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연이 올려지는 서울 정동 세실극장엔 자리를 빼곡히 채운 관객들이 매일 저녁 열광한다. 젊은 연인은 물론, 60대 노인부터 꼬마들까지 있다.
서커스단처럼 하늘을 날다 몇 바퀴 공중제비를 돌고 봉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대사가 없어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라 불리지만 다양한 표정과 몸놀림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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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청룽(成龍)도, 리롄제(李連杰)도 부럽지 않은 '점프'멤버들이지만 처음 모였을 땐 무술의 '무'자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이번 주 week&은 별난 공연 '점프'를 세계적 작품으로 우뚝 세우기까지 이들의 숨겨진 눈물과 땀을 들춰봤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본 4년 세월엔 눈물과 웃음과 고통이 뒤엉켜 있었다.
분명 세상엔 공짜란 없었다.
하루종일 물구나무서기
"있잖아, 태권도를 하면서 공중을 막 날아다니는 거야. 멋지지 않겠어?"
"멋있죠. 근데 우리가 어떻게 그런 걸 해요. 중국 소림사 무술인들을 데려다 쓰시든가…."
2001년 10월. 서울예대 선배인 최철기(32.현 점프 총감독)씨와 김경훈(32.현 점프 제작사 '예감'대표)씨는 진영섭(29).윤정열(29).전주우(27)씨 등 후배 3명을 를 꼬드겼다. 연극판에서 나름대로 배우 수업을 하고 있던 후배들은 난데없는 선배들의 '공중돌기' 운운에 질겁했다.
"얌마, 너희들 졸업 후에 나랑 같이 작업하기로 했잖아. 정 그러면 운동 삼아 한다고 생각하고 나와!"
선배들의 불호령에 후배들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경희대 체육관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선배는 없고 국가대표 여자 기계체조 코치인 정옥수(30)씨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찬 바람이 휑하니 불 만큼 매서운 몸가짐, 어딘가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 "체조 선수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연극에도 도움이 될 텐데 그렇게 하기 싫으세요? 굳이 권하지 않을 테니 마음대로 하세요."
남자로서 오기가 발동했다. 한번 부딪쳐 보기로 했다. 그러나 정 코치는 이래라저래라 말이 없이 하루종일 물구나무서기만 시켰다. 우선 팔 힘이 있어야 공중 회전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영섭씨는 그때 생계로 야간 대리운전을 하고 있었다. 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나선 팔이 저려 운전을 하기도 힘들었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지 싶었다. 대~충 시간을 때우며 요령을 피웠다.
그런데 두 달 만에 일이 터졌다. 90㎏ 나가던 막내 주우씨가 몸무게를 20㎏이나 빼더니 훌쩍 회전을 하는 것이었다. 덩달아 동기 정열씨도 한바퀴 도는 데 성공했다. 이것 봐라, 승부욕에 불탄 영섭씨도 당장 대리운전을 때려치웠다. 그해 마지막날, 세 명은 선배들 앞에서 공중돌기 시범을 선보였다. 모두 제법 날렵하게 돌았다. 박수가 터졌다. "됐어. 이제부터 진짜 제대로 해보자."
허공을 날며 바람을 가르는 황당한 가족
객석은 쉴 새 없이 뒤집어지고 자지러진다
90분 내내 이어지는 폭소… 환호… 갈채
그러나 그 뒤엔 열정 하나로 눈물과 땀을 버무린 '젊은 사자'들의 4년 세월이 있었다
"발가벗고 선 느낌이에요."
2002년 초. 얼추 남자 멤버들은 기본기를 닦았다. 이젠 여자 멤버를 키워야 할 때. 3명의 연극배우를 불러다 똑같이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기초 체력이 약한 여자들에겐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3개월 만에 포기. 그때 한 여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바로 정 코치를 따라 트레이너로 온 김지은(28)씨. 여자 체조 국가대표 출신인지라 공중돌기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최 감독이 무릎을 탁 쳤다.
"지은씨 이번 기회에 무대에 한번 서보면 어때. 연기야 우리가 가르쳐주면 되잖아."
지은씨는 손사래를 쳤다. 연습이 끝나곤 늘 뒤풀이를 핑계 삼아 술을 같이 마셨다. 술은 마음을 풀어주고, 동지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을 사정했다. 그녀는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지은씨의 연기 수업은, 연극배우들의 기계체조 훈련보다 더 힘든 나날이었다. 무대에만 서면 얼굴은 굳어지고, 몸엔 잔뜩 힘이 들어갔다. 결국 한 달 만에 태업에 들어갔다. 연습실에 나오지 않아 전화를 걸면 "몸이 아파서…"라고 핑계를 댔다. 집에 찾아가 밥 사주고, 달래면 그 다음날 다시 나오곤 일주일도 못 가 또 안 나왔다. 1년간 줄잡아 스무 번은 연습을 '펑크'냈다.
"너, 도대체 왜 이러는데?"
"감독님은 '남자 때문에 애타는 마음을 표현해봐' 하시잖아요. 그걸 어떻게 해요. 전 지금껏 짜여 진 것만 해왔다고요. 근데 만날 '상상력이 중요해. 감정을 느껴봐' 하시면 어떡해요. 무대에 선 저를 사람들이 쳐다보면 마치 홀딱 벗은 기분이라고요!"
