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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달려간 보람도 없이 연무에 젖었던 금정산
1. 일자 : 2011. 11. 6 (토)
2. 장소 : 금정산(802m)
3. 행로 및 시간
[동문 주차장(12:22) -> 동문(12:32) -> (금정산성) -> 망루 바위(13:19) -> 제 4망루/의상봉(13:28) -> 원효봉(13:44) -> 북문(14:00) -> 샘(14:18) -> 고당봉(14:27) -> 금샘(14:43) -> 북문(15:07) -> 범어사(15:40) -> 주차장(16:00)]
4. 동행 : 홀로
< 금정산 산행을 준비하여 >
연초에 일년 산행계획을 세우며 다짐한 것 중 하나가, 경상도 산에 많이 가자는 것이었다. 4월 남산, 금오산 5월 내연산을 다녀와 경북 소재 산은 목표를 달성했으나, 경남의 산은 상대적으로 기회가 닿지 않았다. 가뜩이나 안내산악회에서 제안하는 횟수가 적은데다, 거리도 멀어 선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무언가 결단이 필요하다는 마음이 들 무렵, 금주 일요일 동강산악회에서 금정산을 간다기에 일단 예약을 했다. 요번주도 어김없이 ‘주말 비’가 예보되어 있으나 가을비가 오면 얼마나 오겠냐는 생각과 여전히 구라청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는 기상청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여 계획을 강행하기로 한다.
금정산은 태백산맥의 끝자락에 해당하는 산으로, 주봉인 고당봉은 800미터 초반의 화강암의 봉우리이다. 북으로 장군봉, 남쪽으로 상계봉을 거쳐 백양산까지 산세가 이어져 있고, 그 사이로 원효봉, 의상봉, 동제봉 등의 준봉이 나타난다.‘금정산 산정에 샘이 있는데 물이 늘 차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으며 색이 황금과 같다. 금어(金魚)가 5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하고, 그 산 아래 절을 지어 범어사(梵魚寺)라 이름했다' 한다.
금정산이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선정된 이유는 ‘산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비교적 웅장하며 도심지 가까이 위치한 시민들의 휴식처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역사적으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의 산으로서 호국사찰 범어사와 우리나라 5대 산성의 하나인 금정산성이 있음. 낙동강 지류와 수영강의 분수계(分水界)를 이루고 있음’이다.
가야 할 산 길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산악회에서 제시하는 코스는, 낙동강 인근의 화명동이라는 곳에서 출발하여 동문으로 오른 후 금정산성을 따라 서문과 북문을 지나 정상인 고당봉에 닿고 범어사로 내려오는 것으로, 4시간 30분의 시간을 예상해 본다. 지도를 보니 갈래길이 하도 많이 가름이 잘 되지 않는다. 갈 길이 먼데 산 길의 상(像)도 그려지지 않는다. 걱정이다.
< 희망사항 >
우리나라 대도시는 어김없이 산에 둘러 쌓여 있다. 서울은 북한산, 대구는 팔공산, 광주는 무등산, 대전은 보만식계 그리고 오늘 오를 부산은 금정산. 모두가 그 도시의 진산이다. 이 정도이면 대도시의 성립 요건 중 하나는 산임에 틀림없다. 서울만 보자면 북으로 북한산, 남으로 관악산의 호위를 받으며 그 사이에 한 강이 흐리고 있는 형상이다. 소위 명당의 조건으로의 산과 강의 어우러짐은 분명하다. 부산 역시 금정산이 길게 도시를 호위하고 있고 낙동강이 흐르니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서울만큼 그 형상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평소 내게는 먼 관심 밖의 영역이라 생각한 탓이리라. 오늘을 기점으로 부산의 산에 대하여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지기를 희망해 본다.
