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태평양전쟁당시 일본군이 파놓은 '땅굴의 비밀'에 관련되
자세한 기사를 함께 나눔니다...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학술과 문화재를 담당하는 유석재 기자입니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의 와중에 전쟁 유적 한 곳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곳은 태평양전쟁 때 제주도 땅 속에 미로(迷路)처럼 만들어진 ‘비밀 기지’였습니다.
SF영화나 대체역사소설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이달 4일,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회의에 짤막한 안건 한 건이 접수됐습니다.
‘가마오름 일제 동굴진지 매입 완료.’ 매입 금액 59억1500만원, 이미 지원한 보조금을 회수하고
남은 실 매입금액은 49억8000만원이었습니다. 문화재청이 32억원, 제주도가 27억1500만원을 각각 냈습니다.
-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제주 가마오름 동굴진지'
도대체 국가가 이런 거액을 들여 사들인 이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제주도 땅굴’이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0년대 중반, 일제(日帝)가 파 놓은 동굴 형태의 군사기지입니다.
이런 땅굴이 제주도에 무려 120곳이 있다고 하는데, 가마오름은 이 가운데 최대 규모입니다.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강정마을에서 자동차로 20분쯤 거리에 있습니다.
마치 솥뚜껑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해발 143m의 ‘가마오름’이란 곳이지요.
70년 전 일제는 이곳에 거대한 지하 기지를 만들었습니다.
4년 전, 취재를 위해 이곳을 찾았은데 과연 입이 절로 벌어졌습니다.
조명이 없었다면 누구라도 금세 길을 잃었을 것입니다.
굴은 왼쪽으로 꺾어졌다 다시 오른쪽으로 굴절되며 이어졌습니다.
미공개 지구에는 폭이 넓어졌다가 갑자기 좁아지는 곳이 있는가 하면,
깊이가 18m인 함정과 탱크 한 대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도 있다고 합니다.
- 제주 전쟁역사평화박물관에 전시된 가마오름 일제 동굴 진지의 일부. 제주도민에게 굴을 파게 시키는 일본군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로마 기독교 지하묘지 연상시키는 2㎞ 구간 ‘옥쇄형 비밀 요새 동굴’
이곳은 총 길이가 무려 2000m에 이르는 3층 구조의 진지입니다.
출입구 33개, 연결통로는 17개입니다. 끝없는 듯 복잡하게 이어진 미로 사이사이에
사령관실, 물자보관소, 작전회의실 같은 방이 수십 개입니다.
마치 이탈리아 로마의 기독교도 지하묘지 카타콤베(catacombe)를 연상케 했습니다.
일제는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요?
당시 일제는 연합군의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옥쇄형(玉碎形) 요새’를 만들 기지가 필요했습니다.
그곳은 황해와 동중국해 사이 바다 한가운데로서 연합군이 규슈(九州) 북부로 상륙해
도쿄로 진격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천혜의 요충지’, 바로 제주도였습니다.
이 ‘제주 가마오름 일제 동굴진지’가 등록문화재 308호가 된 것은 2006년의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공개돼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었습니다. ‘전쟁역사평화박물관’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2010년 작고한 제주도민 이성찬씨는 이곳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했습니다.
동굴의 참상을 제대로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그의 뜻에 따라 화물업을 하던 장남 이영근(60)씨가 뛰어들었습니다.
“가마오름 일대 1만2000평을 통째로 사들여 사립박물관으로 만들고, 땅굴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요 예산은 46억원이고 절반은 빚을 내야 했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이미 “원형 훼손과 안전문제가 우려된다”
“근대 문화유산을 사유화해서 무분별한 개발로 관광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그 숱한 논란 중에는 말이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그 박물관의 이영근 관장이 최소한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집념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만큼은 인정하고 싶습니다.
이 관장은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당시 일본군이 버리고 간 군복과 각반·물통·탄약상자·수류탄부터 내무반에
걸어 놓았던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 휘호까지 수집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모은 유물이 2800점이었습니다.
- 제주 가마오름 동굴 진지 위에 박물관을 세운 이영근 관장.
강제 노역을 당했던 노인 200여명으로부터 증언을 들어 60시간 분량을 녹화했습니다.
“곡괭이와 삽만 가지고 하루 종일 굴을 팠지.”
“군수품을 실은 마차를 산으로 끌고 가면, 일본군은 채찍으로 말과 사람을 한꺼번에 후려치며 킬킬 웃었어.”
