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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제일교회 여군사관 인터뷰
2011년 10월 11일,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날, 영천 육군 3사관학교에서는 56기 여군사관 임관식이 있었다. 11월 평강웹진 My Book에서는 16주간의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한 여군사관생들을 만나봤다. 평균 나이 26살의 임관생들이 군입대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훈련을 받으면서 느꼈던 인생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가감 없이 담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자의 미숙함으로 모든 내용을 기재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 혹시 그 내용들이 궁금하다면 직접 그들을 만나보시라. 마지막으로 7초처럼 느껴졌을 일주일의 휴가 중에 귀한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임관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훈련 첫날밤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H양 : 입소 첫 날, 전투복 등 복장정비와 짐정리 등 할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어요.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서 꿈도 안 꾸고 눕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힘들 때 생각났던 말씀이 있으신가요?
J양 : 유독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정신적으로 무지 외로운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잊으시면 어떡하지’ 하고 약해지는 순간 또한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말씀이 생각났고, 이 말씀만 무한 되뇌며 훈련에 임했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군 입대를 결심한 계기가 뭔가.
K양 : 원래 대전 늘 푸른 가수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인턴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게 되면서 평강제일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교회에서 올라오긴 했지만 교회에 적응하려면 기관 활동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샤론에 들어가서 봉사를 하다가 졸업반이 돼서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군대를 추천해주셔서 입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J양 : 행군하면 동기들의 발에 물집이 많이 잡히고 발이 상하는데, 발이 한 번도 하나도 상하지 않을 때 ‘아 나를 군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다 해주셨구나, 군인이어야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복을 입은 모습이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군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고 하지만 진로에 대한 갈등이 많았을 것 같은데 여군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K양 : 카피라이터같은 글 쓰는 쪽 관련된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가 조금은 갑작스럽게 군대를 가게 돼서 하고 싶었던 것을 포기해야하는 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서 체력적인 부담도 걱정이 됐고요. 그런데 17주 훈련을 받으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체력적으로는 ‘어? 하니깐 정말 다 할 수 있네.’ 오히려 건강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글쓰기 관련해서는 제가 정보라는 병과에 가게 되었는데 그 직무가 전투병과이긴 하지만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결과물을 내야하는 직무거든요, 그런데 사실 수집하고 분석하고 결과를 내는 건 글쓰기도 마찬가지거든요. 자랑은 아니지만 3사관학교에서 훈련은 받으면서 글쓰기 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상도 받았습니다. 군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정보병과 안에서 반드시 도움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군대에 오길 잘했다.’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W양 :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일과 여군에 대해서 저울질을 많이 했어요. 해외에서 생활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유학도 다녀오고,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는 중에 여군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돼서 고민을 많이 했지요. 사실 원서를 냈을 때는 ‘이거라도 붙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그런지 좋은 결과를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합격하고 나니깐 ‘내가 여기 가야하나? 난 더 성공할 수 있는데’ 이런 교만함이 생기더라고요. 어찌 되었든 2차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결과를 받았는데 예비합격을 하게 됐어요. 제 교만함 때문에 2차 시기에는 예비라는 결과를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최종발표가 나는 2주 동안은 힘든 만큼 더 최선을 다해 기도를 했던 것 같아요. 교만한 마음이 들어서 이리 저리 방황을 했기 때문에 먼저 제 자리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막상 또 2차시기 합격이라는 응답을 받으니깐 마음이 심란하더라고요. 웃기죠?^^ 어찌 되었든 그렇게 입대를 하게 됐어요.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성경을 본다거나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힘든 점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나.
K양 : 저는 성경을 보는데 눈치가 안보였어요. 제가 성경을 끌어안고 자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고. 내가 마음이 허해서 ‘난 성경 읽을래’하고 읽어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저는 믿는 친구들이 많은 방에 있었고, 그래서 항상 어딜 가든 전혀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신앙적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제가 아는 지인이 군대에 가게 되면 하나님이 생동감 있게 역사하신다고 했는데 정말 기도 응답도 바로 바로 오고, 성령님이 대신 기도해주신다는 느낌도 받고, 하나님이 옆에 계신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어요. 사회생활을 할 때보다도 신앙이 간절해 진거 같아요.