지도를 여러 번 들여다 보아도 산악회에서 제시한 코스가 그려지지 않는다. 길의 경우의 수가 너무 많고 갈림도 많은데다 도로까지 엉켜 있다. 부산에 산복도로가 많다더니 금정산까지도 이어지나 보다. 하여간 산에서 굽어보는 낭만의 도시 부산에 대한 기대가 크다. 금정산은 부산 시가지에서는 보이지가 않는다 한다. 그런데도 부산 사람들은 그 금정산을 부산의 진산으로 알고 있다. 지표에 가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뿌리는 뿌리인 것이다.
지난 주말도 비가 왔고, 이번 주말도 비 예보가 있다. 지난 주는 주중에 비를 예보했으나 금요일 상황은 토요일 흐림이었으나, 막상 토요일은 비가 내렸다. 그 때문에 사업부 체육대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파하게 되었다. 아침부터 먼 거리를 이동한 사람들은 기상청과 주체 측을 원망스러워 했다.
이 번 주도 주초부터 비 예보가 있다. 그것도 토, 일요일 모두다. 이번에도 일기예보가 틀렸으면 좋겠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일기예보에 대한 내 생각을 피력하면, ‘예보 능력이 없으면 주간 예보는 하지 말고, 오늘과 내일 예보에만 충실 하라.’는 것이다. 올 들어 특징적인 기상청 예보의 패턴은 거의‘주말 비’다. 예상치 못하게 큰 비가 내려 피해가 나면 비난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일단 비 예보를 하고, 실제로 비가 안 오면 그만이라는 판단이 우선인 것 같다. 사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주말 장사로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안내산악회, 행락지 주변 음식적, 숙박업소의 피해는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기상청이 각성해야 하는 이유다.
비옷을 배낭에 챙기며 바라보는 창 밖은 어둠 속에서 내일의 하늘 상황을 가름하기 어렵다. 평소에도 별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하늘을 통해 내일 날씨를 예측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진다. 현대인의 삶은 점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음이 도처에서 목격된다. 산은 험해도 애써 나아가면 ‘길’은 있으니 위안이 된다.
(이상은 산행 전 준비상황을 기록한 것이고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부산 가는 길에 >
일요일 아침. 차창으로 바라보는 여명에는 비의 흔적이 없다. 새벽에 비가 오고 갠다고 하더니 믿은 내가 바보다. 간 밤, 하늘로 간 친구 생각에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에야 겨우 조각 잠을 잤다. 어제 오전 T에게서 온 전화로 K의 죽음을 통보 받았을 때, 순간 머리가 띵했다. 오랜 시간 서로 연락은 없어도, 카톡 속 꽃 사진에서 그의 건재를 짐작했는데, 그 짐작은 나만의 바램이었다. 속으론 몰라도 겉으론 늘 밝은 그였는데, 무엇이 그를 죽음 그것도 자살로 몰고 갔는지는 몰라도 그의 부존은 나를 허망하게 만들었다. 친구라 하면서 자주 연락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T와 의정부 절에 모셔진 그의 흔적을 찾아 가기로 하면서 자주 연락하자는 말을 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비가 떨어진다. 친구의 혼령이 내 마음에 감응하는 것일까? 더욱 처량해 진다. 멀 길, 버스에서 그의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복정, 제법 굵어진 비를 피해 고속도로 밑에서 비로 피하며 버스를 기다린다. 처음 하는 처량한 경험이다. 버스에 올라 탄다.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40여명의 산객들이 버스 안을 메웠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수명 모드로 돌입한다. 차창 밖으론 여전히 비의 흔적이 느껴진다.
여주 휴게소 작은 정자에서 피난민 마냥 산악회에서 주는 아침을 먹었다. 멀건 미역국, 준비하는 사람은 아니라 하겠지만 성의 없는 음식이다. 부산까지의 5시간 남짓,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동영상 강의도 듣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졸다가 자다가 보니 어느덧 대구를 지나고 낙동강의 지류들이 차창으로 보인다. 청도란 도시가 인상 깊다. 산 밑으로 아늑하게 자리잡은 도시의 높임새와 앉음새가 매력적이다. 언젠가 다시 찾아보고 싶어진다.
