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앞에 아침마다 찾아오는 여성이 있다. 나이는 40대 중반쯤 되었는데 예쁘장하게 생긴데다가 무척 상냥한 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주칠 때 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얼마 전 몹시 추운 날 잠깐 집에 들렸는데 그 여성이 거실에서 아내와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녁에 물어 보니 우리 집에 들락 거린지가 한참 되 었다고 한다. 막내 동생뻘 되는 사람하고 무슨 말을 그리 정겹게 했느냐고 물어보았다. 여성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 성분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어서 몇 동 몇 호에 사는 사람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냐고 했더니 남편과 맞벌이 하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고 예의도 바르고 인간성도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이 여성은 야구르트를 판매하는 사람이다.
날씨가 추우면 아내가 불러들여 식사도 같이 하고 고구마도 삶아주고 하는 사이라고 한다. 어떻든 이 여성은 성실하고 친화력있는 이미지로 대단지 아파트에서 야구르트 판매 상권을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전에 서울 무교동 한복판에 월드컵이라는 극장식 비어홀이 있었다. 수백 명이 한꺼번에 들어 갈수 있는 대형 유흥음식점이고 유명 연예인이 돌아가면서 출연하여 연일 문전성시였다. 이곳에서는 여성 종업원을 웨이트리스라고 부르는데 제복을 입고 술과 안주를 날라다 줄뿐 손님 좌석에는 앉지 못하게 했다. 그 대신 좌석마다 주대와 함께 팁을 받아 수입을 올리는데 인기있는 아가씨들은 하루 밤에 요즘 돈으로 수 십 만원에서 백 여 만원까지 번다고 했다. 대략 월 2- 3천만원까지 번다는 이야기다. 물이 좋은 곳에 자연히 따라붙는 것이 폭력배들이다. 이렇게 여자들을 등쳐먹는 폭력배들이야말로 양아치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양아치들이 돈 많이 버는 아가씨들에게 일정액을 뜯어 먹는 대신 나름대로 다른 양아치들에게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역할도 하니까 어떻게 보면 서로 공생하는 관계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업소에서도 제일 잘나가는 여성 종업원이 있었는데 2번 웨이트리스라고 불렀다. 이 여성이 가을바람이 선선하게 불던 어느 날 저녁 무렵에 형사당직실로 찾아왔다. 다음 날 점심때 그 업소 옆에 있는 다동 호텔 커피숍에서 차 한 잔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그때 이야기 하겠다고 하여 약속한대로 나갔다. “반장님 한테 꼭 부탁 하는데 들어달라” 고 애원하는 것이다. 부탁의 내용은 자기하고 무교동 일대를 한 두 번정도 함께 산책하자는 것이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 들어 주었다.
그런데 며칠 후부터 이상한 소문이 형사 실에 퍼지는 것이었다. 월드 컵 2번 웨이트리스하고 애인 관계라는 소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런 정도 소문 가지고 눈 하나 깜짝할 일도 아니었고 다른 형사들도 우스개 소리로 여기는 정도라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실제 소문은 무교동 일대의 폭력배들한테 퍼진 것이었다. 그 업소의 연예부장이 출연 연예인에게 어떤 행패를 부렸다던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두번 그 아가씨하고 무교동 일대를 걸은 것이 고작이었다. 다만 그 아가씨가 유독 내 팔짱을 끼고 달라붙었던 것뿐이었는데 아무개 반장의 애인이라고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요즘 말로 양아치들한테 쪽 팔리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아가씨는 그 이후부터는 폭력배들한테 더 이상 돈을 뜯기지 않고 편하게 지내게 된 것이었다. 소위 아사리 판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번뜩이는 지혜를 가진 여성이었다.
그때부터 무교동 여인들한테는 꽤 알려진 사람이 되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한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 월드컵에 출연하는 민요가수가 만나보고싶다고 연락을 해왔다. 얼글도 예쁘장하고 꽤 잘나가는 연예인이었다. 커피한잔 하면서 그녀의 애로사항을 듣게 되었다. 연예부장의 행패가 도를 넘는다는 것이었다. 연예부장이라는 것은 그 업소에 출연하는 연예인들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유명한 업소의 연예부장이면 연예인 매니저들이 서로 줄을 대려고 안달을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위세가 등등하였다.
어떻게 행패를 부렸느냐고 했더니 자기 허벅지를 걷어 올려 보여주는 것이었다. 엉덩이 아래쪽으로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출연관계로 연예부장한테 발길로 걷어 차여서 생긴 멍이라고 했다.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몸이라 허벅지도 뽀송뽀송하고 유난히 하얗게 생겼는데 멍자국이 흉하게 생긴것이다. 일단 진단서를 떼어 오도록했다. 3주정도 였다. 당시는 2주 이상이면 구속시킬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진단서를 가지고 업소에 전화를 걸었다. 물론 직접 연결이 안되었다. 정보과 형사를 통해서 무슨일로 부르냐고 물어봤다. 폭력행위로 잡아 넣으려고 한다고 해주었다. 그 업소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놈이 요정도 덥치고 또라이짓을 많이 해서 꼴통으로 불리던 때였으므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 했다.
잠시 그당시 이야기를 하면 청와대에서 계급장을 붙여가지고 낙하산으로 내려와서 형사반장을 했는데, 같은 반 능구렁이 고참 형사가 골탕먹이려고 그런것인지 앰배세더 호텔 아래에 있던 한국의집이라는 관광요정을 단속하자가 꼬셔서 형사들을 태우고 들이닥쳐서 기생40여명과 메니저 마담들을 싣고 온것이다. 경찰서로 와서 일부는 구속시키고 기생들은 보호소로 넘긴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안일이지만 다른경찰서 관내이고 경찰관이 관광요정을 단속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짓이라고들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전직 치안국장이라는 사람이 서장을 찾아와서 항의하고 서장은 경위를 설명하라고 하면서 전부 돌려 보내라고 한것을 거절하고 구속시켰더니 가만히 넘어갈 일이겠는가. 그후 얼마 안되어서 시경 국장 명의로 경찰학교 교관요원으로 발령난것을 청와대 올라가서 선배들에게 이야기 하여 국장 발령을 취소하였으니 가히 꼴통이라고 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월드컵 사장이 돈으로 쇼부를 보자고 다리를 놓는것도 거절했더니 결국 연예부장은 그만두고 잠적해서 후에 중부서 관내에서 잡아들였던 기억이다. 그일로 또 한번 입방아에 올랐었는데 다행히 그 민요가수는 얼마후 미국으로 기버려서 조용해졌던 것이다. 이렇게 여자들은 남자들의 힘을 잘 이용하면서 자기들 실속을 챙기는 특이한 체질들을 가진것 같다. 그 여가수가 요즘도 잘나가는 김영임이라는 가수인데 그후에 코미디언 이상해하고 결혼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떻든 나하고는 식사한두번 한것이외에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이였다.
어느 형사반장(?)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