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 긴 시간이 다 가나 싶었는데,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더니 드디어 연수 마지막 주다. 빨리 이 한 주가 다 가기를 바라면서도 연수가 끝나면 곧장 개학이라 마음 한 켠에서는 제발 시간이 멈추었으면 싶다. 오늘 선생님들 표정을 보니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연수에 대한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동시에 개학에 대한 마음의 무게는 점점 기울어만 간다.
오늘 첫 강의는 소수중 황영순 선생님의 <쓰기 교수·학습 활동의 실제> 시간이다. 황 선생님은 부드럽고 고운 첫 인상을 주셨는데, 말씀을 너무나 재미있게 하셔서 4시간이라는 시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교육 경력이 28년이라고 하는데 그 어디서도 권태와 나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분이다. 재미있게 가르치기 위해서 교재 연구를 했다고 하셨는데 "재미없게 수업하는 선생님은 악이다"는 명언을 던져주셨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를 통해 삶을 가꾸어 나갈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학생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갖고 칭찬해주고 동기를 부여해주고, 아이들의 글에 일일이 반응을 보여주라고 하셨다. 이 분 역시 두툼한 부록을 따로 준비해서 나눠주셨는데 그 간의 수업 예시와 학생들의 글쓰기 자료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래 전부터 '자서전 쓰기' 수업을 매년 해오셨다는데, 참 가치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번 방학 과제로 부모님 자서전 쓰기를 냈는데, 다음 학기에는 아이들 스스로 자기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가슴에 콕콕 박히는 소중한 말씀이 가득한 강의였다.
오후에는 구미고 김형수 선생님의 <Web 활용 사례> 강의가 이어졌다. 이 분은 얼굴이 새까맣고 다소 무섭게 보이는 첫인상이었는데 말씀을 들으니 딱딱해 보이는 가운데 여유와 유머가 스며나왔다. 자신의 교육철학은 '만남' 이라고 하시며 오늘 이 강의에서의 만남이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지 않고 제로가 될 수 있기만을 바란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첫 시간에는 주로 이론적인 내용에 대해 교재 중심으로 강의를 하셨는데, 솔직히 너무 졸려서 제대로 강의를 듣지 못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선생님의 홈페이지인 김형수의 국어교실(http://kumigo.com/~kos007) 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는데, 그 방대한 자료에 입이 쩍 벌어졌다. 거의 1년 동안 학습 자료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가꾸어 오셨다고 했는데 웬만한 국어관련 자료들은 다 망라되어 있는 것 같았다. 주로 고3만 맡으셔서 입시 위주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중학교에서 활용하기에는 좀 무리인 듯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주 잘 짜여진 사이트 같았다. 인문계 고교에 근무하면서 없는 시간을 쪼개어 그렇게 알찬 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참 놀랍다. 언젠가는 나도 홈페이지를 알차게 만들어야 할텐데, 마음만 십리 밖을 질주한다.
8월 26일 화요일
오늘부터는 연수가 4시에 끝난다. 한 시간 빨리 끝나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마음의 부담도 한결 덜었고, 하루가 훨씬 빨리 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오늘의 첫 강의는 경북과학고 류성연 선생님의 <듣기·말하기 교수·학습 활동 실제> 시간이다. 이 분은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데 무척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더라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대학 다닐 때 여러 번 뵜던 대학원생이었던 게 떠올랐다. 무척 귀엽고 소탈해 보이는 분인데 조용조용 약간의 뜸을 들이며 한 호흡 천천히 말씀을 하셨다. 유창하고 화려한 말하기는 아니었지만 느린 가운데 오래도록 쌓은 내공과 실력이 엿보였다. 주로 그 동안 실제 했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말하기·듣기 수업에 대해 강의를 하셨다. 모둠 자랑하는 말하기, 조건에 맞게 말하기, 릴레이 말하기, 묘사하는 말하기, 재구성하여 말하기, 장면 나누어 말하기, 상상하여 말하기 자랑하는 말하기, 들은 내용 전달하기 수업 등을 사례 중심으로 보여주셨는데 실제 수업에 적용 가능한 것들이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마지막 시간에는 모둠별로 말하기·듣기 수업 방안에 대해 토의를 하라고 했는데 우리 모둠은 이성희 선생님의 화려한 무용담(?)을 듣느라 토의는 안 하고 땡땡이를 쳤다. 모둠별로 토의 결과를 발표했는데 다양한 수업 방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영상으로만 보여주고 이야기로 만들어서 말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참 괜찮은 수업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면 길이 보이는 법인가 보다.
