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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전 여수 원문보기 글쓴이: 고재경
2009 초등학교 예비학부모들에게
고재경/비전여수, 인재육성 대표
학교는 즐거운 곳
몇 년 전 북한의 학교제도를 다루는 TV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입학식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운동장에서 입학식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오자 예쁘게 차려 입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자선생님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신입생들에게 장미꽃을 한 송이 씩 나눠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너와 함께 공부하게 돼서 참으로 기쁘구나. 우리 함께 열심히 해보자.”하고 말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유태인의 학교에서는 입학식이 끝나고 첫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책에다가 꿀을 발라 놓고 학생들이 혀로 핧는 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학교생활은 즐거운 것이고 공부란 꿀처럼 단 것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한 의식일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도 수년 전부터 입학식 날 특별한 행사를 해오고 있다. 재학생들이 환영공연을 베풀기도 하고, 언니들이 미술시간에 정성들여 만든 왕관을 씌워주는 행사를 하기도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1학년 담임선생님들이 미리부터 자기반 어린이들 얼굴을 외워두었다가 입학식 당일 만나자마자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며 껴안아 주는 행사이다. 입학원서에 사진이 붙어 있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그런 성의를 베풀 수 있는데도 학부모나 어린이들 입장에서는 여간 감동적인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는 분도 있고, 1~2년 후까지도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고 감사해 하는 학부모들을 많이 봤다.
새봄과 더불어 귀여운 자녀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예비학부모들은 다음 몇 가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첫째로 자녀들로 하여금 학교는 즐거운 곳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입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흔히들 입학하기 전 어린이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계속 이러면 너 학교 가서 혼난다.” “선생님께 일러서 혼내준다.” 등의 이야기를 해주면 어린이들의 머리 속에 학교나 선생님이 무서운 존재로 각인되기 쉽다.
그런 말 보다는 이런 말을 해주어야 안정감과 신뢰감을 갖는다.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돼서 엄마 아빠는 참으로 기쁘다.”
“학교는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고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곳이란다.”
“새로운 친구들도 생기고, 수많은 언니 누나들이 따뜻하게 보살펴 준단다.”
“선생님은 부모님처럼 다정하신 분이란다.”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은 할아버지 같은 분이란다.”
담임교사와의 신뢰 구축이 중요
자녀가 입학한 후에는 교사와의 신뢰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 자녀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선생님을 만났느냐이다. 사람의 만남 중에 가장 소중한 만남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좋은 부모와 좋은 배우자 좋은 스승이 그것이다. 좋은 부모를 만났다고 하는 것은 이미 좋은 인생을 시작했다는 것이고,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고 하는 것은 그 좋은 인생을 아름답게 수놓는 것이고, 좋은 스승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그 좋은 인생을 완성하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만남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에 나는 자주 성경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예수와 베드로의 만남 이상 극적인 만남이 없다.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에 종사하던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는 순간 베드로의 인생이 180도로 바뀐다.베드로가 예수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는 아마 어부로써 평범한 일생을 마쳤을 것이다. 예수를 만나는 순간부터 베드로는 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 낚는 하느님의 일꾼이 되었으며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가 되어 하느님의 구속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급기야는 천국의 열쇠를 쥐게 되는 영광까지 얻는다. 카톨릭에서는 베드로를 제1대 교황으로 모신다.
아이들이 교사에게 갖는 선입견은 대부분 부모의 영향이다. 입학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아이에게 “너는 참 운이 좋구나, 어쩌면 그렇게도 훌륭한 선생님이 너의 담임선생님이 되었다니? 엄마도 마음속으로 그 선생님이 너의 담임선생님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단다.”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는 교사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반대로 어떤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자.
