다. 장거리 비행의 흔적을 말끔히 씻어 줄 hot shower, 빳빳한 린넨 시트 위에서의 달콤한 낮잠… 그리고 혼자 하는 이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지 약간의 염려와 떨림. 호텔 앞 도로를 따라 그래피티가 가득하다. 이 그림 속에도 제 2, 제 3의 Keith Harring 이 숨어있을까?
숙소에서 나와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막막했지만 공항에서 받은 Zagreb 지도에는 친절하게도Upper Town과 Lower Town 의 도보 여행 루트가 표기 되어있어 일단 Upper Town의 루트를 따라 걷기로 했다.
나는 지도를 잘 못 읽는 여자다. 더군다나 자그레브 같은 도시는 높은 빌딩이 없어서 길을 찾기가 더욱 어려웠지만 Upper Town 에서는 이 성당의 첨탑을 길잡이 삼아 길을 찾아 다녔다. 저녁 미사에 참석하며 잠깐 기도를 하고 나왔다. 나의 여행이 순탄하기를 빕니다. Upper Town에는 파스텔 톤의 이쁜 건물들과 노천 카페가 많았다. 내가 걸었던 저 거리는 독일의 로텐부르크보다 더 동화 같은 동네였다. 게다가 로텐부르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끌벅적한 생기까지 넘치고 있으니 이 도시가 맘에 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전쟁의 상처 따위는 이미 아주 오래된 이야기라서 기억조차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생기로 가득한 사랑스러운 거리가 계속되었다. 문제는 upper town 을 벗어나 lower town 에서 일어났다.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며 윈도우 쇼핑에 한참 빠져있을 때 특히 화이트톤의 로맨틱한 레스토랑의 창가에 진열된 샴페인을 바라보며 아마도 침을 꿀꺽 삼켰던 것 같다. 바로 그 때서야 비로소 성당의 첨탑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와 동시에 방향감각을 그대로 상실해 버린 것이었다. 불안이 엄습하던 순간이다. 도무지 지도를 봐도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이 위치는 알겠는데, 방향을 도무지 모르겠고 설상가상으로 지나는 사람도 없게 되었다. 어쩐지 지난 몇 시간 동안 너무 잘 찾아 다닌다 싶었다. 어둠이 점점 내리기 시작하고 마음은 조급해졌다. 여행의 설레임은 잊은 채 그냥 지도 하나 똑바로 보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빠른 걸음으로 걷길 한 시간, 어둠이 완전히 내릴 때 즈음 도착한 기차역. 누군가는 이 도시에 도착하고 또 누군가는 이 도시를 떠나는 장소. 길을 잃었지만 괜찮다. 수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해 왔음을, 그리고 이제 다시 출발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응원했다.
이국 하늘의 아름다운 노을, 멋진 밤이다. 나의 MP3에서 흘러나오던 Madeleine Peyroux의 To love you all over again. 그래, 나는 나의 일상을 다시금 사랑하기 위해 떠나 온거야. 자그레브 산책, 내 여행의 좋은 출발이었다.