오후 강의는 기다리던 <판소리 실습> 시간이다. 판소리 연구소장인 주운숙 인간문화재와 한국 무용을 전공하시는 정경조 선생님께서 오셔서 체육관에서 수업을 했다. 판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듣고 우리 가락에 대한 것을 짧게 배우고는 판소리 한 대목을 따라 불렀다. 국악을 전공하는 미모의 대학생이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범을 보였는데, 다들 거기에 넋이 나가서 주운숙 선생님은 안 쳐다보고 예쁜 여대생 쪽으로만 눈길이 쏠렸다. 특히 남자 선생님들의 눈길이 몹시 뜨거웠다. 우리 가락이며 창이 몸에 익지 않아서인지 판소리 한 대목 따라 부르기는 정말 어려웠다. 둘째 시간에는 좀 더 쉬운 신민요 '동해바다'와 '각시풀'을 배웠는데 정말 신이 났다. 우리 아이들에게 대중가요 대신 부르게 해도 아주 신나할 것 같은 재밌는 민요였다. 마지막 시간에는 한국 무용에 대해 강의를 듣고 실제 춤을 잠시 봤는데 아! 진정 우리 춤은 예술이었다. 몸짓 하나하나에 호흡을 실어 유연하고도 정성스럽게 움직이는 그 모습이 진정 아름다웠다. 역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8월 27일 수요일
내일이 시험이라 그런지 다들 아침부터 여유가 없어 보인다. 나는 어젯밤에 컴퓨터에 침입한 불량 사이트를 잡아내느라 공부를 한 시간 밖에 못했는데 어째 별로 불안하지가 않다. 아침부터 책을 펴들고 열심히 공부하는 선생님들 틈에서 탱자탱자 놀기만 했는데, 이 여유로움은 어디서 온 걸까?
오전 첫 시간은 한일여중 장병우 선생님의 <시조 창작 실습> 시간이었는데, 이 선생님께서 강의 날짜를 착각하신 바람에 거의 40분 가량 늦게 오셨다. 그 틈을 타서 다들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나는 옆에 앉은 최현재 선생님과 얘기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역시 나는 공부 체질이 아닌가 보다. 늦게 도착하신 장 선생님은 시조에 대해 이론적인 이야기를 거의 한 시간 가량 하셨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시험 공부 하느라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았다. 마지막 시간에 '낙동강'이라는 제목으로 연시조를 한 수씩 지으라는 숙제가 떨어졌다. 낙동강 옆에 살면서도 정작 낙동강에 가본 일이 거의 없어 시상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한참을 끙끙대다가 겨우 시조 한 수를 쥐어 짜 냈는데 너무 오랜만에 시를 쓰니 영 글이 안 나온다. 그래도 생전 처음 써 본 시조이니 한 수 적어본다.
낙동강
조각난 가슴들고 오래도록 헤매이니
삶에 지친 사람들의 애잔한 눈동자가 보인다
아프다, 먹먹한 가슴 어딘가로 흘러가렴.
길던 해 기울어가고 물결마저 숨죽인 밤
조각 가슴 기우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검푸른 물에 비추이며 산산이 흩어진다.
오후 강의는 도교육청 서정우 연구사의 <연설문 작성 실습> 시간이다. 이 분은 무척 젊은 연구사님인데 문화와 예술 전반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 것 같았다. 연설문 작성이라 그래서 무척 따분할 줄 알았는데 연설문 작성법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안 하셨다. 주로 우리 문화 유산에 관해 얘기를 하셨는데 역사스페셜에서 방영했던 '운주사' 편을 30분 정도 보여주셨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지만 그걸 보고 나니 정말 운주사가 정말 멋지고 신비한 문화유산이라고 느껴졌다. 올 겨울 방학 때는 꼭 한 번 가봐야겠다. 연구사님은 강의를 마치면서 세 가지를 강조하며 당부하셨다. 첫째, 교사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나를 찾자. 둘째, 학생의 개성과 재능을 찾아서 키워주자. 셋째, 지름길은 없다. 독서를 하자. 내일 있을 시험에 대한 부담 때문에 다들 열심히 듣지는 않았지만 참 의미있는 강의였다.
8월 28일 목요일
드디어 대망의 시험일이 밝았다. 이번 연수가 평가를 위한 연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험을 친다고 하니 긴장이 된다. 이 얼마만에 치르는 시험인가......아침부터 도서실에는 시험 공부하는 사람들로 북적대고, 쉬는 시간에도 책 보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교재 한 번 완독하기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그간에 필기했던 노트를 죽 한 번 훑어보고 교재를 천천히 한 번 읽었다.
오늘 첫 시간은 원래 담임 연구사 시간이었는데, 고맙게도 시험 공부하라고 한 시간을 내주셨다. 엄숙히 시험 공부를 하던 중에 구미전자공고 김민정 선생님 학교에서 떡을 보내온 바람에 분위기가 일순간에 돌변해서 떡파티를 하게 됐다. 맛난 떡을 실컷 먹으며 잠시나마 시험에 대한 부담을 덜어버렸다.