“환자가 생기면 치료를 해 준다고 데려갔는데, 다시는 그 사람들을 볼 수 없었어.”
그리고 굴 속의 흙을 파내고 버팀목을 다시 세웠습니다.
‘원래 동굴 입구 사방에 붙여져 있었다’는 나무 판자를 삼나무로 복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땅굴 전체 길이 중 15% 정도인 300m를 개방했습니다.
나중에 전문가들로부터 “구축 당시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받게 되는 부분입니다.
이 관장은 매일 새벽과 밤, 두 차례씩 골프장 셔틀버스 운전 ‘알바’를 뛰었습니다.
부족한 박물관 운영비를 보충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박물관을 유지한 이유는
“전쟁의 비참함과 인류의 어리석음을 후세에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서”였다고 했습니다.
박물관은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습니다. 2008년 한 해동안 33만명이 이 곳을 찾았습니다.
일본 학생들은 고개를 숙인 채 “저희 조상들의 잘못을 사과드릴게요”라며 울었고,
당시 제주 주둔 일본군이었다는 아흔살 쯤 된 일본 노인이 “당신 부친께 사죄드리고 싶소”라며
남은 여행비의 전부인 듯한 만원짜리 세 장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그 후 박물관의 쇠락(衰落)이 찾아왔습니다. 아주 냉정하고 간단하게 표현하면
‘부채 덩어리인 사설 박물관의 운영 실패’로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영근 관장의 말은 좀 달랐습니다.
우선 ‘구제역·조류독감·신종플루’라는 전염병 3종 세트로 관람 학생 수가 연 10만명이나 줄었습니다.
거기에 결정타 한 방이 찾아오게 됩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찬성 여파로 박물관 관람객 급감… 일본에 매각 논란 거쳐 결국 정부 매입
이영근 관장이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찬성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박물관에 큰 글씨로 붙어 있는 문구, “자유와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는 말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평화는 힘이 있을 때 지켜지는 것”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해군기지 찬성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박물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관람객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협박 전화도 걸려왔다고 합니다.
어떤 단체에서 개입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학생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합니다.
- 작년 3월 오전 제주 해군기지 공사 현장 정문 앞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 세력이 경찰의 공사장 난입 시위대 연행에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들 때문에 경찰 30여명이 공사장 안에 7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차마 믿기 어려운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늘어만 가는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나머지 박물관을 일본인에게 넘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006년에 웬 일본인들이 찾아와 ‘원하는 대로 돈을 줄 테니 우리에게 팔라’는 말을 하기에 명함을 북북 찢어 버렸는데,
이제 그들을 다시 찾으려 일본 신문에 광고를 내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란 생각보다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는가…’란
충격이 훨씬 컸습니다.
이 관장의 계획이 알려지자 난리가 났습니다.
“일제 침략 잔재를 일본에 넘기다니!” 당장 문화재청이 동굴과 박물관을 매입하겠다고 나섰고,
이 때부터 추문(醜聞)으로 볼 수 있는 얘기들도 상당히 흘러나왔습니다.
“감정가에 비해 너무 비싸게 사는 게 아니냐” “일본인과 20억엔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등
자꾸 매각설을 들고 나오며 매입을 압박하고 있다” “왜 문화재가 아닌 박물관 건물과 주차장까지 정부가 사야 하느냐”
“매입 과정에서 박물관의 2대 주주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고려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말들이었습니다.
매입 완료 소식을 들은 뒤, 이영근 관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한 순간 제가 목격했던 그의 열정이 과연 아직도 남아있는 것인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이제 국가와 지자체가 이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세상에 알리길 바랄 뿐입니다.
첫댓글 제주도엔 일본군이 파놓은 땅꿀이 많이 있따고 ... 그 자원을 활용했으면 좋겠네요...
잘 관리하여 후손에게도 무언가 ....@!!!
일본인에게도 보여주고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도 교휸적인 장소가 되었으면~
베트남 호치민근교에도 이런 땅굴을 관광객용으로 활용하듯이..
우리도 좀 더 폭 넓은 활용가치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네요..
구찌터널을 가보았답니다..공감합니다.
잠시 입구까지만 가본 적이 있었는데..지금은 어찌 바뀌었는지 궁금하네요~
ㅠㅠㅠㅠ
일본군인이 실행하고 제주도 사람들이 노역하고 한 거는 아닌지요, 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