# 플리트비체(Plitvice)는 자그레브와 자다르사이에 위치한 국립공원으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풍광으로 요정들이 살고 있다는 전설까지 가지고 있는 장소이다. 루트와 소요시간에 따라 여러 코스가 있었는데 내가 선택한 코스는 4~6시간이 소요되는 H코스였다. 당일치기로 방문하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코스로 셔틀버스를 타고 선착장으로 이동한 후 호수 반대편까지 배로 이동한 후 걸어 나오는 코스였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풍광에 매료되어 감탄하고 감사하고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 뿐이었다. 나는 트레킹코스를 걸으며 정확히 어떠한 초록이라고 묘사할 수 없는 수 많은 호수와 나무를 지나고 크고 작은 폭포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이 뿜어대는 작은 물방울들을 지나며 지구 저편 사무실의 비어있는 나의 책상을 상상했고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물이 얼마나 깨끗하고 투명한지 물을 찍어도 이게 물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특히 다리 위에서 투명한 강물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수초를 보니 신비로운 세계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물뱀에 대한 안 좋은 경험과 공포가 있어 감히 가까이는 갈 수가 없었다. 물뱀이 머리를 휘리릭 내밀 것 같고 수초가 물뱀처럼 생기기도 했고) # 사람들 속에서 여러모로 감정을 다치기도-소모하기도 했던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참 더디게 흘러갔던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이번 여행은 철저히 혼자이고 싶었던 여행이었다. 가족 단위가 주를 이루는 플리트비체 관광객들의 틈에서 때로는 외로움이 몰려왔지만 이번 여행은 혼자라서 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누군가와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스쳐지나 버릴 관광객들에게 나의 이 소중한 시간의 잠깐을 내어 주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걷고 보고 셔터를 누르고 땀을 흘리고 이 길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시원한 맥주를 한 캔 마시고 잠드는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 트레킹 초입에서 장기배낭 여행 중이던 에너지 가득한 은보라는 아이를 만났고, 중반에서는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자그레브에 왔던 나와 이름이 같은 언니도 만났다. 함께 다니며 풍경을 공유하고 감탄하다 보니 이 시간이 누군가와 함께여서 다행이라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다는 내 고집이 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지던지. 결국 위로의 시간도 치유의 과정도 타인이라는 존재 없이는 완벽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의 계기라는 것은 우연히 인터넷을 떠돌다가 본 한 장의 사진으로 충분한 것 같다.
7년 전에 우연히 본 카파도키아 사진 한 장은 6년 전의 터키 여행의 계기가 되었고 3년 전 유랑 카페에서 본 윗 사진과 같은 구도의 플리트비체 사진은 크로아티아 여행에 대한 꿈을 가져다 주었다. 그 사진을 계기로 난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두브로브닉이라는 매력적인 도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날이 뜨겁긴 했지만 계속 걷다 보면 이 풍경을 만난다는 사실에 설레였다. 트레킹 거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워, 이 장면. 늘 동경해 온 풍경. # 13시45분 두브로브닉으로 가는 Coatia Airlines
어느 도시들 보다도 두브로브닉만은 하늘 위에서 내려보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통로석이었다. 장거리 비행에서는 통로석이 여러모로 편하지만 짧은 비행에서는 창 밖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창가석이 좋다. 더군다나 비행기의 목적지가 색깔이 확실한 도시라면 창가석에서 내려다 보는 모습은 여행 중에는 경험할 수 없는 풍경을 보여 준다. 한 시간 후 나는 두브로브닉에 도착했다. 맑은 하늘에 그야말로 말 그대로 구름 한 점. 비행기에서 내려 나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능한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메모 하지 않은 것들은 벌써 까마득히 잊어 버렸다. 추억을 점점 잃어 버리고 있는 이 시간이 아쉽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가 매일 같이 두브로브닉에서 걸었던 거리와 총 5번의 비행에서 내 자리와 옆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금이라도 소중한 날들의 기억을 붙잡고자 기억을 연습한다. 숲과 붉은 지붕 그리고 올 곧게 높이 자라난 사이프러스나무. 공항버스를 타고 올드타운으로 가는 구불구불한 그 길을 지나며 이곳이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과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착각에 모순이 있다면 내가 토스카나 지방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모른다는거다. 한참을 꾸불한 숲길을 달리니 어느 새 창 왼쪽으로 바다가 드넓게 펼쳐졌다. 드디어 두브로브닉에 왔구나 하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꺄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난 소심한 나홀로 여행족이었다. 아주 가끔은 미친 듯이 대범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는 소심한 상태이다. # 며칠이나 머물지 확실히 결정을 안하고 간 상태라 숙소 문제 또한 완전이 해결이 안된 상태로 두브로브닉에 가게 되었었다. 우여곡절 끝에 현지인의 소개로 1박을 할 숙소 주인아저씨와 통화를 하게 되었고, 아저씨가 Pick up을 나오셨다. 이름이 Milo 였는데 Dubrovnik에서는 "Lazy Tourist" 가 되어야 한다며 아저씨랑 대낯부터 술판을 벌렸더랬다. 술은 역시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마셔야 나른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법이다.
학생 때 나의 여행은 그야 말로 최소비용으로 최대효용을 뽑기 위한 여행이었다. 예를 들면 도미토리, 야간 이동, 패스트푸드, 타이트한 일정 같은 것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마도 경제력을 가진 후일 것이다. 여행의 주체가 여행지에서 나로 전환되며 모든 활동에는 '이것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라는 검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 아침 7시 스르지산 등산을 위해 출발.