“아이고 어떡해, 그 선생님만 안 걸렸으면 했는데∙∙∙∙ ”
“아이고 금년 농사 망쳐버렸다. 너 알아서 해라.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아이가 교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교사를 불신하면 아무리 좋은 말도 귓등으로 듣게 되어 성적이 오르지 않고, 자신감을 상실하며 의기소침해 진다. 학교는 다니지만 발전이 없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담임교사가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면 더할 수 없이 좋은 일이지만, 사람치고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조금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이 앞에서는 무조건 칭찬해야 한다. 절대로, 어떠한 경우에도 담임선생님에 대한 험담을 하거나 흉을 보아서는 안 된다. 좋은 말이건 나쁜 말이건 학부모가 한 말이 담임교사의 귀에까지 들어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자신을 칭찬해준 부모의 자녀와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한 부모의 자녀가 같은 반에 있다고 하면 담임교사 입장에서 어떤 부모의 자녀에게 더 큰 관심과 호감을 갖겠는가?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영향력은 부모 다음으로 절대적이다. 현명한 부모는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일수록 그 선생님을 더 칭찬한다. 그리하면 그 칭찬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담임선선생님 또한 그 부모의 자식에게 관심을 더 기울이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교육학자들이 잘 쓰는 말에 줄탁동시(
)라는 말이 있다. 줄(
)은 병아리가 달걀에서 나오기 위해 삐약삐약 소리지르며 껍질을 깨는 것을 말하고,
탁
)이란 이런 병아리를 도와주기 위해 어미닭이 달걀껍질을 쪼아주는 것을 말한다. 사실은 줄이 먼저고 탁이 뒤지만 이 두 가지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야 건강한 병아리가 태어난다는 뜻이다. 줄도 하지 않았는데 탁을 해주면 십중팔구 그 병아리는 병약해서 죽는다고 한다. 자녀가 준비도 안됐는데 무리하게 이끌지 말 일이다. 벼 이삭을 억지로 뽑는다고 수확시기가 앞당겨지지는 않는다.
우리들이 우둔한 사람의 머리를 ‘닭대가리’라고 놀리곤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비하해서 말하는 어미닭에게서도 배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째로, 어미닭은 절대로 서두르지 않는다. 28일 동안을 기다리고 달걀속의 병아리가 줄을 할 때까지 또 기다린다.
아직은 준비가 안됐는데도 어린 나이의 어린이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데리고 다니어 공부와 담 쌓게 만드는 지혜롭지 못한 부모들 보다는 어미닭이 훨씬 낫다. 사람은 12번 된다고 한다. 자녀양육은 100m 단거리가 아니다. 자녀 교육은 마라톤이다. 짧은 기간에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큰 그릇은 늦게 차고 큰 과일은 천천히 익는다.
둘째로, 어미닭은 병아리에게 스스로 할 기회를 준다. 자신이 앞질러서 껍질을 쪼아줄 수도 있지만 어미닭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병아리가 안에서 스스로 껍질을 쪼을 기회를 준다. 알에서 깨어 나온 병아리에게 모이를 줄 때에도 다른 새들처럼 모이를 물어다가 입에 넣어주지 않고 병아리 앞에 떨어뜨려 놓고 스스로 쪼아 먹게 한다. 그런 지혜가 있기에 사람 곁에서 살아가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요즈음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부모가 모든 것을 다해 준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자기 일을 스스로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가 짜 준 계획표대로 공부하고 움직인다. 노는 것도 엄마가 조종한다. 시간도 장소도 대상도 엄마가 정해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로버트가 되고 만다. 엄마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요즈음의 어린이들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성장한 어린이들에게 자립심과 독립심이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다분히 의타적이고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방 청소며 책상정리, 준비물 챙기기며 이부자리 개기 등은 당연히 어린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킬 일이다.
생각대로 법칙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생각대로 법칙’이란 것이 있다고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긍정적이고 성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 생각대로, 반대로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그 기대대로 커간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각대로 법칙’은 거의 예외가 없다. 아이가 아무리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할지라도 부모가 인정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아이는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의 능력은 별 볼일 없을지라도 부모의 긍정적인 생각과 기대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아이는 분명 달라진다.
