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18왕조 투트모세 1세는 유프라테스강 까지 진격하여, 본격적으로 아시아 공약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흐메스 왕에게는 적자가 없었고 하트셉터라는 증손녀와 의붓아들인 투트모세 2세가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복 남매인 투트모세 2세와 결혼 해야만 되었다.
그러나 투트모세 2세와 하트셉스트는 아이를 갖지 못해서, 투트모세 2세의 의붓아들인 투트모세 3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렇게 2대에 걸쳐 의붓아들이 왕위에 올랐지만 하트셉스트 여왕은 이것을 그냥 두고보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상,하이집트의 여왕이라 부르며, 왕의 정장을 착용하였다.그리하여 투트모세 3세는 그녀가 지배하였던 20년간이나 억눌려 살아야 했다.그러나 누구도 영원히 살수는 없는 법이다. 마침내 하트셉스트 여왕이 사망하자, 전국의 모든 기념비에서 그녀의 이름을 깍아 내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하트셉트 여왕이 다스리던 시절 미타니와 시리아 및 북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집트의 통치는 위험할 만큼 느슨해졌고, 투트모세 3세는 카데시(가데스)의 왕이 이끄는 반란에 직면했다. 이집트 제국이 살아남으려면 카데시를 지배해야만 했다. 카데시는 시리아의 홈스 호에 인접한 도시로서 오론테스 강 상류 유역이 내려다보이는 지역이었다.
또한 카데시는 유프라테스 강 쪽의 레바논 영토와 아시리아 영토 사이로 뻗어 있어. 아시아와 연계된 대단위 무역의 심장부이기도 했다. 자신의 왕위계승의 절대성을 알리고 싶었던 투트모세 3세에게 이제 할일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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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목표로 삼은 곳은 이스라엘 북부의 메깃도 지역이었다. 메깃도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이집트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집트가 아시아로 뻗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카데시의 왕 역시 메깃도지역에 병력을 집중배치하고 있었다.
투트모세 3세는는 BC 1498년 4월 19일 3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나일 강 삼각주에서 진군해갔다. 이집트가 탄생한 이래 최대규모의 해외원정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규모 병력을 이동하는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기동력이었다.
그러나 투트모세 3세가 직접 지휘하는 전차부대의 기동성은 카데시왕의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루에 25킬로미터 이상을 주파해, 5월 10일경 카르멜(갈멜)산의 남쪽 비탈에 이르됐다. 그리고 가나안인들이 매복을 하기 전에 카르멜산의 좁은 고갯길을 돌파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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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기동화 전략의 승리였던 것이다. 만약 이집트에게서 이 전차 부대가 없었다면 결코 카르멜산을 그리 쉽게 돌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데 투트모세는 즉각 추격대를 조직하지 않고 그의 군대가 노략질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도록 방치했다. 물론 그는 카데시에 이르렀고 그 도시를 약탈하긴 했지만 카데시의 왕은 무사히 탈출했다
투트모세는 비옥한 페니키아의 해안에 요세를 세운 다음, 육로와 해로로 페니키아를 공격하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하고서도 적의 주력군을 추격하지 않은 탓에, 후일 카데시 공략하기 위해 돌아와야 했다.
카데시는 오론테스 강과 또 다른 지류의 강 사이에 위치해 있었고, 해자에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운하를 뚫어놓았다. 포위공격은 오래 걸리고 어려웠지만 결국 투트모세는 그 도시를 점령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힉소스족 최후의 자취는 사라지고 말았다.
메깃도의 대승은 전 오리엔트를 뒤흔들기 충분하였다. 힛타이트와 앗시리아는 투트모세 3세에게 조공을 받쳤으며, 크레타섬은 사신을 보내기도 하였다. 앗시리아는 이집트에 대적할만한 힘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서쪽 방면으로 미탄니 왕국이 있어서, 이집트에게 전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 따라서 앗시리아왕은 보다 많고 화려한 선물을 이집트에 제공하여 우호관계를 유지해야만 되었다.
투트모세 3세는 가나안 지방의 여러 도시국가 왕자들을 인질로 잡아 본국에서 이집트식 교육을 받게 한다음, 각국의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이것으로서 이집트는 제국주의적 성격을 띄게 되었던 것이다.
이후 투트모세 3세의 원정은 계속되어, 아프리카의 뉴비니아에서 아시아의 유프라테스강 상류에 이르는 대제국을 완성하였다.BC 1447년 그가 죽을 무렵, 이집트 제국은 영토와 부의 규모에 있어 역대 최고에 달해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승리 이면에는 비록 다른 민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우수한 문화와 기술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킬 줄 아는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에서 지금까지 시간을 장악한 자가, 보다 유리한 공간을 장악하는 것은 전술상의 가장 기본적인 지침이다.
그리고 시간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민함이 요구된다. 투트모세 3세는 오랫동안의 평온으로 상실해 버렸던 이집트 전투력을, 힛타이트인들의 기마전술을 대대적으로 받아 들임으로써 보다 우수하게 발전 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