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 註] 이달 10월 9일, 12기 사관 임관 50주년 행사에 즈음하여
먼저 그 간 불철주야 준비에 노심초사하신 회장, 부회장, 총무, 감사
와 운영위원 그리고 무엇보다 현명한 중지를 모아 주신 동기생 여러
분께 깊이 감사를 보냅니다.
임관 50주년을 맞는 대부분의 기수는「성무」지에 그 소회를 올려
흔적을 남겼습니다. 혼자가 아니고 동기생 전체가 주인공으로 역사를
엮어 갔습니다.(2기생 - 고영근, 3기생 - 이현동, 9기생 - 박종권, 10기생 - 이은봉,
11기생 - 서봉철)
12기 사관은 모교 공군사관학교와 모군 공군에 대한 사랑과 감사
그리고 은성회의 정체성 Identity, 역사 History, 우정 Friendship에
촛점을 맞추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미천한 필력과 한정된 지면으로
미치치 못했음을 해량바랍니다.
끝으로 부족하고 서툰 졸문에 격려 주신 동문(기)께 이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예순하나(61) 은빛 별무리는 흐르는 유성이 되어 깜깜한 밤 하늘
저쪽으로 하나 둘 사라져 갑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요.
12기 사관 50주년, 그 발자취
12기 사관 배기준
올해 2014년은 공군사관학교 제12기 사관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 소위로
임관한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먼저 우리를 낳아 준 모교 공군사관학교와 우리를
길러 준 모군 공군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최고의 경의를 표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평생에 한가지 큰 업(業)을 갖는데 우리는 일찌
기 직업 군인으로 조국하늘을 지키는 공군을 선택하였다. 그 길로 가기 위해 공군
의 핵심 간부를 양성하는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한 12기 사관은 '은성회(銀星會)'라
이름하여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은빛 별무리가 되었다.
반세기를 넘어 흘러온 인생(人生)의 강물은 가뭄에 마르거나 홍수에 넘치지 않았
으며 때로는 산이 가로 막아 길이 막히면 돌아갈지언정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 세월속에 은빛 별들은 나라를 지키다가 군인으로 죽기도 하고 혹은 살아 맡은
바 국방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리고 군문을 떠나 일반인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슬
프고 아픈 씨줄과 기쁘고 즐거운 날줄을 서로 엮어 완성한 우리의 역사는 한없이
보람되고 자랑스럽다.
사람의 한평생을 100년으로 본다면 25년 간격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비유
되고 그 계절은 독특하여 봄에는 가꾼 땅에 싹이 트고, 뜨거운 햇볕아래 잎이 무
성하게 자라는 것은 여름이며, 가을에는 열매를 맺고 거둔다. 그리고 그것을 곳간
에 저장하고 땔감을 쌓아 겨울 채비를 한다. 삶도 계절을 닮아 그렇게 변하며 지
나간다. 이제 우리들 나이 70 중반, 겨울의 문턱에 서서 아스라이 우리가 걸어 온
50년의 발자취를 설레이는 마음으로 잠시 뒤돌아 본다.
[봄] 입교, 사관생도 시절
6.25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아물지 않아 가난하여 힘든 시절, 4.19혁명의
여명이 밝아오던 1960년 3월 중순, 우리는 서울 대방동 공군사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그 날 전국 각지에서 여러 차례 선별 끝에 28 :1의 경쟁률을 뚫고 우수자
원 70명이 전연 예측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으니, 어쨌든 이렇게
우연(偶然)으로 시작하여 장차 생(生)과 사(死)를 같이 할 전우(戰友)라는 필연
(必然)으로 묶여지리라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관학교는 나태하고 무질서한 습관으로 부터 새 사람으로 탈바꿈시키는 이글거
리는 용광로다. 어미 독수리가 천길 만길 낭떨어지 아래로 떨어뜨려 살아 돌아 오
는 새끼만 먹이를 주듯이 장차 하늘을 지배할 자의 그 적자생존법도 철두철미하고
여간 냉정하지 않다. 그러니 새끼 후배 눈에는 어미 선배가 스스로 우러러 눈부신
존재로 보였다.