다음 시간은 여희숙 선생님의 <도서실 관리 실천 사례> 강의였다. 이 분은 고운 카키색 원피스에 하얀 스카프를 우아하게 드리우고 나타나셨는데 너무나 곱고 단아한 자태에 다들 말없는 탄성을 내질렀다. 작년까지 포항서초등학교에 근무하시다가 교단을 떠나셨다는데 청아하고 맑은 분위기와 깊은 목소리로 강의 시간 내내 좌중을 끌어당기셨다. 그간의 경험을 중심으로 도서실 관리에 대한 이야기와 책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 공감이 가면서도 중고등학교의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꿈같은 이야기들이라 부러움과 착찹함이 교차했다. 여희숙 선생님의 말씀 중에 마음의 힘과 생각의 힘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말이 마음에 제일 와 닿았다. 다음 시간이 시험만 아니라면 정말 마음을 열고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강의였는데, 다들 시험 때문에 긴장하고 있어서 편히 강의를 들을 수가 없었던 점이 참 아쉬웠다.
드디어 시험이다. 괜시리 손에서 땀이 나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시험지 두 장을 받고 40문제를 풀었는데 알쏭달쏭한 문제가 몇 개 있었다. 쉬운 건 무척 쉬웠는데, 책을 대충 봐서 그런지 헷갈리는 문제가 많아서 마음이 좀 찜찜했다. 30분 만에 시험을 끝내고 나왔는데, 일찍 나온 선생님들과 대충 문제를 맞춰보니 틀린 문제가 몇 개 나왔다. 그래도 시험이 끝났다는 것 때문에 무척 홀가분했다.
시험을 마치고 마지막 회식 자리에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1차로 식사를 하고 20여명의 선생님들이 남아서 2차로 노래방을 갔다. 거의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들 열광적인 시간을 보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9시가 넘어서 먼저 나왔는데, 더욱 환상적인 뒤풀이가 이어졌다는 후일담이 들렸다.
8월 29일 금요일
길고도 짧았던 1정 연수 마지막 날이다. 늘 그렇듯이 하루하루 지나는 시간은 참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훌쩍 흘렀나 싶다.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서 어제 있었던 뒤풀이 얘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여러 선생님들의 얘기 속에서 연수를 마치는 시원함과 섭섭함이 동시에 묻어나는 듯 했다.
이번 1정 연수의 마지막 강의는 서울대 이호영 교수님의 <표준어 발음 실습> 강의다. 마지막 강의라 부담없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이 교수님은 무척 젊고 유능해 보이는 엘리트다운 인상이었는데, 음성학을 전공하는 분답게 아주 정확하고 똑 떨어지는 발음을 구사하셨다. 첫 시간에 표준 발음의 필요성에 대해서 간단하게 언급을 하셨는데, 우리가 표준어를 쓰지 않는 방언 사용자라 그런지 표준어의 필요성에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전국민이 다 표준어를 구사한다면 그것만큼 맥 빠지고 재미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교육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일면 수긍이 간다. 자음부터 시작해서 모음, 이중모음까지 정확한 발음 연습을 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학생'을 발음해 보라고 하셔서 몇 명이 발음을 했는데 우리가 듣기에는 다 똑같은 것 같아도 음성학자의 귀에는 다르게 들리는 모양이었다. 내 차례가 돼서 '학생' 이라는 단어를 발음했는데, 가장 자기 마음에 드는 발음이었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 칭찬에 고무되어 두 번째 발음할 때는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마지막 'ㅇ' 발음이 연구개 좀 더 앞에서 발음되기도 했다. 어릴 적 나의 꿈이 아나운서였던 터라 나름대로 표준발음에 관심도 많았고, 대학시절에는 표준어를 구사하기도 했었는데 방언을 오래 사용하다 보니 표준발음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쩌면 이 표준 발음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갑갑한 틀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모든 강의가 끝나고 대강당에 모여 수료식을 가졌다. 각 과목별 대표가 나가서 표창을 받고 과목별 수위자가 1등상을 받았다. 우리 과에서는 현일고등학교의 박혜정 선생님이 1등상을 받았는데 다들 마음으로 열렬히 축하해 주었다. 시상식이 어찌나 활기찼던지 마치 영화제 시상식같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들 연수가 끝났다는 홀가분함과 드디어 1급 자격을 받았다는 뿌듯함에 한껏 마음이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수료식을 마치고 몇몇 선생님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2급에서 1급으로, 사다리를 하나 더 걸치고 조금 더 높이 올라간 것 같은 느낌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했는데 조금 더 높이 올라와서 어지럽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30일 간의 긴 여정이 끝나니 조금은 피로하고 또 조금은 마음이 벅차다. 그러나 길이 끝나자 비로소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로소 시작되는 이 여행이 우리 아이들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