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이 살았던 시대-고구려 건국 시기와 관련하여
<신화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
알에서 태어난 주몽이 자라와 물고기가 만들어준 다리를 건너 부여를 탈출해서 고구려를 건국한 이야기는 지금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이것을 건국신화라고 하고 그들이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은 건국 신화가 신화이지만 동시에 건국이라는 역사적 사실들을 담고 있기에 그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읽어내고자 역사적 사실을 신화로 만들이 위해 쓰인 신화적 요소들을 가려냅니다.
신화를 향유하는 집단은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세우고 단결력을 강화하는데, 여기에 신화를 신화로 만드는 요소들이 들어갑니다. 이것은 고구려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몽을 시조로 믿고 주몽의 후손이라는 왕을 받드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신화적 요소라는 것에는 기이한 출생이나 행적, 쉬이 납득할 수 없는 시간들도 포함됩니다.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때를 <<삼국사기>>에서는 “주몽이 나이 22세에 고구려를 건국했다”고 하고 “그 해가 한 나라 효원제 건소 2년(기원전37년에 해당)”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기록을 글자 그대로를 믿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기에는 그것을 반박할 자료들이 있어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고구려 건국 시점을 분명하게 밝힌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안에서도 그 시간을 글자 그대로 믿을 수 없도록 만드는 다른 기록들이 있습니다.
건국 이후의 동명왕의 행적은 기록상으로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지만, 실제로는 긴 시간 동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그런 행적입니다. 이웃나라의 사서와 시간상 일치가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 유리왕 31년에서(기원후12년) 건국까지 2-300년의 기록이 단 몇 년간의 사건으로 압축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주몽, 유리 두 사람만의 행적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명의 주몽과 유리의 행적이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사론에는 “고구려가 진한이래 중국의 동북모퉁이에 있었다”고 하여 고구려가 진한교체기인 기원전 3세기 무렵에 세워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10년조에 문무왕이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책봉하면서 “고구려의 역사가 팔백년”이라고 하였고, 고구려본기 보장왕 조에 인용된 <<고구려비기>>에 “고구려 역사가 구백년”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안에서도, 건국 시점 기록들 사이에 이런 불일치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삼국사기>> 고국려본기 동명왕조의 기원전 37년 건국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기기 어렵습니다. 이런 시간은 역사적인 시간이 아니라 신화적인 시간이라 합니다. 역사학에서는 신화적인 시간을 다시 역사적인 시간으로 바꿔놓습니다.
<고구려 건국 시점>
그러면 고구려가 건국된 때는 언제일까요? 이것을 알려주는 몇 가지 단서들이 있습니다. 위에 적은 기록들 외에도 고고학적 유물들과 이웃나라의 기록들이 있습니다. <<한서>>에는 기원전 107년에 “현토군이 설치될 때 그 치소를 고구려현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단서들을 검토한 결과 학계에서는 고구려 건국에 대하여 기원전 3세기설과 기원전 1세기 설을 내놓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 학계에서는 광대토대왕비문에 보이는 광개토대왕의 선조들의 재위기간과 생몰년을 산술적으로 계산하여 기원전 277년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산상의 오류와 전제에 문제가 있기에 이것을 그대로 인정하기는 곤란하다고 합니다. 기원전 277년 설을 부정한다고 해서 기원전 3세기설을 바로 폐기할 수는 없는데 그것은 이 지역의 철기 사용 때문입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의 발전이라는 것이 당시로서는 정치체의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바꾸어 정치체의 발전을 살펴 볼 때 그 표지적 유물이 되는 것이 바로 철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구려 건국 시기 문제는 기원전 3세기다 기원전 1세기다 라고 양자택일을 해야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둘 다 맞습니다. 이런 결론이 가능한 것은 고구려 건국 신화에 담긴 고구려 건국 과정이 매우 축약된 내용이라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건국 신화에는 고구려소국과 고구려왕국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습니다.
주몽은 다섯의 나(那)를 통합해서 고구려를 건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는 주몽이 비류의 송양왕을 굴복시키는 장면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나(那)”라는 것이 소국(小國)이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우리말 “나라”라는 것이 그 那에서 왔다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원전 3세기에 세워졌다고 하는 그 고구려는 바로 그 “나”입니다.
