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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체운정대 해외 원정보고서 2 입니다.
로체홈페이지에서 로그인이 안되서 여기에다 올립니다.
식사를 마치고 모두 식당 앞에 모였고 소영이만 없어서 대장님께서 소영이를 찾았다. 그래서 내가 아까 하늘 쌤께서 소영이를 불러서 어디 데리고 갔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서 하늘 쌤과 같이 있어서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라다크 LEH 시장 풍경이 좋아서 사진을 찍었는데 대장님께서 나한테 화를 내시며 소영이 어디갔냐고 한번더 물어보셨다. 나는 그 때 애들 진료를 하다가 하늘 쌤이 소영이를 블러서 나가는 것만 보았는데 그래서 본 것을 알려드렸고 본것 밖에 없는데 어디갔는지 나에게 여러번 물어보셨다. 확실히 말하자면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소영이가 어쩌피 하늘 쌤과 어디 갔다오시는 것 같아서 어른이랑 같이 가기에 ‘괜찮겠지?’라고 생각했고 대원이 사라졌는데 사진 찍은 것은 확실히 내가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장님께서 소영이가 없어진 것을 내가 다아는 것도 아닌데 본 것만 말했을 분인데 나한테 뭐라고 하시는 건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억울하게 욕먹은게 비참하고 내 자신한테 미안했다. 호텔에 도착하면서도 도착해서도 소영이와 하늘 쌤이 어디간 건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억울하고 비참한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보니까 하늘 쌤과 소영이가 내 룸메이트인데 방 키가 하늘 쌤한테 있어서 방에서 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정원에서 계속 있었다. 그리고 나서 하늘 쌤과 소영이가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행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식당으로 가다가 납치 당할 수도 있어서 키를 받으러 갈 수가 없었고 하늘 쌤과 소영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큰 물방울이 내 눈에 맺히는 것이었다. 이날 나는 서럽고 어이 없고 나 자신에게 미안해서 울었다. 진짜 왜 내가 하늘 쌤과 소영이가 없어서 숙소에 못 들어가고 무슨 짓을 했기에(사진 찍은거 빼고)이렇게 피해(?)를 봐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른 애들이 들을 까봐 누군가가 볼까봐 소리내지 않으며 울었다. 그런데 그 때 박사님 께서 지나가시다가 뭔가 우는 것을 아셔서 ‘괜찮아?’라고 하시며 ‘무슨일이야?’라고 물어봐 주셨다. 그런데 괜히 남들이 알게 할 일이 아니다 싶고 울고 있다가 그치고 나면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마음정리도 되고 그래서 일부러 말씀을 안 드렸다. 내가 괜찮다고 해서 박사님께선 그나마 안심이 되셔서 혼자만의 시간을 낮게 하도록 자리를 피해주셨다. 로체에서 우는 일이 없고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우는 일이 생기니까 나 자신한테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박사님께서 가시고 나서 몇 십분 뒤 드디어 하늘 쌤과 소영이가 와서 나는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잠깐 쉬고 나서 의료지원 팀은 9시 전에 정원으로 내려가서 진료 준비를 하였고 9시에 대원들이 모두 모이고 나서 준기는 산소포화도와 혈압을 측정하고 (김)성준이는 체온 측정하고 나는 상태체크와 차트 작성하고 박사님은 처방을 해주시고 혜민이는 처방한 약을 기재하는 업무를 맡았다.
- 사실 원석이가 의료지원 팀인지 몰랐었는데 이날 알게 돼서 미안하지만 일 단 대기시켜두기로 하였다.
대장님, 탐사대장님, 박사님, 서포터즈 쌤들과 9기 대원들을 모두 진료와 처방을 끝낸 후 9시 45분에 김박사님께서 준비해오신 PPT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발표해주시며 한 말씀 해주셨는데 우리들이 아픈 이유는 정신 상태가 안 좋아서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선 잠자리도 좋고 쉽게 이것저것 사고 사먹고 인도보다 시설이 좋았는데 잘 지내다가 인도로 와서 고산지대고 힘들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박사님께서 고산병에대해 말슴해주셨다. 고산병 중에는 급성 고산병(AMS)이 있는데 대부분 저절로 호전 된다고 한다. 고산병 을 치료하는 방법은 첫번째 하산, 두 번째 산소 공급, 세 번째 약물 치료가 있고 고산병 예방을 위한 수칙이 몇가지 있는데
1. 천천히 걷는다.
