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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출장(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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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0 17:244 | 조회 : 0 |
감출장(藏)자는 지혜로운 신하(臣)가 온나라의 농사지은 곡식들을 풀(艸)로 잘 덮어서 갈무리하여 백성들이 굶주리지않고 춘궁기를 잘 넘기도록 지도 하였다는 글자이다 풀초자 아래에 감출장자가있고 또 감출장자안에는 신하신자가 감추어져있는것을 발견할수가 있다
풀초자가 있는것이나 없는것이나 모두가 감출장자이다
감춘다는것은 매우 중요한것이다 중국천하를 두번쩨로 통일하는데 성공하고 그나라를 300년이상을 지속시키게 한 창업주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은 희로애락(喜怒哀樂=기쁨과 성냄,슬픔과 즐거움)을 얼굴에 나타내지않는것으로 유명하다 삼국지에 유비(劉備)또한 그러하였다
사상감정을 표출하는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지만 큰일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심지(心志)가 강건(剛健)하여 좀처럼 그 속내를 얼굴에 들어내지않고 뜻을 이루기까지는 그 뜻을 가슴속에 깊이 감추어두는것이다
귀중한 보배를 들어내놓고 자랑하는것 또한 옳은일이 아니다 곧 남에게 빼앗길 장본이되는것이다 유다왕 히스기야는 적국사자(敵國使者)에게 자랑삼아 보인 왕실의 금은보화를 모두 빼앗긴것은 물론 나라를 멸망시킨 원인을 제공하였던것이아닌가?구약성경 열왕기 하20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왕하20:12그때에 발라단의 아들 바벨론왕 부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 13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것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것이 없으니라 14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말을 하였으며 어디서 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먼지방 바벨론에서 왔나이다 15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궁에 있는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內帑庫=왕궁에 살림사리의 모든것을 저장해둔 창고)에서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것이 없나이다
16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17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날까지 쌓아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것이요 18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중에서 사로 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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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육(藏六)=거북이의 별칭(別稱=별다른 이름) .
거북이
거북이는 여섯가지를 감추고있다 여섯가지는 무엇이며 어떻게 감추고 있단말인가?
머리 꼬리 양손 양발을 그 무겁고 두꺼운 겁데기속에 감추고있다
여섯가지를 감추었으니 그것이 솥뚜껑인지 아닌지?도무지 알수가 없어서 손으로 슬쩍만젔다가 갑자기 자라목이 쑥빠져나오면서 그냥 손구락하나를 짤라먹히고말았다 눈깜짝할사이에 일이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래서 생긴속담이 자라보고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것이다

2.장수유식(藏修游息)=학문을 전심일의(專心一意)로 닦는것을 말함. 즉 공부할때는 물론 놀때나 쉴때나 언제나 항상 학문을 닦는것을 마음에 두고 간직하면서 실천에 옮기는사람을 말한다 출전:禮記에 君子之於學也 藏焉 修焉 息焉 游焉
티벳의 문화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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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포탈라 궁전(포탈라궁)
세계에서 가장 높은 희말라야 산맥으로 둘러쌓인 티벳 고원, 포탈라 궁은 그 신비롭고 경건한 곳에 있다. 중국 티베트자치구의 주도 라사[拉薩(납살)] 북서쪽의 홍산(紅山) 위에 있는 마르포리(붉은언덕)라는 곳의 경사면을 따라 건설된 포탈라 궁.... 라사시의 근교인 포탈라에 위치하기 때문에 츠에[山頂(산정)] 포탈라궁전이라 통칭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지형적으로도 험난한 곳이기도 하지만 중국정부가 의도적으로 봉쇄정책을 편 탓에 21세기 들어 건설된 청장철도가 들어서기 전까지, 지구상에 가장 고립된 지역 중 하나였다.

포탈라라는 이름은 남인도에 있는, 관세음보살이 산다고 하는 보타락(補陀洛;Potalaka)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포탈라 궁은 관세음보살이 거처하는 곳이 되고, 그곳의 주지승은 관세음보살의 화신(化身)이 되는 것이다.
