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선 개인전, 금강산과 백두산-환원된 본질
‘투명한 본질시각을 향한 사모곡’
-김영재(미술사상가, 철학박사)
김용선의 세 번째 개인전은 존재와 표상, 이념과 본질에 대한 추구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큰 발자국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근본과 뿌리에 대한 갈증이 투명한 공간의 깊이로 화면을 장악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는 카타르시스 적인 소재와 표현기법에
대한 확신이 있다.
자신이 어릴 적 놀던 숲을 떠나 도시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답답함을 숲 속에서의 청량감으로 표현하고, 보는 사람에게 역시
청량감을 엿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이 김용선이 말하는 카타르시스의 의미이다. 그러고 보면 김용선의 화업은 화가로서의 성취와 함께
폭넓은 공감대를 함께 나누고 누린다는 공리적인 목적이 있다.
민족명산 민족정기
이번 전시의 압권은 분명 금강산과 백두산이다. 장엄한 산도 산이려니와 깊고 유현한 숲의 장관이 캔버스의 크기와 상관없이 거대한
스케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쌓아 올려서 두터워진 질감을 이번에는 뿌리까지 파고든다. 금강산과 백두산, 그리고 숲의 소재는
그렇게 김용선 회화의 분수령을 장식하고 있었다.
금강산은 민족의 명산이다. 금수강산에서도 빼어난 명산이요, 중국인들도 고려 땅에 태어나서 실컷 보고 싶다(願生高麗國
一見金剛山)고 영탄하게 만들었던 한국인의 자부심이었다. 김용선은 금강산을 읊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땅 냄새를 맡으며 장탄식을
뱉어본 사람만이 금강산을 말할 수 있다’ 는 그런 영산이 금강산이었다.
그 금강예찬의 뒤에는 어릴 적 화가가 되고 싶다는 초심, 혹은 초발심을 굳혔던 시절이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첫 시간, 삼월
하늘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그려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은 후 오늘까지 한 번도 화가에의 꿈과 현실을 저버린 일이 없다는 김용선의
사모곡이 있다. 계룡산 숲 속에서 노닐던 절대고독의 숨 막히는 드라마 속에서 그 숲을 그려야겠다고 다짐하던 마음의 숲이 있다.
그리고 금강찬가와 맞물려 겸재 정선이 그의 길을 밝혀 준다. 정선(鄭敾 1676-1759)은 당시 화단에서 중국의 명가화첩 혹은
개자원화보 등의 임모에서 신선산수와 도석인물을 익히고 답습하던 관행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하여 겸재는 조선의 풍경을 중국의
기법과 시각과 세계관으로 번안하는 대신 칠십 노구를 끌고 금강산을 찾는다. 그렇게 금강전도가 그려졌다.
한국적 공기원근법, 그 투명한 깊이
정선의 금강전도는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로 오르면서 본 듯한 시각으로 금강을 작은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이 땅의 주인이 이 땅의
명산을 그린다는 기개가 하늘을 찌르고, 수묵담채로 그렸으되 천변만화하는 금강의 본질을 꿰뚫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공기원근법의
완성이라는 성취가 돋보인다. 원래 공기원근법이란 공기와 빛의 작용에 따라 생기는 멀고 가까운 곳의 농도와 색채로 물체의 거리감을
표현하는 서구적인 원근법이다.
겸재의 금강전도(金剛全圖) 앞에 서면 금강이 발아래 펼쳐진다. 마치 하늘에 누군가가 있어 내려다보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그
누구는 한국인이 우러러 모시는 하느님, 하늘님, 조상님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정선의 공기원근법은 경건한 느낌이 있다. 하여
한국적인 공기원근법이라 했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김용선의 금강산 그림에서 새로운 매체, 새로운 기법,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부활한다. 정선의 수묵담채는
김용선의 유화로, 동양적인 준법은 페인팅 나이프에 의한 긁기로 나타난다. 김용선은 두터운 질감의 산과 숲을 그리면서, 대상과
소재를 어떻게 보느냐 고심하다가 겸재를 만났다. 그러나 김용선의 투명시각은 겸재의 투명시각과는 다르다. 정선의 금강전도가
상승기류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서 본 부감시각이라면, 김용선의 시각은 두터운 질감을 헤집고 캔버스 천까지 뚫으리라는 기개로 파고
들어가는 본질환원의 시각이다. 그런데도 성취에 있어서 두 작품은 같게 느껴진다.