2. 무리하게 고도를 올리지 않는다.
3. 저녁 식사량을 줄인다.
4. 수분 섭취를 한다.
5. 몸을 따뜻하게 한다.
라고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아직 크게 오지 않은 고산병이 심하게 오지 않기 위해 박사님께서 알려주신 예방법을 실천 하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느감배 시간을 가졌다. 나는 인도에서 이렇게 좋은 호텔에서 자게 될 줄은 몰랐는데 좋은 호텔에서 자게되서 좋았고 인도 라다크의 관광지(?)인 산티스투파 사원과 왕궁을 갔다올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지만 저녁에 대장님께서 혼났을 때 나 자신도 원망스러웠고 괜히 말했구나라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더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고 오늘 하루 김박사님과 탐사대장님께 감사드리고 내가 절실히 요구하는 게 생겼다.
혁준이가 느감배 발표를 했는데 너무 서로에게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관심있게 좋게 보기로 하였다.
- 7. 24. 수
기상시간은 7시 30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6시 20분에 일어났다. 역시 나는 시차 적응을 잘하나보다:) 내가 일어나고 보니까 어젯밤에 일기를 쓰다가 잠을 자버린 것이었다. 일단 다시 잠을 잤고 7시 20분에 일어나 7시 반부터 대원들과 서포터즈 쌤들 그리고 이대장님, 박사님, 탐사대장님을 상태 체크하고 아침 운동 후 8시에 아침식사를 했다. 밀크티와 함께 아침식사를 끝낸 후 물통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9시 10분에 공동 장비 정리를 하고나서 택시를 타고 11시 45분에 스톡 빌리지로 떠났다.
- 나중에 직접 내손으로 밀크티를 만들어 먹고싶다. 인도에서 먹었던 맛 그대로~!
- 인도 북부의 앗셈 지역이 가장 가우량이 많다고 한다. -> 라다크 => 인크레더블 인디아
* 11시 45분
- 과정주의☆☆☆ : 과정을 충실히 하자. 내용에 충실하지 않는 사람은 불만이 있다.
- 원정대 온 목적이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물어보고 알아가며 역할에 주어진 것을 잘하자
- 자기 내실이 쌓여지는 것이 최고다 =>인사성☆★☆
- 오늘부터라도 긴장하고 불확실성을 생각하고 메모를 열심히 하자!!
LHE에서 11시 45분에 출발하여 스톡 빌리지에 12시 25분에 도착하였다. LEH에서 스톡빌리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고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톡빌리지로 가면서 라다크 LEH의 의회도 보고 담도 보았는데 LEH의회는 하얗고 서울 시청과도 맞먹을 만큼 크고 깔끔했다.(겉보기로 봤을 때) 그리고 자연을 이용해 담을 만드는 것은 독특하고 본 받을 만한 모습이었다. 발전하고 있는 세계에서 자연을 이용한다는 것은 보기 좋은 일이다. 한국에서도 자연을 잘 이용하여 외국인들에게 좋은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 우리 문화가 전파되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사라져 가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면서 다리를 건넜다. 왜냐하면 매우 넓고 굵고 길은 강이 흘렀기 때문이다. 고지대에 강이 흐른다는 것이 신기했다. 강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안했었기 때문이다. 강을 건너면서 다리 위를 지나는데 수백 수만개의 타르쵸가 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바람에 철럭이는 타르쵸의 모습이 멋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했었으면 진짜 멋있었겠다. 태국기를 여러 가지의 색을 칠하고 한강 다리에다 쭈욱 걸어놨다고 생각해보면 한국의 특별한 장소가 또 하나 만들어질 것이다. 강을 건너 스톡빌리지로 계속가는데 돌멩이들이 쭈욱 경계선처럼 나열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들은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이곳에서 땅 주인들이 자신의 땅이 어디까지인지 파악 할 수 있게 하기 위한것이라고 한다.
점 점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집들도 있고 논도 있고 나무도 있고 강과 개울이 흐르는 곳으로 들어가는데 LEH의 시내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던 나무들을 보니 싱싱한 잎사귀들을 볼 수 있어서 인도의 봄(봄은 아니지만 봄 같은)을 볼 수 있었는데 그 풍경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장소이고 장면이기에 좋았다.
