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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수건
원나연
(019-9335-6775, 2607-6775)
내 몸 위에서 이리 저리 웅크리고 뒤척이던 옷, 샴푸, 빗, 때타올 등이 빠져나갔습니다.
지퍼가 활짝 열린 목욕가방 속으로 환한 빛이 들어왔습니다. 좁은 가방 속 밑에 깔려 숨조차 쉬기 어려웠던 나는 그제야 번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이고, 시원하다. 어머, 이게 뭐야?”
물에 오래 불렸는지 손가락 마디가 쪼글쪼글하고 하얀 다섯 손가락이 나를 들어올렸습니다.
새어나온 샴푸 자국이 얼룩진 채, 내 몸에 흥건한 물이 톡, 톡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축 늘어진 나를 보고 아주머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에구머니, 목욕탕 수건을 그냥 갖고 왔네. 이를 어째.”
아주머니의 고개가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갸우뚱거렸습니다.
“아얏!”
세숫대야 속에 던져진 내 몸 위로 찬물이 끼얹어졌습니다.
“이왕 가지고 온 거, 마침 걸레도 부족하니까 걸레로 쓰면 되겠다.”
‘투두둑’
비틀린 몸 사이로 물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어찌나 세게 몸이 뒤틀렸던지 그만 눈앞이 까마득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방이 온통 어두웠습니다.
‘여기가 어디지?’
두 눈을 대굴대굴 굴려 보아도 어두워서인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습니다.
“저 아이가 정신을 차린 모양인데요.”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조용한 어둠 속에서 낯설게 들려왔습니다.
눈이 어두움에 익숙해 질 무렵, 옆에 있는 수건들이 보였습니다. 나는 뒤늦게 인사를 했습니다.
“안, 안녕하세요? 여, 여기가 어디죠? 혹시 목욕탕은 아니겠죠?”
“뭐? 오호호호호오. 그래. 너는 목욕탕 출신이라 이거지?”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한 음 더 높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기지개를 활짝 펴 최대한 비틀어진 몸을 조금이라도 펴보려 애썼습니다. 그래야 옆에 있는 수건들을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요.
내 바로 옆에 있는 수건은 그러니까 분명 수건은 수건이 아니었습니다. 온 몸이 낡고 헤져서 실타래가 풀어진 듯 귀퉁이는 갈래갈래 갈라지고 색은 바라다 못해 군데군데 타서 조그만 구멍들이 나있었습니다.
“얘. 뭐하니? 걸레 할머니께 인사드려야지.”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나를 채근했습니다.
“네? 걸, 걸레요? 아! 네. 안, 안녕하세요? 걸레 할머니. 전 깨끗한 사우나에서 온 수건이라고 해요.”
나는 걸레 할머니를 보고 놀랐던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인사했습니다.
“뭐, 수건? 수건 같은 소리하네. 넌 지금부터 걸레야, 걸레. 알겠니?”
“네? 걸레요? 제가 걸레란 말씀이세요?”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내 소개를 할 차례인가? 내 이름은 세르니 몽이야. 난 프랑스 파리에서 왔지. 보다시피 난 싸구려 면으로 만들어진 너랑은 질적으로 차원이 달라. 프랑스 제일의 고급 순면 100%, 엄선된 고급 코마사 60, 명주실로 고급적인 마크와 글씨가 수놓아진 고급 타올이야.”
걸레는 황홀한 듯 미소를 머금고 오랫동안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얘야, 내가 어디 출신이라고?”
“목욕탕에서 온 걸레야. 내 몸에 새겨진 마크가 무슨 실로 만든 거라고?”
눈이 감길라치면 재차 묻는 통에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난 프랑스 파리에서 온 걸레를 수다쟁이 걸레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던지 수다쟁이 걸레도 피곤한 모양이었습니다.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웅얼거리면서 마침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나는 수다쟁이 걸레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걸레 할머니의 낡고 바란 몸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파란색 몸뚱이가 나처럼 비틀려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수다쟁이 걸레가 말한 마크나 글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쿨루욱 쿨룩”
낡은 꽃무늬 치마를 입은 할머니가 들어왔습니다. 할머니는 빨간 욕실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내 수다쟁이 걸레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세숫대야에 물을 받았습니다.