양산을 지나 낙동강을 건넌다. 강폭이 넓어지는 것이 곧 바다로 이어질 듯하다. 금정산은 부산을 남북으로 길게 가르는 산인데, 부산항은 금정산 끝에서 양분되는 두 줄기 갈래가 양팔을 벌려 감싸 안듯 바다를 품 안에 거두어들이고 있다. 금정산의 산세로 인해 부산항 안의 바다 수심이 그만큼 깊어졌으니, 부산항이 세계적 천연 양항이 된 까닭에는 금정산이 있었다.
양명동을 지나 산성도로를 구불구불 오른다. 산으로 길이 나 있는 것이 남한산성을 연상시킨다. 산악회 대장의 ‘박통표 산성막걸리’ 자랑에 길에서 10여분 소비한 끝에 12시가 훨씬 지나 오늘 산행의 들머리 동문 부근에 도착하였다.
< 동문에서 고당봉 >
12시 20분 동문 부근 공터에 내렸다. 비가 멈춘 것인지 잠시 소강상태인지 하늘이 열린다. 정식 주차장이 아닌 길에 내린 탓으로 주변이 어수선하다. 작은 성문 위로 성곽의 돌담이 보인다. 5시간 넘게 좁은 차 안에 있었던 탓으로 온 몸이 찌뿌드드하다. 마음 먹고 준비 운동을 해야지 하고 몸을 푸는데 앞서 가는 산악회 일행들을 보고는 마음이 급해져, '길을 걸으며 몸을 풀자’ 하는 마음이 들어 일단 걷기 시작한다. 이 놈의 조급한 습관은 언제쯤 고쳐질지. 늘 걱정이다.
금정산은 국내 그 여느 산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큰 규모의 성곽지를 머리에 이고 있다. 동문 부근 성곽은 보수 중인지 금줄이 쳐 있다. 소나무가 울창한 붉은 색 황토 길을 돌아드니 산책로 수준의 널따란 길이 이어진다. 연무가 옅게 피어나고 있고 주위는 한적하다. 걷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길이다.
< 동문 전경 >
작은 언덕을 내려서자 동문이 나타난다. 홍예문 위로 문루가 솟아 있다. 깃발도 꽂혀있는 정식 성곽이다.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의 그것에 비해 규모가 작아서 일까, 이상하게도 지도상으로 늘 상상하고 그리던 곳인데 막상 실물을 보니 별 감흥이 없다. 사실 준비 과정이 실제 행사보다 더 즐거운 경우가 많으니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진 찍고 주위를 둘러 보는데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니다. 우비를 챙겨 입는다.
다시 걷는 길 평지가 이어진다. 길가 나무데크 위에 산악회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식사를 하고 있다. 순간 배고픔이 느껴진다. 아침에 먹은 어설픈 미역국 한 그릇으로는 산행에 필요한 에너지로 턱없다. 길가 바위 위에 자리를 잡는다. 빵과 과일 몇 조각과 자스민 차로 허기를 달랜다. 먹는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는 에너지 보충이 우선일 듯 하다. 밥을 먹고 나서 걷는 걸음에는 언제나 힘겨움이 묻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음식 먹느라 에너지가 급격히 소모된 상태에서 다리가 다시 길에 적응하는데 힘에 겨워서 일 것이다. 속도를 죽여 길에 나를 적응시킨다.
< 늦가을 진달래 >
< 의상봉 가는 길 1 >
평지 수준의 흙 길이 길게 이어진다. 간간이 길가에 바위들이 보인다. 그 바위 밑에 때늦은 아니 때가 너무 이르게 진달래 꽃 잎 하나가 피어있다. 연분홍 빛깔이 제대로다. 묘한 감흥이 인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시기에 찾아 든 불 같은 사랑, '인디언 썸머(본 뜻은 늦가을에 찾아 온 짧은 여름 같은 날)' 란 말이 떠오른다.