또 별로 집이 없었는데 그 마을에 고등학교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있기에 이 마을에 고등학교가 있고 또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그 고등학교에 다닐지 궁금했다. 확실히 말하자면 내 마을은 초/중학교 밖에 없다. 마을에 애들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나는 내가 사는 정선군 안에 있는 정선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지낸다. 정선군도 라다크도 산지인데 우리 마을 보다 작아보이는 라다크에 있는 작은 마을이 고등학교가 있는 게 다시 한번 놀랄 일이다.
고등학교를 지나 쭉 가면서 목장을 볼 수 있었다. 인도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일상 생활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 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집에 다양한 동물들을 두고 싶었다. 옛날에 우리 집에서 염소들도 키웠다는데 태어나기도 전에 염소들이 사고뭉치여서 더 이상 안 키운다고 해서 아쉬웠다. 고등학교와 목장을 지나 몇 분 더 가서 12시 25분 스톡 빌리지에 우리들은 도착 할 수 있엇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시간 걸리거라고 하셨는데 1시간도 안되서 스톡빌리지에 도착하였다.
PM 1시 14분 텐트치고 텐트 배정을 받고 짐을 옮겼다. 그리고 몇 분 뒤 비가 왔다.(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반복적으로 여우비가 왔다.)식량팀은 요리를 하기 위해 부엌 텐트에 갔다. 1시 37분 식당텐트(파란색, 큰 텐트)로 집합을 하였다. 오늘 점심은 라면이었다. 식량팀이 부엌에서 셰르파(?)에게 라면 끓이는 법을 알려주고 또 하는 라 고생이 많았다. 다만 아쉬웠던 건 라면에 계란이나 스팸을 넣을 수 잇엇는데 깜박하고 못 넣었다는 것이 아쉬웠다. 셰르파들은 우리가 점심으로 먹은 라면을 난생 처음 봐서 놀라워 했다. 나는 셰르파들이 놀라워 한다는 것과 아직 라면을 모르는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그리고 유럽이나 미국 대부분은 한국 음식이 많이 퍼져있고 라면도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알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 아침부터 아프던 하늘이는 밥 먹을 시간이 돼서 말이 술술 잘 나왔다. 상태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고 아픈 애들이 적어진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2시 45분에 트래킨을 하기 위해 트레킹 준비를 하였다. 2시 58분 스틱을 배분하였다. 트레킹 하기 전 대장님의 말씀을 들었다. 대장님께서 부초, 부평초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부초, 부평초의 뜻은 이리 떠다니고 저리 떠다니는 풀(물 위에 떠있는 풀) 인데 이리저리 방황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이셨다. 도한 로체 원정대 자체가 HIGH CLASS이기에 집중이고 공부고 하나 하나 다 받아들이라고 하셨다.
대장님께서 한 가지 말씀을 더 하셨는데 우리들이 받은 스틱의 높낮이를 장비 팀만 조절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조절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모든 스틱은 땅에 눕히지 말고 세워 놓고 쉬라고 하셨고 돌에 스틱이 끼면 바로 올리라고 하셨다.
3시 10분 트레킹 준비를 다하고 출발을 하였다. 출발하면서 평지를 걷다가 소똥도 피하고 개울도 건넌 다음 쭈욱 가다가 4시 15분에 4000m에 도착하였다. 4000m까지 올라오면서 하늘 쌤과 (오)성준이가 고산에 걸려 겨우 겨우 힘들게 도착하였다.
4000m에서 먹는 트윅스는 완전 꿀 맛이었다. 루토스(가이드)한테도 나눠주고 싶었는데 나 하나 먹고 연석 쌤 하나 드리니까 끝이 나버렸다.
- 타르쵸와 쵸르텐이 헷깔릴 때가 있는데 타르쵸는 깃발이고 쵸르텐은 흭색 탑이다. 스톡 빌리지까지 오면서 봤던 그 큰 흰색 탑들이 다 쵸르텐이 었는데 쵸르텐은 만물은 하나다. 즉, 이원성의 종립을 가리키고 초르텐 맨 꼭대기에 초승달과 해가 함께 있다.
우리가 도착해서 쉰 곳은 능선이었는데 바람이 잘 불기 때문에 타르쵸가 있었다. 타르쵸가 바람에 날려 멀리멀리 전파하길 원하듯이 우리(정하와 나) 부모님께 내가 무사하고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있다고 멀리 멀리 내 말이 부모님께 닿길 바랬다.