할머니는 수다쟁이 걸레의 몸을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빨래 비누를 한번 쓱 하고 문지르더니 양 귀퉁이를 잡고 비볐습니다. 다시 수다쟁이 걸레의 몸이 길게 늘어뜨려졌습니다. 볼품없이 축 져진 수다쟁이의 몸은 걸레 할머니처럼 군데군데 조그만 구멍이 뚫려져있고, 글자인지 마크인지 모를 무늬에 실이 들떠 있었습니다.
“크아아아악. 캭!”
할머니가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연거푸 내더니 가래를 퉤 뱉었습니다.
“아아아아악!”
곧 수다쟁이 걸레의 찢어질 듯 요란한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우. 이렇다니까. 가래를 나한테 다 튀기면 어떡해요?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뭐가 부족한 건가요? 말해 봐요. 말해 봐요. 말 해 보라고요. 오우. 세상에!”
수다쟁이 걸레는 제정신이 아닌 듯 고래고래 악에 바쳐 소리쳤습니다.
할머니는 아는지 모르는지 수다쟁이의 몸을 물에 헹구어 내더니 꼭 비틀어 물기를 뺐습니다.
잠시 뒤, 욕실 의자에서 일어선 할머니는 수다쟁이 걸레를 내동댕이치고 황급히 나갔습니다.
곧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얘야. 이제 그만 하려무나.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잖니.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으면 않을수록 너만 더 힘들어진단다. 이 쓸모없는 늙은이 대신 온갖 일을 다 하면서도 그렇게 미련을 못 버리니, 원.”
수다쟁이 걸레는 더 흐느껴 울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를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저 할멈이 저래도 인정 많은 사람이란다. 할아버지가 처음 사준 꽃무늬 윗도리였던 날 며느리가 버리고 싶어 안달 내도 저렇게 못 버리는 거 봐라. 지금이야 다 늙어 자꾸 깜빡해 그러지 원래는 좋은 사람이란다. 네가 걸레가 된 것도 다 깜빡하는 저 정신머리 때문이지. 호호. 오늘은 또 뭘 올려놓고 삶다가 다 태울꼬.”
걸레 할머니의 위로 때문인지 수다쟁이 걸레의 흐느끼는 소리가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다음 날, 수다쟁이는 다시 활기차게 수다를 늘어놓았습니다.
“ 이 집에서 우리를 가장 아껴주는 사람은 아저씨 뿐 이라는 걸 알아둬. 아저씨는 우릴 괴롭히는 일이 없으니까. 그리고 ......”
수다쟁이걸레가 떠드는 사이에 키가 자그마한 남자아이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습니다.
‘툭, 툭’
짧게 오줌 방울이 떨어지더니 금세 쏴아 봇물 터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변기 뚜껑을 열지 않아서 오줌 방울이 군데군데 튀었습니다.
“이런, 저 녀석들이 며칠 없어서 살만했더니 어느새 돌아온 모양이군. 학교 수련회라는 게 열흘 정도는 해야 되는데 말이야.”
수다쟁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아까 나갔던 남자아이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남자아이는 변기 뚜껑을 열지 않은 채로 다시 ‘툭, 툭’ 오줌 방울을 떨어뜨리더니 이내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오줌방울을 군데군데 튀었습니다.
“왜 저 아이는 오줌을 두 번이나 누지요?”
수다쟁이 걸레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지금 들어온 아이는 아까 들어온 아이랑 달라. 둘이 쌍둥이거든. 네가 여기 오기 전에 있던 걸레를 저 녀석들이 못쓰게 만들었단다. 글쎄 온 몸에 유성 물감을 묻혀 놓았지 않았겠어. 아주머니가 몇 번 빠는가 싶더니 결국 쓰레기통에 버림받았어. 하찮게 된 내가 싫고 한심할 때도 있지만 버려진다는 건 차라리 하찮은 지금이라도 감사할 정도로 두려운 일이야.”