본질을 향한 갈증
김용선이 본질환원의 경건한 길잡이로 삼는 또 하나의 작품인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는 비가 온 후에 젖은 인왕산의 바위를 그렸다.
금강전도는 금강산의 골산, 즉 개골산의 모습을 담았다. 봄 금강, 여름 봉래, 가을 풍악, 그리고 겨울 개골의 어떤 모습을
금강전도에 담았거나 간에 그것은 겨울 개골산을 닮았다. 인왕제색도는 비에 젖어 짙은 무채색의 수묵으로 그려 그 진면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경이 담겼다. 이 둘의 공통점은 뿌리요, 뼈요, 그리고 본질이다. 주변적인 것에 사로잡혀 본질을 흐리는 관성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길, 그것이 김용선을 감동케 한 실경이자 풍경이었다.
동양의 지혜와 만물의 섭리를 꿰뚫어보는 혜안, 처세의 최고 경지로 일컬어지는 것이 노자(老子 B.C. 6세기 경)의
도덕경이었다. 오색영인목맹(五色令人目盲)이라 했다. 현란한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는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예지를 시대정신에 비추어 실질적인 지침서로 집필한 것이 홍자성(洪自誠 중국 명대)의
채근담(採根譚)이었다.
채근담에는 “꾀꼬리 울고 꽃이 만발한 산과 계곡의 농염함에 현혹되지 말고 낙엽이 떨어지고 천지가 메말라있는 모습에서 천지의
진오(眞吾), 즉 참 모습을 보라”고 했다. 김용선이 자연과 풍광에서 찾는 정신세계는 언젠가 도달해야하는 자연, 그리고 외관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정신적 지주로서의 세계일 것이다.
그렇게 작품을 바라보면 김용선이 바라보는 골산(骨山)과 비에 젖은 묵산(墨山)은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바로 천지의
진면목, 다른 말로 하면 환원된 본질이다. 처음 개인전에서는 어릴 적 뛰놀던 계룡산(鷄龍山)의 현란한 단풍이 두터운 질감으로
그려졌다. 밑 작업의 위에 두 번 세 번 색을 입혀 나가면서 두께를 더하는 작업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짙은
색과 두꺼운 질감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러면서 동양화의 수묵담채와 같은 엷은 투명함의 성취에 눈을 돌렸다. 그 속에 있는 공기를
느끼려다보니 단풍보다는 여름의 녹음(綠陰), 눈 쌓인 겨울이 많이 그려졌다.
그렇게 차츰 차츰 쇠락한 자연의 모습에서 진오(眞吾)를 찾아 나가다가 이번 개인전에서는 투명한 공간을 확장하는 무채색 혹은
단일색조의 화면, 그리고 단속적인 나이프 터치에 의해 파고 들어가는 화면에서 많은 잎들이 겹치는 투명한 효과를 위해 긁어나간다.
김용선은 20년 이상 나이프로 작업하고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함께 흙 마당에서 나뭇가지나 대못 등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았던 시절부터의 습관이고,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프 작업이란 붓에 비교한다면 원체 형상을 만들 수 있는 우수한 기법은 아니다. 산을 보면서 산이 구성하는 전체
형상을 파악하려 해도 바위나 고목에 손과 마음과 눈이 사로잡힐 수 있다. 그렇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정작 보고자 하는 산을 놓칠
수 있다. 그림을 통해서 이미지의 박제 이상을 표현할 수 없을까, 그 아쉬움을 김용선은 마음속의 갈증이라 표현한다.
민족정기, 그 청량한 시야
그 갈증을 달래줄 수 있는 거시적인 시야, 그리고 거대한 스케일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리고 자신이 작업에서 보다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시각...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온 것이 금강산(金剛山)이요, 백두산(白頭山)이었다.
금강산은 김용선에게 한국인의 자부심, 땅 사랑과 나라사랑을 일깨워준 명산이었다. 금강산 온정각에서 시작하여 문필봉에서 비롯된 감동은 곳곳에 화가의 발길을 잡아두고, 감명이라는 이름으로 화폭에 자리 잡는다.
노루 친 막대 삼년을 우려 먹는다는 옛말처럼 청년 같은 열정과 감동으로 되풀이하게 될 이야기가 또 있다. 러시아의 자루비노
세관과 중국의 훈춘 세관을 거쳐 이도백하에 이르러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여정을 이야기하는 김용선의 식지 않는 감동은 일리어드,
오디세이아를 읊는 호머의 열정을 연상케 된다.
