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2년 12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이 가까운 4호선 삼각지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위원장을 비롯해 2인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삼각지역-서울역-사당역-삼각지역을 오가며 ’장애인권리 무정차 규탄! 23년 장애인권리예산 반영 촉구! 247일차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벌이던 모습. |
ⓒ 권우성 | 관련사진보기 |
지난 2월 27일,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스티커들을 일렬로 서서 떼고 있는 서울메트로환경(서울교통공사의 자회사) 소속 청소노동자들의 사진을 봤다. 전날(2.26) 서울교통공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스티커를 부착하는 행위로 청소노동자들의 고통이 막심하다", "권리 주장한다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지나간 후에는 청소 노동자들의 고충이 숨어있"다고 밝혔었다.
이때 '청소노동자들의 고통'은 전장연이 지하철 승하차 시위 때 그들의 요구사항을 알리기 위해 승강장 벽과 바닥에 붙인 스티커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한 청소노동자는 <아시아경제>에 이렇게 말했다. "(스티커 제거를 위해) 분무한 약이 눈에 들어가 병원에 가는 이들이 많다. 약품이 너무 독해 눈에 들어가면 진물까지 나온다."
'스티커 제거' 지시한 주체는 왜 빠져 있나
큰사진보기 |
▲ 서울교통공사 측이 2.26일 '서울교통공사, 삼각지역 전장연 시위 스티커 제거 나섰다' 제목으로 낸 보도자료. (화면갈무리) |
ⓒ 서울교통공사 | 관련사진보기 |
사실 '전장연 탓에 청소노동자들이 고생한다'는 서울교통공사의 보도자료에는 빠진 맥락이 있다. "미관을 저해할 뿐 아니라 미끄럼 사고 발생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스티커들을 떼라고 지시한 주체가 바로 서울교통공사라는 점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청소노동자들에게 직접 지시했다기보다는 그들과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서울메트로환경에 하달했을 것이다. 서울메트로환경이 1~4호선 역사 청소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서울메트로환경에 업무를 하달하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건 어쨌든 청소노동자다. 서울교통공사는 정말 청소노동자들이 겪게 될 고통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혹시,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외면한 건 아닐까?
지난 2월 14일, 삼각지역 미화 업무 팀장과 직원 3명이 스티커 제거 후 남은 자국을 지우기 위해 휴식시간까지 거르면서 일했다고 <머니투데이>는 그다음 날 보도했다. "삼각지역이 지난해부터 기피 근무 지역이 된 지 오래"('전장연 스티커' 덕지덕지…"약 뿌리고 긁어도 안 떼져" 청소와의 전쟁, <머니투데이>, 2023년 2월 28일)라는 한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로 짐작건대, 삼각지역 청소노동자들에게 이런 상황은 일상이 된 듯하다.
물론 다른 역사의 청소노동자와 지하철 보안관 등이 이 작업을 거든다. OBS에 따르면, 지난 2월 27일 삼각지역 스티커 제거 작업에 투입된 청소노동자 15명 중 4명만 삼각지역에서 근무하고 나머지는 인근 역에서 차출된 인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삼각지역 청소노동자들의 가중된 업무를 경감해주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떼어내야 할 스티커들도 많고, 그 스티커를 떼는 데도 오래 걸리는 와중에, 매번 이렇게 많은 인력이 동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25일치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역사의 청소노동자 인력배치 기준을 "1322㎡(400평)당 여성 노동자 1명"으로 규정한다. 이 기준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삼각지역에 배치된 4명가량의 청소 인력도 이 기준에 맞춰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하철 역사에 청소할 인력을 배치할 때 면적만 고려해선 안 된다. 오히려 유동인구를 면적보다 더 우선순위로 둬야 할 때도 있다.
통상 지하철 역사는 아무리 청소를 자주 해도 쉽게 더러워지는 구조다. 정해진 시간마다 오가는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승객들이 끊임없이 이용하고, 때로는 쓰레기를 버리기 때문이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할 일이 더 늘어난다. 역사 바닥이 물기로 흥건해지고, 신발자국도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교통공사 설명처럼 "미관을 저해할 뿐 아니라 미끄럼 사고 등"을 유발하므로 가능한 빨리 제거돼야 할 요소들이다. 업무량이 이전보다 배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삼각지역은 4·6호선 환승역이자 대통령실 인근 역사이기에, 지하철 이용객이 일반적인 역사들에 비해 많은 곳에 속한다.
그럼에도 수많은 현장에서는, 청소인력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유동인구를 절대 최우선의 고려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면적만 고려하면 유동인구가 아무리 많아도 인력을 늘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력은 곧 비용이다.
큰사진보기 |
▲ 서울교통공사 측이 홈페이지에 '27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 경 청소 노동자와 보안관 등 30여 명 작업 예정'이라며 올린 작업사진 모습. |
ⓒ 서울교통공사 | 관련사진보기 |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 삼각지역에 배치된 4명가량의 인력은 어쩌면 청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수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바닥이나 벽에 붙은 스티커까지 떼야 한다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또한 산재의 위험에도 쉽게 노출될 것이다. 실제로 한 노동자는 "손목이 너무 아퍼"서 '뼈주사'(스테로이드 주사)까지 맞으며 일한다고 <데일리안>과 인터뷰했다.
한편 청소노동자들이 눈 질환에 시달리고, 호흡기나 피부 질환 등을 우려하는 이면에는 이들이 독한 화학약품을 다룰 때에도 보안경, 화학약품 전용 마스크 등의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못하는 작업관행이 자리한다. 사업주가 위험한 업무를 지시하고도 이에 대비할 환경을 마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명하다. 안전장구 구매는 곧 비용부담으로 직결된다.
'제대로 된 안전장비 미착용'은 서울교통공사가 알린 삼각지역 미화 작업에서도 관찰된다. 지난 2월 27일 스티커 제거 작업 때 언론사들이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진 속 청소노동자들은 KF-94 등의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었다.
안전장비 미착용한 청소노동자들 모습... 사용자는 책임 다했는가
현재 삼각지역 청소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은 확실히 열악하다. '평상시라면 하지 않아도 됐을 일'을 해야 하는 그들 입장에선 전장연이 스티커를 그만 붙여주길 바라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와 서울메트로환경 측은 전장연 탓만 해선 안 된다. 전장연의 시위 방식과 무관하게, 그들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질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자가 정형외과를 가야 할 만큼 일의 강도가 급속히 증가한다면, 사용자는 인력을 새로 충원해야 한다. 화학약품을 다뤄야 하는데 안전장구가 없다면 사서 지급해야 한다. 만약 안전장구를 지급했음에도 노동자가 착용하지 않고 일한다면, 쓰도록 감독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서울교통공사가 작성한 보도자료에는 사용자가 청소노동자들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 얼마나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다했는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