사관학교는 치밀한 지성(知性)과 대담한 야성(野性) 그리고 강인한 체력(體力)을
목표로 전인적(全人的)인 교육을 추구하고 있다.
학교 구석 구석에는 참으로 인성(人性)에 관한 위대한 덕목들이 많다.
우리는 '무용(武勇)'이라는 교훈 아래 생활 계명(戒命)인 '공사10훈(訓)'을 실천하
며 학년별로 복종, 모범, 자율, 지도라는 생활 모토(motto)에 충실하였다.
사관생도는 진리를 구하며 허위를 버리고 고결하고 정직하며 굳세어 꺾이지 않는
강직함, 굴복하지 않는 용기와 더 높은 자존심으로 명예를 지키며 그리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하고 솔선수범하는 희생심을 최고의 가치(core value)로 여기면서 한장
씩 벽돌을 착실히 쌓아 올라 갔다.
그러면서 군인다운 언행(言行)으로 복명복창은 필수이며 행동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했다. 점호, 내무검사, 벌칙보행 그리고 여러가지 기합을 통해 생도가 지녀
야 할 품격 높은 신사도의 궤를 이탈하지 않도록 한치의 틈도 주지 않았다.
당장은 고달팠지만 지나고 보면 언제나 입에 쓴 보약이었다.
정신 교육 뿐만 아니라 육체 훈련 또한 대단했다. 의식주(衣食住)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복장으로 한 솥밥을 먹으며 한 지붕밑에서 잠자고 흘린 땀과 덮어 쓴 흙먼지
를 같은 목욕탕으로 들어 가 서로 등을 밀어주며 고통을 위로하고 웃었다.
사흘이 멀다하고 야간에 M1 집총구보로 시흥교를 돌아 학교 정문 고개를 들어 서
면 1기 선배 고 임택순 대위 동상이 흐릿한 의식속에 가물거린다. 가슴 치는 심장
박동과 단내나는 거친 숨결을 가쁘게 고르며 종착지 생도전대 점호장에 들어서자
아테네의 마라톤 전사가 되어 쓰러진다. 고통을 인내하며 사력을 다한 책임완수였
다. 대장정 행군훈련중 어느 이름모를 길가 풀밭에 드러 누우면 비록 짧은 휴식 시
간이었으나 파란 하늘에 문득 지나가는 흰 구름 한점은 강한 인상으로 남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칠흑같은 그믐밤에 개천을 건너 논길로 달리던 타이거 트레이닝(tiger training)과
관악산 돌파 경기, 무용기 쟁탈전, 3군사관학교 체전 그리고 마지막 여의도 L-19
관숙비행까지 어느 것도 쉽게 비껴갈 수 없는, 정면 돌파로써 가야만 하는 훈련들
이었다.
일석점호가 끝나기가 무섭게 한바탕 밤공기를 가르며 어지럽게 난무하던 군화
발굽소리가 사라지고 온 사방이 조용해지면 멀리서 취침 나팔 소리가 어둠을 타
고 가냘프게 들려온다. 격려로 들리던 메아리가 우리를 갑자기 숙연케 하면서 장
차 군의 지휘관으로 나아가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로 가져야 할 국가관(國家觀)과
사생관(死生觀), 인생관(人生觀)을 재 정립하고 다짐하며 어느 듯 잠속으로 빠져
들곤했다.
그러나 고된 생활만 있는게 아니다. 주말 외출이나 휴가 가는 날은 마음이 들떠
바쁘다. 칼날같은 정모 아래 빛나는 눈빛은 자존심으로 가득차 오히려 도도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길을 주는 까닭은 보무도 당당하고 단정한 외모가 선망의
대상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사관생도를 아끼고 보살펴 후일 나라와 국민을 잘 지
켜 달라는 부탁 같은 기대였었다.
