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학화 호도과자
허경택(상지영서대학 관광조리음료과 교수)
제가 지리산으로 유명한 산청에서 초등학교 다닐 적 일이었으니 60년대 초반이 아닌가 합니다. 저의 아버님은 중학교 교장이셨는데 가끔 외지로 기차를 타고 출장을 다녀오시곤 했습니다.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오시는 걸로 봐서 꽤 먼 길을 다녀오신 것 같았습니다. 아버님은 술을 전혀 못하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저희들이 먹는 모습이 좋으셔서 그러셨는지 출장을 다녀오실 때는 은박지에 포장한 상당히 크고 두터운 양갱을 뒤에 감추시고 눈을 감으라 하신 후 손에 쥐어 주시곤 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농사(논과 밭)도 많이 지어서 그 덕분에 고구마와 땅콩은 온 집안에 널려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땅콩은 껍질 채로 가마니에 담아서 대형 트럭에 한 차 가득 실어서 내 보낼 정도였으니까요.
양갱을 자주 사 오시던 아버님께서 더 먼 곳을 다녀오셨는지 어느 날은 편평한 상자에 담은 호두과자를 사 오셨습니다. 아, 그 호두과자 맛은 고구마와 땅콩을 간식으로 매일 보내는 저희 형제들에게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포장도 고급스러웠고 상당히 많은 양이 들어있는 ‘고급호도과자’였습니다.
어제 천안에서 하룻 밤을 자고 왔습니다. 마침 대구에서 커피학회 행사가 있어서 그곳 일정을 끝내고 고향(산청)에 가서 부모님의 산소에 성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어서 ‘뭔가 중간에 좋은 일이 없을까?’ 하고 궁리하다가 떠 오른 생각이 천안 고속버스 터미널 앞에서 카페와 커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카페도 카페지만 커피 아카데미를 어떻게 꾸렸는지 전부터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천안에서 1박을 하고 시간을 내어서 천안 광덕리가 고향인 동료교수로부터 자주 들었던 학화호도과자에 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하고 있는 호두과자가 아닌 40여년 전 어렸을 적에 먹었던 그 호두과자인 ‘학화호도과자’를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료교수가 자주 고향에 간다고 해서 그러면 말로만 고향 자랑하지 말고 ‘내가 누구냐, 내가 우리 대학 평생교육원의 제과제빵과정의 지도교수를 지난 98년부터 하고 있지 않느냐,‘ 하면서 윽박질러 보기도 했지만 그 곳이 광덕리에서 원주로 오는 길과는 좀 다른 방향이라고 하는 이유를 대면서 맛을 보여주지도 않아 좀 괘씸하기도 하던 차였습니다. 그 동료교수는 사실 대학의 후배이기도 해서 때로는 억지가 통하기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주차장에서 차를 빼면서 관리원에게 학화 호도과자를 갈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저기 있어요’,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게 아닙니까?. 가리키는 먼 곳을 봐도 보이지 않기에 다시 ‘어디요?’하고 물었더니 다시 ‘저기요’, 하길래 유심히 보니 바로 앞에 학화호도과자 본점이라고 큰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천안 능수버들 삼거리를 연상하면서 시골 길을 1시간 이상을 소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코 앞에 있다니 이건 정말로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사실 천안은 제가 처음 가 보는 곳이었기 때문에 중학교 다닐 때 지리 시간에 배운 천안 삼거리라는 시골 동네를 연상하고 그 가까이 있는 곳이겠거니 했는데 천안의 번화가인 종합터미널 가까운 곳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았읍니다. 주차 관리원 아저씨는 손을 내리시더니 여긴 일요일엔 영업을 하지 않으니 저기 소방서 옆에 또 하나 있으니 거길 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자동차로 3-4분 달리니 천안 소방서 못 미쳐 ’원조 할머니 학화 호도과자‘간판에 할머니 사진이 커다랗게 실려 있었습니다. 1층 건물 내부에는 기계가 두 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여느 식품회사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동네 아주머니들이 시간을 내어 와서 만드는 그런 느낌을 주는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3곳의 노즐에서 묽은 밀가루 반죽을 가스 불로 달구어져 있는 틀에 제각각 주입해서 한 바퀴 돌면 아주머니 한 분이 토막 낸 호두를 손으로 얹어주고 그 위를 6개의 노즐이 제각각 반죽을 주입해서 덮어주어 굽는 시스템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공정이었습니다. 아침 10시경이었는데 서,너 분이 갓 구운 호두과자를 포장하고 있었고 판매대에는 쉴새없이 사러 들어오는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저는 판매하시는 분에게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님이 사 다 주신 그 호두과자를 먹고 싶어서 왔노라고 하면서 제 소개를 하였더니 비닐 봉지에 들어있던 상자를 들어 내시고 저 쪽에 있는 다른 상자를 다시 넣어주셨습니다. 아마 갓 구운 것으로 바꿔주신게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설명서에는 호두가 천안광덕의 특산물인데 그것은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때 유청신이라는 분이 원나라에 왕을 따라 사신으로 가서 씨앗과 묘목을 가져와서 그의 고향인 그 곳에 심었다는 것과 심복순 할머니의 남편인 제과 기술자 조귀금 선생이 1934년 창업한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70여년의 전통을 가진 학화호도과자는 국내에서 손 꼽을 수 있는 제과분야의 노포(老鋪)로서 존경을 받아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학화호도과자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판매되고 있는 호두과자와는 달리 호두 껍질의 굴곡진 모습이 더 선명하게 디자인 되어 있었고 안에는 부드러운 흰 팥앙금이 미각을 돋구어 주었습니다.
나는 조금 전 광덕리가 고향인 그 교수님을 포함한 몇 분의 동료들에게 오늘 오후 내가 며칠 전 볶은 커피와 더불어 그 맛을 음미해 보자고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 오후가 기다려집니다.
(예술이 흐르는 강, 200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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