무심으로 길을 걷다가 문뜩 이곳이 남한산성 아닌가 하는 착각에 주위를 돌아 본다. 성곽만으로 볼 때는 남한산성과 별 차이가 없다. 돌아 보는 길, 산 중턱에 연무란 놈이 걸려 있고 그 밑으로 오전에 지나 온 산성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언덕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부산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사방이 트여 개방 감이 참 좋다. 아, 여기는 부산 금정산 이구나 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눈 앞으로 가야 할 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망루 뒤편으로 기묘한 바위 봉우리 하나가 주위를 압도하며 서 있다. 이곳은 제 4망루, 뒤 봉우리는 의상봉이다.
< 망루 방위 >
< 의상봉 가는 길 2 >
길 좌측으로 돌담이 길게 이어진다.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는 못해도 이 또한 금정산성의 일부일 것이다. 자연스러운 멋이 있다. 길은 데크 길로 이어진다. 이 고개를 넘으면 망루가 나타날 것이다. 연무란 놈이 점점 짙어진다. 경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 제 4망루에서의 전망 >
망루에 도착했다. 우측으로 연무에 젖은 부산 시가지의 전경에 눈길이 자주 간다. 날씨만 좋다면…… 참 아쉽다. 산지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너른 평탄지대가 이어진다. 우측으로 의상봉 방향으로 향하는 길의 흔적은 있으나 아무도 그리로는 가지 않는다. 비도 오고 가다 보면 길도 끊어졌을 것이라 스스로 판단하고 망루 좌측 편한 길로 발 길을 돌린다. 원효봉으로 향하는 긴 계단 길을 오른다. 제 4망루를 지나며 가족 단위의 행락객이 자주 눈에 띈다. 비 옷도 입지 않은 딸내미 두 명을 데리고 길을 나선 부부의 얼굴에서 행복이라는 표정을 읽는다.
< 원효봉 가는 길 >
< 북문에서 >
1시 44분 원효봉에 올랐다. 고도는 678미터 오늘 오른 첫 봉우리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설명 판에 비친 내 모습이 새삼스럽다. 연무에 젖은 나무데크 길을 걸으며 비 속에서의 낭만을 느낀다. 이왕 내리는 비, 마음을 열고 한껏 즐겨보자 하는 마음을 먹는다. 2시에 북문에 도착했다. 등산문화탐방지원센터까지 있는 제법 너른 공터가 나타난다. 이곳이 산 속인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이제 고당봉을 향해 오른다. 도중에 금샘으로 향하는 갈림이 있었으나 무시하고 길을 오르자, 작은 샘터를 지나며 긴 계단이 이어진다. 곧이어 나타나는 암릉의 흔적, 이곳이 오매불망 오고 싶었던 부산의 진산 금정산의 정수리이다. 연무란 놈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지만 안개 속에서나마 작은 성취감을 느껴본다.
< 고당봉 정상 부근에서 >
< 고당봉에서 범어사 >
부산항을 일구어놓은 뿌리의 뿌리, 금정산의 뿌리는 가지산맥이라 했는데 정상에 서도 그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정상석도 나들이 온 행락객에게 뺏기어 사진 한 장 없이 정상을 내려온다. 길을 망설이다 정상을 넘어가기로 한다. 금샘을 보고픈 마음에서 이다. 금정산의 또 다른 뿌리가 확인해 보고파진다. 울릉도에서나 볼 수 있는 나선형 계단을 내려간다. 길은 오를 때와는 달리 좁은 고삿길이다. 관목 숲을 헤치며 한참을 돌아 밧줄이 놓여 있는 바위지대 위에 섰다. 이 위에 금샘이 있었다. 커다란 바위 위에 물 웅덩이가 있다. 금정산의 기원이다. 그 크기에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이 역시 작은 성취감을 주었다.