어디 그것 뿐이랴. 공군사관학교의 망토(manteau)는 새의 날개로 그 상징성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고전과 현대미를 고루 갖춘 제복으로 정말 멋있다. 청(靑)과
적(赤)색은 푸른 창공에 붉은 피빛, 즉 무인(武人)으로서 뜨거운 충성심이었으며
그 펄럭이는 날개자락은 낭만이 있어 매우 정열적이고 매혹적이다. 그래서 그 옆
에 나란히 걸어가던 연인과 후일 결혼한 동기생이 적지 않다.
어느 듯 희노애락(喜怒哀樂)으로 뒤끓던 용광로에서 새사람으로 재탄생될 무렵,
그러니까 1964년 졸업및 임관이 다가오는 벽두에 성무대 공군사관학교는 최종적
으로 우리에게 크고(loud) 명확한(clear) 소리로 엄숙히 명령(order)하고 있었다.
그 한마디 명령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신념(faith)으로 굳게 새겨
져 평생 살아 오면서 선택(choice)이 어려워 방황할때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등
불이 되었다. '진리(眞理)에 살고 정의(正義)에 죽어라!'
[여름] 임관, 현역장교 시절
우리는 4년간의 정규 교육을 마치고 1964년 3월 6일 학교 체육관에서 국군 통수
권자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국토와 겨레를 수호하고 장교로서 명예와 긍지를 지키
며 군인 정신으로 희생, 충성, 솔선수범을 당부한 유시에 이어 선서함으로써 61명
이 졸업과 동시에 임관하였다.
졸업과 임관의 첫 의미는 우선 엄격한 피교육자의 모자를 벗어 던지고 자유(自
由)와 책임(責任)이라는 양날개를 달고 둥지를 박차고 야생으로 날아 오른다는 기
쁨이었다.
우리는 조종, 방공관제, 정비, 무장, 보급, 통신, 시설, 수송, 항법, 인사. 정보, 관
리, 교육, 정훈, 보안 분야 특기를 받아 넓고 높은 창공에서, 광활한 비행장의 격
납고에서, 활주로 피해 복구 현장에서, 레이다 사이트(radar site)의 어두운 작전실
에서, 최고 군령의 사령탑에서, 후방지원 군수품의 야적장에서, 군인을 양성하는
연병장에서, 성무대 사관학교에서 그리고 공군본부나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혹은
타 기관의 데스크(desk)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심지어 월남 전쟁터에 파병되기도
했다.
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엘리트 정신은 건전한 우월감과 열정으로 작용하여 조직의
중심에서 모범을 보이며 각 부대를 이끌어 나갔다. 그래서 참모총장을 비롯하여
사령관, 교장, 단장, 전대장, 창장, 대대장등 각 특기의 고위 지휘관이나 부, 감, 실,
처, 과장등 참모직으로 승진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각 특기별
선두 구룹에서 진급하여 그들의 이상(理想)도 함께 실현해 갔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으랴. 어쩌다 꽃다운 나이에 조국 하늘을 지키다가 애기(愛
機)와 함께 순직한 다섯 동기생의 숭고한 죽음은 땅이나 바다가 아닌 하늘에서 불
꽃이 되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장렬하다. 그들의 50주년을 기리고자 여기에 그 처
절하고 장엄한 순간들을 적어 생전의 숨결을 들으며 머리 숙여 그 글을 그들 제단
에 바친다.
1967년 F-86F로 서해 상공에서 전투기동 임무중 조종계통 고장으로 낙하산 탈출
은 했으나 개산에 실패한 첫 순직자 유현웅 대위,
1969년 F-5B로 항공기 수리창에서 고공 시험비행 추격기 임무 수행중 저산소증
(hypoxia)으로 의식불명되어 말 없이 사라진 김재민 소령,
1969년 F-86D로 수원비행장 이륙중 엔진고장으로 추락한 김무영 소령,
1972년 T-33A기종으로 비정상 자세에 돌입, 낙하산 탈출에 실패한 임기수 소령,
1976년 F-5B 엔진고장으로 수원비행장 착륙장주에서 목숨을 바친 박수길중령,
그들은 아침에 맺힌 영롱한 이슬이 되어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다.