능선에서 쉬면서 건너편 능선을 보니 바닐라 아이스크림(인지 호두마루인지)과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을 혼합시킨 것 같았다. 원래 아이스크림 같은 건 잘 안 먹는데 이 날 만큼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바닐라와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이 내 입속으로 들어온다면 완전 행복할 것 같다.
5시 1분 우리들은 출발했었던 스톡 빌리지로 다시 내려갔다. 내려 갈 때는 대원들 서로 서로 거리를 두어 뒤꿈치로 땅을 밟으면서 돌멩이들이 쌓여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평지에 도착했을 때 어떤 꼬마 애들이 우리가 올라갔던 길을 아무런 장비도 준비 안한 채로 평상복을 입고 산이 놀이터인 듯이 막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라별로 지역별로 노는 관점, 노는 범위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스톡 빌리지에 도착하기 전 아이들 3명(남자 3명)이 지나갔는데 하늘이가 아이들 3명에게 과자를 3등분으로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웠고 부끄럼을 탔는지 인사를 했는데 거리를 두고 빤히 보는 것이었다. 또 재미있는 일이 있엇는데 하늘이가 과자를 나눠주며 두 손으로 받으라고 했다. 어떤 아이가 한 손으로 받으려 했는데 안 주자 두 손을 내밀어서 과자를 받을 수 있었다.
스톡 빌리지 앞에 매점(상점)이 있었는데 매점 앞에 승려(Mong)가 있었는데 승려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6살 때부터 시작했다고 하셨다. WOW 지금은 26살이라는데 20년 동안 승려생활을 하셨다는 것이 대단하였다. 이곳에서는 가족 중에 형제가 많으면 한 사람이 꼭 승려가 된다고 한다. 영훈이가 tdfu에게 삶이란 무엇이냐고 물어봤는데 답을 못 듣고 우리들은 승려와 헤어졌다. 그리고 6시 15분 스톡 빌리지에 도착하였다.
- 라다크 LEH의 스톡 빌리지에서 구름, 하늘, 비, 해를 동시에 볼 수 있었는데 진짜 장관이 멋있었다. 싱싱한 나무들과 황폐한 곳도 대류권에 걸린 구름도 푸른 하늘도 눈부신 햇빛도 이 모든 것을 다 함께 보니 한국에서 언제 볼지도 모를 한 장면이었다.
- 고산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물을 마시라는 이유가 혈관을 확장 시켜주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었다.
6시 20분 진찰 시작을 하였는데 (오)성준이 헛구역질하고 열도 나고 두통도 있었고 (김)성준이는 열이 좀 많이 낫다. 6시 55분 35분이 지난 후에야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7시 46분 저녁 식사를 하고나서 8시 15분에 식사를 마쳤다.
유림이,(오)성준이, (김)성준이는 아파서 저녁을 먹지 못했고 찬희와 혁준이도 아팠지만 그래도 찬희는 잘 먹어주었고 혁준이는 소식을 하였다.
- 오늘 저녁은 승우, 재황이, 그리고 정하가 요리를 해주었다.
9시 55분 느감배 시간을 가졌다. 아픈 애들은 못움직이는데 안 아픈 애들은 신나서 노니까 좀 아쉬웠다. 자신들이 안 아프다고 놀아도 되는 건가? 약간씩 장난을 칠 수 있다쳐도 시끄럽게 놀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좀 아쉬웠던 건 아픈 애들이 밥도 못 먹었는데 챙겨주지 안고 자기 일만해서 좀 아쉬웠다.
오늘 고마운 점은 종건이의 성실한 면을 볼 수 있었는데 가장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솔선수범하게 열심히 해주었다.
그리고 재혁이가 혼자 팔 팔 하다고 장난 쳤던 것이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 고산증 때문에 힘든 사람들은 푹 쉬어서 컨디션 회복했으면 좋겠고 건강한 사람들은 열심히 해주었으면 우리 원정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나는 로체 원정대에서 ‘좋아한다.라는 게 내 이상형(?)이 아닌 대원으로서 믿음이 가고 친근하고 한 번 밖에 없는 동료라서 좋아한다 인데 진짜 우리 로체 원정대 대원들이 정말 믿음직스럽고 좋은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열심히도 안하고 믿지 못할 사람이 나와 같은 로체 대원이라면 진짜 대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정하와 오늘 말싸움을 했다. 나는 정하가 나를 이해 안 해줘서 아쉬웠는데 정하도 내가 정하를 이해 안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정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보지 않아서 서운하고 정하가 싫었는데 좀 더 내가 정하를 이해해주자는 다짐을 했다.