이 경이로운 사원을 7세기의 손첸 간포왕이 창설한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가 관음(觀音)의 화신으로 존경을 받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궁전은 포탈라라 불리게 되었다. 전설상에는 포탈라 궁전이 신이 만든 것으로 되어있지만, 최초의 포탈라 궁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의 포탈라궁은 제5대의 달라이라마인 로산 갸초가 1645년부터 건립하기 시작하여, 50여 년에 걸쳐 완공한 것이다. 이 대규모 공사를 위해 건설자재 상당부분은 붉은 언덕 뒷편의 땅을 파서 조달하였으며, 그렇게 생긴 대형 웅덩이는 후일 용왕지로 불리우는 인공연못으로 조성되었다.

1645년에 건설을 시작한 이 궁전은 3년 후인 1648년에 바깥쪽의 하얀색 건물인 白宮(백궁)이 완성되었으며, 안쪽의 紅宮(홍궁)은 1692년에야 완공되었다.
이곳에는 하얀벽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지붕외에도, 수백여개의 창문과 그 속에 수십여개의 대집회장, 예배당과 도서관 그리고 몇몇이 달라이 라마 미이라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건물은 원래의 목적을 상실한체, 오늘날에는 박물관으로 이용된다고 하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후 역대의 달라이라마의 왕궁으로서 티벳 종교·정치의 중심기구가 되었다. 사원은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성새(城塞)를 이루고 있으며 13층으로 되어 있고 길이가 400m나 된다. 궁전이면서 동시에 사원 구실을 했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
달라이 라마란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조계종이나 법화종의 총장과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라마교라고도 불리는 티베트 불교의 가장 대표적 종파인 켈루크파(黃帽派)의 수장(首長)인 법왕(法王)의 호칭이다.
이 칭호는 주로 중국·몽골·인도 등 외지사람들이 사용하고, 티베트인들 스스로는 걀와린포체(보석 같은 승리자) 또는 이신노르부(여의보주) 등으로 부르며 직접 달라이라마로 부르는 것을 피한다.
달라이라마의 명칭은 1578년 내몽골의 최고실력자 알탄칸이 당시 그곳을 방문한 황모파(황교) 제3대 종정 소남 걈초(1543∼1588)에게 부여한데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제1대와 제2대 최고지도자에게도 이 이름을 추증하였다.
이름의 뒷부분 '걈초'에 해당하는 몽골어가 '달라이'로서 '바다'를 뜻하고,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한다. 따라서 달라이 라마는 직역하면 바다와 같은 넓고 큰 도량을 가진 스승이 되겠지만, 우리나라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원효대사나 의상대사등이 받았던 칭호인 國師(국사)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제4대 달라이라마인 욘텐갸초(1589∼1616)는 알탄칸의 증손으로, 내몽골지방의 티베트불교화를 촉진시켰다. 제5대 로산갸초는 탁월한 지도자로서, 청해몽골(靑海蒙古) 구시칸의 협력을 얻어 구파불교 세력을 추방하여 티베트 전지역을 통일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642년 달라이라마 정권이 수립된 후, 티베트 국왕의 신분과 간덴 좌수(座首) 위에 올라앉는 황모파 법왕의 지위를 얻었다. 제5세 달라이 라마의 제자이자 섭정이던 상게 걈초(1653∼1705)는 달라이라마의 국가 원수로서의 정당성을 「문수리근본의궤경(文殊利根本儀軌經)」의 예언을 인용 증언하며, 티베트는 원래 관음보살의 교화의 땅으로 정해져 있고, 달라이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선언하였다.
제6대 찬얀갸초는 연애시를 쓰는 등 경건치 못하여 추방되었으며, 제7대 켈산갸초는 학덕 겸비의 고승으로 나르탄사판 티베트대장경 판각을 시작하였다. 그뒤 종주권 확립을 꾀하는 청나라 조정과 그 주재대신, 티베트인 귀족의 섭정, 종파 내외의 굳은 고집, 외국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서 국정이 불안정하게 됨으로써, 희생되어 일찍 죽는 달라이라마가 속출하였다.
제13대 툽텐갸초는 청나라·영국·러시아의 세력확장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면서도 티베트의 국권보존과 근대화에 부심하였다.

현재 중국에선 티벳의 분리독립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티벳의 분리독립운동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현재에는 14대 달라이 라마에 의해서 자치권을 인정받는 소극적인 독립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갸초(bstan hdsin rgya mtsho)
 2살 때 라마교 고승에 의해 티베트 수호신의 현신(現身)으로 발견되어 4살 때 수도 라싸로 옮겨졌다. 5살 때 달라이라마 13세가 사망함에 따라 티베트의 정치·사회·종교상 최고지도자인 달라이라마 14세로 선출되었다.