스르지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등산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Z" 모양의 지그재그 길의 연속이었는데 약간의 경사를 가진 자갈길이었다. 우리나라 산 등산과 비교하자면 스르지산은 그야말로 트레킹 정도의 코스다. 스르지산 등반의 묘미는 오르면 오를 수록 올드타운이 내 눈 앞에 펼쳐진다는 것이다. 두브로브닉에서 올드타운을 걷는 건 내 하루 일과의 일부였다. 특히 브라운아이즈의 "Blow my mind" 를 듣고 걷노라면 이 길의 끝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내 마음을 그대로 노래하던 가사.
꼬마야, 너는 티셔츠에 저 모든 새들의 털색을 담았구나. 선착장 근처 벤치에 앉아서 바다도 바라보고 마을도 바라보며 책을 읽던 시간들. 숙소 근처 해변에서 책도 읽고 수영하고 맥주 마시고 한숨 자다가 일어나서 수영 하는 게 오후 2시부터 5시까지의 일과였다. 나는 아마도 평생 뽀얀 얼굴로는 살아보지 못할 것 같은 게 뜨겁다 못해 따갑기만한 햇살 아래에선 기분까지도 좋아진다. 그렇다면 썬크림이라도 잘 바르고 다녀야 하는데 늘 까먹는 편이다. 어차피 금방 하얘질텐데 까만 피부로 몇 주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 해변의 좋은 점은 저녁 식사 후에는 어김 없이 늘 똑같은 벤치에 앉아서 노래 들으며 까뮈 읽기. 레몬맛 맥주와 Salty 한 피자, 책을 읽으며 바라보는 야외레스토랑과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 10시 이후 급격히 쌀쌀해지던 날씨, 그리고 나른한 발걸음으로 향하던 숙소. 이런 저녁 일과의 기억의 조각. 여행, 순간을 음미하라는(Savour the moment) 말처럼 나는 여행의 매 순간을 음미하려고 노력하는 여행자다. 여행에서의 피로도 황당한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 추억이 되는 법이라는 것을 몇 번의 여행으로부터 알게 되었다. 여행에 있어서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특별한 순간이란 분명 존재한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장소가 될 수도 있고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어느 날인가 올드타운을 걷다 막 떠나려고 채비를 하던 페리가 한 대 보였다. Lokrum이라는 섬에 간다는데 페리가 승객으로 가득했다. 올드타운 선착장에서 배로 15분 떨어진 Lokrum 섬은 숲 속 올리브나무 아래 썬배드에 누워 진정한 삼림욕을 즐길 수 있고 다양한 형태의 해변이 있으며 섬 곳곳에 뛰어 노는 공작새들로 유명한 섬이다. 특히 공작새들은 어찌나 호기심이 많은지 내 타월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다 뭐라도 먹으려고 하면 가까이 다가와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곤 했다. 그 시선에 나는 빵과 과자 부스러기들을 모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SIPAN 섬에 가기 위해서는 올드타운에서 4정거장 떨어진 Ferry Terminal에 가야 한다. Ferry Terminal에는 두브로브닉 인근 섬에서부터 대형 크루즈선을 비롯하여 이탈리아로 가는 배까지 다양한 배들이 들어온다.
두브로브닉을 떠나 Sipan 에 도착하기 까지 1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이 섬은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고요하고 평화로운 섬. 노년을 보낸다면 이런 곳에서 보내고 싶다.