내가 목욕탕에 있었을 때는 쉴 틈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몸을 닦아주고 머리에 씌워지기도 했습니다. 물에 헹구어지고 땅바닥에 떨어진 물을 닦고, 소쿠리에 던져졌다가 세탁기에 돌려지고, 다시 새로운 사람 몸을 닦아주고. 몸도 마음도 지치는 생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나를 잘 챙기는가 싶다가도 나갈 때가 되면 아무 곳이나 팽개치기 일쑤였습니다. 바쁘고 쉴 틈 없는 생활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누구하나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바깥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
소쿠리에 쌓여 세탁기에 들어가기 전, 난 자주 바깥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목욕탕을 나가 보지 않았으니 생각해 본들 생각 날 턱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바깥세상은 이곳보다 나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바깥세상 이야기를 할 때면 자주 깔깔대며 웃었거든요.
나는 비록 아주머니 실수로 가방 속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그 안에서 중요한 결심을 한 가지 했습니다. 바깥 세상에 나가면 지금보다 더 좋고 더 중요한 일을 하리라 하고 말입니다. 더 좋고,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런 일을 하게 되면 누구든 날 소중하게 여겨줄 테니까요.
하지만 그 결심은 이뤄지지 않을 모양이었습니다. 바깥세상은커녕 목욕탕보다 못한 어두컴컴한 화장실에서 비틀린 채 누워있기만 하니 말입니다
조용했던 집안에 활기가 돌면서 아주머니의 열 손가락이 재빠르게 우리를 빨고 비틀었습니다.
우리는 마룻바닥에 차례대로 던져졌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대청소 좀 하지요. 여보! 당신도 베란다에 있는 낚시 도구 좀 손봐요. 저기 걸레 하나 가져가서 먼지 좀 닦고 하세요.”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아직 제대로 걸레 노릇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다쟁이 걸레도 마른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어디 보자.”
내가 먼저 크고 굵직한 다섯 손가락에 의해 위로 올려졌습니다.
“설마, 날 버리고 가는 건 아니겠지. 오우. 이런, 말도 안돼!”
수다쟁이 걸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습니다.
아저씨는 베란다 문을 열고 나를 문틈위에 걸쳐 놓았습니다.
“낚시도구야 뭐 지난번에 정리해 두었으니까 괜찮고 화초나 좀 들여다봐야겠다.”
아저씨는 화초 줄기에 나를 두어 번 문지르더니 금세 빨래 줄에 나를 매달았습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곧 있으면 텔레비전에서 축구하는 데 말이야.”
아저씨는 나를 남겨둔 채, 베란다 문을 닫고 나가버렸습니다. 나는 멍하니 혼자 남겨졌습니다. 주위에는 여러 개의 화초와 잡동사니 들 뿐이었습니다.
“안녕.”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대꾸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다시 한번 좀 더 큰 소리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역시 아무 대꾸가 없었습니다.
‘지금쯤 수다쟁이 걸레는 뭘 하고 있을까? 쌍둥이들한테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까?’
어느새 수다쟁이 걸레의 수다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조용한 것이 매우 어색하였습니다.
지루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베란다 창문 너머 어둠 속에서 무엇인지 모를 것이 반짝였습니다. 목욕탕에서 보았던 빛과 달리 작지만 더 반짝이는 빛이었습니다. 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바깥세상에 온 실감이 났습니다.
‘저 빛은 어디서 비취는 걸까? 사람들은 저 아름다운 빛 때문에 바깥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웃었던 걸까?’
난생 처음 보는 빛을 오래도록 바라보려했지만, 어느덧 두 눈이 스르르 감겨왔습니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베란다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쌍둥이였습니다. 나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지만, 쌍둥이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쌍둥이 중, 키가 좀 더 큰 아이 손에 처음 보는 물건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멍멍”
물건은 큰 소리를 냈습니다.
