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와 이별한 이유
소임 이동으로 또 짐을 싸게 되었다. 스스로 좋아 나선 보따리 인생이지만 짐 쌀 때마다 총량 초과 짐 보따리에 힘이 들고 반성이 된다. 달랑 가방 두 개면 좋으련만 훨씬 넘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제 정말 늘리지 말아야지, 또 한 번 결심한다.’ 적게 가지면서 지구 살리는 일에 수도자인 나 부터 솔선수범 실천해야 할 일기도하다.
오늘 20여 년 동고동락한 애지중지 클래식 기타와 헤어지기로 했다. 2,000원 폐기물 접수 용지를 부착해서 문밖에 두면 가져갈 만한 분이 가져가시는 것을 보았다.
국민학교 시절 꿈도 많았다. 선생님을 할까? 문학도가 될까? 가수가 될까? (학예회 때 전 학년 대표로 뽑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고 실기는 언제나 100점이었다) 꽤 크도록 아무것도 못되다가 성당과 하느님을 만났다.
성소聖召에 뜻을 두고 그 모임에 가 보니, 눈이 큰 예쁜 수녀님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가르쳐주셨다. ‘오 기타…! 그 순간 결심에 불이 들어왔다. ‘내가 언제가 널 배우리라’ 입회해보니 동기 중에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노래면 노래, 악기면 악기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다. 기타는 기본이었다. 양성소 시절 오르간 반주를 배웠다. 사도직에 필요할 것이란 수녀회 측 교육 차원에서. 그런데 오르간 마스터는 자신이 없었고, 이미 내 마음 저곳엔 오매불망 기타가 있었다. 어렵사리 수련장 수녀님께 독학을 청했다. ‘수련기 때는 무얼 배우기보다는 하느님과 공동생활을 더 열심히 배워야 한다“라며 딱 거절했다. ‘오냐, 좋다. 서원만 해 봐라.’라고 결심했다. 드디어 서원했다. 만학도라 신학 철학 공부도 따라가기 바쁜데, 방학하자 시간만 나면 기타를 잡고 손가락 허물이 몇 번 벗겨지도록 연습했다. 소리가 나고 노래가 되고 정말 경이롭고 재미있었다. 원장 수녀님 왈 “저년 저 지독한 년”이라고 욕을 해도 칭찬으로 들렸다.
백 명도 넘는 우리 반 신학생 중에는 기타 신동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그중 고수는 딱 한 명이었다. 노래 제목만 대면 그냥 신들린 사람처럼 기타를 치는 그였다. 꿈이 상향 조정되었다. ‘옳지, 나도 저 신학생처럼 되리’ 신학생이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라고. '헉~~'
2005년에 난생ㅍ처음 원장 신부님 소개로 정말 좋은 클래식 기타를 샀다. 레슨 선생님의 빽으로 가격도 좋고, 사이즈 좋고 음향은 정말 감미로운 천상 수준이었다. 파주의 기타 장인 이수용 선생이 만든 수제 기타였다. 원장 신부님 개인 레슨을 오던 날에 맞춰 나도 석 달 레슨도 받았다. 실력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기회의 축복이 한꺼번에 왔다. 하느님 말씀 성경과 만난 것이다. 너무너무 진하게. 그 뒤로 더러 기타를 잡고 노래할 때도 있었지만, 성경의 재미와 유익함 보람에 비하면 기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점점 성경은 가까워지고 기타는 멀어져갔다.
멀어져 간 이 친구(기타)와 이제는 헤어질 상황이다. 나는 이사를 너무 자주 다니고 있고 기타는 꽤 큰 덩치를 차지하고, 그러다가 이 사랑스런 기타의 목이 부러지는 사건도 있었다. 부러진 목을 수선하기 위해 파주까지 들고 가서 수리했다. 고친 이 기타의 음색은 처음 것과 영 딴판이었다. 나의 마음이 더 떠났던 이유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 성경 말씀에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한 때, 성경을 꽤 이해하고 사는 것도 따라주고 하면, 성경을 트로트를 접목하여 ‘전국 트로트 성경 피정’을 하고 싶었었다. ‘나는 한때 학예회에도 뽑힌 탈렌트가 아니던가?’ 게다가 나는 특정 트로트를 성가화聖歌化하는 재능이 있다. 가령,‘ 갑돌이와 갑순이는 한마을에 살았더래요.(에덴 동산) 둘이는 서로서로 사랑했더래요. 그러다가 갑순이는 바람이 났더래요. 시집간 날 첫날 밤에 달 보고 울었더래요. 갑순이 마음은 갑순이뿐이래요.(핵심) 갑돌이는 분이 났지만, (분한 마음에 장가 가버릴까도 생각했지만=랩) 순정을 지켰더래요. 갑돌이 마음은 갑순이 뿐이래요. 겉으로도 안으로도 갑순이 뿐이래요.(가장 핵심) 이쯤 되면 이 가사는 완전 성경 한 권의 핵심 내용으로, 하느님의 지고지순한 순정에도 불구하고 갑순이의 불륜과 부정은 밥 먹듯공기 마시듯 반복하는 것이 구세사의 역사이다. 현재는 더더욱.
그런데 이 방면에 이미 선구자가 있었다. 개신교의 구자억 목사님. 그런데 살짝 뜨다가 요즘 가라앉은 것을 보니 트로트는 아닌가 보다.
기타 고수가 될 것을 꿈꾼 것도 허황하지만 성경을 원숙한 경지로 이해하길 바랐다니, 하느님과 교회가 웃을 일이다. 이제 하나 둘 정든 것 소중한 것을 심지어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때가 되었다. '나의 친구 기타. 그냥 보내기 섭섭하여 기념사진을 찍고 이 글을 바친다. 너와 만났던 날 그 황홀한 음색에 감탄했던 기억, 몇 곡 애창곡을 꽤 오랫동안 마음 껏 불러 본 추억, 나를 행복하게 해 준 너 정말 고마웠어 잘가~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누군가의 품으로 부활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