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하고 싶었다
Cest
읍네 시장 뒷골목
약간은 후미지고
인적이 드문 조용한곳에
헌 책방 겸 만화가개가 있었다.
주인 남자는 다락을 향해
낡은 나무 계단을 삐그덕
소리내며 가끔씩 오르내렸다.
두 젊은 이들은 대학생인데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시골 면단위 까지 왔다는 소문이었다.
젊은 여자는 피부가 뽀얗고
긴 생머리를 뒤로 묶어 영화배우 윤정희 처럼 상냥한 서울 말씨에 당찬 모습이었으며 책방의 남자도 마음씨 좋은 섬마을 선생님의
순수한 느낌 이었다.
나는 작고 빼빼마른 빨강머리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마악 중학생 이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앤이 결혼하여 훌륭한 아내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음을. 어린 나이 에도 당돌하게 내가 책방 남자의 부인이라면 상상 한 적도 있었으나 서울 여자처럼 호떡을 맛있게 구워낼 수 없음을 알았기에 마음을 접었다.
고향 창평은 면 단위지만 담양군 전체에서 가장 크고 시설 좋은 극장도 있었으며 번화한 소 시장은 메밀꽃 필 무렵의 봉평 장이나 규모는 비슷했겠다.
우리 읍내엔 없는 것이
없었고 인구도 많었다.
나는 책 읽는걸 좋아해서 가끔씩은 어머니가 어두워지는 저녁길 따라 나를 찾아 책방으로 오셔서
내 작은 손 을 꼬옥 잡고 조용히 혼내셨지만 역시 책 읽는 모습은 나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한 달에 서너 번 집에 오시는 아버지로 인해 난 어머니가 가엾은 생각에 슬픈 시간이 많았다.
어머니는 맏딸인 내게 많이 의지 하셨지만 나는 건강하지도 공부를 잘 하지도 않아 바로내 아래 남동생을 더 의지 하셨을 수 도 있다.
동생은 공부도 잘하고 학교에서 일등과 반장은 따 논 당상 이었다.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의 금은 보화 였었다.
난 학교에서 영어 수학 시간이면 배가 많이 아파 조퇴를 하고
책방으로 가면 씻은 듯이 나았다. 학교 출석이 드물고 조퇴가 잦아 친구도 많지 않았지만 책이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다.
책방에 들어서면 학교 도서관과는 다른 묘한 편안함과 오래된 헌책 냄새도 무척 좋았다.
한국문단의 거장 월탄 박종화님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
송강 정철선생님의 사미인곡에
대한 이야기며, 연산군의 생모의 비극 (금삼의 피), 등 전15권을
당시엔 거의, 전집들이 많았다.
오래된 헌 책들은 더 재미있었다. 물론 우리 집에도 세계문학, 한국현대문학전집 등 수많은 책들이 가득했으며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아버지는 방 한 칸을
서재로 베려해 주셨지만 밤늦게는 안 된다고 하셨다.
어떤 때는 문틈으로 새 나가는
불빛을 군용담요로 가리고 마음을 두근거리며 책을 읽은 적도 있었다. 책을 첫 머리 읽게 되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궁금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부모님 두 분의 평탄치 않은 관계로 순정만화 이야기들의 슬픈 여주인공들은 모두 나였었다.
엄희자 송순희 내 기억에 틀릴 수도 있지만 만화 작가들의 그림을 눈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한평생 나의 일과는 글을 썼다가 찢었다. 다시 보면 아니었기에 어머니는 너는 찢어 버릴 것 을 왜
자꾸 쓰느냐 하였지만 해가 박뀌면 또다시 대학 노트를 몇 권 씩
구입후 다음 해가 오기 전 모두 태운다. 년 초에 잘 쓰다가 년 말이 다가오면 그 글이 유치하였기 때문이다. 삶이 고단해서 그랬으리라 지금까지 보관해 두었다면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어떤 기분일까? 책방이 있고 그 속에 책 이 있는 곳 다시 그 세월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耳順이 넘은 지금에도 방안에 온통 책과 A4용지로 쑥대밭인데
다행히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남편이 그럭저럭 잔소리와 곁들여 너그럽게 지켜 봐주어 고맙다.
곧 겨울이 오고 나도 겨울에 묻혀 고요한 침묵의 시간을 지금처럼 글씨가 보이고 두 손가락이 움직여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하는 한가로움 이 좋다.
지금도 헌책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남은 날들 최대한 게으름 피며 다 낡은 헌책이 되어가는 내가 좋다.
이순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넘 바빠도 좀 그렇다
지금 다 낡은 책 한권이 바로 나다
202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