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모의 유래와 역사
스모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기(國技)로서 몽골과 우리나라의 씨름의 영향을 받아 토착화한 전통 스포츠로 본래 신앙상의 점으로 어느 쪽이 이겼느냐에 따라 생산의 길흉을 점쳤다는 것이 그 기원입니다. 옛날에는 진혼-매장-복식-의례의 4대 의식 가운데 하나에 포함되는 행사였으며 스모 선수들의 몸집이 비대한 것도 여기서 기인한 것으로, 풍요를 상징하는 의미라는 설도 있다네요...
8세기 초에 편찬된 <古事記>와 <日本西記>에 스모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스모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운동경기입니다. 그 후로도 나라(奈良)시대에는 조정(朝政)행사의 하나로 정착되어 가마쿠라(鎌倉)시대에는 무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장려되었으며 에도(江戸)시대에는 서민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으며 대중화되었고, 직업 역사(力士)까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에도(江戸) 시대에는 지나친 사행성으로 국가에서 스모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가 18세기 쯤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에 걸쳐 지금과 같은 경기제도와 규칙을 확립하였고 오늘날에는 일본 스모 협회까지 결성되어 매우 조직적으로 프로 스모 경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쿄(東京)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 순회 경기를 여는데,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 도쿄에서 1, 5, 9월 3회 시합이 열리는데 표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몽골출신의 현 요코즈나(横綱) 아사쇼오류우 (朝青龍)】
스모선수는 리키시(力士)라 하며 리끼시는 우리나라 씨름의 샅바에 해당되는 마와시를 차고 경기를 합니다. 밀어내기, 당기기, 제치기, 비틀기 등 여러가지의 승부수를 써서 상대편을 쓰려뜨리거나 씨름판 바깥으로 밀어 내면 이기게 되는 경기 입니다
경기의 목적
스모 경기의 목표는 선수들이 상대방을 ‘도효’ 밖으로 밀어내거나 발바닥 외의 몸 일부를 도효(土俵)에 닿게하는 경기 입니다. 경기장 중앙에서 시합이 붙기 전에 두 명의 선수들은 두 팔을 벌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쪼그려 앉아서 상대편을 노려보는 의식을 치룹니다. 경기장을 정화시키기 위해 한 움큼의 소금이 허공에 뿌려집니다.
이러한 워밍업이 끝난후 시합은 몇 초안에 끝나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떤 선수들은 몇 분이 걸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시합을 끝내기 전에 휴식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스모의 승부기술은 70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는 상대방을 던질 수 있는 허리띠의 손잡이를 사용하여 도효 밖으로 밀거나 들어올리기, 공격하는 동안 가장자리로 재빨리 뛰기, 상대방이 균형을 잃도록 손바닥으로 치기, 상대방을 링 밖으로 던지기 위해 넘어지기 전에 가장자리로 파고들기 등 70여가지의 기술이 있습니다
스모는 위엄과 침착함으로 특히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심판의 판정에 대한 항의나 형편없는 스포츠 정신 등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 상체를 손바닥으로 치는것은 허용되나 주먹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등의 행동은 엄격히 금지되고있습니다. 그리고 시합이 계속 대등하게 진행되어 심판의 판정으로 승자가 가려지더라도 승자 혹은 패자는 항의할 수 없으며 미소나 찡그림 이상의 표현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수상내역
‘마쿠노우치(幕の内)’ 경기가 있기 전에 좋아하는 선수들에게 상금을 기증할 후원회사들은 경기장 주위를 둘러싸며 회사의 이름이 적힌 광고용 깃발을 걸어놓습니다.
이 깃발의 크기가 클수록 상금의 액수는 높아지는데 경기가 끝난 후 심판은 이 깃발을 우승선수에게 건네줍니다. 우승자는 경기장의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영광스러운 우승을 의미하는 ‘테가타나’(手刀=손을 칼모양으로 뻗침)라고 불리는 제스처를 취하며 상을 받습니다. 대회의 우승자는 현금과 트로피, 쌀과 ‘사케’ (酒=쌀로 빚은 술) 등의 다양한 상품을 수여 받고. 대회 기간동안 우승기록을 세운 ‘오제키’ 순위내의 선수들은 장외공연, 기술,투혼 등의 3가지 부문에서 특별상을 받습니다.여기에도 또한 현금보너스가 주어집니다.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상으로는 ‘요코즈나’보다 낮은 순위의 선수가 요코즈나를 이겼을 경우 수여하는 ‘킨보시’(금별이라는 뜻 ) 가 있습니다 . 킨보시(金星)를 수상하면 남은 활동기간의 봉급이 크게 인상됩니다.
