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여성들의 건강한 젊음을 보장하는 데 탁월한 효능을 지녔다는 백수오와 관련하여 <백수오의 재발견>이라는 TV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 며칠 가짜 백수오 파문으로 세상이 몹시 시끄러워졌습니다. 인삼과 구기자에 견줄 만큼 명약으로 전해지며 자양강장과 신경쇠약, 빈혈, 탈모 등에 사용되었던 백수오가 여성 호르몬 공급을 통한 갱년기 장애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각광을 받는가 싶었더니 시중에 유통되는 백수오의 90%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지요.
잘 아시다시피 이번 사건의 핵심에는 국내 백수오 시장 점유율 1위 회사인 ‘내츄럴엔도텍’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 바이오 업계의 새로운 역사를 열겠다는 기치 아래 천연 호르몬을 이용한 신약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것까진 좋았는데, 욕심이 지나쳐 소비자는 물론 주식 시장의 소액 투자자들로 하여금 땅을 치며 통곡할 수밖에 없도록 하였으니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부도덕한 기업 정신에 경종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어쨌든 국어학도로서 저의 관심은 백수오의 효능이 아니라 ‘내츄럴엔도텍’이라는 회사명에 있었습니다. ‘내츄럴’은 ‘내추럴’의 오류이니 언젠가는 손을 좀 봐 줘야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던 것이지요.
‘천연’이라는 뜻을 지닌 영어 단어 ‘natural’을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적을 경우, ‘내츄럴’이 아닌 ‘내추럴’로 적도록 되어 있는 것은 우리말에서 나타나는 발음상의 특징과 관련이 있음은 물론입니다. 즉, 현대 한국어의 경우, 구개자음 ‘ㅈ, ㅊ, ㅉ’뒤에서는 이중모음 ‘ㅑ, ㅕ, ㅛ, ㅠ’가 올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제약은 외래어 표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내츄럴’의 사례처럼 ‘ㅊ’ 뒤에 ‘ㅠ’가 결합하게 되면 올바른 외래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구개자음 ‘ㅈ, ㅊ, ㅉ’뒤에 이중모음 ‘ㅑ, ㅕ, ㅛ, ㅠ’가 올 수 없다는 제약을 전문적인 언어학 용어로는 음소 배열 제약(phonotactic constraints)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제약은 매우 체계적 성격을 띠는 것이어서 다음에서 보듯, ‘ㅈ, ㅊ, ㅉ’뒤에 이중모음 ‘ㅑ, ㅕ, ㅛ, ㅠ’가 연결되는 형태는 모두 오류형에 속합니다.
⑴ㄱ. 충남 보령 남포중학교는 지난 27일 학교 폭력 없는 학교 비젼선포식 및 등반대회를 실시했다.
ㄴ. 단순 기능의 흑백 레이져프린터는 대부분 10만원 미만의 가격대를 보이고 있다.
ㄷ. 대한, 민국, 만세, 삼둥이가 엄마 생일을 맞아 천연 포도 쥬스만들기에 돌입했다.
ㄹ. ‘봉 쥬르’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안녕하십니까?’, ‘안녕?’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ㅁ. 바디라인 관리 전문점 이현숙 챠밍클럽은 15년간의 노하우로 다양한 체형을 가진 고객들의 고민을 해결해 왔다.
ㅂ. 그들은 난징의 한 회관에서 70년대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쪄둥(모택동)의 사진을 걸어놓고 턱시도와 웨딩드레스 대신 군복을 입은 채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러한 단어들은 모두 외래어의 오류형으로서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음소배열 제약을 어긴 형태들입니다. 즉 이러한 단어들은 각각 ‘비전, 레이저, 주스, 봉 주르, 차밍, 마오쩌둥’ 등으로 써야 올바른 형태들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이러한 제약은 매우 강력해서 해당 외래어의 어원이 무엇이든 구개자음 ‘ㅈ, ㅊ, ㅉ’뒤에 이중모음 ‘ㅑ, ㅕ, ㅛ, ㅠ’가 올 경우, 모두 오류라고 보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영어의 ‘굿 모닝’에 해당하는 프랑스어 인사말 ‘봉 주르’를 ‘봉 쥬르’로 적거나,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을 ‘마오쪄둥’으로 적으면 안 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이상과 같은 언어적 사실에 기초해 볼 때, 이번 가짜 백수오 사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내츄럴엔도텍>은 그 이름부터 잘못된 가짜였습니다. 무릇 이름이 바로 서야 그에 걸맞은 실질이 주어진다고 할 수 있는바, 이번을 기회로 그 이름부터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