“쉿! 조용해! 널 주워온 걸 엄마가 알면 우린 모두 죽는단 말이야.”
키가 좀 더 작은 아이가 손을 입에 갖다 대며 말했습니다.
곧 쌍둥이들은 잡동사니를 뒤적였습니다.
“이사 올 때, 포리 집을 가져왔는데. 분명 여기 어디 있을 거야.” .
잡동사니를 뒤적일 때마다 먼지가 뿌옇게 일었습니다.
“찾았다! 역시 여기 있을 줄 알았어.”
쌍둥이는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우와. 집에 들어간다. 몸집이 작아 다행이야. ”
쌍둥이들은 한동안 가지고 온 물건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자. 여기 밥.”
키가 좀 더 작은 아이가 밥을 수북이 담아왔습니다.
“어? 이거 내 골판지 아니야? 내일 준비물인데 이걸 밥그릇으로 하면 어떡해?”
“그럼 어떡해? 할머니는 노인정 가셔서 없고 내가 밥 그릇할만한 걸 어떻게 찾아. 급한 대로 이거라도 하자.”
쌍둥이들이 툭탁댈 때였습니다.
“아무도 없니?”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 왔다!”
쌍둥이들은 황급히 허둥대며 베란다를 빠져나갔습니다.
쌍둥이들이 개라고 불렀던 남겨진 물건은 허겁지겁 밥을 먹어치웠습니다. 나는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밥을 다 먹어치운 개는 킁킁대며 베란다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곧 베란다 살펴보는 것에 흥미를 잃었는지 개는 잠자코 쌍둥이가 마련해준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창문 너머 어둠이 짙게 깔리자, 자그마한 빛이 반짝였습니다. 개를 지켜보던 나도 이내 흥미를 잃고 자그마한 빛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딩동’
소리에 놀란 개가 아까보다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멍멍”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잠시 뒤, 베란다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아주머니 얼굴 뒤로 쌍둥이가 얼굴을 나란히 내밀었습니다.
“이, 이게 뭐야?”
아주머니의 높은 목소리에 내 몸이 흠칫 흔들렸습니다. 어느새, 쌍둥이 얼굴 위로 할머니와 아저씨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쌍둥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개를 감싸고 말했습니다.
“엄마. 한번만, 이번 한번만 봐주세요. 집 앞에서 먹을 것 없나 두리번거리는데 불쌍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이번엔 잘 키울게요.”
아주머니는 숨을 크게 들이 쉬며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보였습니다.
“포리가 집에 왔을 때도 너희들이 잘 키운다고 하고 어떻게 했니?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오징어를 줘가지고는, 됐다. 됐어! 내일 당장 엄마 눈에 띄지 않게 해라.”
아주머니가 씽하고 돌아서자 찬바람이 불더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아저씨도 어깨를 들었다 올릴 뿐 아주머니를 따라 나갔습니다.
“욘석들. 그새 할미 나간 사이에 일을 저질렀구먼.”
할머니가 쌍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아까 쌍둥이가 그랬듯 낮게 속삭였습니다.
“어디보자.”
할머니는 개를 요리조리 살펴보았습니다.
“야야, 여기 개목 줄 달린 거 안보이나? 어서 이런 얇은 목줄을 매 놓았을꼬. 아무래도 떠돌 이 개가 아닌가 싶다. 몸도 깔끔한 게 암만해도 주인 따라 산책 나왔다가 길 잃은 모양이다. 근데 어째 배가 부른 것이 이상타.”
“밥을 많이 줘서 그래. 할머니. 걱정 마. 이번에는 우리가 정말 잘 키울게.”
쌍둥이는 할머니가 자기네 편이 된 듯 신나하며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빨랫줄에 걸려있는 나를 휙 걷어냈습니다.