< 금샘 >
비에 젓은 금샘 바위를 내려 오는 것은 고역이었다. 줄을 잡아도 비에 젖은 바위는 발 딛기가 만만치 않다. 다시 관목 숲을 헤치며 북문으로 향한다. 동문에서 오를 때는 소나무 이외에는 나무 구경을 하기 힘들었는데, 이쪽 길은 수목의 밀도가 꽤 조밀하다. 잎이 아직 푸른 것으로 보아 계절이 서울보다 보름 이상 늦다. 사잇길로 나와 한참을 더 내려가자 북문이 나왔다. 시간은 3시가 넘어 가고 있다. 하산을 위해 북문을 통과한다. 문뜩 금샘을 들르지 않았다면 오늘 산행이 무척 심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만한 내리막 길.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많아 진다. 비 오는 날에도 도시의 산은 붐빈다. 붉은 단풍잎과 푸른 나뭇잎이 공존하는 숲을 30여분 내려서자 범어사 절 집 지붕이 보인다. 하산 길에 산사의 후미진 속살을 둘러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을 따라 절 집의 지붕이 이어지는 풍경이 보인다. 그 뒤편으로는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문뜩 오늘이 토요일 이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범어사 이곳 저곳을 한가롭게 드나든다. 대웅전 외에도 약사암 등 각기 다른 부처님을 모신 건물이 산재해 있다. 대웅전 앞 마당에 석탑이 보인다. 그 앞쪽으로 지나온 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경험에 기뻤고 비에 빼앗겨 버린 풍광이 아쉬운 하루였다.
< 범어사 전경 >
< 에필로그 >
도심의 산, 금정을 오르며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았을 산성을 보며, 이 산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았을 아주 먼 선조를 생각해 본다. 인류는 200만년이라는 긴 역사 중 약 99%를 원시 상태에서 생활했다. 어떤 이의 글에 의하면, 원시에서의 삶은 '감성이 우선시되고 이성은 나중이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게 중요하고 당장의 이익을 선호하는데 이는, 한 달 후는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절박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남을 따라 하는 것이 내 뜻에는 반하는 경우가 있을지는 몰라도 생존을 위해서는 안전하다.' 오랜 시간 이런 심리적 상태가 고착된 것이 인간 유전자에 남아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다. 원시 무리의 결속을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뇌가 진화한 결과다. 이런 원시에서도 나와 같이 무리를 벗어나 비 오는 날 새로운 경험을 위해 산을 헤매고 다녔을 사람이 있었을까? 상상의 나래가 엉뚱한 곳으로 향한다. 취산벽, 나의 방랑벽은 비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경지가 이르렀다. 미친 것과 좋아하는 것의 경제가 모호해 진다. 난 이미 산에 미쳤나 보다.
어두워지는
차창 우측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밀양, 삼량진, 김해를 지나 청도로 길은 이어진다. 범어사 출발 1시간 남짓 만에 대구를 지난다. 놀라운 속도다. 대구-부산 고속도로 덕을 본다. 이후
물론 김천, 감곡, 여주 부근에서 정체가 있었으나, 버스는 서울을 향해 순항했다.
오늘 산행을 되돌아 본다. 높이래야 고작 800미터 초반이지만 국토의 끄트머리에 듬직하게
버티고 앉아 야단스럽지가 않게, 등 뒤에 낙동강이 소리 없이 흐르듯이 그렇게 묵직하게, 중후하게, 어질게 솟은 산, 바로
그 산이 금정산이었다.
금정산성 동문에서 시작된 길에 비가 내렸고, 잘생긴
소나무가 호위하는 길은 남한산성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제 4망루와
의상봉을 지나며 모습을 드러낸 부산 시가지는 연무에 젖었고 가야 할 길이 드러났다. 북문을 넘어 정상으로
향하는 길 빗줄기가 세지고 덩달아 바람도 불었다. 정상에서의 풍광은 상상으로 화려한 날을 그리고 범어사로
하산했다. 하산 길에 이 산의 명명의 근본, 금샘을 볼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먼 길을 달려 고작 3시간 40분 산행을 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다음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새기며, 늦은
밤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