W양 : 내가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표현하는데 껄끄러운 면도 있었지만 그런 동기들로 인해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수첩에 성경구절을 적어서 그 구절을 되뇌면서 취침하고, 시간이 날 때면 어머니가 보내주신 편지와 말씀을 몇 줄이라도 읽었어요. 몇 줄밖에 안 되지만 읽는 것 자체가 너무 위로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시간이 있어서 17주를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많아서 힘들진 않았나.
K양 : 정말 걱정이 많았는데 4살 어린 친구들이 나를 ‘K양, K양’라고 부르는데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 나이를 넘어서 말 그대로 동기가 되더라고요. 저보다 어려도 배울 것도 많았고요. 혹시나 군대를 준비하는 나이 많은 분들이 계시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전 올해 28살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훈련이 뭔가.
H양 : 아침, 저녁으로 구보, 행군 등 안 쓰던 근육을 써서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특히 야외행군을 나가면 더 힘들고요. 60km 행군을 할 때 발에 커다란 수포가 생겼습니다. 자칫하면 큰 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병원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발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너무 고통스럽고 아팠어요.
C양 : 아무래도 15년 넘게 음악만 해오다가(바이올린 전공) 군대에 갔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군사용어부터 시작해서... 초반에 훈련 들어갔을 때 조금 힘들더라고요. 물론 금방 익숙해졌지만요. 그리고 평소에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는 몰랐는데 주일에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지 못하니 갈급함이 오더라고요. 말씀 듣고 싶을 때 말씀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K양 : 동기들끼리 농담 삼아 ‘에라이 독도법 같은 놈. 이런 각개전투 같은 놈’이라는 말이 많이 했어요. 그만큼 독도법이랑 각개전투가 힘들었다는 말이죠.
W양 : 처음에 분대 공격ㆍ방어할 때 너무 힘들었어요. 왜냐면 우리 중대는 힘든 훈련을 받을 때마다 비가 와서 훈련을 받기 위해 훈련장으로 걸어가는 것조차 힘에 부쳤는데, 그 상태에서 전술이론 교육을 받고, 산에서 돌격을 해서 뛰고 하는 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것을 하루에 2-3번을 하니깐 너무 힘들더라고요. 일단 싸우는 쪽 관련된 훈련은 다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산에서 흐르는 흙탕물을 보면서 커피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비를 맞으면서 눈물을 흘렸는데 눈물과 비가 섞여서 분간이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는데 비가 와서 국과 반찬을 물에 젖은 상태에서 먹는데 너무 서러웠어요.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제가 너무 힘든 점만 이야기 하는 것 같네요^^? 알아서 편집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합 5분전 3분전을 외치면서 사소한 부분까지 통제하는 것과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는게 적응이 안됐어요.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이런 생활이 제 인생에서 처음이라 힘들더라고요. 하루면 되겠지 하루면 되겠지 하는데 그게 끝이 없더라고요. 거기에 더해서 군대에 적응이 느리다보니 집합 시간에 자꾸 지각을 하게 돼서 교관님들께도 좋지 않은 인상을 주게 되니깐 더 적응하기가 어렵게 되더라고요. 힘든 점은 여기까지만 이야기 할게요.^^
반대로 가장 기뻤던 때나 기억에 남는 일은.
H양 : 내가 한 일로 다른 사람들이 고마움을 느끼고 칭찬 해주었을 때인 것 같아요. 제가 맡은 직책이 행정보관이었는데 업무량이 많아서 그 일을 처리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 교육관님들이 칭찬해주시고 수고했다고 위로해줄 때 힘이 되었습니다. 아마 제 스스로의 힘으로 했다면 중간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전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C양 : 동기들과 모든 것을 함께 하다 보니 단체생활을 하면서 전우애가 두터워졌어요. 혼자 했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훈련들을 동기들과 함께한 덕분에 즐겁게 해낼 수 있었죠.