[가을] 퇴역, 일반사회인 시절
수십년을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 했던 공군으로 부터 퇴역할 즈음, 그때서야 공군
은 우리를 마다하지 않고 포용하여 우리의 삶을 보호하였다는 것도 철이 들듯 늦
게 깨달았다. 누구나 언젠가는 군문을 떠나야 하는데 그동안 한없는 열정을 바쳤
던 공군과 막상 작별한다는 것은 아쉽고 슬픈 일이며 그 당시에는 섭섭함을 넘어
원망했던 대상이 공군이었지만 그 어떤 부당함이라도 있었다면 공군이라는 조직
이 아니라 구성원의 사람이었었음을 곧 분별할 수 있었다.
군인으로 오래 살아 일반 사회로의 지각 입문은 처음에 당혹했으나 희망과 용기
를 잃지 않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며 또 다른 인생을 찾는데 결코 게으르거나 포
기하지 않았다.
현역으로 우리의 전성기에 통쾌한 한판 승부였던 탑건(Top Gun) 또한 역대 기생
가운데 12기 사관이 제일 많다. 그래서 그런지 민간 항공사에 간 12기 사관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격 획득이 어려운 기장(captain)으로 승급된 일화는 극찬 받아
마땅하다. 12기 사관이 두 항공회사 운항이사로 민항계를 좌지우지했을 때도 그랬
지만 비행기술이 워낙 뛰어나고 신임이 두터워 대한항공 대통령 탑승 항공기 기장
(airline code KE on board Code1, captain)으로 발탁된 동기생은 유일하여 더욱 자
랑스럽다.
성직자의 길로 들어선 동기생, 외교 일선과 국가 정보 기관에서 헌신한 실력자,
박사학위로 대학 강단에 선 교육자들과 학교 재단 이사장, 국내 기업이나 외국
항공회사의 실무 혹은 고문역이나 기업 컨설턴트(consultant)의 중책을 수행한
그 분야 베테랑들(veteran), 공기업이나 레저 산업 사장 그리고 개인 사무실을 연
전문직 대표에게 축하말을 전한다.
수차 사업에 실패했으나 칠전팔기 성공한 불굴의 전설적 제조업 CEO, 노조에 굴
하지 않고 일군 운송업체 사장의 고충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찬사를 보낸다.
친환경 제품을 개발한 도전과 집념의 개척자는 후학들에게 장학금과 아프리카 난
민을 도우고 있으며 어떤 동기생은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사회나 병원에 나가 자
원봉사를 한다. 그 선행들은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큰 박수 갈채를 보낸다.
직업보다 더 절박한 장기 투병자들의 강한 의지와 용기를 보면서 그들에게 아낌없
는 격려와 어두운 터널을 하루 속히 빠져 나와 밝은 햇빛이 비쳐지기를 언제나 기
도한다. 먼저 우리 곁을 떠난 동기생의 자식들은 자랑스런 공군의 아들과 딸로 자
라 국내외에서 이름을 날리며 아버지의 대를 이어 가고 있다. 대견스러울 뿐이다.
외국으로 나간 동기생들은 불모지에서 갖은 고생끝에 자수성가하여 반가운 소식
을 가끔 보내 온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한 인간 승리자에게 소
리 높혀 환호한다.
[겨울] 귀향, 50주년 행사
동서고금을 통해 12라는 숫자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우선 달력을 보면 12달
이며 시계도 12시간이다. 띠도 12짐승이며 1피이트는 12인치, 1실링은 12팬스,
1타수는 12개, 레오날드 다빈치 최후의 만찬도 12제자다. 짝수라 균형이 잡혀
편안하고 안정감이 있다. 1과 2의 숫자는 순서가 나란하여 질서가 있다.
12숫자의 12기사관은 그러한 좋은 정기를 타고 태어났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12기 사관의 칼라(color)는 자유분망이라 해도 무방하다. 독특한 개성은 각각 다
양한 천재성이 번득이고 이를 기꺼이 서로 존중해 주며 용기있는 자의 특권으로
이해한다. 진솔한 대화는 인간미가 있고 자연적이라 뒷끝이 깨끗하다. 시끌시끌
한 난상토론은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니 그야말로 신통하다.