1950년 중국군이 티베트를 침공하자 마오쩌둥(모택동)·저우언라이(주은래)와 협상하기 위해 베이징을 넘나드는 등 현실적인 정치인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1959년 중국에 대항하는 티베트봉기를 중국정부가 유혈진압하자, 자신의 추종자 8만여 명을 이끌고 인도로 망명, 다람살라에서 티베트망명정부를 세웠다.
그는 그 후 티베트 고유문화 보존에 힘을 쏟는 한편, 티베트의 완전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들어 중국의 현실적 지배권을 인정하고, 외교·군사면을 제외한 자치권회복으로 독립운동 방향을 수정했다. 비폭력평화주의에 입각한 그의 독립운동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되어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95년 자신의 승계자이며 라마교 서열 제2위인 판첸라마에 게둔 초에키리마(당시 6세)를 지명하여 후계체제를 갖췄다. 그러자 중국정부는 그를 납치하여 베이징에 감금한 뒤 지아인카인 노르부(9세)를 판첸라마로 임명하는 등 탄압정책을 계속하였다.
그 후 티베트가 세계적인 인권·종교의 탄압지역으로 떠오르자, 중국정부는 1999년 이곳에 철도부설계획을 발표하고 티베트에 대한 봉쇄정책을 포기했음을 선언하고 2006년에 청장철도를 완공해 개통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개방정책에 불과하다. 중국의 봉쇄정책에서 개방정책으로 전환한 이유는 외래의 문화를 대량으로 유입시킴으로써,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시키려는 의도가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중국은 봉쇄정책으로 티벳의 독립운동을 탄압할 때에도, 대대적인 이주정책을 강행하여 티벳의 고유문화와 정서의 훼손을 유도한 봐 있다. 하지만 오랜동안의 고립생활과 종교적 신념으로 뭉친 그들의 문화가 좀처럼 약해지지 않자 이러한 개방정책을 표방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적 상징이지만, 정치적 지도자로써 역활을 동시에 수행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현재 달라이 라마 14세가 강경분리독립에서 현실적인 자치권획득 방향으로 선회한 것도 중국정부가 가진 폭력성과 고립주의적 성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 할 수 밖에 없는 강경 분리독립운동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정치적으로 타협가능한 자치권 획득운동으로 선회한 것은 어쩌면 지극히 생명을 사랑하는 궁극적인 인류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진다. 개인적으로도 그들의 자치권 인정 요구가 받아들여져,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티벳인들의 소박한 희망이 이루어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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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족(藏族)=중국의 티베트고원에 살고있는 민족의 이름 , 장족은 중국의 소수종족으로 100만명이상이 살고있으며 그 언어는 장어(藏語)를 쓰고있다
1731. 화려한중국의 장<藏>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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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중국의 다민족 |
조회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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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02/09 1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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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 장족(藏族)의 모습. [1]