J양 : 군인에겐 총기가 생명이어서 잃어버리면 큰일이 납니다. 그런데 꿈에서 전투훈련을 하다가 총기를 잃어버려서 너무 놀라 마구 마구 총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2층 침대를 쓰고 있었는데 꿈에서 깨보니 2층 침대에서 내려와 총기를 찾고 있었습니다. 내게 총은 애인이고 생명이었습니다(웃음).
훈련과정에서 힘든 점이 많았을텐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꼈던 순간이 있나.
H양 : 제가 무기고를 담당 했을 때였어요. 중대에서 한 사람이 아파 쓰러졌는데 그 분이 총을 가지고 갔는데 안 돌아와서 훈육장교님이 챙기신다고 하셔서 저는 그런 줄 알고 있었죠. 그런데 그날 새벽, 총기가 들어오지 않았다는 호출을 받았어요. 그때는 너무 놀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었어요. 군대에서 총기가 없어진다는 것은 대형사고이거든요. 그런데 다행이도 바로 총기를 찾게 되었어요. 만약 그때 그 총기를 찾지 못했다면 전 중간에 임관 받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도우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C양 : 한 가지만 뽑을 수가 없는 것이 먼저 저를 군대에서 쓰임 받게 해주신 것부터 훈련하는 매순간이 도우심이자 은혜였어요. 남들보다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닌데 임관 종합평가 체력 검정에서도 모두 특급을 받을 수 있었어요. 또 4개월 동안 받은 훈련들도 단한번의 열외 없이 해낼수 있게 해주신 것 역시 도우심이었어요.
W양 :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오랜 기간 생각할 겨를 없이 약간의 막연하게 입대를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입대해서 훈련을 받다보니 여군시험을 준비하는 기간이 엄청 편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제 자신이 힘들더라고요. 기도를 하며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갔지만,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힘들어서 잠시 다른 생각도 하고 내가 굳이 이 길을 가야하나?라는 생각을 매일 하게 됐어요. 그래도 17주까지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번 씩 어머니께서 말씀 담긴 편지를 써주시고 그것으로 일주일을 버티고, 그리고 성령님이 대신 기도해주신다는 말씀이 있잖아요? 기도할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핑계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기도를 거의 못했거든요. 특별히 어느 날은 제가 계속 주기도문을 하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그날 훈련이 유독 힘들었어요. 훈련 끝난 뒤에 드는 생각이 꿈을 통해서 ‘성령님이 기도해주시는구나’였어요. 저는 아직 여군을 해야겠다는 확신보다는 여군에 오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7주간 내 스스로 하면 난 벌써 뛰쳐 나왔을 텐데 힘든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주시는구나.’ 여기는 5분후 일과 3분 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정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 만약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면 내가 정말 매시간 매순간 의지할 수 있을까? 나에게 여기에 있게 해주심으로 항상 의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같아서 감사해요.
K양 : 사실 훈련을 받으면서 퇴교의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에 아파서 국군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악성 빈혈, 위ㆍ십이지장 궤양 등으로 훈련을 받으러 갔다가 입원을 하게 된 거죠. 입원을 하면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다. 아싸! 집에 가란 뜻이구나’ 이런 마음으로 입원 첫날을 보냈는데 그날 밤에 꿈을 꿨습니다. 거기에 누군가 나와서 기도를 해주시는데 일단 손으로 제 귀를 막아 주셨어요. 지금 생각이 드는게 주변 사람들 아무런 말 듣지 말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라는 뜻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저에게 해주셨던 기도가 같은 말이었지만 약간 다른 버전으로 첫 번째는 ‘나는 너가 간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나는 네가 간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렇게 기도를 해주시는 거예요. 입원 첫날에. 그래서 정신이 번뜩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입원했을 때가 공격과목이 있는 주간이었는데 그걸 빼먹게 되었어요. 수업을 일주일이나 빠짐으로 인해서 내가 겪는 불이익 때문에 좌불안석으로 있을 때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더니 왜 그러냐고 물어보기에 이만저만해서 그렇다 하니깐 당장 제 앞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지금 이런 애가 있는데 지금 네 수업을 빠지고 있으니 나중에 점수를 잘 주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깐 사람의 생각으로 할 수 없는 경험을 했죠. 그래서 정말 그 공격과목 성적으로 제게 마이너스 된 게 없었어요.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데 그게 어떤 것인지 보여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입원이랑은 관계없지만 우리 훈육담당님 같은 경우는 신앙심이 좋으신 분이어서 기도도 많이 해주셨어요. 주변의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도움을 주신 거죠. 