무슨일에나 시작은 어려운 법인데 이러한 자유와 개척 정신은 잘못된 선례를 깨
고 새로운 길을 열어 후배에게 물려 준다. 이 또한 오묘한 12이라는 숫자의 덕분
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50주년 기념 행사도 좀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그 목적은 '감사와 우정'에 두고
사실(事實)과 사리(事理)에 근거하여 노년에 걸맞는 성숙한 판단으로 겉모습에
치중한 허례허식을 버리고 형편에 맞게 내실에 충실하자는 중론에 따랐다. 건강
과 여러가지 피치못할 사정을 감안하여 축하 행사에 동기생과 부인 그리고 가족
들이 가장 많이 참석하는 방안을 선택하였다.
공군사관학교는 재학 4년동안 12기 사관 61명에게 기회를 균등히 부여하여 공평
하게 가르쳤다. 거기에 보답하려는듯 누구하나 빠짐없이 더도 덜도 없이 일정한
성의를 모아 모교 사관학교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달하기로 하였다.
* 5월 2일, 50주년 축하 사관학교 행사(모교 발전기금 전달, 사관생도 열병분열
과 현역 후배들이 펼치는 축하비행)는 지난 4월 26일 국가적 재난 '세월호' 침
몰 사고로 가을(10월)로 연기하였다. 그러나 일정 변경이 곤란한 외국서 온 동
기생과 가족들에 대해서는 계획데로 사관학교 방문과 공군회관 만찬으로 축소
시행하였다.
뜻밖에 미국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여러 동기생들이 가족과 함께 어려운 걸음을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태평양을 건너 달려왔다. 너무 어릴때 순직하여 아버지의
모습조차 떠 오르지 않는 무남 독녀가 미국 의사가 되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에 잠든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며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졸업 및 임관 50주년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경향 각지에서 몰려든 동기생과 부인들, 놀랍게도 오랜 병마
에 시달려 거동이 불편한 동기생이 그의 아들이 미는 휠체어로 성무대를 찾았다.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는지 우리는 경이에 찬 눈으로 보았다. 기적과 감
동이 뒤섞기는 만남의 순간이었다.
사관학교장의 영접과 생도 생활관 견학에 이어 공군 박물관에서 12기 사관의 이
름을 동판으로 제작한 명패를 보니 감개무량했다. 창군이래 하늘에 살면서 하늘
에 목숨 바친 분들의 넋이 고히 잠든 '영원한 빛' 추모비 앞에서 묵념으로 고개를
숙이니 애끓는 진혼곡이 그들 영혼으로 부터 반사하여 우리 귓전을 울리며 가슴으
로 무겁게 스며들었다. 화환을 잡고 걸어가던 외국서 온 동기생들은 눈시울이 젖
어 있었다.
그에 앞서 사관생도들과 오찬을 나누면서 50년 격세지감(隔世之感)을 서로 공유
하며 웃고 또 웃었다. 그리고 간곡히 부탁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관학교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을 심어 주었다.
사관학교는 시대가 변하드라도 기본과 원칙을 지키고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뼈
대있는 집안이 되어 존엄해야 한다. 벼락 부자처럼 경솔하고 천박한 졸부 냄새가
나서는 안된다. 본질을 덮어두고 기교가 넘쳐 누추해서도 안된다. 안일을 택해 편
리 제일주의에 빠져서도 안된다. 끝으로 사관생도는 먼저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
군인으로 가야 한다는 인간애(humanity)도 특별히 강조하였다.
성무대 행사를 마치고 교문을 나서자 오래 전에 어느 동기생이 모교 공군사관학교
에 대한 사모의 정과 애틋한 그리움을 쓴 글귀가 언뜻 지나간다.
중국에 "엽락귀근(葉落歸根)"이란 말이 있다. 잎은 떨어지면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우리를 낳아 준 공군사관학교는 우리의 어머니이며 우리의 뿌리이다.