눈물의 20만원, 피눈물의 다리 찢기
2002년 12월. 10명의 출연진은 '별난 가족'이란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다. 국립극장이었다. 보름간의 공연은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제2의 '난타'가 등장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이 끝난 뒤 탈진해 쓰러진 출연진의 모습을 본 일본 프로듀서는 "잔혹 연출"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공연이 끝난 뒤 대관료와 장비 등을 빼고 제작자.감독.스태프.출연자 각자에게 돌아간 돈은 20만원씩이었다. 연습에 들어간 뒤 처음 만져보는 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용기를 얻었다. 2003년 3월 경기도 의정부시에 창고를 개조해 아예 연습실 겸 숙소를 만들었다. 거기서 먹고 잤다. 연출부는 줄거리 구성을 강화했다.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박계환(34) 무술 감독이 초빙됐다. 그는 "공중만 휘휘 날지 무술의 절도와 유연성이 없어"라고 호되게 몰아쳤다.
무술 훈련의 대부분은 다리 찢기에 투자됐다. 발차기를 위한 통과의례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성인이 된 출연자에겐 그만한 고통이 없었다. 박 감독은 다리를 벌린 사람들 위에 올라타 사정없이 짓눌렀다. "악-" 비명이 터져나왔다. 영섭씨는 두 번이나 기절해 병원에 실려갔다. 정열씨는 "'연극하러 왔지 묘기대행진 나가려고 온 줄 아느냐'며 나간 사람이 줄을 이었다"고 회상한다. 벽을 타고 올라갔다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기술도 그때 익힌 것. 탈골.아킬레스건 파열 등 마치 격투기 선수처럼 부상자가 속출했다. 툭하면 환자가 생기는 바람에 조연출은 부항 뜨는 기술을 배워야 했다.
고난을 넘어 세계로
2003년 7월 드디어 '점프'가 완성됐다. 우림 청담 씨어터에 올려졌다. 객석 점유율은 평균 70% 정도. 간신히 수지를 맞출 수 있는 정도였다.
문제는 장기 대관이 어려운 탓에 무대를 안정적으로 가질 수 없다는 점. 폴리미디어 씨어터, 문예회관 대극장, 세종문화회관 퍼포먼스홀 등을 전전했다. 떠돌이 생활이었다. 그해 연말 최대의 위기가 닥쳤다. 수익을 내지 못하자 배우들의 임금이 체불됐고, "죽도록 고생시키고 돈도 안 준다"는 이유 있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결국 다섯명이 집단 탈퇴했다.
이듬해엔 사기까지 당했다. 투자자를 끌어다 주겠다는 브로커의 말만 믿고 계약서를 체결했다 2억원의 돈을 날리고 말았다. 가뜩이나 어렵던 제작사 측은 휘청했다. 이리저리 돈을 빌리러 다녀야 할 처지였다. 출연진과 스태프도 십시일반 돈을 보탰다. 돈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자기 주머니를 털어 회사 살리기에 나선 출연진과 스태프 앞에 김경훈 대표는 "내가 악덕 사주"라며 눈물을 보였다.
돌파구는 해외에서 찾아왔다. 올 초 내한한 영국 공연 관계자가 점프를 보곤 "8월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꼭 출품해 달라. 가장 큰 극장, 가장 좋은 시간대를 잡아주겠다"고 확언했다. 페스티벌 20여 일간의 공연은 그야말로 성황이었다. "동양 무술과 연극이 만나 환상적인 시너지 효과를 보인다"는 평과 함께 별 다섯 개 평점을 받기도 했다. 해외 12개국과 계약을 체결, 250만 달러의 개런티를 보장받게 됐다.
원년 멤버 영섭씨는 "언제 돈 보고 공연했나요. 다리 들어 귀에 닿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대견할 뿐"이라고 씩 웃었다. 김지은씨는 "이젠 무대에 오르지 못하면 근질근질해 못 견디겠어요. 연극 배우 다 됐어요"라며 활짝 웃었다. 이들의 미소 속에는 세계를 향한 점프의 비상도 담겨 있었다.
글=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양진방(대한태권도협회 기획이사)
무예는 기본적으로 '공연성'을 가지고 있다. 수호지엔 영웅들이 어려운 시기에 약장사를 하며 무술 시범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중국 경극의 저변에 깔려 있는 것도 기예다. 대한태권도시범단도 앞으로 단지 무술 시범이 아닌 공연적 요소를 가미할 예정이다. 무술 공연의 좋은 전례가 나온 것 같아 반갑다.
▶송승환(PMC 대표.난타 기획자)
마셜 아츠(Martial Arts.무예기술)를 소재로 해 외국인에게도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구성의 빈약성은 조금 더 다듬어야 할 듯싶다. 기술보다 스토리 강화에 신경 쓰길 바란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면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마케팅 능력이 없으면 힘들다. '난타'처럼 외국에서도 성공하길 기대한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처음 보았을 때는 다소 조악한 수준이라 느꼈다. '점프'의 미덕은 그 후 진화 발전했다는 데 있다. 공연은 본래 '진행형'의 속성을 가지므로 끝없이 수정 보완해야 한다. 제작진의 실험과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넌버벌이라는 이유로 외국에서도 무조건 통하리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