제가 몸이 약해서 본의 아니게 훈련에서 자꾸 열외하게 되니깐 훈련을 받지 못하는 것도 힘들지만 아픈 아이로 인식되는게 너무 힘들었는데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입원을 시켜주신 것 같아요. 일주일을 입원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봤을 때는 그게 2달 접어들 때쯤이었는데 앞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단은 그런 병이 있었는지 조차 몰랐는데 알게 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그것도 무료라서 좋았어요.^^ 그리고 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처진 몸을 회복할 수 있었고 정말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요. 퇴원을 한 후에는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어요. 뒤늦게 알았는데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교회 아시는 분들이 엄청 기도해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J양 : 군 입대를 하고 감사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습니다. 무거운 군장을 매고 산 고지에 올라가거나, 체력적으로 버거울 때 짜증이 나고 불평불만이 나올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말씀을 배운 대로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무한 반복하다보면 어디하나 다치지 않고 훈련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17주간의 훈련을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나.
H양 : 너무 힘들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어요. 그저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았죠.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어요. 교회 가서 안 울었던 적이 없을 만큼 힘이 들었죠. 다른 동기들은 교회에서 나누어 주는 선물 때문에 갔었다고 하는데 저는 기도하러 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어요.
C양 : 각개전투 훈련을 앞두고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였어요. 당시에 힘든 훈련들이 몰려 있어서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때였는데 무심코 성경을 폈는데 그때 나온 구절이 이사야 41장 10절이었어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또 힘을 주시는구나...'하면서 감사기도 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W양 : 다른 친구들이 오랜 기간을 두고 기도로 준비한 거에 비해 저는 다소 급하게 군대를 준비하게 돼서 솔직히 기도를 많이 못했어요. 급속도 합격했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를 갖고 사모할 수 그런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원서를 내야 돼서 원서를 제출했고, 합격했다는 통보와 함께 체력을 준비해야 돼서 매일 울면서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펴기를 했어요. 확신을 가지고 했다기 보다는 막연하게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입대를 한 거 같아요. 준비하는 기간도 너무 힘들었는데 훈련을 받으니깐 준비기간 체력훈련보다 100배는 더 힘들더라고요. 통제된 생활과 저한테만 야박하게 행동하는 간부들 때문에 솔직히 나가고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훈련을 마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말씀이었어요. 어머니가 보내주신 편지를 울면서 읽었어요. 그렇게 편지를 보면서 기도해주신다는 말씀과 믿는 자녀로써 끝가지 버텨야 한다는 것에 위로를 받았어요. 그 기도가 저를 하루하루 버틸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K양 : 솔직히 입원하기 전까지는 너무 힘들었는데 퇴원 후에는 아니라고 느꼈어요. 저도 병원에 가기 전에는 지혜랑 같은 마음이었는데 그 꿈을 꾼 다음에는 즐기면서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는 이미 나를 다 내려놓았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제가 입원한 병원에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목사님이 자기를 부인하라는 설교를 하시더라고요. 설교를 들으면서 나를 완전히 버려야 충성이 나오고 뭔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주마다 바뀌는 훈련 과목을 자기가 어떻게 마음을 먹고 하느냐에 따라서 이게 단순하고 무식하게 안 될 수도 있어요. 특히 제 주변에 좀 더 힘든 훈련이 없을까?라는 마음으로 각개전투를 기다리는 동기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보면서 마음을 고쳤어요. 어떤 교관님이 너는 끌려 다닐래 아니면 이끌어 갈래? 훈련에 끌려다니면 힘들 수밖에 없지만 훈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육체적으로 오히려 덜 피곤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새로운 과목이 시작되는 매주 월요일에 전 날 주일에 미래 노트를 적었어요. 기도형식으로. 다음 한주에 나는 각개전투를 끝낼 것이다 미리 과거형을 써서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다 진두지휘하시고 다치지 않게 지켜주셨다. 미리 말을 단정적으로 했어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제가 한 거는 하나도 없다 생각해요. 만약에 제가 했다고 하면 벼락을 맞을 거예요. 정신없게 훈련을 받으면서 어쩌다보니 임관까지 하게 됐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말 하나님이 도와주셨습니다.