우리가 마지막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한번도 잊어 본 적이
없는 공군사관학교다. 나의 모교 공군사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청남대를 둘러 보고 달리는 귀경 버스에서 생각에 잠겼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예비역 단체의 한 멤버(member)로써 서울역이나
시청 광장으로 달려 나가 궐기하며 행동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수호할 것이다.
그리고 한때 국방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해서는 안될 국군조직법을 개정하려는 특
정 세력에 맞서 저항하고 투쟁했듯이 모군 공군을 사랑하고 정당하게 보호할 것
이다. 이는 '진리(眞理)에 살고 정의(正義)에 죽어라!'는 50년전 공군사관학교의
그 명령이 12기 사관에게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기생간에 우정의 만찬자리를 마련한 공군회관에 도착하자 해질 녘 붉게 물든
우리들 뒷 모습이 장년(長年)중에 초로(初老)는 아니고 중노(中老)에서 서성거렸
다. 우리는 지나 온 반 백년, 도전하고 성취하고 때로는 좌절도 했지만 최선을 다
한 까닭에 후회도 더 바랄 것도 없다. 다만 그 영욕을 겸허히 받아 들일 뿐이다.
5월, 서울의 밤은 깊어만 갔다.
바야흐로 날기에 지친 새들은 '은성회' 둥지로 돌아와 우주(宇宙)와 인생(人生)을
논하고 세상(世上)을 관조하며 시공(時空)을 향유하니 바로 우리의 밑천인 추억과
우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12기 사관, 그 불굴의 영웅들은 감사와 축복
속에 기립 박수하며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동기생들이여!
군에 몸바쳐 조국하늘 지키던 나날들, 늘 바쁘게 뛰어 온 숨찬 50년,
참으로 수고 많았습니다. 강물은 쉬임없이 흐르다가 언젠가는 바다에서
멈추듯이 우리도 그 날까지 당당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작문 후기]
본 글 퇴고를 맡은 일반인 친구가 글량이 많다고 조언이 왔다.
1/4을 줄였으나 또 종용이다. 50년의 역사는 책 한권으로도 모자라는데,
이 이상 어떻게 줄이란 말인가! 필자는 벌렁 드러 누웠다. 그리고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그래, 친구야 너는 아는가!
성무인(星武人) 우리만의 그 시간과 공간을....
피와 땀과 눈물이 밴 은성인(銀星人) 우리만의 그 이야기를....
시리도록 아름다워 너무나 그리운 공군인(空軍人) 우리만의 그 추억을.... "
첫댓글 50주년 발자취! 담담하고 우렁찬 필취로 사계절 족적을 하나씩 더듬어 가면서 이상과 기개를 놓치지 않은 다시 한번 조국을 위해 헌신을 불러일으키며 다짐하는 글을 읽고 먼저 천부적인 달란트와 끈기와 열심에 부러움과 놀라움이 앞섭니다.배장군의 진면목을 추억하며 읽었읍니다. 홈페이지에 올린 많은 글에서 풍기는 인성과 품격에 익히 친근 해 있지만 대표하여 쓴 글에 우릴 치켜줌에 감사를 전합니다.
여의치 않아 불참하는 처지에 오늘은 아침부터 강풍에 낙엽이 딩굴며 진종일 비가 내리고 섭씨5도의 예보에 몸이 움츠려 듭니다. 아쉬움에 가을 이 깊어 가면서 마음도 어지러이 깊어 갑니다. 오하이오에서
지난반세기 걸어온 족적이 파노라마 처럼 그려지는군요, 까까머리 가입교부터 계절따라 흘러간 지난 50년,때로는 슬픔이,때로는 그쁨이 교차하는 시간과 공간속에서 우리들 그렇게 살다 보니 어언 가을이 오는 계절에 섰습니다. 날개소리의 예리한 필치가 돋보이네요. 동기생들의 면모 하나하나를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잘그려냈으니--그많은 자료들 정리하는라 수고 했다는 말 꼭 전하고싶니다. 글을 읽으며 마음 뭉클한 때도,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그러면서 반세기를 반추했네요.---그러나 엽락귀근이라, 이제우리 돌아와 내앞에선 50주년 기념행사를 모든 동기생과 가족들이 함께 경축하며 브라보.행복과 감사는 오하이오주에서?- 안녕
12기생 숨은 인재가 여실이 나타난 날개소리 ! 그소리 지꺼리지 않았으면 과연 누가 정성을 들여 이와같은 기록을 남겼을 것인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지만, 장하다. 존경스럽다. 영원하라 날개소리여~ 나의 친구요 우리들의 친구여~.