나중에 나를 통합한 고구려와 이때의 고구려를 구분하기 위하여 기원전 3세기에 세워진 고구려를 “고구려소국(소국 고구려)”라고 합니다. “나”라고도 하는 소국은 방백리 곧 한 변의 길이가 백리(40km)인 사각형 규모에 가호수가 수천가에 인구가 만명 정도라고 합니다.(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지 위지 동이전 기록에서 산출한 수치)
고구려소국은 이웃 4개의 나(연나, 관나, 환나, 비류)와 연맹체를 형성하였다가 이들을 병합하여 큰 나라를 세웁니다. 이것을 “고구려소국”에 대해 “고구려왕국”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고구려왕국의 중심지를 계루부라고 하는데, “고구려소국”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는 신라의 중심지가 서라벌이고, 신라가 신라로 성장하기 전의 나라 이름이 서라벌이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고구려왕국이 세워진 것이 한나라의 현토군이 설치되기 이전이었는지, 그 다음이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습니다만 늦어도 기원전 75년에 현토군이 고구려에 축출되어 치소를 옮겼을 무렵에는 고구려왕국이 성립되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곧 고구려 소국은 기원전 3세기에 건국되었고 그 고구려소국을 포함한 오나를 통합하여 고구려왕국이 되었던 것은 기원전 1세기 무렵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주몽의 시간>
드라마 주몽은 기원전 1세기 오나(五那)가 통합되어 이룬 “고구려왕국”의 성립을 다루면서 그 과정 속에 활약한 영웅을 주몽이란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드라마란 이야기를 통해 신화를 구현할 것일 수도 있고, 역사를 재구성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보기에 따라서는 왜곡도 될 수 있겠죠 ㅠ.ㅠ ) 주몽이 요동 지역에서부터 한반도 북부 지역의 나라들이 발전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던 한 군현을 축출하고, 아직 연맹체 형태로 있던 다섯 나를 병합하여 고구려 왕국을 이루어 가는 활약상을 그리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구려소국이 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고구려소국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었던 현토군을 활용하고 그것을 극복해가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하기에 철기를 매개로 해서 그 문제로 다루려고 합니다.
당시 현토군의 군부(郡府)가 있던 치소(治所)가 “고구려현”인데, 이름에서 이미 고구려라는 나라를 견제하고 있고, 고구려와 같은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곁에 있던 현토군치소가 고구려를 견제하긴 했지만 고구려는 이런 상황을 오히려 잘 활용하여, 그 지역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한나라가 기술이라는 것을 먼저 발명했지만, 고구려가 그 기술을 수용해 토착화하고 보편화시키지 않았다면 고구려의 그와 같은 성장은 없었을 것입니다.(우리 핸드폰 성장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의 철기, 그 기술의 시작은 한나라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받아들여 발전시켜 더 우수한 철기를 만들어 낸 것은 고구려였기에 고구려 장인들의 장인 정신과 그들의 활약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주몽이가 살고 있는 시간은 기원전 1세기 무렵입니다. 기원전 105년에 조선유민들이 한나라에 저항했던 사건에서 활약한 해모수와 기원전 75년 현토군 축출 전쟁에서 활약하는 주몽을 염두에 둔 시간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송 속에서의 시간은 기원전 83년경입니다. 당시 한나라는 서남이족의 반란으로 서남이족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임둔군와 진번군이 철폐되기 일년전이기도 합니다.
한나라가 임둔군과 진번군을 폐지한 이유는 관리의 어려움과 토착세력의 반발이라고 합니다. 토착세력의 반발이라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지 않아 어떤 사건이 계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이 주몽이가 성장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주몽을 통해 고구려인들을 비롯한 이 지역 토착세력들이 한군현을 어떻게 이용했고, 나아가 그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06년 8월 15일 작성)
참고문헌 이종욱, 고조선사연구, 일조각, 1993. 이종욱, 고구려의 역사, 김영사, 2005 이종욱, 건국신화, 휴머니스트,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