평강 교회 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면 옆에 딱 붙어서 도와주시는지를 느끼면 다시는 그 길을 두고 다른 길로 갈수 없을 거예요. 나는 발목 잡혔다. 다른 길로 갈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저는 정말 복 받은거죠.
포부나 각오는 뭔가.
H양 : 10년이면 대위에서 소령 넘어갈 때, 20년 후면 중령에서 대령 넘어갈 때 정도 될텐데, 그때까지 군생활을 한다면 별을 다는 것이 목표죠. 그 때까지 힘든 일이 있더라도 2011년 6월 7일에 입소했던 마음 그대로 충성을 다할 거예요. 또 제가 지휘관으로 있으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병사들을 주의 전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이 목표에요. 저를 여군에 보내신 이유 중에 이 사명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병사들은 군 생활이 힘들기 때문에 이 때 하나님을 많이 영접하거든요. 믿음이 없던 친구들이 군입대를 하고 나서 세례 받고 교회 다니기 시작한 아이들이 많이 있어요. 이런 것들만 보아도 군 생활 중인 병사들을 전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K양 : 일단 크게 생각해보면 군선교의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군대에선 종교가 없는 친구들도 사람에게 의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종교에 기대려고 해요. 그런데 기독교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누구든 방황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때 그 사람을 잡고 씨앗을 뿌리면 열매를 맺을 수 있겠죠? 아마 그런 역할을 할 파수꾼이 필요하셔서 군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주신 사명을 생각해보면 저는 글을 쓰기 좋아하고 그런 쪽으로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이 않을까 생각해요. 이제 겨우 16주를 마친 새내기라 잘 모르지만 하루마다 뜻이 추가 될 것 같습니다.
W양 : 말씀이 업데이트 돼서 나오면 그 말씀을 따라가기 위해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군대라는 집단도 계급이 오를수록 그 계급에 맞는 교육과정이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되요. 그렇게 끝없이 공부를 하게 만드는 집단이 군대고 군대에서 외국어를 사용해서 해외로 가는 것도 가능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해외대학원. 해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살리고 싶은 포부가 있긴 한데 그건 너무 먼 미래같고요, 현재는 저에게 필요한 군사 지식을 쌓을거에요. 그리고 군대에 가서 여러 다양한 상급자들을 만날텐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포부도 있답니다.
J양 : ‘내일 일을 염려 말고 오늘 할 일에 최선과 최고를 다 하자’
현재는 학생 장교로서 좋은 성적으로 병과학교를 수료하자는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성중심의 사회조직인 군에서 여군으로 근무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 장교는 현실적으로 진급이라는 문제로 씨름하기 때문에 업무나 자기개발시간으로 늘 치열하게 삽니다. 여러 가지로 산 넘어 산인 문제들이 눈앞에 있지만, 하나님 제일주의신앙을 잃지 않고 때마다 순간마다 주어진 임무를 잘 완수해내는 게 제 군생활의 목표이자 각오입니다.