오늘 느감배 시간이 소중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대원들의 느감배 발표가 끝나고 김 박사님께서 한 말씀 해주셨다. 개인마다 생각이 틀리지만 모두의 생각의 접전에서 이해하는 마음을 갖자고 하셨다.
그리고 1차 원정 발표보다 시적 감상적인 발표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원정하면서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알고 개인적으로 지원하게 된 동기가 잇을텐데 그것을 자신이 이루어가고 있는지 체크하고 단체적 생활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공자가 길 가장자리에서 똥싸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길 가운데서 사는 사람에게는 화를 안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길 가장자리에 싼 사람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라서 화를 냈고 길 가운데서 싼 사람에게는 화를 낼만 한 가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는 박사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대원들을 생각하고 존중하지 못한점이 아쉽고 미안했다. 그리고 느감배를 할 때마다 중간 중간에 다른 애들의 느감배를 들을 때 못한 말이 생각나서 대원들에게 해주지 못해서 아쉬웠다.
밤 11시 30분에 취침을 하였고 오늘 나랑 같은 텐트에서 자는 소영이와 함께 우리 로체 9기의 장/단점과 부족한 것들이 무엇인지 대화하였다.
- 7. 25. 목
5시 30분에 기상했다. 5시 반 전에 깨어 있었는데 비가 와서 늦게 일어날려 했다. 그런데 준기랑 하늘 쌤이 나를 깨우러 오셨다. 준기는 딱 맞춰 5시 30분에 나왔는데 내가 시작부터 게을러서 너무 죄송했다. 어제 내 일을 잘하기로 했었는데…….
모두의 상태 체크를 다한 후 6시 20분에 아침 산책을 했다. 그런데 형준이가 오늘 따라 상태가 너무 않 좋아 보였다. 아침산책을 하면서 쭈욱 가면서 목장을 지나고 나서 초르텐을 발견했다. 초르텐을 보니 진짜 해와 달이 있었다. 우리들은 초르텐 주위를 왼쪽으로 한 바퀴 돌은 후 스톡 빌리지로 돌아갔다.
7시 30분 아파보이는 애들을 다시 체크했다. 그래서 종석이 오빠, 소영이, 민섭이, 원석이 이렇게 제일 상태가 안 좋은 대원들을 수시로 상태를 보았다.
7시 45분까지 아침식사를 먹고 성준이와 유림이, 혜민이 그리고 완석이에게 산소 공급을 해주고 나서 대장님 말씀을 들었다. 메모 할 때 팁을 주셨는데 여러 가지 비교하며 메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 식사를 마치고 식당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스톡빌리지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는데 고도에 따른 경계선이 잘 보였다. 구름은 어느 높이에서 멈추어 내려 오지 않았고 산은 눈이 덮여있는 곳과 풀 있는 곳 메마른 곳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비는 오는 듯 마는 듯 오락가락했다.
9시 20분 카고 짐을 다 싸고 배낭과 카고를 한 곳에다 다 모여 두고 나서 우리들의 캠프로 말들이 모였다. 말들은 말들의 발이 줄어 묶인 채 맛있게 풀을 시식했다. 그리고 나는 영훈이와 함께 말 구경을 하였고, 장갑을 끼고 말을 만져보기도 하였다. 말은 뒷다리 힘이 세서 뒤에 있으면 큰일 나기 때문에 말 얼굴 쪽에서 말을 쓰다듬었다. 아침에 코피가 약간 나서 코에 휴지를 끼어 넣고 영훈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이 순간을 찍을 수 있고 기억에 남길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좀 더 말 머리를 쓰다듬다가 대장님께서 말한테 가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래서 말과 떨어졌다. 조심히 하고 있었는데 대장님께서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씀하셔서 서운했지만 대장님께서 우리를 챙겨주신다는 것이 감사했다.