1. 인구와 분포 중국의 56개 소수민족 인구는 1953년 3,352만명에서, 1964년에는 4천만명, 1982년에는 6,724만명이었으며, 1990년 제4차 인구조사 때에는 9,120만명이었다. 각 소수민족간의 인구수는 매우 차이가 크다. 1990년에 이르러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은 좡족(壯族)으로 1,500여만명이고, 인구가 가장 적은 민족은 뤄바족(珞巴族)으로 단지 2,300여명이었다. ① 인구 100만 이상인 소수민족 : 좡족(壯族, Zhuang), 회족(回族, Hui), 위글족(維吾爾族, Uighur), 카자흐족(哈薩克族, Kazakh, Hassake), 다이족(傣族, Dai), 이족(彝族, Yi), 묘족(苗族, Miao), 만족(滿族, Manchurian), 장족(藏族, Zang, Tibetian), 몽고족(蒙古族, Mongol), 투쟈족(土家族, Tujia), 부이족(布依族, Puyi), 조선족(朝鮮族, Korean), 둥족(侗族, Tong), 요족(瑤族, Yao), 바이족(白族, Bai), 하니족(哈尼族, Hani) 등 17개 민족이 있다. ② 인구 10만 이상 100만 이하인 소수민족 : 리족(黎族, Li), 리수족(傈僳族, Lisu), 서족(畲族, She), 라후족(拉祜族, Lahu), 와족(佤族, Wa), 수이족(水族, Shui), 둥샹족(東鄕族, Dong xiang), 나시족(納西族, Naxi), 시버족(錫伯族, Xibo), 토족(土族, Tu), 거로족(仡佬族, Gelao), 키르기스족(柯爾克孜族, Kirghiz), 다월족(達斡爾族, Dawor), 챵족(羌族, Qiang), 징퍼족(景頗族, Qingpo) 등 15개 민족이 있다. ③ 인구 5만 이상 10만 이하인 소수민족 : 무로족(仫佬族, Mulao), 싸라족(撒拉族, Sala), 모난족(毛南族, Maonan), 부랑족(布朗族, Pulang) 등 4개 민족이 있다. ④ 인구 1만 이상 5만 이하인 소수민족 : 다지크족(塔吉克族, Tadzhik), 푸미족(普米族, Pumi), 누족(怒族, Nu), 아창족(阿昌族, Achang), 에벵크족(鄂溫克族, Ounke) 지눠족(基諾族, Jinuo), 우즈베크족(烏孜別克族, Uzbek), 러시아족(俄羅斯族, Russia), 보안족(保安族, Baoan), 징족(京族, Jing), 더앙족(德昻族, Deyang), 위구족(裕固族, Yugu) 등 12개 민족이 있다. ⑤ 인구 1만 이하인 소수민족 : 고산족(高山族, Gaoshan), 다다르족(塔塔爾族, Tatar), 두룽족(獨龍族, Dulung), 오르죤족(鄂倫春族, Oulunchun), 먼바족(門巴族, Menpa), 뤄바족(珞巴族, Lepa), 허저족(赫哲族, Hezhe) 등 7개 민족이 있다. 이외에도 등인(僜人), 샬바인(夏爾巴人) 등과 같이 아직 그 민족성분이 식별되지 않은 인구가 약 70여만명 있다. 중국 소수민족의 지역분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분포지역이 광대하고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넓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비록 전국 인구의 1/10에도 못미치지만,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 매우 넓고 차지하고 있는 면적은 전국의 절반 이상이나 된다. 5개의 소수민족 자치구 외에도 대부분의 성(省) 시(市)에도 소수민족 자치주(自治州) 자치현(自治縣)이 있다. 소수민족이 가장 많은 성은 운남성(雲南省)으로 그곳에는 35개의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외에도 내몽고(內蒙古), 신강(新疆), 티벳(西藏), 광서(廣西), 영하(寧夏) 지역 및 흑룡강(黑龍江), 길림(吉林), 요녕(遼寧), 감숙(甘肅), 청해(靑海), 사천(四川), 운남(雲南), 귀주(貴州), 광동(廣東), 호남(湖南), 하북(河北), 호북(湖北), 복건(福建), 대만(臺灣), 해남(海南) 등의 성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둘째, 잡거(雜居)가 많고 집거(集居)가 적다. 90% 이상의 중국인구는 한족(漢族)이다. 각 소수민족 지역에는 모두 일정한 수의 한족이 살고 있으며, 비록 소수민족 자치지구라 할 지라도 대부분은 한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각 소수민족은 모두 자신들의 집거지역을 가지고 있는데, 비교적 큰 지역도 있고 약간 작은 지역도 있다. 몇몇 집거지역은 각 지역에 분산되어 있으며, 단지 부분적으로 집거하고 있는 지역도 있다. 그 나머지는 다른 민족들 사이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와 같이 잡거(雜居)가 많고 집거(集居)가 적어 각 민족이 뒤섞여 살고 있는 국면을 형성하였다. 예를 들면, 회족은 800여만명이 있는데 영하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에 집거하고 있는 사람은 단지 100여만명 뿐이고, 또 100만여명은 감숙성 신강 위글자치구에 집거하고 있으며, 나머지 600만명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장족(티벳족)은 모두 450여만명인데, 단지 200여만명만 티벳에 집거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감숙, 청해, 사천, 운남 등지에 따로따로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민족 분포의 특징은 소수민족과 한족 및 각 소수민족간의 밀접한 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것은 중국이 통일된 다민족 국가를 이루는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다. 셋째, 자원과 산물이 매우 풍부하다.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대부분 고원 산맥 초원 삼림지대로써, 지역이 광대하고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목축업이 발달되고 농작물의 종류가 많다. 