여군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H양 : 4학년 끝 무렵에 군 시험을 준비하고 55기 시험을 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정신없이 준비한 것 같은데 떨어진 거예요. 그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위로해 주는 말조차도 상처가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번에도 여군 시험을 보는 후배들 중 떨어지는 친구들이 생긴다면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준비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내가 준비가 되어야 군대에 와서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다 하나님께 맡기면서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C양 : 앞서서 겁부터 먹고 고민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더라고요. 물론 해결되지도 않고요. 쓰임 받게 해주심에 감사하면서 순종하고 준비했으면 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고 기도로 모든 것 맡기면서 준비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W양 : 군대를 준비하는 시간에는 정말 조마조마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모르고 조마조마하고 마음이 급하고 괴롭고. 하루에도 수백 번 왜 나를 이 길로 인도하시냐고.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는 건 그때가 가장 편했기 때문이에요.^^ 정말 힘든 건 한번 훈련을 시작해 봐야 압니다.^^제가 너무 겁 준건 아니죠^^? 훈련을 팁을 하나 드리면, 처음에 잘해야 그 이미지가 마지막까지 갑니다. 처음에 못한 모습을 보여주면 끝까지 그 이미지로 가게 되더라고요. 제가 그랬거든요.^^혹시 진로를 여군으로 결정했으면 독한 마음을 갖고 기도로써 준비하세요. 그래서 저처럼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K양 : 군인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데 사명이라고 생각하면이해가 가기 시작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여군은 사람으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요. 심지어 테이크아웃 커피도 자유롭지 못하니까요. 직업으로 하면 왜 나일까 라는 거부감이 드는데 사명이라고 하면 감사도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넓어진다고 할까?
J양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군인이 되고 나서 숨 쉬는 순간마다 체험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여군이 되고나서 민간인 시절을 떠올리면 잃는 것도 있다고 느껴지지만, 그 잃은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값진 것을 얻을 것이라는 것, 그래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여군이란 뭐라고 생각하는가.
K양 : 여군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건방진 의미가 아니라 솔직히 여군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또 여군 가는거야?라는 반응이 있는데 그런 반응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여군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군은 아무나 합격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부족하고 가장 많이 깎여야 될 인간들. 그럼에도 가장 사랑하시는 분들을 보내시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더 깎여야 될 인간인데 그럼에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보내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W양 : 여군은 군여다. 군대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여군이 아니라 군여로 바뀌어야 한대요. 군인이 일단 먼저 되고 여자로써의 군대에서 자질을 발휘해라. 먼저 여자라서 특혜를 받기보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군인이 되어서 나중에 이제 여자의 자질을 발휘해라. 그런 의미입니다.
휴가는 어떻게 보냈나. 복귀 심정은 어떤가.
H양 : 잠이 제일 그리웠어요. 또 교회 오는 것이요. 함께 훈련받은 친구들은 휴가 때 다들 놀러나가는 것을 바랐지만 저는 교회 나와서 예배드리고, 사람들 만나는 일이 가장 그리웠어요.
W양 : 7초처럼 느껴지는 일주일동안 정말 꿀 같은 시간을 보냈어요.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건 라면을 먹으면서 음악 크게 틀기.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과자 먹으면 핸드폰 통화하기. 그리고 침대 위에서 팝콘과 함께 영화 보면서 스르르 잠들기. 길 걸어가면서 왼손에 베이글 오른손에는 커피 마시면서 노래 들으면서 가기. 웃을 때 고개 젖히면서 웃기. 보통여자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겠지만 저는 이런 소소한 것들에 큰 기쁨을 느끼면서 휴가를 보냈어요. 일단 복귀하면 뭐든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물을 얻고 싶어요.
K양 : 복귀하면 2주간의 유격 훈련이 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 유격 훈련 자체를 생각하면 복귀하는게 두렵기도 하지만 거기서 어떻게 역사하실까? 어떻게 나를 가까이 해주실까?라는 생각을 하면 설레기도 해요.
대한민국 근현대사 시리즈 4권 89페이지에 ‘지금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깨어 기도하는 지휘관 한 사람이 절실한 때입니다. 지휘관의 깨어 있는 기도는 핵폭탄보다 더 큰 위력이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세계선교의 진원지가 되어 구속사의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든든한 병거와 마병이 될 평강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P.S. : 여군을 준비하는 평강의 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시면서 K양이 이메일을 손수 적어주셨다. nangmyun2@naver.com 냉면 2그릇이라는 뜻을 가진 이메일이라고 한다.
인터뷰: 김서진, 임혜령, 박성환, 이혜지
사 진: 박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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