준비하는 시간에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고 몇 몇 대원들과 얘기하거나 서포터즈 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찬희가 다른 애들은 일하는데 왜 가만히 있냐면서 뭐라고 했다. 근데 일하지 않고 대화하고 있는 다른 대원들도 있는데 자꾸 나한테 뭐라 하는 것이었다. 나도 도와줄 땐 도와주었고 할 일 있나 찾았고 다른 대원들이 일하는데 몇 몇 대원들은 쉬고 있어서 일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대장님께서 특정한 대원을 대면서 일을 시키셔서 나는 쉬고 있는 대원들 중에 그래도 아픈 애들한테 가서 기분 좀 나아지라고 좀 힘내라고 말장난이나 장난을 쳐주고(심한 장난 말고), 말동무도 되어주고 그랬는데 그런 것들도 보지 않고 특히 나만 계속 뭐라해서 속으로 끓었다. 찬희도 아픈데 그래서 신경이 서있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애가 고산증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 걸 거야’라고 하면서 계속 다듬다가 가끔씩 못 참을 때가 있어서 그 때는 그냥 무시하거나 반박을 했다. 그래서 내가 ‘아픈 애한테 왜 이러나?’ 생각 할 때도 있었고 ‘진짜 내가 누나인데 얘가 나를 동갑이나 막내 다루는 식으로 막 대하지?’라고 생각도 했다. 누나 형들이 화도 안내고 그냥 웃어주고 착하게 해주니까 막나가나 싶었다. 그래도 누나 형 생각 좀 해줬으면 좋겠다. 자기만 아픈 것도 아니고 다들 고산증 때문에 신경이 서있을 텐데 자신 생각만 하다보니까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나의 대원이니까 시간이 지날 때마다 대원들의 좋은 점을 보려했고 좋게 생각했다.
- 고도적응하는 것은 진~~짜 중요하다!!☆
- 나를 바꾸자. 배우고 알고 행해라.
10시 6분 드디어 스톡빌리지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약 50분 뒤 10시 53분에 잠깐 휴식을 가졌다. 고산증 때문에 뒤처진 애들이 있었는데 5분, 10분, 20분 뒤에야 애들이 도착하였다 .
-> 10시 53분 : 대원 9명, 가이드, 대장님 도착
-> 10시 55분 : 완석이 도착
-> 11시 : 찬희, (오)성준 도착
-> 11시 05분 : 연석 쌤, 혜민, 재혁, 예지, 하늘 도착
-> 11시 10분 : 준기, 유림 도착
-> 11시 20분 : 형준이, 종석이 오빠 지원 쌤, 혁준이, 박사님 도착
대장님께서 오늘의 KEY WORD는 고도의 집중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트레킹 하면서 집중하면서 걷고 보고 느끼는 것을 잘 적으라고 하셨다.
- 메모는 진짜 중요!☆
> 자신한테 부정적인 생각하지 말자!!
- 기키소소 라르겔로 = ‘힘내’ 라는 뜻이다. 가이드한테 ‘등산할 때 힘든 사람한테 힘내라고 어떻게 말하냐?’라고 물어보았는데 힘내라는 말은 없지만 유사한 말을 알려주었다.
다 같이 모여서 휴식을 가진 후 시간이 지나자 11시 42분에 다시 출발하였다. 가다가 경사진 오르막길을 가면서 40보가고 쉬고, 60보가고 쉬며 12시 20분에 4010m까지 올라왔다. 능선에서 대원들과 함께 뒤처진 대원들을 기다리면서 말들이 짐들을 싣고 강을 건너고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말을 이끄는 사람도 셰르파인 줄 알았는데 대장님께서 그냥 홀스맨이라고 하셨다. 대장님께선 재치 있으시게 당나귀를 이끄는 사람을 돈키맨이라고 하셨다. 다른 말도 있을 것 같은데 대장님 말씀도 맞는 말이었다.
12시 40분에 다시 출발하였고 13시 15분에 다시 휴식을 가졌다. 가면서 고산증 증세가 좀 났다. 천천히 걷고 크게 숨 쉬고 일정 타임으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천천히 걸었다.