최초의 공영(公営) 스모경기장인 ‘코쿠기칸(国技館)’은 1909년에 동경의 료오코쿠(両国) 경기장내에 만들어 졌는데 . 2차 세계대전이후에 ‘코쿠기칸’은 ‘쿠라마에(蔵前)’ 경기장으로 이사하습니다그후로 40년간 그곳에 남게되었습니다.
1985년에 완공된 11,000개의 관람석이 있는 새로운 스모경기장은 최초경기장과 가까운 ‘주니어 료고쿠 경기장’에 개장하였습니다 .전국적인 TV경기는 오후4시경에 시작하여 6시에 끝나는데 순위가 낮은 선수들의 시합은 이른 시간에 방영됩니다.
대회 기간동안 ‘마쿠노우치(幕の内)’와 ‘주료(十両)’의 고순위권 선수들은 15일 중 단 하루만 시합을하며 ‘마쿠시타(幕下)’ 와 ‘산단메(三段目)’, ‘조니단(序二段)’, ‘ 조노쿠치(序の口)’등의 선수들은 7일 동안 경기를 갖습니다.
물론 가능한 한 많이 이기는 것이 좋지만, 선수들에게는 대회 기간동안 승리횟수가 더 많아서 (15게임 중 8번 이상, 또는 7번중 4번 이상) 현재의 순위를 유지하거나 더 높은 순위로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대회의 승리는 가장 많이 이긴 ‘마쿠노우치(幕の内)’의 선수들에게 돌아가는데 동점자들은 마지막날의 시합에서 다시 붙게됩니다
←명 요코즈나 치여노후지(千代の富士) |
선수들의 생활
견습선수-도시거주자들보다 시골출신들이 더 많습니다-들은 주로 고등학교 재학 중에 모집됩니다. 소년의 가족이 동의하면 ‘오야카타(親方)’는 그를 제자으로 받아들이는데 오야카타(親方)라 함은 스모선수 선수생활중에 좋은 성적을 남기고 - 요코즈나(横綱)나 적어도 오오제키(大関) 정도- 은퇴후 후진양성에 힘을 쏟는분들로 49개의 스모베야(相撲部屋) 중 하나를 경영하며 이 젊은이들은 집단으로 이 스모베아(相撲部屋) 에서 훈련하고 먹고 자며 오야카카(親方)와 오카미상(女将さん=오야카다의 부인)을 부모로 알고 따르며 생활의 통제를 받게 됩니다.
견습 생활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매우 촉망받는 젊은 선수들조차도 높은 순위에 진출하여 ‘세키토리’(関取=프로선수로서의 입문을 의미함)의 봉급을 받기까지는 최소한 5년 이상이 걸리는 것이 보통입니다. 스모베아라고 불리우는 여러곳의 합숙소에 있는 900명의 선수들 중 66명만이 현재 ‘세키토리’로 활동중 입니다.
어느정도 이상의 지위에 오른 선수들 중에는 종종 결혼을 하여 합숙소 밖에서 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어린 선수들은 선수 생활의 대부분동안 합숙소를 유일한 집으로 생각하고 생활합니다. 많은 선수들이 질병과 부상 때문에 은퇴를 하는데 30대 초반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경우는 극히드물다고 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스모베야(합숙소)는 동경의 동부에 있습니다.
선수들은 새벽 4시 또는 5시에 일어나 ‘마와시’를 두르고 ‘케이코’(稽古=훈련)를 시작합니다. 또한 이들은 선배들의 시중도 들어야 하는데 특히 마쿠우치(幕内)의 성적이 좋아 순위가 높은 선수들은 늦게까지 잘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케이코’(稽古)는 3 가지의 전통적 운동들로 구성되어있는데 ‘시코(しこ)’‘텟포오(てっぽう)’'마타와리(股割り)’가 그것이며 ‘텟포오’를 하는 동안에는 나무기둥을 손바닥으로 끊임없이 때려야하고 ‘마타와리’는 가능한 한 다리를 넓게 뻗어 몸의 유연성을 기르는 운동 입니다.
일상적인 ‘케이코(稽古)’는 정오 경에 끝나는데 선수들은 ‘창코 나베’(여러 가지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국)와 양념장, 오이지, 많은 양의 밥 등을 아침 겸 점심식사로 먹으며 종종 1병내지 2병의 맥주를 마시기도 합니다. 이 엄청난 식사가 끝나면 주로 몇 시간씩 낮잠을 자는데 많은 식사량 때문에 몸무게는 급격히 증가하게되어, 대부분 우리가 이미지 하는 매우 살이찌고 엄청나게 큰 등치의 스모선수가 되어 힘 자랑을 하게 됩니다.