섬의 왼편으로 10여분을 걸어가면 작은 모래해변이 있었는데 여기가 천국인가 착각이 들 정도의 평온함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썬배드 조차 10개 남짓이고 태닝하던 사람 그 누구도 소리 높여 떠들지 않던 곳. 가끔 수영하던 사람의 물 젓는 소리만 들려왔다.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저녁 약속은 매력적인 사건이다. 같은 항공기를 타고 크로아티아에 들어온 언니와 그 언니가 Hvar 섬에서 만난 언니, 그렇게 세 여자가 두브로브닉에서 만났다. 서른 다섯, 서른 넷, 서른의 휴가. 여행과 연애, 직업과 결혼에 대한 수다로 그날의 저녁식사는 즐거웠고 풍요로웠다. 왜 한국 여자들은 혼자 여행을 하는가? 답은 업다. 오로지 세 가지 각기 다른 사연만 존재할 뿐. 올드타운 바닷가에서 책을 읽고 집으로 가던 길 열린 문 사이로 시끌벅적한 사람들 소리와 음악 소리가 흘러 나왔다. 25쿠나(환화 6,000원 정도)를 내고 와인잔을 사면 현지 와인을 마음 껏 시음할 수 있고 직접 구매도 할 수 있는 행사라고 한다. 게다가 와인잔도 기념품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이쁜 잔이었다. 시음을 하면서 많은 관광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동유럽 여자친구를 따라 유럽 여행 중이신 뉴요커 아저씨와 P&G에 근무하는 두 명의 영국인, 출장 중이던 칠레 의사… 다양한 국적만큼이나 두보르브닉에 머무는 다양한 이유들… 두브로브닉의 와인은 Plavac 이라는 현지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졌고 특유의 스파이시한 향을 가지고 있었다. 달콤한 와인에서 나는 그 향이 낯설고 불편해 몰래 하수구에 쏟아버렸지만 드라이하고 알코올과 탄닌이 높은 와인에서는 그 향이 적절히 어울려 결국 두 병을 사 들고 왔다.
두브로브닉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몇 가지 인상적인 풍경들이 있다. 빨간 지붕과 깊은 푸른색 바다, 눈부시게 빛나던 태양과 푸르던 하늘, 그 모두가 바로 두브로브닉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성벽투어(City Wall Tour)에서 만난 장면들이다. 커피회사 광고 속의 고현정처럼 올드타운을 내려다보며 커피 한잔과 함께 풍경을 감상하겠다는 나의 소박한 계획을 실천해 보고 싶었지만 9월의 두브로브닉은 너무도 뜨거웠다. 두브로브닉에 도착한 이래로 성벽투어 이야기를 하면 현지인이건 여행객이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나탈리, 성벽투어를 하려거든 8시나 9시에 가. 해가 중천에 뜨면 너무 뜨거워서 걸을 수 없을걸? 그리고 썬크림, 물, 수건 꼭 챙겨가.” 충고도 깊이 새겨 듣고 준비물도 챙겼지만 전날 저녁 몇 잔의 와인에 취한 채 늦잠을 자고 일어나 정오가 되어서야 성벽에 올랐다. 햇볕을 좋아하니 난 너희들과 달리 괜찮을 거라고 우쭐한 기분으로 출발했지만 성벽투어를 시작하는 계단을 오르자 마자 깨달았다. 아뿔싸! 땀이 나는 수준을 넘어 몸 속의 모든 수분이 순식간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태양이 머리 위를 내리 쬐고 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태양이 발 아래까지 가득히 내려온 그런 더위 때문에 발걸음이 무겁긴 했지만 붉은 지붕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에 이내 매료되어 버렸다. # 이런 집들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왜 우리나라는 늘 허물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걸까? 그렇다고 깜짝 놀랄 만큼 멋지고 혁신적인 디자인의 집을 다시 짓는 것도 아니면서… 미적으로 아무런 매력 없이 보이는 아파트라면 대신 수명이라도 한 오백년은 가줘야 하는 게 아닐까? 미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그 의미가 없는 것 같아. 테라스가 있는 집, 아마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햇살 좋은 날이면 음악을 들으며 이곳에서 책도 읽고 주말이면 브런치를 만들어 식사도 하고 햇볕에 빨래를 보송보송 말리고 예쁜 꽃 화분을 키울 수 있는 곳. 누구에게나 엽서 사진 몇 장쯤은 허락해 주는 친절한 풍경들. 매일 걷던 거리를 내려다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 이 모든 광경을 혼자 누린다는 건 늘 조금 쓸쓸하고 허전한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 감탄의 말을 쏟아 내도 누구 하나 맞장구 쳐 줄 사람이 없었다. 모든 말들은 입 안에서 맴돌고 있을 뿐. 나는 누구라도 혼자 온 여행객이 보이면 얼른 말을 건낼 요량으로 걷고 있었다. 이 모든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왜 이 먼 곳까지 홀로 여행을 떠나 왔는지, 올드타운에서 발견한 근사한 레스토랑의 추천 메뉴는 무엇인지, 근처에서 발견한 작고 조용한 해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나의 투어 시작부터 끝까지 나 홀로 관광객은 오롯이 나뿐이었다. # 돌 사이를 비집고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그 강인한 생명력이 너무 기특한 나머지 토닥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식물들은 나보다 더 생을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맑고 투명한 크로아티아 블루 저편에 내가 머물던 집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고작 며칠 묶었던 게 전부였던 숙소일 뿐인데 탁자 위에 시계를 놓고 노트와 책을 꺼내 두고 내 옷을 걸어두니 그 곳이 나의 집같이 느껴졌다. 