- 다른 대원들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다른 대원들이 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고산증이란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나게 만들었다. 또 계속 모두들 힘드니까 좀 더 힘내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13시 37분에 다시 출발을 하였다. 가다가 15분 만에 다시 휴식을 가졌다. ‘힘내자!! 금방이다!!!’라고 생각하고 다시 올라갔다. 가면서 두 번 더(2시 20분/ 3시 20분) 휴식을 가졌고, 휴식을 가지면서 MITRA CAFE라는 슈퍼 비슷한 상점 앞을 지나갔는데 상점 앞에서 잠깐 쉬었었다. 그 상점에는 깃발이 꽂혀 있었는데 ‘옴’이라고 가장 성스러운 글자인데 그 글자가 깃발에 그려져 있었다.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옴이라고 해서 나는 세 가지의 옴을 알게 되어서 재밌었다.
- 옴 -> 1. 전염성이 매우 강한 피부질환
-> 2. 오메가, 옴 ohm의 기호 Ω
-> 3. 가장 성스러운 글자
오늘 첫 번째 경사가 있는 길과 두 번째 경사가 있는 길을 올라갔는데 힘들었는데 올라가다가 바위에 ‘No Pain, No Gain' 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3시 55분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오르막길 정상에 도착을 하였다. 정상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난 세로로 된 지층을 볼 수 있었다. 태양이 앞에 보이는 능선에 숨어들어갈 때 능선에서 빛이 나서 멋졌다. 진짜 나중에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정상에는 타르쵸가 있는 곳에 Keep Mountain Clean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곳에서도 다른 산들과 마찬가지로 쓰레기 버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아쉬웠다. 정상에서 쉬다가 마저 걸어갔다.
6 시 5분!!! 드디어 4400m에 도착을 하였다. 우리가 오늘 지낼 곳인데 이름은 마노카로 였다. 우리는 3800m에서 4400m로 즉, 600m나 올라왔다는 것이다!!!거리로는 600m도 더 되었겠지만 우리가 600m나 되는 높이를 올라왔다니!!! 언제 도착하나 언제 도착하나해서 드디어 도착해서 기쁘고 슬프고 그랬다. 마노카로까지 올라오면서 고산증이 다른 때 보다 심해서 고산증 잊으려고 크게 노래도 부르고 다짐도 하고 도전도하고 ‘악!!’ 소리도 내고 그랬는데 얼마나 열심히 해서 이곳 까지 왔다는 것이 훌륭했다. 도착 했을 땐 진짜 힘겨웠는데 너무 힘들어서 ‘내가 왜 이곳까지 와야 되지?’라고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가도 신경이 서서 속에서 욕도 하고 속도 안 좋고 도착한 다른 애들은 힘든 대원 생각을 안하고 떠드니까 싫었다. 도착했을 때 셰르파가 끓여준 레몬티를 마시며 속도 재우고 마음도 가다듬었다.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좀 서글프게 울었었는데 진정하고 심호흡하고 생각 좀 쉬게 하고 나니까 많이 나아졌다.
나는 내가 힘들어도 캠프에 도착해서 대원들의 건강 체크를 해준 것이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다만 건강 체크를 할 때 우리들이 늦게 도착해서 바로 밥 먹을 상화이었기에 밥 먹기 전에 재야 혈압도 제대로 나오기 때문에 지금 재야했는데 예지, 재혁이, 준기 이외 몇 몇 대원들이 왜 지금 하냐고 투덜댔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내가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대원들이 아프면 등산이하기가 더욱 더 힘들어지니까 묵묵히 대원들 상태를 체크를 했다. 그래서 진료를 잘 마쳤다.
다만 형준이, 완석이, 현복이, 승우, 유림이가 아파서 수시로 체크해야 했다. 그리고 형준이, 완석이, 현복이, 승우, 유림이를 포함해서 이대장님, 김 박사님, 탐사대장님, 연석 쌤, 하늘 쌤께 산소를 주입시켜 드렸다.
오늘 풍경들이 신기했다. 산들도 지각 변동에 의해 나온 작품들이고 나무가 하나도 없으며 오직 풀만 있어서 지대가 평평하다면 초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까 전에 마노카로에 도착하기 전에 오르막길 정상과 마노카로 포함)
9시 40분 취침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고산증이 다른 때보다 심해서 숨을 크게 쉬어보고 너무 힘들어서 지원 쌤께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막사님께 약을 얻어서 먹었는데 누우면 도저히 숨쉬기가 답답한 것이었다. 그리고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대장님을 도와드리고 뜨거운 물을 도와드리고 뜨거운 물을 넣은 수통을 받아서 발에 대고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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