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후손들이 선대가 물려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본에 힘입어 사회의 주류로 성장한 반면,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해방된 조국에서조차 선대의 신산한 삶을 그대로 물려받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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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한국일보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조사를 했습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모임인 광복회 회원 6,381명 전원을 대상으로 생활실태 설문조사를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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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는 1,115명 이었습니다. 조사에는 독립유공자 1대가 58명, 자녀 대인 2대가 469명, 손자 대인 3대가 509명, 증손자 대인 4대가 53명 참여 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가족들은 ‘사회적 무관심’과 경제적 빈곤’을 토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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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월 개인소득이 200만원을 넘는 경우는 4분의 1도 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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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원 미만이 10.3% , 50~100만원이 20.9% , 100~200만원이 43%였습니다. 더구나 이 액수에는 이분들이 받는 연금 (52만원~188만원)이 포함된 만큼 순소득만을 따지면 극빈층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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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5천만원 이하가 28.3% , 5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이 21.1%, 1억원 이상 2억원 미만이 20.9%였습니다. 2013년 당시 우리나라 가구당 순자산 3억 3,085원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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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안타까웠던 지점은 바로 친일 후손들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학력의 차이였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 가운데 학력이 중졸 이하인 사람이 40%를 넘었습니다. 무학이 4.7% , 초등학교 졸업이 22.8% , 중졸이 12.8%, 고졸 학력을 가진 사람은 25.7%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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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친일 후손 1,177명을 조사하여 나타난 그들의 학력 수준은 3분의 1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 이었고 그 중 27%가 유학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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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분들이 지하에서 자신들의 후손과 친일 후손들을 비교해보며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느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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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이인호 전 KBS 이사장의 할아버지인 친일파 이명세에 의하여 성균관대학교 총장에서 쫓겨난 심산 김창숙 선생의 경우, 첫째 아들 김환기는 아버지의 명을 받아 군자금 모금을 위해 조선에 잠입하였다가 일제 경찰에 의해 체포 되어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한 끝에 그 후유증으로 사망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19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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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인 김찬기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었고 풀려난 이후 임시정부가 있는 중경으로 망명도중 사망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 31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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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아들 김형기는 힘들게 살아남았으나 교육을 받지 못해 좋은 직업을 얻지 못하고 생활이 곤궁하여 말년의 심산 선생이 친일파 이명세 등에 의해 성균관대학교 총장 직에서 쫓겨나고 여관방을 전전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할 때 자동차 운전사를 하며 부친을 부양합니다. 이 당시 사람들이 심산의 아들이 운전사를 한다며 비웃자, 심산 선생이 아들을 위해 시를 한 수 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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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에게’
내 아들이 차를 끈다고
세상 사람 모두가 비웃고 조롱하네
다시 그 아비를 비방하여
거짓꾸밈, 잘하게
자식을 가르쳤다 이르네
비웃고 헐뜯은 들
무엇을 상심하랴
편안한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하라
가정의 생계를 돌보는 이 없다면
하루아침 당장에 망하고 말 것이라
옛적에 연암공은
전을 지어 기렷다
예덕선생을
너희들 조금도 슬퍼하지 마라
천한 직업 그것이
바로 천직 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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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광복절 등 어느 때가 되어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떠올릴 것이 아닙니다.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옳은일을 하신 분들에게는 존경과 예우를 다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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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현충원에는 400여명이 넘는 친일파들이 묻혀져 있으며 그 반대로 타국 땅에서 나라 잃은 국민의 멸시와 조롱을 견디며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하다 그곳에 그대로 묻힌 독립운동가분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묻히기를 원하며 통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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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이 가장 힘들어하시는 건 경제적 빈곤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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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그 마음을 헤아려 드리고 위로해 드리며 존경과 예우를 다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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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국립묘지에 친일반민족 행위자가 안장되어 있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이유이고,
윤서인 같은 자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폄훼하는 언행을 두고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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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하는 자보다 더 죄다." <도산 안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