중요한 건 그 집 안에 무엇이 있느냐였다. 내 소지품들을 점점 많이 늘어 놓을수록 나의 장소 같은 편안함이 생겨났다. 예전에 호주에서 만난 한 장기 배낭여행객은 도미토리 안의 자신의 침대 맡에 항상 작은 액자를 놓아 두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현재의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두브로브닉에서 좋아했던 풍경 중에 하나는 바로 빨래였다. 빨래를 너는 것에 관해 암묵적인 규칙이라도 있는 건지 색감도 널어져 있던 모양새도 참 좋았다. 나의 옷장 안의 검정-그레이-네이비 무채색의 옷들과는 사뭇 다른 고운 색의 옷들이 햇볕 아래 마르고 있었다.
꽃이 질 무렵의 나의 두브로브닉 여행.
다음 여행은 꽃이 필 무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꽃이 지는 모습에선 그 아름다움만큼의 처절함이 느껴지니까. 성벽 투어가 거의 끝날 무렵 벌겋게 익어 버린 내 모습에 얼른 내려가 집에 가서 샤워하고 나와야겠다는 마음과 언제 또 이 풍경을 볼 수 있겠냐며 천천히 다시 돌아보자는 마음이 갈등 중이었으나 결국 내려왔다. 몸이 힘든 건 괜찮지만 이 모든 외로움을 또 다시 겪어야 한다는 생각이 부담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후회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면 해가 질 무렵 성벽투어를 한 번 더 하지 않은 것이었다. 올드타운의 불빛과 활기로 가득한 플라차거리, 그리고 아드리아해의 밤 바다. 그것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Timeless Montenegro 몇 번의 국경을 지나 몬테네그로에 도착했다. 때로는 보스니아 국경이라 했고 때로는 크로아티아 국경이라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고 총 몇 번의 검문소를 지나친지 모르겠다. 중간에 잠시 들렸던 휴게소에는 각각 크로아티아 쿠나, 몬테네그로의 유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의 마르크로 가격이 적혀 있었다. 복잡한 지형만큼 지갑 속에 동전의 종류가 늘어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사람의 손이 닿은 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는 듯 마냥 푸르게 우거진 숲들이 펼쳐지고 있었지만 차가 출발하면 이내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그 풍경들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그는 혼자 여행 중이라고 하는 나를 반가워하며 “완벽한 여행이란 원래 혼자일 때 가능한 거야. 누군가와 함께 할 때는 챙기느라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없어.”라며 나의 여행을 응원하였으나, 정작 속으로는 동행인을 챙기는 것조차 행복한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자는 결심을 했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내일은 더 너그러워지자.
그는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였다. 그는 나에게 어떤 작가가 훌륭한 작가냐고 물었고 잘 모르겠지만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작가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때 나를 사로잡은 한 단어, Timeless. 훌륭한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그리고 Timeless 해야 한다고 그가 말했다. 서른 평생을 살며 대화 속에서 남자와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던가?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이 노신사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던 이 대화가 무척이나 즐거웠다. 두브로브닉에 도착하자 함께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셨지만 솔직히 용기가 부족하기도 했고, 아까부터 옆 좌석의 영국인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야릇한 눈빛에 재빨리 이 차에서 내려 내 갈 길 가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Chao, Dubrovnik!
Sarajevo, 전쟁의 상처를 치유 중인 도시
종교가 무엇이든 간에 세상의 모든 기도에서는 타인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출처 :<싱글즈>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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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인전문 와이빌어학원 원문보기 글쓴이: 와이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