얼어붙은 폭포 사이로 우레처럼 쏟아지는 장백폭포의 물줄기를 끼고 두 시간 이상 걸려 80도가 넘는 계단을 올라가서야 볼 수 있는
곳이 천지였다. 설령차라는 궤도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 덜컹거리며 천 길 낭떠러지를 올라야 천문봉에 도달하게 된다. 눈만
내어놓고도 살을 에이는 추위 속에서 빼꼼이 볼 수 있었던 천지, 삼대가 덕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 기적 같은 행운에
이르면 그 감동은 표정으로, 그리고 그림을 통해서 전달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야기뿐이랴. 자작시로, 벽에 붙여놓은 사진으로, 그리고 그림 속에 배어든 짙은 감동으로 백두산은 김용선에게 왜 백두산과 천지가 한민족의 젖줄인가, 그리고 한국인의 민족정기인가를 일깨워준다.
투명시각의 진면목
백두산이 김용선에게 일깨워준 또 하나의 감동적인 장면은 자작나무 숲이었다. 자작나무 숲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는
찬탄에서부터 정비석(鄭飛石)의 [산정무한(山情無限)]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는 숲에서부터 평생 추구했던 마음 속의 숲의 테마가
오버랩 되어 만들어진 것이 김용선의 투명시각이었다.
정비석은 [산정무한]에서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자리를 삼가,
구중심처(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樹中公主)이던가!” 라고 썼다. 그것이 눈에 보이고 마음으로
감동하게 만드는 자작나무의 숲이었다면 김용선의 자작나무 숲은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무 뒤쪽의 공간과 깊이가
투명하게 펼쳐지는 그런 숲의 모습이었다.
김용선은 굳이 현장시각을 고집하지 아니한다. 김용선에서 중요한 것은 풍경의 진면목, 그리고 본질적인, 그리고 내면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산 전체를 보는 시각을 고수할 때 나무나 바위 등 사물의 기본적인 골격과 그것들의 얽힘을 통해서 산 속에서
살아가는 사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그는 믿는다.
그래서 김용선의 스케치는 캔버스 위에 그 기골이, 기개가, 뼈대의 형태로 올려 진다. 보는 사람이 스케치를 보면서 물감의 두께,
왼손으로 그린 그림의 비상한 시각, 나이프로 긁은 단속선, 캔버스 천까지 파고 들어가는 의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그
묘사의 정확성, 솜씨의 정치성, 그리고 마무리의 완벽성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형상 외의 형상, 현상을 초월한 본질추구의 의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갈증을 읽기 때문이다. 그렇게 형상은 단순화하고 색채는 짙어지고, 인상은 강력해졌다.
김용선의 나이프 그림을 보다 확실하게 보는 사람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나이프 터치로 덧칠하고 파고 들어간 금강과 백두의 풍광을 뒷받침하는 맑고 깔끔하게 밀어버린 하늘이다. 그렇게 원근과 투명한 느낌, 그리고 완성도가 높아졌다.
갈증이라 했다. 하루에도 열 두 시간 자신을 화폭 앞에 잡아놓는 그림의 마력 앞에서 기꺼이 자신을 바치련다는 사모곡의 주인공,
그 뒤편에 김용선이 있다. 세상에 존재한다는 몸짓에서부터 이미지의 미혹을 벗고 풍경을 통한 투명한 본질환원의 시각을 성취하므로
써 자신의 완성을 기원하는 김용선의 작품이 세상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김영재- 서울대학교 M.A,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 비치 대학원 M.F.A를 거쳐 동국대학교 Ph. D 학위를 취득했다.
미술이야기, 민화와 우리신화, 고려불화 등 8권의 저서를 펴냈다. 현재 평론 및 미술비디오 제작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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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약력
김용선 (Kim Yong Sun)
1952년 대전 生
197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서양화 전공)
개인전
2001년 1회 개인전 (관훈갤러리, 서울)
2005년 2회 개인전 (인사갤러리, 서울)
2009년 3회 개인전 (라메르갤러리, 서울)
초대전
1980년 개관기념 초대전 (성남문화원, 성남)
2009년 초대전 (우연갤러리, 대전)
단체전
서교전 (롯데미술관, 서울)
청운전 (운현궁미술관, 서울)
미상록회원전 (대전문화원 화랑, 대전)
MBC미술대전 (예술의 전당, 서울)
우정의 만남전 (대전문화원 화랑, 대전)
중앙미술대전 (호암미술관, 서울)
앙데팡당전 (덕수궁 화랑, 서울)
대한민국미술대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The Curist전 (우연갤러리, 대전)
한가람미술전 (강동교육청, 서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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