본인의 생각도 대단히 중요하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는 결국 성공한다. 반대로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는 결국 실패하고 만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을 낳으며 행동은 습관으로 자리 잡고 습관은 인생을 결정하는 법이다. 자녀의 인생을 바꾸려면 부모의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교육심리학자들의 실험 가운데 ‘욕화분과 칭찬화분’이란 것이 있다. 같은 조건에서 준비한 두 개의 화분을 창틀 위에 올려놓고 한쪽 화분에게는 날마다 ‘넌 참 잘 자랄 거야, 반드시 아름다운 꽃이 피고 사랑을 받을 거야.’라고 축복해 주고, 또 다른 화분에는 날마다 찾아가서 ‘넌 결국 죽고 말거야, 비실비실하다가 말라비틀어지고 꽃도 피지 못할 거야.’라고 저주를 퍼 부으면 오래지 않아 두 화분은 그대로 된다고 한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동물심리학자가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두 마리의 강아지를 가지고 비슷한 실험을 한 결과가 있다. 한 마리는 날마다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다정한 음성으로 속삭여 주었다. 다른 한 마리는 날마다 쥐어박으며 사람 곁에 오지도 못하게 하고 질책만 하였다. 석 달 후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칭찬과 애정 속에 자란 강아지는 놀랄 만큼 성장하였는데, 학대와 질책만을 받아온 강아지는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칭찬보단 꾸중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평균 두 번의 칭찬을 받는 동안에 98번의 비난을 받고 자란다고 한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반대로 하면 어떨까? 지금보단 훨씬 더 아름다운 세상이 앞당겨지리라고 생각한다. 칭찬은 고래도 웃게 한다. 자녀들이 맑고 밝게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모름지기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어린이는 부모의 거울
어린이는 보배운다. 어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한다. 자녀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다. 학교만 보내 놓으면 자녀들 교육이 끝나는 줄로 안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아이에게 있어서 학교 선생님의 영향은 굉장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다. 가정이 일차적인 학교고 부모가 최초의 선생님이다. 어린이는 수많은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환경은 부모다. 부모의 경제력, 사회적인 지위나 명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부모의 모범이다. 부부간에 사랑하고 아껴주는 모습, 이웃 간에 화목하고 봉사하는 모습,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기도하는 부모와 함께 자란 어린이들과 그렇지 못한 어린이들 모습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이 세상에 어떤 부모치고 아이들에게 잘해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겠는가? 문제는 돈이 아니고 애정과 관심이다.
좋은 부모의 눈은 아이의 장점을 찾지만 나쁜 부모의 눈엔 단점만 보인다고 한다.
좋은 부모의 귀는 아이의 말을 경청하지만 나쁜 부모의 귀는 건성으로 듣는다고 한다. 좋은 부모의 입은 아이를 칭찬하고 격려하느라 바쁘지만 나쁜 부모의 입은 비난과 정죄만을 일삼는다고 한다. 좋은 부모의 손은 미래를 가리키고 나쁜 부모의 손은 지시만 한다고 한다. 좋은 부모의 발은 옳지 못한 것으로부터 얼른 도망치고 돌이키지만 나쁜 부모의 발은 옳지 못한 것을 향하여 달려가고 돌이킬 줄을 모른다고 한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적색인데도 아이 손을 잡고 건너가던 엄마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러한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
“엄마는 오늘 바빠서 빨간 불인데도 길을 건너가지만 너는 절대 이러면 안돼!”
담임교사와의 상담은 천천히, 미리 연락한 후에
첫아이를 입학시킨 학부모는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생님 속을 썩이지는 않는지, 친구들과 다투지는 않는지,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는지 모든 것이 다 궁금하고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다. 그래서 입학한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서 교실로 찾아가서 자신의 아이에 대한 것을 이것저것 묻는다. 그러나 신학기 초는 선생님도 정신을 못 차린다. 아직 개별적으로 신상파악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의미 있는 상담이 이루어 질 리가 없다. 조금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한두 달 후에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정 급하게 의논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적어도 1~2주 전에 자신이 누구의 부모라는 것을 밝히고 상담하고 싶은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담임선생님도 상담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해당 아이를 더 자세히 관찰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된다. 상담을 핑계로 과도한 선물을 가지고 가거나 자기 자식만 잘 봐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성숙한 부모로써 할 일이 아니다. 자녀에게도 좋지 않고 다른 어린이에게 피해를 주며 그러한 행위를 교사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선생님들도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식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정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면 마음으로 해야 한다. 신뢰와 감사 이상 교사를 신나게 하는 일은 없다. 그래도 뭔가를 드리고 싶다면 한 학년을 다 마친 다음에 마음을 표시하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학부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