내몽고와 영하는 중국 식량작물의 중요 생산지이다. 신강은 중국 면화의 중요 생산지이고, 광서는 사탕수수의 중요 생산지이며, 티벳에는 쌀보리가 많이 생산되고. 운남과 해남에는 각양각색의 열대 과일이 생산된다. 소수민족 지역의 삼림복개 면적은 4,500ha로 전국 삼림복개 면적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5대 천연 목축지역인 내몽고, 신강, 티벳, 청해, 감숙은 모두 소수민족 지역이다. 넷째, 국경 부근에는 인구가 적고 경제 문화가 비교적 낙후되어 있다. 소수민족이 집중된 지역은 대부분 중국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주변 국가들과 인접하고 있어, 국방 및 이웃 국가와의 관계에서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이 광대하고 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구밀도가 낮고 교통이 불편하여 개발이 비교적 늦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비교적 낙후되어 있다. 해방 이후에 비록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였지만 한족 지역에 비하면 아직도 많은 차이가 있다. 2. 언어와 문자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은 거의 모두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단지 21개 민족만이 자신들의 문자를 가지고 있다. 회족, 만족, 서족이 한문(漢文)을 사용하고 있는 것 외에, 몽고족, 장족, 좡족, 시버족, 다이족, 위글족, 키르기스족, 다다르족, 러시아족 등 11개 민족은 모두 그들 민족의 고유 문자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통용 문자도 사용하고 있다. 이족, 나시족, 묘족, 징퍼족, 리수족, 라후족, 와족 등 7개 민족은 비록 자신들의 문자를 가지고 있지만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나머지 34개 민족은 자신들의 문자가 없다. 중국 각 민족의 언어는 각각 서로 다른 어계(語系)에 속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장어계(漢藏語系)에 속하는 것이 가장 많으며, 중국어(漢語), 좡어(壯語), 부이어(布衣語), 다이어(傣語), 둥어(侗語), 수이어(水
語), 무로어(仫佬語), 모난어(毛南語), 리어(黎語), 묘어(苗語), 요어(瑤語), 티벳어(藏語), 바이어(白語), 징어(京語),
리수어(傈僳語), 나시어(納西語), 라구어(拉祜語), 하니어(哈尼語), 징퍼어(景頗語) 투쟈어(土家語) 등 20개 어종(語種)이 있다. 알타이어계에 속하는 것으로는 위글어(維吾爾語), 카자흐어(哈薩克語), 우즈베크어(烏孜別克語), 다다르어(塔塔爾語), 조선어(朝鮮語), 키르기스어(柯爾克孜語), 싸라어(撒拉語), 위구어(裕固語), 몽고어(蒙古語), 다월어(達斡爾語), 둥샹어(東鄕語), 보안어(保安語), 에벵크어(鄂溫克語), 오르죤어 (鄂倫春語), 만주어(滿語), 시버어(錫伯語), 허저어(赫哲語) 등 17개 어종이 있다. 남아시아어계에 속하는 것으로는 와어(佤語), 부랑어(布朗語), 더앙어(德昻語)가 있고, 인도유럽어계에 속하는 것으로는 다지크어(塔吉克語), 러시아어(俄語)가 있으며, 대만의 고산어(高山語)는 남도어계(南島語系)에 속한다. 3. 종교와 풍속 중국의 소수민족은 일반적으로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3대 종교인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는 중국의 소수민족들에게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교를 믿는 민족은 회족, 위글족, 카자흐족, 키르기스족, 다다르족, 우즈베크족 등 10개 민족이 있다. 라마교나 불교를 믿는 민족은 장족(티벳족), 몽고족, 토족, 위구족, 다이족, 부랑족, 더앙족 등이 있다. 기독교를 믿는 민족은 일부의 묘족과 이족 등이 있다. 이외에도 어떤 소수민족은 조상숭배, 토템숭배, 무교(巫敎), 샤머니즘(薩滿敎) 등을 포함한 원시 자연숭배의 여러 가지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두룽족, 누족, 와족, 징퍼족, 고산족, 오르죤족 등이 있다. 소수민족간의 풍속 습관도 매우 다르다. 옷차림 음식 거주 관혼상제 명절 오락 금기 등 각 방면에서 모두 자신들의 전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를 믿는 10개의 소수민족은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기한다. 각 민족은 모두 자신들의 전통 명절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이족의 발수절(潑水節), 이족의 화파절(火把節), 장족(티벳족)의 장력절(藏曆節), 몽고족의 나담페어대회(那達慕大會, Nadam Fair) 등이 있다.
손바닥안게 숨겨진재주 | 한손으로 계란 10개들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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