미국 닥터 김소연이 보내 온 답글입니다. (준회원) (2014년 8월 3일)
윙 (Wing)님,
12기분들의 50년 발자취의 글, 잘 읽어보았읍니다. 제 아버지와 저도 포함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글을 읽어보면, 동기분들의 50년이란 세월도 너무 빨리 지나간듯 합니다.
옛 대한민국 공군의 힘들었지만 보람있었던 삶을 느껴봅니다.
모두 훌륭하시고 자랑스럽습니다. Enjoy and cheers!
With love, Monica 소연 올림
마치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는것같이 우리 은성회원들의 모습과 행동과 역사와 우리들의 문화를 한눈에 보는것 같습니다. 소중한 12기생의 회고담을 올려주신 배장군님께 감사드립니다.
날개!! 자넨 누가 뭐래도 12기 보배야. 익히 알고있었지만 50주년을 맞아 멋진 Home Run 한방이야. 까막게 잊고 있었던 추억거리 들을 되새김 시켜줌과 은성회 회원들의 역사를 이처럼소상하게 잘보관 관리하며 오늘 이렇게 새겨주니 고맙고 감사하고 감사함 일세 언제일런지 잘 익은 홍주 한잔하면서 1960년부터 오늘에 까지 20대로 취해 머물어보고 싶기도하네.
잘 읽었네. 고맙네. 자네 인생 제3막은 작품 쓰느데 할애해보면 어떨가싶네 내가 추천한다면?
배기준메초리, 너는 생각보다 기억력도 좋고 글재주도 있다. 어쩌면 시시콜콜 기억하고있냐?한가지 추가해주랴? 내 결혼하는날이 유현웅이 장례일이 였어. 그래서 동기생들이 양쪽으로 찢어졌었어. 그래서 내 결혼기념일만 되면 유현웅이를 생각하지.하여간 잘 읽고간다. 건강해라. 그래야 또 만나지. 동기생분들, 건강하시고 50주년행사 잘 하시고. 12기생 홧띵.
날개소리 배기준 동기의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12기생의 문필가 답게 여러 가지 요소를 가미하면서 잘 써준 벗에게 감사드립니다. 글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 글은 오래도록 12기생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종양(德泉)동기가 보낸 답글을 여기에 옮깁니다. (2014년 7월 23일)
배형, 성무지에 기고한 글을 감명깊게 읽었다오
貴官이 우리 銀星會 회원 이라는 일은 자랑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바랄께요.
미국 송창회 동기가 보낸 답글입니다. (2014년 8월 19일)
Hi! my dear friend Bae Ki Joon today is 18 Aug2014 I received the SUMOO that is wonderful , I thank you I will enjoy to read that.
캐나다 이규설 동기 답글 여기에 옮깁니다. (2014년 8월 23일)
[성무]제43호 잘받아서 배장군의 글 너무 잘읽었네 부드러운 글쏨씨 다시한번 큰 박수 보내네, 계속해서 받을수있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Thank you!!! Canada 이규설
<성무>제 43호(2014.7) 접수후 격려 보낸 동기 (내용, 날자 생략)
전화 : 김영웅, 남승진, 박상철, 박창길, 이홍우
문자 : 김태규, 이삼수, 이상순, 정민남.
직담 : 김문수, 김영식, 박상철, 백광현, 우정수, 이부용, 정판종
기타 :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전달 불가한 동기 몇분
* 선후배 약간명 격려 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