“새 걸레 아녀? 쓰지도 않고 왜 여다 걸어 놓았누. 야들아. 이놈 개집에 깔아줘라. 바닥이 까끌까끌해서 몸이 배길 것이다. 주인 찾을 때 까지만도 데리고 있어야지 않겄냐.
쌍둥이는 서로 부둥켜안고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개집 바닥에 깔리게 되었습니다. 개는 내 몸 냄새를 킁킁대며 맡다가 발로 박박 긁어대더니 안심이 되었던지 깔고 앉았습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목욕탕 수건에서 걸레로, 다시 개집 바닥에 깔린 신세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차라리 목욕탕에 있었을 때가 더 나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는 사람구경이라도 했었고, 또 엄연히 하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지금은 걸레가 되었어도 걸레 역할도 하지 못한 채, 개가 깔고 앉는 깔개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주머니는 베란다에 들어설 때면 개를 보며 소리쳤습니다.
“주인 찾을 때까지 만이야! 알았지?”
개도 아주머니를 보면 베란다 주변을 뱅뱅 돌다가도 곧잘 집에 돌아와 주눅이 든 채, 날 깔고 앉았습니다. 개가 날 깔고 앉을 때면, 내 몸 위로 뭔가 움틀 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만있다가도 뭔가가 불쑥 불쑥 움틀 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개가 유난히 나를 발로 긁어대며 끙끙댔습니다. 집안에서 이리 빙글 저리 빙글 돌더니 뭉쳐진 나를 집안에 맞게 평평히 펼치었습니다. 그리고도 한동안 개는 안절부절 못한 채, 끙끙대었습니다.
“끄응.”
거친 숨소리와 함께 뜨거운 것이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이 축축하게 젖어왔습니다. 이상야릇한 기분에 나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개는 다시 한 번 숨을 몰아쉬더니 아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요동쳤습니다. 또 한 번, 나는 뜨거운 것이 와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새, 주위가 고요해졌습니다. 내 몸은 끈적끈적하게 젖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뭔가가 나에게 따뜻하고 몽클한 기운을 나누어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게 뭐다냐. 새끼 아녀. 노인정 갖다 온 새에 새끼를 다 낳았네. 배가 부른 게 뭔가 이상타 이상타 했더니만. 참 말이었구먼. 새끼 갖은 것 마냥 부른 것 같지는 않아서 내버려 뒀더니만, 주인집에 가기도 전에 네가 욕 봤다. 조그만 몸에서 어디 나올 때가 있다고 두 마리가 나왔냐.”
엉거주춤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할머니가 수북하게 쌓인 밥을 개 앞으로 밀쳐놓았습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 쌍둥이 모두가 내 주변, 아니 개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세상에, 이 새끼들 좀 봐. 엄마.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필 아무도 없을 때, 새끼를 낳다니.”
“그러게 말이다. 내가 너무했지. 미안하다. 네가 새끼를 가진 줄도 몰랐다니.”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이러지 말고 안으로 들여갑시다. 새끼들한테 베란다는 추울 테니까. 깔개도 다 젖어 못쓰게 됐는데 버리고 새 걸로 깔아 줘야겠어.”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아직 개가 예민해서 만지면 새끼랑 떨어뜨리는 줄 알고 덤빌 테니까 오늘은 놔두고 내일하기로 해요.”
오랫동안 지켜보던 가족들이 베란다 밖으로 들어갔습니다.
‘날 버린다고?’
마음이 떨려왔지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버려진다는 것은 목욕탕에서 내팽겨질 때처럼 무서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비참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목욕탕에서보다 더 좋고, 중요한 일을 어쩌면 이루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입니다.
내 몸 위에서 작고 따뜻한 것들이 개의 품에 파고든 채, 꼼실거렸습니다. 개는 그 작고 따뜻한 것들을 핥아 주었습니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자그마한 빛이 반짝였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으니 빛이 더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나는 그 빛을 마음 속 깊이 새겨 둘 것입니다. 꿈을 꿀 동안 어떤 어두움 속에서도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