어떤 선수들은 체중이 150킬로그램이나 나가며 또 어떤 선수는 200킬로그램에 육박하기도 하지요.
스모의 개최시기 및 명칭
혼바쇼(本場所) : 프로 선수들에 의해 1년에 6차례 개최되는 경기.
오오즈모(大相撲) : 프로 선수들에 의해 혼바쇼에서 개최되는 수준 높은 경기
*1일 경기는 15회, 년간 90회를 경기합니다.
월 | 1월 | 3월 | 5월 | 7월 | 9월 | 11월 |
명칭 |
하츠바쇼 |
나츠바쇼 (夏場所) |
나츠바쇼 (夏場所) |
나고야바쇼 (名古屋) |
아키바쇼 (秋場所) |
큐우슈바쇼 (九州場所) |
장소 |
오오사카 | 오오사카 | 토오쿄오 | 나고야 | 토오쿄오 | 후쿠오카 |
스모의 순위
2. 오오제키(大關) : 요코즈나 다음으로 2번째 지위나 리키시(力士)를 말합니다.
3. 세키와케(關脇) : 오오제키 아래의 지위 또는 그 리키시(力士)를 말합니다.
이외에 코무스비(小結), 마에카시라(前頭), 쥬우료오(十兩), 마쿠시타(幕下), 산단메(三段目), 죠니단(序二段), 죠노구치(序ノ口)등이 있습니다.
스모의 국제화
스모의 대중적 인기는 열렬한 팬이었던 히로히토 천황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1955년 5월의 토너먼트 대회를 시작으로 히로히토 천황은 동경에서 열리는 각 경기에 하루씩 꼭 참석하여 귀빈석에 앉아 관람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다른 황족들에게도 계승되었고. 외교사절이나 해외의 방문인사들은 종종 스모경기에 초대 받았습니다. 스모는 해외의 일본 단체들이 처음으로 외국에 선을 보였지만 수십 년 전부터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어왔습니다.
1960년대 이래로 미국과 캐나다, 중국, 한국, 몽고, 태평양의 통고섬 등의 젊은 레슬링 선수들이 스모를 배우러 일본으로 왔는데 그 중의 일부는 언어와 문화적 장벽을 극복하고 성공하였다. 1993년에 하와이에서 온 미국인 ‘아케보노(曙)’는 ‘요코즈나(横綱)’로서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9세의 나이로 시합해가장 어린 우승자가 된 ‘타카노하나(貴乃花)
호주와 유럽,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열린 시범경기로 큰 선전효과를 거두어 스모는 해외에서도 인기있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 아마추어 스모후원인들의 노력으로 스모는 올림픽에 시범종목으로 소개되었으나 그 채택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용어 설명
도효(土俵)
스모 경기를 하는 장소로 도효바(土俵場)의 줄임말. 이것은 흙(土)을 담은 가마니(俵)를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 놓은 공간을 가리키는 말로 한면이 6.7m 정사각형 흙을 쌓아 올려 단을 만들어 굳히고, 그 위에 지름이 4.5m가 되도록 장내 경계선을 만든 것입니다.
마와시(廻し)
우리 씨름의 샅바와 같은 것으로 리키시(力士)의 계급에 따라 '토리마와시'와 '케이코마와시'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
키요메노시오(淸めの塩)
리키시(力士)가 씨름판에 등장해서 뿌리는 소금으로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소금이 부정을 막아준다고 하여, 씨름판에 리키시(力士)가 등장하자마자 소금을 허공에 뿌리는 것은 부정을 막고 씨름판을 맑은 기(気)로 채운다는 의미.
치카라미즈(力水)
도효 모서리에 놓여진 물통의 물을 국자로 퍼서 리키시(力士)가 씨름판에 나오기 전에 입을 헹구고 기력을 왕성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치카라가미(力紙) 일본 전통종이를 반으로 접은 것으로 리키시(力士)가 시합에 들어가기 전 이것으로 몸을 닦늗데 , 이것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
시코(四股)
한자로 네 개의 넓적다리라는 뜻으로, 씨름판에 나온 선수들이 시합을 하기 전에 각자 자우 양다리를 서로 번갈아 들어 올렸다가 힘껏 내디디는 등의 독특한 동작을 취하는 행동...(뭔지 아시죠?) '시코'는 선수들의 준비운동이자 상대에게 힘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교우지(行司)
스모경기의 심판.
스모마게(相撲まげ)
리키시(力士)의 특이한 머리모양을 가리키는 말로 시대에 따라 그 명칭과 모양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스모마게는 리키시의 품격을 높이고 스모의 독특한 전통을 전하는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幕の内(마쿠노우치)의 순위가 적혀진 반즈케 표(番付票)
(타카노하나(貴乃花)의 어린시절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